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멀 피플 아르테 오리지널 11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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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해줄 책은,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이라는 소설이란다. 이 소설은 영국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고 하더구나. 알라딘 인터넷 서점의 SNS인 북플에서 몇몇 분들이 추천을 해서 알게 된 소설이란다.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라서 아빠와 거리가 있는 책일 거라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소설도 괜찮고 드라마도 괜찮다고 해서 소설 먼저 읽어 보았단다.

책의 광고 문구에는 밀레니얼 세대의 사랑과 불안을 담아낸 가장 젊고 뜨거운 소설이라고 적혀 있었어. 읽기 전에 이 광고 문구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읽고 난 후에는 이 문구가 참 적절하면서도 소설을 한 문장으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하지만 문제는 아빠는 공감하지 못하면서 읽었다는 것. 대한민국 아재와 소설 속 등장인물과는 많은 거리감이 있었어. 아일랜드의 밀레니얼 세대의 젊은이들이 사랑 놀이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단다. 밀레니얼 세대가 아무리 자유분방한 사랑을 하도, 스포츠 놀이하듯이 잠자리를 갖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더구나.

이 소설은 맨부커상 후보에도 올랐는데, 어떤 점을 높이 사서 그 후보에 올랐는지 아빠는 잘 모르겠구나. 오늘날 밀레니얼 세대의 현실을 소설 속에 잘 그린 것을 높게 산 것인지, 아니면 번역본으로 알 수 없는 원문으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 있는 것인지 말이야. 드라마로 만든 이유도 많은 야한 장면으로 이목을 받고 어느 정도 시청률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대한민국 아재의 약간은 꼰대 같은 생각이 들었단다.

 

1.

주인공 메리앤과 코넬이라는 두 젊은이란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는 메리앤과 코넬은 고등학생으로 나오고, 점점 성장해 가서 소설의 끝부분은 이십 대 중반으로 끝을 맺는단다. 메리앤은 엄청난 부잣집 딸에다 공부도 늘 일등을 하는 모범생이야. 하지만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그런 학생이었어. 실제로는 그런 것 같지 않지만, 학교에서는 오만하고 까칠한 이미지에 얼굴도 별로라는 이미지로 알려졌지. 메리앤의 집에 일해주시는 아주머니가 있는데 그 아주머니의 아들이 코넬이란다. 코넬은 메리앤과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고, 코멜은 메리앤의 집에서도 자주 보기 때문에 학교에서 만들어진 그런 이미지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어쩌다 둘은 함께 시간을 갖게 되고 예전부터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실제가 된단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돼. 하지만 메리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보니 코넬은 매리앤과 관계를 학교에서는 비밀로 한단다. 심지어 다른 여자의 졸업 무도회 신청을 받아들이고 메리앤은 큰 상처를 받고 학교까지 그만 두었어.

그렇게 헤어진 메리앤과 코넬은 몇 년 뒤에 다시 만나 예전의 그 애틋한 감정을 되살아나 사랑을 하게 되지만 또 몇몇 오해와 소심함으로 인해 헤어지게 된단다. 그런 과감한 사랑을 하면서도 어찌 진심을 말할 때는 소심해서 말을 못하는지답답하더구나. 그렇게 서로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반복하다가 결국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여 진짜 사랑을 하게 된다는, 다른 연애 소설과 크게 차이나 보이지 않는 사랑이야기로 아빠는 읽었단다.

이 소설은 기대가 컸던 만큼 아빠는 별로였기에 읽으면서 메모도 별로 안 해서 너희들에게 자세히 이야기해줄 것도 별로 없구나. 사랑의 모습은 수많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그린 사랑이 아주 특별하다거나 극적이거나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단다. 원래는 소설을 읽고 드라마도 이어서 보려고 했는데, 드라마는 생략해야겠다. 그리고 드라마가 특정 OTT에서 서비스를 해주어서 찾아 보기도 쉽지 않더구나. 역시 책은 취향 싸움. 오늘은 여기까지.

아참, 그런데 제목이 노멀 피플?

 

PS,

책의 첫 문장: 코넬이 초인종을 누르자 메리앤이 문을 열어준다.

책의 끝 문장: 너도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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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프 푸셰 -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전면 새번역 누구나 인간 시리즈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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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좋아한단다. 그의 책들을 읽고 실망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아. 그래서 가끔씩 그의 책을 찾아 읽는데, 오늘은 그가 쓴 조제프 푸셰라는 사람의 평전이란다. 조제프 푸셰.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란다. 아니, 아마 들어보거나 읽어봤을 법한 이름이란다. 왜냐하면 그가 살았던 시대가 프랑스 혁명을 관통하는 시대였기 때문이야. 아빠가 프랑스 혁명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된 책들을 여럿 읽었잖니. 그래서 한번쯤은 봤을 텐데,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는 이름이구나. 그건 그가 겉으로 드러내는 것보다 뒤에서 판세나 사람들을 조정하는 그런 삶의 방식을 택해서일 수도 있어.

책 앞면에 보면 나폴레옹도 두려워한 조제프 푸셰의 삶이라고 적혀 있고, 책 뒷면에 보면 프랑스 혁명을 배후 조종한 기회주의자의 삶이라고 적혀 있단다. 조제프 푸셰라는 사람은 프랑스 혁명 한복판에 있던 사람이지만,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키요틴에 목이 잘려 나갈 때 어찌 살아날 수 있는지도 이야기해줄게. 그 힌트는 책 뒷면에 적혀 있는 그의 평가 중에 기회주의의 삶이라는 문구가 힌트가 될 수 있겠구나. 조제프 푸셰라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보면 두 권이 나오는데 모두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란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 책을 두 출판사에서 각각 다른 책 제목으로 출간했더구나.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게.

 

1.

