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4 - 제2부 유형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한강> 4권을 이야기해줄게. 4권부터는 2유형시대의 제목을 가지고 있단다. 유형시대가 정확히 어떤 뜻을 의미하는지 좀 찾아봤는데, 찾을 수가 없구나. 2부를 읽으면서 그 뜻을 대충 유추해 봐야겠구나. 소설 속에서 년도가 나오지 않지만, 소설 속 역사적인 사건을 유추해 보면 <한강> 4(2부 유형시대) 1964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안경자의 아버지는 광주에서 잘 나가는 병원을 하는 병원장이란다. 안경자의 동생을 김선오가 가르쳤는데 그때부터 안경자의 아버지는 김선오를 눈 여겨 보았어. 김선오가 검사에 합격하게 되자, 안경자의 아버지는 김선오를 신랑감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뜻을 이야기했단다. 김선오는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병원장의 딸을 아내로 둔다는 것만큼 경제적 이익은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단다. 김선오는 그 동안 안경자의 친구였던 박영자과 사귀고 있었어. 김선오가 순천으로 발령되어 오면서 거리적으로 멀어지긴 했지만 애인은 애인이니까 말이야. 김선오는 며칠을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안경자를 선택하고 안경자의 아버지를 찾아갔단다. 그런데 김선오에게 복병이 있었단다. 강숙자. 자신을 멸시하던 김선오를 오래 전부터 싫어했던 강숙자. 강숙자는 안경자와 박영자 둘 모두의 친구잖니. 강숙자는 안경자에게 김선오와 박영자 사이에 대해서 다 이야기를 했단다.

충격을 받은 안경자는 아버지에게 이야기하고 김선오와 일을 없었던 것으로 했단다. 김선오는 박영자와도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속이 쓰렸지만 자신의 잘못을 누구에게 탓하리오. 김선오는 자신의 검사 월급으로는 딸린 가족들을 챙기기 부족하다면서 걱정했단다. 김선오, 많이 타락했구나.

또 다른 사랑 이야기. 임채옥과 유일민의 사랑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끝나가려고 한단다. 임채옥의 아버지 임상천이 임채옥이 유일민과 사귀는 것을 알게 되었어. 임상천은 자신의 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집에 감금시키고 일민을 못 만나게 했단다. 이 충격으로 임채옥은 하혈을 했는데, 알고 보니 임채옥은 임신을 하고 있었던 거야. 임상천은 사람들을 시켜 유일민을 반쯤 죽여 놓고 다시는 임채옥을 만나지 말라고 경고했단다.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꿈을 펴지 못한 유일민은 사랑도 이렇게 제대로 할 수 없구나. 등장인물 중에 가장 불쌍한 사람인 것 같아.

유일민은 임채옥을 잊기 위해 서독 광부를 준비하였단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독에 돈을 벌러 가기 위해 광부와 간호사로 많이 갔거든. 유일민은 빨리 광부 경력증을 받기 위해 뒷돈도 쓰고 그랬단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버지 이력 때문에 서류에서 떨어지고 말았단다. 뒷돈 쓴 것 때문에 빚만 남았단다. 도대체 이곳에서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나. 유일민의 동생 유일표도 돈이 없어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갔단다.

 

1.

4.19 혁명 때 대학생으로 참여했던 박준서. 박영자의 오빠이기도 하지.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서 사업을 배웠단다. 아버지에게 형들보다 더 인정을 받기 위해 정말 열심이었단다. 4.19 혁명 때 정의를 향한 젊은 혈기는 사업을 향한 혈기로 바뀌어 있었어.

나복남의 동생 나윤자는 봉제 공장에서 일했는데, 봉제 공장은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이었단다. 장소를 확보하려고 일층 중간에 칸막이를 두어 2층으로 만들어 노동자들은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했고, 환풍시설이 제대로 없어서 먼지 속에서 작업을 해야 했단다. 그래서 폐병 걸리는 노동자들이 가끔 있는데, 그런 병에 걸렸다고 회사에서 의료비 지원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병에 걸린 사람을 잘라버렸단다. 정말 사악한 놈들이구나.

당시 가장 큰 사회적 이슈는 한일협정이었단다. 일제시대의 보상을 돈 몇 푼으로 끝내려고 하는 한일협정. 당시는 해방이 된지 20년도 안 된 시점이니 사람들이 얼마나 울분에 찼겠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일협정반대 시위를 했단다. 야당 정치인들 중에서도 이를 강력히 비판하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어. 대표적인 사람이 한인곤이었단다. 정부가 이를 그냥 보고만 있겠니. 중앙정보부에서 직접 나섰어. 한인곤을 직접 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을 겨냥했어. 한인곤의 아버지 한무규의 회사에 세무조사를 해서 정미소 소유를 박탈시켰어.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결국 한인곤은 자세를 낮추고, 이젠 공화당이 된 친구 남재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단다. 이것이 당시 권력 잡은 이들이 휘두르는 권력의 진실이었단다.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 검찰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과 가족들을 털어 기소하고 그러잖니. 검찰권력이 너무 막강하구나.

김선오의 동생 김명숙은 가출한 이후 친구들과 함께 차장 일을 했는데, 성추행에 가까운 몸수색을 당하는 것이 정말 괴로웠단다. 어느날 맥주홀의 서빙 자리를 제안 받게 되는데, 술집이라는 인식 때문에 김명숙은 그 제안을 거절했단다. 그런데 그게 정말 잘 한 것이었어. 알고 보니 그곳은 성접대까지 하는 술집이었던 거야.

유일표는 군대에 들어간 이후에 아버지 때문에 주기적으로 조사를 받고, 보직도 계속 바뀌었단다.

 

2.

