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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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보다는,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읽어내려갔다.

노트에 와 닿는 단어들을 적어본다.
믿음과 아늑함이라는 단어를 적고 있었다.
그때의 나를 알 수 있었다.
무엇이 필요했는가를. 무엇이 그리 힘들게 하였는가를.

책을 읽으면 나의 욕심도 느낄 수 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그저 흔들리는 내 머릿속을 ‘잠깐’이라도 보살펴 준다면 난 그걸로 됐을 뿐이었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나를 잠시 해방시켜 주기만 해도 성공적인 하루가 되었을 테니까.

책이 한 권 늘어나고 또 한 권이 늘어난다.
이제는 나에게 뭔가 주길 바란다.
나의 마음속 기도에 응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내 뜻에 기어코 응해준다.

(P. 9) 독서라는 경이로운 애도


궂은비가 단비로 바뀌기까지 무진 애를 썼던 사람들과 아직도 내가 사는 세계 저편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좇는 바람에 피곤해진 사람들이, 감정의 폭발 없이도 그 감정의 층위를 불편하지 않게 섞어주는 막연하지 않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잠시 마음을 식혀보는 건 어떨까.

기쁨은 고통이 따르고 삶에는 죽음이 따른다는 말을 들을 때면, 머릿속이 하얘져서 감수해야 할 게 많은 그런 기쁨과 삶은 얻고 싶지 않았고,
거꾸로 고통 뒤에 기쁨이 오고, 죽음 뒤에는 삶이 온다는 마음을 가져보려 노력도 해봤지만, 그 또한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따금씩 떠올려지는 힘들었던 그때를 떠올리는 것이 마음의 괴로움이 너무 커 얼른 밀어 넣어 버리곤 했는데, ‘힘들었던 때’를 ‘재생의 시간’으로 달리 생각하며 떠올려보니, 불편함이 조금은 덜어지는 걸 느낀다.

나 자신을 마주해보고 돌보며 지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외면을 하고 감추려고만 했으니, 치유의 시간도 갖지 못하고 씻겨 내려가지 않아, 되려 그 괴로움이 몸의 문신처럼 새겨지기만 했다.
나뿐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에선 안 그런데 왜 나는 그들이 스스로 다독이고 얼른 다시 일어서기만을 기다렸던지.

(P. 37) 어떻게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인식하는가? 우리 안에 난데없는 정적이 깃들고, 심장에 비수가 꽂힌 듯 출혈이 이어질 때이다.

독서를 하면 나에게 남는 것은 사랑이다.
정말 사랑이다. 그게 전부다.
남는 게 사랑이라서 정말 너무 감사하다.
희미하게 들리는 게 아니라서.

나 역시도 결핍으로 시작한 독서라서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을 읽으며, 제각기 독서를 하는 이유는 다를지라도 그 마음을 나누며 공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려가 보고,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에 괜한 마음의 든든함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너무 슬프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P. 113) 당신은 죽음보다 해로운 지혜를 내게서 지워버렸다. 당신은 내게 진정한 건강인 열병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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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6-2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뱅 <작은 파티 드레스>도 개정판이 나왔군요. 독서도 사랑이고 보뱅도 사랑입니다~! 보뱅 책을 읽으면 치유가 됩니다~!!

곰돌이 2025-06-21 20:43   좋아요 0 | URL
사실 읽기 전에는 뭔가 간지러운 말들(?)이 이어지려나 싶어서 살짝 주저했었는데 아니여서 더 좋더라고요..보뱅님 통찰력에 중간 중간 순살이 될 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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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얼 부르지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4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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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모르는 이의 통증을 들여다보는데 왠지 그들이 모두 아는 얼굴일 것만 같다. 요구하지 않은 누군가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들춰낸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을 누군가가 없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듯 에둘러 표현하는 저자의 방식이 나에게 많이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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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얼 부르지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4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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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에 시린 발보다 뜨거운 여름날 냉증으로 차가워진 발이 더 견디기 힘들다는 우리 언니의 말에 나는 미지근하게 아, 그렇구나. 해버린다. 내 손과 발은 사계절 내내 정상적으로 작동해서 공감을 못 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대단히 거창한 대꾸를 바란 것도 아닐 텐데 나는 이렇게 사소한 말 한마디 못 건네며 공감을 못 해준다. 이 화상.