조제프 푸셰는 1759 5 30일 낭트에서 태어났단다. 어렸을 때 교회에서 공부했는데 곧잘 했다는구나. 스물 살부터 서른 살까지는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교사 일을 했대. 수학과 물리를 가르쳤다고 하는구나. 그의 첫 사회생활은 뜻밖에도 선생님이었구나. 그것도 거의 10년이라는 세월 동안그것도 욕구를 제한 받는 수도원에서그런 생활은 침묵하는데 익숙하고 자기 통제를 잘 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관리 능력에도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하는구나. 변호사인 로베스피에르와 친하게 지내기도 했대. 프랑스 혁명의 주인공급 인물인 그 로베스피에르 맞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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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삭발한 수도원 교사는 창백하고 신경질적이며 야심에 넘치는 변호사 로베스피에르와 각별히 친해진다. 더군다나 이 둘의 관계는 처남 매부 간으로 발전해 나가려는 참이다. 막시밀리앙의 누이인 샤를로트 로베스피에르는 오라투아르 교단의 교사를 수도승 신분에서 해방시키고자 한다. 곳곳에서 둘이 약혼했다는 소문이 돈다. 왜 이 혼사가 결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여기에 두 남자가 서로 증오하게 된 이유가 숨겨져 있는 듯이다. 예전에 친구였던 두 남자는 후일 목숨을 걸고 세계사에 남을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그 무렵 그들에게는 자코뱅도 증오도 낯선 단어이다. 증오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가 삼부회 의원 자격으로 프랑스의 새 헌법을 장만하도록 빈털터리 변호사에게 금화를 빌려준 것도 다름 아닌 삭발승 조제프 푸셰이다. 이 일화는 그가 나중에 자주 맡게 될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다른 사람에게 세계 역사에 남을 경력을 쌓도록 발판을 받쳐 주는 역할 말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옛 친구를 배반하고 등을 밀쳐 쓰러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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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서 선생님 생활을 마치고 서른두 살인 1792년 국민공회의 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다는구나. 국민공회 의원이 된 조제프 푸셰. 루이 16세의 대한 처분 결정 회의에 참석하게 된단다. 푸셰는 다수파인 지롱파(온건파)에 앉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지롱파가 그저 다수파였기 때문이야. 강건파였던 로베스피에르는 푸셰에게 배신감을 느꼈단다. 자신과 친분이 있으니 당연히 자신의 편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루이 16세의 대한 처분 결정 회의에서 온건파가 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루이 16세는 사형이 결정되었단다. 왜냐하면 당시 여론이 사형이었는데, 온건파에서 여론을 거슬러 사형 반대에 표를 던지는 것이 부담스러웠거든. 특히 푸셰는 남들 시선을 의식하고 몸을 사리는 체질이라 온건파임에도 불구하고 사형에 투표를 했단다. 이 일을 계기로 푸셰는 급진파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급진파 중의 급진파로 불렀단다. 리옹에서 리옹 시의회에 의해 혁명파 샬리에가 처형당하는 일이 발생했어. 국민공회는 이것을 반란으로 규정하고 리옹을 파괴하고 관련자를 처형하기로 결정했어. 이를 집행하기 위해 어떤 사람을 보냈는데, 이 사람이 온건하게 대응을 해서, 국민공회는 다시 과격급진혁명주의자인 푸셰를 리옹에 보내기로 결정했단다. 푸셰는 리옹의 도살자라고 불리며 학살을 저질렀어. 단두대가 느리다며 사람들을 모아두고 대포나 총으로 죽였단다. 몇 주 만에 1600여 명을 죽였다고 했어. 푸셰가 그렇게 한 이유는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권력에 밉보이지 않으려는 이유였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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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9)

세계의 역사는 대개는 용감한 자들의 역사로 서술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게 다는 아니다. 세계의 역사는 비겁한 자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정치란 공동체의 의견을 선도하는 것이라고 믿으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지도자는 공동체의 의견이라는 법정을 만들고 거기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바로 이 법적 앞에서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기도 한다. 전쟁도 항상 이러다가 일어난다. 위험한 말로 불장난을 하고 민족 감정을 자극하다가 정치가는 범죄를 범하게 된다. 이 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악덕과 잔인성도 인간의 비겁함만큼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적은 없다. 따라서 조제프 푸셰가 리옹에서 대중을 학살한 것은 공화주의자의 열정 때문이 아니다.(그는 열정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자신이 온건주의자로 밉보일까 봐 두려워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설마 그가 수천 번 리옹의 도살자라는 호칭을 부인한다 할지라도 그의 이름은 이 호칭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히게 된다. 그가 나중에 공작의 망토를 두른다 해도 손에 묻은 핏자국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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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국민공회는 로베스피에르가 공포정치를 벌이고 있었단다. 그의 앙숙이나 반대파를 모두 단두대로 보내고, 혼자 정권을 차지하고 있었어. 그런 와중에 로베스피에르는 리옹에 있던 푸셰를 호출했단다. 거의 단두대행이 확실했어. 푸셰도 머리를 굴렸어. 푸셰는 일단 로베스피에르의 반대파인 자코뱅클럽과 친분을 쌓았고 나중에는 자코뱅클럽의 총재가 되었어. 권한을 갖게 된 푸셰는 로베스피에르의 소환 명령을 무시했어. 그러자 로베스피에르는 푸셰 탄핵 연설을 했고, 국민공회는 이를 받아들여 푸셰는 탄핵당했어.

푸셰는 반격을 준비했단다. 이 반격에서 지면 죽을 수도 있었어. 푸셰는 '불안'을 이용했어.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로베스피에르의 살생부에 올랐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어. 그런 식으로 푸셰는 반대 진영의 세력을 확정해갔단다. 이를 눈치챈 로베스피에르는 그들을 한번에 날릴 연설을 준비했는데 너무 눈치를 늦게 챈 것 같구나. 푸셰가 설득한 반대파가 총 700명 중 600여 명이나 되었어. 오히려 로베스피에르가 체포되었고, 곧바로 다음날 단두대로 향했단다. 많은 사람을 단두대로 죽인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단두대에서 처형 당한 것은 알았지만 그것을 주도했던 것이 푸셰라는 것은 처음 알았단다.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당하는 날 많은 파리 시민들이 환영을 했다고 하는구나.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지만, 그의 공포정치는 그렇게 공감을 얻지 못했던 거야.

