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7)

한국김치는 2013년과 2015년 각각 남한과 북한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선정 심사를 위해 유네스코에 제출한 보고서는 김치라는 무형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살려서 만들어졌다고 평가받는다. 이 보고서에는 김치의 역사가 1,000년 정도라고 적혀 있었지만 기간은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선정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원조 유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문화의 현대적 의미와 보편적 가치다. 이는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하며 붙인 타이틀, ‘김장 : 김치를 만들고 서로 나누기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따지지 않았다. 선정위원회 측은 김치의 원조를 나누지 않았다. 그보다는 인류가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지혜롭게 저장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누었던 지혜를 김치에서 발견하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승자는 불명한 원조를 큰 소리로 주장하는 자가 아니었다. 세계 사람들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가치를 재발견해는 자가 승자였다.

 

(91)

각 나라마다 저마다의 해장 문화가 있지만, 우리나라만큼해장이란 단어가 널리 쓰이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한국에는 아예해장국이라는 음식이 따로 존재할 정도다. 한국에서 해장국을 마시는 행위는 일종의 사회생활의 한 부분으로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예전에는 회식을 한 다음날이면 으레 함께 술자리를 한 이들 중 한 명이오늘은 해장국이나 할까?” 하며 전날 멤버들을 다시 불러내어 합동으로 숙취 해소를 하기도 했다.

 

(163)

야생 늑대는 어떻게 개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주는 굉장히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0년대 러시아의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는 시베리아에서 사나운 은여우를 길들이는 실험에 착수한다. 그는 일군의 은여우 중에서 비교적 온순한 여우들을 골라 교배를 했다. 그 결과,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인 20년 만에(6세대를 거친 후)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는 행동을 하고, 형태적으로도 꼬리가 위로 말리는 오늘날의 개와 비슷한 모습을 한 여우를 키워냈다. 20년 정도의 짧은 기간 안에 유전자 수준의 변화가 이루어 질 수는 없다. 다만 길들여진 은여우의 호르몬은 야생의 은여우와 차이를 보였다. 벨랴예프의 연구로 늑대의 유전자에는 이미 인간의 반려동물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인간을 만나면서 발현되었음이 밝혀졌다.

 

(169)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인간의 숭배 대상이었다. 이집트 선왕조인 기원전 3700년경의 무덤에서는 고양이 뼈가 발견되었는데, 무덤에 묻히기 4~6주 전에 부러진 뼈를 치료받은 흔적이 있었다. 살아생전에 인간의 보살핌을 받았다는 뜻이다. 수많은 이집트인들의 무덤에서는 무덤 주인의 미라와 더불어 수많은 고양이 미라가 함께 발견되었다. 심지어 쥐 미라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양이의 먹잇감인 쥐를 함께 묻은 것으로 그만큼 고양이를 극진히 대우했다는 뜻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다산과 풍요의 여신인 바스테트가 고양이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역시 이집트인들이 고양이를 숭배했음을 보여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죽이면 사랑에 처한다는 법이 있을 정도였다.

 

(231)

하지만 사정이 급변 중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영구동결대 얼음이 녹아버리면서 알타이 지역 문화유산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상황처럼 현재 지구 곳곳에서 이상 기후나 환경오염으로 해서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역사가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문화유산은 비단 발굴이 완료된 것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깊은 땅속에 매장되어 있어 언젠가 후세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유물들도 우리가 보호해야 할 문화유산이다. 말없이 사라지는 유물들이 많아질수록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밝혀줄 증거들도 줄어든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287)

미라를 만드는 핵심 기술은 부패하기 쉬운 내장을 빼내고 피부는 탈수를 시켜서 보존 처리를 하는 것이다. 먼저 콧구멍으로 갈고리를 집어넣어 뇌 속을 긁어 뇌수를 빼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얼굴에 상처가 나면 안 된다. 다음으로는 갈비뼈 밑에 구멍을 내서 장기를 빼내어 카노피라고 하는 별도의 단지에 넣는다. 단 저승에서 심판을 받을 때 필요한 심장은 부적과 함께 제자리에 다시 넣어둔다. 그 다음에는 몸에서 수분과 지방 성분을 빼내는 탈수 작업을 거친다. 단순한 탈수가 아니라 몸의 외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길고도 세심한 작업이다. 얼마 전 3,45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를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는 파피루스가 발견되었는데 35일간 건조를 하고 35일 간 군대를 감는 등 총 70일 뒤 소요된다고 했다. <창세기> 1장에도 이집트 정리가 된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죽자 40일간 미라를 만들고 70일동안 애도를 했다고 적혀 있는데 이는 파피루스 속 기록과도 대략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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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오지원 옮김 / 유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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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최근에 몸 컨디션이 안 좋아서, 책 읽기의 슬럼프가 왔나 싶었는데, 지난주에 정신병자의 정신 나간 내란 시도 때문에 더욱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었구나. 도대체 2024년에 쿠데타를 시도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냐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쿠데타를 시도하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겠느냐 말이야. 즉흥적인 비상계엄인줄 알았는데, 비상계엄 및 내란 실패 후 드러나는 것을 보니, 사전에 꽤 오랫동안 모의를 했던 것 같구나. 그럼에도 그의 생각에 공감을 하는 이가 소수이고, 상식적인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이 발 빠르게 대처하여 막아낼 수 있었던 것 같구나. 아직도 지난주의 그 상황을 생각해 보면 아찔하구나. 그리고 그 정신병자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그것도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 중에 있다는 것이 분노게이지를 자꾸 높이는구나.

그런 정신병자와 그 정신병자들에 동조하는 놈들 때문에 뉴스와 관련 동영상을 계속 보다가 책 읽는 시간이 더 줄어들었구나. 그러다 보니 독서 편지를 쓰는 것도 자꾸 미뤄지게 되었어. 오늘은 유튜브를 참고 너희들에게 책 한 권을 이야기해야겠구나. 오늘 너희들에게 소개해줄 책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책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북리뷰라고 할 수 있겠구나. 아빠가 책 리뷰를 모은 책들을 여럿 읽어봤지만, 이번에 읽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가 최고인 듯싶었어. 해박한 지식에서 나오는 품격 있는 글들, 때론 비판적이고, 때론 격조 있는 칭찬으로 하여금 책을 찾아 읽고 싶게 만들었단다.

본격적인 책 리뷰를 하기 전에, 서문을 대신하여 적은 글은 그가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글들이 실려 있단다. 책에 대한 예찬이라 할 수 있는 그 글은 필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단다. 오늘날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로 인해 책의 위기가 왔다고 하는데, 100년 전에도 츠바이크는 기술 중심의 시대가 되면서 책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를 했더구나. 100년 전에도 굳건히 살아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처럼 책은 또 다른 형태로 사랑을 받으며 미래로 나아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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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6)

