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평전 (양장) - 개정판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는 김삼웅이 쓴 인물 평전을 좋아한단다. 이번에 읽은 책은 그가 쓴 <장준하 평전>이라는 책이란다. 장준하. 학창 시절 교과서에 나오기에는 너무 최근 사람이거나, 군사 정권이 만든 국정 교과서에 나오기에 그의 삶이 너무 독재에 저항을 했거나, 아무튼 교과서에 그가 나오지는 않았어. 그리고 그는 아빠와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빠가 그를 제대로 알 기회는 없었단다. 어른이 되고 나서, 현대사에 관한 책들을 통해서, 그의 단편적인 지식들을 알게 되었고, 그가 독재 정권에 저항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당시 그의 죽음은 실족사로 기록되었지만, 아무도 그의 죽음을 실족사로 보지 않았고,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그의 죽음의 배후에는 권력이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하는구나. 당시 권력의 후세가 오늘날의 권력을 잡고 있는데, 그야말로 나라를 말아 드신 것 같더구나. 모든 백성들이 분노를 하고 있는 요즘이란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고 계신 것 같구나. 권력자의 부정부패는 참을 수 있지만, 이런 수치심은 참을 수 없더구나. 이런 국가망신이 또 어디 있겠니. 어제는 아빠가 꿈을 꾸었는데, 그 분이 곧바로 물러나겠다고 기자회견을 했단다. 너무 기쁜 나머지 눈을 번쩍 떴는데, 꿈이었던 거야. 장준하 선생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보고 계신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자신이 만들려고 했던 대한민국은 이런 건 아닐 텐데실망을 하시다가도 이백만 백성들의 성숙한 시위 문화에 뿌듯해하면서, 이제 곧 대한민국은 정상궤도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단다. , 그러면 이제 그런 희망을 가져보면서, 장준하 선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1.

1975 8 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장준하가 실족사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당시 장준하는 유신 독재 체제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던 재야 인사였고, 종교계, 정치권, 재야 인사를 모두 아우르는 거사를 계획하고 있던 시기였단다. 75도 경사의 낭떠러지에서 발견된 장준하는 옷에 아무런 생채기가 없었고, 손이나 다른 곳에 아무런 골절이 없었다고 하는구나. 그저 머리 둔부에만 함몰이 유일한 상처였대, 그러면서 실족사라고 하니, 누가 믿겠니? 하지만, 서슬 퍼런 유신 정권 하에서 그 누구도 타살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어.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뻔히 알고 있고민주화 정권이 들어와서도 한참이 지난 2004년과 2012년에 다시 조사를 하였고, 그의 결과는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감식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명백히 타살이라고 도장 찍은 것은 아니래. 아직도 의문사로 남아 있는 거야. 20대 국회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사 규명 특별법'을 재발의한다고 하니, 앞으로 추이를 살펴보아야겠구나.

 

2.

장준하는 압록강이 바로 보이는 의주에서 태어나 삭주로 이사를 갔다고 하는구나. 그의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대. 그는 신성 중학교에 다니면서, 계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는데, 방학마다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학교에서 배운 것을 가르쳤어. 이때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게 되는데, 이때부터 일본에 대한 저항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당시 신성 중학교 옆 동네에 오산 중학교가 있었는데, 그곳에 도깨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선생님이 있어서 직접 찾아가서 만나기도 했다는구나. 그 선생님이 나중에 오랜 인연을 맺게 되는 함석헌이었다고 하는구나. 장준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할 수 없었고, 바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단다. 그러다가 나중에 일본 유학을 가게 되었어. 당시는 1940년대로 일본의 사정이 점점 안 좋아지던 시기였어. 학도병으로 조선의 젊은이들이 끌려가고, 젊은 여인들은 정신대로 끌려가던 시기였단다. 장준하는 교직생활을 할 때 그가 가르쳤던 김희숙과 편지를 주고 받으면 연정을 키워왔는데, 김희숙 또한 정신대로 끌려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귀국을 해서 김희숙과 결혼을 했단다. 유부녀는 정신대로 끌고 가지는 않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는 독립운동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는 그 나름의 계획을 세웠어. 일본 학도병에 지원했다가 상황을 봐서 중국으로 망명을 하겠다는 계획이었어. 결혼을 하자마자 장준하는 일본 학도병에 지원을 했고, 훈련 도중에 기회를 봐서 동료 4명과 함께 탈출을 하였고, 중국군 유격대에 들어가게 되었단다.