로베스피에르가 죽고 나서도 세력간 다툼은 더 심해지고 처형은 계속 되었어. 푸셰는 프랑수아 바뵈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은 배후로 물러나 일종의 피신을 했는데 결국 그도 체포 명령을 피할 수 없었단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이후 3년간 그의 이름은 중앙무대에서 사라졌단다.

 

2.

3년간 푸셰는 빈곤에 허덕이며 살았대. 옛 동료인 바라스는 사람이 푸셰에게 일자리를 주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바라스가 총재가 되었고, 총재가 바라스는 지저분한 불법 사업을 푸셰에게 부탁을 했어. 그런 불법 사업을 통해 푸셰는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자본의 막대한 힘을 알게 되었단다. 그리고 총재정부는 그를 경찰장관으로 임명하면서 3년의 암흑기를 끝낼 수 있었단다. 반대파인 왕당파는 푸셰의 과거 이력을 알고 있어 긴장했단다. 하지만 푸셰는 예전에 그가 아니야. 경찰장관이 된 푸셰는 지코뱅클럽을 해체시켰단다. 그리고 돈 맛을 알게 된 푸셰는 경찰장관 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많은 정보를 이용하여 투자를 하고 큰 돈을 벌게 되었단다.

당시 프랑스는 여러 명의 총재가 이끄는 총재정부가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총재정부도 곧 무너질 것 같다는 소문이 들었어. 이집트로 쫓겨나듯 전쟁을 하고 있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언제든 파리로 진격한다는 소문이 있었어. 푸셰의 정보에 의하면 나폴레옹 파나파르트는 이미 프랑스 근처에 와 있다고 했어.

푸셰는 발 빠르게 움직였단다. 푸셰는 나폴레옹을 접견했어.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소문도 있었어. 그런데 경찰장관인 푸셰는 소문을 모르는 첫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저울추가 나폴레옹으로 넘어갔다고 판단했거든.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았단다.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우회적으로 도왔던 푸셰는 경찰장관 자리를 유지했단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푸셰의 과거이력을 알고 있어서 신임하지 않았고 언제든지 자르려고 마음 먹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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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며칠 수 제1통령 보나파르트는 출정했을 때보다 백배는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 그러고는 모든 장관과 친구들이 그가 패배했다는 첫 번째 소식을 듣자마자 그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즉시 누군가로부터 들은 게 분명하다. 첫 번째 희생자는 너무 많이 앞서 나갔던 카르노이다. 그는 장관직을 잃고, 푸셰를 포함한 다른 장관들은 직책을 유지한다. 푸셰는 워낙 조심스러워서 충성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물론 충성했다는 증거를 남기지도 않았다. 그는 한심한 꼴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믿을 만한 인물임을 입증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니 그의 변함없는 모습을 또 한 차례 확인시킨 셈이다. 만사가 잘 될 때는 믿을 만한 인물이지만 만사가 꼬일 때는 믿지 못할 인물이 바로 푸셰이다. 보나파르트는 그를 해고하지 않는다. 나무라지도, 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날부터 그는 푸셰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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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파르트는 푸셰에게 경찰장관을 그만 두게 하고, 그 조건으로 엄청 큰 돈과 땅을 주었단다.

푸셰는 몇 년 뒤 다시 경찰장관이 되었단다. 나폴레옹을 푸셰를 이용하려고 했던 거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면서 나폴레옹과 푸셰는 황제와 신하 관계가 되었어. 나폴레옹도 푸셰가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지만 이용은 해야 했으니 나폴레옹은 푸셰와 앙숙관계인 탈레랑를 등용시켜서 서로 감시하게 했단다. 그런데 탈레랑과 푸셰가 화해하는 계기가 생겼어. 나폴레옹은 자신의 형에게 왕자리를 주려고 아무런 이득도 없는 스페인 전쟁을 일으켰단다. 이 전쟁을 탈레랑과 푸셰 모두 반대를 하게 되면서 둘은 화해를 했단다. 둘이 친해졌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돌아와 텔레랑을 해임하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갔어.

그렇게 되자 프랑스 안에서는 푸셰가 일인자가 되었어. 진정한 일인자가 프랑스 밖에서 전쟁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그런데 영국은 나폴레옹이 프랑스에 없다는 것을 알고 프랑스를 침략했단다. 그 영국군을 푸셰가 멋지게 패퇴시켰단다. 이 승리에 자신감(?)을 얻은 푸셰는 군대를 또 소집했단다. 나폴레옹이 이 소식을 듣고 돌아왔고, 푸셰에게 백작 지위라는 당근을 주었고, 오트란트 공작이 되었단다.

겉으로는 친해 보이지만, 나폴레옹과 푸셰는 앙숙이었어. 결국 꼬투리를 잡은 나폴레옹은 푸셰를 경찰장관 자리에서 해임시켰지. 푸셰는 경찰장관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자신이 모았던 자료 중에 중요한 것만 빼돌리고, 나머지는 모두 불에 태워버렸단다. 나폴레옹은 이 일로 푸셰를 파면하였고, 푸셰는 이탈리아로 도망을 갔단다. 얼마 후 사면되긴 했지만, 푸셰는 관직에 오르지 않고 3년간 유배 생활을 했는데 이제 그도 52세가 되었어.

