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법륜 스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생수업>이란 책을 이제서야 읽어 보았단다. 그냥읽었단다가 아니라읽어 보았단다라도 쓴 이유가 있어. 법륜 스님은 현시점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스님이 아닐까 생각한단다. 그래서 법륜 스님의 말씀은 TV나 팟캐스트 등 여러 매체에서 많이 접할 수 있단다. 그래서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법륜 스님의 말씀을 쉽게 접할 수 있단다. 그렇게 굳이 읽지 않아도 될 책을 집어 들었기 때문에읽어 보았단다라고 한 거야. 그럼 왜 읽어 보았느냐? 사실 아빠가 최근 몇 달 동안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거든. 물론 너희들에게 위로를 받긴 하지만, 책읽기로도 위안을 받고 싶어서 집어 들었단다. 회사일이든, 스트레스든, 모두 다 인생에 관한 이야기잖아.

이 책을 읽으면서 아빠가 법륜 스님의 책들은 어떤 것을 읽었나 생각해봤어. 이 책 이전에 다섯 권을 읽었더구나. 법륜 스님의 책을 처음 만난 건 반야심경을 설명한 <반야심경 이야기>란 책이었어. 그 책을 너무 좋게 읽어서 법륜 스님의 책들을 찾아 읽었단다. <금강경 이야기>(2), <붓다, 나를 흔들다>, <행복한 출근길>을 읽었었어.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되었구나. 이 책 <인생수업>은 아빠처럼 인생 후반전에 막 접어든 사람들이 읽으면 공감할 수 있는 그들이 많이 실려 있었어. 공감은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몸으로 옮기기가 어려워서 문제지만 말이야.

 

1.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고,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집착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면서 살라고 하신단다. 그 밖에 하시는 말씀들이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란다. 고개를 끄덕여지게 돼. 하지만, 법륜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과연 할 수 있을까? 스스로 물어보면, 아빠는 자본주의에 너무 물들어서인지 그런 것들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래서 읽을 당시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위안이 되는 듯 하지만, 읽고 나서는 여전히 스트레스가 사라지지 않는구나. 스트레스로 뭉친 어깨를 만져보니 그대로야. 하기야, 아빠가 이 책을 읽기 전에도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야. 읽는 순간만이라도 위안을 받고 싶었던 거니까, 그걸로 만족한단다. 마지막으로 아빠가 발췌한 몇몇 글들로 아빠의 생각을 대신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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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사람은 왜 살아야 합니까?”

젊을 때 많이 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묻는 시기가 있습니다. 사십대, 오십대, 혹은 갱년기에 접어들어사는 게 뭔가, 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들면서 다시 묻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삶이라는 생각보다 먼저이기 때문이에요. 즉 존재가 사유보다 먼저 있었기 때문이지요. 살고 있으니 생각도 하는 건데. ‘왜 사는지를 자꾸 물으니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17)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예요. 그래서 내가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할 책임도 있고 권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 자신을 괴롭히면 행복해야 할 내 인생을 내가 내팽개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왜 사느냐는 질문으로 삶에 시비를 거는 대신어떻게 하면 오늘도 행복하게 살까를 생각하는 것이 삶의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쓰는 길입니다. 그것이 내 인생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지닌 주인으로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48)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일어나 버렸는데 그걸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무조건 잘될 거다.’ 하는 낙관이 아니라, ‘일어나버린 일은 항상 잘된 일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고 거기서부터 출발하면서 어느 상황에서든 배울 수 있고, 그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지혜로운 조언도 해줄 수 있게 됩니다.

(78)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변하는 것을 봤을 때 괴로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마치 바다에서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생성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걸 깨쳐서 집착을 놓아버리면. 생겨난다고 기뻐할 일도 없고 사라진다고 괴로워할 일도 없어집니다. 그것을 직시하면 두려움도 아쉬움도 없을 텐데, 부분적으로 인식하니까 없어졌다고 생각해서 아쉬움이 생기고, 없어질까봐 두려움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늙음도 죽음도 단지 변화일 뿐임을 알고 나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144-145)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 바다가 기분 좋은 걸까요, 내가 기분이 좋은 걸까요. 내가 기분 좋은 겁니다. 내가 기분이 좋은 것은 바다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산은 그냥 산이고 바다는 바다고 하늘은 하늘일 뿐입니다.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냥 바라는 것 없이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겁니다. 바라는 것 없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기대 없이 좋아해보세요, 바다를 사랑하듯이 산을 좋아하듯이.

