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2)

도화서 화원들은 궁궐 외에 주문을 받곤 했던 양반 고객들은 대부분 북촌(北村))’에 살았다. 당시 북촌은 벌열 양반과 왕의 인척들이 사는 조선조 최고의 부촌이었다. 화원들의 후원자가 될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북촌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화원 입장에서는 궁에서 멀지 않고, 부수 입을 올릴 수 있는 서화 가계들이 있는 광통교 근처이고, 자신들의 후원자가 사는 북촌에서도 멀지 않은 지역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 이 세 곳이 모두 연결되는 중심부가 지금의 인사동 지역이었다. 이러한 입지는 후에 인사동이 서화와 전전(典籍), 고미술 거래의 중심지가 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29)

안중식은 솜씨 좋은 서화가였을 뿐 아니라 국민 계몽의 필요성을 느낀 개화사상가이기도 했다. 1906년에는 대표적인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대한자강회(大韓自彊會)에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이듬해 <대한자강회월보> 8호 첫 페이지에 을사늑약에 항의하다가 자결한 충신 민영환(閔泳煥)(1861~1905)을 기리는 <민중정공혈죽도>를 그려 싣기도 했다. 또한 이듬해에는 어린이용 교과서 <유년필독>과 진보적이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잡지 <청춘(靑春)>, <아이들보이>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1913년에 창간된 <아이들보이>에는 군복을 입고 백마를 탄 우리나라의 옛 무사를 그린 삽화가 표지화로 실리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근대적인 면모를 보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보면 전통적 기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도 있다.

 

(88)

고희동은 그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역사적 의미와 새로운 조형 방법을 후진에게 가르친 미술 교육자로서 높이 평가받았다. 화단을 형성하고 이끌어나간 미술 행정가의 성격이 강해 일부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초였음에도 결국 서양화를 포기하고 동영화로 돌아온 화가로서의 정체성 문제는 더욱 그에 대한 평가를 박하게 만들었다. 이런 치우친 평가가 과연 정당한지 의문이다.

실제 전하는 그의 작품들은 당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화가들 못지않은 개성과 미덕을 가지고 있다. 원근이 살아 있는 생동감 넘치는 산수화나 뛰어난 색채감을 보이는 개성적인 화면은 다른 화가들에게서 보기 어려운 새로운 면이다. 이는 현대에 와서 더욱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화가로서의 고희동에 대해 더욱 정치한 연구가 필요하다.

 

(154)

첫눈에 반한 김기창은 박래현이 도쿄로 돌아가자 계속 편지를 보내 그녀의 환심을 산다. 김기창의 4년간의 끊임없는 열정에 박래현에 처음에는 바위 덩어리처럼 시커먼 물체처럼 보였던 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어, 결국 두 사람은 4년 뒤 결혼한다. 결혼한 두 사람은 부부 이전에 예술적 동반자였다. 미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미술세계를 넓혀갔다. 같은 공간에서 살며 작업하다 보니 두 사람의 예술세계는 서로 다른 듯 닮아갔다. 마치 피카소와 브라크의 그림이 서로 닮아 예술의 동반자임을 드러냈듯이, 김기창과 박래현의 그림은 어느 시기까지 서로 비슷한 면을 많이 보였다.

 

(205)

이렇듯 빼어난 감성으로 좋은 그림을 그렸던 최재덕이었지만, 북으로 가서는 자신의 화풍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의 감성적이고 예민한 예술적 성향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주창하는 북한의 예술론과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많았을 것이다. 그가 계속 남쪽에 남아 그림을 그렸다면 또 어떤 작품을 남겼을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앞서 박고석은 최재덕이 북쪽으로 가고, 이중섭이 남쪽으로 왔으니 비긴 셈이다라고 했지만, “이중섭이 북쪽에 남고, 최재덕이 남쪽에 남았으면 또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었다면 어쩌면 남북의 미술이 지금보다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역시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다.

 

(235)

사람들이 현대사옥을 정경 유착의 결과물로 이야기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 건물 건축의 첫째 의문은 건축의 허가가 정당했는지의 문제이다. 우선 크기가 너무 크다. 지금도 너무 커 위압감을 느낄 정도인데 1983년에는 어떤 정도였을지 상상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이곳은 창덕궁이 바로 옆에 있어 건축법상 이렇게 높고 큰 규모의 건물이 들어서서는 안 된다. 실제 주변 다른 곳의 경우 고도제한을 받는다. 이런 높은 건물이 어떻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309-310)

2001년 월북한 서양화가 배운성의 작품 48점이 발견되자 한국미술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때 발견된 작품이 대부분 유화 작품이어서인지 주로 그의 유화 작품에 대해서만 언급되었다. 그러나 당시 유럽이나 한국에서 배운성이 미술세계가 주목을 받은 것은 유화보다는 판화 부문이었다. 배운성이 한국에 돌아왔을 1940년 당시에도 한국 화단과 언론에서의 관심은 그의 기구한 삶과 함께 뛰어난 판화 실력이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서 대서특필한 기사도 세계적인 판화가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실제 배운성은 여러 살롱전과 공모 전람회에서 판화로 입상했으며, 개인전에서도 유화 못지않게 판화를 전시하곤 했다.