 

3.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 갔다가 패배를 했고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갔어. 그리고 루이 18세가 정권을 잡았지. 루이 18세가 되면서 푸셰를 등용했단다. 눈치 빠른 푸셰는 정세를 파악하며 아직 나폴레옹의 힘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여 루이 18세와 나폴레옹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다가 엘바섬에서 탈출하여 부활한 나폴레옹 편에 붙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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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그는 이런 말로 왕의 동생을 진정시킨다. “너무 늦었습니다. 왕께서는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나폴레옹이 벌이는 모험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황제를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저 저를 믿어 주십시오.” 이렇게 그는 왕정의 호감을 얻는다. 만일 부르봉 가문이 승리를 거두면 자신이 그들의 조력자라고 생색을 낼 수 있다. 만일 나폴레옹이 승리하면 부르봉 가문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다. 그는 여러 차례 양다리를 걸쳐서 일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법을 성공적으로 구사해 왔으니 이번에도 똑같이 하면 된다. 그는 이제 황제와 국왕, 두 군주를 동시에 충성스럽게 섬기는 신하가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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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다시 황제가 되었어. 당시 푸셰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높아서 그를 그냥 무시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경찰장관에 지명했단다. 예전보다 더욱 앙숙 관계가 된 나폴레옹과 푸셰는 서로 약점을 찾으려고 했어. 나폴레옹은 다시 전쟁을 일으켰고,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푸셰를 제거하려고 했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군에 대패하면서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단다. 이 나폴레옹의 유배를 주도한 것은 바로 당시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푸셰였단다.  나폴레옹이 물러나고 다들 공화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푸셰는 루이 18세와 비밀 협약을 맺고 있었어. 루이 18세에게 푸셰는 원수였지만 황제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손을 잡았어. 루이 18세는 황제 자리에 오르자마자 내각 의장을 푸셰의 앙숙인 탈레랑을 지명했단다. 쯧쯧.. 푸셰의 눈칫밥도 나이를 먹으면서 시들했는지 루이 18세를 황제로 만들어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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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332)

백일천하라는 나폴레옹 주연의 막간극이 끝난 후 1815 7 28일 국왕 루이 18세는 백마가 이끄는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다시 파리로 입성한다. 푸셰가 열심히 준비한 덕에 국왕은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환영 인파가 마차를 에워싸고 집집마다 걸린 부르봉 왕가의 흰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미처 깃발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급히 수건이나 식탁보를 지팡이에 달아서 창문가에 걸쳐 놓는다. 저녁에는 수많은 불빛이 도시를 환히 밝히고 기쁨에 겨운 사람들은 영국과 프로이센 점령군의 장교들과 춤추기까지 한다. 성난 고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서 사전 예방책으로 배치된 헌병들은 할 일이 없다. 정말이지 그리스도의 뜻을 가장 잘 따르는 국왕의 새 경찰장관은 새 주군을 맞을 준비를 완벽하게 해 두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튈르리 궁에서 나폴레옹 황제를 공손히 모셨던 충실한 신하 오트란토 공작은 이제 같은 장소에서 루이 18세를 기다리고 있다. 22년 전 바로 이 장소에서 그는 루이 18세의 형인 폭군루이 16세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던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성왕 루이의 후손에게 공손히 절을 하며 서류에는 폐하를 진심으로 섬기는 충성스러운 신하라고 서명한다. (친필로 쓰인 10개 이상의 보고서에는 이런 글귀가 한 자 한 자 적혀 있다.) 그가 벌인 미치광이 공예 중에서 가장 아찔한 재주를 부린 셈이었다. 하지만 이 재주를 마지막으로 줄타기와 같던 그의 정치 역정은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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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8세와 탈레랑은 푸셰를 왕의 시해자이자 리옹의 학살자를 죄목을 씌어 파면하고 추방시켰어. 푸셰는 프라하로 유배를 갔다가 다시 오스트리아 린츠로 유배를 가서 푸대접을 받으며 지내다가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서 병으로 세상을 떴다고 하는구나.  1820 12 26일이었어.

프랑스 대혁명 전후 시대서로 죽고 죽이는 정치판에서 단두대에서 죽지 않고 병사를 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구나.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야비하게 또는 얍삽하게 살아남았는지 알겠더구나. 그의 목표는 생존이었던 것 같구나. 굳이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적당히 권력과 부를 차지하면서 생존하는 법.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정치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단다. 그런 사람들이 또 권력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열 받곤 하지. 오늘날에도 여기저기 조제프 푸셰가 있는 것 같구나.

이번 책도 슈테판 츠바이크의 놀라운 글솜씨에 감탄하게 되었고, 프랑스 혁명의 또 다른 조연 조제프 푸셰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구나. 오늘 쓴 편지를 다시 읽어 보니 문맥이 이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아 메우지 못하겠구나. 양해 바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조제프 푸셰, 살아생전 막강한 권력을 행상했던 그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 중 하나이다.

책의 끝 문장: 흐릿하게 사라자는 그의 자취를 포착해서 뒤얽힌 인생항로를 모조리 찾아내고 싶은 유혹, 파란만장한 운명을 알아내서 너무도 특이한 정치적 인간 푸셰가 정신적으로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를 알아내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조제프 푸셰는 평생 막후의 인물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 막후의 인물은 결코 눈에 보이게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권력을 온전히 가지고 있으며 모든 끝을 손에 쥐고서 조종하지만 결코 책임자로 거론되지는 않는다. 항상 누군가를 일인자로 만들어 방패로 내세우고 그의 뒤에 서서 그를 앞으로 몰아가다가 그가 지나치게 앞으로 나갔다 싶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거침없이 등을 돌리고 마는 것, 바로 이것이 푸셰가 가장 좋아하는 역할이다. 정치사를 통틀어 가장 노련한 모사가인 푸셰는 공화국과 왕정과 황제의 제국을 무대 삼아 펼쳐지는 숱한 에피소드에서 스무 번이나 의상을 바꿔 가며 한결 같은 명배우의 솜씨로 이 역할을 연기한다. - P32

특히 천재는 무언가를 창조하려면 한동안 고독을 견뎌 내야 한다. 멀리 추방되어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야만 참된 과업의 폭과 높이를 측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복음은 모두 유배를 거쳐서 생겨났다.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 모세와 예수, 무함마드와 붓다, 모두 중대한 가르침을 전하기에 앞서 침묵의 광야로 가야 했고 사람들과 동떨어져 지내야 했다. 밀튼은 실명했고 베토벤은 청력을 잃었으며 도스토옙스키는 유형을 갔고 세르반테스는 감옥에 갇혔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에 숨어 지냈으며 단톄는 망명을 했고 니체는 살이 에이는 듯 추운 앵가딘 지역을 거주지로 택했다. 물론 이들은 맨 정신으로는 이런 삶을 원하지 않았겠지만 이들의 수호신은 이런 일이 일어나게끔 은밀이 조율했다. - P131

