르몽드 비판 경제학 -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다음 세대를 위한 경제 교과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이푸로라 옮김, 성일권 감수 / 마인드큐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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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가 악화될수록 실패한 정책방향은 왜 여전히 굳건히 고수되는 것일까? 서문에서 이렇게 진단을 내렸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 사회과학계를 장악했기 때문에. 그들은 학문의 폐쇄성과 배타성을 유지하고 신뢰도를 높이는 방편으로 숫자와 방정식을 활용해 철두철미한 장벽을 쌓아올렸다. 그리하여 사실 2차 세계대정 이전까지만 해도 문과에 더 가까웠던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공학, 수리학 못지않게 기술학으로 변모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듣고 배운 경제학 교과서는 우리 사회 1%에 불과한 그들의 것이었다.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허튼 이론들이 경전처럼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마치 무한경쟁의 성장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기획한 이 책 <르몽드 비판 경제학>은 프랑스에서 출간되었고,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가 휘몰아친 뒤 글로벌 성장 패러다임이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파노라마 속 경제현상을 설명하고 역사 속 경제 이야기를 곁들여 문제를 파헤치는 방식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분석한 뒤에 각 장을 마무리할 때는 미래에 대한 또 다른 비전을 제시해주었다. 프랑스 대학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을 겨냥해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미래세대의 경제 지침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금껏 내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경제에 대해 편견을 부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여러 가지 사진과 그림 자료가 컬러풀하게 삽입되어 있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경제에 대해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었다.

 

  우선 각 챕터별로 통념을 빨간 글씨로 제시했다. 이를테면 <시장을 따를 것인가, 증명된 법칙을 세울 것인가?>라는 주제에 대해서 경쟁은 효율을 보장한다라는 통념이 그것이다. 여기에 삽입된 그림은 미국 미시간주 맥키노시의 화이트쇼알 등대. 공공재의 특성을 띄는 재화이다. 시장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정부개입이 필요함을 인정했고 그것의 예가 바로 공공재, 독점, 외부효과이다.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경우라도 가격을 책정하면 만사형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부정적 외부효과를 유발하는 오염물질 배출 기업에 배출권을 할당하고 가격을 책정해 배출량을 감소하게끔 하는 정책. 이 주제엔 보이지 않는 손을 보조하는 국가의 주먹, 경고등이 켜진 노동권 등의 내용도 들어있었다. 이 주제의 비전으로 제시된 신자유주의 볼셰비즘에 대해 흥미롭게 읽었다. 하이에크는 케인즈에 맞서 신자유주의 사상을 창시한 인물인데 그는 정부의 역할이 자원 재분배가 아닌, 시장의 역할만으로는 불충분한 서비스(안보, 설비, 통계, 최저소득)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자유주의자들 입장에선 이상향에 불과하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한 세대는 지나야 비로소 정치적 행동에 미칠 만한 힘을 얻을 것이라 예견하고 언론, 대학, 고위 공무원, 고용주들 사이에 점차 퍼져나가 2차 대전 이후 복지국가가 된 1970년 중반 위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의 주장이 유리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첫 장부터 숫자놀음 통치의 허상을 드러내고 우리가 알고 있던 통념들을 뒤집는 예리한 분석이 이어짐에 따라 삐딱하게 좌, 우파 사상을 논하는 비평을 넘어서 비전까지 제시되어 있어 참 좋았다. 이 책의 출판의도 역시 경제학 이론에 대한 풍부한 지식 그 자체보다 현 자본주의의 경제체제를 읽어내는 안목을 기르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여러모로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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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엉덩이가 필요해!
돈 맥밀런 지음, 로스 키네어드 그림, 장미란 옮김 / 제제의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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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이었나? 내 생애 첫 이를 빼는 날. 앞니 하나가 덜렁덜렁 흔들거리고 아빠가 손 하나만 까딱하면 금방 빠질 태세였다. 하지만 그마저 매우 무서웠던 난 흔들거리는 이를 두시간째 방치하고 저녁을 못 먹고 있었다. 아빠는 말했다. 지금부터 5분 내로 이를 빼지 않으면 그 이가 윗입술을 뚫고 솟아날 거라고. 터무니없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나는 울면서 1~2분간 고민하다가 내 신체의 일부분(그때는 전부였던 것처럼)을 아빠의 손에 맡..! 이는 톡! 하고 빠졌고 나는 약간의 피를 쏟으며 그날의 기억을 지금까지 간직하게 되었다.