(256)

만약 화를 냈다면, ‘아 내가 왜 화를 냈을까?’ 하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내가 화가 났구나.’ 알아차리고다음부터는 안 내야지.’ 하는 겁니다. 그래도 또 화를 내면, 또 화를 냈구나. 다음에는 안 내야지.’ 해야 합니다. 백 번을 화내도다음에는 안 내야지.’ 이렇게만 할 뿐이지, 어제 화낸 것을 오늘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제 낸 화를 후회하고 따지면 인생 낭비예요. 그러니까 물을 길어 오다가 넘어져서 쏟았을 때, 쏟아진 물을 아까워할 게 아니라 빨리 다시 물을 길으러 가야 합니다. 그것이 지나간 일을 두고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자꾸 연습해야 합니다.

(274)

진리의 길은 나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진리의 길은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아야 합니다. 나는 좋은데 남에게는 나쁘거나 남에게는 좋은데 나에게 나쁘거나 한 일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나에게는 이익인데 남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과보가 되어 돌아오고 내가 희생을 해서 남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내가 오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오래도록 지속가능한 행복이 유지됩니다. 지금은 좋은데 나중에 나쁜 것은 나중에 후회하게 되고 나중은 좋은데 지금은 나쁜 것은 지금 하기가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아야 그 행복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이 진리의 길에 있어서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지속가능한 행복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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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그래, 노 후보를 만났어요. ‘오늘 아무개를 만났는데 정몽준 쪽에서 이런 것이 왔다. 정몽준하고 한번 만나서 대통령이 되었을 때 배려를 잘 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이야기를 하면은 그걸로써 적극 참여한다고 한다그런데 노 대통령이 저는 그런 식으로 해 가지고 대통령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더라고. ‘정몽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단일화하는데 자리 가지고 뒷거래는 안 한다고 국민 앞에 몇 차례나 이야기했는데 그건 국민을 속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단둘이 만나서 덕담으로 한 이야기라도 그걸 근거로 해서, 당시니 그전에 이런 얘기한 적이 있지 않느냐고, 그걸 실천하라고 요구할 때 약속한 걸 어떻게 안 했다고 합니까.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그래요. 그래서 자기는 그 사람들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면서 그런 식으로 자리 약속하고 그 사람 협조로 대통령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깨끗하게 소신을 지키다가 낙선하는 걸 통해서 정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 – 김원기

(47)

이해관계를 쫓아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런 정치인이 아니고 엄청난 괴로움과 정치적인 손해가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희생하면서 끝까지 소신을 지키는 그런, 정치인으로서 찾아보기 힘든 면모, 이것이 결국 노 대통령이 국민 전체에 정치가로서 인식되는 원동력이었고 결국 그걸 통해 대통령까지 당선됐던 거고. – 김원기

(122)

노무현 후보가 나한테 유시민 씨한테 갈 건데 같이 가세그러기에, 원래 그전에도 서로 한 얘기가 있어서 그래 가죠. 유시민 씨한테 어떻든 간에 와서 좀 도와 달라고 하죠.’ ‘오케이, 그래. 오케이그래 가지고 그때 유시민 씨한테 가서 개혁당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했던 거죠. 그래서 구명보트를 좀 준비해 달라. 이 배가 난파선이 됐을 때 갈아탈 수 있는 구명보드라도 하나 있어야 될 것 아니냐거기 비스듬한 5층짜리 건물의 옥탁방 같은 사무실이야. 경사가 이렇게 있는. 집필방이라고 조그맣게 있는데 거기 가 앉아서 내 기억에 내가 탈 수 있는 보트 하나는 있어야 되지 않겠나이런 정도 얘기를 한참 주고받으면서 유시민 씨한테 그걸 부탁을 했어요. 그때 내가 왜 배석을 하게 되었나 모르겠어.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자리를 갈 때는 반드시 자기 참모들을 데려가는데 그 업무의 연동성과 연관성이 가장 좋은 사람을 데려 가거든요. 그래서 유시민을 끌어들인 개혁당의 출발이 그 여름에 돼요. – 안희정