그러나 어떻게 해야 공화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그들 중 하나를 내각에 들여 놓으면 된다. 진짜 공화주의자 하나만 있으면 부르봉의 백합기를 빨갛게 치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물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귀족들은 고심하다가 갑자기 조제프 푸셰라는 사람을 떠올린다. 이 사람은 2, 3주 전에 모든 접견실을 돌아다니며 고관들을 예방했고 왕과 장관들의 책상을 수많은 건의서로 뒤덮었다. ‘그래, 이 사람이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부려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빨리 이 사람을 은거 생활에서 끌어내자!’ 어떤 정부가 난관에 처하거나 유능한 중개자나 협상가, 질서를 창출할 사람을 필요로 할 때면 그 정부는 늘-총재정부든, 통령정부든, 황체치하든, 왕국이든 상관없이-깃발을 들고 행렬을 이끌 줄 아는 남자 조제프 푸셰에게 눈을 돌린다. 결코 믿은이 가지 않는 성격을 지녔지만 외교적 수완을 갖춘 믿음직한 일꾼이기 때문이다. - P271

후일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된 패배자 나폴레옹은 푸셰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내게 진실을 들려준 건 배신자들뿐이었다." 사무친 원한을 토로하는 대목에서조차도 메피스토펠레스만큼이나 비상한 능력을 갖춘 푸셰를 경탄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천재가 가장 못 견뎌 하는 것이 범속함이기 때문이리라. 푸셰가 자신을 기만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폴레옹은 어쨌든 푸셰는 자신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목이 마른 사람은 물에 독이 들어 있음을 알면서도 그 물을 향해 손을 뻗치는 법이다. 나폴레옹은 충실하고 무능한 사람보다는 믿을 수 없지만 영리한 사람을 신하로 삼는 길을 택한다. 10년을 치열하게 대립했던 사람들이 어중간한 우정을 나눈 사람들보다 서로 더 긴밀한 사이가 되는 경우는 놀랍게도 종종 있다. - P287

세계 역사를 한번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자가 권력을 잃으면 전과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게 된다. 그는 러시아 조정에 여러 차례 변죽을 울렸지만 초청장은 오지 않고 웰링턴도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벨기에는 국내에 이미 왕년의 자코뱅파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이에른 왕국은 조심스럽게 말을 돌리고 오랜 친구 메테르니히 공작은 이유 없이 쌀쌀하게 군다. "아, 그러십니까! 오트란토 공작께서 그러고 싶으시다면 오스트리아 영토로 들어와도 됩니다. 오스트리아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공작의 체류를 묵인하려 합니다. 하지만 빈으로 와서는 절대 안 됩니다. 당신이 빈에 머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탈리아로 가서도 절대 안 됩니다. 빈에서 멀지 않은 동북부 주를 제외한 다른 지방의 소도시를 택하신다면 조용히 처신하겠다는 조건하에 공작의 체류를 허가하겠습니다." - P346

15년 동안 운명이 위협적으로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던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날렵하게 운명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마침내 그가 꼼짝도 못하게 되자 운명은 이 패배자를 사정없이 후려갈긴다. 정치인으로서 굴욕을 겪은 것도 모자랐는지 조제프 푸셰는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사생활에서도 뼈아픈 굴욕을 겪게 된다. 1817년 프라하에서 일어났던 작은 에피소드는 마치 소설가가 지어내기라도 한 듯이 너무도 재치 있게 푸셰가 어떤 내적 굴욕을 겪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극을 겪은 푸셰에게 이제 불행은 섬뜩한 캐리커처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는 남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정치인 푸셰에 이어서 이제는 남편 푸셰가 굴욕을 당할 차례이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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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잠은 학습하고, 기억하고, 논리적 판단과 선택을 하는 능력 등 뇌의 다양한 기능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우리의 정신 건강에 유익한 기여를 함으로써, 잠은 우리 감정 뇌 회로를 재조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날 냉철한 머리로 사회적 심리적 도전 과제들을 헤쳐나갈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모든 의식 경험 가운데 가장 난제이면서 논쟁적인 것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꿈 말이다. 인간을 비롯하여 꿈을 꿀 수 있을 만큼 운이 좋은 종들은 모두 꿈꾸기를 통해서 독특한 혜택들을 얻는다. 편안하게 하는 신경 화학 물질에 뇌를 푹 담금으로써 고통스러운 기억을 누그러뜨리고, 과거와 현재의 지식을 뒤섞은 가상 현실 공간을 통해 창의성을 부추기는 것도 잠이 주는 선물 중 하나다.

 

(30)

믿을만하게 되풀이되는 그들의 수면과 각성의 주기가 정확히 24시간이 아니라, 그보다 좀더 길다는 부정할 수 없이 일관된 결과가 나왔다. 20대였던 리처드슨의 수면-각성 주기는 26~28시간이었다. 40대였던 클라이트먼의 주기는 24시간에 좀더 가까웠지만, 그래도 그보다는 길었다. 따라서 햇빛이라는 바깥의 영향을 제거했을 때, 개인의 체내에서 생성되는 <하루>는 정확히 24시간이 아니라, 바깥 세계에서 (실제) 하루가 지날 때마다, 클라이트먼과 리처드슨은 체내에서 생성된 더 긴 시계에 따라서 시간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65)

여기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시간 왜곡 현상이 하나 있다. 잠 자체를 넘어서, 꿈속에서 시간 확장이다. 시간은 꿈속에서는 그다지 들어맞지 않는다. 길게 늘어질 때가 아주 많다. 지난번에 꿈에서 깨어나, 자명종의 다시 알림 단추를 눌렀을 때를 생각해 보자. 관대하게도, 당신은 자신에게 5분 동안 달콤한 잠을 더 잘 수 있도록 허용한다. 당신은 곧바로 꿈으로 돌아간다. 5분을 더 기다린 뒤, 당신의 자명종은 믿음직하게 다시 울리지만, 당신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 시간인 그 5분 이상 동안, 당신은 1시간, 또는 그 이상 꿈을 꾸고 있었던 양 느낄 수도 있다. 꿈을 꾸지 않는 수면 단계, 즉 시간 관념을 모조리 잃는 단계와 달리, 꿈속에서 시간 감각을 계속 지니고 있다. 그저 그리 정확하지가 않을 뿐이다. 꿈꾸는 시간은 실제 시간에 비해 더 길게 오래 늘어날 때가 많다.

