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아일리시, 다른 때였다면 불법 구금으로 고등법원에 고소했을 겁니다, 래리를 꺼내왔을 거예요. 하지만 국가비상법 때문에 인신보호영장(불법 구금 방지 목적으로 행하는 구속적부심사 제도)이 중지됐어요, 국가가 특별 권력으로 사실상 사법부의 입을 틀어막았어요.

 

(164-165)

날씨에 기억이 있다. 하늘에 무르익은 봄이, 날렵한 제비가, 온통 새까만 칼새가 있다, 돌아온 새를 보면서 세월이 흐르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열매를 당연하게 여겼던 순수한 시절이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누군가 내미는 열매를 받아서 맛을 보지도 않고 깨물어 먹었고, 아무 생각 없이 씨방을 버렸다. 아일리시는 피닉스 공원에서 혼자 걸어 다니며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눈앞에 자기 생각밖에 보이지 않는다. 잎이 넓은 나무들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위를 올려다보며 저 나무들 밑에서 흘러간 시간을, 나무들이 나이테로 기록하는 세월을 생각한다. 세월이 흘러가고 그녀는 붙들 수 없다, 세월이 계속 흘러가지만 떠나가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그것이 그녀를 끌고 간다.

 

(168)

그녀는 집 안을 통과하는 달()을 지켜본다. 멍든 새벽빛이 요람 안의 벤에게 닿고, 제멋대로인 그 빛이 어린아이처럼 아일리시에게 딱 달라붙어 자는 몰리에게 닿는다. 새벽이 왔지만 낮은 달아났다. 그녀는 이제야 깨닫는다. 어둠을 덧없게 만드는 빛을 거짓이고 진실하며 흔들림 없는 것은 밤이다. 아이들을 품 안으로 불러들이지만 자신의 위로는 거짓이고 이 집은 피난처가 아님을 안다.

 

(210)

인생이라는 세월에 먼지가 쌓이고, 그 세월이 서서히 먼지로 변한다, 무엇이 남을까,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겠지, 한쪽 눈만 감아도 우리 모두 사라질 것이다. 바로 그때 래리가 곁에 있는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리지만 마주치는 것은 그녀의 슬픔이다, 아일리시는 양손을 맞잡고 흔들면서 캐럴의 말이 사실일 리가 없다고, 이제 무엇이 진실인지 아무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말하고 또 말한다, 자신이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고, 다른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여움은 희망이라는 옷을 입은 슬픔이다.

 

(225-226)

뉴스가 나오자 그녀는 분노로 몸을 떨면서 라디오를 꺼버리고 생각한다, 이건 뉴스가 아니다, 뉴스가 전혀 아니다, 모래주머니에 나른하게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군인을 집 안에서 내다보는 민간인이 뉴스다, 모래주머니에 기대어놓은 소총이 뉴스다, 군인의 깔깔 웃는 입, 아스팔트에 아무렇게나 버린 패스트푸드 포장지와 종이컵이 뉴스다, 저 위쪽 거리에 살다가 떠나기로 결심한 은퇴자 부부가, 그들이 진입로에서 하는 말다툼이, 차에 실을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손을 펄럭거리는 아내가, 굳은 표정에서 아내를 보는 남편이, 아내가 아이처럼 끌어안은 검정 가방이, 그 가방에 들어 있는 것이 뉴스다. 자동차에 실린 모든 짐이, 남편이 올라앉아서 겨우 닫는 자동차 트렁크가, 마지막으로 자물쇠가 채워진 진입로 대문이, 밤이 와도 불이 켜지지 않는 집이 뉴스다. 일주일 동안 빨간불이었다가 결국 꺼져버리는 신호등,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할 자동차, 점점 쪼그라드는 거리의 분위기, 셔터를 내린 가게들, 합판을 댄 창문들, 쉰 목소리로 밤새 짖는 개들, 통화가 너무 위험해서 이제 전화하지 않는 장남, 그 애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뉴스다.

 

(235)

아빠는 늘 너와 함께 있어, 아일리시가 말한다. 떠나 있어도 마찬가지야, 그게 그 꿈의 의미야, 아빠는 항상 여기에 너와 함께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집에 온 거야. 왜냐면 아빠는 늘 네 마음속에 살아 있으니까, 아빠는 지금 여기서 팔로 너를 감싸고 있어, 아빠는 항상 여기 있을 거야. 왜냐면 어렸을 때 우리가 받은 사랑은 우리 안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아빠는 너를 너무 많이 사랑했어. 너에 대한 아빠의 사랑을 빼앗거나 지울 수는 없어, 나한테 설명을 묻지는 말고 그냥 진실이라고 믿어, 그게 진실이니까, 그게 인간 마음의 법칙이야.

 

(307)

아릴리시는 주먹을 쫙 쥐고 발끝으로 땅을 민다. 살아서 아이들을 보고 싶다. 총격이 멈추면서 머리 위에서 깊은 정적이 열리고 반란군 병사가 소리친다, 아일리시는 손을 흔들어서 살아 있다고 알리기가 두렵다, 그녀는 세상과 절대적으로 맞닿은 채 미동도 없이 누워 있다가 갑자기 죽지 않으리라는 느낌이 든다, 아스팔트에 박힌 자갈을 본다, 수십억 년 전에 열기가 압력에 의해 만들어진 지구의 돌, 하지만 그녀에게는 지금 이 순간밖에 없다, 가야 한다, 내면의 힘이 몸속에서 퍼지고 눈을 감자 지나간 세월과 아직 살지 않은 시간이 보인다, 갑자기 무언가가 아일리시를 일으켜 움직이게 만든다, 그녀는 달리는 몸이 된다.