유일민이 서독 광부를 가려고 준비했었다고 했잖아. 그때 같이 준비했던 친구 배상집은 최종 합격이 되어 독일에 갔단다. 그곳 생활도 쉽지 않았어. 석탄 가루 날리는 탄광에서 하루 종일 몸을 쓰며 일을 해야 했어. 그런데 어느날 통역을 맡은 이가 통역을 잘못하여 한 노동자가 거의 죽을 뻔한 일이 있었어. 이에 독일 관리자는 평상시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배상집을 눈여겨보고 배상집에서 통역 일을 시켰단다. 그래서 배상집은 이제 탄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어.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유일민. 이번에는 월남파병 근로자를 신청했으나 이번에도 신원조회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단다. 당시 월남, 그러니까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어. 군인들 파병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많이 갔단다. 우리나라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서 많은 노동자들이 베트남으로 향했단다. 유일민은 그곳도 갈 수가 없었어. 어느날 유일민은 우연히 임채옥을 만났어. 임채옥은 유일민에게 도망가자고 했어. 도망가지 않으면 자신은 부모님이 시키는 강제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어. 유일민은 자기 아버지 때문에 안 된다고 했어. 만의 하나 자기 아버지가 내려오면 자기뿐만 아니라 임채옥의 가족까지 파탄 날 수 있다면서 안 된다고 했어. 그러면서 이제 진짜로 헤어지자고 했단다. 임채옥은 눈물을 머금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임채옥은 자신이 틈틈이 모아 놓은 돈이라며 당시로서는 거금인 50만원을 주려고 했단다. 유일민은 당연히 안 받으려고 했지. 임채옥은 그 동안 있었던 일, 아이를 임신했던 일과 낙태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어. 유일민은 임채옥의 진심을 받아들여 돈을 받았단다. 유일민은 결국 임채옥의 도움으로 사업을 할 수 있었단다. 사업은 신원조회가 필요 없었지. 유일민은 친구 서동철에게 조언을 받아 술 도매업을 하기로 했단다.

….

그 밖에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쭉 간단히 이야기해줄게. 천두만은 월남 파견 근무를 지원했지만 떨어졌단다. 유일표의 친구 최주한은 카투사로 입대하여 근무를 해서 편하긴 했지만 미군들의 인종차별로 스트레스가 심했어. 안경자는 결국 의대 선배인 신기훈과 결혼하게 되었어. 김선오의 또 다른 여동생 김광자는 유부남에 속아 사랑에 배신을 당하고 서독에 가기로 결심했어. 간호학원에서 간호사 자격을 획득하고 독일어 학원을 다니며 독일어 공부도 열심히 했단다. 강기수는 공화당으로 당을 옮겨 다시 한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단다. 박정희는 윤보선을 상대로 지난번보다 여유로운 표차로 대통령 재선에 성공을 했어.

이 시설 또 하나의 큰 사건이 있었어. 북한 공작원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침략했던 거야. 이 중에 29명이 사살되고 한 명은 북으로 되돌아 도망갔고, 김신조 한 명만 투항하여 잡혔던 사건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 사건인데 가장 깜짝 놀란 사람들은 군인들이 아닐까 싶구나. 이 일로 갑자기 군생활이 6개월이 늘어났는데 제대를 앞둔 사람들에게도 적용이 되었단다. 제대를 코 앞에 두고 군생활이 6개월이 늘어나다니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 일어난 거지군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그들이 느꼈을 분노를 모두 이해할 것 같구나. 그뿐만 아니라 군인 훈련도 빡세져서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을 받아야 했어.

….

여기까지 <한강> 4권의 이야기란다. 조정래 님의 소설은 살아있는 삶을 그대로 쓰셔서 정말 실감이 나는구나. 그 시절을 함께 살고 있는 기분이란다. 기쁜 일보다 슬프고 억울하고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아서 그렇지..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화순을 지나면서 비치기 시작한 눈발은 기차가 광주에 도착했을 때는 꽤나 탐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 오면 내가 위로주 살게.”



김선오는 눈을 맞으며 한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득한 눈발 저쪽에 무등산이 그 우람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산, 광주에 오면 누구나 바라보는 산, 언제나 중후하고 의연하고 듬직하고 넉넉한 자태의 무등산은 겹겹의 눈발이 지어내는 환상적인 옷을 입으며 묘한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광주를 내려다보듯 보듬듯 하고 있는 그 산을 무시로 바라보며 무등의 의미를 가슴에 새겼던 지난날을 김선오는 왠지 슬픈 감정으로 더듬고 있었다. 등수를 매길 필요가 없도록 으뜸이 되겠다는 꿈 속에는 고등고시 최연소 합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자신의 모습은 무엇인가……
"꿈은 클수록 좋고, 욕망은 치열할수록 좋다."
- P10

"그게 말입니다…… 얼핏 보면 항아리에 담아놓는 것이 더 손해일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꼭 그럴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왜냐하면 딴 그릇에 따로 내와도 깍두기가 모자라게 되면 사람들은 또 달라고 합니다. 그럼 다시 갖다 주느라고 일손만 많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항아리에 담아두면 그 일손을 덜게 됩니다. 그리고 또…… 딴 그릇에 두 번 내온 것이 많아서 남기게 되면 그건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항아리에서 각자가 먹을 만큼씩만 꺼내 먹으면 그런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항아리에 이렇게 담아두면 인심을 후하게 쓰는 것 같아 손님들을 기분 좋게 하고, 그게 더 손님을 끄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 P37

"허진으로서는 어쩔 수 없을 거야. 자기 할아버지와 집안을 생각하면 그 심정이 어떻겠어. 일본놈들이 백배사죄하며 돈을 싸짊어지고 와도 시원찮을 판인데, 오히려 이쪽에서 사죄 같은 건 상관없이 어서 돈이나 좀 달라고 매달리는 형국 아니냔 말야. 그러니 자기 할아버지가 짓밟히고 모독당하는 것 같고, 괜히 헛된 일 한 것 같고, 또 엉망이 된 집안 꼴을 보면 얼마나 기막히겠어. 우리가 허진의 심정을 다 알 수는 없는데, 어쩌면 죽고 싶은 심정으로 데모를 하는지도 몰라."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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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유모는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몰랐다. 엘파바는 악마의 씨일까? 반은 인간이고 반은 요정일까? 설교자로서 아빠가 제 구실을 못한 벌일까, 아니면 몸가짐이 헤프고 기억력이 나쁜 엄마에게 내려진 벌일까? 아니면 그저 모양이 괴상한 사과나 다리 다섯 개 달린 송아지처럼 단순한 기형에 불과할까? 유모는 악마와 신앙, 민간 전승 따위의 영향으로 자기가 세상을 보는 눈이 흐릿하고 혼란스러운 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멜레나와 프렉스 부부가 분명 아이가 아들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프렉스는 일곱 번째 아들이었고 그의 아버지 역시 일곱 번째 아들이었으며, 심지어 그는 집안의 7대 목사였다. 어찌 다른 성의 아이가 감히 이토록 상서로운 순서를 따를 수 있겠는가?