사람들은 책의 시대가 가고 이제는 기술 중심의 시대가 되었다고 탄식한다. 축음기, 영사기, 라디오가 보다 세련되고 편리한 말과 생각의 전달 수단이 되어 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책의 문화사적 임무는 이제 곡 과거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단순하고 편협한 시각인지! 화학도 책만큼 확산성이 있으며 세계를 떨게 만드는 폭발물을 발견하지는 못했고, 인쇄된 작은 종이 묶음의 항구성을 이기는 그 어떤 강철판이나 철시멘트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전기로 켜지는 불빛이 아직 얇은 책 한 권으로부터 퍼져 나와 깨달음을 주는 빛만큼 우리를 비추어 주지는 못했고,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전류가 하는 어떠한 일도 인쇄된 언어가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져 채우는 것에는 비할 것이 못 된다. 시대를 초월해 불멸하고 불변하는 것인 동시에 가장 보잘것없고 변하기 쉬운 틀에 담긴 고도로 압축된 힘인 책은 기술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기술 또한 책으로부터 배워 스스로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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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 전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던 사람인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한 글도 있어 놀랍더구나. 학교가 동화를 망쳐 놓았다고 비판하는 글이 그랬어. 츠바이크는 어른이 되어 우연히 동화를 다시 읽고, 동화의 진정한 마법을 깨달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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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학교가 그렇게 망쳐 놓았다. 독서의 동기는 늘 자기 세계의 경계를 넘으려는, 낯선 것 안에서 길을 잃으려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책 속의 비유에서 자신을 되찾으려는 충동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낯설고 멀고 예외적인 동화 속에서 스스로를 꼬드겨 도망쳤으며, 어디에도 자신을 비추어 보지 않았다. 더 이상 동화가 삶을 상기시키지 않고, 오히려 삶이 동화를 우리에게 멀어지게 한다. 동화는 우리 감정을 진지하게 움켜쥐지 않고 그러 쓰다듬는다. 그것도 아주 가벼이. 내면의 시선에 집중하면서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부담 지우지 않으면서 매혹하는 동화는 연기를 매지 않는 불꽃이다. 일상적이고 지극히 통상적인 삶의 놀라운 힘이 동화에는 들어 있다. 꽉 짜인 시간의 법칙은 동화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아무런 힘을 행사할 수 없고, 끝없는 우연 속에서 일반적인 규칙은 다 사라진다. 이 의미심장한 속의 무의미함이 바로 동화의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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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 리뷰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어. 그렇다 보니 츠바이크가 살았던 한 세기 전에 발표한 책들에 대한 리뷰가 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읽는 고전들의 리뷰도 실려 있단다. 프로이트가 70세에 쓴 <문명 속의 불만>과 토마스 만의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라는 책은 당대에 출간된 책처럼 보였는데, 아빠는 처음 들어본 제목이란다.

그리고 <천일야화>에 대한 이야기도 실렸어. 당시 동양의 문학 특히 고전이 유럽에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시기에 <천일야화>를 읽은 츠바이크가 많이 놀랬던 것 같더구나. <천일야화>에 대한 내용도 자세히 소개하고 해당 내용도 극찬을 했단다. 그가 이렇게 극찬을 하는 것을 보니, 아빠도 <천일야화>를 완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천일야화>가 여러 권으로 분권되어 출간되는데

아빠는 1권만 읽었었거든.. 그 이후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6권짜리 전집을 사긴 했는데, 언젠가 읽겠지 하고 뒤로 미루고 있었는데, 조만간 읽어봐야겠구나. 츠바이크가 <천일야화>에 대해서 극찬한 일부를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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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5)

동방의 이름 없는 이가 쓴 이 비극 안에 펼쳐지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엄청나게 넓다. <천일야화>에 숨겨진 드라마와 비슷한 수준의 훌륭함은 역시 아돌프 겔버가 대담하게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 드라마는 거의 음악적으로 가장 깊은 절망으로부터 그 어떤 구속도 없는 완전함 유쾌함으로 옮겨 간다. <템페스트>에서와 같이 사람 마음속의 모든 요소의 영혼의 파도가 그 안에서 샅샅이 파헤쳐지고, 헤집어졌던 것은 귀향길의 은빛 수면처럼 다시 잔잔히 잦아든다. 동화의 모든 가벼움과 전설의 다채로움이 그 안에서 반짝이고, 이 요동치는 극 안으로 피의 드라마가 단단히 엮여 든다. 권력을 다투는 성별 간의 극심한 전쟁, 정절을 맹세케하려는 남자의 투쟁과 사랑을 향한 여자의 투쟁.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작가, 우리를 익명의 위대함에 눈뜨게 한 이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작품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빚은 잊을 수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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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하여 오늘날도 고전으로 널리 읽히는 책 중에 장 자크 루소의 <에밀>과 조이스의 <율리시스>도 소개해 주었어. <에밀>은 교육에 관한 책이고, 예전에 아빠가 어디선가 추천을 받아서 사 두긴 했는데, 엄청난 두께에 읽을 엄두가 나질 않는구나. 루소라고 하면 철학자이기 때문에 <에밀>도 사상서라고 생각했는데, 소설이라고 하더구나. 츠바이크가 이야기하길 루소의 사상서, 그러니까 <사회계약론>이나 <인간 불평등 기원론> 등은 시대가 지나면서 생명력이 사라졌지만, 그가 쓴 예술서 <고백론>, <에밀>, <신 엘로이즈>는 계속 생명력을 유지한다고 했어. 문득 소설이라고 하여 <에밀>을 읽어볼까 생각했지만, 아직 좀더 생각 좀 해봐야겠구나. 그런데 츠바이크도 <에밀>이 너무 길다면서, 요약본만 읽어도 충분하다면서 위안을 주는구나.^^ 이 책에서는 <에밀>에 대한 평도 있었지만, 장 자크 루소의 이야기한 부분을 너희들에게 발췌해 주고 싶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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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04)

장 자크 루소에게 세계의 변혁은 언제나 옳다. 사회질서가 뒤죽박죽이 될 때마다 그 사회와 관련하여 깊이 묻혀 있던 문제들이 표면으로 올라온다. 한 시대가 국가와 인간의 가장 기저에 있는 토대를 건드리고, 전통을 무너뜨리고 규칙을 흔들 때마다 나는 전령이 되고 충고자가 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항상 시간의 흐름이 무관한 곳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인권의 영원한 변호인으로, 어떤 사회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고 완전히 부인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의 증인으로 그는 서 있다. 루소는 항상 맨 처음부터, 그리고 외부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힘은 마치 지렛대처럼 대상에 바깥쪽에서 작용하며, 어느 한 시기에 갇혀 있지 않고 영속하는 인류 안에 있다. 그는 자기 세대와 그 자신이 속한 국가질서에만 다양한 혁명가가 아니며, 그보다는 공동체에 맞서는 개인 인격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지지하고 자유를 쟁취하려 투쟁하는 인류를 영원히 수호하는 수호자 같은 인물이었다. 혁명은 그를 인권의 아버지로 내세웠고, 국민의회에서의 연설은 그의 이름을 불멸하는 것으로 새겼다. 그러나 반대 세력은 무정부주의를 탄생시킨 사상가인 그의 시신을 판테온에서 끄집어내 갈기갈기 찢어 남은 것조차 바람에 흩어버렸다. 하지만 세계의 변혁의 바람이 불 때마다 그의 말과 정신은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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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츠바이크가 평전도 많이 썼는데, 그 중에 발자크에 대한 평전도 꽤 유명하단다. 아빠도 읽어보려고 사 두긴 했는데, 아직 읽지는 않았단다. 오늘은 우연히 사 두고 읽지 않은 책들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구나. 아빠의 게으름을 탓해야지. 오늘 읽은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에서도 발자크의 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단다. 당시에 10권 짜리 시리즈가 출간했었나 봐. 그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 발자크의 작품은 한두 권으로 출간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전집으로 엮어서 출간해야 한다고 했어. 그래야 그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알 수 있다면서 말이야. 그러면서 발자크에 대해 상당히 좋게 이야기를 했단다.

그 밖에 스탕탈의 문학, 릴케의 시, 타고르의 시, 괴테의 시 등에 이야기하고 어느 소녀의 평범한 일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단다.