(146)

1988년도에 처음 국회의원 당선됐을 때 코리아나 호텔 2층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 제가 스물 세살밖에 안 되었잖아요. 그분이 1946년생이니까 마흔두 살이고, 열아홉 살 차이잖아요. 저한테 뭐라 그랬냐면 나는 정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런데 나를 역사발전의 도구로 써 달라. 나는 그게 가장 강한 거라고 봅니다. – 이광재

(149)

나는 그게 노 대통령의 가장 큰 흡인력이었다고 봐요. 자기언어. 그러니까, 1988년도 대정부질의하고서 굉장한 평가를 받았는데 그때 우리한테 뭐라고 했냐면 지도자와 지도자 아닌 사람의 구별점은 연설문을 스스로 쓸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다스스로 쓰려면 그 문제가 절실해야 돼.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사람을 움직일 수 있어요. 그게 노 대통령의 힘이었다고 봐요. – 이광재

(163)

노 대통령이 걸어갔던 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은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가장 어려운 사람과 더불어서 가장 전면에, 일선에서 자기 모든 걸 던진 사람이에요. 그런 걸 가진 사람이 노무현의 후예가 되지 인간적으로 가깝다고 되는 거? 난 그런 거 없다고 봐요. 그래서 친노라고 마친 큰 세력이 있는 것처럼 해서 연일 싸우는 사람도 고스트(ghost)와 싸우는 거고, 또 하나는 친노 적자는 없다, 내가 볼 땐, 오히려 시대정신에 헌신하는 자가, 그 사람이 노 대통령의 후계자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엎는 그런 사람이 반드시 또 탄생한다. ? 서민들이 봉하마을에 오는 걸 관찰해 보면,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 많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기성 정치에 염증을 내면 낼수록 찾아옵니다. 그 공통분모를 믿는 사람이 또 탄생한다고 봐요. – 이광재

(214)

노무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정치인이, 그 개인의 경력으로 보나 사회적 기반으로 보나 정치적 기반은 비주류의 비주류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없어요. 근데 그 시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가진 분이었어요.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노무현이라는 이 캐릭터에서 어느 한 대목인가를 자기 마음에 들어 하고 그래서 난 노무현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에요. 많은 결점과 더불어서 많은 미덕을 가진 분이었잖아요. 이분이 지금 대선에 나온다면 안 된다고 봐요. 또는 그전에 나왔더라도 역시 안 됐으리라고 봐요. 이거는 그때 딱 일회적으로 벌어진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캐릭터를 가진 분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안 생길 거라고 봐요. 우리나라 같은 조건에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분이에요. – 유시민

(241)

우리나라 교육은 통조림을 만드는 거거든, 가세등등이라는 것 자체를 교육이 깎아 버려요. 그러니까 고등교육까지 끝나면 그런 기세를 갖고 있는 사람은 이미 떨어져 나가고 없어요. 그 양반은 정말 희귀한 경우지. 대학을 안 간 게 굉장히 다행인 측면도 있다고 봐요. 교육으로부터 두들겨 맞는 통조림 공격을 덜 당한 거죠. 배우는 뭐냐면, 어렸을 때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노력하는 거거든요. 교육과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이 끝없이 통조림화한 내면의 벽을 털어 내는 게 배우예요. 이 양반은 (이미) 털려져 있는 거야. 그러니까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 거예요. 매력 있다고 느낄 수 있는데. – 문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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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어떤 이들은 고전이 진부할 것이라 지레짐작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전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살아남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후대로 전승되었을 겁니다.