가만있자니 마음이 쓰여 뒤늦게나마 도톰한 기능성 양말 얘기를 슬쩍 꺼냈더니,
“그런 걸로 될 게 아니야!! 발 속이 찬거라구!!”
이 독사가 나에게 침을 쏘고 휑 가버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나는 어떤 계기 때문에 사소한 통증이나 고통쯤은 참을만한 것으로 간주하는 습관이 생겼다.
소중했던 이가 버텨냈을 삶과 맞바꾼 고통을 떠올리면, 산 사람이 견뎌내지 못할 고통이나 통증은 없다고 생각하게 돼버렸다. 이렇게 한 가지만 생각하다 보면 정작 잃어가는 것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랬다.
이렇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심함을 보이고 사는 내가 주로 손길이 가는 책들은 타인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라니.


7편의 단편으로 엮인 박솔뫼 작가님의 <그럼 무얼 부르지>는 사람들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는 당신과 내가 각자 겪고 있는 통증과 잊지 말아야 할 아픔을 ‘저자만의 방식’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서로의 통증을 나눠보는 느낌이었다.

현재를 살지 못하는 기분으로 사는 사람에게
너와 나 다르지 않다고.


봄이 오면 겨울 내내 움츠리고 있던 몸도 기지개 한번 크게 켜서 콧바람 쐬러 여행도 가고 보고 싶은 영화 보러 극장에 갔다가 친구들 만나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는 사람들.

그래.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

출근해서 바닥을 쓸고 서빙을 하고 재떨이를 비우고, 손님들에게 나갈 오렌지와 사과를 깎으며 그들이 남긴 것들을 어떤 건 먹고 어떤 건 버리면서 치우는 와중에, 출근하기 전에는 뭘 하냐는 사장에게 할 말이 하나도 없는 ‘나’는 추운 겨울이든 따뜻한 봄이든 같다. 결국엔 모든 것이 같다.

(P. 9) 봄의 따뜻함이 마음을 녹이기 시작할 때쯤 마음속으로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변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책 맨 처음에 수록된 「차가운 혀」의 등장인물인 ‘바’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나’는 재떨이를 비우고 안주로 나갈 오렌지와 사과를 깎는 자신의 모습 그 이상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나 보다.
자신과 사람들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벽이 주는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살고 있다.

무섭지 않다.
그들이 본 세계를 보질 못해서 그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모르니까.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무기력함이 느껴진다.
의미를 잃은 사람들처럼.
궂은비에 몸이 추~욱 늘어진 풀 같다.


어느 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고 볼거리도 없는 ‘해만’이라는 섬을 찾은 한 남자. 존속살인을 한 범죄자가 해만에 몸을 숨겼는데 한참 후에야 그를 찾을 수 있었다는 기사를 보고 이곳을 알았다고 한다. 찾는 사람만 찾는 곳인가 보다.

앞으로 몇 달 간 묵게 될 숙소에 이미 지내고 있던 사람들과의 대화가 이어지고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수도가 싫어요. 수도로 돌아가기 싫어요. 돈을 마련해 다시 해만으로 올 거에요.”

집값이 너무 비싸 내려온 사람들부터 나와는 다른 저편에서 지내는 사람들한테서 멀어진 마음에 이곳을 찾게 된 사람까지.
내가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소란스럽게 떠드는 무리로부터 피해 그들은 해만을 찾고 또다시 떠난다.

뚜렷하지 않은 무언가가 주는 불안함에 허우룩한 마음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계속 지켜보며, 남은 건 텅 비어 버린 자신의 강렬해짐을 발견하는 것 뿐이라고 하는 「해만」편은 공허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P. 77) 나는 남은 날들을 생각했는데 잠시 아주 기쁘다가 말았다. 그러고는 해가 낮은 건물을 적시는 것처럼 쓸쓸함이 천천히 마음을 적셨다.


「해만의 지도」편에는 해만에서 만났던 인연으로 시간이 지나 또다시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신없이 보통의 직장인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해만에 갔을 때 묵었던 숙소에서 만나 알게 된 ‘우석’을 만나기 위해 약간의 설렘을 가친 채,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는 ‘나’가 등장한다.