 

(354-355)

예언자들의 노래는 그 어느 때나 항상 반복되던 똑 같은 노래임을 깨닫는다, 칼의 도래, 불에 삼켜지는 세상, 정오에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태양, 어둠에 잠긴 세상, 곧 눈에 보이지 않도록 쫓겨날 사악함에 대해서 예언자가 길길이 날뛸 때 그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신의 분노,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과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종말이다, 세상은 어느 곳에서는 늘 끝나고 또 끝나지만 다른 곳에서는 끝나지 않는다, 세상의 종말은 늘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세상의 종말이 당신 나라에 찾아가고 당신 동네를 방문하고 당신 집의 문을 두드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머나먼 경고, 짤막한 뉴스, 전설이 되어버린 사건들의 메아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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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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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불가리아 작가,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라는 사람의 <타임 셸터>라는 소설이란다. 불가리아 작가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인 것 같구나. 어떻게 불가리아 작가의 책을 읽게 되었냐면,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광고 문구에 혹해서 읽었단다. 인터내셔널 부커상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님이 <채식주의자>로 수상한 상이잖니. 그런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이라고 하니 더욱 읽어보고 싶었단다.

책 소개를 읽어보니, 이 책이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한 2023년에 아빠도 좋아하는 작가인 천명관 님이 쓴, 아빠도 재미있게 읽은 <고래>라는 작품이 최종 후보에 올랐었다고 하는구나. 천명관 님의 <고래>가 수상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그랬다면 이 책은 읽을 기회가 없었겠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불가리아 최초로 인터내셔날 부커상을 수상했다고 하는구나. 물론 아빠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이고

제목 <타임 셸터>는 우리말로 해석하면 시간 대피소정도로 해석될 것 같구나. 책 제목에 타임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타임 슬립 장르는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어. 시간 여행하는 소재의 소설은 늘 재미 있었지. 이 책도 어찌 보면 시간 여행을 소재로 했다고 볼 수도 있겠더구나. 하지만 책장이 쉽사리 휙휙 넘어가지는 않았어. 불가리아의 현대사와 유럽의 현대사를 이해하고 있다면 좀더 읽기 수월했을 것 같은데, 아빠는 그런 지식이 부족하여 읽는데 쉽지는 않았단다. 우리가 통영 여행갈 때 가볍게 읽으려고 이 책을 가지고 갔는데, 읽기 쉽지 않아서 여행 중에는 거의 읽지 못했구나.  

, 그럼 이야기를 해보자.

 

1.

소설 내내 주인공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은 것 같아. 일인칭의 가 주인공이고 직업은 소설가인 것으로 보아 지은이 자신이 감정이입 되어 썼을 것으로 추측된단다. 소설가 9월 초 바닷가에서 열린 문학학회에서 가우스틴이라는 사람을 새로 알게 되고, 학회가 끝난 이후에도 교류하면서 지냈어. ‘는 학회가 끝나고 뉴욕으로 돌아온 이후로 가우스틴에게 편지를 쓰며 한 동안 연락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연락이 끊겼단다. 그랬다가 취리히 문학관 초청으로 한달간 취리히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불가리아 이민자를 한 명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람이 가우스틴을 알고 있다고 하여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단다.

가우스틴은 새로운 클리닉을 구상하고 있었어.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해 과거의 한 시점과 장소를 꾸며서 환자들의 기억을 돕는 클리닉이었어.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기억을 잃어가도 특정 시간대와 특정 장소의 기억을 잘 한다는 것을 이용한 클리닉이었어. 이 일에 도 도움을 주었어. 이 클리닉은 점점 잘 되어 유럽 여기저기에 분점이 생기기 시작했단다. 이 클리닉을 보면 어떤 층은 1970년대풍으로 꾸몄고, 어떤 층은 1960년대 풍으로 꾸미는 등 환자 맞춤형으로 꾸며 놓았단다. 책 표지가 그런 것을 의미하는 디자인 것 같았어.

그런데 이 클리닉이 성황을 이루면서 알츠하이머 환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찾아오기 시작했어.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누구나 가지고 있을 거야. 특히 아빠와 같이 중년이나 노년의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 같구나. 그래서 이렇게 과거의 시간을 꾸며지는 타임 셸터는 유럽 여기저기서 성행을 했어. 이것이 유행하면서 일반 거리에서도 옛 복고풍의 옷을 입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이었단다. 그리고 아날로그를 즐기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었어. 다들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었어.

 

2.

이런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려는 유행은 점점 퍼져서 이젠 나라 전체가 과거로 돌아가려는 투표도 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몇 년도 돌아갈지 국민투표를 하기도 했어. 유럽의 각국의 국민투표 사례를 들어주었어. 대부분의 나라들이 과거 자신의 국가가 가장 찬란하고 화려했던 그 시절이 많은 표를 얻고,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었단다. ‘의 모국인 불가리아는 사회주의 국가 시절이었던 1970년대가 0.3%의 아주 근소한 차로 승리하였단다.

불가리아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사회주의 시절이 근소하게나마 더 좋았나 보구나. 자본주의 무한경쟁에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아닌가 싶구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데, 스마트폰, SNS 등은 어떻게 해야 할까? 논란이 되기도 했단다. 그 시절에 스마트폰과 SNS이 없었으니 말이야. 그리고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갈 때는 그 나라가 몇 년대로 회귀했는지 꼭 알고 가야 낭패를 당하는 일이 없다고 했어. 과거 낭만을 찾다가 더 복잡해진 세상이 된 것 같기도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했어. 2024년 사라예보에서는 1914년 과거에 있었던 암살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어. 1914년 사라예보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워서 알 수도 있으니 이건 퀴즈…^^

….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1939년도로 돌아가려는 무리들이 있다는 거야….. 1939.. 그 무시무시한 세계2차대전이 벌어진 날이잖니. 국경 지역에 군대들이 밀집되어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소설은 그 뒷이야기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 건지, ‘내일은 9 1일이었다.’라는 문장과 함께 소설은 끝이 났단다. 그 일이 반복된다면 이건 타임 셸터가 아니고 타임 홀로코스트가 아닐까? 싶구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이 책을 어렵게 읽고 사전 지식이 많지 않아서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잘 모르겠구나. 그냥 아빠 식대로 해석을 해보았단다.

….

이 책은 이런 스토리 이외에 중간중간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고, 나이듦에 대한 생각을 하는 문장들이 여럿 있었단다.

