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본가, 그러니까 너희들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에 가게 되면 가끔씩 들르는 곳이 있었단다. 파주출판단지에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는 보물섬이라는 헌책방이었어. 헌책방은 비단 싼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는 것은 아니야. 헌책방에 한참 둘러보다 보면 아빠가 미처 알지 못했던 좋은 책들과 작가들을 알게 되는 행복이 있어. 그야말로 숨겨져 있던 보물을 얻는 기분이었어.. 보물섬이라는 헌책방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구나. 그 보물섬에서 김수영 작가에 관한 책을 하나 산 적이 있어. 아빠가 당시 양장본 책을 유달리 좋아해서 양장본에 선뜻 눈이 갔었거든. 양장본의 우수에 찬 포즈의 김수영이라는 작가의 얼굴이 끌렸어. 그때는 김수영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지. 그렇게 산 김수영에 관한 책은 책장에 한 자리를 차지하였지만 읽지는 않았어. 사실 엄두가 좀 나지 않았어. 아빠가 김수영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도 못했고, 책이 워낙 전문서적처럼 보였거든. 그 책의 정체는 문광훈이라는 분이 쓴 <시의 희생자 김수영>이라는 책이야. 나중에 김수영이라는 시인의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

그리고 그 이후, 한참 시간이 흐르고녹색평론에서 김수영을 한 꼭지로 다루었는데, 그때서야 김수영이 4.19혁명 때 저항시인이었다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어. 그리고 정재찬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김수영의 멋진 시 한 편을 알게 되었어. <우선 그 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라는 시였어.. 이렇게 다른 책들을 통해서 우연히 김수영이라는 시인의 자취를 조금씩 알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그 책이 생각이 나서 읽어 보려다가좀더 읽기 쉬운 책 먼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다 검색을 하다 보니, 몇 년 전에 강신주가 김수영에 관해 쓴 책이 있더구나. 강신주. 예전에 아빠가 그의 책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너무 잘 읽고 나서 그의 다른 책들도 몇 권 더 읽었었거든. 강신주의 자유로운 영혼을 부러워했고, 그의 글발을 좋아하게 되었지. 그런 강신주가 아빠가 궁금해하던 김수영의 관한 책을 썼다? 읽어봐야겠다 싶었어. 책의 제목은 <김수영을 위하여>. 책 제목도 한번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읽고 난 소감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라고 하면강신주가 어떻게 그런 자유로운 영혼을 갖게 되었는지 알겠더구나. 강신주는 김수영을 정신적 아버지라고 생각할 만큼 존경하였다고 하는구나. 그런 김수영의 삶은 그저 저항시인으로 표현하기에는 위대하고 더 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시인 김수영은 진정한 자유를 꿈꿨고, 그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시대에 저항할 수 밖에 없었던 거야. 그 이야기가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단다. 이 책은 몇 년 전에 강신주가 김수영에 관한 강좌를 열었었는데, 그 강좌를 정리한 책이란다. 아빠가 이 책을 읽을 때 어떤 부분은 집중해서 읽고, 어떤 부분은 건성으로 읽었어. 건성으로 읽을 때는 글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집중해서, 간혹 메모도 하고 꼼꼼하게 읽을 때는 뭔가 꽉 찬 느낌이고, 아빠의 영혼에도 차곡차곡 무엇인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단다.

 

1.

이 책에서 참 많은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결론을 한 단어로 이야기하자면 바로자유란다. 우리는 지금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은 자유를 누린다고 이야기할 거라 생각한단다. 강신주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을 하면서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읽어주면 대부분 대학생들이 불편해 한다고 하는구나. 그 시는 이런 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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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어서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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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불편하게 느껴졌단다. 그런데 이 시는 50여 년 전에 김수영이 쓴 시라고 하는구나. 이 시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체제 안에서 제한적으로 누리는 자유라는 것을 깨우치게 하고자 지은 시라는 구나. “김일성만세”를 보고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는 제한적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야. 그런 자유는 조선시대 규방 안에 있는 여인의 자유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거야. 그에 반해 시인 김수영은 진정한 자유를 노래했어. 그런 진정한 자유를 표현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했어. 그러면 시인은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는가? 시인은 평범한 사람과 달라야 하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했어. 그렇게 자시만의 목소리를 내다 보니 세상과 불화는 필연적이었던 것이야. 이것이 바로 시인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생각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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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이제 더욱더 궁금해진다. 김수영은 가슴에 어떤 이상을 품고 살았던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김수영은 시인이 되려고 했고, 시인으로 살고자 했다. 다시 말해 김수영의 이상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시인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지금부터 차근차근 시인이란 어떤 사람인지 숙고해 보도록 하자. 무엇보다도 먼저 시인은 평범한 일반 사람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일반 사람은 관습이나 교육에 따라 사물이나 자신을 이해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세계와 불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미 세계가 조율한 대로 소리를 내니, 타인이나 사회와 불화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사람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시인은 투철한 자기 이해에 이르러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관습의 목소리나 타인의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에서 추방할 수 있고, 나아가 잃어버린 자신만의 목소리를 되찾아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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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어떻게 이런 자유를 신봉하게 되었고, 자유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었을까?

 

2.

1921년생인 김수영은 태어났어. 그리고 1941년 친구의 여동생을 짝사랑해서 그를 쫓아 일본 유학을 갔대. 하지만, 그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어. 다시 귀국한 그는 1950 4월 이화여전 출신의 김현경과 동거를 시작했어. 결혼식만 올리지 않았지, 결혼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어. 그에게 행복한 시간의 시작이었어. ... 1950 4월은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가장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기 직전이었어. 그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어. 6,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의용군에 강제 징집되었단다. 그곳에서 도망을 쳤지만, 다시 붙잡혀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도망을 쳤어. 서울에 왔다가 이번에는 의용군이라면서 경찰에 붙잡혀 집에도 가보지 못하고 바로 거제포로수용소로 끌려갔어. 집에는 연락도 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김수영은 2년 동안 지냈어. 이 거제포로수용소의 강력한 억압을 통해 그는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2년이 지나고 서울 집에 왔는데, 아내 김현경은 생사를 모르는 남편은 둘째 치고, 아들 준까지 시댁에 맡기고, 김수영의 친구인 이종구와 재혼을 해서 부산에서 살고 있었어. 김수영은 심한 배신감에 빠지고, 부산에 내려가 김현경을 만났지만, 김현경은 김수영을 따라오지 않았어. 김수영은 다시 서울에 올라왔어. 그러다가 포로수용소 간호사였던 노봉실과 사랑에 빠졌어. 그런데 노봉실은 이미 유부녀였고, 노봉실은 선을 넘지 않고 지켰어. 그 와중에 1954년 김현경이 돌아왔어. 하지만, 그 이전의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부부생활을 했어. 자유의 영혼을 정착한 김수영은 김현경을 끝내 용서하지 못한 것이야.

