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시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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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옥타비아 버틀러의 대표작 <>을 재미있게 읽고 그의 다른 작품들을 두어 권 더 구매했단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주로 SF 소설을 썼는데, 이번에 읽은 <와일드 시드> SF 소설이란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흑인 여성 작가로 <>에서도 흑인과 여성이라는 주제가 책에 녹아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와일드 시드>도 그런 내용을 의식하고 읽게 되더구나. 그래서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들은 다른 SF 소설과 다른 영역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페미니스트, 흑인, 거대 도시에 사는 은둔자, 그리고 열 살 때의 꿈을 잊지 않고 여든 살이 되어서도 계속 글을 쓰고 있기를 꿈꾸는 작가이다.” 이 말은 옥타비아 버틀러가 한 말이란다.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쓰시면서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58세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지셨다고 하더구나.

….

 

1.

주인공의 이름은 도로. 보통명사 도로와 똑같아서 잠깐 딴 생각을 하고 책을 읽으면 보통명사 도로인줄 아는 경우도 있으니,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유의해야 함. 주인공 이름을 '도오로'로 번역해도 괜찮았을 텐데... 아무튼 도로는 초인이란다.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 소설의 시작 시점인 1690년 기준으로 도로는 삼천 년을 넘게 살아왔단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한 육체로 그렇게 살아온 것이 아니라, 다른 육체를 죽이고 그 육체에 자신의 혼이 들어가는 방식이란다. 마치 오래된 옷을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는 것처럼 말이야.

도로는 세계 이곳 저곳에 자신과 비슷한 종족을 만들기 위해 부족을 키웠는데, 아프리카에 만들어 놓은 일족이 모두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어. 1690년대 아프리카라면 한창 노예 사냥을 하던 시기였는데, 아마도 노예 상인들이 그들을 납치해 간 것 같았단다. 이곳 저곳 자신의 일족들을 찾으러 다니다가 도로는 아냥우라는 여자를 만났단다. 아냥우도 초인이었어. 아냥우도 300년 넘게 살았으며,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었단다. 사람뿐만 아니라 표범이나 돌고래 같은 동물로도 바꿀 수 있었어. 이 소설의 장르가 SF라는 점을 명심하자꾸나.

도로는 아냥우에게 함께 가자고 했어. 그리고 함께 강력한 동족을 만들자고 했어. 일종의 청혼 같은 거지... 아냥우는 고민을 하다가 도로가 싫지 않았는지 알겠다고 했단다. 도로와 아냥우는 또 다른 도로의 일족이 있는 곳을 갔단다. 도로에게는 아들 아이작이 있었고, 아냥우에게는 손자 오코예가 있어서 함께 길을 갔단다. 오코예는 노예로 팔릴뻔한 것을 도로가 구해주었단다. 그들은 배를 타고 다른 대륙으로 갔단다. 그 대륙은 얼마 전에 유럽인들에게 발견된 아메리카 대륙이었던 거야.

....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그들은 도로의 일족들이 살고 있는 휠러라는 마을에 도착했단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왔기 때문에 아냥우도 그곳 사람들에 맞게 옷도 드레스로 바꿔 입었단다. 그리고 휠러 사람들의 풍습에 따르려고 했단다. 아냥우에게 있어 이해 가지 않는 것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우유를 먹는 것이었단다. 짐승이 먹는 것을 왜 사람들이 먹냐면서 말이야. 생각해 보니, 그렇네.

...

한편, 휠러에 와서 도로가 아냥우에 대한 태도를 바꿨어. 사실 도로는 아냥우를 데리고 온 것은 그저 자신의 배필로 데리고 온 것이 아니었단다. 도로는 오직 우수한 능력을 가진 이들을 낳는데 첫 번째 목적을 두고 있단다. 그렇게 데리고 온 외지인을 그들은 와일드 시드(wild seed)라고 불렀단다. 이 소설이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출간될 때는 제목을 wild seed를 번역하여 <야생종>으로 출간한 적도 있었단다. 아무튼 도로의 목적으로 우수한 후속은 낳는 것이기 때문에 아냥우를 자신과 이미 잠자리를 가졌지만, 자신의 아들 아이작과 결혼시키려고 했단다. 도로를 남편으로 생각하고 왔던 아냥우는 도로의 그런 비도덕적인 행동에 결혼을 거부하려고 했단다.