책이 얇지만, 이 책에 실린 내용은 꽉 찬 내용이었어. 책 리뷰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 라고 하는 듯한 글들. 츠바이크의 책은 계속 찾아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얼른 정신병자를 자리에서 끌어내야 책읽기 슬럼프에서 벗어날 텐데

 

PS,

책의 첫 문장: 지상의 모든 운동은 근본적으로 인간 정신의 두 가지 발명에 그 근거를 둔다.

책의 끝 문장: 괴테의 시는 그런 운명의 형태를 그저 자기 인생 뒤로 흐르는 배경음악 정도로 여긴 것이 아니라 교향곡처럼 웅장하게 그의 온 존재를 감싸 안는 것으로 여겼으며, 그것은 이 지상에서 다시는 없을 인간의 가슴속에 인간 음악이 되어 흐르고, 불멸하는 예술이 부리는 마법이 되어 우리에게 언제까지나 현재적인 것으로 남았다.


오늘날 우리 정신세계의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지성적 활동은 책에 기초하고 있으며, 물질의 상부에 있는 문화라고 불리는 그 무엇은 책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적이고 개인적인 삶에서 영혼을 확장하고 세계를 건설하는 이러한 책의 힘에 대해 우리는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매우 드문 순간에만 자각할 뿐이다. 새롭고 놀라운 것의 존재에 매번 감사함을 느끼는 것과 다르게 책은 이미 우리 일상에서 당연한 것이 된 까닭이다. 마치 우리가 호흡할 때마다 산소를 들이마시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공급으로 혈액이 비밀스러운 화학작용을 해서 원기를 회복한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책을 읽는 눈으로 끊임없이 영적 재료를 받아들이지만 그것으로 우리 정신이 새 힘을 얻거나 혹은 지치거나 한다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한다. - P12

우리가 문학작품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교하면 동화는 끝도 없이 쉬워 보이지만 실은 비밀로 가득하고, 무질서한 것 같지만 실은 무의식중에 거대한 법칙을 따른다. 연구자나 학계는 동화의 비밀을 푸는 데, 동화와 민속학과의 관계 혹은 사라진 종교나 신화적이고 에로틱한 상징과의 관련성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서 있다. 우리는 종종 잊어버리지만, 동화는 우리의 시간에서 아주 멀리로부터, 모든 것이 은밀하고 신앙적 놀라움 정도가 사람이 느끼는 가장 활기찬 감정이었던 아득한 옛날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같이 보이는 이 소소한 이야기들은 수 세기 전부터 수많은 세대를 거쳐 시간 속을 거닐어 왔고, 그 하나하나가 가장 오래된 숲의 가장 오래된 나무보다도 나이가 많다. - P35

우리와 옛 동화 사이에 시끄러운 도시가 끼어들고, 오래된 숲을 소란스레 관통하는 철도가 요정과 동물의 목소리를, 그들의 다정한 대화를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자연 그 자체와 마찬가지인 동화가 때때로 약간은 꾸며 낸 이야기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대도시 한가운데 문을 굳게 닫아건 방 안에서 읽을 때, 동화는 아주 단순한 의미를 담고 있기에 낯설고 특이하게 느껴진다. 숲속으로, 산 위로 던지는 시선이 먼저 자연을, 그리고 동화를 다시 완전히 순수하고 진실한 것으로 돌려놓는다. 자연이 있는 곳에서는 늘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동화 자체의 신비로움이 무모한 공상도 무용한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가 되어 주는 까닭이다. - P43

그러나 이 책은 사실 교육학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을 뿐이다. 이 책은 어린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인간을 다룬다. 인간의 시작 단계만 이야기하지 않고, 모든 문제의 시작(그러니깐 그 뿌리)을 이야기한다. 이는 곧 각 개인이 세계와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아이가 부모 혹은 교육자와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한 국가에서 성장한 시민이 국가와 관계를 맺는 것, 그 국가의 제정법이나 관습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의 비유다 이 작품의 정수인 <사부아 사제>에서는 그것이 인간과 그가 믿는 신 사이의 관계로 나타난다. 그의 신과의 관계로 말이다. 이 작품에서 인간은 루소가 최초로 부여한 자유로울 권리를 갖는다. 자신의 신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권리를. - P110

그럼 혹시 선생님은 - 아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 쿠르츠 말러나 헤르더 주더만, 오토 에른스트의 경우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 경우도 어느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그 작가들도 대중을 위해 쓰는 건 마찬가지니까. 단지 대중에게 정신적 차원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고상한 목표에서 쓰기보다, 소통을 목적으로 삶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대중이 보기 원하는 대로만 표현하는 면이 있지. 이 작가들도 - 물론 그것도 그들의 의지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실력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지만 - 자신의 낙관주의에 기반해 쓴다기보다는 군중의 것에 기반해 쓰는 것일 거야. 그들은 대중과 함께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네. 그리고 이런 공통점이 그들을 부정해봐야 소용없도록 만들어 있지.
- P129

여덟 살 아이의 서툰 손으로 조부모의 생일카드에 그리듯 써넣은 글이 괴테 인생의 첫 시였다. 마지막 시는 여든두 살의 노쇠한 손으로 죽기 겨우 몇 백 시간 전쯤에 써 내려간 것이었다. 그렇게 길고 긴 인생 동안 시작의 변치 않은 후광은 이 지칠 줄 모르는 인물을 늘 비추었다. 이 유일무이한 시인이 언어로 기적 같은 자기 재능을 조명하고 뒷받침하지 않은 해가 없었을 것이고 어느 해에는 그러지 않은 날이 어느 달에는 그러지 않은 날이 없었을 때.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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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 혁명 - 질병 없는 몸을 위한 5단계 독소 해방
닥터 라이블리(최지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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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제 건강을 생각할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유튜브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건강 콘텐츠에 눈에 가게 되더구나. 한 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서 운동 좀 할까 하고 시작하면 이내 탈이 나서 한 동안 또 운동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생길 때는 우울해지기도 해. 예전에 건강 검진을 할 때 자신이 건강 상태를 물어보는 문항에 거리낌 없이 건강한 편이라고 답변을 했는데, 최근에는 그 답변을 하기에 망설이게 되더구나. 큰 병은 없지만,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기고 아픈 곳이 생기면 잘 안 낫고

몸이 아픈 것의 주 원인은 염증이라고 하고, 그 염증은 우리가 먹는 것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는 우선 먹는 것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 아빠가 작년에 읽은 정세연 님의 <염증 해방>도 그런 취지의 내용을 담은 책이었단다. 하지만 바꿔야 할 먹거리는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먹거리들이 많단다. 안 좋은 식단이 몸을 망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는 즐거움을 놓치기 쉽지 않더구나. 작년에 읽은 정세연 님의 <염증 해방>도 유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닥터 라이블리라는 분이 쓰신 <해독 혁명>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구나. 마치 아래 글을 읽을 때는 혼나는 기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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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5)

세상 뭐 별거 있니. 맛있는 거 먹고 행복하면 되지라는 메시지가 첫술을 뜨게 만들고, 그 첫술이 뿜어내는 도파민이 우리를 중독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음식 중독을 악화시키는 엄청난 요인이 늘상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바로 현대인의 고질병, ‘스트레스와 바쁨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래를 준비하고 생각하는 고차원의 뇌, 전전두엽의 기능이 급격하게 저하된다. 본능에 충실한 뇌 영역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나에게 도파민을 가져와!’라고 명령한다. 이런 뇌의 작용 앞에서 활기찬 내일을 위해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는 의지는 맥없이 무너지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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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책은 바로 닥터 라이블리 님의 <해독 혁명>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도 또한 읽기 전에 실천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한번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책을 들었단다. 닥터 라이블리는 필명이자 SNS에서 활동할 때 사용하는 이름인 것 같고, 본명은 최지영이라는 분으로 의사이지만 기술경영학 석사도 수료를 했대. 최지영 님의 아버지께서 파킨슨 병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병의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몸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각하고 우리 몸의 독소를 배출하는 방법을 연구하셨대. 자신의 연구 결과를 SNS에서 공유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실천하고 좋아졌다고 하는 경험 수기가 책의 앞 부분에 실려 있더구나. 아빠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지은이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실천한 사람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1.