===============

(169-170)

인생(과 시간)이란 얼마나 도둑 같은가, ? 얼마나 강도 같은가….. 평화로운 카라반을 매복 공격하는 악랄한 노상강도보다 더 악랄하다. 그런 노상강도들은 돈 가방과 숨겨둔 황금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당신이 유순하여 실랑이 없이 재물을 내놓으면 다른 것-목숨, 기억, 심장, 생기-은 빼앗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이나 시간이라는 이 강도는 어느덧 다가와 모든 것-기억, 심장, 청력, 생기-을 앗아간다. 심지어 고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손에 넣는다. 그걸로도 모자라는지 그 와중에 당신을 조롱하기까지 한다. 가슴을 축 늘어지게 하고, 엉덩이엔 뼈만 남게 하고, 허리를 굽게 하고, 머리칼을 성긴 백발로 변하게 하고, 귀에서 털이 자라게 하고, 온몸에 점을 뿌려놓고, 손과 얼굴에 검버섯을 돋게 하고, 앞뒤 안 맞는 말을 지껄이지 않으면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게 하고, 모든 말을 빼앗아 아둔하고 망령 든 사람이 되게 한다. 그 개자식은-인생, 시간, 노년 다 똑같다, 똑 같은 쓰레기, 똑 같은 깡패다. 그 개자식은 처음에는 적어도 공손해지려는 노력이라도 한다. 솜씨 좋은 소매치기처럼 일정한 한계 안에서만 도둑질하는 것이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작은 것들을 훔쳐간다-단추 한 개, 양말 한 짝, 가슴 왼쪽 윗부분의 미세하게 찌릿한 통증, 몇 밀리미터쯤 두꺼워진 안경, 앨범 속 사진 세 장, 얼굴들, 그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

그리고 알츠하이머에 대한 생각도

어느날 아침 일어났는데, 중간의 기억은 다 까먹고 40년 전의 기억만 생생하다고 생각해봐. 나의 기억으로는 하룻밤을 잔 것인데, 40년이 지나 있다고 생각해 보렴. , 얼마나 끔찍하겠니.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뇌운동을 해야겠구나.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고 그래야겠다.

이 책이 천명관의 <고래>를 밀어내고 인터내셔날 부커상을 탔다고 하는데, 아빠는 천명관 님의 <고래>가 훨씬 재미있었단다. <타임 셸터>의 유럽적 감성과 지성이 가미되어 있어서 수상되지 않았을까 싶구나. <채식주의자> 이후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들이 인터내셔날 부커상이 후보작에 간간히 올랐다고 하던데, 올해는 다시 한번 우리나라 작품이 수상했으면 좋겠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언젠가 사람들은 시간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지구가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를 계산하려고 했다.

책의 끝 문장: 내일은 9 1일이었다.

 



취리히는 늙어가기에 좋은 도시다. 죽기에도 좋다. 유럽의 나이 지형도 같은 게 있다면 분명 다음과 같이 분포되어 있을 것이다. 파리, 베를린, 암스테르담은 젊음을 위한 곳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분위기, 어디선가 풍겨오는 대마초 냄새, 마우어파크에서 맥주를 마시고 풀밭에서 뒹굴거리는 사람들, 일요일의 벼룩시장, 가벼운 섹스…… 그 다음에는 빈이나 브뤼셀의 원숙함이 자리한다. 느려지는 박자, 안락함, 전차, 적절한 건강보험, 아이들을 위한 학교, 약간의 경력 쌓기, 유럽연합의 지루한 행정직 일자리. 그래, 좋다, 아직 늙기 싫은 사람들을 위해서는-로마,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맛있는 음식과 훈훈한 오후는 교통, 체증, 소음, 약간의 무질서를 상쇄할 것이다. 젊음의 막바지에 이른 이들에게는 뉴욕을 추가하겠다. 그렇다. 나는 그곳을 어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대서양 너머로 건너간 유럽 도시로 간주한다. - P40

가만히 앉아서 인생 끝자락에 여기에 온 사람들과 함께 흘러가는 나의 불가리아 과거를 바라본다. 노인들은 언제나 나를 매혹한다. 나는 어렸을 때 노인들과 함께 살았다. 조부모와 더불어 자란 우리는 그들과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다른 한 세대를 통째로 잃어버렸다. 바로 우리 부모들. 이제 나도 그들과 같은 대열에 합류했음을 깨닫는 지금, 나의 매혹에는 또다른 동기도 있다. 죽음을 직면하고 삶에서 계속 멀어지면서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구해낼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기억으로라도, 그러고 나면 그 개인적 과거는 다 어디로 가는가? - P79

향을 기록하는 장비가 없다는 사실이 진정 놀랍지 않은가? 실은 하나가 있긴 하다. 기술보다 앞서 존재한 단 하나의 도구, 가장 오래된 아날로그 도구. 그것은 물론 언어다. 당분간은 언어 말고 다른 도구가 없으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여러 향기를 말로 포착해 또다른 노트에 추가해야 한다. 우리는 묘사해봤거나 배교해본 향기만을 기억한다. 놀라운 점은 이런저런 냄새에 대한 이름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느님 혹은 아담은 일을 제대로 끝마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빨강, 파랑, 노랑, 보라 등등의 이름이 있는 색깔과는 다르다. 향기는 언제나 비교를 통해, 묘사를 통해 인식된다. 제비꽃 냄새가 난다. 토스트 냄새가, 해초 냄새가, 비 냄새가, 죽은 고양이 냄새가…… 하지만 제비꽃, 토스트, 해초, 비, 그리고 죽은 고양이는 향기의 이름이 아니다. 이 얼마나 부당한가. 아니 어쩌면 이 불가능성 아래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다른 징조가 숨어 있는지도……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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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유니버시티 하이츠 고등학교의 교사인 파블로 뮤리엘은 자기네 학교 졸업생들에게 이런 좋은 대학교들은 모두 필드스톤 같은 이질적인 환경이라고 설명한다. 필드스톤을 졸업한 학생들은 이런 대학교에 가도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과 익숙한 커리큘럼에서 마음껏 공부를 하게 되지만 유니버시티 하이츠 졸업생들에게는 완전히 낯선 세계다. 그런 의미에서 라켈은 아주 특별한 경우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브롱크스 아이들의 꿈인 중산층 진입에 가장 유리한 고지에 들어간 것이다. 라켈에게도 대학교 졸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고등학교 동창들이 줄줄이 대학을 중퇴하는 것을 보면서 그 역시 대학을 졸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에게 너는 자격이 있어, 너는 자격이 있어를 되뇌었다고 한다.