 

2.

시간은 흘러 1741년이 되었어. 소설의 시작 시점으로부터 50년이 흘렀지. 도로와 아냥우는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이를 먹었어. 도로가 자신과 똑같은 초인의 능력을 가진 후손을 낳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다른 범상한 능력을 가진 이들은 많았지만 그처럼 영생하는 하는 이는 아직 없었어. 삼천 년 넘게 노력해서 없으면 없는 거지, ... 다른 범상한 능력은 가진 이들을 보면, 생각을 읽을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사람 등이 있었단다. 50년 전에 아냥우가 아이작과 결혼을 거부했지만 결국 결혼하게 되었단다. 아이작은 도로와 달리 아냥우에게 잘 대해주었단다. 그래서 아냥우도 아이작을 믿고 사랑하게 되었어. 하지만 아이작은 점점 늙어갔지. 아지작은 아냥우를 도와주려다가 그만 죽고 말았단다. 아냥우는 더 이상 도로의 폭력성과 권위를 참지 못하고 도망가기로 했단다.

....

시간은 또 흘러 1841.. 백 년이 흘렀어. 1741년 때 이야기했던 이들은 모두 죽고 사라지고, 도로와 아냥우만 여전히 살고 있었어. 도로는 여전히 자신을 따르는 일족을 만들고 여러 우수한 야생종들을 데리고 와서 또 후손을 만들었어. 도로는 왜 자신의 후손을 만드는 일에 집착을 할까. 도로는 한편 도망간 아냥우를 추격하하게 되는데 결국 다시 만나게 되었어. 그들이 떨어져 있던 100년의 시간 동안 아냥우도 나름 자신의 일족을 만들어 평화롭게 살고 있었어. 하지만 도로가 다시 와서 갈등을 빚었지만, 도로도 아냥우를 대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단다. 이해하려고 했고, 그런 변한 도로를 본 아냥우도 진정한 사랑의 감정이 싹텄어. 교배가 아닌 진정한 사랑 말이야. 그러나 아냥우는 사는 게 지쳤다고 자살하기로 했단다.

도로뿐만 아니라 아냥우의 일족들은 아냥우의 자살을 만류하게 되고, 아냥우는 도로에게 약속을 하나 하면 자살하지 않겠다고 했어. 도로가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폭력을 하지 않고 살인도 하지 않는다면 자살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결국 아냥우는 자살하지 않았어. 도로도 진정한 사랑을 얻은 다음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그 진정한 사랑을 얻는데 삼천 년이 넘게 걸린 거야?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것이 영원할까? 그 사랑이 변하고 식는다면 예전의 도로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백 년도 못사는 사람들도 성격 변하기 쉽지 않은데 삼천 년 넘게 산 사람의 성격이 과연 변할까. 아빠는 부정적으로 본단다. 소설은 도로와 아냥우가 이해와 사랑으로 끝을 맺었지만, 그 이후의 삶에는 큰 기대가 안 가더구나.

....

이 소설은 남성 우월주의를 빗댄 소설처럼 보이기도 하는 소설이었어. 옥타비아 버틀러의 전작 <>을 재미있게 봐서 기대치가 높은 상태에서 <와일드 시드>를 봐서 그랬는지 아빠는 별로였단다. 도로가 왜 이렇게 자손 번식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야. 그런데 도로와 같은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자꾸 다른 사람의 몸을 옮겨 타야 영생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쌓이는 죄책감으로 정신질환이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냥 아냥우처럼 자신의 몸으로 영생하는 것이 훨씬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가끔씩 되고 싶은 동물이나 사람이 되어도 좋고.. 그러고 보니 아냥우의 능력이 더 뛰어난 것 같은데, 왜 도로를 제압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도망다니지 말고 거대한 동물이나 포악한 동물이 되어 도로를 제거했으면 된 거 아닌가? .. 이래저래 기대에 조금 못 미친 소설이었어.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도로는 자신의 종자(seed) 마을 한 곳을 수습(收拾)하러 떠난 여행길에서 우연히 그녀를 발견했다.