(21)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처럼 소포클레스 역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할 필요를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연대기적 서술을 포기합니다. 게다가 그가 쓰려고 했던 것은 몇 시간 안에 끝을 내야 하는 연극의 대본이었으니 과감한 압축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연극이 시작되면 우리는 이미 왕좌에 오른 오이디푸스를 보게 됩니다. 이런 서사기법을 결정적 순간의 바로 직전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57)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사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간을 감염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며, 이성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책은 서점에서 값싸게 팔리고, 도서관에서 공짜로 빌릴 수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물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책에는 주술적인 힘이 서려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책은 곳곳에서 금지당하고, 불태워지고, 비난당했습니다.

어떤 책은 분명 위를 살짝 미치게 만듭니다. 중독성 있는 마약처럼 작용합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저는 에마 보바리처럼 소설책에 탐닉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대학 입시가 불과 반 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무릎 위에 놀려놓은 소설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대여점에서 빌려온 책들이어서 표지는 너덜너덜했고 종이는 누렇게 변색돼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67)

<돈키호테> <마담 보바리>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미치광이 돈키호테와 광기 어린 사랑으로 자신을 망쳐버린 에마 보바리는 세르반테스가 플로베르가 창조한 인물이지만, 그들에게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야기 속의 세계가 계속되기를 바라고, 그 안에 머물기를 원하는 우리가 거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인물들에 매료되고 자기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며 그들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이 우리의 의식에 침투해 우리의 일부를 돈키호테와 에마 보바리로 바꾸어놓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읽은 소설은 우리가 읽음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일부가 됩니다. 한번 읽어버린 소설은 더 이상 우리 자신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나가사와의 말은 그런 면에서 일리가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두 사람의 자아 안에 공유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니까요.

(69)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는 어떤 우월한 존재가 책이라는 대량생산품을 소비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바로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바로 우주입니다. 이야기의 세계는 끝이 없이 무한하니까요.

(81)

소설이든 영화든 끝까지 봐야 온전한 반응이 나올 수 있는데, 소설은 영화와 달리 끝까지 보는 경우가 드물고, 일단 끝까지 보았다면 그것은 그 작품의 어떤 면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등장인물을 이해하고 그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어떤 소설을 끝까지 읽었다면 거기엔 무엇이든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소한의 것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만약 어떤 소설이 실망스러웠다면 바로 던져버리고 그 작품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거나 입을 다물었을 겁니다.

(102)

소설은 세심하게 설계된 정신의 미로입니다. 그것은 성으로 향하는 K의 여정과 닮았습니다. 저멀리 어슴푸레 보이는 성을 향해 길을 다라 걸어가지만 우리는 쉽게 그 성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대신 낯선 인물들을 만나고 어이없는 일을 겪습니다.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경험하기도 하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를 곰곰이 짚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서점 서가에 꽂힌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우리가 굳이 소설을 집어드는 이유는, 고속도로로 달리는 것에 싫증이 난 운전자가 일부러 작은 지방도로로 접어드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의 이성은 줄거리를 예측하고, 작가의 의도를 가능하고, 인물의 성격을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의 누군가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반면 우리의 감성은 작가가 써놓은 적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탄복하기도 하고, 예리한 인물 묘사에 공감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처한 고난에 가슴 아파하기도 합니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균형을 이룰 때, 우리의 독서는 만족스러운 경험이 됩니다. 때로 이성에 이끌렸다가 때로 감성에 이끌렸다가 하면서 우리의 정신은 책 속에 구현된 그 이상한 세계를 점차 이해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세계의 일원이 됩니다.

(182)

누구나 알다시피 도서관은 책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누구라도 그곳에 들어가면 어떤 신성함을 느끼게 됩니다. 많은 저자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책등은 묘비처럼 느껴집니다. 그곳은 죽은 이와 산 자가 가장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저자가 죽어 있는지 살아 있는지 신경쓰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작가는 자기가 쓴 책에 묻힌다는 말의 의미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곳도 바로 도서관일 겁니다. 움베르토 에코와 대담을 하던 장클로드 카리에르가 내가 책이 많이 있는 어떤 방으로 가서 그중 한 권도 손을 대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답니다. 그러면 무어라고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받게 돼요. 그것은 어떤 강한 흥미라고도 할 수 있고, 어떤 안도감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라고 말할 대, 책을 사랑하는 우리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단박에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9)

