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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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은 아빠가 작년에 녹색평론을 통해서 알게 된 책이란다. 녹색평론에는 매번 서너 편의 서평을 통해 책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그 때 소개된 책 중에 하나란다. 아빠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이어서 꼭 읽어보고 싶었어. 그래서 책을 검색해보니, 출판사도 아빠가 좋아하는열린책들이더구나. 아빠가열린책들의 책은 주로 소설만 읽었는데, 이런 사회 분야의 책을열린책들출판사를 통해 만나니 반갑더구나. 아빠가 생각하기에 이런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 어려운 책인데, 출간해준 것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책의 분량도 칠백 페이지가 넘는 엄청 많은 분량의 책이란다. 책을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 오히려 이렇게 두껍고 분량이 많다 보니 사람들이 접근하기 더 어렵다는 생각조금 얇고 가볍게그래서 책 가격도 좀 부담되지 않은 가격으로 썼더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불편한 진실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았겠다 싶었단다.

이 책은 간단히 말해 자본주의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는 책이란다. 그리고 그 지구 온난화는 지구와 인류를 파멸하는 길로 이끌고 있는 것이고그렇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의 속도라도 늦추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팽개쳐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핵심이란다. 그런데,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그만둘 수 있는 여건이 안되고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만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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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최고 온도 기록들을 갈아치웠고, 지금은 연일 폭염 속의 날들을 보내고 있단다. 이것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야. 아빠가 어렸을 때만 해도.. 본격적인 더위는 장마철이 끝나고 나서 시작했고.. 정말 참을 수 없는 무더위도 길어야 일주일이었어. 그 일주일이 지나면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가을의 냄새가 났단다. 하지만, 최근의 날씨는 유월부터 폭염이 찾아오고, 장마철에 비가 와도 시원해지지 않고, 습식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날씨를 보이고, 장마 중간에 하루 이틀만 비가 오지 않으면 다시 폭염이 찾아오고.. 장마철이 끝나고 나면 무더위의 절정에 다다르고

아빠는 더운 게 싫어서 예전부터 여름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 점점 이런 여름이 길어지고 있어서 괴롭구나. 이렇게 기후가 엉망으로 변해버렸는데, 그 시급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구나. 아빠는 그래도 이 해결방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이미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구나. 물론 지은이는 책 뒷부분에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를 제대로 듣는 이가 없으니 희망을 버리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구나. 희망고문에 나만 더 고생하는 거 아닌가 몰라.

얼마 전에 트럼프가 파리협정을 탈퇴하겠다는 소식도 들었어. 파리협정은 잘 지켜지고는 있지 않지만, 그래도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이 함께 한 협정인데, 그 협정을 세계 제 1 강대국이 탈퇴하겠다는 것이 무식한 양반아그럼 너희들만 잘 살 것 같냐지구가 망하고 있는데, 혼자만 잘 살면 뭣하냐.

 

1.

지은이는 사람들은 대형사고와 재해에 손해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그런 것은 우리가 많이 볼 수 있어. 갑작스러운 홍수나 대형 사고 등이 발생하면 자신의 돈을 기부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이 조금 불편해져도 감수를 하곤 해. 그러므로 지구 온난화의 심각을 모두 인지한다면, 손해를 보는 감수를 할 수 있다는 거야. 누군가는 사람들의 이기주의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거야. 사람들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자본주의가 그렇게 만든 거야. 자본주의가 지구온난화를 만들었어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지구 온난화에 대한 심각성을 과학자들과 환경학자들은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들은 권력을 쥔 자들에게도 이야기했지. 그래서 기후 협정들이 체결되고 여러 나라의 리더들은 모여서 온길 가스 감축에 대해 회의를 했어. 하지만, 오히려 2009년에 온실 가스의 상승률이 부쩍 늘어 5.3%나 증가를 했대. 1990년대에는 온실가스가 배출양이 1년에 1% 정도밖에 상승을 안 했대. 그러다가 자유무역이 완전 활성화가 되고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는 2000년대에 들어서는 배출양이 1년에 3.4%씩 증가를 했다는구나. 그러던 것이 2009년에는 5%를 넘어선 거야.

이런 온실 가스의 배출로 지구 온난화는 급속하게 진행되었고, 지구의 온도를 급격하게 올라가고 있어.. 그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려고 한대.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있잖아. 파멸로 향해 치닫는 공포감을 모르고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졌겠지. 정말 이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없을까? 그래, 맞아. 이제 우리는 기후 변화를 순순히 받아 들어야 해. 기상 이변이 아니고, 기후 변화로 일상이 되고 있는 거야. 하지만, 그래도 할 일은 있어. 기후 변화는 어쩔 수 없지만,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겠니?

  

2.

그런데 우파들이 생각은 다른가 봐. 그들은 지구 온난화는 온실 가스 배출과 무관하다고 이야기해고 있어. 그건 단순히 태양의 영향이라는 거야. 그리도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97%의 지구학자들을 사회주의로, 좌파로 몰아붙여 이념몰이 공격을 했어. 그리고 언론에서도 기후 변화에 대한 언론기사가 급격히 줄어들었어. 또 중요한 사실 하나.. 온실 가스를 배출하는 국가 따로, 그로 인해 피해 받는 국가 따로라는 사실이야. 어차피 지구 온난화는 지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것은 맞지만, 온실 가스를 배출을 적게 하는 나라도 똑같이 피해를 받거나, 오히려 더 많은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대. 우리 집 불장난이 옆집에 옮겨 붙어 우리 집보다 옆집이 더 많이 피해를 입은 격이지. 그러면 당연히 우리 집에서 옆집의 피해를 보상해 주는 것이 당연하겠지. 그런데, 오히려 난 그냥 계속 불장난 할 거야,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게 말이 되는 거겠니? 그런데 온실 가스를 더 많이 내뿜는 나라 중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라가 많다는 거야. 당연히 온실 가스를 많이 배출한 나라는 더 많은 규제를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한 것이야.

온실가스와 지구온난화의 상관관계가 밝혀졌지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데 공(?)을 세우고 있는 화석연료회사들의 막강한 로비로 인해 일부 학자들은 둘 간의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기 돼. 그리고 그런 학자들의 이론이 언론으로 소개되기도 하고, 책으로 나오기도 하고... 일반인들은 그런 것들을 보고 그런가 보다 하고이제 그들은 은밀하게 지구온난화를 이용하여 어떻게 하면 부를 축적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거야.

