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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10 - 제3부 불신시대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드디어, 아니 벌써 <한강> 마지막 10권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구나. 일주일에 주말마다 한 권씩 읽으려고
했는데, 마지막 10권은
9권에 연이어 읽어버렸다. <한강>을
읽는 동안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된 시기인 것 같구나. 불과 1, 2년 사이에 이렇게 나라가 후퇴할 수도 있다니, 우리나라 시스템이
많이 불안정한 것 같구나. 조정래 님의 <한강> 속 우리나라보다 살기 좋아지고 경제도 발전하고 그랬지만, 소설
속 계엄령을 현실에서 볼 수 있다니…
그럼 <한강> 10권의 이야기를 바로 해줄게.
…
10권의 이야기는 안경자의 산부인과 병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한 여성 노동자가 중절 수술을 하러 왔어. 안경자는 속으로 분별없이
사랑을 나누어 임신을 하고서, 중절 수술하러 오는 그를 탓했는데,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막힌 사연이 있었단다. 그 여자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관리들에게 잡힌 다음 강간을
당했다는 거야. 하지만 그 관리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없고, 그
여성 노동자는 임신을 하게 되어 중절 수술을 받으러 왔다는구나. 안경자는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냐고
이야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하는구나. 안경자는 돈이 없어
친구들이 십시일반 병원비를 마련해 주는 그 여자에게 무료로 치료와 수술을 해주었단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
….
또 다시 국회의원 선거철이 왔어. 탐욕주의자 강기수는 이번이 자신의 마지막 국회의원 선거라고 생각했어. 다음에는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어. 다들 여당을 욕하면서 여론이 야당으로 급격하게 기울었어. 하지만
강기수는 여전히 안심하면서 언제나 그렇듯 돈을 쓰면 될 것으로 생각했어. 그런데 딸 강숙자가 알아본
밑바닥 민심은 최악이었어. 그제서야 딸의 조언대로 돈을 몇 배로 쓰고,
남천장학사 출신 법조인들을 모두 불러들여 선거 운동을 했어. 그렇게 해서야 간신히 당선되었단다. 이번 선거에서 한인곤은 낙선하고 말았단다.
…
1.
임채옥의 남편은 결국 죽고 말았어. 그리고 1년이 흐르고… 유일민은
임채옥에게 청혼을 했단다. 그들의 결혼을 반대할 식구들은 모두 이민을 가버리고, 임채옥은 그 청혼을 계속 기다렸을 거야. 풋풋한 20대 초반의 그들의 뜨거운 사랑이 이제서야 결실을 맺게 되었구나. 유일민이 10권에 와서야 행복을 찾게 되어 정말 다행이구나. 유일표는 몰래
노동 운동을 한다고 했는데, 결국 꼬리가 잡혀 피신하기로 했단다. 동생
유선희가 소개해준 절간에 숨어 지내기로 했어. 유일표의 아내 서경혜는 다행히 큰 고초 당하지 않고 조사를
마쳤어. 임신한 여자를 심하게 다루지는 못하겠지. 유일표가
피신하고 임신한 서경혜가 혼자 지난다는 소식을 들은 이상재는 자신의 돈도 보내주고, 친구 허진에게 찾아가
유일표가 피신했다는 이야기를 전했어. 그 동안 자신이 섭섭하게 한 일이 있어서인지, 허진은 큰 돈을 보내주었단다.
유일표와 이상재의 또다른 친구
최주한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고 있었어.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리나라와 환경이 다르다 보니, 낯선 병들이 생기곤 해서 사우디 병이라고 불렀단다. 그 중에 가장
많이 걸리는 것이 요로 결석증이래. 아무래도 더운 날씨에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 병이 걸리나 보다. 그런데 문태복이 그만 이 병에 걸리고 말았어. 이 병에 걸리면 치료를
위해서 한국에 와야 해서 강제 귀국 조치를 당했단다. 결국 문태복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와서도 목표로 했던
돈을 제대로 모이지 못하고 귀국하고 말았단다. 이것의 시작은 모두 베트남에서 벌인 도박 때문이었지. 박준서의 회사도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을 했는데, 그곳에서 노동자들이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이유로 폭동을 일으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출장을 가게 되었어. 친구이자 매제인 원병균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진보 성향의 해직 기자 출신인 원병균은 노동자의 편이었기 그곳에 가는 것을 여러
번 거절했지만 결국에는 가게 되었단다. 원병균은 박준서에게 노동자들에 처벌을 최소화로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단다.
….