 

(338)

2009년 일본의 명문 학교인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는 개교 80주년을 맞아 학교 역사를 대표할 만한 단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하고자 했다. 교수와 학생들의 엄격한 추천과 심사를 거쳐 일본화, 서양화, 조각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가장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가 한 명을 선발했다. 그 한 명이 바로 1949년에서 1953년까지 이 학교를 다닌 한국인 조각가 권진규(1922~1973)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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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10 - 제3부 불신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드디어, 아니 벌써 <한강> 마지막 10권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구나. 일주일에 주말마다 한 권씩 읽으려고 했는데, 마지막 10권은 9권에 연이어 읽어버렸다. <한강>을 읽는 동안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된 시기인 것 같구나. 불과 1, 2년 사이에 이렇게 나라가 후퇴할 수도 있다니, 우리나라 시스템이 많이 불안정한 것 같구나. 조정래 님의 <한강> 속 우리나라보다 살기 좋아지고 경제도 발전하고 그랬지만, 소설 속 계엄령을 현실에서 볼 수 있다니

그럼 <한강> 10권의 이야기를 바로 해줄게.

10권의 이야기는 안경자의 산부인과 병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한 여성 노동자가 중절 수술을 하러 왔어. 안경자는 속으로 분별없이 사랑을 나누어 임신을 하고서, 중절 수술하러 오는 그를 탓했는데,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막힌 사연이 있었단다. 그 여자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관리들에게 잡힌 다음 강간을 당했다는 거야. 하지만 그 관리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없고, 그 여성 노동자는 임신을 하게 되어 중절 수술을 받으러 왔다는구나. 안경자는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냐고 이야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하는구나. 안경자는 돈이 없어 친구들이 십시일반 병원비를 마련해 주는 그 여자에게 무료로 치료와 수술을 해주었단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

….

또 다시 국회의원 선거철이 왔어. 탐욕주의자 강기수는 이번이 자신의 마지막 국회의원 선거라고 생각했어. 다음에는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어. 다들 여당을 욕하면서 여론이 야당으로 급격하게 기울었어. 하지만 강기수는 여전히 안심하면서 언제나 그렇듯 돈을 쓰면 될 것으로 생각했어. 그런데 딸 강숙자가 알아본 밑바닥 민심은 최악이었어. 그제서야 딸의 조언대로 돈을 몇 배로 쓰고, 남천장학사 출신 법조인들을 모두 불러들여 선거 운동을 했어. 그렇게 해서야 간신히 당선되었단다. 이번 선거에서 한인곤은 낙선하고 말았단다.

 

1.

임채옥의 남편은 결국 죽고 말았어. 그리고 1년이 흐르고유일민은 임채옥에게 청혼을 했단다. 그들의 결혼을 반대할 식구들은 모두 이민을 가버리고, 임채옥은 그 청혼을 계속 기다렸을 거야. 풋풋한 20대 초반의 그들의 뜨거운 사랑이 이제서야 결실을 맺게 되었구나. 유일민이 10권에 와서야 행복을 찾게 되어 정말 다행이구나. 유일표는 몰래 노동 운동을 한다고 했는데, 결국 꼬리가 잡혀 피신하기로 했단다. 동생 유선희가 소개해준 절간에 숨어 지내기로 했어. 유일표의 아내 서경혜는 다행히 큰 고초 당하지 않고 조사를 마쳤어. 임신한 여자를 심하게 다루지는 못하겠지. 유일표가 피신하고 임신한 서경혜가 혼자 지난다는 소식을 들은 이상재는 자신의 돈도 보내주고, 친구 허진에게 찾아가 유일표가 피신했다는 이야기를 전했어. 그 동안 자신이 섭섭하게 한 일이 있어서인지, 허진은 큰 돈을 보내주었단다.

유일표와 이상재의 또다른 친구 최주한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고 있었어.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리나라와 환경이 다르다 보니, 낯선 병들이 생기곤 해서 사우디 병이라고 불렀단다. 그 중에 가장 많이 걸리는 것이 요로 결석증이래. 아무래도 더운 날씨에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 병이 걸리나 보다. 그런데 문태복이 그만 이 병에 걸리고 말았어. 이 병에 걸리면 치료를 위해서 한국에 와야 해서 강제 귀국 조치를 당했단다. 결국 문태복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와서도 목표로 했던 돈을 제대로 모이지 못하고 귀국하고 말았단다. 이것의 시작은 모두 베트남에서 벌인 도박 때문이었지. 박준서의 회사도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을 했는데, 그곳에서 노동자들이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이유로 폭동을 일으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출장을 가게 되었어. 친구이자 매제인 원병균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진보 성향의 해직 기자 출신인 원병균은 노동자의 편이었기 그곳에 가는 것을 여러 번 거절했지만 결국에는 가게 되었단다. 원병균은 박준서에게 노동자들에 처벌을 최소화로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단다.