그렇게 쉽게 중국군 유격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중국군 유격대에 있었던 김준엽을 만났기 때문이란다. 장준하 일행은 중국군과 함께 있었지만, 무기도 없고, 그저 제식 훈련만 하고 있었어. 그리고 중국군이 팔로군과 자기 민족들까지 싸우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을 했단다. 장준하 일행은 중국군 소속의 임천군관학교에서 머물렀는데, 무기도 없어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는 정신이라도 무장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잡지 <등불>을 발행했어. 거의 문집 수준의 잡지였지만, 앞으로 그의 앞길에 늘 잡지와 함께 하는 출발점이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둘 수 있었단다. 그들은 중대 결심하게 된단다. 당시 임천군관학교에는 삼십여 명의 조선인 청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로 가기로 했어. 가는 길은 도적도 많고, 중국군의 내전도 있었고,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 지 모르는 일본군들도 있었어. 그 길도 가까운 길이 아니었단다. 6000리 길이었어. 그것도 추운 겨울이었어. 하지만, 장준하 일행은 그 먼 길을 큰 피해 없이 뚫고 지나와 중경 임시정부의 보금자리에 도착을 했단다. 김구 선생이 직접 환영을 해주었으니, 감격이 얼마나 컸겠냐하지만, 장준하는 이내 실망을 하게 되었단다. 임정 요인들은 파벌 싸움을 하고 있었던 거야. 독립 투쟁을 위해 먼 길을 헤쳐온 장준하의 눈에는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지. 그는 임정 요인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 그는 분노에 찬 독설을 거침없이 해냈어. 그 자리에 있던 임정 요인들은 크게 반성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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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임시정부의 문제점을 국무위원과 교포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고발하기로 작정했다. 국내정세의 보고로 분위기가 처연해지자, 임시정부 내부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요즘 우리는 이곳을 하루빨리 떠나자고 말하고 있다. 나도 떠나고 싶다. 오히려 오지 않고 여러분을 계속 존경할 수 있었다면 더 행복했을지 모를 일이다. 가능하다면 이곳을 떠나 다시 일군에 들어가고 싶다. 일군에 가면 항공대에 들어가 중경폭격을 자원, 이 임정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다.

선생님들은 왜놈들에게 받은 설움을 다 잊으셨는가. 그 설욕의 뜻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임정이 이렇게 분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곳을 찾아온 것은 조국을 위한 죽음의 길을 선택하러 온 것이지. 결코 여러분의 이용물이 되고자 이를 악물고 헤매여 온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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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는 임시정부에 머무르면서, <등불>이라는 잡지를 다시 만들었어. 그는 광복군 생활을 하다가 서안에서 미군의 첩보원인 OSS 대원이 되어 훈련을 받게 되었어. 이곳에서 이범석 장군을 만났어. 장준하는 OSS 대원으로써 국내 진공 정진대에 선정되어 국내 진입 훈련을 받았어. 하지만, 국내 진입 바로 직전, 일본은 무조건 항목을 하게 되고, 길고 길었던 일제 치하가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그래서 그는 광복군 신분으로 8 18일 귀국하였는데, 아직 일본군이 다 물러난 것이 아니었는지, 여의도 공항에서 일본군과 대치하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일도 있었단다. 그리고 김구 주석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단다.

임시정부에서 맺은 인연으로 김구 주석을 보좌하기 시작했지. 그러나 갑작스러운 해방은 행복만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어. 나라는 대혼란이었어. 남과 북으로 나뉘는 조짐이 보이고, 남한 내에서도 권력과 탐욕에 눈 먼 이들이 있었어. 장준하는 김구를 보좌하다가 OSS에서 인연을 맺었던 이범석을 돕기 위해 김구를 떠났는데, 예전의 이범석이 아닌 모습에 실망을 하고 이범석을 떠나게 되었단다. 참고로, 장준하는 자신의 항일 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는데, 그 책의 제목은 <돌베개>란다. 우리 집에 이 책도 읽는데, 아빠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어. 조만간에 읽어봐야겠구나.

 

3. 

해방 이후 5년도 안되어 대한민국은 최악의 시간을 겪게 된단다. 장준하도 피난행렬을 따라 부산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는 그곳에서 <사상계>라는 잡지를 발행하게 된단다. 그때는 알았을까? 평생을 같이 하게 될 잡지였다는 것을 말이야. 물론 초기에는 무척 힘들었지. 지식인들을 위한 잡지라고 해야 할까? <사상계>는 지식인들과 학생들 사이로 조금씩조금씩 인기를 끌다가 함석헌을 만나게 되었단다. 예전에 이웃동네의 유명한 선생님으로 알고 있던 함석헌. 당시 큰 활동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장준하의 <사상계>에서 그의 글을 싣기 시작했고, 이승만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본격적인 매체가 된 거야. 그리고 <사상계>는 최고의 절정기를 이루게 되었대. 길거리에서 젊은이라면 <사상계>를 들고 다니는 것이 당연한 일로 생각할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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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계>가 들사람 함석헌을 필자로발굴한 것은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장준하와 함석헌은 <사상계>를 통해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이후 한국 사상계와 정신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뿐 아니라 언론사와 반독재 민권운동사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장준하가 존재하므로 <사상계>가 있었고, 함석헌의 존재로 인해 <사상계>는 그 존재의 빛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사상계>를 매체로 하여 함석헌과 장준하의 가치와 역량은 상승 효과를 띠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사상계>가 사라진 뒤에도 반독재투쟁을 함께하면서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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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창간했을 당시에는 계몽지, 교양지의 성격을 띠던 <사상계>는 정치평론지 성격을 띠면서 권력의 탄압을 받기 시작했단다. <사상계>의 기자였던 노종호라는 사람이 <사상계>를 네 시기를 구분한 것이 있는데, 이것을 읽어보면, <사상계>가 어떤 잡지였는지, 당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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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는 계몽지, 교양지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시기로서, 1953년 창간에서부터 1958년에 걸치는 6년간이다. 대체로 이 시기에 학생층에 많은 독자를 갖고 있었는데, 철학, 역사, 교육, 사회, 문화예술과 관련된 지적 갈등을 풀어주었다고 평가된다.