1992 UN기후변화협약이 있었는데, 이것만 제대로 약속을 지키고 수행했다면 많이 좋아졌을 것이라고 하는구나. 하지만 그 협약 이행은 계속 미뤄지기만 했대. 더 웃긴 것은 몇몇 나라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려고 하면 다른 나라에서 그 사업에 대해 맹비난을 하거나 제재를 가한다는 거지. 그것은 에너지에 대한 자유 무역 위반이라면서 말이야. 거 참이 사람들이 정말 제 정신인 거 맞는지 모르겠구나.

  

3.

그 와중에도 재생에너지를 열심히 한 나라들이 있단다. 대표적인 나라가 덴마크야. 덴마크의 재생에너지, 특히 풍력 에너지는 전체 에너지 공급의 40%를 차지하고 있대.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 무역 시대 전에 이미 재생에너지를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만약 최근에 했었더라면 그들 또한 마찰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산업 혁명 이후 온실가스가 늘어난 것은 맞는데, 냉전 이후 아주 급격하게 늘어났고, 자유 무역이 대세를 이룰 1990년대 이후 온실 가스는 더욱 늘어났대.

물론 1990년대부터 기후 변화에 대한 협정들도 생겨났어. 이 무역 협정과 기후 협정은 서로 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구나. 대표적인 것인 비슷한 시기에 체결된 1994년 북미자유무역과 1992년 리우 협약이야. 20 여 년이 지난 오늘날승자는 무역협상인 것 같구나. 외견 상 선진국들은 온실가스가 줄긴 했대. 그런데 그것도 자유 무역에 의한 영향이란다. 그들은 국내에 있던 공장들을 개발도상국으로 옮겼기 때문이야. 세계의 공장이 되어버린 중국의 온실가스 급증도 그 예인 것이야. 2007년 전세계의 무려 3분의 2의 온실가스가 중국에서 배출했다고 하는구나. 그 영향을 우리나라가 고스란히 받고 있는 것이구나. 정말 슬프구나.

그리고 자유 무역을 하다 보니 물류이동이 많이 늘어났고, 그로 인해 또 온실가스가 많이 늘어났다고 하는구나. , 열받는다. 이미 지구의 평균 온도는 해마다 올라가고 있대. 과학자들은 지구 생태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마지노선은 이전 지구 온도 대비 섭씨 2도 상승이라고 하는구나. 이미 0.7도가 올라갔는데, 지금 같은 자유 무역 시스템이라면 섭씨 2도는 금방 무너질 것이래. 그러면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성장 위주의 자본주의를 버리고, 지속 가능한 경제를 추구해야 하고, 소비 패턴도 1960~70년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구나. 소비 줄이고, 무역 줄이고, 민간투자 줄이고, 소득 재분배가 이루어지고.. 이를 인해서 노동 시간은 단축하고 그로 인한 소득 손실은 기본 소득으로 채우고….

 

4.

선진국 중에는 독일이 그나마 재생에너지 전환에 적극적이란다. 그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여론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야. 독일은 친환경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높여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단다. 독일은 핵발전소도 없애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세웠어. 그럼에도 독일 온실 가스 배출량이 늘었다고 하는구나. 그 이유는 석탄발전소로 전기를 수출하고 있었대. 독일이 진정 온실 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것에 대한 규제도 해야 해.

미국도 기회가 있었대. 2009년 오바마 정권이 들어섰고, 때마침 금융 위기가 왔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정당성도 생겼거든. 이때 환경 정책에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면예를 들어 붕괴한 자동차 공장들을 태양광 부품 공장으로 전환시키고, 국민들에게 생활 방식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그러나, 오바마 정권과 환경 단체 모두 소극적이었대. 지은이는 그 이유를 진보 성향의 오바마 역시 이미 자유 시장의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더구나. 재생에너지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 좋은 기회가 되고 실업률을 줄이는 좋은 방안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 같아. 지은이는 오바마의 얼버무리기와 지연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어떤 환경학자들은 핵발전소가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니 핵발전소를 늘이자고 주장한다고 하는구나. 탈핵 선언을 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미국의 어떤 환경학자가 핵발전을 계속 해야 한다는 편지를 썼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보고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 그런 환경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하지만 몇몇 환경학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핵발전소는 답이 아니란다. 핵발전소를 짓는데 엄청난 화석연료가 필요하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핵발전소를 하나 짓는데 10~19년이나 걸리는데 이제 지구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 풍력발전소는 만드는데 2~5년 밖에 안 걸린다고 하니, 재생에너지가 답이지. (얼마 전 녹색평론에서 알게 된 사실로는.. 풍력발전소도 인근 주민과 갈등, 또다른 자연 훼손 등이 이슈가 있지만, 일단 이 책에서는 기후 변화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풍력발전소에 대해 호의적으로 쓰고 있단다.) 그런데 그보다 온실가스를 줄이려다가 더 위험한 방사능을 만드는 것이 맞는 생각인지 모르겠구나. 또 누군가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천연가스를 이야기하는구나. 그런데 요즘 말들이 많은 셰일가스를 채취하는데 막대한 오염과 온난가스 배출을 한다고 하는구나. 특히 메탄가스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측정조차 못한다고 하는구나. 이 메탄가스도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데 말이야.

 

5.

온난가스 배출의 주범인 대형 화석연료 기업의 입장은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란다. 주주와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 말이야. 그들은 막강한 돈으로 꾸준히 로비를 하고 있단다. 그에 비해 돈이 없는 기후 단체는 로비를 할 수 없지. 그 동안 여러 차례 기후와 환경에 관한 국제적인 회의를 했지만, 대기업들의 막강한 정치 영향력으로 인해 효과는 볼 수 없었어. 결국 기후 과학이 자본주의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이론적 무기를 가지고 대중과 함께 여론을 만들어 가는 방법 밖에 없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하지만 흐름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대기업의 로비는 대형 환경단체에까지 손을 뻗었단다. 대표적인 것이 국제자연보호협회인데 이 단체는 직접 석유가스 유전까지 뚫는다고 하는구나. 스스로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이지. 또 대기업들은 환경 단체와 손잡고 탄소 상쇄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또 다른 인권 침해를 하고 있대. 예를 들어 브라질의 밀림에의 벌목을 못해서 하여 원주민들이 땔감조차 못 가져 가게 했다는구나. 이 똑똑한 사람들이 도대체 핵심조차 제대로 못 잡고 있는 것 같구나.

일부 유력 기업가들도 기후 변화 대책에 대해 기부를 하고 투자하겠다고 하는데 뒤로는 딴 짓을 하는 경우도 많대 그 대표적인 예가 버진 그룹의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기후 변화 대책에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을 한지 길게는 10년이 지났지만 깜깜무소식이고, 오히려 새로 항공 사업에 뛰어드는 등 온실가스와 탄소 배출을 하는 사업을 늘려갔어. 그리고 빌 게이츠도 석유 회사에 투자를 하면서 탄소흡수기적기술을 찾는다고 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단다.