지은이는 디톡스 시스템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우리 몸의 외부와 내부에서 생긴 독소를 해독하여 배출하는 인체의 전반적인 과정을 이야기한단다. 이 디톡스 시스템이 잘 갖춰야 하는데 안 좋은 식단은 장 건강을 망치는데, 그것은 너희들처럼 자라는 청소년들이 더 영향을 받는다고 하니, 너희들도 잘 먹어야 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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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은우의 이야기는 우리 몸의 디톡스 시스템이 마비되면 생기는 일을 한번에 보여준다. 안 좋은 식습관이 을 얼마나 고단하게 하는지, 장의 변화가 아이의 컨디션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장 건강이 악화되어 변비가 생기면, 우리 몸속 디톡스 시스템의 출구가 마비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각종 독소들이 몸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되고, 빠져나가지 못한 독소들로 인해 온몸의 세포들에 매연이 많아진다. 매연이 많아지면 세포의 기능이 떨어지는데, 이때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세포 중 하나가 면역세포뇌세포이다. 그래서 장 건강이 나빠졌을 때 은우가 감기에 자주 걸리고 멍해진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한참 발달 중이기 때문에, 성인보다 독소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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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톡스 시스템을 바로 잡는데 중요한 음식은 울트라 그린이라고도 하는 십자화과 채소들이라고 하는구나. 십자화과 채소는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4장의 잎이 십자 모양을 이루는 채소를 십자화과 채소라고 한대. 대표적인 십자화과 채소는 배추, 브로콜리, 청경채, 콜리플라워 등이 있다는구나. 이것을 생으로 먹기는 어려우므로 스무디로 해서 먹는 것을 제안하는데, 이 책의 뒤편에 스무디 레시피가 실려 있단다.

아무래도 초보자들에게 이 음식들이 맛이 없다 보니 다른 것들과 함께 조합하여 연두 스무디, 그린 스무디, 고소 스무디 등 다양한 조합의 레시피를 소개해 주었어. 초보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말이야. 이런 십자화과 채소의 스무디를 꾸준히 먹는다면 피부가 되살아나서 아토피 치료에 도움이 되고, 장 해독에 도움이 되어 변비 치료가 되고, 면역세포와 뇌세포도 살아나고 호르몬이 해독되어 여성 건강에 도움이 되어 생리통도 줄어들고 간 수치가 좋아진다고 하는구나. 만병통치약처럼 들리는구나.

십자화과 채소가 독소를 배출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디톡스 시스템을 원활하게 만들기 때문이란다. 디톡스 시스템은 1단계 위, 2단계 장, 3단계 간, 4단계 담즙, 5단계 세포 디톡스, 5단계로 설명하였단다. 위에서는 위산이 충분해야 하고, 장에서는 장운동과 건강한 장내세균들이 있어야 한대. 간에서는 지용성 물질을 수용성 물질 비슷하게 만드는데 비타민, 특히 비타민 B와 단백질이 필요하고, 담즙은 간에서 해독한 물질을 장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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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120)

디톡스를 할 때 물을 충분히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독소 배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독소 배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독소 배출 길 중에 조금 더 흔히 막히는 길이 있다. 바로 을 통하는 길이다. 수용성 독소들이 나가는 소변 길은 신장이 아주 나쁜 사람이거나, 결석이 생기는 환자 외에는 막히는 경우가 잘 없는 반면, 장은 그렇지가 않다. 간에서 장으로 가는 통로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간에서 해독한 물질을 장으로 이동시키는 물질인 담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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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 디톡스는 우리 몸은 결국 세포들의 총합이기 때문에 세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 건강한 세포를 위해서는 활성산소를 줄여야 한다고 하는데 미토콘드리아 이야기도 해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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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우리 몸이 분업화를 통해 이룩한 세포들의 총합임을 배웠다. 가장 작은 생명의 단위인 세포에서 인간의 몸에 이르기까지, 산소와 영양분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생명의 법칙을 따르며 산다. 모든 생명의 에너지 발전소가 바로 세포마다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에너지 공장이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에서는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하게 발생되는 부산물, 즉 활성산소라 불리는 매연이 나온다. 이 활성산소라는 매연은 단백질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노화를 발생시키는 근간이 된다. 여기서 세포 디톡스의 목표를 세워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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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5단계 디톡스 시스템에서 설명을 했지만 결국에는 십자화과 채소들을 먹는 것이 핵심이란다. 그런데 아빠가 생각하기에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 관리라고 생각한단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무리 맛있는 것, 아무리 건강한 음식을 먹어도 소화불량을 유발하게 되거든. 그뿐만 아니라 염증도 스트레스에 의해 생겨나니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단다.

너희들도 아빠 닮아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들 같은데, 그것이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미안하구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테레스 받지 않는 마음 가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마인드 트레이닝이나 명상을 같이 해볼까? 그것도 실천이 어렵지.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평생 앓던 생리통이 사라졌어요.”

책의 끝 문장: 또한, 이 책을 읽고 삶을 변화시키는 여정에 함께할 모든 분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여러분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이 ‘생리통’이 사라졌다는 공통적인 후기를 전해줄 수 있었을까. 생리통의 발생 기전은 아직 완벽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원인으로 생각되는 물질이 있다. 바로 ‘포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이하 PG)이라는 염증 물질이다. 생리를 할 때 PG는 자궁과 자궁의 혈관을 수축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PG가 너무 많을 경우 자궁벽과 혈관이 지나치게 수축하고, 자궁에 산소가 부족해진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통증이 바로 생리통이다.
그런데 우리 몸에는 PG를 증가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물질이 존재한다. 바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르겐이다. 그렇다면 생리통을 줄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명확하다. 첫 번째, PG가 생성되는 것을 줄이고, 두 번째, 에스트로겐이 높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 P55

현재 장에는 간의 해동 과정을 통해 수용성 물질이 붙은 상태의 독소가 담즙과 함께 흘러와 도착한 상태다. 이때 장이 존재하고 있던 장내세균은 처음으로 이 독소들과 만나게 되는데, 장내세균 중 일부는 아주 기막힌 효소를 가지고 있다. 간이 열심히 해독해서 붙여둔 수용성 물질을 똑 떼어버릴 수 있는 효소다.
이 효소를 가진 균이 많아지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장내세균들이 분비한 이 효소들은 독소들을 해독 전 상태로 되돌려버린다. 해독 전으로 돌아간 독소들은 장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앞서 말한 담즙의 재활용 통로를 통해 다시 간으로 돌아간다. 실컷 변비까지 해결해서 독소들이 나갈 길까기 다 뚫어놨는데, 장내세균이라는 복병이 독소를 우리 몸으로 되돌려보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 P137