사실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별들이 수백 수천 년 전에 보내온 빛이 이제야 우리 망막에 와닿듯이 책 역시 시공을 초월해 우리에게 도달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밀란 쿤데라의 통찰처럼, 비록 우리 현대인의 시야가 마치 요제프 K의 그것처럼 좁아져 있고 모두가 세속적 이해와 단기적 전망으로 아웅다웅하며 살아가고, 세계가 돈키호테와 같은 모험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에게는 이 좁은 전망을 극적으로 확장해줄 마법의 문이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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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11-25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여운이 짙게 남습니다. ^^;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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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달 전에 약간은 우연히 읽게 된 책이 있었어.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너무 재미있게 읽었단다. 그리고 그 소설의 지은이 천명관에 반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두어 권 구입했고, 이번에 <고래>라는 책을 읽었단다.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2004년에 쓴 책이고, 당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상이라고 하는구나. 앞표지를 넘겨 책날개의 프로필에 나와 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랬단다. 인터넷 서점에 있는 단정한 용모에, 지적으로 보이는 뿔테 안경, 비교적 긴 머리칼이 자연스러운 그의 프로필 사진과는 대조적이었거든. 무뚝뚝한 표정에 머리를 빡빡 밀어서, 머리칼 하나 보이지 않고, 눈썹마저 흐릿한 사진이었거든. , () 것 같은 사진.

10년 정도 흐른 시간인데, 요즘 사진이 더 젊어 보이더구나. ㅎㅎ 그래서 얼마 전에 읽었던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사진도 확인해 봤어. 인터넷 서점의 프로필과 유사한 사진이더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빠의 10년 프로필 사진을 보면, 남들에게 숨기고 싶을 정도로 거칠게 생겼으니, 그의 사진을 보고 뭐라 할 입장이 아니구나


 

1.

소설 <고래>을 아빠가 한 마디로 평가해 보려고, 몇 줄을 썼다가 백스페이스를 쭉 눌러 버렸단다. 좀처럼 짧게 평가할 수 없는 소설이구나. 왜 그런지, 아빠가 그로 그 줄거리를 좀 이야기해줄께.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등장인물이 나온단다.

120kg의 거구의 춘희. 양아버지로부터 벽돌을 만드는 걸 배우고, 벽돌공장에서 일하던 벙어리 소녀 춘희. 춘희가 살던 평대라는 동네에 극장에서 큰 화재로 인해 수백 명이 죽은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화재의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사면을 받고 다시 평대로 왔는데, 대화재 이후 평대는 모두가 떠난 폐허의 도시가 되어버렸단다. 감옥에서의 오랜 세월은 그를 스물일곱 살로 만들어 놓았어. , 그 춘희의 이야기를 해줄께. 춘희의 이야기를 하려면 아주 오랜 옛날로 돌아가야 해.

멀고 먼 옛날, 국밥 집을 하던 못생긴 노파가 한 명 있었어. 노파는 자신이 버리고 눈을 애꾸로 만들어버린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이 어느날 찾아왔어. 그 딸은 젊은 나이인데도 백색머리였고, 꿀벌 한 무리가 그를 따라다녔어. 그 출현이 마치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등장인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 그런데 당시 노파는 며칠 전에 빙판길에서 넘어져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어. 딸은 노파에게 모아둔 돈을 달라했지만, 노파는 끝끝내 거절하였고, 딸은 노파를 죽였어. 하지만, 노파에게 찾은 것은 몇 푼 안 되는 돈이었어. 그 돈을 가지고 자취를 숨겼단다.

 

2.

, 이번에는 또 다른 여인 금복이의 이야기를 들어야 해. 금복은 깊고 깊은 산골짜기에서 술주정뱅이인 홀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동네에 온 생선장수의 트럭을 얻어 타고 그곳에서 도망쳤어. 생선장수를 따라 바닷가까지 갔다가 금복은 난생 처음 고래를 보았어. 그리고 그 이후 그는 고래를 마음속에 품고 다녔어. 금복은 돈을 버는 데 수단이 좋았어. 생선장수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생선장사보다 생선을 말려서 팔아 많은 돈을 벌게 되었어. 그런데 금복은 늙은 생선장수를 버리고걱정이라고 부르는 덩치 큰 젊은이와 눈이 맞아 같이 살았단다. 그런데, 그 걱정이 일하다가 크게 다쳐서 금복은 하루 종일걱정만 보살폈어.