기후 변화 대책의 플랜 B로 햇빛을 차단하려는 계획이 있다는 것에 놀랐단다. 대형 화산이 발생하면 화산재가 성층권에 가사 태양을 차단하는 것을 보고, 이산화황을 성층권에 투입해서 햇빛을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래. 그래서 지구의 온도 상승을 막겠다는 소리야. 그리고 화석 연료를 그냥 그대로 쓰겠다는 것이지. 이 무식한 계획을 생각해냈다는 것이 놀랍구나. 그래, 좋아.. 이것이 제대로 해서 성공을 했다고 치자. 그래도 이 영향으로 아프리카 지역에는 대규모 가뭄에 예상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대. 물론 우리가 알 수 없는 악영향은 더 많이 있을 거야. 이런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플랜 B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놀랍더구나. 심지어 지구를 탈출하자는 화성프로젝트를 플랜 C로 생각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는구나.

  

6.

이렇게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그랬다고 포기하고 있으면 안되겠지. 어쨌든 시작하자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여론을 만들어야 해. 이미 그런 분위기가 여기저기에서 조성되고 있어. 미국은 새로운 화석 연료인 프레킹 천연가스와 타르샌드 사업에 열을 내고 있어. 이것을 운송하기 위한 송유관 건설과 기차로 운송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데 송유관이나 기차 운송에 따른 사고가 잦아지고, 그로 인해 인명피해도 많아졌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반대 여론이 만들어지고 여러 곳에서 시위도 일어났대.

블로카디아라는 말이 있단다. 이것은 노천 채광이나 프래킹 가스 채취, 혹은 타르샌드 오일 송유관 등 채광 및 가스 채취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국경을 초월한 충돌의 빈도와 강도가 갈수록 심해지는 지대를 이야기한단다. 그만큼 시민들의 화석 연료 반대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기도 하지. 세계 곳곳에 블로카디아가 생겨나고 있다는구나. 시민들의 이런 운동으로 프래킹 가스 금지 조치를 만들어낸 곳도 있대. 프랑스, 불가리아, 네델란드, 캐나다의 버몬트 주와 퀘벡 주 등이 그런 곳이라는구나. 시민들의 풀뿌리 환경 운동의 승리인 거야. 그 밖에 화석 연료 채취 반대 투쟁, 석탄 화력 발전소를 없애는 데 성공한 사례도 많다고 하는구나. 아시아, 특히 인도와 중국에서도 블로카디아가 생겨나고 있대. 그래서 중국은 석탄화력발전소 감소와 폐쇄에 동참하기도 했다는 구나. 일부 환경 단체들도 화석 연료 반대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데, 시에라 클럽의 경우, 그동안 잘못을 반성하고 환경 운동에 적극적으로 돌아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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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화석연료채취기업의 반격도 여전히 있어. 그들이 항상 내세우는 것은 자유무역협정 투자자보호규정이라는 것이래.. 그들이 믿는 구석에는 부패한 정치 시스템이 있어. 그런 부패한 정치 시스템은 환경 단체와 시민 단체에 대한 불법 사찰을 일삼고, 공권력으로 시위를 공격하기도 하지. 그들은 금융자본과 석유산업이익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의 민주적 열망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해. 하기야 부패한 정치 권력은 항상 힘있고 돈 있는 이들의 이익을 대변했지. 나라와 시대를 불문하고 말이야. 우리나라도 지난 구 년간 절실히 봐왔으니까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시민 여론을 만들어가면서, 한편으로는 에너지 자립 운동도 확산이 필요하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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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화석연료회사를 반대하는 것도 일부 선의의 피해자가 있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어떤 이들이 오염보다 생계가 더 중요한 이들도 있잖아. 이것은 정부가 책임을 져야 돼. 탄소세 등을 걷어서 그들의 새로운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방안도 좋은 방안일거야.

이제 지구 온난화는 미래가 아니고 현실이란다. 폭염이 끊이지 않는 올 여름, 모두 절실히 깨닫고 있단다. 그런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홍수와 태풍, 또는 가뭄은 이제 다반사가 되었어. 그런데도 그냥 보고만 있으면 안되겠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이들이 많단다. 지구는 재생 능력이 그 어떤 생명체보다 강하단다. 우리 인류가 지구를 보살펴 준다면, 지구도 분명 응답을 할 것이란다. 지은이는 자신의 불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결국 폐경을 앞둔 첫 출산을 한 이야기를 하면서 생명의 재생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어. 우리 지구도 그렇게 재생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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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각 국가의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들의 변화가 일어나야 해. 그들을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결국 시민들의 힘이란다. 어떤 일이라도 해야겠구나. 우리나라 시민들은 단합된 촛불의 힘으로 부패한 정치 세력을 몰아낸 경험이 있단다. 그 힘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만약 외계인들이 지구를 공격해 왔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아마 모든 지구인들은 똘똘 뭉쳐 외계인을 몰아내기 위해서 싸울 거야. 그것과 마찬가지야. 지금 우리 지구는 온실 가스라는 외계인들, 지구 온난화라는 외계인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거야. 그런데 그냥 공격들에 무참히 무너지면 되겠니그 공격에 모든 지구인들이 힘을 모마 몰아내야겠지. 그걸 모든 지구인들이 꼭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33)
물론 우리는 섭씨 4도나 뜨거워진 세계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따르더라도 그 모습은 처참할 것이다. 기온이 섭씨 4도나 상승하면 2100년에는 해수면이 1미터, 어쩌면 2미터까지 상승할 것이고 그다음 세기에도 추가적인 해수면 상승이 일어날 것이다. 몰디브와 투발루 같은 몇몇 섬나라들이 물에 잠기고 에콰도르와 브라질, 그리고 미국 북동부와 캘리포니아,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해안 지역 상당 부분이 침수될 것이다. 보스턴, 뉴욕, 로스앤젤레스 광역권, 밴쿠버, 런던, 뭄바이, 홍콩, 상하이 등의 대도시들이 역시 침수 위기에 놓이게 된다.