유모는 어쩌면 이 초록색 아기 엘파바가 부모를 파멸로 몰아넣기 위해 자기만의 성과 색깔을 고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52)

, 과학은 자연을 해부하여 보편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부분으로 축소하지요. 마술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마술을 조각조각 나누는 것이 아니라 찢어진 부분을 잇지요. 분석보다는 통합니다. 기존의 것을 파헤치기보다는 새로이 조립하지요. 정말로 재능 있는 사람의 손에서는(이 대목에서 그레일링 교수는 머리핀에 찔려 비명을 질렀다.)…… 예술입니다. 사실 누구나 마술을 우월한, 아니 가장 훌륭한 예술이라 할 거예요. 마술은 회화나 연극, 암송 같은 여러 예술과 다른 면에서 우월합니다. 마술은 세계를 꾸미거나 표현하지 않아요. 세계가 되는 거예요. 더없이 고귀한 소명이라 할 수 있죠.”


(348)

아니야. 나한테 영혼이 있다는 증거가 어딨어?”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너한테 양심이 있을 수 있겠니?”


(349)

어떤 것이 더 나쁠까, 피예로? 개성이라는 관념을 부정하는 것과, 고문과 감금과 굶주림을 통해 진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부정하는 것 중에서? , 넌 네 주변의 도시 전체가 불차고 진짜 사람들이 불에 타 죽어 가고 있는데도 박물관의 귀중한 감상적인 초상화를 구할 걱정이나 할 거야? 잘 좀 따져 봐!”

하지만 무고한 방관자, 예를 들어 아무한테도 도움 안 되는 사교계 귀부인이라 할지라도 진짜 사람이야. 초상화가 아니라고. 네 비유는 논점을 회피하고 축소하는 거야. 범죄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거라고.”

사교계 귀부인은 살아 있는 초상화로서 자신을 과시하는 쪽을 택했어. 그러니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지. 응분의 대가야. 일전에 한 얘기로 되돌아가서, 그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너의 악이야. 넌 할 수만 있다면 상대가 사교계 귀부인이든, 이 모든 압제적인 체제에 기대어 번창하는 기업의 사장이든 상관 않고 구해 주겠지. 하지만 다른 이들, 더 진짜인 사람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그래서는 안 돼. 네가 그들을 구할 수 없다면 못 하는 거야.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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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필의 진보를 위한 역사 - 진짜 진보의 지침서 & 가짜 극우의 계몽서
황현필 지음 / 역바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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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달째 불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그나마 내란 수괴가 갇혀 있을 때는 잠시 불안의 감정이 줄어들었는데, 말도 안되는 억지 이유로 풀려난 이후에는 불안 지수가 마구 솟고 있단다. 뉴스를 봐도 억울하고 분노할 소식들만 들려오고,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그렇게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단다. 어떻게 몇몇 사람들이 못된 마음만 먹으면 내란 수괴가 버젓이 풀려날 수 있단 말인가. 또 그 내란 수괴를 옹호하고 폭동을 일으키는 이들, 그들을 뒤에서 앞에서 선동하는 자들, 심지어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타 먹는 국회의원들마저 내란 수괴를 지지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요즘이란다.

불안과 분노이것을 치유할 방법이 마땅치 않단다. 그나마 아빠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의 글과 영상을 보는 것이 치유의 한 방법이란다. 그래도 불안하단다. 내란 수괴의 탄핵 여부를 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들 또한 어떤 협박을 받거나 회유를 받거나 하면 흔들릴까 불안하단다. 예상보다 늦어지는 판결 또한 불안을 부추기고 있단다. 우리 편의 대표적인 사람 황현필 님이 이런 시기에 신경안정제와 같은 책을 한 권 내셨단다. <황현필의 진보를 위한 역사>

작가의 말에서 황현필 님은 친일매국 세력과 역사 전쟁은 한다고 하셨어. 어쩌다 아직 이 땅에 친일매국 세력이 판을 치고, 대통령까지 되었단 말이냐. 우리 사회가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가 균형 있게 존재해야 하는데, 스스로 보수라고 일컫는 정당과 세력은 보수가 아니고 극우로 변질되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황현필 님은 그들은 극우의 정의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어. 매국적이고 독재 추종하고 반민족적이면서 내란을 옹호하는 세력을 칭하는 용어는 역사상 없었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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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극우는 전체주의, 순혈주의, 자국중심주의, 군국주의 등의 특징을 보이며, 자민족우월주의로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이다. 이런 성향들은 처절한 애국심으로 드러나면서 폭력성을 띠기도 한다. 나치즘과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가 대표적인 극우이다. 그러나 친일매국과 반공 우파들은 자국보다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자민족우월주의는커녕 조선을 비하하며 같은 민족인 북한에 대해 배타적이고 혐오하는 감정을 지녔기에 통일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는 반민족 세력이다. 세상에 이런 극우는 없다. 그렇다면 이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매국적이고, 독재를 추종하고, 반민족적이고, 자학사관에 빠져 있고, 최근에는 내란과 학살을 옹호하는 이들을 칭하는 용어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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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뉴라이트의 식민사관에 대해 조목조목 팩트를 근거로 반박을 해주고 있단다. 아빠가 뉴라이트의 역사책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 도대체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에 치우쳐 있더구나. 창피한 정도로….. 그런 사람이 쓴 친일 식민사관의 역사책은 일본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많이 인용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 책이 다시 일본에서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정말 나라 망신은 다 시키고 있구나.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것이야. 뉴라이트 인간들이 역사책을 썼지만, 뉴라이트 인간들은 역사 전공이 아니라 경제 전공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근대화의 기준을 경제적인 성장에만 초점을 두었다고 했어. 하지만 이마저도 잘못된 내용이라면서 황현필 님은 팩트를 들어 반박했단다. 근대적 정책이나 건물, 종교, 학교, 병원, 제도 등은 모두 일제강점기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거야.