그러다가칼자국이라는 한쪽 손에 손가락이 2개씩 밖에 없는 남자를 알게 되었어. 그는 예전에 일본에서 깡패로 조직의 넘버원까지 올라간 이력이 있었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게이샤에게 사랑을 얻기 위해 손가락을 세 개나 자른 무모한 순정파 깡패였어. 그런칼자국은 금복에게 접근하여 극장을 데리고 갔어. 금복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고래를 처음 봤을 때보다 더 큰 충격과 환희를 느꼈어.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 그 이후칼자국은 가끔 금복을 극장에 데리고 갔어. 한편걱정은 계속 누워만 있었고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 ‘칼자국’과 금복이 점점 가까워졌지만, 금복은걱정을 버릴 수 없었어. 금복은칼자국과 함께 살면서 딴 방에 금복을 데리고 와서 보살펴 주는 선에서 스스로 타협안을 내놓았어. ‘걱정’은칼자국에 질투를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질책을 하고는, 자살을 하기로 결심했어. 그런데 그때칼자국이 말리려고 뒤따랐지만 실패했어. ‘걱정’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깊은 바다 속에 몸을 던졌어. ‘칼자국’은 안타깝게걱정을 잡지 못했어. 그런데 곧바로 작살에 찔리고 말았어. ‘칼자국’이걱정을 죽인 줄 알고 눈이 뒤집어진 금복이 작살을 들고 와서칼자국을 찌른 거야. ‘칼자국’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죽었단다.

그 이후 금복은 바닷가를 떠났어. 그 사이에 나라에서는 전쟁도 일어났어.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방황하던 4년 뒤 금복은 어떤 코끼리 헛간에서 아이를 출산했어. 그런데 왜 장소가 낯설고도 낯선 코끼리 헛간이냐고? 그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야. 뜬금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코끼리 헛간처럼 뜬금 없는 장소로 나온단다. 하지만, 그 이유는 명백하게 있었어. 그 코끼리 헛간은 식당을 하는 쌍둥이 자매의 것이었어. 쌍둥이 자매는 서커스를 했었는데, 그때 같이 지내던 코끼리가 늙어서 서커스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부터 보살펴 주고 있었던 거야. 근데 출산을 앞둔 금복이가 급한 대로 들어간 곳이 바로 그 코끼리 헛간이었던 거지. 금복은 아이를 출산을 했는데, 태어났을 때부터 거구였어. 정처 없이 돌아다니면서 몸을 막 굴렸기 때문에 누가 아빠인지는 몰랐어. 그런데 그 아기가 덩치가 산만하고 얼굴도 큼지막한 것이 4년 전에 죽은걱정을 꼭 닮았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랬어. 그 딸 아이의 이름을 춘희라고 지었어.

뒤늦게 금복과 춘희는 쌍둥이 자매에게 발견되었고, 쌍둥이 자매는 금복과 춘희를 잘 보살펴주고 같이 지냈어. 춘희는 점점 자라면서 코끼리와 친하게 지냈어. 춘희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커서도 말을 하지 못했어. 말을 하지 못하는 춘희는 더욱 코끼리와 친하게 지냈고, 코끼리와 말도 주고 받았어. 춘희가 좀 자라자 금복은 춘희가 함께 길을 떠났는데, 그래서 정착한 곳이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노파가 죽고 비어버린 식당이었단다.

  

3.