(56)
자연이 말을 하는데 인간이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애석할 따름이다.
- 빅토르 위고

(619)
실로 인간은 놀라운 회복력을 가진 존재, 어떤 역경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역경을 헤치고 살아갈 능력과 아드레날린이라는 소중한 선물,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기회라는 호사를 허용하는 수많은 생물학적 중복성을 타고났다. 지구의 바다나 대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존과 번성이 동의어가 아니듯, 생존과 행복 역시 동의어가 아니다. 앞서 보았듯이, 수많은 종들에게 생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양분을 공급받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생태계에 관용의 사례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관용이 무한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적절히 주의하고 관리하면 우리는 놀라울 만큼 유연하게 구부러지고 펴진다. 그러나 고장이 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도, 우리를 지탱하는 사회와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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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물론 빅토리 위고처럼 하려고 들어가는 글로 1904년에 하이드리히가 태어난 도시 할레에 대해 열 페이지 넘게 묘사할 수도 있다. 아마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그 도시의 거리, 상점, 유적지, 현지 명소, 관청, 사회 기반 시설, 향토 음식, 주민과 그들의 사고방식, 정치 성향, 취향, 여가 생활에 대해 묘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다음에는 하이드리히의 집을 자세히 묘사하겠지. 덧문 색, 커튼 색, 방 배치, 거실 가운데에 놓인 테이블의 재료가 된 나무에 대해 자세히 묘사해야 할 거고.

 

(32-33)

역사소설에서 제일 억지스러운 것은 과거를 그린 죽은 페이지에 생명을 불어넣겠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직접 수집한 증언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대사다. 이것은 활사법과 비슷하다. 묘사가 너무 생생해 마치 눈느오 직접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기법이다. 대화를 재구성하면 부자연스러울 수 있고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가 날 수도 있다. 인위적인 기교가 너무나 뻔히 보이고 역사적 인물들의 목소리를 가로채어 되살리려는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된다.

 

(107)

우리는 일촉즉발의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다뉴브 강의 입구에서 흑해로 통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중앙유럽과 다뉴브 계곡의 모든 나라들이 베를린에서 불어온 나치의 무력 외교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으로 차례로 끌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미, 오히려 시작일 뿐입니다…..”

잠시 후 처칠은 불멸의 명연설로 마무리한다.

여러분은 전쟁과 불명예 중에 선택해야 했을 때 불명예를 선택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전쟁만이 남았습니다.”

 

(318)

진실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싫다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글이다.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진실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진실을 가리기 위해 적극 노력하는 천박한 인간들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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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지음 / 현암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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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학교 다닐 때 국사 시간에 배운 것에 의하면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 청산리 대첩은 김좌진이었단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절실히 깨닫게 만든 책이 이번에 아빠가 읽은 김삼웅의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이야.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김삼웅이 쓰는 인물 평전을 좋아하기 때문에 종종 읽는단다. 이름만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 이번에 읽은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이라는 책도 마찬가지였단다. 홍범도라고 하면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지, 봉오동 전투 이전에 그가 어떻게 살았고 봉오동 전투 이후에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몰랐어. 그런데 이 책을 통해 혁명가로 평생을 살았던 홍범도를 알게 되었고, 그의 대표적인 전투는 봉오동 전투가 아닌 청산리 대첩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단다. 그의 업적에 비해 그에 대한 평가와 대접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대한민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죄송함마저 들었어.

 

1.

홍범도는 1868년 평양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났어. 홍범도의 어머니는 홍범도를 낳은 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시고, 아홉 살 때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단다. 그래서 그는 아홉 살부터 머슴살이를 했어. 그러다가 열다섯 살에 군대에 들어갔어. 열다섯 나이면 원래 군대를 들어갈 수 없지만, 그는 나이를 두 살을 속여 군대에 들어갔단다. 그가 군대에 들어간 것은 대단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생계를 위해서였어. 군대에 들어간 그는 나팔수 역할을 했대. 그러다가 서울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난 이후 경비 인력이 부족해서 차출되어 서울로 갔어. 그는 군인이 백성을 탄압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대. 그 와중에 부패한 상관을 폭행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일로 군대를 떠났대. 4 년 간의 군생활의 끝이었지. 그래도 그 4 년의 군생활이 나중에 그가 몸을 담은 의병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단다. 특히 홍범도는 신기의 총격술을 가지고 있었대. 백발백중.

그는 군대를 떠나서 제지공장에 취업을 했어. 제지 공장의 주인이 동학을 권유했고, 동학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홍범도는 거절을 했대. 그 일로 주인과 불화를 빚고, 주인이 임금도 주지 않았대. 그래서 그만 그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하는구나. 그 때 나이 스물두 살. 그는 금강산의 신계사에 가서 승려 생활을 했는데, 상좌의 직책이었지만, 행자 노릇을 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 절에서 비구니와 연정을 품게 되었고, 그 비구니가 임신까지 하게 되었대. 그런 일이 있었으니 절을 떠났을 수 밖에 없었지. 비구니의 고향인 함경도 북청으로 길을 떠났단다. 그가 절에 있으면서 임진왜란에 대한 지식을 얻고 처음으로 항일 정신을 키우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단다. 홍범도와 비구니는 북청을 가던 길에 건달을 만나 싸움이 붙고 그 일로 비구니와 헤어지게 되었단다. 그렇게 헤어져서 홍범도는 강원도 산중에서 은둔생활을 하게 돼. 이 은둔생활을 하던 중, 김수협이라는 청년을 만나는데, 김수협과 함께 의경운동을 시작하였단다.

 

2.

홍범도는 김수협과 단둘이 일본군 11명을 제압해서 무기를 빼앗았어. 이후 의병대를 만들어 의병을 시작했어. 그렇다고 군 기술을 배운 이들이 아니었어. 농민과 신포수로 이루어진 단체야. 홍범도는 유인석의 의병대와 합류해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어. 그런데 전투에서 져서, 의병대는 뿔뿔이 흩어지고 홍범도는 북천으로 향했단다. 북천은 자신이 사랑했던 비구니의 고향이었거든. 그런데, 그곳에서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 있었어. 그리고 그의 아들 양순도….

그는 그곳에서 7~8년 동안 행복한 삶을 살았단다. 산포수로 생계를 꾸리면서 가족들과 지냈어. 그런데 점점 산포수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수탈이 심해져서 그는 저항을 했고, 다시 의병대를 조직했어. 차도선이라는 사람과 함께 의병을 이끌며 삼수, 갑산 지역에서 활동했단다. 일본군은 가족을 회유했지만, 오히려 아들 양순도 어린 나에 의병에 참가했단다. 홍범도가 이끄는 의병대는 규모가 커져서 500여명이 되었고, 주변의 작은 의병대들도 합류하고 연합을 했어.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야. 아들 양순이 1908년 전투 중에 죽고 말았고, 부인은 감옥에서 죽고 말았어. 혁명가의 가족이 가져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구나. 홍범도가 이끄는 의병대는 왜 강한가에 대해 지은이는 다섯가지로 정리해 주었단다. 첫번째는 주로 포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는 점. 둘째 기동력이 좋다는 점. 셋째 평민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의견충돌이 적다는 점. 넷째 막강한 전투력을 가졌다는 점. 다섯째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었다고 하는구나.

 

3.