2기는 정치평론지적 성격이 두드러진 시기로서, 1959년에서 1962년에 걸치는 4년간이다. 이 시기는 정치적 변동이 격심해지는 시기로서, 자유당 정권말기에서 4.19 혁명과 이 박사의 하야, 민주당 정권의 탄생과 혼란, 5.16 군사쿠데타와 민주당 정권의 붕괴 그리고 군정이라는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상계>는 정치정세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반독재, 반부패, 반봉건의 필봉을 휘두르면서 민주정치의 원론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였다.

3기는 정치투쟁적 성격이 두드러진 시기로서, 1963년에서 1965년에 걸치는 2년간이다. 이 시기는 언론인으로서의 장준하 선생이 야당정치인, 반체제 민주투사, 통일운동 지도자로서 그 역할이 바뀌어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를 <사상계>쪽에서 보면 <사상계>의 중심지도력이 해체되는 시기, 공동화되는 시기라 하겠고, 이로써 <사상계>의 시대적 임무와 역할이 끝나게 되는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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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는 <사상계>를 통해 이승만 독재에 대한 강도를 높여갔고, 당시 사람들은 <사상계>를 보면서, 이승만 독재에 대한 분노를 키워갔단다. 그리고 분노의 결정체는 4.19 혁명으로 크게 타올랐으며, 결국 백성의 무서움을 알고 이승만이 하야를 했단다. 다시 오늘날 상황이 겹쳐지더구나. 백성들의 90% 이상이 허수아비 정권에 분노를 하고 있고, 자제력을 가지고 촛불로 분노를 태우고 있는데, 허수아비는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아직도 백성 무서운 줄 모르고 있는 것 같구나. 언제까지 자제를 가지고 촛불만 들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자신이 숨기고 있던 약점이 얼마나 더 들어나야 그 자리에서 물러날 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이 떨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허수아비의 약점을 꼭 쥐고, 자신에게 엄한 짓 하면 다 까발리겠다고 협박하던 그. 이젠 허수아비의 약점을 모든 백성들이 알게 되었으니, 그가 쥐고 있는 패가 사라져 버리게 된 거야. 그러면, 이제 그도 더 이상의 방패가 사라졌으니, 이제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을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무척 기대되는구나. 아빠가 딴 데로 빠져버렸네.^^

다시 장준하 선생의 이야기를 해줄께. 4.19 혁명이 일어났지만,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혼란만 더 부추겼단다. 아마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빠는 생각한단다. 하지만,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총칼로 정리한 이가 있으니 바로 박정희였단다. 장준하는 처음에는 5.16 쿠데타를 반겼단다. 혼란스러운 정국을 정리해 주었으니그런데, 박정희가 정권을 찬탈할 것까지는 몰랐던 것 같더구나. 박정희의 속마음을 곧바로 알게 되고, 군정에 반대하여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단다. 독재 군사 정권은 권력을 잡고 무서울 게 없었어. 그들에게는 권력만 있는 게 아니라 총칼도 있었어. 부패 언론인으로 만드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였어함석헌과 장준하는 같이 체포되기도 했단다. 그래서 <사상계>도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어. 이에 굴하지 않고, <사상계>는 더욱 날카로운 펜대로 바꾸었단다. 장준하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기로 하고, 감옥에 있을 때 국회의원에 출마해서 당선까지 되었단다.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사상계>를 발행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 넘겼는데, 그 이후 <사상계>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단다.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재야에서 반 독재 저항 운동을 하였단다. 박정희가 유신 헌법을 들고 나왔을 때는 박정희한테 공개 서한을 보내는 증 더 강도 높은 저항 운동을 벌였어. 끈질긴 독재를 몰아내자는 투쟁을 벌였던 장준하를 없애기로 했겠지. 그렇게 강렬하게 타오르던 장준하 선생의 투쟁불꽃은 독재에 의해 꺼지고 말았던 것이란다. 정의를 부르짖는 것이 죽음을 내놓고 해야 하던 시절이었어. 그 시절 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만 했었는데, 최근에는 몸소 경험하게 해주고 있으니, 정말 괴롭구나. 너희들이 자랐을 때는 우리나라가 정의롭고 합리적인 나라였으면 좋겠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도 촛불을 함께 밝혀야 할 것 같구나. 그렇게 모인 수백만 개의 촛불은 아마 밝은 미래를 밝혀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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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4-07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 안중근 의사 추모제때 장준하 선생 아드님을 만났었습니다. 이 서평을 보니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bookholic 2018-04-07 21:15   좋아요 1 | URL
억울한 죽음을 겪음 가족들의 고통이 가장 컸을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의 장준하 선생의 값진 삶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16-17)

그런데, 여담이지만, 지옥이라는 것에 대해 재미있는 정의를 내린 시인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으로, 브렌덴 케널리라는 아일랜드 사람인데, 지금도 생존해 있습니다. 이 시인이 쓴 시에 지옥이란 경이(驚異)를 잃어버린 상태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친구와의 우정을 그냥 당셩언 것으로 여긴다든지, 환한 햇살 속에 익어가는 옥수수밭을 보면서도 경이의 감정이 솟아오르지 않는 게 바로 지옥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시인은 그런 경이의 감정이 사라진 상태, 지옥이란 다른 말로 하면 권력욕망이 지배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경이로움이 죽을 때, 권력(욕망)이 태어난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인간이 세상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저 시인에 따르면, 인간이 권력을 탐하고 남을 지배하려거나 남들 위에 군림하려는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은 그의 정신과 영혼이 병들었거나 메말라버린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인간은 사람 간의 관계(우정)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혹은 햇빛과 바람과 구름의 은혜로 익어가는 곡식을 보면서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자연의 운행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인지 모르는 지옥에서 산다는 것이죠. 참으로 탁월한 성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