그리고, 19686 16일 동료 문인들과 술을 먹고 크게 취해서 늦은 시간 집에 가다가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운명하고 만단다.

 

3.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예찬이란다. 자유와 비슷하게 쓰인 말들로 단독성, 포즈, 자신만의 제스처 등으로 표현했어. 혹시 그 차이가 있다고 하면 아빠가 잘못 이해한 것이란다. 아빠는 같은 것으로 이해를 했거든. 책에서 위 단어들을 자주 나오는데, 그것을 자유로 받아들여도 된단다. 그는 자유롭기 때문에 비판도 솔직하게 했어. 당대 동료 시인들을 평하기도 했는데, 아주 가혹한 평이더구나. 다른 동료 시인들이 그를 싫어하기에 충분한 혹평들이었어. 김수영이 시를 보는 기준은 자유의 회복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시인들을 혹평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가 바라보는 시와 다른 시인들이 바라보는 시가 달랐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왜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모르는 것일까? 제한적 자유를 누리면서 자유를 누린다고 이야기할까? 그것은 교육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교육은 단독성을 개화시키기보다는 기성세대가 신봉하는 가치를 주입하는 것으로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야. 그걸 깨닫고 단독성을 회복하려고 하면 탄압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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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불행히도 모든 교육은 단독성을 개화시키기보다는 기성세대가 신봉하는 가치를 주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단독성을 회복하려는 순간, 당연히 가정이든 학교든 군대든 회사든 권력을 쥔 자들로부터 탄압받기 마련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생긴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로부터 스스로 단독성을 부정하는 개인들이 탄생한다. 외적인 탄압과 억압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다. 자신과 똑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들과 달리, 이런 불행한 개인들은 오히려 타인이 자신과 같은 옷을 입고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기 쉽다. 그들이 유니폼, 즉 동일한 형식을 즐기는 것은 이런 이유인지 모른다. 결국 이들은 자신의 제스처를 버리고 권력이 허용하는 제스처를 취해서 자신의 단독성을 은폐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싫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는 자신들이 애써 은폐하려던 단독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들은 조금씩 자신이니까 살 수 있는 삶, 자신이니까 느낄 수 있는 감성, 자신이니까 생각할 수 있는 사유를 영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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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교에서 자유를 방종과 구별해야 한다고 배웠던 기억이 있단다. 책을 읽으면서 강수영이 이야기하는 자유와, 아빠가 생각한 것은 방종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이지?라는 의심이 계속 갔어. 김수영은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했어. 사랑이 아닌 자유는 방종이라는 것이지. , 그가 자유 다음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나 싶구나. 비록 아내 김현경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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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자유의 방종은 그 척도가 기준이 사랑에 있다는 것만을 말해 두고 싶습니다.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자유는 여하한 행동도 방종이라고 볼 수 없지만, 사랑이 아닌 자유는 방종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호흡입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에도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사회환경에서는 여간 조심해서 보지 않으면 분간해 내기가 어렵습니다. 사랑이 순결하면 순결할수록 더 그렇습니다. 기도가 눈에 보이지 않듯이 사랑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유의 방종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사회에서는 백이면 백이 거의 다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의 자유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의 자유를 방종이라고 탓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요즈음 느끼는 일>(19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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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책은 김수영의 시와 산문을 많이 발췌하여 싣고 있단다. 그 발췌하고 싶은 글들이 상당히 많았어. 그 시와 산문들은 모두자유를 주제로 하고 있어. 이 책에 김수영의 글들 중에서 일부러 그런자유에 관련된 글들만 실은 건지, 아니면 김수영의 모든 글에자유라는 색깔이 칠해져 있는지는 모르겠구나. 아무튼,, 강신주는 김수영을 통해 초지일관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단다. 그가 1961년에 발표한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시를 보면, 팽이를 통해 고독한 자유 정신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어. 팽이는 혼자 자유롭게 평면에 돌아야 잘 돌잖아. 그런데 평면이 아니라면 돌 수 있는 힘이 있다 해도 저항이 생기잖아. 자유를 누릴 마음이 있어도, 세상이 그것을 막는다면 저항이 생기는 것을 팽이에 빗대어 노래한 것이란다.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시의 전문은 아래와 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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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의 장난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都會)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生活)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餘裕)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壁畵)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運命)과 사명(使命)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放心)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記憶)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數千年 )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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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이 시를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일까? 이 시에 대한 강신주의 설명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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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86)

모든 돌고 있는 팽이는 자시만의 중심을 가지고 돈다. 그런데 두 팽이가 마주친다는 것은, 어느 하나가 다른 팽이의 회전 스타일을 수용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허망하게도 팽이는 쓰러지고 만다. 팽이만 그런가. 인간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기만의 스타일로 살지 못하고 남의 스타일을 답습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 내지 못한다. 김수영의 말대로생각하면 서러운일이다. 보통은 인간이 고독하기 때문에 누군가와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거나 완성되기 위해 지혜로운 사람이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통찰이 옳다면, 이게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서도 안 되고, 누가 기대는 것을 용납해서도 안 된다. 오직 철저하게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삶을 마무리해야만 한다.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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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강신주의 설명이 없었다면, 아빠는 이 시를 통해서 그런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못 찾았을 것 같구나. 강신주는 또 이야기한단다. 시인은 자유를 노래하기 때문에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김수영은 7할의 고민과 3할의 시화가 행동이었대. 그런데 예술파 시인으로 부르는 사람들은 7할의 고민, 즉 사상이 없었다고 비판했대. 당시에 순수 문학과 실천 문학이 대립하는 양상도 보였는데, 실천 문학에 있던 그었지만, 순수 문학뿐만 아니라 참여파 시인도 비판을 했다는구나. 당시 참여파 시인들이 너무 투박한 나머지, 민족주의와 민중중의에만 근거를 두었다는 거야. 그게 뭐가 문제냐고? 강신주는 그 민족주의와 민중중의 또한 자유를 누리는데 제한이 된다는 것이었지.