천두만과 서동철의 도움으로 가게를
차릴 수 있었던 나복남.. 가게는 안정적인 수입도 내고 있고, 결혼도
하게 되었단다. 손가락이 없는 것을 빼면 이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어. 동생 나윤자도 뒤늦게 결혼을 했어. 그런데 유산을 네 번이나 하고
다시 임신을 했단다. 이번에는 정말 조심을 해서 출산을 앞두고 있었어.
예전에 같이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묘숙 언니의 소식을 듣게 되었어. 봉제공장에서 먼지 속에서
일한 후유증으로 폐암에 걸렸다는 거야. 나윤자는 묘숙 언니 병문안을 갔다 왔단다. 그런데 묘숙 언니만 봉제공장의 후유증을 앓고 있던 것이 아니야. 나윤자도
체력이 급격하게 줄어줄었고, 출산하다가 그만 죽고 말았단다.
…
배상집은 독일에서 경험했던 내용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느날 정부기관에서 그를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잡아가 고문을 했단다. 그가 신문에 쓴 글들이 문제가 된 거야. 독일 경험을 쓰면서 우리나라와
비교를 해서 쓴 것이지. 그들은 배상집에게 친정부 관련된 글들을 쓰면 풀어주겠다고 협박을 했단다. 두려움에 배상집을 그렇게 하겠다며 풀려났단다. 당시 독재 정권은
점점 악랄해지는 그런 시기였단다.
2.
국회의원에서 떨어진 한인곤은
오랜만에 집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어. 그러다가 <친일문학론>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단다. <친일문학론>은 친일파 문학인들을 비판하는 책이었단다. 너무 감명 깊게 읽어서
그는 지은이 임종국을 찾아갔단다. 검색을 해보니 임종국이라는 분은 실존 인물이더구나. 그는 친일을 하더라도 깊게 반성하는 채만식의 경우는 좋게 보았지만, 끝내
사과하지 않은 이광수 같은 경우는 매섭게 비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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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그야 뭐 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저런 잇속으로 서로가 다 얽혀 있는 관계니까요. 아 참, 딱 한 사람이 반성을 했군요. 소설가 채만식이라고, 제 책 때문에 해방이 되자마자 그 사람은 민족 앞에 죄지은 붓을 더 놀려 글을 쓰지 않겠다고 절필 선언을 했습니다. 그 사람의 친일은 이광수에 비해 몇백 분의 1도 안 되는데, 친일의 글을 쓴 것은 민족을 위해서였다고 파렴치하기 이를 데 없는 괴변을 늘어놓으며 끝끝내 반성을 하지 않았던
이광수하고는 좋은 대조가 되지요. 다른 문인들이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온갖 비양심적이고 해괴망측한
변명들을 해대며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뻔뻔스럽게 살아가는 데는 이광수가 반성하지 않은 것에 절대적인 책임이 있지요. 왜냐하면 이광수는 친일의 거두일 뿐만 아니라 문단의 최고 원로였으니까요. 이광수가
민족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더라면 그 뒤에 선후배들이 어찌 감히 말도 안 되는 변명들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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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으로부터 조언을 들은 한인곤도
자신의 회고록을 써보기로 했단다. 광복군 시절부터 해방 후 경험했던 일들을 회고하는 글이었어. 출판사는 임종국의 소개로 이상재가 운영하는 물결출판사에서 내리고 했단다.
…
유일표는 절에서 운영 스님이라는
분과 함께 생활했어. 위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스님처럼 머리도 밀었단다.
그런데 그곳에서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어. 박정희가 죽었다는 거야. 그것도 총에 맞아서…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독재 정권이 무너진
거야. 유일표는 그 소식을 듣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단다.
…
박통이 죽고 나서도 계엄 상황은
계속 이어졌단다. 그러다가 너희들도 들어봤을 12.12사태, 그러니까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단다. 박통이 죽고 민주국가 될 것을
많은 사람들이 희망하고 있었는데, 12.12 군사 쿠데타는 그 희망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어. 나라에서는 점점 심한 검열을 하기 시작했고, 대학생들 중심으로 한
데모는 점점 격렬해졌단다. 해가 바뀌고 봄이 다 지나가도록 사정이 좋아지지는 않았어. 5월에 들어서가 대학생들의 데모는 더욱 격렬해졌어. 그리고 뒤늦게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하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단다. 계엄하에 언론을 믿지 않는 것은 학습된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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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너 그 따위 소리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애저녁에 정치 때려치워라. 박통은 뭐 군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겠다는 혁명공약을 국민 앞에
내걸지 않아서 18년 동안이나 해먹다가 그렇게 비명횡사했냐? 정치란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는 것 빼놓고는 뭐가 있냐? 그리고, 너
지금 이 나라 정치가 누구 손에서 놀아나고, 권력이 누구 손에 틀어잡혀 있는지 몰라서 그 따위 소리하는
게냐? 그리고 권력이라는 건 뭐냐? 애비가 아들도 죽이고, 아들이 애비도 죽이는 것 아니냐? 그런데 그걸 순순히 내봐? 어림 반품어치도 없는 소리하지도 말아라. 정치인들은 즈네들이 다시
권력 잡을 욕심으로 그 말을 믿고 싶고, 게엄이 빨리 해제되어 군인들의 꼴을 안 보기 바라겠지. 허나, 그건 십중팔구 잘못 짚은 몽상이야. 알아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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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광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무서운 소문도 전해졌어. 원병균과 이상재는 그곳 소식이 궁금했지만 광주에는 들어갈 수 없었단다. 나라에서 막았어… 원병균과 이상재,
그리고 유일표는 광주 진입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광주로 향했단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
조정래 대하소설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한강>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약 20여
년간 격동의 시절을 소설로 그린 걸작이라고 짧은 평을 내리고 싶구나. 20년 동안 글을 쓰시다니 그
집념과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조정래 선생님은 요즘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책을 출간하신단다. 오랫동안 건강하셔서 쓰고 싶은 글을 다 쓰셨으면 좋겠구나.