일제 탄압은 점점 커져서 홍범도는 국내 의병전에 한계를 느끼고 국경을 넘기로 했단다. 이때 그의 나이 어느덧 사십이었어. 모든 이들을 데리고 갈 수 없었어. 그는 측근들만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 간도로 이동했단다. 1909년 초 홍범도는 다시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했어. 당시 블라디보스톡은 항일 운동의 중심지였어. 아무래도 일본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는 여기서 안중근을 만나기도 했대. 홍범도는 ‘13도 의군에 참가하기도 했고, 권업회에 참석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했어. 권업회는 최재형이 회장을 맡고, 홍범도가 부회장을 맡았어. 그리고 아빠가 존경하는 신채호가 주필이 되어 권업신문을 내기도 했어.

그런데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러시아와 일본이 동맹을 맺으면서 상황이 바뀌었어. 일본과 동맹을 맺은 러시아가 그냥 지켜볼 수 없었어. 1914년 러시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추방했단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독립 운동은 타격을 입었어. 권업회도 이때 해산되었단다. 홍범도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쫓겨나서 봉밀산 등지에서 독립 운동 준비를 했어. 삼일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어졌단다.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러시아 혁명 이후 다시 러시아와 협력을 하게 되었다는 것.

3.1운동 이후 문창범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국민회의에서 활동을 했어. 이 단체는 상해 임시정부와 함께 협력을 하였고 군무부에 있던 홍범도를 중심으로 대한독립군을 창설하게 되었단다. 대한독립군의 사령관은 홍범도였고, 이들은 북간도로 이동했어. 국내 진입 작전을 이끌면서 국경 지역과 가까운 갑산과 평북의 강계 지역에 진입해서 일제의 무기를 갈취하는 등의 성과를 냈단다.

 

4.

1920 6 7. 독립전쟁 제 1회전이라고도 부르는 봉오동 전투. 이것은 사실 작은 전투에서 시작했다고 하더구나. 소규모 헌병순찰대를 격파했는데, 이에 일본군의 반격이 있었고, 삼둔자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는데, 일본군을 전멸시키는 성과를 냈단다. 이에 일본군의 대대적인 보복전이 있었어. 홍범도는 전략을 세웠어. 먼저 마을의 사람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는 마을 공동화 작전을 폈고, 이후 유인 작전 전술을 폈어. 그날 날씨는 천둥 번개를 동반하여 좋지 않았지만, 그것은 일본군에도 마찬가지. 봉오동에 있었던 전투에서 적군 500여명을 살상하는 대승을 거두었단다.

봉오동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다시 한번 대규모 보복전을 준비하였단다. 이번에는 중국군에 압력을 넣어 중국군까지 동원했어. 하지만 홍범도는 오히려 중국군을 회유했어. 하지만 계속된 일본군의 압박때문에 홍범도는 봉오동를 떠날 수 밖에 없었어. 봉오동 전투가 있고 4개월 뒤, 일본군을 간도 지역에 대규모 군대를 보냈어. 홍범도는 그들을 용정촌에서 100여 리 떨어진 화룡현 삼도구로 유인하려고 했어. 그곳은 깊은 계곡으로 전략적으로 먼저 진을 치면 유리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결전지로 정했단다. 이번 전투에는 김좌진이 이끄는북로군정서군도 함께 했단다.

한편, 일본군은 이 전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전에 음모를 벌였어. 마적단을 돈주고 사서 간도 내 일본 영사관을 공격하여 아홉 명을 죽이는 자작극을 벌였어. 이 사건은 훈춘 사건이라고 한단다. 이 훈춘 사건을 빌미로 대규모 일본군은 간도에 주둔하게 되고, 1920 10 21일부터 26일까지 청산리 지역에서 대규모 교전을 벌이게 된단다.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완루구 전투, 천수평 전투, 어랑촌 전투, 맹개골 전투, 만기구 전투, 쉬구 전투, 천불산 전투, 고등하 골짜기의 전투까지사전에 미리 진을 치고 있던 우리 군은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단다. 위에서 열거한 많은 전투들은 모두 홍범도의 연합독립군과 김좌진이 인솔하는 북로군정서군이 단독 혹은 연합적으로 수행했던 것이란다. 이 청산리 전투로 일본군은 1200 여명이 죽었어. 우리나라 독립군으로는 정말 큰 승리였단다. 홍범도도 이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단다.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왜, 청산리 대첩에서 홍범도가 빠진 교과서로 배워야 했을까. 홍범도가 나중에 소련공산당에 가입을 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한 사람의 의해서 역사의 왜곡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어. 잠시 그 이야기를 해볼게. 나중에 해방이 된 후 북로군정서군의 장교로 있었던 이범석이 국무총리를 맡았는데, 그 이범석이 회고록을 썼어. 그런데 그 회고록에 자신의 업적을 과장해서 쓰면서, 홍범도를 나쁘게 왜곡을 해서 쓴 거야. 홍범도가 도망치다가 아랫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말이야. 아주 노골적으로 왜곡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청산리대첩의 기록에는 홍범도가 전혀 없었다고 하는구나. 그러나 청산리 대첩의 진정한 주역은 홍범도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의 세 주역들과

무명의 많은 독립군들, 그리고 간도 백성들의 적극적인 지지이것이 청산리 대첩 승리의 원동력이었던 거야. 정세윤 박사라는 분은 청산리 전쟁을 아래와 같이 평가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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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윤 박사는 청산리 전쟁의 주역은 북로군정서가 아닌 홍범도라는 주장을 편다.

홍범도 부대는 김좌진 부대와 같이 청산리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어떤 면에서 청산리 독립전쟁의 주역은 북로군정서 부대가 아니라 오히려 홍범도와 그를 중심으로 한 여러 독립군 부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북로군정서 군대가 독립군의 단위부대로서는 가장 큰 규모이며 기관총과 박격포까지 갖추고 있어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군과의 전투 직전에 수백 리에 이르는 길을 강행군하여 이동하였고 도착 직후는 심한 식량난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홍범도 부대는 9월 하순 가장 먼저 청산리 일대에 도착하여 훈련과 식량조달 등 적과의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청산리 전쟁의 ‘3주역이라 할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각기 다른 행보를 걷다가 청산리에서 연합군 지휘자의 위치에서 일제와 싸워 대첩을 이루었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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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본의 보복은 더욱 악랄했단다. 경신대학살이나 간도대학살이라고도 부르는 경신참변. 재만교포 5천여 명 학살을 했어. 시베리아에서도 최재형을 포함하여 70여명을 죽였단다. 이런 무자비한 만행으로 간도의 독립 운동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어. 홍범도도 독립 운동은 잠시 접고, 이때 대종교와 단군계열 단학회에 참여하여 활동을 했어. 독립군들도 러시아 지역으로 이동을 해서, 자유시 근방에 집결하였단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리 독립군들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했어. 다른 나라의 무기를 사용한다는 이유야. , 힘없는 민족의 설움

홍범도는 고심 끝에 그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어.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어. 자유시로 여러 독립군들이 모여들었다고 했잖아. 자유시에 모여든 여러 독립 단체들의 갈등이 고조되었어. 상해파 고려공산당과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의 파쟁이 결국 비극을 만들었단다. 그들의 분쟁은 무고한 다수의 독립군 대원들이 희생당했어. 60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대. 이를 자유시 참변이라고 부르는데, 이 일로 홍범도 무장 투쟁도 크게 위축되었단다.