강신주는 시인이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많이 했어. 시인은 자유를 노래라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뿐만 아니라 시인은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를 형식을 부정해야 한다고 했어. 그는 참여파 시인들이 그들 내부의 잠복해 있는 지배욕을 극복하는데 실패했다고 이야기했어. 그렇게 양쪽을 비판하면서도, 그래도 시인은, 모두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어. 그리고 시인은 각자 가진 경향을 긍정하면서 내용이나 형식에서 모두 자유를 충족하는 시를 쓰려고 노력하면 된다고 했어. 시인의 최고 긍지는 자유이기 때문에 현실과 불화는 불가피했던 것이고 시는 형식이 없어야 한다고 했어. 진정한 시는 절대성과 단독성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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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 <시여, 침을 뱉어라>(19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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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간혹 문학과 삶은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오해를 만든 것은 문학자 자신들이라고 강신주는 이야기하면서, 문학의 본질은혁명이란 이념민족이나 인류의 이념에 있다고 덧붙였어. 여기서 혁명이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의 힘을 얻는 것을 이야기했어. 문학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정치이데올로기를 피력은 하는 것은 배신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가능한 것이라고 했어. 왜냐하면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까 말이야. 어떤 사회가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권력은 자신이 신봉하는 이념과 사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시인이라면 침묵할 수 없다고 그는 이야기했어. 그가 비록 50년 전의 당시 상황을 빗대 이야기한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그런 정치가 문화를 탄압한 일이 불과 얼마 전까지 있었단다.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는 MB정권부터 이어진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그 더러운 권력들은 시민의 힘의 위대함을 몰랐단 말인가? 그들에 대한 처벌은 공정하고 엄정하게 이루어지길 바라고 기도하고 있단다. 그리고 그 권력이 심어놓은 썩은 내 진동하는 씨앗이 아직 방송국들을 장악하고 있단다. 아직 언론 권력은 적폐 세력이 그대로 점령하고 있는 것이야. 최근 벌어지고 있는 마봉춘, 고봉순의 파업에 절대 지지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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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이 꿈꾸는 세상.

앞서도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자유 그 자체였어. 인간의 자유를 불온하다고 보지 않는 세상. 자시만의 삶을 살아내려는 의지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는 세상. 이것이 그가 꿈꾸는 세상이란다. 사랑이 가득한 집안은 침묵할까? 늘 시끄럽고 야단법석일까? 당연히 늘 시끄럽겠지. 나라도 마찬가지야. 자기만의 삶을 살다 보면 시끄럽겠지. 그것을 저항이라고도 하지만, 그건 바로 자유의 소리인 것이란다.

이 책을 읽고 아빠도 아빠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제한적 자유였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단다. 그리고 좀더 유연한 생각으로 자유의 폭을 넓혀볼까 싶다가도 소심한 아빠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기도 한단다. 지은이 강신주가 김수영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철학전공을 하면서 자신이 이상과 현실이 상충할 때였다고 하더구나. 그때 김수영을 처음 알게 되고, 이후 김수영은 그의 정신적 멘토가 되었대.

, 이제 김수영의 책을 읽어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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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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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은 SNS에서 먼저 본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평을 보고 알게 된 책이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웃기다고 했어. 아빠가 지난 봄에 너희들의 고모 생일 선물로 사 준 책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책이란다. 고모도 이 책을 읽고 재미있다고 하더구나. 어떤 내용일까? 아빠도 궁금해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이제에서야 읽게 되었단다. 일단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해서 좋았단다. 장서가로써 겪은 경험담을 재미있게 잘 이야기해주고 있었어.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은 많아도 글을 재미있게 쓰는 것은 또 다른 것인데, 이 책의 지은이는 글을 참 재미있게 쓰더구나.

아빠도 지은이만큼 장서가는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책중독 증세가 조금 있다는 생각은 들어. 일단 사기만 하고 안 읽은 책이 수백 권이니까 말이야. 아주 예전에는 읽기 전에 사서 읽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사두면 언젠가 읽겠지 하는 생각으로 책을 샀어. 그러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단다. 요즘은 책을 살 때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서 산다고 생각하는데도,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더욱 빠르단다. 그리고 책을 살 때마다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곤 해. 술 한 잔 했다고 생각하지 뭐이러거나갖고 있던 주식이 올랐네? 이러거나하지만 주문 다음날 이내 주식은 곤두박질치고, 책은 배송중이고ㅜㅜ 오늘 또 추석 연휴 때 읽을 책이 때맞게 도착했단다.

 

1.

지은이 박균호는 장서가란다. 그런 장서란 무엇인가? 책이 많으면 다 장서냐? 아니란다. 장서는 그 책주인이 수십 년 필요에 의해한 땀 한 땀모은 책의 컬렉션을 이야기하는 거래. 그래서 장서를 훑어만 봐도 그 사람의 인생관을 알 수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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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장서는 그 주인과 운명을 함께한다. 여기서 말하는 장서란 그 주인이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취향과 필요 때문에한 땀 한 땀일군 책의 컬렉션을 말한다.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읽지도 않을 책을 장식용으로 마련했거나, 주위에서 선물받은 것으로 채워져 있거나, 특별한 목적의식이나 기호가 아닌 그냥 방치된 책의 무더기는 장서가 아니다. 그래서 장서를 잠시만 둘러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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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다 보니 깊게 공감이 가고, 아빠가한 땀 한 땀모은 책들에 눈이 갔단다. 아빠도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던 것은 아니란다.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어렸을 때는 책을 정말 안 읽었어. 그러다가 이십 대 후반서점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사게 되었어. 아주 우연히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한 이후 집에 책이 하나 둘 쌓이게 된 거야. 누군가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으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잖아. 그런데 이상하게 아빠는 책이 지저분하면 눈에 잘 안 들어 오더라구. 그렇다고 아빠가 새 책만 사는 건 아니야. 몇 년 전 도서정가제를 확대 실시한 이후에는 지갑 사정도 있고 해서 오히려 헌책방이나 인터넷 중고서점을 더 기웃거린단다. 그런데 그곳에도 책 상태가최상이나 아주 조금 양보해서인 책에서 골라. 앞서 이야기했듯이 책상태가 좋지 않으면 눈에 잘 안 들어와서..

아빠도 그렇게 한 권 한 권 모은 책들이 어느덧 정말 책의 무게로 집이 무너질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단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책 무게로 아파트 바닥이 내려앉을 것을 걱정해서, 폐교된 학교로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그렇게 모인 책들을 한번 훑어 보았단다. , 이 책들이 아빠의 인생관을 대변한다고? .. 그래,, 그렇지,, 저 책은 실수로 잘못 산 건데.. .. 평균적으로 보면.. 맞아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하하, 또 이 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아빠의 이야기로 빠졌구나. 이 책이 아무래도 책과 독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니, 저절로 아빠의 책 이야기로 빠지게 되는구나.