처음에는 평범한 식당을 운영했어. 그런데 금복은 예전에 좋아하던 커피가 생각나서 마셨는데, 그 향을 처음 맡아본 평대의 사람들은 밥보다 오히려 커피를 찾았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금복은 식당을 그만두고 그 자리에 다방을 차렸고, 성행했단다. 그런데 운명의 날을 맞이하게 돼. 어느 비가 억수로 쏟아 붓는 날, 건달들의 공격을 받아 벌어놓은 돈을 모두 빼앗겼어. 그런데, 폭우로 젖어버린 천장이 찢어지면서 무너져 내렸는데, 그 안에 수많은 돈과 땅문서들이 쏟아져 내렸단다. 노파가 평생 숨겨두었던 돈이 발견된 거야. 그야말로 금복은 돈벼락을 맞은 거지. 금복은 그 돈으로 자신을 보살펴 주었던 쌍둥이 자매와 코끼리를 데리고 왔어. 춘희도 코끼리를 보자 너무 반가워했어. 말 못하는 춘희에게 코끼리를 유일한 친구니까 말이야. 그때쯤 금복은 다방을 즐겨 찾던 이라는 사람과 친하게 되었는데, 은 예전에 벽돌 공장을 했었어. 그래서 금복은 벽돌 공장을 짓기로 했어.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돈 뿐이기 때문에 걱정할 것은 없었어. 그런데, 벽돌공장을 짓고, 벽돌을 잔뜩 만들었는데, 사가려는 사람이 없었어. 인부들의 임금도 밀릴 정도로 그 많던 돈도 거의 바닥이 났단다. 그런데 그때 벽돌의 품질을 알아본 이들이 찾아왔어. 그 이후로 벽돌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다시 갑부가 되었단다. 금복은 여자였지만, 호탕한 사업자 기질이 있었어. 뿐만 아니라 불의를 참지 못했고, 정도 많았어. 그래서 버림받은 창녀 수련도 걷어들였고, 옛날 한때 같이 지냈던 생선장수가 찾아오자 그에게 차를 뽑아주었어. 그리고 운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돈을 벌게 해주었단다. 그런데, 자신의 딸에게만은 모질게 대했단다. 그 옛날 걱정을 닮은 딸이 싫었던 거야.

어느날 생선장수의 차에 코끼리가 치여 죽는 사고가 났는데, 쌍둥이 자매와 춘희가 엄청 슬프게 울었고, 이에 금복은 코끼리를 박제하는 놀라움을 보여주었어. 춘희는 이후 코끼리의 영혼과 이야기하는 아이가 되었단다. 그런데, 코끼리는 자신이 거기에 서서 사람들의 볼거리가 되어 있는 게 싫다면서 불에 태워 달라고 했어. 그래서 춘희는 그렇게 했단다. 코끼리 박제가 불에 타는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금방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 사건은 사라져갔단다.

어느날은 벌떼를 잔뜩 몰고 온 외눈박이에 여인이 찾아왔어. 그 여인의 주위에는 수천 아니 수만 마리의 벌들이 감싸고 있었어. 누군지 알겠지? 노파의 딸이었어. 몇 안 되는 꿀벌 한 무리를 달고 다니던 옛날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지. 바람과 함께 나타난 그녀. 그를 대적하는 금복.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상상을 해보면 바로 영화 속에 한 장면처럼 떠오르더구나. 그런데 이 싸움은 시시하게 끝이 나고 말았단다. 금복이 여왕벌이 들어 있는, 양봉용 벌집을 가지고 온 거야. 그러자 벌떼들이 그 벌집으로 모두 들어가 버렸고, 그때 벌집에 불을 질러 버린 거야. 삼손이 머리카락이 잘리면 힘을 잃는 것처럼, 노파의 딸도 더 이상 아무런 힘이 없었어. 금복은 노파의 딸이 섭섭해 하지 않을 만큼 돈을 주었고, 노파의 딸은 다시 길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금복이 점점 사업을 확장시켜나면서 점점 남자처럼 변하는 거야. 금복의 자신의 일생일대의 꿈이었던 극장 건설을 할 때쯤엔 외모도 완전히 남자처럼 변했어. 그리고 자신이 거둬들였던 창녀 수련을 사랑하게 되었어. 수련의 말에 따르면 금복이 진짜 남자가 되었다고도 했어. 그런데 어느날 수련은 남자, 그것도 금복을 찾아온 옛 고향친구와 함께 야반도주를 했단다. 금복은 수련을 깊이 사랑했었나 봐. 수련이 떠난 이후 금복은 깊은 슬픔에 빠졌어. 그가 세운 극장은 고래 모양으로 지었단다. 금복이 첫눈에 반했던 고래와 극장. 그것을 모두 만족하는 것이 고래 모양의 극장이었던 거야. 극장은 일대 성행을 하게 되어 금복에게 또 큰 돈을 벌게 해주었어. 하지만, 금복은 이때부터 슬픔 속에 살았고, 죽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걱정, 칼자국, 그리고 본 적도 없는 노파까지.. 그러다가 극장 안에서 금복의 실수로 불이 났는데, 이상하게 극장 문이 밖에서 모두 잠겨 있었던 거야. (그 죽은 노파가 나타나서 문을 잠궜어.) 그래서 극장 안에 갇혀 있던 수백 명이 모두 죽고, 불은 다른 건물로 번져 평대의 거의 대부분의 건물을 태우고 말았어. 물론 금복도 그곳에서 죽고 말았단다.