 

(117)

그렇긴 해도, 렘수면이 제공하는 탁월한 정서 뇌 능력이 창의성에 영감을 불어넣는 두 번째 혜택보다 우리 인류의 성공을 결정하는 데 더 영향력을 끼쳤다고 봐야 한다. 창의성이 진화적으로 강력한 도구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대체로 개인에게 한정되어 있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해결책들이 렘수면이 함양하는 정서적으로 풍부하고 친사회적인 유대와 협력 관계를 통해 개인 사이에 공유될 수 없다면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 창의성은 대중에게 전파되기보다는 한 개인 내에 고정된 채 남아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135)

파인버그는 깊은 수면 세기의 증감이 청소년기의 위태위태한 고지대를 거쳐서 성년기라는 안전한 통로로 들어서는 성숙을 향한 여행을 돕는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그의 이론이 옳다고 뒷받침한다. 깊은 렘수면이 청소년기에 뇌의 마지막 마감 공사와 정밀 검사를 수행함에 따라, 인지 기능, 추론, 비판적 사고는 나아지기 시작하는데, 비렘수면의 변화에 비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관계의 각 시기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점이 드러난다. 뇌 안에 인지적 및 발달적 이정표가 놓이기 몇 주 또는 몇 달 전에 반드시 깊은 렘수면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영향의 방향성을 시사한다. 뇌 성숙이 깊은 잠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잠이 뇌 성숙의 추진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141)

안타깝게도 사회도 부모도 십대 청소년이 어른보다 잠을 더 잘 필요가 있으며, 생물학적으로 부모와 잠자는 시간대가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안 되어 있다. 부모가 이 점에서 좌절을 느낀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부모는 십대 자녀의 수면 패턴이 생물학적 명령이 아니라 의식적인 선택을 반영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패턴은 의지에 따른 것도, 타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생물학적으로 강하게 정해진 것이다. 부모라면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포용하고 장려하고 찬미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자녀의 발달하는 뇌에 이상이 생기거나 자녀의 정신질환 위험이 높아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말이다.

 

(217-218)

기분이 극단적으로 좋아지는 쪽으로 갑자기 변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우려되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비록 결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쾌감을 주는 경험에 과민하게 반응하면 감각 추구, 위험, 모험,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면 교란은 중독성 물질을 투여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명확한 징표 중 하나다. 또 수면 부족은 뇌 전두엽 피질이라는 이성적인 사령부의 통제가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보상 갈망과 관련이 있는, 수많은 중독 장애들의 재발률도 결정한다. 예방 관점에서 볼 때 이와 관련이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불안, 주의력 결핍, 부모의 마약 경력 등 다른 고위험 요인들을 감안하여 살펴보면 청소년기 말에 일찍부터 마약과 술에 빠질지 여부를 유년기의 수면 부족 여주를 통해 상당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수면 부족으로 진자처럼 양쪽 방향으로 오가는 감정 변화가 서로를 상쇄시키기는커녕 몹시 우려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35)

네데르고르의 발견은 우리 발견에서 빠져 있던 답을 제공함으로써 지식의 고리를 완성시켰다. 부족한 잠과 알츠하이머병의 병리는 상호작용하면서 악순환을 일으킨다. 잠이 부족하면 아밀로이드판이 뇌에, 특히 깊은 수면을 생성하는 영역에 쌓이면서, 그 영역을 공격하여 망가뜨린다. 이 공격으로 갚은 비렘수면이 줄어들면 밤에 뇌에서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능력도 약해진다. 그러면 아밀로이드가 더 많이 쌓이게 된다. 아밀로이드가 쌓일수록 깊은 수면은 줄어들고, 깊은 수면이 줄어들수록 아밀로이드가 더 쌓이는 과정이 계속 되풀이된다.

 

(251)

문제가 생긴 것은 두 주인공인 렙틴과 그렐린이었다. 수면 부족은 포만감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인 렙틴의 농도를 낮추고 허기를 자극하는 호르몬인 그렐린의 농도를 높였다. 생리적으로 이중으로 위협에 처하는 고전적인 사례였다. 참가자들은 수면 부족이라는 위법 행위로 이중으로 처벌을 받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배불러>라는 신호가 제거되고, 다른 쪽으로는 <아직 배고파>라는 느낌이 증폭됨으로써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잠을 적게 잘 때는 음식을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했다.

 

(258)

양쪽 집단 모두 체중이 감소했다. 그러나 체중이 줄어든 원인은 전혀 달랐다. 5.5시간만 잔 집단에서는 체중 감소의 70퍼센트 이상이 지방 외 체중에서 이루어졌다. 즉 지방이 아니라 근육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매일 밤 8.5시간을 잔 집단에서는 훨씬 바람직한 결과가 나왔다. 체중 감소의 50퍼센트 이상이 근육이 아니라 지방에서 이루어졌다. 잠을 충분히 못 자면, 몸은 지방을 내놓기를 몹시 꺼린다. 지방을 간직하고, 대신에 근육을 버린다. 그러니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다이어트를 한다면, 날씬하고 뽀얀 모습이 될 가능성이 적다. 수면 부족일 때 다이어트는 역효과를 낳는다.