 

  이 에피소드를 왜 이야기하느냐? 그만큼 어린 나이에 신체에 무지하고 궁금한 게 많고 그랬다. 이 책 <새 엉덩이가 필요해!>를 읽으니 엉덩이를 소재로 상상 이상의 재밌는 이야기가 펼쳐져서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몸과 신체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특히 방귀랑 똥이라는 소재는 유아도서에 단골로 나오는 것 같다. 티비만화와 책으로도 나온 엉덩이탐정또한 복숭아 같은 발그레한 엉덩이모양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엉덩이는 우리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신체부분이라 더 호기심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우리의 주인공은 어느 날 우연히 거울로 자신의 엉덩이가 쩍 갈라진 것을 발견한다. 분명 자전거를 타다 방귀를 뀌어서 엉덩이가 쩌저적 갈라졌다고 확신한 아이는 새 엉덩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반짝이는 눈부신 엉덩이가 좋을까? 외계인 엉덩이는 어떨까? 깃털로 화려하게 장식한 엉덩이도 좋을 것 같다고 끊임없이 상상한다. 그림을 보니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고 기발한 엉덩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로봇 엉덩이도 참 웃겼다. (그런데 너무 비쌀 것 같은건 안 비밀!) 자신의 엉덩이가 갈라졌다는 아이의 이 슬픈 고민이 아빠의 질펀한 엉덩이를 보자마자 사라졌다. “아빠! 아빠 엉덩이도 갈라졌어요!” 그 외침에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와 기쁨과 신기함이 버무려져 있었는지. 내가 다 안심이 되었다.

 

  엉덩이라는 소재로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던 건 작가 덕분이다. 돈 맥밀런의 글과 로스 키네어드의 그림이 어우러져 충격 받은 아이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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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 보좌관입니다 - 300명 국회의원, 2,700명 보좌진 그 치열한 일상
홍주현 지음 / 지콜론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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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호선 국회의사당역을 지나갈 때면 세가지 생각이 난다. 첫 번째는 6학년 겨울방학때 전국편지쓰기대회에서 우리학교 대표로 뽑혀 국회의사당에서 예절상을 수상한 것, 두 번째는 봄에 만발한 벚꽃을 구경하기 좋은 곳, 세 번째는 저기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일을 하는 걸까?

 

  <대한민국 국회 보좌관입니다>라는 책을 집어들었을 때 의심의 눈초리로 글을 따라 읽었던 것이 사실이다. 프롤로그에도 이야기했듯이 매체를 통해 비치는 국회의원의 이미지는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면을 반복하기보다 매체가 비추지 않는 평범한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조명했다. 진심으로 사명을 다해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이였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국회사무직 시험을 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보좌관, 행정부 직원들의 일상도 궁금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또는 편견으로 바라본 국회의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국회는 입법기관이고 보좌관이 하는 일은 입법안, 상임위의 회의자료를 담당하고, 정치적 사안에 관한 전략에 초점을 두며 기자, 지역 유지, 후원자 등 대외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을 돕고 의원실 전반을 총괄 책임지는 일을 한다. 여담인데, 얼마 전 티비에서 의원들이 의원실을 물리적으로 점거하는 모습을 봐와서 그런지 자꾸 잔상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처럼 국회의원들이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지 저자는 첫장 본문부터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국회의원들이 노는 줄 안다.’ 하지만 오히려 일 욕심 많은 국회의원을 만난 적이 더 많았단다.그래서 제목도 <지고는 못 사는 사람들 300명이 모여 있습니다> <부제:나태하면 도태되는 국회>일까. 국회의 모습은 마치 피라미드와 같아서 비례대표나 초선의원이 포진한 아래쪽은 넓고, 내선, 3선 등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진다. 고정적이지도 순차적이지도 않은 이 모습 속에 올라가지 못하면 추락하는 정글같은 모습을 보았다. 대표적인 기득권 기관이지만 그들만의 리그에선 또 이렇듯 치열하다.