 

(62)

외로운 사람들도 일종의 궁핍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궁핍은 인간관계의 부족, 즉 친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인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신이 상대방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는 것. 그렇게 보니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어색해지는데,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즉 대인관계에서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집착이 친구를 사귀고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것을 막는다. 이는 그 개인이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궁핍한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그들을 붙잡고 있는 환경이다.

 

(77)

당시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도날드 트럼프는 이 사건을 두고 “(뉴욕주에) 사형제도를 재도입해야 한다며 이들을 사용하자는 전면광고를 신문에 게재했다. 트럼프는 이미 그때부터 백인들의 인종차별적 사고에 기반한 분노를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인기를 쌓아온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인종주의자들의 표를 끌어오기 위해 돌아선 것이 아니다. 트럼프는 나중에 이들의 누명이 벗겨진 후에도 당시 게재한 광고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다.

 

(104-105)

칼슨에 따르면 자유로운 남자들이 주머니를 독점하면서 주머니는 남성의 실용성과 호기심의 상징처럼 묘사되기 시작한다. 우선 남자가 사용하는 다양한 물건에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포켓 사이즈(pocket-size)’ 버전이 생겨났다. 일하는 남자들이 언제든 도구를 꺼내어 사용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유능하다는 이미지를 준다.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했던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대통령이었다. 철학과 과학, 건축과 농업, 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전형적인 계몽주의자였던 제퍼슨은 주머니에 작은 가위와 줄자, , , 온도계, 나침반 등 다양한 (포켓 사이즈의) 물건을 가지고 다니며 사용해서 걸어 다니는 계산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제퍼슨이 휴대한 물건 중에는 상아로 만든 노트도 있었다. 제퍼슨은 쓰고지울 수 있는 상아 노트에 생각을 적고 나중에 집에 가서 종이에 옮겼다고 한다. 그에게 주머니는 움직이는 실험실, 작업실이었던 셈이고 이는 계몽된 남성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117)

지금은 어떨까? 몇 년 전 한 대학교 캠퍼스 옆에서 아이폰 수리점을 운영하는 분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공식적인 인터뷰가 끝나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평소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깨진 화면을 수리하러 오는 사람 중 남자와 여자, 어느 쪽이 많으냐는 게 내 궁금증이었다. 내 주변에서 화면이 깨진 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답은 깨진 화면 수리를 원하는 고객은 90퍼센트가 여성이었다. 그 이유를 두고 온라인에서도 많은 추측이 있지만 여자 옷에 스마트폰이 들어갈 주머니가 남자 옷만큼 많지 않아 손에 들고 다니는 시간이 길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196-197)

미국인의 문제는 문화적 폐쇄성이었다. 미국인들은 남미와 남유럽 문화를 영미 문화보다 뒤떨어진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들의 음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미국인들은 맵거나 향이 강한 음식을 흥분제라고 생각했고 이런 음식은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향이 강한 음식은 카페인이나 알코올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취급했고 그런 음식을 좋아하다 보면 결국 코카인과 헤로인 같은 중독성 마약에 빠져들게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인들은 올리브를 기피했고 마늘과 식초가 반드시 들어가는 피클 같은 음식도 피했다. 물론 지금 미국인들은 완전히 다른 태도를 갖고 있어서 다양한 문화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의 지위 상징이 되었다. 이런 태도가 과거 미국에도 퍼져서 남미,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남유럽 문화에서 먹는 것처럼 다양한 식재료와 향신료가 사용되었더라면 대기근과 대공황을 견디기 훨씬 쉬웠을 거라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이들에게 음식 문화의 다양성은 배려가 아니라 삶과 경험을 풍성하게 해주는 고마운 요소다.

 

(209)

이렇게 조니 뎁의 인기가 시들어가던 시기가 앰버 허드와 결혼 생활을 하던 때라고 해서 허드를 악처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허드가 가정에서 어떤 사람이었느냐와 상관없이 뎁의 인기하락은 본인의 관리 능력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 할리우드에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 남자 배우가 자기관리에 실패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런 인물로 대표적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우니 주니어는 그런 일을 젊은 시절에 겪으며 바닥을 치고 올라온 반면 뎁은 50이 넘어 인기가 사그라지는 시점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연예계 소식을 심도 있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한 <롤링스톤> 2018년에 실은 기사 조니 뎁의 문제는 이 모든 잘못이 분명하게 뎁 본인에게 있다고 설명한다. 이 기사는 조니 뎁은 술과 마약에 취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났으며,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라이트스타일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현재 뎁은 재산을 날리고 고립되어 있으며 한 번만 더 실수하면 업계에서 추방당할 것이라는 잔인한 진단을 내렸다. 앰버 허드의 칼럼보다 4년 앞서 나온 기사였다.

 

(251)

슐츠의 아내 진 슐츠는 2000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회상하면서 그의 만화가 워낙 부드러운 톤을 갖고 있어서 스포츠는 여학생들이 하는 게 아니다라는 당시 사회적 통념과 배치된 내용을 그려도 사람들은 반발을 하지 않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피너프>의 캐릭터들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여자아이들이 스포츠 활동을 하는 걸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 슐츠는 남편의 역할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여성들이 불평을 하고 법안 통과를 촉구했기 때문이지, 남성들이 준 선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311)