 

4.

경찰은 조사 끝에 벙어리인 춘희를 용의자로 체포해갔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방생활을 했어. 춘희는 덩치가 무척 커서 감방에서 누가 감히 건들일 수 없었어. 많은 시간이 흘렀어. 십대 후반에 들어온 감방은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단다. 감옥에서 나왔지만, 춘희는 갈 곳이 없었어. 그녀가 갈 곳은 벽돌공장 하나뿐이었어. 대화재 이후 폐허가 된 평대의 텅 빈 벽돌 공장에 그렇게 돌아온 거야. 드디어 다시 소설의 첫 부분으로 돌아왔구나. 소설의 첫부분에 나오는 그 장면은 이렇게 오랜 역사가 담겨 있었던 거야. 그곳은 먹을 것도 변변치 않았고, 춘희는 돈도 없어서 자연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야 했어. 완전 야만인이라고 해야 하나. 춘희는 벽돌을 만들기 시작했어. 딱히 누구한테 팔려고 했던 것도 아니야. 춘희가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이라고는 그것밖에는 없으니까.

그런데, 어느날 누가 찾아왔어. 예전에 안면이 있었던 트럭 운전사였어. 그는 아주 어렸을 때 아빠를 따라 벽돌공장을 찾아왔다가 어린 춘희를 본 적이 있었어. 그런데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이지. 그런데 덩치가 커다란 춘희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어. 그래서 자주 찾아오게 되었고, 그들은 사랑을 하게 되었어. 춘희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랑. 그렇게 아이까지 갖게 되었는데, 그 소식을 트럭운전사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무슨 두려움이 있었는지 새벽에 몰래 도망을 갔어. 그런데, 나중에 다시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고 다시 벽돌 공장에 찾아오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단다. 아빠는 내심 이 소설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지은이는 냉정했단다. 춘희는 혼자 아이를 낳았어. 그리고 그곳에서 춘희는 혼자 아이를 키웠어.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열병이 난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 길을 떠났는데, 하지만, 병원에 도착도 못해보고 길에서 아이는 죽고 말았어. 다시 한번 해피엔딩의 희망을 짓밟힌 기분이었단다. 춘희는 참을 수 없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고통을 받았단다. 그렇게 춘희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어떤 건축가가 대형 극장을 짓는 일을 하게 되었어. 그가 좋은 벽돌을 찾으려고 몇 날 며칠을 돌아다녔지만, 그런 벽돌을 찾지 못했어. 그랬다가 한참 만에 버려진 벽돌 공장을 찾았고, 그곳에 커다란 공터에 엄청나게 많은 벽돌이 쌓여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단다. 그 품질은 그가 기다렸던 최고의 품질의 벽돌이었어. 그곳에는 여자 유골이 발견되었어. 그래, 춘희의 유골이었어. 자신의 아이를 잃고 춘희는 그곳에서 평생 한()과 고통을 벽돌로 빚은 거야. 그 벽돌에는 춘희의 혼과 아이의 혼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건축가는 위대한 건축물을 지었고, 그는 이름 모를 위대한 벽돌공에게 모든 공을 돌린다고 이야기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지은이 천명관은 우리의 일상에서 일부분을 확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구나. 그의 다른 작품들이 기대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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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25주년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쭉 번창하길 바라는데
상황이 많이 어렵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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