 

  <보좌관의 국회의원 길들이기>라는 도발적인(?) 챕터가 눈에 띄었다. 유권자에게 선택받아 국회에 입성한 그들일 지라도 국회에 대해서는 대중과 똑같이 글이나 뉴스를 통해 접한다. 그리하여 초선의원같은 경우 초반엔 국회 경험이 있는 보좌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의원 입장에서는 처음엔 긴장되겠으나 길게 본다면 기본 지식과 쟁점 파악은 보좌관의 도움을 받더라도 회의에 따라서는 즉각 발언하는 것을 연습할 필요도 있다. 보좌관이 수많은 회의마다 질의자료나 안건에 관한 현황과 쟁점자료를 챙겨준다면 그것이 없을 경우 아무 얘기도 못하는 정치인이 될 테니까.

 

  저자는 시민사회의 부재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국회가 자기 역할을 다하는 강한 의회로 만들고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필요하다고. 이것이 없으면 아무리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와 의지가 있어도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국회의원에게 문자를 폭탄처럼 보내도 경기에 불만이 가득한 광팬이 선수에게 항의 문자를 보내는 것과 다를 바 없으므로. 그렇다면 축구 팬이 경기장 안으로 뛰어 내려가야 하나? 아니다. 축구경기의 주인은 실제로 가장 많이 돈을 버는 축구협회다. 손님은 참석하는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진짜 참여는 경기를 운영하는 주인의 일이다. 따라서 정치인같은 국가 기관을 심부름꾼으로 부리려면 시민사회를 형성하여 자율적 운영체제 안에서 주인의식을 가지며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국회의원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개인이 변해야한다고 생각했다가 시민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영역을 확대해나가기 위해 개인이 변해야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국민의 불만인 국회의원의 과도한 기득권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국회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기 기다리는 것보다 법과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는 시민 자율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게 좀 더 효과적이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국회를 직접 경험한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강하고 능력 있는 개인들의 영역이 존재하기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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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이야기를 원한다 - 하버드 스토리텔링 강의
가오펑 지음, 전왕록 옮김 / 라이스메이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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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기업과 브랜드 중에서도 우리 마음을 공략하는 것이 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광고가 있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이야기(스토리텔링)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하버드 스토리텔링 강의로서 이야기 자본에 대해 나누고 있다. 코카콜라는 시럽을 팔던 작은 공장에서 전 세계인이 아는 대기업으로 변모했다. 브랜드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몇몇 똑똑한 기업에서 브랜드 스토리에 인간적인 느낌을 덧붙인 것을 발견했다. 알리바바의 마윈이 대표적이다. 넘쳐나는 정보화시대에서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면 자신을 위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 책에서는 단순한 스토리텔링 기법뿐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는 법까지 알려준다. 그것은 말하기에 앞서 듣는 것이 포함된다.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그들의 필요를 들어주는 것. 이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개인영역에서도 나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좋은 이야기는 재화뿐 아니라 사람 자체를 선호하게 만든다. 저자는 기술과 금전이 아닌 이야기가 성공의 밑천이라고 말하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브랜드들의 스토리텔링 전략을 다양한 사례로 소개해주고 있으며, 개인과 기업이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방안을 제시해 주었다.

 

  물건을 파는 기업은 소비자에게 물건의 가치를 인식시켜야 하는데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활용하면 덜 강압적으로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심리적 거리가 좁혀진다. 사람이 있는 곳엔 늘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 눈에 띄려면 우리가 잘 아는 유명인을 활용하여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 좋다. 이는 사회적 영향력과 이야기 자본의 영향력이 비례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는 기본적으로 사랑을 소재로 두고 있다. 사랑과 인생이 이야기의 본질이라서 그렇다. 우리가 잘 아는 초콜릿, 도브는 이 주제를 아주 잘 드러낸다. ‘더 이상 사랑을 놓치지 마세요.’라는 주제로 도브 초콜릿은 탄생했다. 레온과 바자 공주의 사랑을 다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또한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특이한 행동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중국 하이얼의 냉장고도 이런 방법으로 성공했다. 아직 중국에서 흔히 보급되지 않은 제품이라 소비자들에게 낯설었던 이 냉장고는 설문결과 하이얼에서 생산한 뤼쉐냉장고에서 각종 결함이 있음을 발견하였고, 정뤼민 회장은 이 문제의 냉장고를 전부 쇠망치를 들고 부수는 퍼포먼스를 시행했다. 이 사건은 기업이 품질을 가장 중시하며 품질에 매진하려는 결심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깨트리고 부순극단적인 방법이 소비자들에게 각인되어 의지를 전달한 훌륭한 스토리텔링 전략이라 할 수 있었다.