책의 끝 문장: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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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불신, 기성체제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이 극단적 구호를 외치는 선동가 정치인들을 키우고 있다. 올여름 유럽에서 치러진 선거들에서 다시 한번 분명하게 확인된 사실이지만, 극우 정치세력들이 전 세계에서 확실하게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이 현상은 더 이상 특성 지역에서 일어나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신흥 극우 포퓰리스트들은 대체로 과거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면서 배타적 민족주의를 내세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인 경제적 사회적 곤경을 엉뚱하게도 이민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사회를 분열시킨다. 이들은 정치적 자원을 독식하면서 민심을 잃은 엘리트 지배층과 거리를 두는 척하면서 개혁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자기자신들과 과두 금권정치의 배후세력 ‘1%’의 권력을 키우고 호주머니를 부풀리는 데 몰두하여 전쟁까지도 불사한다.

 

(4-5)

만약 우리가 민주주의를 갖고 있었다면, 즉 민중이 정치적 의제를 통제할 수 있었다면 기후변화 문제 같은 것은 이미 오래전에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화석에너지의 의존하는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 재생될 수 있는 에너지에 기반한 미래를 선택할지 보통의 시민들이 결정할 수 있었다면 오늘 우리는 매우 다른 궤도 위에 있을 것이다. 금융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서, 선출된 정치가들을 위해서 미래세대의 삶, 3세계, 농촌을 사지에 몰아넣을 결정을 할 시민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민주주의를 갖고 있었다면, 우리는 지구의 안녕과 문명의 존속을 위해서 지금 각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고 있을 것이다. 고대 아테네인들이 폴리스의 안명이 자신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신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근대국가의 민중들은 정치에서 완전히 배제, 소외된 채 깊은 좌절감과 무력감 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정말 뒤죽박죽이 된 현 상황에 대해서 자신에게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런 비정치적(무비판적) 태도가 현상 체제를 강화해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4)

오염수 안전처리 기준치가 나라마다 다르고 일본의 삼중수소 배출 기준은 해양생태계에 안전한 기준치가 될 수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실제 삼중수소 농도는 74Bq/L인데 일본의 원전 기준 삼중수소 농도가 6Bq/L이기에 이를 희석해 1,500Bq/L로 줄여 음용수 기준에 맞게 방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음용수 기준은 미국이 740Bq/L, 유럽이 100Bq/L, 미 캘리포니아주는 15Bq/L이며 우리나라 환경부의 고시 기준은 놀랍게도 6Bq/L이다. 방사선 기준치는 행정 편의의 산물이다. 정상 운영 중인 원전인 월성원전의 실제 삼중수소 배출치가 13.2Bq/L라는데 그렇게 해도 핵종의 배출 총량은 변함없이 바다에 축적된다.

 

(15-16)

미국의 핵융합 전문가인 아르준 마키자니 박사는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삼중수소는 높은 방사성물질이기에 인체와 다른 생명체에 위험을 끼친다. 자궁에 형성되는 시간과 성숙되는 시간 동안 난자에 영향을 줌으로써 삼중수소는 임신 중에 미래세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정자와 정자세포에 포함해 있기 때문이다. 삼중수소는 임신 초기 유산이나 기형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영향 중 일부는 저선량에서도 발생할 수 있으며, 특히 중추신경계 형성에 대한 일부 유형의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43)

카터(미국 전 대통령)는 대략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의 무서운 성장은 현명한 투자에 의해 촉진되고 평화에 의해 활성화했다. 1979년 이후 중국은 단 한 번도 전쟁하지 않았다. 미국은 계속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은 242년 역사에서 오직 16년 동안만 평화를 즐기며 세계 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가 되었다. 다른 나라들에 미국의 원칙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경향 때문이다.”

 

(54)

따라서 미국은 자신의 경제적 라이벌, 즉 미국이 세계경제 전체를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으면서 지배하는 일에-푸틴의 러시아처럼, 아니 오히려 더 위력적으로-도전장을 내미는 한 나라를 겁주려는 의도로 군비를 늘리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1945년 이래 미국의 한결 같은 외교정책은 당근과 채찍,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든 상대를 굴복시킬 방법을 찾아서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경우에 따라서 감언이설과 경제적 군사적 원조도 동원했지만 쿠데타, 침공, 제재, 준군사작전, 군국주의적 겁박도 실행했다. 반항하는 정권은 용인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순응하는(약화된) 러시아와 말 잘 듣는 혹은 기세가 꺾인 중국을 바란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확실한 수단이 군비증강이라는 계산이다. 그로 인해서 어떤 위기가 초래되든, 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 예상되지 않더라도 상관이 없다. 더욱이 군사력 확대는 강대국들이 그 자체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으로, 압도적인 힘을 과시할 수 있다는 미덕도 갖고 있다.