급박하다는 것은 오늘의 정치상황 때문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가는데, 지금 이대로 가면 인류 생존의 토대 자체가 붕괴한다는 경고가 끊임없이 나오는데도, 세계의 정치는 마냥 이 사태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닙니다. 최근의 미국 대통령 선거판을 보면 미국식 민주주의는 완전히 끝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기본적 교양도 상식도 없어 보이는 부동산 부호가 갑자기 나타나서 저렇게 대중들의 인기를 끈느 것을 보고 소위 엘리트 지식인들은 포퓰리즘의 대두를 걱정하고 있지만, 결국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끝났다는 신호로 보는 게 옳습니다. 그동안 지배층이 정당정치니 민주주의니 하는 가면을 쓰고 정치랍시고 해온 게 실은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는 게 전부였다는 것을 깨달은 대중들의 분노가 표출됐다고 봐야죠. 소위 엘리트들에 대한 민중의 반란이라고 봐야죠.

 

(47)

이 두 가지 용어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활성단층은 지구의 40억 년 역사 중 180만 년전에 시작된 제4기에 형성된 단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활성단층은 최근 ‘180만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을 의미한다. 활동성단증의 정의는 두 가지이다. ‘50만 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움직인 단층 또는 3 5천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으로 정의된다. 언뜻 보면 두 가지 정의가 또는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만족해도 활동성단층이 되므로 더 보수적인 기준같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꼼수가 하나 자리 잡고 있다. ‘50만 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이라는 개념이 입증하기 매우 힘들다고 한다. 이미 움직인 단층에서 또 한번의 움직임이 있을 경우 단층면이 바스러지기 때문에 그 단층이 한 번 움직인 것인지 두 번 이상 움직인 것인 확인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활동성단층의 정의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은 ‘3 5천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이라는 정의뿐이다. 다시 말해서 핵산업계는 (180만 년 내에 움직인) 활성단층이 아니라 (3 5천 년 내에 움직인) 활동성단층에서만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53)

9 12일 경주지진 이후 440회가 넘는 여진이 2주째 지속되고 있다. 많은 경주시민들은 반복되는 지진에 지쳐 있다. 친척 집에 피신을 한 사람도 많다. 여기에 원전사고의 불안감이 더해지고 있다. 진도 6.5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원전이라지만 설계대로 시공되었는지,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 과연 그 성능을 유지하고 있는지, 조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규모 5.8의 지진이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에서 발생하였다. 또한 관련 정보는 투명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원자력계는 벌써 이번 지진의 진원지가 양산단층이 아닐 가능성과 활동성단층이 아닐 가능성을 주장하고 했다. 여기까지가 사실이다. 나는 이 정도의 사실들 앞에서 우리 국민이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하여 충분이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63)

그럼에도 남북한 사이의 우발적 상황이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존재한다. 특히 김정은 정권의 호전적 언행에 맞서,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고 있는 마찬가지의 강경한 언사가 그런 우려를 키운다. 미국 조야의 전문가들도 박근혜의 발언이 북한의 체제 붕괴라는 소망적 사고에 기반해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김정은 뿐만 아니라 박근혜 역시 불안한 존재로 여긴다. 킬리포니아 몬테레이의 미들버리 국제문제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연구원은 북한의 9월 핵실험 직후 인터뷰에서, 한국의 일부 관리들이 북한 지도부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우혀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한국의 일부 정책결정자들이 김정은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설득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74)

끝으로 10년 가까이 이어진 한국 보수정권의 역할을 짚고 싶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조그만 더 밀면 쓰러진다는 이른바 북한 붕괴론에 사로잡혀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애를 썼다. 2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한국정부가 미 의회와 싱크탱크에 쓰는 돈 등을 통해 북한문제와 관련해 워싱톤에서 행사는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오바마 정부는 조지 W. 부시와 노무현 정권이 종종 이견을 빚는 것을 본 뒤에 한국이 반대하는 정책은 하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 테두리 내에서 대북정책을 폈다. 오바마 재임 중 북한과 딱 한 번 시도한 2.29 합의 때에도 남북한이 먼저 만나는 모양새를 취하게 해줌으로써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정부의 입장에 반하면 연구지원금이 행사 협찬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 전문가들도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비난을 자제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이 통일대박론을 펴고 그런 연구에 활발한 지원을 하면서 어떻게 통일에 이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빠진 채, ‘통일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춘 수백만 달러짜리 연구 보고서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95)

한국의 정치 현실을 보고 있으면 절로 나온다. 이건 뭐 합리적이지도 않고 최소한의 지켜야할 예의도 보이지 않는다. 견제되지 않는 권력이 늘 그러하듯이 기업인들의 비리는 사면되고 정치인들의 부패도 은폐된다. 권력의 심각한 부패만큼 걱정스러운 건 시민들의 둔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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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을 쏘다 - 김상옥 이야기 역사인물도서관 3
이성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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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이원규의 <약산 김원봉>이란 책을 본 적이 있어. 그 책에 나오는 의열단 단원들의 활약상에 크게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단다. 작년에 큰 인기를 끈 영화 <암살>과 올해 인기를 끈 영화 <밀정> 등에서 잇달아 의열단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의열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단다. 아빠도 예전에 읽은 <약산 김원봉>을 다시 들쳐보기도 했어. 그리고 김상옥이라는 매력적인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을 끄집어냈단다.