 

  책은 마케팅 전문가 가오펑의 저서로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왜 이야기 자본인가?>, <훌륭한 이야기 자본의 특성들>, <이야기 자본과 전파> 그리고 <좋은 이야기의 무한한 힘>으로. 책을 읽을수록 이야기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힘이 있구나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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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산다는 것 - 다산 정약용이 생각한 인간의 도리, 그리고 법과 정의에 관한 이야기
정약용 지음, 오세진 옮김 / 홍익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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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은 정치가이자 법률가였다. 그가 쓴 수많은 책들 중에 유배 중에 쓴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가 대표적이다. 그는 법과 관련된 직책으로 오늘날 법무부 차관보에 해당하는 형조참의라는 관직에 있었는데 여기서 올라오는 수많은 보고서를 직접 살피며 형법에 관한 나름의 식견과 안목을 키웠다. 흠흠신서에는 그러한 경험들이 녹아들어 있다. 형법과 법 행정, 살인 사건 판례와 비평을 실은 저술서인 흠흠신서 중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조선의 사례를 담고 있는 상형추의, 전발무사의 사례를 선별하여 편역하였다. 사건 개요와 검시 보고서, 관찰사의 보고서, 형조의 보고서, 임금의 판결문, 다산의 견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산은 정조 임금의 지지를 받으며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으나 그의 개혁안은 정적들의 공격을 받아 현실에 쓰이지 못했다. 그가 정치적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한 일은 조선 후기 역사에 있어 참 아쉬운 일이다. 정조와 함께 법과 인정을 모두 고려하여 판결을 내리고 싶었던 그의 열망을 이 책으로 살펴보자.

 

  강력범죄 수사의 모범 사례가 실렸다.

황해도에 사는 김천의가 길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석 달 동안 세 차례에 걸쳐 검시를 했는데도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미제 사건으로 그냥 매장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형조는 더 세밀하게 조사해보라는 명을 내렸고 네 번째 조사관이었던 서흥현감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그는 김천의의 복부에 무언가 미세히 밟힌 자국을 발견했고 그것이 누군가의 발자국임을 알아냈다. 이런 흔적이 죽기 전에 생긴 것인지 죽고 나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앞선 세 차례의 조사가 너무 허술했음은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용의자를 수소문하면서 김몽세라는 원한관계의 인물을 찾아냈고 그를 추궁했다. 머슴이었던 김천의는 김몽세의 며느리와 불륜 관계에 있었다. 아들이 요절하자 며느리는 슬퍼하기는커녕 아낙들과 히죽대며 김몽세의 염장을 질러댔다. 그때 김천의는 며느리를 허물없이 대하자 그를 죽이려고 어느 날 밤 불러내어 밟아 죽이고 유기한 것이다.

 

  이 사건은 지연과 혈연으로 얽혀 저마다 사적인 이익을 취하며 쉬쉬하고자 했던 사람들 때문에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살해범과 유족 간 사적인 화해가 이뤄져 고발도 하지 않았으며, 유천복이라는 벼슬아치에게 청탁을 하여 관아에 보고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서흥 현감은 앞 선 세 차례의 조사를 뒤집고 제대로 수사하여 다산이 극구 칭찬한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 흠흠신서에서 다산은 법률 지식은 물론이고 책임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벼슬아치들을 강력히 비판하면서도 사건을 해결한 서흥현감에겐 아낌없는 칭찬을 하였다.

 

  서른여섯개의 범죄사건을 제시하며 다산이 살던 시대의 해결방법과 그의 의견을 첨부한 이 책은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읽힌다. 지금 우리나라에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범죄사례들을 다산이 본다면 어떤 판결을 내리고 싶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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