하지만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 수준만큼이나 다른 유전자를 타고난다. ‘어떤 사람은 평생 콜라와 햄버거를 먹어도 90세까지 건강하게 잘만 살더라’, ‘어떤 사람은 곱창을 한 끼에 10kg씩 먹어도 49kg의 날씬한 몸을 유지하더라’라는 특이한 케이스들을 보고 나면 합리화하고 싶은 대한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먹는 정도는 그에 비하면 약과지’ 하며 배달 음식을 시키고, ‘에이, 뭐 꼭 오래 살아야 하나, 적당히 즐겁게 살다 죽으면 도지’ 하면서 오늘의 나에게 한없이 관대해진다.
이 마음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나에게도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마음들이다. 우리는 내일의 안녕보다 오늘의 즉각적인 욕구 충족을 우선시하도록 진화했다. 그래서 눈앞의 유혹을 뿌리치고 귀찮음을 물리치고, 내 몸을 위한 양치질인 디톡스를 시작하려면 이 엄청난 합리화의 유혹을 떨쳐내는 게 필수적이다.
- P237

또한 건강한 삶이란 ‘모’ 아니면 ‘도’라는 흑백 논리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과정을 인지하길 꼭 부탁드린다. "이건 먹으면 안 되나요?", "이건 이래서 나쁘다는데,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밀가루, 유제품, 설탕, 튀김, 가공식품이 몸에 안 좋다고 해서 평생 이걸 안 먹고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점심 식사 메뉴를 고를 때 수육과 돈가스 중에 수육을 고르는 것 정도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앞에서 가능하면 육류는 목초육을 선택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돼지고기를 살 때 독소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지방을 적게 섭취하도록 삼겹살보다 목살을 선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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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오늘날 우리 정신세계의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지성적 활동은 책에 기초하고 있으며, 물질의 상부에 있는 문화라고 불리는 그 무엇은 책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적이고 개인적인 삶에서 영혼을 확장하고 세계를 건설하는 이러한 책의 힘에 대해 우리는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매우 드문 순간에만 자각할 뿐이다. 새롭고 놀라운 것의 존재에 매번 감사함을 느끼는 것과 다르게 책은 이미 우리 일상에서 당연한 것이 된 까닭이다. 마치 우리가 호흡할 때마다 산소를 들이마시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공급으로 혈액이 비밀스러운 화학작용을 해서 원기를 회복한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책을 읽는 눈으로 끊임없이 영적 재료를 받아들이지만 그것으로 우리 정신이 새 힘을 얻거나 혹은 지치거나 한다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한다. 수백 년에 이르는 문자 역사의 자손인 우리에게 읽는 행위는 이제 거의 신체 기능이나 마찬가지로 자동운동이 되었고,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책을 가까이하기 때문에 책은 이미 자연스레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 되었다.

 

(25-26)

사람들은 책의 시대가 가고 이제는 기술 중심의 시대가 되었다고 탄식한다. 축음기, 영사기, 라디오가 보다 세련되고 편리한 말과 생각의 전달 수단이 되어 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책의 문화사적 임무는 이제 곡 과거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단순하고 편협한 시각인지! 화학도 책만큼 확산성이 있으며 세계를 떨게 만드는 폭발물을 발견하지는 못했고, 인쇄된 작은 종이 묶음의 항구성을 이기는 그 어떤 강철판이나 철시멘트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전기로 켜지는 불빛이 아직 얇은 책 한 권으로부터 퍼져 나와 깨달음을 주는 빛만큼 우리를 비추어 주지는 못했고,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전류가 하는 어떠한 일도 인쇄된 언어가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져 채우는 것에는 비할 것이 못 된다. 시대를 초월해 불멸하고 불변하는 것인 동시에 가장 보잘것없고 변하기 쉬운 틀에 담긴 고도로 압축된 힘인 책은 기술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기술 또한 책으로부터 배워 스스로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33)

학교가 그렇게 망쳐 놓았다. 독서의 동기는 늘 자기 세계의 경계를 넘으려는, 낯선 것 안에서 길을 잃으려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책 속의 비유에서 자신을 되찾으려는 충동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낯설고 멀고 예외적인 동화 속에서 스스로를 꼬드겨 도망쳤으며, 어디에도 자신을 비추어 보지 않았다. 더 이상 동화가 삶을 상기시키지 않고, 오히려 삶이 동화를 우리에게 멀어지게 한다. 동화는 우리 감정을 진지하게 움켜쥐지 않고 그러 쓰다듬는다. 그것도 아주 가벼이. 내면의 시선에 집중하면서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부담 지우지 않으면서 매혹하는 동화는 연기를 매지 않는 불꽃이다. 일상적이고 지극히 통상적인 삶의 놀라운 힘이 동화에는 들어 있다. 꽉 짜인 시간의 법칙은 동화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아무런 힘을 행사할 수 없고, 끝없는 우연 속에서 일반적인 규칙은 다 사라진다. 이 의미심장한 속의 무의미함이 바로 동화의 마법이다.

 

(35-36)

우리가 문학작품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교하면 동화는 끝도 없이 쉬워 보이지만 실은 비밀로 가득하고, 무질서한 것 같지만 실은 무의식중에 거대한 법칙을 따른다. 연구자나 학계는 동화의 비밀을 푸는 데, 동화와 민속학과의 관계 혹은 사라진 종교나 신화적이고 에로틱한 상징과의 관련성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서 있다. 우리는 종종 잊어버리지만, 동화는 우리의 시간에서 아주 멀리로부터, 모든 것이 은밀하고 신앙적 놀라움 정도가 사람이 느끼는 가장 활기찬 감정이었던 아득한 옛날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같이 보이는 이 소소한 이야기들은 수 세기 전부터 수많은 세대를 거쳐 시간 속을 거닐어 왔고, 그 하나하나가 가장 오래된 숲의 가장 오래된 나무보다도 나이가 많다.

 

(43)

우리와 옛 동화 사이에 시끄러운 도시가 끼어들고, 오래된 숲을 소란스레 관통하는 철도가 요정과 동물의 목소리를, 그들의 다정한 대화를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자연 그 자체와 마찬가지인 동화가 때때로 약간은 꾸며 낸 이야기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대도시 한가운데 문을 굳게 닫아건 방 안에서 읽을 때, 동화는 아주 단순한 의미를 담고 있기에 낯설고 특이하게 느껴진다. 숲속으로, 산 위로 던지는 시선이 먼저 자연을, 그리고 동화를 다시 완전히 순수하고 진실한 것으로 돌려놓는다. 자연이 있는 곳에서는 늘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동화 자체의 신비로움이 무모한 공상도 무용한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가 되어 주는 까닭이다.