혈혈단신으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맞서 싸운 김상옥. 아빠는 혹시 그에 관한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어. 두 권 정도가 있더구나. 그 중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경성을 쏘다>라는 책이 있어서 산 것이란다. 역사 교양서 내지 평전의 장르라고 기대를 했는데, 이 책은 소설이더구나. 김상옥을 주인공으로 하는…. 아빠가 생각했던 장르가 달라서, 약간 실망했지만, 그래도 이 소설을 통해서 김상옥이라는 사람을 대략 알게 되었고, 이중스파이로 그려진 일본경찰 황옥이라는 사람을 새로 알게 되었어. 이 소설에서는 김상옥과 황옥이 서로 잘 아는 사이로 나왔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이 만난 적이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하더구나. 소설적인 장치로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라고 지은이는 후기에 적어 놓았단다.

아참, 아빠가 아직 영화 <밀정>을 보지 못했는데, <밀정>에 송강호가 연기를 한 일본 경찰의 실제 모델이 황옥이라고 하더구나. 시간이 되면 <밀정>이라는 영화를 한 번 봐야겠구나.

 

1.

그는 삼일 운동이 일어난 후에 독립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는 조직도 없고, 그렇다고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과 인맥도 없었어. 그저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신문을 만드는 것으로 독립운동을 했단다. 그는 서울역 폭파 사건에 감명을 받고 그도 폭파 계획을 세우게 된단다. 서울역 폭파 사건이라고 함은, 일본 경찰의 우두머리 중 한 명인 사이토를 겨냥하여 폭탄을 던졌지만, 아쉽게 그를 죽이지 못하고 미수에 그친 사건이란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폭파사건은 큰 이슈가 되었어.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그 폭탄을 던진 이가 다름 아닌 65세의 노인이었다는 사실이야. 강우규. 그가 배후도 없이 혼자 주도해서 벌인 사건이었단다. 김상옥은 그 사건에 감명을 받고, 경찰서 폭파 계획을 했지만, 그마저도 사전에 발각이 되어 도망을 가게 되었단다.  그때 그는 상해로 망명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임시정부의 일을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의열단을 이끌고 있는 김원봉을 만난 이후 그는 의열단이 되었어. 김상옥은 김원봉과 함께 대대적인 투쟁계획을 세웠어. 그 타겟은 서울로 정했지. 그런데, 누가 폭탄을 삼성한 경계를 뚫고 서울로 가지고 가느냐가 문제였어. 그때 이야기된 이가 일본 경찰로 있는 황옥이라는 사람이었단다. 황옥은 일본 경찰에 숨어 있는 밀정이라는 거야. 하지만, 백프로 믿을 수는 없었단다. 김원봉은 직접 황옥을 만나보기로 했어. 황옥은 출장을 핑계로 톈진에 왔고, 김원봉 일행도 톈진으로 향했어. 그곳에서 그들은 한 달 동안 만나면서, 서로 믿음을 쌓게 되었고, 서울에서 폭파 계획을 세웠어. 그런데도 아직 의열단 내부에서도 황옥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어. 김상옥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어. 하지만, 김원봉은 황옥을 신뢰했고, 결국 황옥이 폭탄을 서울로 밀반입하게 되었단다.

 

2.

황옥이 폭탄과 함께 먼저 서울로 향했고, 김상옥은 얼어 붙은 압록강을 건너서 국내로 들어왔단다. 경성에 와서 동생 집에 숨어 지내곤 했지. 그런데 사전에 약속된 날짜가 되었는데도 연락이 없었어. 어렵게 황옥과 접선에 성공했는데, 발각되었다고 했어. 폭탄이 경찰서에 있다고 했어. 누가 발설했는지 모른다고 했고, 현재로서는 피해를 최소하는 하는 게 최선이라고 했어. 그렇게 접선이 끝나긴 했는데, 김상옥은 아무래도 황옥이 계속 의심이 갔어. 그냥 기다리고 있다가는 자신도 잡힐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 고심 끝에 그는 단독으로 행동하기로 했어. 그리고 혈혈단신의 몸으로 종로경찰서에 포탄을 투척하고, 맞서 싸워서 인명 피해를 주었단다. 그리고 김상옥은 일본경찰을 피해 도망을 갔어. 열흘 동안 신출귀몰하면서 도망을 다녔는데, 결국 일본경찰에 위치가 노출되었고, 남아 있는 총으로 총격전을 벌었고, 나머지 한 방으로 자결을 했단다. 그렇게 그의 꿈은 미완으로 남게 되었단다.

황옥… 그는 과연 독립군의 밀정이 과연 맞는가. 아직도 그것은 물음표로 남아 있다고 하더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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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당연히 최도사는 거절할 리가 없고, 우리는 초가을 볕이 푸짐한 평상에 앉아 소주를 마셨다. 투명한 가을 햇살이 꿀꺽꿀꺽 목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서울에서 가져온 안주용 과자 몇 개를 내놓고 낮술을 마시니 골짜기 저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그래, 바로 이게 지리산의 맛이야하는 생각에 흐뭇한데, 시인이 한 김 올라 완성된 초록색 호박찜에 빨간 고추 고명을 얹어 내밀었다.