 

(63-64)

하비는 폴라니를 인용하여 이렇게 썼다. “자유라는 아이디어가 고작 자유기업을 옹호하는 것으로 타락하게 된다. 그것은 소득, 여가, 사회보장이 개선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완전한 자유를가져다주지만, ‘자신들이 가진 민주적 권리들을 활용해서 자산가들의 권력으로부터 대피할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서 헛된 노력을 되풀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얼마 되지도 않는 자유를제공한다.” “그렇지만, ‘권력과 강요가 없는 사회가 없고, 권력이 아무 기능을 하지 않는 세상도 있을 수 없다, 자유주의 유토피아라는 비전도 물리력, 폭력, 권위주의에 기대지 않고서는 지탱될 수 없다. ㅍ폴라니는 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유토피아주의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고, 필연적으로 권위주의나 혹은 아예 노골적인 파시즘으로 귀결된다고 했다. 좋은 자유들은 실종되고 나쁜 자유들이 군림하게 된다.”

 

(109)

유럽은 농부의 나라로 불린다. 농업의 경제적 가치와 상관없이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유럽연합(EU)에 속한 27개국은 공동농업정책(CAP)이라 불리는 농업정책을 공유하는데, 이 정책에 따라 농민들은 다양한 규제와 농업정책을 공유하는데, 이 정책에 따라 농민들은 다양한 규제와 지원을 받는다. CAP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2년부터 시행됐다. 그래서 과거에는 식량자급률 제고를 위해 시장가격을 지지하고 농민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직불금 제도 등에 집중했다. 현재는 농촌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직불금 제도 등에 집중했다. 현재는 농촌의 환경적 기능과 기후위기 대응에서 농촌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이를 지원하는 예산을 늘리고 있다. 2022년 기준, EU 전체 GDP(국내총생산)에서 농업의 경제적 가치는 1.4%에 불과하지만 직불금 등 농업예산은 EU 전체 예산의 3분의 1에 달한다. 2024년 전체 예산 가운데 2.8%가 농업예산인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153-154)

늙어감은 두려운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늙어가는 신체를 통제하는 데서 시작한다. 주름을 줄이고, 체취와 하얗게 세는 머리는 가능한 한 감춰야 한다. 늙어감을 역행하며 시간을 멈추는 억지 행위를 자기권리, 자기계발이라고 믿는다. 시간의 흐름이 잠시나마 멈춰 선 외모를 만드는 건 지극히 사회적인 행위다. 반면에 사회적인 삶이 정리된 때쯤 외모 관리를 멈춘다. 이렇게 외모의 관리란 사회적인 활동을 지속하는지 알리는 신호다. 그러나 이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정상성에 갇힌 노인세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경제성정을 이루고 경제위기를 극복했던 노인들의 삶의 태도지만, 동시에 늙어감을 경계하는 처지가 묻어난다. 노인들의 엄격한 이분법은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일을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이기보단 자기자신을 스스로 사회의 잉여 처지에 놓았다.

 

(206)

이러한 통찰들이 근본 변화를 원하는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는 이렇다. (1) 조직혁신이나 기술혁신 등 각종 자본주의 혁신 경쟁은 결국 인간 노동력이 생산하는 잉여가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어떤 개별 자본이 뽑아 가느냐의 문제이다. 따라서 각종 혁신으로 더 세련되거나 더 깔끔해진 외양에 우리가 현혹되면 안된다. (2) 물가를 따라잡기 위해 노조로 단결해 임금 인상을 쟁취하는 것만으로는 참된 삶의 개선이 안된다. 설사 일부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맛보더라도 그 부담은 더 약한 노동자나 자연에게 책임 전가된다. (3) 자본의 가치 증식은 직접적으로 고용된 인간 노동력을 매개로 이뤄지지만 그 물밑에서는 간접적으로 연루된 엄청난 부의 원천들이 자본으로 향하는 빨대를 통해 흘러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직접적 생산과정에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사회적 생산과정과 소비과정 전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4) 총체적 자본관계를 혁파하기 위해선 성별, 기업별, 국가별, 민족별, 지역별, 종별 등 온갖 차별과 위계를 강화하는 가부장주의, 생산력주의, 애사 애국주의, 인종주의, 지역주의, 인간중심주의 등을 마음에서 지워야 한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친밀성(관계) 회복이 열쇠다.