 

(69-70)

수천 년 전부터 가능한 한 완전한 세계상을 그리는 것이 모든 지성인의 열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가 외부의 감각과 긴장 관계를 이루는 한은 외적인 도움 없이도 가능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곳의 풍경과 기념비가 될 만한 사건, 시인과 예술가를 직관으로 파악했다. 과거는 역사적 의의를 갖지 못하면서 선조들의 시대를 넘어 지금 여기에까기 이르지 못한다. 언어는 제한된 수의 어휘를 품고 있을 뿐이고, 학문은 얼기설기 얽혀 거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법칙만을 포괄한다. 고대 그리스 지식인에게도 절대적으로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평균적인 인간, 예컨대 인쇄소 보조, 초등학교 교사, 자동차 운전자, 판매직 점원의 평균치 지식은 사실에 비교적 적게 근거할수록 더욱 대담하고 탁월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이보다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당시 사유하는 사람에게 보편성의 확보란 당연한 것이었다. 보편성에 의해 정신은 모든 학문을 균질하게 창조적으로 끌어안을 수 있었고,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당시 세계의 모든 본질을 시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77-78)

동방의 발견은 유럽 사회의 지평을 급격하게 넓힌 세 가지 사건 중 가장 최근 사건이다. 유럽 정신의 첫 번째 위대한 발견은 스스로 훌륭하게 과거를 발견한 르네상스 시대에 이루어졌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두 번째 발견은 미래를 향했다. 그간 끝이 없을 것으로 믿었던 대양 너머로 아메리카 대륙이 돌연 떠올랐다. 아주 멀리 있던 지평선이 가까이 당겨지고, 미지의 나라와 낯선 식생이 새로이 눈뜬 환상에 불을 붙여 유럽 정신을 새로운 전제와 무한한 가능성으로 채웠다. 그다음 세 번째 발견은 왜 그리 늦어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동양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에게 근동 지방부터 페르시아, 일본, 중국까지 동쪽에 위치한 모든 나라는 수백 년간 비밀에 싸인 장소로, 진위가 의심스럽고 전설 같은 이야기만 전해져 올 뿐이었다. 바로 이웃에 위치한 러시아조차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낯선 안개로 자욱했다. 오늘날(1917)에도 우리는 폭력적인 전쟁으로 인해 충분히 객관적이지 못한 시각으로 속도만 붙어버린 지적 인식의 시작점 한가운데 서 있을 뿐이다.

 

(94-95)

동방의 이름 없는 이가 쓴 이 비극 안에 펼쳐지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엄청나게 넓다. <천일야화>에 숨겨진 드라마와 비슷한 수준의 훌륭함은 역시 아돌프 겔버가 대담하게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 드라마는 거의 음악적으로 가장 깊은 절망으로부터 그 어떤 구속도 없는 완전함 유쾌함으로 옮겨 간다. <템페스트>에서와 같이 사람 마음속의 모든 요소의 영혼의 파도가 그 안에서 샅샅이 파헤져지고, 헤집어졌던 것은 귀향길의 은빛 수면처럼 다시 잔잔히 잦아든다. 동화의 모든 가벼움과 전설의 다채로움이 그 안에서 반짝이고, 이 요동치는 극 안으로 피의 드라마가 단단히 엮여 든다. 권력을 다투는 성별 간의 극심한 전쟁, 정절을 맹세케하려는 남자의 투쟁과 사랑을 향한 여자의 투쟁.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작가, 우리를 익명의 위대함에 눈뜨게 한 이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작품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빚은 잊을 수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103-104)

장 자크 루소에게 세계의 변혁은 언제나 옳다. 사회질서가 뒤죽박죽이 될 때마다 그 사회와 관련하여 깊이 묻혀 있던 문제들이 표면으로 올라온다. 한 시대가 국가와 인간의 가장 기저에 있는 토대를 건드리고, 전통을 무너뜨리고 규칙을 흔들 때마다 나는 전령이 되고 충고자가 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항상 시간의 흐름이 무관한 곳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인권의 영원한 변호인으로, 어떤 사회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고 완전히 부인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의 증인으로 그는 서 있다. 루소는 항상 맨 처음부터, 그리고 외부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힘은 마치 지렛대처럼 대상에 바깥쪽에서 작용하며, 어느 한 시기에 갇혀 있지 않고 영속하는 인류 안에 있다. 그는 자기 세대와 그 자신이 속한 국가질서에만 다양한 혁명가가 아니며, 그보다는 공동체에 맞서는 개인 인격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지지하고 자유를 쟁취하려 투쟁하는 인류를 영원히 수호하는 수호자 같은 인물이었다. 혁명은 그를 인권의 아버지로 내세웠고, 국민의회에서의 연설은 그의 이름을 불멸하는 것으로 새겼다. 그러나 반대 세력은 무정부주의를 탄생시킨 사상가인 그의 시신을 판테온에서 끄집어내 갈기갈기 찢어 남은 것조차 바람에 흩어버렸다. 하지만 세계의 변혁의 바람이 불 때마다 그의 말과 정신은 부활한다.

 

(109-110)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 진지하고 폭넓은 작품이 당대에 미쳤던 폭발적인 영향력을 짐작해 보기란 어려운, 아니 차라리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궁정 신하의 집에서 쓰여 비밀리에 인쇄된 이 책이 1762년에 발행되자마자 프랑스 정부는 작가를 잡아들이라 명했고, 이에 따라 스위스의 망명 기회도 사라졌다. 책은 공식적으로 그랑 팔레의 계단에서 불태워졌고 제네바에서 평의회도 같은 판결을 내렸다. 제네바가. 하나의 공화국이 그 책으로 인해 붕괴했고, 북미의 다른 한 공화국은 그 책으로 인해 소생했다. 어느 왕은 항변하기 위해서 뒤에 <안티-에미>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고 쾨니히스베르크의 이마누엘 칸트는 이 책을 읽느라 40년 만에 처음으로 매일 하던 산책을 잊었다. 모티에에서는 농부들이 루소의 창에 돌을 던졌으며, 프랑스의 공작부인들은 감동의 눈물을 쏟고 다시 아이들에게 직접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온 문학계가 혼란을 마주하고 삶의 경향이 변하고 여왕들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양치기 소녀들이 트리아농궁전에서 뛰놀고, 그러는 동안 이 책은 미래에 자기를 고발한 사람들과 국민의회가 장광설을 받아쓰게 했다. 그의 다른 모든 책과 마찬가지로 <에밀>은 그 글로 쓰인 혁명으로, 사유와 도덕과 신앙의 전복을 담고 있었다

 

(110-111)

그러나 이 책은 사실 교육학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을 뿐이다. 이 책은 어린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인간을 다룬다. 인간의 시작 단계만 이야기하지 않고, 모든 문제의 시작(그러니깐 그 뿌리)을 이야기한다. 이는 곧 각 개인이 세계와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아이가 부모 혹은 교육자와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한 국가에서 성장한 시민이 국가와 관계를 맺는 것, 그 국가의 제정법이나 관습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의 비유다 이 작품의 정수인 <사부아 사제>에서는 그것이 인간과 그가 믿는 신 사이의 관계로 나타난다. 그의 신과의 관계로 말이다. 이 작품에서 인간은 루소가 최초로 부여한 자유로울 권리를 갖는다. 자신의 신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권리를.

 

(129-130)

그럼 혹시 선생님은 - 아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 쿠르츠 말러나 헤르더 주더만, 오토 에른스트의 경우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 경우도 어느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그 작가들도 대중을 위해 쓰는 건 마찬가지니까. 단지 대중에게 정신적 차원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고상한 목표에서 쓰기보다, 소통을 목적으로 삶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대중이 보기 원하는 대로만 표현하는 면이 있지. 이 작가들도 - 물론 그것도 그들의 의지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실력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지만 - 자신의 낙관주의에 기반해 쓴다기보다는 군중의 것에 기반해 쓰는 것일 거야. 그들은 대중과 함께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네. 그리고 이런 공통점이 그들을 부정해봐야 소용없도록 만들어 있지.