 

(277-278)

어젯밤에 당신은 지독한 정신병적 상태에 빠졌다. 오늘 밤에도 다시 그런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 진단을 거부하기 전에, 내가 타당한 근거라고 제시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한번 들어 보시라. 첫째, 어젯밤 꿈을 꿀 때, 당신은 거기에 없는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환각을 일으키고 있었다. 둘째, 당신은 진짜일 리가 없는 것들을 믿었다. 즉 망상에 빠졌다. 셋째, 당신은 시간, 공간, 사람을 혼동하게 되었다. 즉 혼란에 빠졌다. 넷째, 당신은 극단적인 감정 사이를 오갔다. 정신과 의사들이 정서 불안이라고 하는 증상이다. 다섯째(그리고 너무나 기쁘게도!), 오늘 아침 깨어날 때, 당신은 이 기이한 꿈속 경험중 전부는 아니라고 해도 대부분을 잊었다. 한 마디로 기억 상실증에 빠졌다. 깨어 있을 때 이런 증상들을 어느 하나라도 겪는다면, 즉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렘수면이라고 부르는 뇌 상태와 그에 따르는 정신적 경험인 꿈은 정상인 생물학적 및 심리적 과정이자,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진정으로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이제야 겨우 그 이유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310)

잠을 못 잔 참가자들은 보통은 밤에 렘수면의 재조율 솜씨를 통해 제공되는 그런 예리한 감정 파악 능력이 사라지자, 두려움 쪽으로 치우쳐 있는 기본 설정 상태로 빠져들었다. 온화하거나 좀 다정해 보이는 얼굴조차도 위협적이라고 믿게 되었다. 뇌에 렘수면이 부족할 때, 바깥 세계는 더 위협적이고 피해야 할 곳이 되었다. 믿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잠을 못 잔 뇌의 <>에는 현실과 지각된 현실이 더 이상 같은 것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의 렘수면을 제거함으로써, 우리는 말 그대로 자기 주변의 인간 사회를 읽는 총명한 능력을 제거했다.

 

(342-343)

여기서 수면 상태를 착각하는 증상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역설 불면증이라는 것이다. 이 환자들은 자신이 밤새도록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또는 아예 못 잔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전극 등 수면 양상을 정확히 기록하는 장치를 써서 객관적으로 지켜보면, 그렇지 않다. 수면 기록을 보면, 이들이 자신이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잠을 자며, 너무나도 건강하게 푹 잔다는 것을 시사하는 사례도 있다. 따라서 역설 불면증 환자는 실제로는 잠을 잘 자면서 잠을 못 잔다고 착각, 즉 오인한다. 그래서 그런 환자는 건강 염려증 환자로 분류된다. 비록 그 용어가 경멸적이거나 그저 고상하게 표현했을 뿐인 양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수면 의학자들은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런 진단을 받은 이들을 돕는 심리적 치료법들이 나와 있다.

 

(383)

종이책에 비해 아이패드로 읽었을 때에는 밤에 멜라토닌 분비량이 50퍼센트 이상 억제되었다. 사실 종이책을 읽을 때는 멜라토닌 농도가 자연스럽게 증가했는데, 그에 비해 아이패드로 읽을 때에는 농도 증가가 세 시간까지도 지연되었다. 아이패드로 읽었을 때에는 멜라토닌 농도가 정점에 이르는, 즉 자라고 지시하는 시점이 자정 이전이 아니라 새벽 시간이었다. 인쇄본에 비해 아이패드로 읽은 뒤에 잠드는 데 더 오래 걸린 것도 놀랍지 않다.

 

(390-391)

이 그럴싸한 조언은 제쳐두고, 잠과 알코올이라는 문제에서 타당한 조언은 무엇일까? 금욕주의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겠지만, 알코올이 수면에 해를 끼친다는 증거가 워낙 확실하므로, 술을 마시면 당신과 공부에 피해가 가게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반주를 즐기며, 입맛을 돋우기 위해 미리 한잔 마시기도 한다. 하지만 간과 콩팥이 그 알코올 분해하여 배출하는 데에는 여러 시간이 걸린다. 당신이 에탄올을 빨리 분해하는 효소를 지닌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밤술은 수면을 교란할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자 가장 정직한 조언은 짜증날지 모르겠지만 술을 끊으라는 것이다.

 

(404-405)

위원회는 이런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서, 수면제가 <주관적이로 수면다원적으로 수면 잠복기를 미미하게 개선>할 뿐이라고 적었다. ,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조금 줄일 뿐이라는 뜻이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현재 쓰이는 수면제의 효과가 <작고 임상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결론지었다. 1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수보렉산트(상품명 벨솜라)라는 가장 최근에 나온 불면증용 수면제도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으로 더 의미 있는 수준으로 수면을 개선할 약물이 나올지 모르지만, 처방되는 수면제를 과학적으로 조사한 자료들은 현재로는 수면제가 잠을 푹 자려고 애쓰는 이들에게 건강한 잠을 되돌려줄 해결책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413-414)

카페인과 알코올 섭취를 줄이고, 침실에서 화면 기기들을 치우고, 침실 온도를 내리라는 것 등은 명백한 부류에 속한 방법들이다. 또 환자는 (1) 주중과 주말을 가릴 것 없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일정해야 하고, (2) 졸음이 올 때만 잠자러 가고 저녁 일찍 또는 중간에 소파에서 잠들지 않도록 하고, (3) 잠이 안 오는 데에도 잠자리에서 긴 시간 동안 누워 있지 말고, 일어나서 긴장을 풀어주는 차분한 무언가를 하면서 졸음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4) 밤에 잠들기 어렵다면 낮잠을 피하고, (5)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을 배움으로써 잠자기 전에 불안을 자극하는 생각과 걱정을 줄이고, (6) 밤에 시계를 보면서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시계 글자판이 보이지 않게 두는 것이 좋다.