우석과 카페에서 만나 자신이 그린 해만의 지도를 서로 들여다보는데 우석도 자신의 노트를 꺼내 또 하나의 지도를 만들어본다. 해만이라는 공통된 장소를 가지고 나의 기억과 그의 기억이 겹쳐진 지도.
그리고 그때 존속 살인을 하고 해만으로 숨었다는 범죄자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그저 일상을 보내다가 흘러가듯이 툭 하고 나온 이야기였을 뿐이다.

우석은 해만 숙소를 찾아왔던 존속 살인범의 여동생 ‘서나’라는 여성을 떠올리며 ‘나’에게 말을 하다가 지도를 달라고 하더니 그 여동생과 대화를 나눈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나’는 그 사건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아 온 남자가 20대가 되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그 기사를 본 계기로 해만을 찾은 거였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기사를 떠올려보고 헤집어 보아도 그에게 여동생은 없었다. 혹시 그녀는 자신의 아픔과 닮은 그를 생각하며 해만을 찾아왔던 걸까. ‘나’가 아픔을 품은 채 구석진 곳 해만을 찾은 사람들을 떠올리듯이.

(P. 179) 우리는 하루 종일 피곤하게 일을 하거나 돈을 벌거나 그렇게 살다가 밤에 집으로 돌아와 넷이서 꼭 껴안고 자는거. 그러면 다음 날도 행복해지고 우리는 힘들지 않을거야 계속계속.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을 거야. 계속 계속 아주 오래 행복할 거야.


교복입은 학생들을 감금한 노래방 사장이 등장했던 「안 해」 와 「그때 내가 뭐라고 했냐면」편은 왜 그래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황 속에서 강요받는 이해하기 어려움들을, 왜인지 납득이 가지 않게 들려준다. 처음엔 내 머릿속에 떠올려졌던 범죄들이 나오려나 했는데, 누구는 가둬놓고 누구는 노래를 시키는 거다. 다른 것도 곧잘 하는데 노래까지 잘 부르던 친구는 어딘가에 가둬놓고, 정작 노래를 듣고만 있던 나는 가두지 않고 노래를 시킨다.

노래방 사장이 진지하게 자신의 확고한 생각들을 이도 저도 못하는 학생들을 향해 지겹도록 주입한다.

(P. 46) 너희는 도무지 열심히라는 것을 모르니까 30분간 내 이야기를 들으며 열심히에 대해 생각해. 열심히.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열심히.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아이는 순순히 받아들이고 어떤 아이는 기세 좋게 도망가려 애도 써본다.
도대체 열심히.열심히.열심히 잘하면 뭐가 있길래, 어떤 세상이 펼쳐지길래 그토록 열심히를 말하는 것인지.

갑갑했다.

친구와 놀러 간 노래방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노래방 사장이 감금을 시키더니 노래를 강요하고, 열심히 하라고 하고, 자기 생각을 주입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말이다.

살면서 말로써 표현이 안 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겪어봤고, 잘하고 싶지만 잘해도 뻔히 보이는 결과에 노력조차도 하기 싫었었고, 뭐든 잘하는 사람들과 비교되며 티도 안 나는 노력이라도 하면 열심히 좀 하라는 말도 들어봤기에 분노가 치밀고 억울하면서도, 한 학생의 노래방 사장을 향한 외침은 어딘가 후련하기도 했다. 그렇게 강요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써 보여주시든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P. 53) 뭐 양보해서 열심히가 중요하다고 쳐도 정말로 열심히의 세계가 있겠어? 있다 해도 그게 튼튼해? (중략) 자기의 몸을 부수고 세상에 던져질 만큼 튼튼해?

(P. 62) 내가 몰라서 안 한 게 아니야.


이 책의 표제작인 「그럼 무얼 부르지」에서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떠올릴 때의 저자의 심경을 등장인물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P. 134) 광주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 제주도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

버클리 대학 근처 카페와 교토의 시조역 근처 바.
이 의외의 장소에서 30여 년 전 자신이 태어난 곳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듣게 된 ‘나’는 자신이 사는 광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날의 광주를 듣게 된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이야기.
모든 것이 다 오래되었는데도 정리는 되지 않은 듯한, 그래서 그때의 사람들이 아직도 잘 보이는 곳.
아니다. 잘 보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 역시도 5.18을 겪은 세대도 아니고 주변에 물어보면 생생하게 들려줄 사람들도 마땅치가 않다.
내가 눈으로 보고 겪지 못해서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그저 그때의 분위기를 더듬거려보듯 책과 영상을 볼 뿐이다.