홍범도는 부대원 1745명과 함께 이르쿠츠크로 이동해서 소비에트 적군 조선독립여단 1대대장에 임명되었어.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극동민족대회에서 참석을 하기도 했어. 이때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났고, 레닌으로부터는 권총과 돈, 그리고 선물도 받았단다. 러시아 핵심 인물들과 안면을 텄으니, 독립 운동에 대한 지원에 희망을 걸 만 했어. 그러나, 이루쿠츠크로 돌아온 지 얼마 안되어

레닌이 죽었다는 소식, 트로츠키가 축출되었다는 소식. 스탈린이 서기장이 되었다는 안 좋은 소식이 전해졌어.

그래도 홍범도는 꾸준히 독립 운동에 도움이 될만한 일들을 했단다. 연해주에 농업조합을 만들었고, 청년들에게 사격 등 군사 훈련을 시켰어. 그리고 1926년 이인복이라는 여인과 재혼을 했단다. 전 부인과 사별한 지 18년 만이었고, 홍범도의 나이 어느덧 59세였어. 집단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1927넌 소련공산당에 입당을 했는데, 이 이력이 나중에 역사에서 그를 배제하는 빌미가 되었단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스탈린이 서기장이 된 것이 안 좋은 소식이라고 했잖아. 스탈린은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동을 명령했단다. 간첩과 외모가 비슷해서 어렵다는 이유였는데, 그러면 사람 대우를 해주면서, 보상을 해주면서,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보내줘야지한달 동안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하는, 그곳도 척박한 땅으로 먹을 것도 없는 중앙아시아라고 하니…. 우리 한인들 17만 명을 기차로 꽉꽉 채워서 강제 이동 시켰단다. 이때 많은 이들이 기차 안에서 죽었다고 하니, 또 가슴이 먹먹해 지는구나.

홍범도도 노구를 이끌고 이동을 했고, 카자흐스탄에 배치를 받았단다. 그곳 땅에 척박한 땅이었지만, 한인들은 또다시 개척을 했단다.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는 태장춘이라는 연극 연출가를 만나게 되었어. 태장춘은 홍범도의 파란만장 삶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 홍범도를 설득해서 자서전을 쓰도록 했어. 그렇게 쓴 자서전이 <홍범도 일지>였어. 그리고 태장춘은 홍범도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했단다.

1943 10 25…. 조금만 더 사셨으면 꿈에 그리던 해방을 보셨겠지만, 홍범도는 해방을 희망으로만 간직한 채 75세의 나이도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사람은 죽어서 어떻게 될까. 영혼은 이 세상에 남아 있을 거야.. 분명히.. 그래서 홍범도의 영혼도 조국이 해방을 한 것으로 보고, 기뻐하셨을 거야. 비록 곧 둘로 나뉘어져 서로 총칼을 겨누어 많은 이들이 죽어서 다시 슬퍼하셨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나눈 둘이 여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어 가슴 아파하시겠지만, 그래도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 이 정도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고 발전했으니, 조금은 기뻐하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이국 땅에서, 특히 추운 만주, 연해주 등에서 독립운동을 한 홍범도를 비롯한 많은 독립군들그들의 희생에 고마움을 늘 마음 속에 둘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단다.

 

 

장세윤 박사는 청산리 전쟁의 주역은 북로군정서가 아닌 홍범도라는 주장을 편다.

홍범도 부대는 김좌진 부대와 같이 청산리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어떤 면에서 청산리 독립전쟁의 주역은 북로군정서 부대가 아니라 오히려 홍범도와 그를 중심으로 한 여러 독립군 부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북로군정서 군대가 독립군의 단위부대로서는 가장 큰 규모이며 기관총과 박격포까지 갖추고 있어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군과의 전투 직전에 수백 리에 이르는 길을 강행군하여 이동하였고 도착 직후는 심한 식량난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홍범도 부대는 9월 하순 가장 먼저 청산리 일대에 도착하여 훈련과 식량조달 등 적과의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청산리 전쟁의 ‘3주역’이라 할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각기 다른 행보를 걷다가 청산리에서 연합군 지휘자의 위치에서 일제와 싸워 대첩을 이루었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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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글래스는 마지막 남은 설치류의 작은 흉곽을 집어 들었다. 그는 아직도 배고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다음 날은 무리하지 않고 조금 일찍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두 군데에 함정을 파놓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자 그는 짜증이 났다. 통행이 잦은 그랜드 강 주변에서 아리카라 족과 맞닥뜨리기라도 한다면 끝장이었다. ‘그러지 마. 벌써부터 나중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잖아. 오늘의 목표는 내일 아침일 뿐이라고.’

 

(294)

글래스가 걸음을 멈추고 프랑스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카이오와가 말했다. “당신이 피츠제럴드에게 계획했던 복수를 못했다는 건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게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지진 않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나부끼는 깃발 소리뿐이었다.

이건 당신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카이오와.”

당연히 아니겠죠. 누가 간단하다고 했습니까? 하지만 그거 알아요? 세상 모든 일엔 미진한 부분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냥 주어진 패에 만족하고 흘려버려야죠.”