(81)

버들치 시인은 술잔을 쥐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내가 왜 버들치 시인을 좋아하는지 안다. 답답해하면서 왜 그를 보면 존경을 표하는지 안다. 그는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고 남의 것을 남의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어지러운 시절에 그건 너무나 귀한 덕목이었다.

(107)

나는 공항에서 신문에 실린 그의 기사를 보았다.

한국 작가 회의의 젊은 문인들로 구성된 젊은작가포럼(위원장 임경섭)은 박남준 시인이 그 삶과 문학을 통해 욕망을 내려놓으려는 치열한 고뇌와 성찰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이 상을 준다고 밝혔다.”

욕망을 내려놓으려는 치열한 고뇌와 성찰. 그 욕망에서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는 빠지리라. ‘그래도 좋다!’고 나는 생각했다.

(119)

쪼물락 쭈물럭

단단하던 감들이 만지면 만져줄수록

쪼글쭈글 시들어간다

축축 늘어진다

사람의 모난 마음도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면

둥글게 두리동동 동그래질 것이다

감을 깎다가 익거나 으깨져서 물러진 부분들

서걱 베어낸 곶감이 있다

그 베어진 상처 쪼물락 쭈물럭 조심스럽게 만져주었더니

그러니까 상처가 씻기고 치유되어서

동글동글~

(124)

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그렇다 그들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흘려보내기를, 저 산과 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떠나고 누구보다 계절을 깊이 즐긴다. 봄이면 야생 달래와 냉이 그리고 산나물을 먹고 여름이면 천렵한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인다. 가을이면 송이버섯 열 개로 친구들과 풍성한 파티를 벌인다. 나는 지리산에 갈 때마다 삶이 단순할수록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절감한다. 그리고 똑 같은 양으로 내가 얼마나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도 말이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이들이 소유한 것의 양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이가 의신마을 최도사다. 그는 계절별로 두어 벌의 옷을 소유하고 있다. 아마도 언제든 어깨에 달랑 지는 바랑 하나에 짐을 챙겨 그는 먼 길을 떠날 수 있으리라. 내 주변의 많은 성직자, 수도자분을 보았지만 최도사만큼 적게 소유하고 있는 이는 보지 못했다. 스스로 내비도의 교주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가긴 간다.

(239)

여기 지리산이야, 꽁지야. 친구들이 와서 지붕 다 고치고 지네들이 고기 사 와서 먹고 갈 거야. 넌 글이나 쓰라니까.”

그래, 거기가 지리산이었다. 소유가 전부가 아닌 곳, 욕망이 다다른 곳, 지혜가 다른 곳. 나는 문득 또 생각했다. ‘알았어. 내가 책 팔아 돈 많이 벌어서 지리산 한편에 땅이라도 살게. 그래서 다들 편히 살다가 갈 수 있게 할게라고. 아마도 친구들은 또 지청구를 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게 지리산 식이 아니라니까.”

(263)

유머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요즘 아재 개그라는 건 그러니까 유머가 아니다. 실소를 터뜨리게 하니까). 진정한 유머는 우선 교양, 그러니까 다양한 콘텐츠를 가져야 가능하고 그것을 구사하는 마음의 여유,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알아들을 귀 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머의 핵심은 남들이 은폐하는, 혹은 하려고 하는 진실의 과녁을 정확하게 조준하는 데 있다. 우리가 만일 어떤 사람의 말에 웃는다면 그것이 진실의 과녁을 맞혔기 때문이다. “임금님은 벌거벗었어요.”도 그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진실의 과녁에 닿은 것은 힘이 있다.

부처나 공자나 예수(출생 연도순) 역시 대중에 큰 영향을 미친 데는 그들이 가진 진리의 감화력 외에도 연설의 유머가 큰 몫을 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웃기지 않는 무명의 연설자에게 대중이 몰려들기란 예나 지금이나 불가능하다. ‘부자가 하늘나라로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게 쉽다는 말은 지금은 위선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고리타분한 말일지 모르나 그 당시엔 얼마나 배꼽을 잡게 만들었을까. 그것이 얼마나 사실이며 듣는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나 큰 카타르시스를 주었기에 예수는 권력자들에게 죽기까지 했을까.

(326)

그의 요리를 먹은 후(어쩌면 내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나의 밥상도 변하기 시작했다. 소박한 것이 점점 좋아진 것도 그와 1년을 함께 한 탓이리라. 오늘 나는 찻물을 우리고 밥을 말아서 들기름에 볶은 김치랑 단출히 아침을 먹는다. 땅에 뿌리박은 모든 것들은 땅에서 길어 올린 것들을 도로 내놓고 땅으로 돌아간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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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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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2008년에 예상 밖으로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한 편 있단다. 그 책은 바로 세라 워터스가 쓴 <핑거스미스>란 책이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었던 책. 이 정도면 영화로 나올 만하다고 생각했었어. 이미 2005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더구나. 그런데, 올해 다시 우리나라에서 각색해서 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단다. 노출 장면 때문에 많은 이슈가 있었던 영화 <아가씨> 아빠도 보지는 못했지만, 이야기가 탄탄해서, 이야기만으로도 잘만 만들면 성공했을 텐데, 노출 장면만 너무 부각되어 이야기의 힘이 줄어든 것은 아닌가 싶다는 생각을 했단다. <아가씨>란 영화 때문에 영화의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와 그 소설을 쓴 세라 워터스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어. 아빠도 문득 오래 전 읽었던 소설이 생각나면서, 세라 워터스로 검색을 해보게 되었어. 그가 쓴 여러 책이 검색이 되었고, 디자인이 유달리 예쁜 이 책이 눈에 갔단다. 그래서 읽었어. 솔직히 이야기해서 <핑거스미스>보다는 별로였단다.