 

(428)

잠을 덜 잔 직원은 덜 생산적이고, 동기 부여가 덜 되고, 덜 창의적이고, 덜 행복하고, 더 게으른 뿐 아니라, 더 비윤리적이기까지 하다. 사업에서는 평판이 일을 성사시키느냐 파탄내느냐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당신의 회사에서 잠이 부족한 직원은 당신의 평판이 나빠질 위험을 더 높인다. 앞에서 자제력을 발휘하고 감정 충동을 억제하는 데 중요한 전두엽이 수면 부족으로 활성이 억제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뇌 영상 실험에서 나온 증거를 설명한 바 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더 감정에 휩싸여서 성급하게 선택을 하고 의사 결정을 내렸다. 직장에서 더 중대한 업무를 처리할 때도 같은 결과를 나오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474)

직원이 약 5만 명인 대형 보험사 애트나(Aetna)는 검증된 수면 추적기 자료를 토대로, 잠을 더 많이 자는 직원에게 보너스를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애트나의 회장 겸 CEO인 마크 베르톨리니는 이렇게 설명했다. <직장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더 나음 판단을 내리는 일이야말로 우리 사업의 토대와 직결됩니다. 졸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요.> 밤잠을 일곱 시간씩 20일 이상 계속 잔 직원은 하루당 25달러, 최대 500달러의 보너스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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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시리즈 1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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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해 줄 책은 정세랑 님의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라는 책이란다. 지은이 정세랑 님은 <보건의사 안은영>, <지구에서 한아뿐> 등 많은 히트작을 쓴 작가인데, 아빠는 한 권도 읽지 않았더구나.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보니 딱히 안 당겼다고나 할까? 정세랑 님의 <재인, 재욱, 재훈>이라는 책을 예전에 구입했었는데 앞 부분을 읽다가 아빠 취향이 아닌 것 같아서, 나중에 읽어야겠다고 덮었던 기억이 있구나. 그런데 작년에 나온 정세랑 님의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평도 좋고 너희들도 읽을 만한 것 같아서 샀단다.

처음에 책 제목만 들었을 때는 SF 소설인줄 알았단다. ‘금성이라는 단어 때문에그런데 책 소개를 읽어보니, ‘금성 Venus가 아닌, 옛신라의 수도인 서라벌, 오늘날 경주를 부르는 또 다른 말이더구나. 아빠도 예전에 국사 시간에 금성이라는 지명으로 배웠던 기억이 있구나. 그러니까 이 책은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단다. 옛신라의 성씨 중에 설 씨가 흔히 있었단다. 설총, 설총의 아빠인 원효대사도 설 씨였거든신라 시대를 다룬 역사 교양서를 읽어본 적은 있지만, 신라 시대를 다룬 역사 소설은 읽은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구나. , 최인호 님의 <해신>을 읽었구나. 그런데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그런 정통 역사소설은 아니란다. 소설 속 인물들과 사건은 모두 허구란다. 그야말로 시대와 배경만 빌려왔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돼. , 그러면 어떤 이야기인지 시작해보자.

 

1.

설미은은 남매들이 전염병으로 죽고 말았단다. 그 똑똑했던 다섯째 오빠 자은도 그만 전염병으로 죽고 말았어. 자은 오빠는 원래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셋째 오빠 호은은 자은 대신 미은에게 대신 당나라 유학을 가라고 했단다. 자은의 중국 유학은 쓰러져는 집안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염병으로 그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했어. 자은의 바로 아래동생 미은은 자은과 용모도 비슷하고, 머리도 똑똑하였기 때문에 충분히 대신 유학을 갈 수 있다고 호은은 생각했어. 한 가지. 여자라는 것만 들키지 않으면 말이야. 미은은 그렇게 남장을 하고 자은이 되어서 중국 유학을 떠났단다.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의 사극에서 가끔씩 남장여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도 그런 류의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남장한 것을 들키면 안 되는 긴장감과 애틋한 러브라인도 있으려나? 이 소설이 다른 남장여자 주인공의 사극과 어떤 점이 다를까? 이런 생각도 하면서 읽었단다.

소설의 이야기는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그런데 그 돌아오는 배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호은의 지인이었던 선장은 자은에게 부탁하여 살인 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했어. , 추리 소설인가 보구나. 추리 소설을 보면 주인공 옆에서 보좌하는 사람이 보통 등장하는데 이 소설도 당연하다는 듯 그런 규칙을 갖고 있었단다. 자은을 도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는 목인곤이라는 백제 출신 도공이었단다. 목인곤은 아주 어렸을 때 아직 백제가 망하기 전에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그 사이에 백제가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란다. 자은과 목인곤은 협력하여 살인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게 된단다.

신라 땅에 도착한 설자은과 목인곤. 인곤은 대뜸 자신을 금성에 식객으로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어. 그러면서 자은이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남자가 할 일이 분명 있을 것이라면서 데려가 달라고 했어. 자은이 여자라는 것을 비밀로 하겠다고 했지. , 기대와 달리 이야기는 점점 식상해져 가는 느낌이었단다. 남장여자라는 특별할 것 없는 주인공. 그의 비밀을 알아챈 남자 주인공. 둘이 협심하여 사건사고를 해결해 나가는 스토리새로운 것을 찾아보려 했으나 아빠는 결국 찾지 못했단다.

이 소설에서는 앞서 이야기했던 배 안의 살인 사건 포함하여 네 가지 사건이 발생하고, 설자은과 목인곤이 잘 해결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추리 소설을 비교적 많이 읽지 않은 너희들이 읽어보면 재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 책의 뒷날개를 보면 설자은 시리즈로 계속 출간된 예정이라고 하더구나. 아빠가 읽은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설자은 시리즈 1권이었던 것이고

….

오늘 소개한 책은 아빠의 취향과 좀 거리가 있는 것 같아서, 독서 편지도 짧게 마무리하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너희들의 취향에는 맞을 수 있으니 한번 읽어보렴. 고증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옛신라의 수도 금성의 모습도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설자은은 오래 머물렀던 장안을 사신단과 함께 떠나, 육로로 등주까지 왔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은 그다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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