 

(207)

사람들은 입만 열면 배고파 죽겠다, 돈 없어 죽겠다, 그리워 죽겠다 하고 아우성이지만 과연 죽을 만큼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돈이나 밥, 사랑 등은 없으면 괴롭기야 하지만 그로 인해 바로 죽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소중한 이유는 내게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에게 생명만큼 소중한 것이 있는가? 아니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그런데 생명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그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괴롭고 비참한 상태에 있다면 오히려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의 심정이 아마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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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네이션 (리미티드 에디션) - 쾌락 과잉 시대에서 균형 찾기
애나 렘키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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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중독에 관한 책을 하나 소개해줄게. 얼마 전에 아빠가 <도둑 맞은 집중력>이란 책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책과 관련된 책으로 많이 소개된 애나 렘키의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책이란다. 책 제목이 도파민네이션이라고 쭉 붙어 있어서 한 단어인줄 알았는데, 원제를 보니 “Dopamine Nation”으로 두 단어더구나. 도파민이라는 것은 쾌락과 고통을 지휘하는 신경물질을 이야기하는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쾌락에 중독된 이유를 도파민에서 찾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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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도파민은 보상 과정에 관여하는 유일한 신경전달물질은 아니지만, 신경과학자들 대부분은 도파민이 그중 가장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도파민은 보상 그 자체의 쾌락을 느끼는 과정보다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 과정에 더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유전자 조작으로 도파민을 만들 수 없게 된 쥐들은 음식을 찾지 못하고 음식이 코앞에 놓여 있어도 굶어 죽지만, 음식을 입안으로 바로 넣어주면 음식을 씹어서 먹으며 그걸 즐기는 것처럼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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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지은이 애나 렘키는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스탠퍼드대학 중독치료 센터를 이끄는 정신과 의사라는구나. 자신도 어릴 때부터 우울증을 앓아왔고 의사가 된 후에도 에로티즘 소설에 중독된 적이 있다면서 자신의 사례들도 들면서 중독을 극복하는 것을 이야기해주었어. 20년간 만난 수많은 환자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도파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주제란다.

 

1.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중독에 걸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빠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중독에 사례들이 있더구나. 그런 중독으로 인해 가정이 파탄이 나기도 하고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어. 그 정도로 한번 중독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았단다. 작은 고통도 참지 못하고 행복과 쾌락만 추구하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쾌락 중독증에 걸린 사람이라고 할까. 이런 사람들은 작은 고통과 불안에도 신경안정제를 먹어야만 했어. 그러다 보니 신경안정제에 중독된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구나.

쾌락과 고통. 지은이는 이것을 저울로 설명한단다. 우리 뇌에는 보이지 않는 저울이 있는데, 이것은 계속 균형을 이루려고 하는 저울이란다. 그런데 쾌락을 경험하게 되면 도파민이 분비되고 저울은 쾌락쪽으로 기울게 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울은 균형을 이루려 하기 때문에 고통이 생겨난단다. 또 쾌락이라는 것이 내성이 생겨서 이전에 나에게 쾌락을 주었다고 해서 같은 일이 나에게 똑 같은 크기의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야. 그것보다 더 큰 쾌락을 찾게 되고, 그걸 참지 못하는 이들이 알코올과 마약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것이란다. 그리고 저울은 다시 균형을 찾으려고 하니 커진 쾌락만큼 더 커진 고통이 찾아오게 되는 거라고 설명했단다. 아빠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어떤 이들은 쾌락이 아닌 고통을 먼저 자청하여 경험하고 그 반대급부로 쾌락을 얻으려는 이들도 있어. 찬물 샤워나 러너스 하이가 그런 종류하고 하는구나.

….

 

2.