지은이 박균호는 고서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았어. 희귀본은 찾는 책 사냥꾼으로써의 에피소드 이야기들도 재미있었단다. 아빠는 희귀본을 찾지는 않기 때문에, 이것은 약간 다르더구나. 아빠는 희귀본은 찾지 않지만, 책의 외모는 좀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란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책의 개정판이 아주 빼어난 외모로 다시 나왔다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곤 한단다.

지은이의 나이가 오십에 들어서면서, 책을 사기가 주저한다고 하더구나.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자신의 서재에 있는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래. 그런데 이건 비단 지은이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많은 장서가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노년의 장서가들의 서재를 보면, 새책보다 그들의 젊은 시절을 함께한 책들이 오래된 친구들처럼 함께 하고 있대. 결코 노년이 들어 독서를 게을리하는 것이 아니고, 아빠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빠도 요즘 고민이라고까지는 그렇지만, 우리집에 있는 책들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해왔거든. 책을 이렇게 사다 보면 나중에 책을 어떻게 보관해야 할까? 나중에 삶을 마감하면 이 책들은 어떻게 될까? 이렇게 책을 보고 읽지 않는 책이 늘어나다 보면 결국 읽지 못하는 책도 있겠네.. 이런 생각들지은이가 이야기하는 것에 참 공감이 가더구나.

 

2.

아빠가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 그래서 혼자 독후감을 쓰고, 최근에는 너희들에게 독서편지 형식으로 이야기하듯 쓰고 있단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아빠도 책에 관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는 것 같구나. 책을 다루는데 있어, 밑줄을 그으면서, 책에 접으면서 열성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아빠처럼 정말 소중히 다루면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지은이는 그런 독서가들을 육체파 사랑을 나누는 사람과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사람으로 구분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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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4)

이렇듯 뜨거운 동지애를 발휘하는 애서가들조차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두 부류가 있다. 책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와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부류가 그들이다.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는 책을 함부로 다룬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심지어는 침을 묻혀가면서 읽는다. 또 읽다가 멈출 때는 스스럼없이 다음에 읽어야 할 부분을 접는다.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는 책을 마치 보물처럼 다룬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고 반드시 책갈피를 사용하며 심지어 책 표지의 띠지조차 소중히 여겨서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이런 부류가 책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사람을 보면 그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떻게 책을 그렇게 험하게 다룰 수 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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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의 기준대로라면 아빠는 완벽한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라고 할 수 있겠구나. 아빠는 책에 낙서는 물론이고, 실수로 책장이 접히는 것도 안타깝게 생각하거든. 그리고 겉표지도 기스가 날까 봐 책을 볼 때는 항상 북커버를 이용하고 있어. 북커버에 맞지 않는 책의 크기라면, 책을 포장해서 읽는단다. 왜 그러냐고? 글쎄,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선천적인 것 같구나.

..

 

3.

이 책에는 책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지은이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단다.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그는 중학생 딸이 하나 있고 엄한(?) 아내가 있는, 행복이 가득 묻어나는 가족을 이루고 있어.. 시크한 중학생 딸과 엄한 아내의 무시하는 듯한 시선들이 그의 글에 나오고, 아내와 부부싸움을 한 것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런 글들에도 행복이 묻어 있었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재미있는 글솜씨로 포장해서 말이야.

아무런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일상을 재치 있고 유머스러운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능력. 그것이 지은이의 장점인 것 같더구나. 아빠는 너희들에게 가끔 독서편지를 쓰고 있지만, 다시 읽고 싶지 않을 정도의 무미건조함으로 가득 차 있는데 말이야 그의 글솜씨가 부럽더구나.

삶을 글로 기록하는 것지은이처럼 재미있게 쓰지 않더라도 우리가 겪은 일상을 글로 기록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구나. 아빠가 그동안 독서 편지를 쓸 때, 가급적 다른 이야기는 안하고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만 주로 했는데, 좀더 우리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단다. 비록 무미건조한 글들일지라도우리의 이야기가 남잖아.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읽을 때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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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장서는 그 주인과 운명을 함께한다. 여기서 말하는 장서란 그 주인이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취향과 필요 때문에 한 땀 한 땀일군 책의 컬렉션을 말한다.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읽지도 않을 책을 장식용으로 마련했거나, 주위에서 선물받은 것으로 채워져 있거나, 특별한 목적의식이나 기호가 아닌 그냥 방치된 책의 무더기는 장서가 아니다. 그래서 장서를 잠시만 둘러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43~44)

흔히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준다고 한다. 같은 글이라고 해도 나이에 따라, 처지에 따라, 생각의 깊이에 따라 새로운 감동과 공감을 준다는 말인데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책을 읽다 보면 집중력이 잠시 흐트러져서 읽지 않고 넘어가는 구절이 있기 마련이다. 그 책을 다시 읽다가 그 부분을 자세히 읽으면 어찌 되었든 처음 읽는셈이다. 두 번째도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부분은 처음 읽는 것이라서 첫 독서 때에는 없었던 생각과 공감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두고 읽을수록 새로운 감동이 느껴진다라는 고전의 미덕을 경험했다고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처음 읽을 때부터 꼼꼼하게 읽어서 같은 내용을 다시 읽더라도 감동할 수 있다는 말도 틀리지 않고,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는 독자도 많다. 다만 나의 경우는 처음 읽는 내용을 잊어버린다든가 건너뛰어서 두 번 이상 읽어야 처음으로 감동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읽은 책인데도 그 내용을 궁금해하면서 읽는 경우도 허다하다. 두 번째 읽는 책인데도 처음 읽은 것과 진배없이 낯설고 신선한 경우가 허다하다.

 

(57)

노년에 이른 분들의 서재를 보면 주인과 함께 늙은 것을 자주 발견한다. 서제에 꽂힌 책이 대부분 주인이 젊은 시절에 모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서재를 보면 주인이 어느 시대에 젊었는지 한눈에 보인다. 특정 시대의 책들로 이루어진 서재를 보면 왜 노년이 되어서 독서를 게을리하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이제 요즘은 나도 새 책을 사기가 주저된다. 꼭 서재가 꽉 찬 탓만은 아니다. 산다고 해도 버릴 책이 태반이다. 졸지에 재활용 박스에 들어가거나 지역 도서관에 기부되는 책들은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이거나 유치하다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속절없이 내 방에서 쫓겨 가는 비운을 맞이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책에 담긴 지식과 이야기가 일정한 주기를 두고 재생산되어서인 듯하다. 새 책을 사서 실망하는 것보다는 내 서재에 있는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두기만 하고 아직 읽지 못한 <모비 딕>을 마치 고시 공부하듯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정복해가는 즐거움도 크지 않을까.