 

1.

이야기는 1940년대 몰락해가는 헌드레즈 홀의 한 귀족의 집에서 시작한단다. 주인공은 의사인 패러데이야. 패러데이는 30년 전인 1919년 열 살 때 엄마가 하인으로 일하는 에어즈 집안의 집에 간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에어즈 가의 집은 그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단다. 그런데 30년 전이 지난 1949, 그는 의사로써 그 집에 다시 가게 되었어. 에어즈 의 주치의는 동료 의사인 데이비드란 사람이었는데, 일이 있어서 대신 가게 된 거야. 에어즈 의 하인 베티가 아프다고 했어. 패러데이에게는 감회가 새로울 만한데, 30년이란 시간은 에어즈 를 전혀 다른 집으로 만들었단다. 에어즈 가는 에어즈 씨가 죽은 이후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에어즈 부인의 자존심으로 근근이 이어가고 있었어. 첫째 딸 수전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죽었고, 둘째 딸 캐럴라인은 이제 스물일곱 살의 처녀였어. 몰락해가는 귀족 집안에서 억척스러움도 가지고 있고, 장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단다. 그리고 아들 로더릭이 있었는데,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어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었어. 하지만, 그는 에어즈 의 유일한 남자로써, 집안의 가장 역할을 충실해 해냈어. 그런 집에 패러데이가 방문했단다. 하인 베티가 아프다고 해서 진료를 해보니, 바로 꾀병인 것을 알았어. 베티에게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돌아갔어. 그런데 패러데이는 로더릭의 다리 부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자신이 최근에 개발한 의료기술에 대한 임상실험을 로더릭에게 하고 싶었어. 그래서 그것을 에어즈 가 사람들에게 설명을 했고, 일주일에 한번씩 에어즈 가에 들르기로 했어. 그러면서 에어즈 가 사람들과 친해지게 되었어.

 

2.

에어즈 가의 자존심을 지켜오고 있는 에어즈 부인은 오랜만에 파티를 열기로 했어. 말은 안했지만, 에어즈 부인은 그 파티를 통해 캐럴라인이 결혼 상대를 만나기를 내심 기대했었어. 하지만, 캘러라인과 로더릭은 그 파티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았어. 집안 사정이 파티를 할 여건도 되지 않았고, 기분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런데, 그 파티에서 불상사가 일어났단다. 이웃집 베이커 하이드 부부의 어린 딸 질리언이 에어즈 가의 늙고 충실한 개 지프에게 얼굴을 물려 중상을 입었어. 다행히 그 현장에 패러데이가 있어서 응급조치를 취하고 빠른 판단으로 조치를 취했지만, 얼굴에 난 상처는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남아있을 거야. 에어즈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 평상시 지프의 행동을 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 분명 질리언이 지프에게 장난을 심하게 쳤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질리언의 부모는 딸이 다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었어. 최소한 지프를 죽어야 한다고 했어. 안 그러면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했지. 결국 패러데이가 에어즈 사람들.. 특히 지프에게 애정을 깊이 갖고 있는 캐럴라인을 설득해서 지프를 안락사 시키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단다. 그렇게 파티는 엉망으로 끝이 나고 말았어.

이 사건 이후, 에어즈 가에서는 이상한 일어났어. 로더릭이 자꾸 이상한 증세를 보였어. 밤에 넘어져서 부상을 당하고, 정신을 잃기도 하고캐럴라인은 패러데이와 함께 로더릭 몰래 그의 방안에 들어가서,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일에 대해 패러데이에게 설명을 했어. 로더릭의 방에는 검게 그을린 듯한 이상한 자국이 있었어. 이 정체 모를 자국이 최근에 생겼다고 이야기했지만, 패러데이는 원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로더릭과 우연히 시내에서 만난 패러데이는 자신의 집에 로더릭을 초대했어. 로더릭이 무엇인가 숨기는 듯했어. 그래서 설득하여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게 했어. 로더릭은 파티가 열린 날 참석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방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래. 그 일은 거울이 스스로 움직여서 깨지는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고 로더릭 자신도 심함 불안감과 공포를 느껴서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어. 이후에는 물건들이 스스로 움직여서 그 움직인 물건들에 로더릭 자신이 걸려서 넘어지곤 했다는 거야. 패러데이는 의사이다 보니 그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 않고, 오히려 의사다운 의료적인 판단을 했단다. 패러데이는 공황장애와 정신장애를 겪고 있다고 판단을 했고, 그것을 로더릭에게 이야기했어. 그러자, 로더릭은 격분했어.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말이야. 아빠는 왜 로더릭이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어. 혹시 패러데이가 한 임상실험의 부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단다. 그리고는 나중에는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겠지. 하면서 책장을 넘겼단다. 패러데이는 로더릭이 걱정이 되었어. 그래서 캐럴라인에게 이 사실들을 이야기했어. 그러던 어느날 밤에 에어즈 가에 화재가 발생했어. 가족들 모두 로더릭이 불을 낸 것이라고 생각했어. 로더릭이 제정신이 아닐 때 말이지. 에어즈 가 사람들과 패러데이는 로더릭을 병원에 입원시키기로 했어. 당시 전쟁 후 후유증에 따라 정신 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거든.