….

천두만과 서동철의 도움으로 가게를 차릴 수 있었던 나복남.. 가게는 안정적인 수입도 내고 있고, 결혼도 하게 되었단다. 손가락이 없는 것을 빼면 이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어. 동생 나윤자도 뒤늦게 결혼을 했어. 그런데 유산을 네 번이나 하고 다시 임신을 했단다. 이번에는 정말 조심을 해서 출산을 앞두고 있었어. 예전에 같이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묘숙 언니의 소식을 듣게 되었어. 봉제공장에서 먼지 속에서 일한 후유증으로 폐암에 걸렸다는 거야. 나윤자는 묘숙 언니 병문안을 갔다 왔단다. 그런데 묘숙 언니만 봉제공장의 후유증을 앓고 있던 것이 아니야. 나윤자도 체력이 급격하게 줄어줄었고, 출산하다가 그만 죽고 말았단다.

배상집은 독일에서 경험했던 내용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느날 정부기관에서 그를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잡아가 고문을 했단다. 그가 신문에 쓴 글들이 문제가 된 거야. 독일 경험을 쓰면서 우리나라와 비교를 해서 쓴 것이지. 그들은 배상집에게 친정부 관련된 글들을 쓰면 풀어주겠다고 협박을 했단다. 두려움에 배상집을 그렇게 하겠다며 풀려났단다. 당시 독재 정권은 점점 악랄해지는 그런 시기였단다.

 

2.

국회의원에서 떨어진 한인곤은 오랜만에 집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어. 그러다가 <친일문학론>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단다. <친일문학론>은 친일파 문학인들을 비판하는 책이었단다. 너무 감명 깊게 읽어서 그는 지은이 임종국을 찾아갔단다. 검색을 해보니 임종국이라는 분은 실존 인물이더구나. 그는 친일을 하더라도 깊게 반성하는 채만식의 경우는 좋게 보았지만, 끝내 사과하지 않은 이광수 같은 경우는 매섭게 비판했단다.

====================

(186)

그야 뭐 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저런 잇속으로 서로가 다 얽혀 있는 관계니까요. 아 참, 딱 한 사람이 반성을 했군요. 소설가 채만식이라고, 제 책 때문에 해방이 되자마자 그 사람은 민족 앞에 죄지은 붓을 더 놀려 글을 쓰지 않겠다고 절필 선언을 했습니다. 그 사람의 친일은 이광수에 비해 몇백 분의 1도 안 되는데, 친일의 글을 쓴 것은 민족을 위해서였다고 파렴치하기 이를 데 없는 괴변을 늘어놓으며 끝끝내 반성을 하지 않았던 이광수하고는 좋은 대조가 되지요. 다른 문인들이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온갖 비양심적이고 해괴망측한 변명들을 해대며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뻔뻔스럽게 살아가는 데는 이광수가 반성하지 않은 것에 절대적인 책임이 있지요. 왜냐하면 이광수는 친일의 거두일 뿐만 아니라 문단의 최고 원로였으니까요. 이광수가 민족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더라면 그 뒤에 선후배들이 어찌 감히 말도 안 되는 변명들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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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으로부터 조언을 들은 한인곤도 자신의 회고록을 써보기로 했단다. 광복군 시절부터 해방 후 경험했던 일들을 회고하는 글이었어. 출판사는 임종국의 소개로 이상재가 운영하는 물결출판사에서 내리고 했단다.

유일표는 절에서 운영 스님이라는 분과 함께 생활했어. 위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스님처럼 머리도 밀었단다. 그런데 그곳에서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어. 박정희가 죽었다는 거야. 그것도 총에 맞아서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독재 정권이 무너진 거야. 유일표는 그 소식을 듣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단다.

박통이 죽고 나서도 계엄 상황은 계속 이어졌단다. 그러다가 너희들도 들어봤을 12.12사태, 그러니까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단다. 박통이 죽고 민주국가 될 것을 많은 사람들이 희망하고 있었는데, 12.12 군사 쿠데타는 그 희망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어. 나라에서는 점점 심한 검열을 하기 시작했고, 대학생들 중심으로 한 데모는 점점 격렬해졌단다. 해가 바뀌고 봄이 다 지나가도록 사정이 좋아지지는 않았어. 5월에 들어서가 대학생들의 데모는 더욱 격렬해졌어. 그리고 뒤늦게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하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단다. 계엄하에 언론을 믿지 않는 것은 학습된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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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너 그 따위 소리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애저녁에 정치 때려치워라. 박통은 뭐 군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겠다는 혁명공약을 국민 앞에 내걸지 않아서 18년 동안이나 해먹다가 그렇게 비명횡사했냐? 정치란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는 것 빼놓고는 뭐가 있냐? 그리고, 너 지금 이 나라 정치가 누구 손에서 놀아나고, 권력이 누구 손에 틀어잡혀 있는지 몰라서 그 따위 소리하는 게냐? 그리고 권력이라는 건 뭐냐? 애비가 아들도 죽이고, 아들이 애비도 죽이는 것 아니냐? 그런데 그걸 순순히 내봐? 어림 반품어치도 없는 소리하지도 말아라. 정치인들은 즈네들이 다시 권력 잡을 욕심으로 그 말을 믿고 싶고, 게엄이 빨리 해제되어 군인들의 꼴을 안 보기 바라겠지. 허나, 그건 십중팔구 잘못 짚은 몽상이야. 알아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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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광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무서운 소문도 전해졌어. 원병균과 이상재는 그곳 소식이 궁금했지만 광주에는 들어갈 수 없었단다. 나라에서 막았어원병균과 이상재, 그리고 유일표는 광주 진입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광주로 향했단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