 

(63~64)

이렇듯 뜨거운 동지애를 발휘하는 애서가들조차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두 부류가 있다. 책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와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부류가 그들이다.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는 책을 함부로 다룬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심지어는 침을 묻혀가면서 읽는다. 또 읽다가 멈출 때는 스스럼없이 다음에 읽어야 할 부분을 접는다.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는 책을 마치 보물처럼 다룬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고 반드시 책갈피를 사용하며 심지어 책 표지의 띠지조차 소중히 여겨서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이런 부류가 책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사람을 보면 그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떻게 책을 그렇게 험하게 다룰 수 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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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9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9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은 제 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집이란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수상작을 지은 황정은 작가한테는 미안하지만, 수상후보작에 오른 김언수 작가 때문이란다. 아빠가 김언수 작가의 책은 지금까지 두 권밖에는 안 읽었지만 그의 팬이 되었거든.

얼마 전에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무슨 책인가 아빠도 기웃거려봤지. 웃는 남자? 고전 중에도 빅토르 위고가 지은웃는 남자라는 책이 있는데, 그것과 관계가 있는가? 이러면서 인터넷 서점에 책소개를 읽고, 지은이 소개를 보는데, , 어디서 낯익은 사진.. 김언수 사진. 비록 수상작은 아니지만, 수상후보작에 올랐더구나. 나머지 작가들도 쭉 보니, 이기호도 있고편혜영도 있고사실 처음 들어보는 작가들도 있었지만제법 유명한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었어. 책 가격도 착한 가격이네.. , 이 책을 사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단다. 덥석. 책이 배달되어 와서 후다닥 김언수의 소설부터 읽을 수도 있었지만수상작에 대한 예의를 갖추며, 수상작인 황정은의 <웃는 남자>를 먼저 읽었단다.

 

1.

웃는 남자. 아빠도 사실 잘 웃는 편인데.. 어렸을 때부터 웃음으로 생긴 눈주름이 짙게 패여서 노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 그런데 황정은 소설 <웃는 남자>는 그리 밝은 소설은 아니더구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 약하고 힘없는 이들의 일상을 소소하게 그려내고 있었어. 바삐 변하고, 바삐 스쳐 지나가는 시간과 공간 속에 시간을 잡으면서 생활하는 이들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지은이 d는 어린 시절 목공소에 딸린 다락방에서 살았어. 왜냐하면 아버지가 목수였기 때문에..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실력 없는 목수.. 그래서 생활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단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의 생활이 쭉 펼 수 있는 기회가 없었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랑하는 사람 dd가 생겼다는 것. d dd는 목동의 반지하 빌라에서 같이 생활했어. 그런데 어느날 집에 오는 길에 dd가 탄 시내버스가 교통사고가 나서 dd가 죽고 말았단다.

dd가 죽은 이후 d는 삶의 의미가 없었어. 삶에 환멸을 느끼고, 회사도 안가고집안에만 박혀 지냈지. 그러다 보니 집세가 밀려 쫓겨나게 되고, 간신히 한 몸 누울 수 있는 쪽방 고시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단다. 계속 이러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세운상가 택배분류기사로 취직을 해서 일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d는 삶의 이유를 알지 못했어. 그냥 일하고, 그냥 밥먹고, 그냥 잠자고그런데 어느날 어깨 뒤쪽을 누군가 손가락을 찌르며나 알지?”라고 물어봤어.

여소녀. 특이하긴 하지만 사람이름이란다. 이름과 달리 남자 이름이야. 세운상가 5층에서 전기, 음악기기 등을 수리하는 수리상이야. 1946년생이니까 나이도 꽤 있고. 그가 세운상가에 온 것이 꽤 오래 전이었어.. 세운상가의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어. 아참.. 세운상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자제품을 파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단다.. 물론 다른 불법적인 것을 파는 것으로도 유명하긴 했지만서울 인근 사람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이 깃들여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 아빠는 서울에 살지 않았는데요, 처음으로 미니카세트를 산 곳도 바로 세운상가였단다. 언제부터 급격하게 쇠망의 길에 들어섰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빠가 기억하기로는 인터넷 쇼핑몰이 등장하면서였던 것 같아. 이 책에서 보니 아직 근근이 세운상가가 연명을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구나. 비록 예전과 같은 활기 넘치는 곳은 아니지만 말이야. 아무튼, 세운상가 하면 전성기를 다 보낸 내리막의 상징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 그런 곳을 소설의 공간적 배경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대충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겠더구나.

여소녀는 다들 떠나고 몇 남지 않은 사람이었어. 택배가 잘못 배달 와서 택배사를 찾아가 보니, 매일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젊은이가 눈에 띠어 손가락으로 찌르고 나 아냐고 물어봤단다. d는 나를 아냐고 물어본 여소녀를 빤히 쳐다보지만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었어. 그 짧은 대화로 좀더 친분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단다. d는 여소녀의 가게에 들렀다가 자장면을 얻어먹게 되고 더욱 가까이 지내게 되었고, 여소녀가 고치고 있는 아날로그 오디오 장비를 사고 싶다고 했어. 여소녀가 알아봐주어 가격대비 괜찮은 중고 오디오를 하나 구해주었어. d는 중고오디오를 좁은 고시방에 설치를 했는데, 구겨 넣었다고 하는 편이 낫겠구나. 그런데, 들을만한 음반이 없었어.. 문득 dd LP판들이 생각났어. dd가 죽고 나서, dd의 음반을 모두 그녀의 집에 가져다 주었거든. 그녀의 집에 찾아가서 다시 dd의 음반을 받아와서 들었는데사방팔방 좁은 고시원의 벽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고, 다음날 일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오디오는 고시원 문앞에 쫓겨나 있었어.

LP판을 가지고 오면서, dd의 다른 짐들도 같이 가져왔는데, 그 안에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박조배가 dd에게 준 책이 있었어. dd, d, 박조배는 모두 초등학교 동창이었어. d는 그 책을 읽고, 박조배에게 돌려주려고 그를 찾아갔어. 한때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했던 전도유망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명동에서 음반이나 양말을 파는 일을 했어. 박조배가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했어. 그를 따라 광화문으로 향했는데, 그날은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2015 4 16일이었단다. 박조배는 그것을 알고 일부러 광화문으로 향했던 거야. 많은 인파와 경찰들의 통제로 결국 광화문까지는 못했어. 박조배는 비록 삶은 3류일지 모르지만, 그의 영혼은 1류인 사람이야.