일본이 철도도 만들어 주었다고 고마워해야 하지 않냐고 그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은 미국이 만들었고, 경부선도 처음에는 영국이 맡았다가 일본에 넘겨진 것이라고 했어. 그리고 우리나라에 철도를 놓은 준 것을 고마워할 일이 절대 아닌 거야. 다른 나라를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철도를 만드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들 말대로 실제로 잘 살게 되었다면, 왜 해방 이후 남한의 경제는 최악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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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5)

조선이 해방을 맞이하자 한반도에 있던 일본인들은 재산을 챙겨 일본으로 도망가거나 한반도 어딘가로 잠적했다.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의 자본가들이 사라진 것이었다. 주요 산업 시설은 대부분 북한에 집중되어 있었고, 해방 직후 북한은 남한으로의 전력 송출을 끊어 버렸다. 그로 인해 남한은 전력 무방비 상태에 놓여 공장 가동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해외 공포와 독립운동가들이 귀국하면서 남한의 인구는 급속히 증가했다.

쌀도 부족했고 생필품도 부족했다.

인플레이션은 당연했다.

굶어 죽는 사람이 발생했다.

해방 직후 남한은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근대화되었더라면, 해방 직후 남한의 가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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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들의 또 다른 특징이 독재를 찬양하는 일이란다. 독재를 벌이다가 민중의 의거에 의해 쫓겨난 이승만을 찬양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왜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든단다. 이승만을 찬양하다 보니 김구를 깎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역사관이란다. 치졸하기 그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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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뉴라이트의 이승만 띄우기에 대해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뉴라이트가 김구를 깎아내리는 이유는 이승만을 띄우기 위해서다. 이승만 추종자들이 아무리 이승만을 띄우려 해도, 김구에게 눌려 이승만이 높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승만 추종자들이 이승만에게 형광등 300개를 켜 대도 이승만의 얼굴에는 김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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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우리나라가 분단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기는 듯 하다. 아빠가 그러할진대, 당시 살았단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힘없는 나라가 해방이 되었을 때 강대국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만 했던 거란다. 당시 패전국인 일본을 둘러 나눈다는 방안도 있었대. 그런데 일본에서 자국 분단을 강력히 반대를 해서 실행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를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 미국과 소련이 통치하는 신탁통치..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탁, 찬성하는 친탁당연히 반탁이 대세였단다. 그런데 소련이 반탁으로 주장하고 미국이 찬탁을 주장했대. 소련이 우리나라를 생각해서 반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를 그냥 두면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해서 반탁을 했다는구나. 신탁통치를 하면 미국이 남한에 들어와 있을 테니 말이야. 미국이 찬탁한 이유도 같은 이유였어. 어차피 미국이나 소련도 모두 자국의 이익을 위한 거지, 우리나라를 생각해주는 게 아니야. 우리나라 사람들만 분단을 막겠다는 생각으로 신탁통치를 반대한 거지..

해방 이후 아무리 나라가 혼란스럽다고 해도 안 좋은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단다. 4.3사건의 비극이 또한 이승만과 미군정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건이란다. 하지만 뉴라이트는 이것 또한 북한의 소행이라고 하는구나. 뉴라이트는 이승만도 찬양하고 박정희도 찬양하는데, 박정희가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이 이승만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이승만이 하야하고 나서 하와이에 가 있을 때 귀국 의사를 보였는데, 박정희가 절대 안 된다고 하여 죽을 때까지 우리나라에 못 봤다고 하는구나. 이승만은 정적을 가장 많이 죽인 사람이고, 사적인 복수를 위해 권력을 휘두른 악마 중에 악마 같은 사람이란다.

최능진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1948년 이승만에 대항하기 위해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국회의원 선거로 나왔을 때 이승만과 같은 지역구로 입후보했대. 최능진은 독립운동가 출신의 경찰로 친일 청산에 노력을 많이 하신 분이야. 김구, 김규식과 함께 통일 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어. 이승만의 지역구에서 최능진의 지지율은 무려 90%. 이승만이 온갖 불법을 사용하여 최능진의 후보 등록을 막아서 이승만이 단독 후보로 당선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야. 최능진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감옥에 가두고 6.25전쟁 때 총살형으로 죽였다고 하는구나. 선거에서 이겼으면 됐지.. 끝까지 복수를 하다니마치 오늘날 내란수괴를 보는 듯 하구나. 이승만의 평가는 멀리 영국의 한 정치인도 정확하게 보고 있는데 뉴라이트들은 눈을 감고 사는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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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영국의 브로크웨이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학살을 저지른 이승만을 체포해야 한다. 유엔에 있는 영국 대표는 이승만을 부정하고 그의 정권을 끝내도록 요구해야 한다.”

영국의 레이놀즈 뉴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승만이 우리가 지금까지 지키고자 했던 모든 명분을 완전한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다. 이승만이 한국을 통치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만큼 유엔이 한국을 맡아야 한다.”

한국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또 다른 책임을 져야 하는 미국은 침묵을 택했지만, 영국은 침묵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희대의 자국민 학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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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25 전쟁은 확실히 남침이란다. 남침이라는 뜻을 정확히 몰라서 남침이 남한이 쳐들어갔다고 잘못 알고 있는 이도 있다고 하는데, 남침은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왔다는 뜻이란다. 소련을 등에 업고 같은 동족에 총부리를 겨눈 북한은 백 번 말해도 잘못을 저지른 거야. 하지만 6.25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시나리오에 의해서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란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6.25 전쟁은 미군이 남침을 유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대. 미국은 전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어서 자국민들을 사전에 일본으로 빼돌리고 했대. 그리고 낙동강 전선을 구축하고, 인천 상륙 작전을 기획한 문서가 이미 전쟁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왜 미국은 한국전쟁이 필요했던 것일까. 전문가들은 6.25전쟁을 통해 미국이 전세계에서 진정한 대권을 갖게 되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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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6.25전쟁으로 미국이 세계의 패권국이 되었다는 주장은 다수의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미국을 지구적 차원의 패권국으로 부상하게 해 준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도 제2차 세계대전도 아니고, 6.26전쟁이었다. 미국의 패권에 기여한 정도란 측면에서 보면 어떠한 사건도 6.25전쟁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저비스, <한국전쟁이 냉전에 미친 영향>

 

6.25전쟁을 통해 미국의 세기가 시작되었음을, 다시 말해 미국이 지구적 차원이 패권국이 될 수 있었다. – 6.25전쟁 참전용사의 아들이자 대법권 마이클 펨부룩, <미국의 세계가 시작된 곳>