조정래 대하소설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한강>1950년대 후반부터 1980 5월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약 20여 년간 격동의 시절을 소설로 그린 걸작이라고 짧은 평을 내리고 싶구나. 20년 동안 글을 쓰시다니 그 집념과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조정래 선생님은 요즘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책을 출간하신단다. 오랫동안 건강하셔서 쓰고 싶은 글을 다 쓰셨으면 좋겠구나.

, 그럼 오늘로 <한강> 10권의 이야기를 마칠게. 나중에 너희들도 커서 공부와 숙제로부터 좀 여유로워지면 조정래 님의 대하소설 3부작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환자가 아닌 사람은 밖에 나가 기다리세요.”

책의 끝 문장: 한강은 영겁의 세월을 담고 긴긴 흐름을 짓고 있었다.



"말을 다 허자면 속에서 천불이 올르는디, 막말로 인자 대통령도 안 믿소. 아 금메 우리 농촌사람들 다 죽이기로 작정혔는지 농산물값이 해마동 똥값이 되는디다가, 돼지값도 똥값이 되는 판에 워쩔라고 나라가 사딜이는 미곡수매가꺼정 말뚝 박어 묶어뿌냐 그것이오. 근디다가 그 빌어묵을 놈으 주택개량인가 집 껍데기 뒤집어 바꾸긴가를 억지로 몰아대서 글 안 해도 찢어지게 가난헌 살림에 집집마동 빚더미에 올라앉게 혀부렀단 말이오. 판이 요리 각다분허니 되야분께 땅 파묵어 갖고는 앞날이 캄캄허다 생각헌 사람들이 보따리 싸짊어지고 줄줄이 도시로 나가기 시작혔고. 도시에 나가 막노동에 등짐을 져도 세 끼 밥 편케 묵고 새끼덜 공부 갤칠 수 있다고 험서. 인자 처녀 총각들만 도시로 내빼는 시상이 아니다 그것이오." - P27

그런데 그 조직이 어느 날 갑자기 통일혁명당이라고 지목되었다. 그와 동시에 대규모 간첩단으로 몰리고 말았다. 그건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월남으로 몸을 피해가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건 너무 황당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누명이었다. 토론회에서 가끔 민족 분단이 의제가 되긴 했지만 통일을 혁명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제가 등장한 일은 없었고, 박정희의 강압정치를 비판한 적은 있지만 간첩 노릇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분명한 사실이지만, 만약 위에서 혁명적 통일을 위해 이북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낌새라도 보였더라면 단연코 그 조직에 등을 돌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통령일 뿐이면서 황제적 권한을 휘둘러대는 박정희도 싫을 뿐만 아니라 1인 독재로 우상이 되어 있는 북의 김도 똑같이 싫었고, 민족 통일에 관한 한 끝도 한도 없이 반목만을 일삼고 있는 남과 북의 정치 집단에 대해 용서할 수 없는 불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02

"네, 사실이 그렇더라도 인간과 인간사를 너무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허무를 강조하고, 또 너무 결과론적으로 만사를 정의하며 허무를 입증하다 보니 이 세상 모든 것이 허무의 바다에 뒤덮여 인간의 현실이 너무 도외시되거나 묵살되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모든 종교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현실적 삶의 문제를 위한 창조물인데 불교는 지나치게 무상의 사상에 치우치다 보니 현실과 멀어지고 있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 P201

"이것 봐, 아까도 말한 거지만 말야. 자네 6.25 때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도 신문이고 방송을 믿어? 그때 방송에서 뭐라고 떠들어댔어? 국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을 사수할 테니 시민 여러분들은 하등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충실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알고 보니 어찌 됐어? 그 방송이 나올 때는 벌써 이승만이는 한강을 건너 대전으로 줄행랑을 치고 있었고, 한강 다리는 폭파된 뒤였잖아. 그 빌어먹을 놈에 방송 때문에 피난도 못 가고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어. 그런데도 방송을 믿어?"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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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5 소설 보다
강보라.성해나.윤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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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소설보다 : 2025>라는 책을 이야기할 것인데, 이 책은 아빠가 충동 구매로 산 책이란다. 이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책 표지가 너무 예뻐서 눈에 띤 책이었어. 먹음직스러운 딸기가 그려져 있었어. 아직 익지 않은 딸기와 잘 익은 딸기들아빠가 어렸을 때 텃밭에 딸기가 있어 봄이면 딸기밭에서 따먹던 딸기도 생각이 났단다. 요즘에야 비닐하우스에 기른 딸기 때문에 봄보다 겨울에 딸기를 더 많이 먹는 것 같지만, 딸기는 엄연한 봄을 대표하는 과일이란다.