..

박조배와 헤어진 d는 다시 세운상가로 왔어. 고시원에서 퇴출된 오디오를 여소녀에게 부탁해서 여소녀의 수리실에 두었어. 그리고 가끔씩 찾아와 음악을 듣겠다고소설은 그렇게 잔잔하게 끝을 맺었단다.

..

세상에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구나.. 다들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면서 말이야.. 문득 아빠의 세계를 생각해봤어.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늘 가는 곳만 가고아빠의 세계는 무척 작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2.

두번째 소설은 김숨이라는 작가의이혼이라는 소설이란다. 이혼이라는 것이 요즘에는 일상이라서, 그것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것이 뭐 그리 신선함은 없겠다 싶었어. 아직 우리나라에서 이혼은 여자들에게 상당히 힘든 상황에 놓이게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그런 소설이었어. 민정과 철식은 합의 이혼을 하기로 하고 법원에 왔단다. 민정은 시인인데, 7넌 전 유방암 선고를 받아서 호르몬 치료를 계속해왔고 그것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었어. 남편 철식은 사회 약자들을 위한 사진을 촬영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긴 하지만, 그런 일들로 집안일에 소홀했어. 민정의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도, 집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철식은 항상 집에 없었어. 그런 것들이 쌓여서 그들은 결국 이혼을 합의하기로 했던 거야.

민정은 법원에서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면서 주변 사람들을 생각했어. 민정의 부모님도 행복한 부부는 아니었어.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엄마는 중졸이었어. 그런 학력 차이 때문인지 민정의 아버지는 엄마를 시녀부리듯 하고 폭력도 일삼았어. 엄마는 예순 살이 되던 해에 더 이상 못 참겠다면서 이혼을 결심했었어. 민정이도 엄마의 이혼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민정의 엄마는 결국 남편의 폭력과 자식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이혼 생각을 접었어. 나중에 어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는데, 엄마도 병이 생겨서 오래 살지 못하시고 아버지를 따라갔단다. 인생이란

민정의 선배 중에 이혼 경력이 있는 영미 언니가 있었어. 얼마 전에 10년 만에 연락을 해서 만났어. 영미 언니는 일류대학을 나와 복지센터에서 취업을 해서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어. 그런데 영미 언니는 이혼을 하고, 유부남과 썸씽이 있었어. 그 유부남은 같은 회사 상사였지. 그 일이 발각되면서, 영미 언니는 회사에서 짤리고, 그 유부남은 해외 파견 조치가 내려졌다가 다시 국내에 들어와 회사를 잘 다니고 있었어. 이런 불평등한 처사를 받았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었지. 영미 언니는 이후 몇몇 직업을 구하려 했지만, 이혼녀라는 경험이 걸림돌이 되었어. 감자탕 집에서도 일하기도 했는데, 결국 지방에 내려가 이혼녀라는 경험을 숨기고 학습지 선생님을 하고 있었어. 민정은 이혼 후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직 이혼을 색안경을 쓰고 보는 이 사회의 시선을 감당할 수 있을까?

 

3.

드디어, 김언수의 소설. 제목도 무려존엄의 탄생영화감독이 꿈인 박진수. 예전에 조감독의 일도 했었는데, 지금은 백수.. 집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 며칠째 집밖을 나가지 않는 게 일상이었어. 그러다 보니 잘 씻지도 않고…. 그렇게 며칠째 씻지 않은 상태로 동네 슈퍼마켓에 갔다가 떠돌이 개에게 발가락을 물렸어. 홧김에 떠돌이 개를 때렸다가 지나가던 냥이 맘한테 동물학대 했다고 혼났어. 박진수도 억울해서 전후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냥이 맘이 미안하다며 다정하게 상처를 봐주겠다고 했어. 문제는 그 냥이 맘에 젊고 예쁜 아가씨였던 거지. 자신은 며칠째 씻지 않아서 얼룩진,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고, 창피하지만, 그 예쁜 아가씨의 보살핌을 거절하기도 억울하고그런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준 그 떠돌이 개에게 고마움까지 느낄 정도로 예쁜 아가씨였어.

그 일이 있고.. 며칠 뒤진수의 유일한 취미인 밤에 라이딩을 즐기고 있었어. 자전거를 타는 거 말이야. 백수이지만, 자신의 취미를 위해서 아끼고 아낀 돈으로 삼백만 원짜리 자전거가 있었어. 그가 라이딩을 즐기는데 슈퍼마켓 앞에서 만난 그 떠돌이 개가 도로 한가운데 있는 거야. 당연히 개가 피할 줄 알고 속도를 줄이지 않았는데, 그 떠돌이 개, 아참, 그 개 이름은 쫑끼라고 했어.. 그 쫑끼가 피하지 않고 멀뚱 쳐다보고 있어서 결국 진수가 마지막 순간 핸들을 틀었고, 그 바람에 자전거와 몸이 분리되었고, 그 비싼 자전거도 망가지고 몸도 다 까지고 다치고 말았어. 화가 나서 다시 쫑끼를 발로 찼는데, 요리조리 피했어. 한 대도 때리지 못했어. 그만 됐다고 생각하던 순간, 예상치 못한 쫑끼의 반격쫑끼가 달려들어 진수를 물어버린 거야. 다시 화가 난 진수는 길가에 버려진 커튼 봉을 들고, 쫑끼를 쫓아갔어.. 어느집 현관으로 도망간 쫑끼진수도 보이는 게 없었어. 현관문을 커튼 봉으로 마구 쳤어. 결국 고성방가와 동물학대로 경찰서에 불려갔고, 벌금 15만원형을 받았어. 그것도 낼 돈이 없었어 선배에게 빌려서 갚고 풀려났단다. 며칠 뒤 다시 슈퍼마켓에서 예쁜 냥이 맘과 함께 있는 쫑끼를 만났단다. 쫑끼의 눈에도 적의는 볼 수 없었어. 아마 냥이 맘과 함께 있어서겠지. , 진수도 냥이 맘 때문에 쫑끼의 대한 적의가 풀어졌지만 말이야.

짧은 단편이었지만, 김언수의 소설만이 주는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구나. 소설은 끝났지만나중에라도 진수와 냥이 맘과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4.