그렇다면 중독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지은이는 Dopamine의 알파벳 각각으로 시작하는 단어로 설명하였단다. 창의적인 생각이지만, 이렇게 보면 억지로 끼워 맞춰 최선의 답이 아닌 다른 답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실 아빠는 이런 방법을 좋아하지는 않는단다. 그래도 지은이가 생각해낸 방법들이 소개를 해보면, DData. 너 자신을 알라는 내용으로 먼저 단순한 사실을 수집하라고 했어. O Objectives.  왜 중독에 빠졌는가를 생각해 보는 단계이다. P Problem. 중독의 악영향을 찾는 단계. A Abstinence. 그 중독으로부터 절제해 보기 단계로 지은이는 30일의 인내를 제안해 보았어. 알코올 중독인 사람이 30일간을 술을 끊어보라는 거지. 아빠는 술을 3달 넘게 안 먹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보아 술 중독은 아니었던 것으로… M Mindfulness. 마음 챙김으로 고통을 들여다 보는 단계를 거쳐 I Insight. 통찰의 단게로 진짜 나와 대면하는 단계이다. NNext Steps. 다음 단계로 중독 대상과 새로운 관계 맺는 단계란다. 마지막 E Experiment: 중독과 친구가 되는 단계란다. 이 정도 되면 중독 극복이 아니라 도인이 된 것 아닌가 싶구나.

….

점 더 실천적인 방안도 제시해주었는데, 물리적 장애를 만들어 중독 대상과 물리적으로 만날 수 없게 하는 것과 순차적 시간을 제한하여 중독 대상에 노출 시간을 점차 줄여나가는 것인데, 이것은 자신의 강한 의지가 필요한 것이란다. 이런 의지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중독에 빠지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한데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함으로 중독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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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234)

친밀함은 그 자체도 도파민의 원천이다. 타인과의 사랑, 엄마-자식 간의 유대감, 성적 파트너와 평생토록 갖는 유대감 등과 관련이 있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은 뇌의 보상 경로에서 도파민 분비 뉴런에 있는 수용기들을 옭아매고, 보상-회로관을 강화한다. 간단히 말해 옥시토신은 뇌의 도파민을 증가시킨다. 이는 린홍, 롭 말렌카 등 스탠퍼드대학의 신경과학자들이 치근에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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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저울의 교훈을 정리하면서 책은 마무리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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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저울의 교훈

1. 끊임없는 쾌락 추구(그리고 고통 회피)는 고통을 낳는다.

2. 회복은 절제로부터 시작된다.

3. 절제는 뇌의 보상 경로를 다시 제자리에 맞추고, 이를 통해 더 단순한 쾌락에도 기뻐할 수 있도록 한다.

4. 자기 구속은 욕구와 소비 사이에 말 그대로 초인적인 공간을 만드는데, 이 공간은 도파민으로 과부하를 이룬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다.

5. 약물 치료는 항상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약물 치료로 고통을 해소함으로써 잃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6. 고통 쪽을 자극하면 우리의 평형 상태는 쾌락 쪽으로 다시 맞춰진다.

7. 그러나 고통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근본적인 솔직함은 의식을 고취하고, 친밀감을 높이며, 마음가짐을 여유 있게 만든다.

9. 친사회적 수치심은 우리가 인간의 무리에 속해 있음을 확인시킨다.

10.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세상에 몰입함으로써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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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를 하고 책을 읽어서인지 아빠에게는 이 책은 별로였단다. 여러 가지 중독에 대한 사례를 들어주긴 했는데, 한 가지 사례를 다 이야기하고 다음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사례를 섞어서 이야기하다 보니 어지럽기도 했어. 그리고 중독 사례들을 많이 이야기했는데, 그보다 도파민 본질에 대해서 더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어떤 사례들은 중독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 그것이 도파민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암튼, 기대에 좀 못 미친 그런 책이었단다. 책은 취향이니, 아빠의 기준으로 이야기한 것이란다.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대기실에서 제이콥을 맞이했다.

책의 끝 문장: 저울의 교훈을 실천해서 자신이 지나온 길의 빛을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



어린이가 심리적으로 연약하다고 여기는 것은 철저히 현대적인 사고방식이다. 고대에 어린이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축소형 성인으로 여겨졌다. 대부분의 서구 문명에서 어린이는 선천적으로 악하다고 간주되었다. 부모와 보호자와 할 일은 아이들이 사회화를 통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엄격하게 훈육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체벌과 공포심을 쓰는 전략은 전적으로 용인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 P52