 

(133)

자네의 이견은 매우 옳다네. 타고르의 저서에서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수월해 보이는 면이거든. 인류가 창조되는 시점부터 씨름해 온 엄청나게 난해한 개념들을 꼭 요술을 부리듯이, 친절하고 발랄하게, 그 어떤 괴로움이나 격정적인 사고 과정 없이 처리해 버리니까. 죽음과 고뇌, 악한 천성까지도 그는 예의 그 부드러운 손짓으로 쓰다듬어 옆으로 밀어 놓지. 또 하나 자네가 제대로 알고 감지했음을 인정하고 나도 동의하는 건, 이 책에서는 세계가 벌이는 굉장한 연극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걸세. 늘 혼란과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인간이 열에 들뜨고 절망한 가운데서도 어떻게 세계의 질서와 조화를 위해 투쟁하는지 말이네. 타고르에게 이 조화라는 것은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일종의 피 속에 흐르는 온화함으로 그가 애초에 한 인도인 특유의 부드러운 방식으로 표현된다네. 조화로운 감정을 학생들과 인류에게 계속해서 전달하지.

 

(160)

하지만 부를 향한 이런 의지가 과연 발자크의 인생철학이었을까? 발자크는 모든 철학을 자신의 내면에서 소화시켜 소설에 녹여 냈기 때문에 실제 삶에서는 어떤 철학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가진 재능의 가장 중심 뿌리인 소위 그 어마어마한 투사 능력으로, 그는 자신의 창조물이 스스로 말하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순간에도 그들의 생각을 논박할 수 없다고 여겼다.

 

(173)

여덟 살 아이의 서툰 손으로 조부모의 생일카드에 그리듯 써넣은 글이 괴테 인생의 첫 시였다. 마지막 시는 여든두 살의 노쇠한 손으로 죽기 겨우 몇 백 시간 전쯤에 써 내려간 것이었다. 그렇게 길고 긴 인생 동안 시작의 변치 않은 후광은 이 지칠 줄 모르는 인물을 늘 비추었다. 이 유일무이한 시인이 언어로 기적 같은 자기 재능을 조명하고 뒷받침하지 않은 해가 없었을 것이고 어느 해에는 그러지 않은 날이 어느 달에는 그러지 않은 날이 없었을 때.

 

(183-184)

괴테는 아직도 고정된 개념으로 볼 수 없으며, 문학사에 박제된 인물도 아니다. 각 세대에게 그는 새로운 의미가 되고, 작품집 또한 새로 가려 뽑을 때마다 새로운 형태로 해야 된다. 시에만 한정해 괴테의 <서동시집>이 어떤 가치 평가를 받아왔는지, 이 오래된 시들이 마술같이 스스로를 드러낼 때 어떤 초월적인 힘으로 우리의 감정에 다가오는지 살펴보자. 당대와 19세기에는 뭔가 기이하고 시시덕거리는 가면 놀음으로 여겨졌던 바로 그 작품이 지금은 어떠한가! 반면 실러 시대에 쓰인 괴테의 발라드와 민중에게 널리 사랑받았던 몇몇 작품은 그 극도의 단순함 때문에 이제 우리의 시각으로 평가할 때 얼마나 별로인 것이 되었나! 마치 신과 같았던 우리 학창 시절의 괴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썼으며 휠덜린과 니체 이후 독일인이 더 이상 들어서지 못했던 영역인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로 우리를 안내해 준 고전주의 예술가 괴테, 손에 잡힐 듯 가까웠던 이 괴테는 비밀스러운 곳으로 가득한 시를 쓰는 신비한 조각과 같은 이미지와 그의 우주 전체가 지닌 세계관과 충돌하며 점점 더 뒤편으로 물러났다. 20세기에 그의 시를 새로 골라 묶는 작업은 이제까지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야만 하고, 이 과정에서 개개인의 가치 평가나 19세기에 출판된 명작선집의 선택 기준은 논외로 해야 한다.

 

(190)

괴테의 시는 그런 운명의 형태를 그저 자기 인생 뒤로 흐르는 배경음악 정도로 여긴 것이 아니라 교향곡처럼 웅장하게 그의 온 존재를 감싸 안는 것으로 여겼으며, 그것은 이 지상에서 다시는 없을 인간의 가슴속에 인간 음악이 되어 흐르고, 불멸하는 예술이 부리는 마법이 되어 우리에게 언제까지나 현재적인 것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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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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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얼마 전부터 인터넷 서점에서 계속 눈에 밟히던 책이란다. 어떤 할머니의 에세이라고 하는데, 그 글에 공감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한동안 외면했단다. 그런데 계속 눈에 밟혀서 책소개를 읽어봤는데, 책 내용이 유쾌하면서고 인생 황혼에서나 나올 있는 깊이 있는 감동 같은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최근에 아빠가 몸 컨디션이 좀 좋질 않아서 재미있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책을 가볍게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단다.

지은이 이옥선 님은 사회 초년생 시절 학교 선생님을 3년 하시다가 그 이후에는 쭉 전업주부로만 사셨다고 하더구나. 그런 분이 일흔여섯 살에 에세이를 펴내시다니.. 쫌 뜬금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옥선 님이 따님이 김하나라고 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출판사와 접근성이 좋지 않았나 싶구나. 그리고 몇 년 전에 이옥선 님이 오래 전에 쓴 육아일기를 책으로 펴내셨다고 했어. 이옥선 님의 따님이 작가셔서 책을 출판하는데 좀 쉬울 수 있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자에게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옥선 님의 글들이 책소개나 먼저 읽은 사람들의 평처럼 맛갈스럽고 솔직하고 재미있고 웃음을 자아내는 그런 글들이었단다. 최근 좀 우울했던 아빠의 영혼을 힐링해주는데 충분한 내용들이었어. 이옥선 님의 나이가 일흔여섯이라고 하셨는데, 문체는 엄청 젊고 발랄하다는 기분도 들었단다. 책도 많이 읽으시는지 읽으신 책 이야기도 많이 하셨단다. 그런데 그 책들이 젊은이들이 즐겨 읽는 책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단다. 예를 들어 아빠도 얼마 전에 읽고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준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이란 책도 소개해 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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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

요즘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이 주목받고 있는 모양인데, 도서관에 가면 틀림없이 아직 갖추어놓지 않았거나 있어도 누가 냉큼 빌려갔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 같은 작가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빌려올 작정으로 쪽지에다 써놓는다. 책을 사기에는 이미 내가 버린 책이 너무 많아서 이제 가능하면 책을 사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 또한 알 수 없다. 나는 아끼지 않기로 작정을 한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할머니가 되면 하루종일 책만 읽고 있어도 좋겠다 싶어 이 시기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그래도 사람 사는 게 언제나 기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가기 마련인지라 나의 독서 생활 역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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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은 어르신들만 찾는 책이 따로 있다는 아빠의 편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새삼 깨닫게 되었단다. 그리고 아빠도 나중에 나이 먹어도 이옥선 님처럼 책읽기에 관해서는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했단다.

 

1.