그런 딸기 그림과 함께 적혀 있는 책의 제목은 <소설 보다 봄>. <소설 보다> 시리즈는 인터넷 서점에서 자주 보여서 알고 있던 계간지였지만 아빠는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단다. 그런데 이번에는 겉표지에 혹해서 클릭해 보았고,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 버튼을 눌렀단다. <소설 보다>는 일 년에 네 번 계절마다 출간되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들이 들려 있단다. 매 호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호에서는 단편 소설 세 편과 작가의 인터뷰가 실려 있더구나. 이번 <소설 보다 : 2025>에는 강보라 님의 <바우어의 정원>, 성해나 님의 <수무드>, 윤단 님의 <남은 여름>이 실려 있었단다. 세 편 모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며 가볍지만 따뜻한 사람들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봄과 어울리는 소설들이라는 생각을 했단다. 세 작가 모두 아빠는 읽은 적이 없는데,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재미있어서 작가들의 다른 책들도 함 살펴봐야겠구나.

 

1.

자 그럼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소설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줄게. 강보라 님의 <바우어의 정원> 바우어라는 짙은 파란색을 띠는 새가 있단다. 구애를 위해서 자신의 둥지를 화려하게 꾸미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하다는구나. 자신의 몸 색깔과 마찬가지로 온통 파란색 물건으로 둥지를 장식하기도 한다는구나.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정말 파란색 플라스틱 조각을 비롯하여 둥지를 파란색으로 꾸며 놓았더구나. 주인공 은화는 중년으로 접어드는 배우로 한때는 주인공도 하여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단다. 결혼 이후 세 번의 유산으로 3년 여 공백기간을 가졌고 다시 재기를 위해서 연극 오디션에 참가를 했단다. 그곳에서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후배 정림을 오랜만에 만났어. 정림은 은화만큼 뜨지 못했고 여전히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며 꿈을 키워나갔어. 오디션을 마치고 은화는 정림이 연극 연습을 하는 극장까지 태워다 주며 오랜만에 안부로 이야기를 채워나갔단다. 정림도 아이를 유산했다는 사실에 아픔을 공감하면서도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했어. 얼마 후 은화는 연극 오디션에 합격했지만, 하지 않으려고 했단다. 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였어. 앞서 이야기한 바우어 새와 주인공 은화의 연결점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마지막에는 은화가 아픔을 이겨내려는 희망이 보였단다. 작가의 의도는 어떤 줄 모르겠지만 아빠는 그렇게 이해했어.

두 번째 소설은 성해나 님의 <스무드>. 듀이는 유명한 설치미술가 제프의 매니저였어. 듀이는 한국계 재미교포 3세로 외형적으로 한국인처럼 보였지만 한국말은 전혀 못하고, 한국의 문화와 음식도 전혀 모르는 완전 미국인이었어. 한국을 얼마나 모르냐면 동남아 국가와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했단다. 제프가 전시회 때문에 방한을 하게 되었는데, 듀이는 그 일로 처음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단다. 전시회 때문에 한국인 스태프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한국 음식을 대접하자 듀이는 입맛이 맞지 않았어. 호텔에 머무르다 시간이 나서 듀이는 혼자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게 되었단다. 커다란 광장에서 축제 같은 것이 벌여져서 구경을 했는데, 나이 많이 드신 분들이 축제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그들의 선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었어. 읽는 이들은 그것이 축제가 아니고, 태극기 부대의 시위 현장이란 것을 알 거야. 하지만 듀이는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단다. 젊은이가 시위를 찾아주니 나이 든 시위 참가자들은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먹을 것도 주고 핸드폰 배터리 충전도 해주는 등 친절하게 대해 주었단다. 그러면서 짧은 영어이지만 어떤 대통령이 대한민국에서 최고인지 듀이에게 알려주었고, 이 광장의 이름은 이승만 광장이라고 이야기해주었어. (태극기 부대는 정말 그곳을 이승만 광장이라고 부르나?) 듀이는 그들의 말에 철썩 같이 믿고 그들이 찬양하는 대통령이 새겨진 키링도 샀어. 듀이는 끝내 그들의 정체를 모르고 출국을 하게 되는데…. 지은이의 문체로 봐서는 풍자를 하는 듯 쓴 것 같은데, 어찌 보면 태극기 부대를 미화한 것 같기도 한, 애매한 느낌이 들었단다. 첫인상이 중요한데, 듀이의 잘못된 상식이 나중에 깨질 수 있을까?