…
자, 그럼 오늘로 <한강> 전 10권의 이야기를 마칠게. 나중에 너희들도 커서 공부와 숙제로부터
좀 여유로워지면 조정래 님의 대하소설 3부작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환자가 아닌 사람은 밖에 나가 기다리세요.”
책의 끝 문장: 한강은 영겁의 세월을 담고 긴긴 흐름을 짓고 있었다.
"말을 다 허자면 속에서 천불이 올르는디, 막말로 인자 대통령도 안 믿소. 아 금메 우리 농촌사람들 다 죽이기로 작정혔는지 농산물값이 해마동 똥값이 되는디다가, 돼지값도 똥값이 되는 판에 워쩔라고 나라가 사딜이는 미곡수매가꺼정 말뚝 박어 묶어뿌냐 그것이오. 근디다가 그 빌어묵을 놈으 주택개량인가 집 껍데기 뒤집어 바꾸긴가를 억지로 몰아대서 글 안 해도 찢어지게 가난헌 살림에 집집마동 빚더미에 올라앉게 혀부렀단 말이오. 판이 요리 각다분허니 되야분께 땅 파묵어 갖고는 앞날이 캄캄허다 생각헌 사람들이 보따리 싸짊어지고 줄줄이 도시로 나가기 시작혔고. 도시에 나가 막노동에 등짐을 져도 세 끼 밥 편케 묵고 새끼덜 공부 갤칠 수 있다고 험서. 인자 처녀 총각들만 도시로 내빼는 시상이 아니다 그것이오." - P27
그런데 그 조직이 어느 날 갑자기 통일혁명당이라고 지목되었다. 그와 동시에 대규모 간첩단으로 몰리고 말았다. 그건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월남으로 몸을 피해가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건 너무 황당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누명이었다. 토론회에서 가끔 민족 분단이 의제가 되긴 했지만 통일을 혁명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제가 등장한 일은 없었고, 박정희의 강압정치를 비판한 적은 있지만 간첩 노릇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분명한 사실이지만, 만약 위에서 혁명적 통일을 위해 이북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낌새라도 보였더라면 단연코 그 조직에 등을 돌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통령일 뿐이면서 황제적 권한을 휘둘러대는 박정희도 싫을 뿐만 아니라 1인 독재로 우상이 되어 있는 북의 김도 똑같이 싫었고, 민족 통일에 관한 한 끝도 한도 없이 반목만을 일삼고 있는 남과 북의 정치 집단에 대해 용서할 수 없는 불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02
"네, 사실이 그렇더라도 인간과 인간사를 너무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허무를 강조하고, 또 너무 결과론적으로 만사를 정의하며 허무를 입증하다 보니 이 세상 모든 것이 허무의 바다에 뒤덮여 인간의 현실이 너무 도외시되거나 묵살되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모든 종교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현실적 삶의 문제를 위한 창조물인데 불교는 지나치게 무상의 사상에 치우치다 보니 현실과 멀어지고 있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 P201
"이것 봐, 아까도 말한 거지만 말야. 자네 6.25 때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도 신문이고 방송을 믿어? 그때 방송에서 뭐라고 떠들어댔어? 국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을 사수할 테니 시민 여러분들은 하등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충실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알고 보니 어찌 됐어? 그 방송이 나올 때는 벌써 이승만이는 한강을 건너 대전으로 줄행랑을 치고 있었고, 한강 다리는 폭파된 뒤였잖아. 그 빌어먹을 놈에 방송 때문에 피난도 못 가고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어. 그런데도 방송을 믿어?"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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