그런데 오늘날은 도파민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전형적인 미국인은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앉아서 보내는데, 이는 50년에 비해 50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세계의 다른 부유 국가들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가 공급량이 제한적인 식량을 두고 경쟁하기 위해 매일 10킬로미터를 횡단하도록 진화되었음을 고려하면, 현재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좌식 생활 습관의 역효과는 굉장히 충격적이다. - P185

고통이 너무 심하거나 너무 강력한 형태를 띨 경우, 고통에 중독될 위험은 커진다. 나는 이를 치료 중에 여러 번 목격했다. 내가 맡은 어떤 환자는 너무 많이 달리다가 다리뼈가 골절됐는데, 그렇게 되고도 달리기를 계속했다. 또 어떤 환자는 쾌감을 느끼고 자기 마음속에 계속되는 생각을 없애기 위해 팔뚝과 허벅지 안쪽을 면도날을 벴다. 그녀는 심각한 흉터와 감염의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베기를 멈추지 않았다. - P203

하지만 거짓말에 관한 한 인간에 비할 동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언어 때문에 우리가 거짓말하는 경향을 띠고 거짓말도 매우 잘한다고 추측한다. 그 논리는 이렇게 연결된다.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는 거대한 사회 집단의 형성으로 막을 내렸다. 거대한 사회 집단은 의사소통 형태의 정교한 발달로 존재할 수 있었고, 그러한 발전은 상호 협동을 이끌었다. 그러나 협동에 쓰인 말들은 상대를 속이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언어가 발전할수록 거짓말은 정교해진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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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땅이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전개되는 인공 건축물 사이로 땅이 사라져 버린 듯했다. 지평선도 볼 수 없었다. 거의 똑 같은 회색으로 펼쳐진 금속 구조물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하나의 선을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육지 전체가 이런 모습일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움직이는 것은 거의 없었다. 두세 척 유람선만이 하늘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행성을 뒤덮고 있는 금속 구조물 안에서는 수십억 인구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41-42)

인류의 지식을 보존하여 남겨 두는 방법을 통해서입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축적한 지식의 총량을 한 개인이 취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아니, 1000명도 부족합니다. 사회조직이 붕괴하면서 과학은 수백만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개개인은 마땅히 알아야 하는 극히 작은 지식만 알게 될 것입니다. 개개인은 마땅히 알아야 하는 극히 작은 지식만 알게 될 것입니다. 개개인으로 고립된 인간은 무력하고 쓸모 없는 존재로 전락합니다. 앞뒤 연결이 안 되는 지식의 단편은 수 세대를 경과하면서 잊히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모든 지식을 집대성한다면 인류의 지식은 결코 상실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후손은 그 지식을 이용할 것이며 다시 애써서 재발견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3만 년 걸릴 일이 1000년으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96)

당신들뿐만 아니라 터미너스 인구 중 절반은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여기에 쭈그리고 앉아서는 백과사전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최대 목적이 과거의 자료를 분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만 일보 전진하여 무엇인가를 이룩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네들이 퇴화하고 심지어 이룩한 업적까지도 잊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외곽성역에서는 원자력이 이미 자취를 감췄습니다. 감마 안드로메다에서는 수리를 잘못해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해 버렸습니다. 제국의 총리 대신 각하는 원자력 기술자를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무엇일까요? 새로운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 아닙니다. 오히려 원자력 사용을 제한하려 하고 있습니다.”

 

(130-131)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네. 왜냐하면 미래는 막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셀던이 미래를 확실하게 계산해서 구체적인 방향을 설정했으니 말이네. 우리 역사 속에서 계속 발생하는 위기 하나하나는 구체적으로 예측된 것이고 각각의 위기는 앞에서 일어난 위기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는가에 달려 있다네. 현재의 위기는 그중 두 번째에 불과하고, 아무리 작은 변화라도 그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314)