마지막 세 번째는 윤단 님의 <남은 여름>이란 소설이란다. 서현은 얼마 전 직장에서 정리해고로 잘리고 실업수당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어. 어느날 어느 양지 바른 길거리에 파란 소파가 나타났어. 잠시 앉아 있었는데 생각보다 편해서 매일 그곳에 와서 한동안 앉아 있었단다. 그런데 전에 다니던 회상의 상사 추 팀장이 와서 왜 이곳에 와서 시위하냐고 따져 물었어. 알고 보니 파란 소파가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어. 서현은 그런 의도 없었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추팀장은 믿지 않았고, 서현은 이후에도 계속 파란 소파에 왔단다. 추팀장도 가끔 그곳에 와서 서현에게 안부를 전하게 되는데 추팀장도 본래 마음이 약한 사람인지라 서현을 정리해고 한 것에 대한 미안함, 부채감 뭐 그런 걸 갖고 있었어. 서현은 파란 소파가 길거리에 며칠 동안 덩그러니 있는 것으로 보아 누가 버린 것이라 생각하여 집으로 가지고 올까 생각도 했는데, 자신의 집이 너무 작아서 소파를 놓을 곳이 없었어. 그런데 추팀장이 자신이 가져갔다는 거야? 그런데 그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헛갈리게 이야기를 했어. 추팀장은 서현과 식사를 하면서 끝내 미안하다는 말과 찐 옥수수 한아름 사서 건네주고 돌아갔단다. 서현은 해고 같은 충격적인 소식에 크게 놀라지 않는 사람 같았어. 지난 과거에 자신이 친구의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 그 친구가 얼마 후 자살을 한 충격적인 사건 때문에 다른 사건들은 다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어.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난 지 여러 해가 지나도 죄책감을 지울 수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였단다.

….

이렇게 <소설 보다 : 2025>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을 이야기해보았단다. 단편 소설이라서 그런지 툭 끊긴 기분이 드는데, 등장인물들의 그 뒷이야기들도 무척 궁금하구나. 지은이들이 뒷이야기를 쓰면 좋겠는데, 어쩌면 등장인물들의 뒷이야기는 독자들의 몫일 수도 있겠구나.

오늘은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눈은 갑자기 그쳤다.

책의 끝 문장: 마음만큼 부지런히 지내고 싶습니다. 마음만큼 부지런하게 지내지 못하더라도 덜 좌절하고 싶고요. 모쪼록 해야 할 일들에 몰두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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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9 - 제3부 불신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오늘은 조정래 님의 <한강> 9권 차례구나. 독서 편지가 엄청 밀려서 바로 시작하고 되도록 요점만 이야기하고 마쳐야겠구나.

문태복은 베트남에서 도박으로 돈을 다 잃고 귀국한 이후, 이번에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일하러 가게 되었어. 당시 1970년대 중반에 많은 사람들이 사우디 건설 현장에 갔단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일하기 정말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 그곳에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건설업과 도로 공사 등의 일을 했단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슬람교도 국가로 술, 여자는 절대 안 된다고 관리자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단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국사람들의 성실함과 작업 속도에 인정을 받아 좋은 이미지로 방송에 보도되기도 했어. 사우디아라비아는 온통 사막천지인데, 그런 곳에서 고속도로 작업은 쉽지 않은데 이 책에는 그 방법을 상세하게 다 적어주었단다. 작가 조정래 님께서 취재한 내용을 적어주신 것 같은데, 그렇게 도로 작업 방법을 자세히 읽어보니 당시 노동자들의 고생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단다. 사우디아라비아 노동자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주었단다. 1년 동안 고생하고 귀국을 앞둔 사람들 중에 너무 기뻐서 며칠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돌연사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대

 

1.

강기수 국회의원은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지역구를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 탐욕은 끝이 없구나. 지역구에서 활동을 할 때 아들을 꼭 데리고 갔어. 1970년대 중반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라서, 시골 곳곳에서도 초가집을 없애고, 시멘트 길을 닦는 일들을 했단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초가집을 없애고 슬레이트 지붕집을 만드는 것에 불만을 가진 이들도 있었어. 초가집이 생각보다 장점이 많기 때문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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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지붕 갈면 참새고 구렝이고 굼벵이고 노래기 웂어지는 것만 알았제 그놈으 스레튼지 신식 양철인지 허는 지붕이 삼동에는 사람 고드름 맹글게 외풍이 일어 춥고, 삼복에는 사람 숨맥히고 찜쪄죽이게 후꾼후꾼 더운 것 워째 몰르시오. 고것이 보기만 뺀드르르혔제 사람 잡는단 말이오. 사람이 삼동에는 뜨뜻허니, 삼복에는 시언허게 살아야 몸도 풀리고 일도 지대로 되고 허는 법인데, 공연시 그 존 초가지붕 걷어내고 쌩돈 딜여감시 그 못쓸 스레트로 바꾸라고 물이 못 나게 잡져대니 요것이 무신 얄랑궂인 일인다요? 글고, 저 생생헌 탱자나무 울타리가 우리 실림을 가난허게 맹그는 것도 아니겄고, 무신 손해를 입히는 것도 아닌디 워째 싹 쳐내뿔고 그 멋대가리 웂는 쎄멘트 담으로 바꾸라고 욱대기고 그래 싼다요. 저것도 다 살아 있는 목심인디. 워디 그뿐이당게라? 철 따라 잎 피고 꽃피고 탱자 익어가는 운치가 꽃밭이 따로 웂고, 잘 익은 탱자는 아그덜 입맛 돌게도 허고 한약방에 약재로 폴기도 안 허요. 근디 쎄멘트 담은 주는 것이 머시가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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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직 기자인 원병균과 이상재는 출판사 일을 하려고 했어. 유일표의 아내 서경혜가 출판사 일을 하기 때문에 출판사가 어떻게 돌아가는 등 사업수완에 대해서는 배울 수 있었으나 그들의 신원조회가 문제가 되어 출판사를 차리기가 어려웠어. 이상재는 허미경에게 부탁하여 출판사 명의는 허미경으로 해서 개업할 수 있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재도 정부기관에서 조사를 받았단다.