 

6.25전쟁을 통해 미국이 지구적 차원의 패권국으로 부상하고자 할 당시 필요한 체계를 구축할 있었다. – 조지위싱턴대 교수 리처드 쏜턴, <강대국 국제정치와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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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듯이 뉴라이트는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를 찬양하다 못해 신격화를 하고 있단다. 일왕에 혈서까지 쓰고 일본육사장교가 된 사람을 그렇게 찬양한다는 것은 한국 사람임을 부정하는 것이란다. 박정희의 공을 이야기할 때 경제적 성공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당시 세계적인 흐름과 성실한 우리나라 국민의 공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구나. 박정희는 공을 이야기하기 전에 온갖 정치 비리, 인권 탄압, 온갖 만행을 먼저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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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박정희정권의 경제개발은 1960~1970년대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개발과 시대 흐름을 같이했다. 특히 냉전체제 경쟁에서 자유 진영의 승리를 위한 미국의 경제적 지원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한국인의 근면성과 성실함은 어느 국가와도 견줄 수 없다. 한국인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잘 먹고 잘산다. 더군다나 한국인은 영리하고 학구열도 높다. 여기에 부정할 수 없는 천민자본주의적인 마인드가 더해져, 남보다 잘살고 싶은 열망이 우리의 경제성정에 불을 지폈다. 이러한 요소들을 무시한 채, 오로지 박정희가 없었다면 우리는 가난했을 것이라는 자학적이고 피동적인 마인드를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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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 정신과 남북 냉전을 권력 유지에 이용하던 박정희가 뜬금없이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단다. 이건 얼마 전 조정래 님의 <한강>을 이야기하면서 이야기했었지.. 그런데 알고 보니 통일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남북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구나. 그러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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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남한에서 유신헌법이 통과된 지 두 달 후인, 12, 북한에서는 신사회주의 헌법이 제정되면서 김일성이 주석에 취임했다. 남한의 박정희는 초강력 대통령이 되었고, 북한의 김일성은 갑자기 주석직을 신설하고 주석이 된 것이다. 통일 분위기가 조성된 이후 남북한 양국의 독재 권력이 오히려 강화된 것이었다. 박정희와 김일성이 서로 짜고 통일 분위기를 이용하여 자신들만의 권력을 강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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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황현필 님은 뉴라이트 집단을 정리해 주었는데, 깊이 공감이 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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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495)

다시 정리하자면,

뉴라이트는 몰역사적, 친일 반민족적, 친독재적 성격을 지닌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뉴라이트는 인간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한 집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뉴라이트는 일제강점기에 수탈당한 조선인에 대한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 이승만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을 오히려 빨갱이로 취급한다. 또한, 위안부 할머님들에 대한 망언을 일삼고, 세월호 유가족을 조롱하는 비인간적, 패륜적인 성향을 보인다.

뉴라이트는 정의로움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잠재적 매국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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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이 책에 다른 부분들도 모두 좋았단다. 너희들도 이 책을 한번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데, 시간이 없겠지? 아빠가 이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가끔씩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대신하자.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금의 이 불안한 시간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구나. 며칠 전 뉴스를 보는데 분노가 치밀면서 숨이 확 막혀 오더구나. 그래서 아빠는 탄핵 인용이 될 때까지 뉴스와 기사를 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단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썸네일을 보게 되지만, 클릭은 하지 않기로 했단다. 얼른 이 시간들이 다 지나가고 정상적인 시간이 찾아오길그나저나 반민족적 반독재적 매국노 세력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숨을 좀 깊게 들이마시면서 오늘은 이만 하련다.

 

PS,

책의 첫 문장: 보수(保守)는 보호하고 지킨다는 뜻이다.

책의 끝 문장: 독자들은 과연 이 책의 점수를 어떻게 줄 것인가?





보수가 중시하는 자유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자유만 넘쳐나는 사회가 되면, 산업혁명 때 노동자들처럼 인간다운 대우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반대로, 진보가 중시하는 평등만이 강조되어 인간의 본능인 자유가 침해당하는 수준까지 이르면, 공산주의와 가까워진다. 따라서 자유주의와 평등주의가 적절히 섞여 균형을 이루었을 때 올바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진보와 보수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두 존재하는 것이 맞다. - P7

임시정부의 리더들은 장제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카이로에 가서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총통께서 일본 패망 후 한국의 독립에 대한 확약을 받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후 장제스는 카이로회담에서 루스벨트를 설득하여 한국만큼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식민지 상태였더라도 독립을 시키기로 약속을 받았다.
- P190

여운형의 독립운동에 열등의식을 느끼는 친일매국 세력들,
여운형의 통일노선에 열등의식을 느끼는 분단주의자들,
여운형의 탈이데올로기에 열등의식을 느끼는 반공주의자들,
여운형의 인간애에 열등의식을 느끼는 독재와 학살 추종자들.
이들에게 여운형은 두려움 그 자체다.
- P217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해방되면서 조선에 남아 있던 일본인들이 자신의 안전을 우려했듯이 친일파들 역시 독립운동가나 일반 조선인들의 보복을 두려워했다. 일본인은 돌아갈 곳이 있었지만, 친일파는 갈 곳이 없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하거나, 야반도주하여 산속으로 숨어들기도 했고, 변장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또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집에 틀어박혀 조선인 눈에 띄지 않으려 애를 썼다. 개중에는 광복을 반기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든 친일파들이 있었다. 이들은 우스갯소리로 ‘8월 15일부터 태극기를 든 자들’이라고 한다. - P273

단재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으로 꼽았다. 그러나 신채호가 이 시대에 살아 있다면 ‘제일대사건’으로 ‘이승만의 친일파 처벌 실패’를 꼽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이승만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이승만이 독재를 했든지 6.25전쟁 때 무능의 극치를 보였든지 간에 이승만이 친일파 처벌만 제대로 했더라면 나는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모든 대립은 이승만이 친일파를 처벌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 P277