카이오와가 또다시 제안했다. “나랑 같이 브라조 진지로 갑시다. 나중에 내 파트너가 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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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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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소설은 출간되었을 때부터 아빠가 읽고 싶었던 책이란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소설가 장강명의 신작 소설. 제목도 거창한 <우리의 소원은 전쟁> 이 소설은 통일 후 대한민국에 대한 소설이란다. 과연 우리나라는 통일이 될 수 있을까? 남과 북이 너무 다른 길로 너무 오래 와버려서,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통일이 되어도 바로 한 나라로 되기 어려울 거야. 그리고 통일 후 사회 혼란, 경제 어려운 등으로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어. 그래도 한민족인데 언젠가는 하나가 되지 않을까. 이 소설은 북한의 김씨 왕조가 조용히 무너지는 것으로 설정을 했단다. 그리고 남한과 유엔의 도움으로 통일과도정부를 세웠어. 통일과도정부는 대량살상무기를 즉각 포기하고 핵에 관련된 사찰을 받겠다고 했어. 이렇게 통일이 되는 과정은 다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고 생각할 거야. 그렇게 이상적인 시나리오로 북한이 무너져도 혼란은 피해갈 수 없을 거야. 갑작스러운 통일과 그 이후 북한 사정을 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설정하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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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정부는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만, 갑작스러운 통일은 모두에게 재앙이라고 남북 국민들을 설득했다. 남한 정부는전면적이면서 점진적인 통합 과정을 걸쳐 최종적으로 분계선을 없애고 완전 개방의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김씨 왕조 시절의 북한은 불량 국가, 막장 국가였다. 김씨 왕조가 붕괴된 뒤 북학은 좀비 국가가 되었다. 국가라는 탈을 간신히 쓴 약육강식의 무정부 사회였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멕시코, 콜롬비아, 온두라스와 비교했다.

치안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 나라.

엄청난 양의 마약을 만들어 수출하는 나라.

마약 카르텔이 부패한 정치인들과 결탁한 나라.

사람들이 끊임없이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로 불법 이민을 시도하는 나라.

선진국 옆에 붙어 있는 최빈국

동북아시아의 악성 종양

몇 년 전까지 통일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평가했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자, 아귀와 수라들의 축생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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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빠도 충분이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했어. 이상적인 시나리오가 시간이 지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로 변해가는,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게.

 

1.

북한에 들어선 통일과도정부. 치안과 사회 질서를 위해 유엔평화유지군을 투입하기로 했어. 대략 10만 명은 있어야 한다고 했고, 한국군과 다국적군으로 충당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어디서 끌어오겠니. 이미 전역한 장성들과 장교들을 차출해서 1년 동안 복무하게 했어. 그들의 보수는 좋고, 아무리 장교들이지만 제대한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기분은 좋지 않았을 거야. 남자들은 말이야. 가장 나쁜 꿈이 군대 두 번 가는 꿈이거든.^^

주인공 강민준도 그렇게 기분 잡쳤다는 생각으로 다시 대위를 달고 유엔평화유지군으로 북한에 발령을 받았어. 운도 없지, 가장 치안이 좋지 않다고 하는 황해도 장풍군에 배치를 받았단다. 유엔평화유지군의 수가 부족하다고 보니, 북한 전체를 다 커버할 수는 없었단다. 유엔평화유지군이 손이 닿지 않는 개마고원 중심으로 조선해방군이 활동을 했어. 이름이 그럴싸하지만, 그들은 사실 밀수 사업을 하는 조직이야. 특히 마약 밀거래를 했단다. 북한의 마약 조직의 두 개 거대한 기둥이 있었는데, 그 조직의 보스는 각각 최태룡과 백상구였단다. 조선해방군은 이들 중에 최태룡과 손을 잡았단다. 그리고 최태룡은 평화유지군 헌병대장과도 몰래 손을 잡았어. 최태룡은 라이벌 백상구를 처치하기 위해 평화유지군 헌병대장에게 백상구의 불법 마약 보관소를 밀고했어. 그리고 그들을 처리하기 위해 자신의 심복 3명을 같이 보냈단다. 그 부하 3명의 이름은 박현길, 계영묵, 조희순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김씨 왕조 붕괴 전에는 신천복수대 특수 요원들이었어. 평화유지군 헌병대장은 최태룡의 부하들과 함께 백상구의 소굴에 들어갔어 박현길, 계영문, 조희순은 백상구의 일파를 제압했어. 하지만, 평화유지군 헌병대장은 제보를 받고 혼자서 처리한 것으로 보고를 했단다. 상대편 마약 조직에서 도와주었다고 하면 안되니까 말이야. 아무튼 평화유지군 헌병대장은 혼자서 마약 보관소를 찾아내는 성과를 낸 것으로 보고가 된 거야. 유엔평화유지군은 이 곳을 추가로 조사하면서 평화유지군 헌병대장도 같이 조사하겠다고 했어. 조사를 담당한 말레이시아 장교 미셸 롱이 이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 거야. 혼자가 어떻게 처치할 수 있었느냐? 헌병대장의 통역으로 강민준이 차출되었단다. 인터뷰라고 했지만 신문에 가까운 인터뷰였단다. 인터뷰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추가 조사를 해야 한다고 했어. 그래서 미셸 롱은 자신의 통역으로 강민준을 원했어. 그렇게 강민준은 미셸 롱과 함께 조사를 하게 되었어. 미셸 롱은 헌병대장이 마약조직과 연관이 되어 있고, 헌병대장 자신도 마약을 했을 거라고 의심을 했어.

 

2.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단다. 장리철. 장리철은 신천복수대 특수 요원 출신이야. 앞서 이야기했던 최태룡의 부하 삼인방과 같은 부대야. 장리철은 신천복수대 행군 중에 발을 삐끗해서 그만 낙오하고 말았단다. 그것이 북한 정부 붕괴 전 마지막 훈련이었어. 그런데 그 훈련에서 세 명의 동료가 죽었다는 거야. 살해되었다고 했어. 그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장풍군에 왔단다. 최태룡의 부하 삼인방에 대한 소문을 들은 거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장리철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막노동 현장에서 일했어. 그런데 거기서 어떤 관리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노신사를 보호했다가 그 관리인과 시비가 붙고, 그 관리인에게 주먹을 날렸어. 그런데 그 관리인은 바로 앞서 이야기했던 최태룡의 조카 최신주였어. 최신주는 나중에 장리철이 묵고 있는 곳까지 조폭을 데리고 왔지만, 장리철은 혼자서 그들을 모두 처치했단다. 장리철이 도와준 노신사의 딸 은명화가 그에게 감사의 인사차 찾아왔어.

한편, 의심을 받게 된 헌병대장은 최태룡을 찾아와서 미셸 롱을 제거해 달라고 했어. 최태룡이 거절하자눈호랑이 작전을 이야기하면서 협박을 했어. 헌병대장의 입에서눈호랑이 작전이라는 말이 나오자 최태룡은 놀랐어. ‘눈호랑이 작전은 그의 최측근만 알고 있는 것인데 헌병대장이 알고 있다니‘눈호랑이 작전은 최태룡과 조선해방군의 비밀 밀수 사업이었거든. 그 작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따가 이야기 해줄게. 최태룡은 미셸 롱이 아닌 헌병대장을 죽이기로 했어. 어차피 한 명을 죽이는 거면눈호랑이 작전을 알고 있는 이를 죽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거야. 청부살인업자를 통해서 헌병대장을 죽이고, 가짜 목격자를 만들어서 장리철이 죽인 것으로 조작했단다.