이 책에 모든 소설을 다 이야기해주려 하니,, 시간이 꽤 걸리는구나. 그래서 하나만 더 이야기할까 해.. 이기호라는 작가의최미진은 어디로’. 이기호 작가의 책은사과는 잘해요라는 책 한 권만 읽었었는데, 그의 명성을 들은 지라 기대를 꽤 했었는데 별로였던 기억이 있구나. 그런데 이 책에 실린 그의 단편최미진은 어디로라는 소설로 다시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지은이 이기호 자신이었어. 인터넷 중고사이트에서 자신의 책이 판매되는 것을 우연히 보았어. 그것도 판매자인제임스 셔터 내려에 의해 하위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었어. 심지어 다른 책 다섯 권을 사면 무료로 끼어 주겠다는 멘트까지 달려 있었어. 심지어 싸인본인데 말이야. 작가로서 자존심이 팍 상하는 일이지. 책들에 대해서제임스 셔터 내려는 짧게 서평도 적었는데, 이기호의 책에 최악의 서평을 달아놓았단다.

주인공은 그 사람을 확인하고 싶었어자신이 다른 책 다섯 권을 구매하겠다고 하고 직거래를 하고 싶다고 했어. 거래는 성사되었고, 주인공 이기호는 광주에서 일산까지 KTX를 타고 갔단다. 그리고 직거래 도중, ‘제임스 셔터 내려는 이기호를 알아봤어당황해 하며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이기호와 이야기를 나눴어. 이기호는 자신의 책을 보니, 최미진이라는 사람에게 준 싸인본이었는데, 자신이 한 싸인이 맞았어. 그 불편한 상황은제임스 셔터 내려뿐만 아니라 이기호에게도 마찬가지였어. 자신을 알아볼 거라곤 생각 못했거든무슨 대화를 해도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였어.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도 못하고, 그와 헤어져 다시 광주행 KTX를 탔어. 광주에 도착하자 술이 잔뜩 취한제임스 셔터 내려로부터 전화가 왔어. 최미진은 그녀의 여자친구였는데, 지금은 헤어졌다고 울먹이면서이기호는 여전히 불편해서 별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끊었어. 며칠 뒤 그 중고 사이트에서제임스 셔터 내려는 사라졌어. 아빠가 무미건조하게 줄거리만 이야기했지만, 블랙 유머가 여기저기 심어져 있었단다. 좋았어.

아빠가 이야기해주지 않은 윤고은의평범해진 처제’, 윤성희의여름방학’, 편혜영의개의 밤

괜찮은 작품들이었어. 그저 아빠가 게을러서 이야기를 안 한 것뿐이야. 그들의 소설도 술술 잘 읽혔어. 이 책에 실린 소설 대부분이 괜찮았단다. 새로운 작가들도 아는 좋은 기회였어.

아참, 이 책이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이었지.. 그러고 보니 아빠가 김유정 소설을 읽은 게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지, 그녀의 대표작봄봄을 읽었고, 봄봄에는 특별한 사연도 있었어. 대학교 일학년 때 교양국어 시간의 숙제가 소설봄봄의 후속작을 쓰는 것이었단다. 글짓기에 소질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학 초년생이 그런 숙제 할 시간이 있었겠니. 노는 데 바쁘지대충 정해진 리포트 장수를 채웠던 기억이 있어. 그런데 아빠 친구 중에 정말 김유정의 원작의 흐름이 이어지듯 잘 쓴 친구가 있었어. 그 친구는 자신이 쓴 걸 수업시간에 발표까지 했어. 공대생에도 저런 문학적 감각을 갖고 있는 친구도 있네. 하는 생각을 했어.. 나중에 그 친구의 진면목은 이었다는 반전이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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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취임한 지 석 달이 가까워 옵니다만, 지금까지의 그의 언행은 국가권력을 사익을 위해 사용해온전임자들과는 무척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운영의 책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 대한 설명책임과 시민들과의 격의 없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으면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시점에서 국가에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돌보는 것임을 잊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하여 취임 직후 그가 가장 먼저 발표한 정책제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그리고 젊은이들의 일자리 문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국회 안팎에 아직 광범하고 뿌리 깊게 포진해 있는 기득권세력과 수구 언론들의 완강한 저항과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조치를 단행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11)

민주주의는 복잡한 이론을 필요로 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민중의 스스로의 운명과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하는, 즉 자기통치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정치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윤리적으로 커다란 위기상황에 처해 있고 핵전쟁의 가능성도 여전히 상존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상황을 타개하려면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파스트트들이나 유사 파시스트들은 주장하지만, 실제로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천이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 점을 지금 한국에서촛불혁명'의 성과로 모처럼 민주정부가 들어서서 그동안의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적 가치와 제도를 살리기 위해서 진행하고 있는 여러 실험들은 일본의 여러분의 주목과 관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5)

이런 면에서, 영미권의 산업 민주주의란 독일의 경제 민주주의와는 달리 그 폭이 좁아요. 생산 현장 중심이죠. 독일의 경제 민주주의는 사회경제 시스템 전반을 민주화한다는 구상인데, 영미식 산업 민주주의는 현장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단결권, 교섭권, 행동권, 참여권) 보장을 골간으로 해요. 이런 점에 견주면, 우리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균형 성장, 적정 분배, 남용 방지, 주체 조화)은 영미식 산업 민주주의보다 범위는 넓지만, 내용이 좀 추상적이에요. 특히 국가의 경제 개입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민주화라기보다 국가화라고 할 수도 있겠죠.

 

(17)

그래서 예컨대, 제대로 된 일자리도 만들고 노동시간도 단축하고, 청년들이 자신의 꿈에 따라 공부하고 사회에 나와도 고른 대우를 받으며,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의 경영 참가도 적극 보장하고, 주거나 교육, 의료나 노후 문제를 사회 공공성 차원에서 해결해내는 새 해법들이 나와야 해요. , 경제민주화란 살림살이를 행복하게 하자는 거요.

 

(24)

-정치,경제 민주화가 이뤄진다면 일반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지겠죠. 아이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꿈을 꿀 수 있고, 어른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겠죠. 더 이상 헬조선이 아니겠죠. 물론 이 모든 건 지난한 과정이라 긴 시행착오와 학습과정이 필요해요. 시간도 걸리죠. 중요한 건 나부터 깨어난 시민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면서, 또 여럿이 더불어 토론하고 여론을 만드는 거죠. 또 현 선거제도의 맹점을 고쳐나가면서(연동형 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 등의 도입을 통해), 정치,경제 민주화의 의지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을 선거에서 뽑아야죠. 이렇게 되면 일반인들도 정치,경제에 더 많은 관심과 책임감을 느끼게 될 거예요.