놀랍게도 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모든 시설이 거대하다는 사실조차 몰라. 기계는 세대에서 자동적으로 넘어가고 감독자는 세습 계급이지. 그들은 거대한 건물 어딘가에서 튜브 하나만 타 버려도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어. 이 전쟁은 이러한 두 제도 사이의 싸움이야. 제국과 파운데이션, 거대한 것과 미소한 것 사이의 싸움 말일세. 한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그들은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우주선으로 매수하려 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경제적인 의의가 없어. 그렇지만 우린 작은 것으로 매수했지. 전쟁에는 쓸모가 없지만 번영과 이윤에는 결정적인 것으로…… 왕이든 콤도든, 어쨌든 그들 무리는 우주선을 입수해서 전쟁까지 준비해 왔겠지. 역사를 통해 보면 독재자는 국민의 행복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명예나 영광이나 정복과 바꾸려 해 왔어. 그러나 힘이 되는 건 역시 생활과 관련한 사소한 부분이야. 그리고 아스퍼 아르고는 이삼 년 안에 코렐 전체를 덮칠 경제 불황의 태풍에 맞설 능력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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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욜로욜로 시리즈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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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박지리 님의 <번외>라는 소설을 읽었단다. 이번 소설은 200페이지도 안 되는 무척 얇은 두께였어. 하지만, 지금까지 실망시키지 않은 박지리 님의 작품들이었기에 기대를 걸고 책을 펼쳤단다. 아빠 읽은 박지리 님의 소설들은 꼭 죽음이 관여되어 있었던 같은데, 이번 소설은 죽음 한 가운데 있었던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펼쳐진단다.

죽음 가득한 소설을 읽다 보니, 문득 박지리 님은 언제부터 그런 결정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궁금하더구나. 아빠가 몇 번 이야기했지만, 박지리 님의 결정은 뛰어난 작가를 잃은 독자들에게도 큰 상실감이었단다. , 그러면 바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 소설이 짧으니 편지도 짧게 하마.

 

1.

주인공 는 고등학생인데, 1년 전 다니던 학교에서 동료 학생의 총기난사사건이 있었어. 선생님 한 분과 학생 열일곱 명, 총 열여덟 명이 목숨을 잃었단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주인공 만 살아남았거든이런 상황에 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1년 전의 사건을 좀더 자세히 이야기할게. 학년 소풍을 가게 되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열아홉 명이 소풍을 가지 않게 되었어. ‘는 어렸을 때 동물원에서 꽃가루 알레르기로 쓰러진 적이 있는데 소풍을 그곳으로 간다는 거야. 그래서 못 간다고 했단다. 소풍을 안 간 열아홉 명은 시청각실에서 모여서 영화 감상을 했단다. 그런데 중간에 한 명이 사라져서, 선생님은 에게 사라진 친구 K를 찾아보라고 했어. ‘가 사라진 K를 찾으러 간 사이 그 일이 벌어진 거야. 바로 K가 시청각실에서 총을 난사하여 그곳에 있던 열여덟 명을 죽인 거였어.

사실 K는 친구였단다.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알고 지내던 친구였어. 이 사건 이후 는 트라우마로 나는 왜 살아남았을까를 늘 생각하고 죽으려는 생각도 자주 했어. 그리고 이 흔치 않은 사건은 전국에 알려졌고, ‘의 신상도 다 털려서 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어. 그렇다 보니 는 대부분 열외였어. 숙제를 안 해와도 혼나지 않고, 몸이 안 좋아 조퇴를 한다고 해서 뭐라 안 하시고, 지각을 해도 혼나지 않는 등 특별대우를 받았어. 하지만 그런 것들이 과면 의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이 되었을가?

는 그 사건 이후 오랜 기간 병원에서 정신 치료를 받았어. 하지만 그 트라우마는 완전히 치유될  수 없었지. 일찍 조퇴하는 날 길거리를 가도 모두 를 알고보고 공사장 인부들이 안전모를 건네고, 어떤 이는 껌을 선물하고, 어떤 이는 마스크를 건네주었단다. 그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말이야. 그들은 에게 관심을 주면서 위로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는 그 사건들이 다시 떠올라 더 힘들었을 것 같구나. ‘는 익명의 다수의 관심이 오히려 부담스러웠단다.

아빠래도 그랬을 것 같구나. 한 동안 집을 나가지 못했을 같고, 나가더라도 모지 깊게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릴 것 같구나. 이 소설은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란다. 뿐만 아니라 때론 죄책감에 시달리고, 삶에 대한 허무함에 무료해져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는

….

실제로도 소설 속 사건보다 더 무서운 사건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단다. 그 사건 사고에서 극복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단다. 그런 사람들이 잘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빠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 봤는데,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런 트라우마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좀더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이만 짧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스피노자의 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이제 저렇게 훌륭한 인간은 다 죽어 버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끝 문장: 내 앞을 낮은 펜스가 가로막고 있고 공중에 신기루 같은 모래가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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