하지만 미국의 중산층 백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흑인들의 상황이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제 중요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게 된 상황에서 흑인들의 추가적인 요구는 지나치다고 여겼다. 사회의 변화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니 성급하게 요구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백인들의 생각에 대해 킹 목사는 유명한 <버밍햄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종분리의 날카로운 고통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기다리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나운 무리가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거침없이 폭행해서 죽이고 당신의 형제와 자매를 물에 던져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면, 증오가 가득한 경찰이 흑인을 욕하고 발로 차고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면 (…) 기다리는 것이 왜 힘든지 이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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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말을 다 허자면 속에서 천불이 올르는디, 막말로 인자 대통령도 안 믿소. 아 금메 우리 농촌사람들 다 죽이기로 작정혔는지 농산물값이 해마동 똥값이 되는디다가, 돼지값도 똥값이 되는 판에 워쩔라고 나라가 사딜이는 미곡수매가꺼정 말뚝 박어 묶어뿌냐 그것이오. 근디다가 그 빌어묵을 놈으 주택개량인가 집 껍데기 뒤집어 바꾸긴가를 억지로 몰아대서 글 안 해도 찢어지게 가난헌 살림에 집집마동 빚더미에 올라앉게 혀부렀단 말이오. 판이 요리 각다분허니 되야분께 땅 파묵어 갖고는 앞날이 캄캄허다 생각헌 사람들이 보따리 싸짊어지고 줄줄이 도시로 나가기 시작혔고. 도시에 나가 막노동에 등짐을 져도 세 끼 밥 편케 묵고 새끼덜 공부 갤칠 수 있다고 험서. 인자 처녀 총각들만 도시로 내빼는 시상이 아니다 그것이오.”

 

(102)

그런데 그 조직이 어느 날 갑자기 통일혁명당이라고 지목되었다. 그와 동시에 대규모 간첩단으로 몰리고 말았다. 그건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월남으로 몸을 피해가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건 너무 황당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누명이었다. 토론회에서 가끔 민족 분단이 의제가 되긴 했지만 통일을 혁명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제가 등장한 일은 없었고, 박정희의 강압정치를 비판한 적은 있지만 간첩 노릇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분명한 사실이지만, 만약 위에서 혁명적 통일을 위해 이북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낌새라도 보였더라면 단연코 그 조직에 등을 돌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통령일 뿐이면서 황제적 권한을 휘둘러대는 박정희도 싫을 뿐만 아니라 1인 독재로 우상이 되어 있는 북의 김도 똑같이 싫었고, 민족 통일에 관한 한 끝도 한도 없이 반목만을 일삼고 있는 남과 북의 정치 집단에 대해 용서할 수 없는 불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86)

그야 뭐 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저런 잇속으로 서로가 다 얽혀 있는 관계니까요. 아 참, 딱 한 사람이 반성을 했군요. 소설가 채만식이라고, 제 책 때문에 해방이 되자마자 그 사람은 민족 앞에 죄지은 붓을 더 놀려 글을 쓰지 않겠다고 절필 선언을 했습니다. 그 사람의 친일은 이광수에 비해 몇백 분의 1도 안 되는데, 친일의 글을 쓴 것은 민족을 위해서였다고 파렴치하기 이를 데 없는 괴변을 늘어놓으며 끝끝내 반성을 하지 않았던 이광수하고는 좋은 대조가 되지요. 다른 문인들이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온갖 비양심적이고 해괴망측한 변명들을 해대며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뻔뻔스럽게 살아가는 데는 이광수가 반성하지 않은 것에 절대적인 책임이 있지요. 왜냐하면 이광수는 친일의 거두일 뿐만 아니라 문단의 최고 원로였으니까요. 이광수가 민족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더라면 그 뒤에 선후배들이 어찌 감히 말도 안 되는 변명들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201)

, 사실이 그렇더라도 인간과 인간사를 너무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허무를 강조하고, 또 너무 결과론적으로 만사를 정의하며 허무를 입증하다 보니 이 세상 모든 것이 허무의 바다에 뒤덮여 인간의 현실이 너무 도외시되거나 묵살되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모든 종교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현실적 삶의 문제를 위한 창조물인데 불교는 지나치게 무상의 사상에 치우치다 보니 현실과 멀어지고 있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208-209)

. 제가 대충 알기로는 석가모니의 생애야말로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단계가 출가를 해서 고행 수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전반기이고, 2단계는 사회 속으로 들어와 무리 대중을 상대로 수많은 설법을 해서 인간의 정신을 정화시키고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려고 노력했던 실행의 후반기입니다. 석가모니는 그 두 단계의 균형을 통해서 구도자의 모범을 완성시켰고, 자신을 뒤따르는 승려들도 그렇게 하라고 시범을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의 승려들은 그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수행과 실행의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고 확대함으로써 서로 소모적인 갈등을 일으키고, 끝내는 부처님의 숭고한 뜻을 왜곡하면서 불교를 반쪽의 불구로 만들었습니다. 그 어떤 종교들 중에서 불교는 경전이 제일 많기로 유명합니다. 어느 종교나 경전은 무엇입니까? 종교 창시자들의 설법 모음 아닙니까? 불교가 경전이 많다는 것은 부처님이 그만큼 대중을 중시하여 설법을 많이 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한국 불교는 선에만 집착하여 승려들이 산중에 묻혀 있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칠 뿐 대중과의 교류인 언어 소통을 경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성을 상실하고, 사회적 임무를 방기하고, 사회 봉사를 하지 않는 반쪽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게 아무것도 모르는 자의 주제넘고 시건방진 입놀림인가요?

 

(237)

너 그 따위 소리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애저녁에 정치 때려치워라. 박통은 뭐 군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겠다는 혁명공약을 국민 앞에 내걸지 않아서 18년 동안이나 해먹다가 그렇게 비명횡사했냐? 정치란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는 것 빼놓고는 뭐가 있냐? 그리고, 너 지금 이 나라 정치가 누구 손에서 놀아나고, 권력이 누구 손에 틀어잡혀 있는지 몰라서 그 따위 소리하는 게냐? 그리고 권력이라는 건 뭐냐? 애비가 아들도 죽이고, 아들이 애비도 죽이는 것 아니냐? 그런데 그걸 순순히 내봐? 어림 반품어치도 없는 소리하지도 말아라. 정치인들은 즈네들이 다시 권력 잡을 욕심으로 그 말을 믿고 싶고, 게엄이 빨리 해제되어 군인들의 꼴을 안 보기 바라겠지. 허나, 그건 십중팔구 잘못 짚은 몽상이야. 알아들어?”