결국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기억되는 서울역회군(1980.5.15)이었다.
당시 회군을 결정했던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은 그 후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의 후신인 보수 정당에서 국회의원만 5선을 했고, 국회부의장이 되었다. 회군을 반대했던 서울대 복학생 대표 이해찬은 노무현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회군에 대한 또 다른 반대자, 당시 서울대 대의원의장 유시민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또한, 당시 경희대 학생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었다. 이들을 역사의 죄인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들은 광주의 죽음에 대해서 아파해야 했다.
- P412

작금의 반일 정서가 싫은 친일파들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은 천년의 적이고, 일본은 백년의 적이다."
사실 이 말은 북한의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유언으로 했던 말이다. 신친일파와 일부 꼴통 보수들은 김정일의 말을 신줏단지 모시듯 믿고 있다. 진정한 종북이다. 최근 김정은도 이 말을 달고 산다고 한다. 이는 미국과 관계 개선을 바라는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들의 반중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의도와 함께 나온 말이었다. 북한이 이러한 대중외교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편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 중 한 나라가 중국이라고 하니, 역시 반갑다. 언젠가 통일을 두고 중국과 대립할 수 있는 우리입장에서는 북한동포들의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싫어할 이유는 없다.
- P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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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아일리시, 다른 때였다면 불법 구금으로 고등법원에 고소했을 겁니다, 래리를 꺼내왔을 거예요. 하지만 국가비상법 때문에 인신보호영장(불법 구금 방지 목적으로 행하는 구속적부심사 제도)이 중지됐어요, 국가가 특별 권력으로 사실상 사법부의 입을 틀어막았어요.

 

(164-165)

날씨에 기억이 있다. 하늘에 무르익은 봄이, 날렵한 제비가, 온통 새까만 칼새가 있다, 돌아온 새를 보면서 세월이 흐르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열매를 당연하게 여겼던 순수한 시절이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누군가 내미는 열매를 받아서 맛을 보지도 않고 깨물어 먹었고, 아무 생각 없이 씨방을 버렸다. 아일리시는 피닉스 공원에서 혼자 걸어 다니며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눈앞에 자기 생각밖에 보이지 않는다. 잎이 넓은 나무들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위를 올려다보며 저 나무들 밑에서 흘러간 시간을, 나무들이 나이테로 기록하는 세월을 생각한다. 세월이 흘러가고 그녀는 붙들 수 없다, 세월이 계속 흘러가지만 떠나가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그것이 그녀를 끌고 간다.

 

(168)

그녀는 집 안을 통과하는 달()을 지켜본다. 멍든 새벽빛이 요람 안의 벤에게 닿고, 제멋대로인 그 빛이 어린아이처럼 아일리시에게 딱 달라붙어 자는 몰리에게 닿는다. 새벽이 왔지만 낮은 달아났다. 그녀는 이제야 깨닫는다. 어둠을 덧없게 만드는 빛을 거짓이고 진실하며 흔들림 없는 것은 밤이다. 아이들을 품 안으로 불러들이지만 자신의 위로는 거짓이고 이 집은 피난처가 아님을 안다.

 

(210)

인생이라는 세월에 먼지가 쌓이고, 그 세월이 서서히 먼지로 변한다, 무엇이 남을까,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겠지, 한쪽 눈만 감아도 우리 모두 사라질 것이다. 바로 그때 래리가 곁에 있는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리지만 마주치는 것은 그녀의 슬픔이다, 아일리시는 양손을 맞잡고 흔들면서 캐럴의 말이 사실일 리가 없다고, 이제 무엇이 진실인지 아무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말하고 또 말한다, 자신이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고, 다른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여움은 희망이라는 옷을 입은 슬픔이다.

 

(225-226)

뉴스가 나오자 그녀는 분노로 몸을 떨면서 라디오를 꺼버리고 생각한다, 이건 뉴스가 아니다, 뉴스가 전혀 아니다, 모래주머니에 나른하게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군인을 집 안에서 내다보는 민간인이 뉴스다, 모래주머니에 기대어놓은 소총이 뉴스다, 군인의 깔깔 웃는 입, 아스팔트에 아무렇게나 버린 패스트푸드 포장지와 종이컵이 뉴스다, 저 위쪽 거리에 살다가 떠나기로 결심한 은퇴자 부부가, 그들이 진입로에서 하는 말다툼이, 차에 실을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손을 펄럭거리는 아내가, 굳은 표정에서 아내를 보는 남편이, 아내가 아이처럼 끌어안은 검정 가방이, 그 가방에 들어 있는 것이 뉴스다. 자동차에 실린 모든 짐이, 남편이 올라앉아서 겨우 닫는 자동차 트렁크가, 마지막으로 자물쇠가 채워진 진입로 대문이, 밤이 와도 불이 켜지지 않는 집이 뉴스다. 일주일 동안 빨간불이었다가 결국 꺼져버리는 신호등,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할 자동차, 점점 쪼그라드는 거리의 분위기, 셔터를 내린 가게들, 합판을 댄 창문들, 쉰 목소리로 밤새 짖는 개들, 통화가 너무 위험해서 이제 전화하지 않는 장남, 그 애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뉴스다.

 

(235)

아빠는 늘 너와 함께 있어, 아일리시가 말한다. 떠나 있어도 마찬가지야, 그게 그 꿈의 의미야, 아빠는 항상 여기에 너와 함께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집에 온 거야. 왜냐면 아빠는 늘 네 마음속에 살아 있으니까, 아빠는 지금 여기서 팔로 너를 감싸고 있어, 아빠는 항상 여기 있을 거야. 왜냐면 어렸을 때 우리가 받은 사랑은 우리 안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아빠는 너를 너무 많이 사랑했어. 너에 대한 아빠의 사랑을 빼앗거나 지울 수는 없어, 나한테 설명을 묻지는 말고 그냥 진실이라고 믿어, 그게 진실이니까, 그게 인간 마음의 법칙이야.

 

(307)

아릴리시는 주먹을 쫙 쥐고 발끝으로 땅을 민다. 살아서 아이들을 보고 싶다. 총격이 멈추면서 머리 위에서 깊은 정적이 열리고 반란군 병사가 소리친다, 아일리시는 손을 흔들어서 살아 있다고 알리기가 두렵다, 그녀는 세상과 절대적으로 맞닿은 채 미동도 없이 누워 있다가 갑자기 죽지 않으리라는 느낌이 든다, 아스팔트에 박힌 자갈을 본다, 수십억 년 전에 열기가 압력에 의해 만들어진 지구의 돌, 하지만 그녀에게는 지금 이 순간밖에 없다, 가야 한다, 내면의 힘이 몸속에서 퍼지고 눈을 감자 지나간 세월과 아직 살지 않은 시간이 보인다, 갑자기 무언가가 아일리시를 일으켜 움직이게 만든다, 그녀는 달리는 몸이 된다.