 

(48)

결국, 뒤떨어졌다고 하는 아시아인들을 근대화시키기 위한 서구인의 노력은, 그것이 아무리 진지하고 이타적인 것이었다 하더라도, 존경과 감사는커녕 원한을 불러일으켰다. 토착민들은 자신들이 깃들어 살던 오래된 사회적, 정치적 질서로부터 쫓겨나고 또한 서구적인 것이 지배하게 된 세계에서 인간적 존엄성이 부정된 결과, 늘 서구를 서구 자신의 게임법칙으로 패배시키기를 꿈꿨다. 앙드레 말로의 예언적 소설 <서양의 유혹>(1926) 속에 등장하는 중국인 지식인은 유럽은 지금 유럽식 옷을 입고 있는 이 모든 젊은이들을 이미 정복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유럽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이른바 유럽의 비밀이라는 것을 알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비밀 중 많은 것을 지금 아시아인들은 손에 넣었다.

 

(51)

세계화 경제의 수혜자로서 이 아시아인들이 갖고 있는 자기 이미지는, 물질적으로 성공하고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목적지를 향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신감에 찬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나 인도는 경제의 세계화로 인한 단절을 중국보다 훨씬 더 눈에 띄게 드러내고 있다. 인도는 경제의 몇몇 부문의 급속한 성장을 촉진함으로써 사회 전체에 기대감을 높여놓고는 그 혜택은 매우 좁게 분배하고 있다. 그리고 환멸과 좌절을 느끼는 사람들의 수를 확대해온 결과, 허다한 사람들이 흔히 포퓰리스트와 종족주의적인 정치가들이 먹이가 되고 있다.

 

(116)

왜 많은 나라가 공론조사를 정책결정에서 주요한 기준으로 활용할까? 그 이유는 공론조사 방식이 갖는 탁월한 장점 때문이다. 공론조사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쟁점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1차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1차 조사 결과의 의견 분포 및 인구통계학적 특성(지역별, 계층별, 성별, 세대별 등)과 일치하는 토론 참여자 표본을 선발한다. 표본은 많을수록 좋지만 토론 장소의 협소성과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어느 정도의 제한이 있어야 한다.(우리나라 핵발전소 문제에 있어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301~501명 정도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155)

높은 질의 삶을 지향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한 자연스런 흐름이다. 이 덕분에 한 사회의 문화는 정체되지 않고 꾸준히 흐르며 변화무쌍해진다. 특히 혁신적인 기술의 산물이 등장했을 때에는 유행처럼 누구나 소유하고 싶어 하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가 초래한 것은 인류가 예상치 못했던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라는 심각한 부작용이었다. 이러한 위기는, 우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되묻게 한다. 결국 우리는 인식하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대규모의 산업적 기술보다 지역에서 자급자족에 필요한 기술이며, 지나치게 첨단으로 가기보다는 오래된 전통 기술과 눈높이를 맞추는 절충된 기술이라는 것을 말한다.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자원과 인력으로 짓고, 만들고, 고치고, 사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거대 산업기술이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는다면, 자급자족을 위한 기술은 덜 위험하고, 폐해를 일으키더라도 회복이 가능하고 빨리 복원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적정기술의 철학으로서, 도시든 농촌이든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어떤 기술을 어떻게 개발하고 쓸지에 대한 기준이 된다.

 

(169)

결론적으로, 나는 확신을 가지고 강조한다. 사회적 자본과 사회안전망도 없는 상태에서 마을공동체는 존속할 수 없다. 사회적 자본의 비무장상태로, 사회안전망의 무방비 상태로 추진하는 모든 공동체사업은 사기이거나 거짓말이다. 대부분의 평균적 능력의 주민,시민들은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 안전하게 사는 문제에 일상과 평생을 진력해야 하는 절박한 숙명에 처해 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데 이웃과 공동체를 챙길 여력이 있을 리 없다. 이런 개인들이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바람대로 기계적 연대를 벗어나 사회적 분업을 통한 유기적 연대로 옮겨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이기적 욕망이 폭주하면서 사회가 혼돈상태에 빠지고 규제가 도통 먹히지 않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를 걱정하는 현대사회의 실상이 아닌가.

 

(198~199)

동생 허균은 그때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누이가 생전 꿈에서 받아 적은 시에 푸른 바다 아득히 요해에 잠기고 푸른 난새 채색 봉황에 기대었는데 붉은 연꽃 스물일곱 송이 서리 내린 차가운 달빛 아래 떨어지네라고 하더니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3 9를 곱하면 27로 누이의 나이와 같다. 사람의 일이란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어 피할 수 없음이 이와 같단 말인가?

 

또 평하기를,

 

  누이의 시는 모두 천성에서 나온 것이다. 유선시를 즐겨 지었는데 시어가 모두 맑고 깨끗하여 익힌 음식을 먹는 속인들은 따라갈 수 없다. ()도 우뚝하고 기이한데 사륙문(四六文)이 가장 좋다. 백옥루상량문이 세상에 전한다. 둘째 형(허봉)은 일찍이, “난설헌의 재능은 배워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 이백과 이하가 남긴 노랫말을 읊은 것이다라고 평했다. , 살아서는 부부 금슬이 좋지 못했고, 죽어서는 제사 받들 자식이 없으니 아름다운 구슬이 깨져버린 원통함이 그지없다.

 

(204)

내가 대학시절 잘 읽었던 소설가 중에 이병주라고 있다. 특히 식미지시대를 신문기자처럼 혹은 역사가처럼 관찰하던 시선과 간결한 문제가 인상적이었지. 조금 엘리트주의적이었지만. 신화를 공부하면서 그때 그가 어떤 연재소설 앞머리에 붙였던 제사가 퍼뜩 떠오르곤 했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는 말. 나는 이제껏 역사와 신화를 이보다 더 자신 있게 비교하는 말을 본 적이 없어. 우선은, 역사와 신화가 낮과 밤처럼 다르다는 뜻이겠지. 태양은 양이고, 달은 음이야. 태양이 질서와 논리라면, 달은 혼돈과 주술이야. 낮이 의식과 이성이면, 밤은 무의식과 감성일 테고. 낮에는 일을 하고 기록한다. 밤에는 잠을 자고 꿈을 꿔. 기록에 대해서는 기억이겠지. 역사가 사실과 관련이 있다면, 신화는 허구요 마법과 관련이 있지. 시간에 대한 인식도 아주 달라. 역사의 시간이 직선이든 나선형이든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발전의 그것이라면, 신화의 시간은 발전과는 상관없어. 그저 텅 빈 시계판 위를 빙빙 돌 뿐이야. 역사에는 종언이 있어도, 신화에 대해서는 종언을 말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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