 

(242-243)

좋아, 자본을 댄 기업주의 권한을 충분히 인정해. 또 기업주들이 바치는 노력도 다 인정해. 그렇지만 기업주들은 자기네가 투자한 자본의 몇 배의 이익을 얻어야 만족하는 거지? 백 배? 천 배? 만 배? 그게 아니잖아. 무한정, 영원히 이익을 보려고 욕심부리고 있어. 그게 말이나 돼? 노동자들은 최저생계비도 못 되는 임금을 받으며 혹사당하고 있는데 기업주들만 무한대의 치부를 하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야. 자본주의니까 어쩔 수 없다고? 그건 자본주의가 아니야. 봉건적 착취주의지. 올바른 자본주의란 분배를 통해서 자본과 노동이 수평적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거야. 자본 없는 노동은 있을 수 없다고? 그 말 옳아. 그러나, 노동 없는 자본이 있을 수 있어? 자본과 노동이란 기업이라는 기차가 달리게 하는 두 줄의 레일이야. 그 비중이 균형을 이루지 기업은 결국 망해. 기업이 망하지 않게 하려면 기업인들은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분배를 해야 하고, 기업의 주인이 자기 혼자라는 잘못된 생각도 뜯어고쳐야 돼. 자기가 투자한 자본보다 수천 배, 수만 배를 빼먹고도 기업 자산은 또 수천만 배로 커졌는데 어찌 그게 다 자기 거야. 그 절반은 노동으로 그 자산을 키워낸 노동자들의 것이지. 그 몫을 찾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이젠 일방적 착취의 시대는 지났어. , 노조가 존재해야만 자본과 노동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그 토대 위에서 천민자본주의가 아닌 올바른 자본주의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거야. 빨리 의식을 고쳐.”

 

(251-252)

3월의 꽃샘바람이 지나가고 4월과 더불어 화사한 봄이 꽃송이 속에서 벙글고 있었다. 3월이 오는 봄이고, 5월이 가는 봄이라면, 4월은 머무는 봄이었다. 그러나 봄은 꽃이나 나무들에게 왔을 뿐 사람들에게는 오지 않았다. 계엄은 제주도와 변두리 지방 일부에서만 해제되고 큰 도시들에서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며 사람들을 겨울에 묶여놓고 있었다. 처음보다 덜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신문들은 여기저기 먹통으로 지워진 흉한 꼴로 배달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신문보다도 기세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새로 퍼지는 소문들에 더 귀기울이고, 친한 사람들끼리 수군거리기에 바빴다. 그러나 귓속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었다. 신문 검열 거부를 결의한 사람들이 전원 구속되는가 하면, 어느 신문사 기자들은 유언비어 쇠고랑을 차는 판이었다. 그런 사실들을 신문이다 방송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들은 바짝 얼어붙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수직종인 신문기자들이 그렇게 당하면 보통사람들이야 오죽하랴, 하는 반사작용이었다. 계엄사에서 굳이 그런 사건들을 보도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파급 효과를 노리는 때문인지도 몰랐다.

 

(299-300)

이것 봐, 아까도 말한 거지만 말야. 자네 6.25 때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도 신문이고 방송을 믿어? 그때 방송에서 뭐라고 떠들어댔어? 국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을 사수할 테니 시민 여러분들은 하등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충실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알고 보니 어찌 됐어? 그 방송이 나올 때는 벌써 이승만이는 한강을 건너 대전으로 줄행랑을 치고 있었고, 한강 다리는 폭파된 뒤였잖아. 그 빌어먹을 놈에 방송 때문에 피난도 못 가고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어. 그런데도 방송을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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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3 - 제1부 격랑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요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독서편지가 다시 밀리고 있구나. 오늘도 더 이상 밀리지 않기 위해 컨디션이 썩 좋지 않지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단다. 오늘은 아빠가 주말마다 다시 읽기를 하고 있는 조정래 님의 <한강> 3권의 이야기란다. <한강>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강> 3권이 1격랑시대의 마지막 이야기란다. 그럼 곧바로 이야기를 해줄게.

2권에서는 1961년 군사쿠데타와 그 이후의 이야기들이 펼쳐졌잖니. 3권에서도 그 연장선상의 이야기라 볼 수 있단다. 먼저 해남댁 이야기부터 할게. 해남댁은 이규백의 형수로 이규백의 형이 사라 태풍 때 죽고 나서 해남댁은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어. 2권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해남댁을 짝사랑하던 황춘길에게 해냄댁도 어느 정도 마음을 내주었지. 황춘길은 해남댁에게 도망가서 따로 살림을 차리자고 설득을 계속 했어. 그러던 중에 해남댁이 임신까지 하게 되어 해남댁도 황춘길의 의견대로 도망가기로 마음을 먹었단다. 도망 가기 전에 황춘길은 빌려준 고리채를 받고 가려고 했는데, 그만 이것을 사기 당해서 못 받는 지경에 이르렀어. 당시 나라에서는 고리채를 불법으로 규정해서 빌려간 사람이 이를 이용하여 안 주려고 했던 거야. 이에 화가 난 황춘길은 채무자를 찾아가 강제로 받아내려고 했으나, 채무자는 끝까지 버티고 있었어. 결국 실랑이 끝에 황춘길은 채무자를 죽이고 말았단다. 뜻밖에 상황이 발생하여 황춘길은 해남댁을 찾아와 바로 도망을 갔단다. 원래 해남댁의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가려고 했으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이들은 다음을 기약하고 둘이 먼저 길을 떠났단다.

고등고시를 노리던 김선오는 불합격을 하고, 남천장학사에서는 김선오의 일년 선배 이규백이 유일하게 합격을 했단다. 김선오는 당연히 붙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불합격을 했고, 경쟁자이자 선배인 이규백이 합격하여 더욱 스트레스를 받았단다. 남처장학사에서는 이규백의 합격 축하 파티를 했고, 국회의원 강기수는 이규백을 데리고 고향까지 가서 축하를 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강기수는 영악하기 그지없는 정치인이구나.