 

(354-355)

예언자들의 노래는 그 어느 때나 항상 반복되던 똑 같은 노래임을 깨닫는다, 칼의 도래, 불에 삼켜지는 세상, 정오에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태양, 어둠에 잠긴 세상, 곧 눈에 보이지 않도록 쫓겨날 사악함에 대해서 예언자가 길길이 날뛸 때 그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신의 분노,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과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종말이다, 세상은 어느 곳에서는 늘 끝나고 또 끝나지만 다른 곳에서는 끝나지 않는다, 세상의 종말은 늘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세상의 종말이 당신 나라에 찾아가고 당신 동네를 방문하고 당신 집의 문을 두드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머나먼 경고, 짤막한 뉴스, 전설이 되어버린 사건들의 메아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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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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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불가리아 작가,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라는 사람의 <타임 셸터>라는 소설이란다. 불가리아 작가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인 것 같구나. 어떻게 불가리아 작가의 책을 읽게 되었냐면,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광고 문구에 혹해서 읽었단다. 인터내셔널 부커상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님이 <채식주의자>로 수상한 상이잖니. 그런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이라고 하니 더욱 읽어보고 싶었단다.

책 소개를 읽어보니, 이 책이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한 2023년에 아빠도 좋아하는 작가인 천명관 님이 쓴, 아빠도 재미있게 읽은 <고래>라는 작품이 최종 후보에 올랐었다고 하는구나. 천명관 님의 <고래>가 수상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그랬다면 이 책은 읽을 기회가 없었겠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불가리아 최초로 인터내셔날 부커상을 수상했다고 하는구나. 물론 아빠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이고

제목 <타임 셸터>는 우리말로 해석하면 시간 대피소정도로 해석될 것 같구나. 책 제목에 타임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타임 슬립 장르는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어. 시간 여행하는 소재의 소설은 늘 재미 있었지. 이 책도 어찌 보면 시간 여행을 소재로 했다고 볼 수도 있겠더구나. 하지만 책장이 쉽사리 휙휙 넘어가지는 않았어. 불가리아의 현대사와 유럽의 현대사를 이해하고 있다면 좀더 읽기 수월했을 것 같은데, 아빠는 그런 지식이 부족하여 읽는데 쉽지는 않았단다. 우리가 통영 여행갈 때 가볍게 읽으려고 이 책을 가지고 갔는데, 읽기 쉽지 않아서 여행 중에는 거의 읽지 못했구나.  

, 그럼 이야기를 해보자.

 

1.

소설 내내 주인공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은 것 같아. 일인칭의 가 주인공이고 직업은 소설가인 것으로 보아 지은이 자신이 감정이입 되어 썼을 것으로 추측된단다. 소설가 9월 초 바닷가에서 열린 문학학회에서 가우스틴이라는 사람을 새로 알게 되고, 학회가 끝난 이후에도 교류하면서 지냈어. ‘는 학회가 끝나고 뉴욕으로 돌아온 이후로 가우스틴에게 편지를 쓰며 한 동안 연락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연락이 끊겼단다. 그랬다가 취리히 문학관 초청으로 한달간 취리히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불가리아 이민자를 한 명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람이 가우스틴을 알고 있다고 하여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단다.

가우스틴은 새로운 클리닉을 구상하고 있었어.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해 과거의 한 시점과 장소를 꾸며서 환자들의 기억을 돕는 클리닉이었어.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기억을 잃어가도 특정 시간대와 특정 장소의 기억을 잘 한다는 것을 이용한 클리닉이었어. 이 일에 도 도움을 주었어. 이 클리닉은 점점 잘 되어 유럽 여기저기에 분점이 생기기 시작했단다. 이 클리닉을 보면 어떤 층은 1970년대풍으로 꾸몄고, 어떤 층은 1960년대 풍으로 꾸미는 등 환자 맞춤형으로 꾸며 놓았단다. 책 표지가 그런 것을 의미하는 디자인 것 같았어.

그런데 이 클리닉이 성황을 이루면서 알츠하이머 환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찾아오기 시작했어.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누구나 가지고 있을 거야. 특히 아빠와 같이 중년이나 노년의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 같구나. 그래서 이렇게 과거의 시간을 꾸며지는 타임 셸터는 유럽 여기저기서 성행을 했어. 이것이 유행하면서 일반 거리에서도 옛 복고풍의 옷을 입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이었단다. 그리고 아날로그를 즐기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었어. 다들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었어.

 

2.

이런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려는 유행은 점점 퍼져서 이젠 나라 전체가 과거로 돌아가려는 투표도 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몇 년도 돌아갈지 국민투표를 하기도 했어. 유럽의 각국의 국민투표 사례를 들어주었어. 대부분의 나라들이 과거 자신의 국가가 가장 찬란하고 화려했던 그 시절이 많은 표를 얻고,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었단다. ‘의 모국인 불가리아는 사회주의 국가 시절이었던 1970년대가 0.3%의 아주 근소한 차로 승리하였단다.

불가리아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사회주의 시절이 근소하게나마 더 좋았나 보구나. 자본주의 무한경쟁에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아닌가 싶구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데, 스마트폰, SNS 등은 어떻게 해야 할까? 논란이 되기도 했단다. 그 시절에 스마트폰과 SNS이 없었으니 말이야. 그리고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갈 때는 그 나라가 몇 년대로 회귀했는지 꼭 알고 가야 낭패를 당하는 일이 없다고 했어. 과거 낭만을 찾다가 더 복잡해진 세상이 된 것 같기도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했어. 2024년 사라예보에서는 1914년 과거에 있었던 암살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어. 1914년 사라예보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워서 알 수도 있으니 이건 퀴즈…^^

….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1939년도로 돌아가려는 무리들이 있다는 거야….. 1939.. 그 무시무시한 세계2차대전이 벌어진 날이잖니. 국경 지역에 군대들이 밀집되어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소설은 그 뒷이야기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 건지, ‘내일은 9 1일이었다.’라는 문장과 함께 소설은 끝이 났단다. 그 일이 반복된다면 이건 타임 셸터가 아니고 타임 홀로코스트가 아닐까? 싶구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이 책을 어렵게 읽고 사전 지식이 많지 않아서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잘 모르겠구나. 그냥 아빠 식대로 해석을 해보았단다.