...

이규백 검사의 동생 이규동은 유신 반대 주동자로 감옥에 수감되고 말았어. 이규백은 동생을 빼내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방법을 찾아내서 동생을 찾아갔는데, 이규동은 동지들을 배신하지 못한다며, 형의 제안을 거절하고 결국 10년형을 받았단다. 이규백은 사실 동생을 위해 방법을 찾았던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까지 해가 미칠까 봐 방법을 찾았던 거야. 이규백은 동생일 때문에 몇 달 뒤 강릉으로 발령을 받았단다.

...

유일표는 어느날 이상재를 찾아와 고민거리를 이야기했어. 재건대 출신 아이들이 회사에 취직을 내서 노조 결성을 준비하다가 회사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다는 거야. 그런데 그것을 주도한 이가 다름아닌 친구 허진이었어. 허진 기억나지? 고등학교 때 낮에는 일하고 야학을 공부하고, 그를 유일표가 앞장서서 도와주고 그랬잖아. 그런 허진이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는 성공이라는 목표 하나로 밤낮으로 일했는데, 그런 허진이 노조를 만들려 하는 노동자를 해고시키다니... 친구 유일표로는 배신감마저 들었던 거야. 이상재도 그 이야기를 듣고 허진을 만나러 갔어. 유일표가 찾아왔던 일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는데, 허진은 사장의 꼬붕 자본주의자가 된 것 같았어. 허진은 노조가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했어. 유일표는 허진과 거리감을 느끼고 이후 연락도 거의 안 했단다. 둘은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어버렸어. 유일표 자신도 노동 운동을 계속 하지만, 아버지 이력 때문에 불안했어.

집을 나간 유선희로부터 편지가 왔어.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편지였어. 유일민과 유일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스님이 될 수밖에 없는 동생의 형편에 가슴 아파했단다. 유일민은 플라스틱 공장이 잘되어 돈도 많이 벌었어. 시장 조사를 하고, 기계를 사기 위해 일본 출장을 가려고 했지만, 동생 유일표가 말렸단다. 일본에 가면 재일교포와 접촉했다는 의심을 살 수 있고, 그러면 다시 갇혀 들어가 조사를 받을 수 있다면서... 일민도 일표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일본 출장 계획은 철회했단다.

....

쌀가게에서 잘린 천두만은 돈이 떨어져서 서울을 떠나 성남으로 이사를 갔단다. 다행히 첫아들 천칠성이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을 했어. 천두만은 이제 젊은이들에게 밀려 일자리 찾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어. 결국 서해안 간척지로 농사지내러 가기로 했단다.

...

 

2.

최혜경에게 배신당한 한정임. 그 보석밀수사건으로 남편 양용식도 강제 예편 당하고 2년째 백수로 있었어. 한정임은 최혜경 대신 자신이 죄를 뒤집어썼기 때문에 계속 전화했지만 연락이 안되었어. 남편은 포기하라고 한 마디 했어.

...

김명숙도 보석밀수사건에 연루되어 있었잖아. 김명숙은 최혜경을 협박해서 돈을 받아내겠다며 오빠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김선오가 보기에 이렇게 해도 돈을 받을 수도 없을뿐더러 자신까지 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김선오는 자신의 돈으로 김명숙이 원한 500만원을 건네주었단다. 자신이 최혜경으로부터 받아온 돈이라면서... 김명숙은 이 돈으로 명동에서 양장점에 차렸단다.

....

임채옥의 남편은 결국 간암 말기 시한부를 선언 받았단다. 남편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여전히 일 걱정만 했어. 임채옥은 남편의 수술비와 병원비가 없어 결국 집까지 내놓았지만 그래도 돈은 부족했어. 임채옥은 유일민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유일민은 당연히 흔쾌히 거금을 주었단다.

...