 

1.

1권에서 나왔던 나삼득의 장남 나복남은 천두만 아저씨의 도움으로 공장에 들어갔는데, 그 공장이 스테인리스 공장이었어. 그 공장의 일은 너무 위험한 작업이 많아서 손가락이 성한 사람들이 적었어. 나복남도 언제 손가락이 다칠 수 있는 위험이 있어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 다른 일을 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술도 없었어.

유일표의 친구 허진은 일과 공부를 무리하게 병행하다가 그만 늑막염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어. 그러나 입원비가 없었지. 허진의 할머니는 독립운동가 유공자 가족으로 알고 지내던 정보살한테 도움을 청했고, 정보살은 유족회 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단다. 유족회 회장은 다시 이용진이라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이용진은 근로재건단이라는 운영하고 있는데, 근로재건단은 가난한 아이들을 도와주며 넝마주이 사업을 하는 단체였어. 위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모두 독립운동가 후손들인데 나라에서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어. 특히 군사쿠데타 이후에는 유족회도 강제로 해체되었다고 했어. 이용진의 도움으로 허진은 몸이 회복되었어. 이용진은 허진이 공부도 곧잘 하는 것을 알고 근로재건단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했어. 그 대신 자신은 허진의 검정고시와 대학을 지원해주겠다고 했단다. 허진은 이에 친구인 최주한, 이상재에게 이야기해서 함께 근로재건단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했단다. 허진의 단짝인 유일표도 당연히 동참해야겠지만, 얼마 전부터 유일표와 연락이 두절되어 함께 하지 못했단다.

….

유일표의 형 유일민은 군에 입대하여 강원도 인계에서 군생활을 했어. 유일민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계속 경찰의 조사를 받고 직업에도 계속 제한이 있었잖니. 그런 유일민을 짝사랑하는 임채옥도 기억나지? 임채옥은 유일민의 군대에 면회를 갔단다. 유일민은 임채옥을 멀리하기로 마음 먹어서 면회 장소에 안 나오려고 했지만, 또 사람 마음이란 것이 그리 냉정할 수 없잖니.. 그렇게 멀리서 면회를 왔는데 말이야. 유일민과 임채옥은 재회를 했단다.

유일표는 학과를 고민하다가 결국 철학과에 입학했단다.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가고 싶은 정치학과는 선택하지 못했지. 대학교에 붙자, 강숙자 누나가 대대적인 축하를 해주었단다. 강숙자의 아버지는 강기수 국회의원이잖니. 강숙자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지만, 뭐랄까 순수함은 있었던 것 같아. 아버지로부터 돈을 받아 헤프게 쓰고 경제적 관념은 없어 보였지만, 아버지처럼 영악하지 않고 순수했던 것 같아. 유일표가 가난하고 별볼일 없어도 대학에 붙으니 선물도 사주고 축하고 해주고 말이야. 그리고 강기수가 고등고시에 합격한 이규백과 결혼시키려고 하자, 강숙자는 이규백을 만나 당신 같은 사람은 싫다고 딱 잡아떼며 이야기했단다. 이규백은 여기저기 선 자리가 들어오고, 재벌가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단다.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들의 정권이 길어지면서, 4.19 혁명에 참여했던 대학생들도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미국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토론도 했단다. 그들의 말 중에 공감이 가는 말이 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미국도 결국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말이지. 그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자국 이기주의의 최고봉인 트럼프까지 이어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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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2)

이봐, 술도 아직 안 취하구선 그런 순진한 소리 하지 말어. 케네디가 뭐 별거야? 그는 충실한 미국 대통령일 뿐이야. 미국은 공산주의 종주국인 쏘련과 대적하는 자유민주주의 종주국을 자처하고 있고, 케네디는 그 총사령관으로서 세계에서 제일가는 반공주의자야. 그러니까 그가 가장 환영하는 건 반공을 내세우는 나라의 지배자들이지. 박정희는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인 거야. 그런데, 박정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가 차지하고 있는 지정학적 중대성이야. 미국의 입장에서 남한이 적화된다 하면 어떻겠어? 그거야말로 눈 뒤집힐 끔찍한 일인 거야.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는 곧바로 일본의 공산화로 확대되고, 그렇게 두 겹의 방화벽이 무너지면 미국은 자기네 호수처럼 독차지하고 있던 태평양을 반이나 잃으면서 쏘련과 맞닥뜨리게 되는 거지.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아. 태평양으로 진출한 쏘련의 승리는 중공을 자극해서 대만을 단숨에 손아귀에 넣게 되고, 월남이나 라오스같이 지금 불안한 상태에 있는 나라들까지 금방 중공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말야. 그럼 어떻게 되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는 연쇄적으로 적화 위험에 빠지게 되고, 미국은 동북아시아에 이어 동남아시아까지 잃게 되어 마침내 세계 2대 강국에서 탈락하는 비참한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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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두만은 인천의 부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곳도 열악한 환경은 마찬가지였어. 좁은 숙소에서 여러 명이 함께 숙식하면서 일했고, 병이 나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도 있단다. 하지만 나라는 그들은 안중에도 없었지.

김선오의 동생 김명숙은 시골에 처박혀 사는 것이 염증을 느끼고 무작정 가출을 해서 성냥공장에서 일했단다. 좋은 공장에 가고 싶었지만 거금의 뒷돈이 필요했어. 결국 친구 나복녀와 함께 서울에 가서 일자리를 얻기로 했단다.