….

이 책은 이런 스토리 이외에 중간중간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고, 나이듦에 대한 생각을 하는 문장들이 여럿 있었단다.

===============

(169-170)

인생(과 시간)이란 얼마나 도둑 같은가, ? 얼마나 강도 같은가….. 평화로운 카라반을 매복 공격하는 악랄한 노상강도보다 더 악랄하다. 그런 노상강도들은 돈 가방과 숨겨둔 황금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당신이 유순하여 실랑이 없이 재물을 내놓으면 다른 것-목숨, 기억, 심장, 생기-은 빼앗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이나 시간이라는 이 강도는 어느덧 다가와 모든 것-기억, 심장, 청력, 생기-을 앗아간다. 심지어 고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손에 넣는다. 그걸로도 모자라는지 그 와중에 당신을 조롱하기까지 한다. 가슴을 축 늘어지게 하고, 엉덩이엔 뼈만 남게 하고, 허리를 굽게 하고, 머리칼을 성긴 백발로 변하게 하고, 귀에서 털이 자라게 하고, 온몸에 점을 뿌려놓고, 손과 얼굴에 검버섯을 돋게 하고, 앞뒤 안 맞는 말을 지껄이지 않으면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게 하고, 모든 말을 빼앗아 아둔하고 망령 든 사람이 되게 한다. 그 개자식은-인생, 시간, 노년 다 똑같다, 똑 같은 쓰레기, 똑 같은 깡패다. 그 개자식은 처음에는 적어도 공손해지려는 노력이라도 한다. 솜씨 좋은 소매치기처럼 일정한 한계 안에서만 도둑질하는 것이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작은 것들을 훔쳐간다-단추 한 개, 양말 한 짝, 가슴 왼쪽 윗부분의 미세하게 찌릿한 통증, 몇 밀리미터쯤 두꺼워진 안경, 앨범 속 사진 세 장, 얼굴들, 그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

그리고 알츠하이머에 대한 생각도

어느날 아침 일어났는데, 중간의 기억은 다 까먹고 40년 전의 기억만 생생하다고 생각해봐. 나의 기억으로는 하룻밤을 잔 것인데, 40년이 지나 있다고 생각해 보렴. , 얼마나 끔찍하겠니.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뇌운동을 해야겠구나.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고 그래야겠다.

이 책이 천명관의 <고래>를 밀어내고 인터내셔날 부커상을 탔다고 하는데, 아빠는 천명관 님의 <고래>가 훨씬 재미있었단다. <타임 셸터>의 유럽적 감성과 지성이 가미되어 있어서 수상되지 않았을까 싶구나. <채식주의자> 이후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들이 인터내셔날 부커상이 후보작에 간간히 올랐다고 하던데, 올해는 다시 한번 우리나라 작품이 수상했으면 좋겠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언젠가 사람들은 시간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지구가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를 계산하려고 했다.

책의 끝 문장: 내일은 9 1일이었다.

 



취리히는 늙어가기에 좋은 도시다. 죽기에도 좋다. 유럽의 나이 지형도 같은 게 있다면 분명 다음과 같이 분포되어 있을 것이다. 파리, 베를린, 암스테르담은 젊음을 위한 곳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분위기, 어디선가 풍겨오는 대마초 냄새, 마우어파크에서 맥주를 마시고 풀밭에서 뒹굴거리는 사람들, 일요일의 벼룩시장, 가벼운 섹스…… 그 다음에는 빈이나 브뤼셀의 원숙함이 자리한다. 느려지는 박자, 안락함, 전차, 적절한 건강보험, 아이들을 위한 학교, 약간의 경력 쌓기, 유럽연합의 지루한 행정직 일자리. 그래, 좋다, 아직 늙기 싫은 사람들을 위해서는-로마,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맛있는 음식과 훈훈한 오후는 교통, 체증, 소음, 약간의 무질서를 상쇄할 것이다. 젊음의 막바지에 이른 이들에게는 뉴욕을 추가하겠다. 그렇다. 나는 그곳을 어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대서양 너머로 건너간 유럽 도시로 간주한다. - P40

가만히 앉아서 인생 끝자락에 여기에 온 사람들과 함께 흘러가는 나의 불가리아 과거를 바라본다. 노인들은 언제나 나를 매혹한다. 나는 어렸을 때 노인들과 함께 살았다. 조부모와 더불어 자란 우리는 그들과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다른 한 세대를 통째로 잃어버렸다. 바로 우리 부모들. 이제 나도 그들과 같은 대열에 합류했음을 깨닫는 지금, 나의 매혹에는 또다른 동기도 있다. 죽음을 직면하고 삶에서 계속 멀어지면서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구해낼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기억으로라도, 그러고 나면 그 개인적 과거는 다 어디로 가는가? - P79

향을 기록하는 장비가 없다는 사실이 진정 놀랍지 않은가? 실은 하나가 있긴 하다. 기술보다 앞서 존재한 단 하나의 도구, 가장 오래된 아날로그 도구. 그것은 물론 언어다. 당분간은 언어 말고 다른 도구가 없으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여러 향기를 말로 포착해 또다른 노트에 추가해야 한다. 우리는 묘사해봤거나 배교해본 향기만을 기억한다. 놀라운 점은 이런저런 냄새에 대한 이름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느님 혹은 아담은 일을 제대로 끝마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빨강, 파랑, 노랑, 보라 등등의 이름이 있는 색깔과는 다르다. 향기는 언제나 비교를 통해, 묘사를 통해 인식된다. 제비꽃 냄새가 난다. 토스트 냄새가, 해초 냄새가, 비 냄새가, 죽은 고양이 냄새가…… 하지만 제비꽃, 토스트, 해초, 비, 그리고 죽은 고양이는 향기의 이름이 아니다. 이 얼마나 부당한가. 아니 어쩌면 이 불가능성 아래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다른 징조가 숨어 있는지도……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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