유신 반대 대학생 시위가 격해졌어. 유일표도 광화문에 나갔다가 그 시위를 보고 동참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아버지 때문에 꾹 참았단다. 우연히 이규백을 만났는데, 변호사 개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강릉 발령에 따르지 않고 검사 사표를 썼나 보구나.

...

<한강> 9권의 이야기는 대충 여기까지 하면 될 것 같구나. 이제 한 권 남았구나. 그것도 조만간 이야기를 해줄게. 오늘은 이렇게 간단히 마칠게.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문태복은 또 설핏 들었던 풋잠을 깼다.

책의 끝 문장: 그러다가 허둥지둥 돌아서 투위 회원들의 연락처를 펼쳤다.

 



"더 이상 개발독재에 순응해선 안 돼. 정치와 경제가 결탁해서 전체 민중들을 갈취하는 이런 구조는 하루빨리 부셔야 해. 신흥 재벌들이 생겨나는 걸 경제 기적이라고 떠들어대는데 그거야말로 고등사기 선전술이야. 그건 권력의 비호와 노동자 착취가 얼마나 극심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야. 세계 어느 나라에도 단 몇 년 사이에 신흥 재벌들이 생겨나는 일이란 없어. 지금부터 노동자들을 조직화해서 개발독재의 구조를 깨고, 노동자의 몫을 제대로 찾아야 할 때야." - P217

한국사람들이 쇠로 만들어졌을 리 만무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뚜렷한 땅에서 나고 자랐으니 더위에 강할 수 있는 체질도 아니었다. 더위에 강하기로는 더운 나라 태국이나 필리핀사람들일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구덩이를 서너 개 팔 때 태국사람은 구덩이를 한 개밖에 파지 못하고, 한국사람들이 일하는 식으로 필리핀사람들에게 시키면 하루 일하고 사흘을 앓아눕는다는 말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다. 태국이나 필리핀사람들은 대개 대만 회사들에 고용되어 있었다. 한국사람들은 오로지 가난을 면하겠다는 일념으로 사우디사람들조차 피하는 살인적인 더위를 무릅써가며 사생결단 일에 나서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몸이 허약해져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비행기에 실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석회 성분 많은 물 때문에 담석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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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

그런데 말이야, 태곳적부터 사람은 그놈의 답답증 때문에 말을 내지르다 보니 문자가 생겨났고 답답증 때문에 소리를 내지르다 보니 음악이 생겨났고 모양을 나타내어 보고 싶은 답답증 때문에 그림이나 조각 같은 게 생겨났을 성싶은데, 그래서 그놈의 답답증 때문에 종교니 철학이니 윤리 도덕이니, 그게 다 춥고 배가 고파서 생겨난 게 아니란 말이야. 답답증, 다시 말하면 마음이 춥고 배고파서 생겨난 건데 그래서 인간은 동물보다 복잡해졌단 말이야.

 

(588-589)

여덟이에요. 나인 그렇다 치고, 난 엉큼하질 못해서 탁 털어놓는 거예요. 마음은 간절하면서 안 그런 체하는, 소위 그 숙녀라는 물건들을 보면 메스꺼워서 원, 나같이 솔직만 하다면 세상은 아주 살기 좋고 밝아질 거예요. 한국 사람들의 병이 바로 그거 아니에요? 남이 갖다주어서, 그래야 겨우 먹고 싶지도 않지만 권하니까 먹는다는 식으로 말에요. 배 속은 비어서 꾸럭꾸럭 소리가 나는데 한 푼어치 가치도 없는 체면치레는 사실 치사한 거예요. , 결혼 문제에도 그래요. 따지고 보면 목적은 간단한 데 공연한 사탕발림을 한단 말예요. 결혼이라는 것도 수지계산의 범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627-628)

운명이라든가 행운이라든가 혹은 부조리라든가 막연한 말인데 한편 근본적인 것일 수도 있고…… 한데 그런 것 밀쳐놓고, 아득바득 애쓰는 그 껍데기만 살짝 벗겨본다면? 역시, 역시 그렇거든. 의리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현상이 쌓이고 무너지고 한단 말이야. 마치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리고 떠밀리다가는 큰길로 나와 있었다는 것과 비슷하게……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본인의 의사하고는 상관이 없이 천재가 되어 있기도 하고 천치가 되어 있기도 하고, 그게 운명이라든가 행운이랄 수 없는 게 오늘이거든. 역학적인 것이란 말일세. 사람의 의사와는 무관한, 저절로 움직이는 역학적 현상이란 말일세. 사람의 의사와는 무관한, 저절로 움직이는 역학적 현상이란 말일세. 운명과 마찬가지로 자연도 물러나 버린 빈터에서 인간이 주인만 되었더라면…… 망상이지 망상일세. 어디 본인의 의사만의 부재한가? 그 타의라는 것도 타인의 의사가 아니란 말이야. ()자를 빼어버린 타, 다만 타, 그것뿐이지. 홍수를 이루며 떠내려가는 사물의 의사가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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