 

3.

의사들이 하는 파티가 있었어. 패러데이는 캐럴라인을 초대했단다. 캐럴라인도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귀족의 장녀라고 하는 꼬리표를 떼고 스물일곱 살 젊은 아가씨로 돌아갔어. 그 모습을 보고 패러데이는 캐럴라인에게 은근히 끌렸어. 캐럴라인도 패러데이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 그들은 집에 오는 길에 잠시 샛길로 빠졌고, 키스 직전까지 갔지만, 캐럴라인이 갑자기 거부를 했단다. 이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 어색한 사이가 되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에어즈 부인이 오히려 둘 사이를 넘겨 짚었단다. 에어즈 부인도 패러데이가 나이가 많기 하지만, 캐럴라인의 짝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둘 사이는 그 어색함을 극복하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되었는데, 캐럴라인은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고 있었어. 그런데, 그 동안 잠잠했던 집에서 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단다. 이번에는 전화벨이 저절로 울리고, 차임벨이 저절로 울렸어. 그리고 이 일로 에어즈 부인은 신경쇠약에 빠지게 되었단다. 이 증세는 점점 심해져서, 환각 증세까지 보이면서, 어렸을 때 세상을 뜬 첫째 딸 수전을 보았다고 했고, 자해도 시도했어. 패러데이는 에어즈 부인을 정신 병원으로 옮기자고 했는데, 이번만은 캐럴라인이 격한 반대를 했단다. 그런데 캐럴라인이 격하게 반대한 그 다음날 연락이 왔어. 에어즈 부인이 방에서 문을 잠그고 문 손잡이에 목을 매달고 죽었다는 거야. 옆에는 상실에 빠진 캐럴라인이 있었어. 그 어떤 위로가 필요하겠어. 이젠 그 큰 저택에 캐럴라인 혼자 있어야 하잖아. 물론 하녀들이야 있었지만정신병원에 있는 로더릭은 증세가 점점 심해진다는 소식만 들려오고

에어즈 부인의 장례식을 치르고, 패러데이는 결혼식을 빨리 하자고 독촉했어. 마지못해 알았다고 대답한 캐럴라인. 하지만, 결국 캐럴라인의 확신은 꺾이고 말았어. 그래서 결혼 며칠 전 결국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어. 패러데이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 화를 터뜨리고 말았지. 이후 패러데이는 실연 당한 슬픔을 톡톡히 겪었단다.  그런데, 또 다시 그 집에서 슬픈 소식이 전해졌어. 캐럴라인이 죽었다는 거야. 난간에서 떨어져서 1층으로그게 자살이냐, 아니면 사고사냐, 아니면 또다른 원인이냐목격자는 없었고, 하녀 베티가 죽은 캐럴라인을 발견한 것이 전부였단다. 결국 패러데이도 수사를 잠깐 받긴 했지만, 경찰은 캐럴라인의 죽음을 자살 또는 우발적인 사고로 규정했단다.

이제 남아 있는 페이지는 얼마 없는데, 진실은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어. 지금까지 헌드레즈 홀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어떤 일들에 의해서 일어난 것인지, 설명이…. , 그렇게 소설이 끝났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무엇인가 심오한 진실과, 헌드레즈 홀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사실을이리저리해서 일어났던 일이다하는 말들을 기대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말이지, 이 허탈감.

그런데, 옮긴이의 글을 잠시 읽다 보니,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 소설의 화자는 패러데이였단다. 그러므로 이 글의 전부를 진실이라고 믿어야 하느냐 하는 의심이 들었어. 패러데이의 시각에서 쓴 거짓이 담겨 있다면그 생각을 하니, 패러데이그가 어렸을 때부터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헌드레즈 홀을 차지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리고 조력자로써 베티가 있었던 것이고맨 처음 패러데이가 헌드레즈 홀의 에어즈 가에 오게 된 것도 베티의 꾀병이었잖아. 거의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 직전, 캐럴라인이 결혼을 깨버리자, 그 분노를 담아 캐럴라인을 죽인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단다. 다시 책을 펴서 마지막 페이지를 펴봤어. 대충 넘겨 읽었던 그곳에는 의미심장한 패러데이의 글이 있었단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금이 간 창유리뿐이고, 거기에서 이쪽을 지그시 노려보는 일그러진 얼굴은, 간절히 원했으나 원을 이루지 못한 얼굴은, 바로 나 자신이니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어. 지은이는 하인이었던 베티의 일인칭 시점으로 다시 한 권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 일련의 사건을 목격했고, 주변에 있었던 베티의 시선으로 이 모든 일들을 다시 이야기하는 거야. 그러면서 드러나는 진실등. 베티와 패러데이가 사전에 짜고 일을 벌인 것이라는아빠의 상상력이 너무 갔나?^^ 아무튼 아빠가 지은이를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한번 조언해 주고 싶더구나. 베티를 화자로 해서 다시 한번 소설을 써달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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