오랫동안 함께 했던 남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는데, 남편을 보낸 아쉬움과 슬픔보다 홀로 된 것에 대한 장점을 더 많이 이야기해주셨어. 그렇다고 남편 생전에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글 속에 담겨 있었단다. 남편과 처음 사별했을 때는 무척 슬퍼했지만 애도하는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또 자신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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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16)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모든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없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 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인생 자체가 해피엔딩일 수 없을 테니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젠가는 끝이 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결혼 생활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까? 많은 동화책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하면 행복하게 사는 결말만 있는 줄 알았겠지. 하지만 부부가 마지막까지 같이 살다가 같이 죽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더 큰 불행을 원하는 것과 같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같이 죽거나 아니면 둘이 동반자살을 시도하지 않는 한 자연사로 같이 죽는 일은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죽고 며칠 사이에 다른 한쪽이 죽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때는 둘 다 아주 연로하여 실제로 더 딱한 경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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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래도 연륜과 오랜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씀도 있는데 진중한 것보다 정말 듣고 싶었던 말씀들도 있었단다. 예를 들어 너무 애쓰지 말고 대충 살라는 이야기, 하지만 건강은 꼭 신경 쓰라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지금 아빠에게 절실히 필요한 이야기인 듯 싶었어. 실천은 쉽지 않지만, 다시 한번 명심하자. 대충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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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4)

너희도 너무 애쓰지 말고 대충(이것이 중요하다) 살고, 쾌락을 좇는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뭔가 불편한 것이 있으면 이것부터 해결하는 방법으로 살면 소소하게 행복할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건강을 잃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한 종목의 운동을 늙어서까지 꾸준히 할 것이며 너무 복잡한 건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도록 해라. 다행히도 재산이 많이 않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아들딸 며느리 손자 손녀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했고, 너희는 내가 지금도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다. 나의 장례는 그 시기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할 것이며 화장해서 유골은 너희 아빠를 장자 지낸 것처럼 하고, 제사는 지내지 말고 그날 시간이 나면 너희끼리 좋은 장소에 모여서 맛있는 밥을 먹도록 해라. 또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너희 아빠는 꽃 피는 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단풍 드는 가을에 떠나면 좋겠네. 그러면 너희는 봄가을 좋은 계절에 만날 수 있을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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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지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유능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말도 와 닿았어. 유명해지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되니 유명해지지 말라고 하고,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평균 정도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어. 우리나라에서 평균 정도의 삶을 살려면 평균 정도의 능력이 아니라 유능해야 하는 것이 현실인가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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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나는 이제 할머니이지 엄마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비겁하지 않다. 나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내 자식들은 성인이 되었고 엄마의 역할은 미미하다. 나는 중년의 내 자식이 자신의 업계에서 유능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유능한 사람과 유명인은 다르다. 유능한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차질 없이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40 중반을 넘고 50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유능하지 않으면 평균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도 힘든 것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인생살이에서 보통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선량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제일 좋지 않나 싶다. 젊은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금수저로 태어나면 거기에 상응하는 뭔가가 되어 보여야 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진다. 그렇게 좋은 환경과 뒷받침에도 별 볼 일 없는 존재에 머무른다면 그 또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누구나 자기가 짊어져야 할 생의 무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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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살아 온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지은이를 보면서, 많은 욕심은 부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아빠도 뭐 지금까지는 가끔 스트레스 받는 회사 업무가 있고 가끔 몸이 아픈 경우도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앞으로도 쭉 그런 생각이 드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이옥선 님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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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214)

생각해보면 나는 참 운좋게도 그냥저냥 평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겪었을 여러 인생살이와 이런저런 사건사고와 경제적 결핍과 허약 체질과 남편과의 불협화음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익명으로 살 수 있었던 자유로움과 처치 곤란한 재물 때문에 머리를 썩여야 할 일이 없음에도 감사한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관습과 도덕으로부터, 또 종교의 신념으로부터, 이런저런 인간관계로부터도 거의 자유롭다. 다만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으며 지금까지 먼 길을 온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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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다 평온하고 별일 없이 살 수는 없다. 이 정도의 소소한 불편은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실제 사는 집에 수해나 화재가 나거나 아니면 교통사고가 크게 나거나 갑자기 심각한 질병의 선고를 듣거나 하면 얼마나 막막할까. 그러니까 심란하거나 난감하거나 왕짜증이 나는 정도는 어쨌든 어찌저찌 해결할 수 있는 좀 불편한 일들에 불과한 것이다. 전 지구적 대책 없는 큰일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이 정도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다 싶다. 제발 기후위기나 자연재해, 대형 산불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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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책에 나온 좋은 글들을 소개해 주는 것으로 독서편지를 대신했다. 너희들은 인생에 있어 이제 시작하는 봄이다 보니 이옥선 할머니의 글들에 공감을 갖지 못할 것 같아 이 책을 너희들에게 추천하지는 못하겠구나.^^ 오늘은 이상 끝.

 

PS,

책의 첫 문장: 성춘향과 이몽룡이 눈이 맞자마자 그날 바로 남녀 간에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해버릴 수 있었던 것은 둘 다 열여섯 살이었기 때문이다.

책의 끝 문장: 그러니 인간끼리의 관계를 너무 심각해하지 말고 가뿐하게 생각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하기 좋은 말로 노년에 시간이 많으니 봉사활동이라도 하라고들 말한다. 나는 아무리 봐도 노년이라 시간이 많이 남아돌지는 않는 것 같다. 봉사라는 게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라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봉사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남편에게 봉사활동을 너무 많이 한 관계로 그만하면 내가 해야 할 봉사활동은 다했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한다. - P30

이 내용은 폴 존슨이 쓴 <지식인의 두 얼굴>(윤철희 옮기, 을유문화사)에 나온다. 이 책에 의하면 <두 노인>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증 그 외의 많은 작품에서 하느님 찜쪄먹을 것처럼 기독교적 신앙심을 강조했던 톨스토이가 사창굴에 자주 드나들고 하녀들을 수시로 추행하고도 언제나 남녀 교체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으며 여자들을 남자들과는 동등한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멸시했다는 것이다. 아, 이런 재수탱이 똘쓰또이. 내가 그 두꺼운 <전쟁과 평화>를 모조리 다 읽고, 수많은 인간의 심리를 이렇게 정확하게 묘사할 줄 아는 사람은 인간성 반듯하고 인격이 아주 높을 거라고 생각하며 존경의 마음을 보냈는데, 자기 어린 아내하고도 매일 불화하고 죽을 때도 기어이 집을 나와서 기차역에서 죽었던 것이다. 아이를 열셋이나 낳아놓고 자기 잘난 맛에 농지를 농노에게 배분해야 한다고 난리치니 어느 마누라가 좋아할까?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 없네. - P41

비단 부부간의 신의만이 의리가 아니다. 부모 자신 간의 관계라 할지라도 인간관계에서는 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정말 철없는 부모들이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방치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도 발생하지만, 혼자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을 정도의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자식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왔다면 내 부모의 안부를 묻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까지는 안 하더라도 근황을 파악하고, 필요시에는 마땅한 조치를 취하는 게 사람됨의 근본일 터이다. 요새는 부모가 장수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식도 나이들어가다보면 부모 자식 간의 감정적 정은 줄어들지라도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의리가 있는 것이다. (사실 노노(老老) 케어 현상은 사회적 문제이다.) 이렇게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 간에도 의리가 중요하다면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은 결국 의리에 있다 하겠다. - P90

길을 지나다니면서 보면 할아버지들은 뚱뚱한 사람들이 드문 편이다. 그런데 목욕탕에 온 할머니들은 배가 너무 많이 나와서 보기에 좀 답답하다. 다리와 팔은 보통인데, 복부가 숨쉬기도 어려워 보이는 분들이 많다. 이것은 아무래도 호르몬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살이 찌면 무릎이나 허리가 아픈 경우가 많고 관절염 약을 먹으면 살이 더 빨리 찐다. 게다가 나이가 많아지면서 체질이 바뀌어 알레르기라도 발생하면 피부과 약을 먹게 되고, 이 피부과 약이 또 비만을 불러온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나이가 70대 중반을 넘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살이 찌고 싶어도 잘 안 찌고, 물론 할머니도 살이 찌고 싶은데도 안 찌는 경우가 있어서 너무 왜소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신경을 안 쓰면 살이 찐다. 조물주가 생애주기를 잘못 짰다고 불평해봐야 소용없고 적게 먹든지 더 많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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