..

장리철은 은명화의 소개로 박수희와 만나게 되었어. 박수희는 식당 주인인데, 장풍군에서 알아주는 정보통이었단다. 은명화가 생각하기에 서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어. 장리철은 신천복수대 요원들을 찾고, 박수희는 실종된 아들을 찾고 있었어. 장리철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박수희의 아들과 문금옥이라는 아줌마의 남편은 최태룡의 태림건설에 취업했다가 취업 한달 만에 실종을 당했다는 거야. 장리철은 그들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도움을 주기로 했어. 먼저 박수희의 아들을 취업시켜준 직업소개소장을 만나러 갔어. 그를 폭행하고 협박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예상했던 것처럼 박수희 아들과 문금옥의 남편은 이미 죽었다는 거야. 장리철과 박수희, 문금옥, 은명화는 직업소개소장을 구타하였기 때문에 일단 집을 떠나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도망가기로 했어.

 

3.

미셸 롱과 강민준은 헌병대장이 총격전으로 마약조직을 제압했다는 곳에서 조사하다가 전화를 통해 헌병대장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단다. 미셸 롱과 강민준은 곧바로 헌병대장의 살인현장으로 이동해서 조사를 했어. 조사를 하다 보니 얼마 전에 헌병대장 앞으로 투서가 한 장 왔다고 했어. 그 투서의 주인공은 박수희라고 했어. 그래서 미셸 롱과 강민준은 박수희 집으로 향했단다.

장리철과 은명화 일행이 도망 중이라고 했잖아. 은명화는 장리철과 함께 아버지를 데리러 갔어. 아버지 신변도 그리 안전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곳에서 장리철은 우연히 박현길을 만나게 되었단다. 장리철이 찾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박현길이었잖아. 박현길은 장리철을 보자마자 얼굴을 알아보고 공격을 했고, 장리철도 맞받아쳤지. 그들의 결투 끝에 박현길이 죽고 말았어. 박현길이 죽기 전에 계영묵과 조희순이 박수희 집으로 간다고 했어. 직업소개소장의 이야기를 듣고 장리철과 박수희를 추격하는 것이었지. 그래서 장리철은 박수희의 집에 갔지만, 그들은 없었고 미셸 롱과 강민준만 있었어. 가볍게 미셸 롱과 강민준을 제압했지. 사실 그들이 오기 전에 계영묵이 왔었는데, 아무도 없었는데, 잠시 뒤 유엔평화유지군, 즉 미셸 롱, 강민준이 와서 몸을 피한 것이었어.

장리철이 미셸 롱과 강민준을 제압하고 나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어. 미셸 롱과 강민준이 박수희를 만나러 왔다고 해서 박수희와 전화 통화를 하게 해주었어. 박수희는 그들과 통화를 하고, 장리철을 믿는 듯했어. 장리철은 그들을 풀어주고 은명화와 함께 박수희한테 합류하려고 했어. 장리철은 은명화와 함께 있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은명화는 남조선에서 유학을 한 후에 취업을 못해서 귀향을 했다고 했어. 남조선에는 남자친구도 있다고 했어. 연락 두절 된지 한 달이 되었지만 말이야. 그리고 박수희와 은명화의 아버지는 김씨 왕조 붕괴 전에 력사 선생님이었대. 김씨 왕씨를 찬양했던 력사를 가르쳐야 했던 그들은 다른 과목 선생님들과 달리 김씨 왕조 붕괴 이후 교사 자리에서 잘리게 되었대.

 

4.         

‘눈호랑이 작전이라는 거그것은 마약을 몰래 남조선으로 빼돌리는 작전이란다. 그래서 남조선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손 뻗으려는 것이었어. ‘눈호랑이 작전 3개 조직이 몸담고 있었어. 조선해방군. 최태룡의 태림건설. 그리고 개성 섬유봉제협회. 그들은 장풍군에 모임을 갔기 위해 각자 장풍군으로 향했단다. 장리철과 은명화는 여기저기 사람들을 조사해서, ‘눈호랑이 작전 503호라는 정보를 알게 되었어. 장리철은눈호랑이 작전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줄은 몰랐지만, 503호는 무엇인지 바로 알았단다. 특수부대에 있을 때 암호로 쓰던 말인데 남쪽으로 파 내려간 땅굴을 뜻하는 것이었어. 그래서 장리철은 곧바로 추측을 할 수 있었단다. 그들이 1970년대 파놓고 버려진 땅굴을 우연히 발견했고, 그것을 이용하여 마약필수를 하려고 것이라고 추측했어. 장리철의 생각이 맞았어. 최태룡 일당들은 우연히 버려진 땅굴을 발견한 거야. 남쪽으로 쭉 뻗어 있는 땅굴 말이야. 마약을 몰래 남쪽으로 빼돌릴 수 있는 최고의 루트. 땅굴을 숨기기 위해서 건물로 위장을 하고 땅굴 정비를 해야 했어. 그 작업을 박수희의 아들과 문금옥의 남편이 한 거야. 그 작업이 끝나고 나서는 땅굴의 정체를 알고 있는 그들을 죽인 것이고 말이야.

그들의 격투는 어떻게 끝날까?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영화 시나리오 같다는 생각도 좀 들었어. 지은이가 영화를 염두에 두고 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하지만 아빠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실망을 했단다. 아빠가 읽은 장강명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별로였단다. 소재는 좋았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약간은 뻔한 이야기로 이어졌어. 긴장감도 없고, 재미도 별로소설의 후반부는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결말도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단다. 그래서 아빠가 줄거리를 끝까지 적지 않고, 여기까지만 적으려고 한단다. 지은이 장강명의 다른 소설들로 인해 이 소설로 얻은 실망감을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남한 정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만, 갑작스러운 통일은 모두에게 재앙’이라고 남북 국민들을 설득했다. 남한 정부는 ‘전면적이면서 점진적인 통합 과정을 걸쳐 최종적으로 분계선을 없애고 완전 개방의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김씨 왕조 시절의 북한은 불량 국가, 막장 국가였다. 김씨 왕조가 붕괴된 뒤 북학은 좀비 국가가 되었다. 국가라는 탈을 간신히 쓴 약육강식의 무정부 사회였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멕시코, 콜롬비아, 온두라스와 비교했다.
치안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 나라.
엄청난 양의 마약을 만들어 수출하는 나라.
마약 카르텔이 부패한 정치인들과 결탁한 나라.
사람들이 끊임없이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로 불법 이민을 시도하는 나라.
선진국 옆에 붙어 있는 최빈국
동북아시아의 악성 종양
몇 년 전까지 통일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평가했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자, 아귀와 수라들의 축생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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