군생활을 하고 있던 유일민을 방첩대에서 찾아왔어. 유일민의 어머니와 동생 유일표가 사라졌다는 거야. 유일민도 처음 듣는 소식이었어. 나중에 한참 지나고 유일표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어머니가 얼마 전에 곗돈 사기를 당한 것이 있었는데, 이것을 복수한다고 똑같이 다른 곗돈을 들고 서울에 와서 유일표와 함께 숨어 지냈다는 거야. 앞서 허진과 친구들 이야기하면서 유일표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는데, 어머니와 은거하고 있어서 그랬던 거란다. 8개월만에 어머니는 경찰에 잡혀 구치소에 들어가셨다고 했어. 유일민이 휴가를 나와 어머니를 면회를 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유일민은 서동철을 만났단다. 서동철은 건설대에서 1년 근무를 마치고 서울에 와서 지내고 있었거든. 서동철은 자신이 어머니를 빼낼 수 있는지 빽을 알아본다고 했지만, 유일민의 어머니가 실형을 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단다. 시간이 흐르고 유일민이 제대하는 날, 임채옥은 먼 군대까지 찾아오고, 폭설로 버스가 중간에 멈춰 버려 둘은 같이 하룻밤을 함께 보냈단다. 유일민의 어머니 해촌댁은 감옥에서 나와서 서울에서 식당을 차렸는데, 유일민과 유일표가 도와주었어.

….

이 소설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서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끊어질 수 있는데 이해해주렴. 이번에는 남재구란 사람의 이야기야. 한민곤의 친구로 한인곤이 민주당 국회의원이 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그 사람. 남재구도 군인 출신인데 어느날 후배 군인이 찾아와서 혁명 세력이 정당을 만드는데 함께 하자고 설득을 했어. 그 동안 남재구가 걸어온 길을 보고, 친구 한민곤을 도와주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돈과 권력 앞에 장사가 없다고 남재구는 후배의 제안을 받아들였단다. 한민곤을 제대로 배신한 거지.

다시 일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김선오는 고등고시에 합격을 했단다. 그러자 이번에는 강기수가 김선오를 강숙자의 남편감으로 생각했단다. 그러나 김선오는 강숙자의 친구 박영자와 연애를 하고 있었어. 김선오는 자신은 여자친구가 있어 강숙자와 결혼하기 어렵다고 하자, 강기수는 곧바로 김선오를 선절했어. 강기수라는 빽을 잃은 김선오는 순천으로 발령을 받았단다.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던 박정희는 결국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예편하고 본격 정치인이 되어 민주공화당을 만들었고, 대통령 선거에 나섰단다.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와 벌인 대통령 선거에서

15만표의 차이로 간신히 당선되었단다. 당시는 아직 지역 감정이 없었던 시절이라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전라도의 몰표라고 하더구나. 그런 박정희가 향후 지역감정을 이용하게 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이 참 안타깝구나.

….

당시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많았지만 가장 큰 것은 한일협정이었단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일본과 다시 손을 잡다니그것도 3억 달러라는 적은 금액의 보상으로 길고 긴 일제 시대의 아픔을 퉁친다는 것이 말이 안되었지. 대학생들 주도로 한일협정 반대 시위가 연일 일어났단다.

3권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란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급변하는 시대의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발생해서 이런 것들을 모두 이야기를 해주려고 하니 이야기가 매끄럽지 않았던 것 같구나. 이 시대의 역사를 너희들이 학교에서 배울 텐데, 이 소설을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 같구나. 그렇지만 10권이나 긴 소설을 너희들이 읽은 시간이 없을 테니 아빠가 열심히 읽고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PS,

책의 첫 문장: 어이 웨 동주, 시방 사람이 죽어가고 있당께로.

책의 끝 문장: 허진은 강하게 고개를 내둘렀다.

 



"……의문을 갖지 말아라. 회의도 하지 말아라. 미래를 아는 인간은 아무도 없으며, 가망 없는 미래를 예상해서 현재의 삶에 불충실하는 것처럼 큰 어리석음은 없다. 공부에 열중해라." - P29

"시어머니는 해방 전해에 돌아가셨고, 시아버지는 해방되고 4년 만에 돌아가셨지요. 고문당하고 해서 감옥에서 얻은 병은 자꾸 깊어가고, 살림은 쪼들려 병 다스릴 돈은 없고, 나라가 섰대도 독립운동한 분네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시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말예요. 이승만이가 시아버지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새 나라가 서고 장관들이 임명되는데, 그중에 소문난 친일파들이 한둘이 아니었잖아요. 그걸 보시고 시아버지께서는 한바탕 통곡을 하시더니 그 다음부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런데 글쎄 다음날 보니까 베갯잇에 눈물 젖었던 자리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지 않겠어요. 처음엔 그게 뭔가 했는데, 그게 글쎄 말로만 듣던 피눈물이었어요. 그 뒤로 시아버지께서는 말 대신 한숨만 땅이 꺼지게 쉬시고, 병세는 날로 심해지다가 결국 한 달을 못 넘기고 돌아가셨어요." - P66

"한 번 배신한 자 두 번 배신한다는 말 있잖아. 만군으로 독립군 등뒤에 총질한 친일파가 또 한 짓이 쿠데타 주동이야. 자네 알지? 만군의 만행을. 자네와 내가 광복군으로 임정에 있지 않고 만주에서 활동했더라면 그자가 우리의 등뒤에 총질을 한 거라고. 그런 자가 일으킨 쿠데타에 야합해 뭘 해? 국회의원? 맙소사, 그것들이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어. 그자들 수뇌부에 만군과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한둘이 아닌 걸 자네도 잘 알지? 난 그자들과 맞서 싸우는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어." - P214

"허! 그거 꽤 논리적인 지적이군." 신준호는 민경섭을 빤히 쳐다보며 담배를 빼들고는, "그게 말이야……,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군사정권에서 추진한 그런 일들은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권에서나 해야 했고, 국민들이 원하고 호응하는 일이었어. 4.19, 그 혁명의 상황 속에서 정권을 수립한 장면정권은 그런 일들을 처리할 강한 의지를 세웠어야 했고, 국민의 불신으로 경찰력이 무력화된 상황이었으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인들을 동원했어야 해. 그런 권한은 엄연히 법이 보장하고 있었거든. 그랬으면 혁명의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도 대환영이었을 거야. 그런데 불행하게도 장면정권은 나라를 바로잡을 국가적 문제점도 투시하지 못했고, 국민적 요구를 파악할 능력도 없었고, 혁명적 정치를 추진할 의지도 없었어. 그러니 주어진 권한을 활용하지도 못하고 권력을 잃은 거지. 너무 가혹했나?"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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