(P. 146) 나는 거기 서 있는 사람은 아니고 거기 서 있는 건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손가락으로 광주가 어디 있는지 짚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단지 손바닥을 허공에 내미는 사람이었다.


이 책에 마지막으로 수록된 「안나의 테이블」은 그동안의 내가 바라봤던 세상과 사물, 인간을 향한 시선에서 탈피하여 완벽히 새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봐야 했다.
짐작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야기들의 이어짐이 기존의 상식들로 차 있는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의 입장이 된 기분이다.
글쎄, 어떤 의도나 생각인 것인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다 보면, 그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아픔과 통증이 더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 부분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한다. ‘모두 다 함께’ 이야기하고 더 많은 답을 찾고 싶어한다는 마음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P. 197)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묻는다. 한 10초쯤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리던 단장은 미소를 띠며 아름다운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것들. 환하고 반짝이는 것들.


박솔뫼 작가님 책은 장면 장면을 내가 이어붙여 보는 재미가 있다. 물론 그 재미를 느끼기까지의 과정은 썩 즐겁지 않을 수도.

저번 <미래 산책 연습>을 너무 잘 읽었고, 더 만나고 싶은 생각에 그녀의 첫 소설집을 선택했다. 독특한 문장을 다시 만나니 아주 반가웠다.
아, 물론 이제는 독특하다는 느낌보다는 익숙함으로 다가온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 같다.
<미래 산책 연습>과 지금 이 책까지 고작 두 편만 읽은 건데 왜 이리 친근하게 느껴지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친해지려고 무지 노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읽을 때는 물음표가 머릿속을 떠다녔다.
나름 오기가 생겨서 난 절대 이 책을 덮어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기도 했었다.
끄트머리 먼지와도 같은 내가, 이제는 낯설게만 느꼈던 그녀만의 문장에 반가움부터 느껴지게 되어버렸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나 잊히고 있는,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나 사람의 대해서 들여다봐 주고 끄집어내 주며 들려주는 그 마음. ‘진심’이 담긴 그 마음이 와 닿기 때문에 손길이 간다.
이렇게나 많은 책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고른다는 것은 나에게 와 닿음이 확실히 있었다는 거다.
무더위 속에서도 냉증으로 차가워진 발 때문에 곤욕스러운 내 언니의 사소한 문제조차도 공감해주지 못한 화상 덩어리일지라도 이렇게 계속해서 세상을 향해 외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꾸준히 이어나가길 바라는 소박한 혼자만의 다짐을 또 해본다.


얼굴도 모르는 이의 통증을 들여다보는데도 왠지 그들이 모두 아는 얼굴일 것 같은 느낌을 줬던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대체로 대화의 중심이 아니라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처럼 말이다.
대화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내 하루를 전부 차지하고 있지 않듯이.

요구하지 않은 누군가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들춰낸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자신의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을 누군가가 없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은 듯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이 나에게는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뚜렷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는 닿길 바라는 그 마음을 느끼며 읽었다.

궁금하다.
왜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쉽게 들려주는 게 아닐까?

우리가 더 깊숙이 곰곰이 들여다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감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그녀만의 보호방식 인게 아닐까 라는 혼자만의 생각도 조심스레 해본다.

나의 애정 섞인 마음이 지나치게 확대해석을 하고 이 책에 살을 입히는 모습으로 비치게 함으로 반감을 느끼게 하면 어쩌지?라는 염려스러운 마음도 한편에 들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내가 느낀 게 그러하니 말이다.

이 다음으로 <우리의 사람들>을 읽어 볼 생각이다.
지금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궁금해하면서 들어주고, 들려주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담은 책으로 또 만나고 싶다.
그냥 같이 있어주는 느낌만으로 따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으니까.

(P. 204) 나는 시간이 아주 빠르게 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뭔가 달라져 있겠지. 지금 같은 불안하고 슬프고 답답한 날이 아니라 방금 전 꿈처럼 한가하고 평화롭고 무얼 먹지 무얼 보지 생각하며 헐렁헐렁 걸어 다니는 날들이 먼 미래에는 있을 것이다. 얼른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간아 얼른 가 하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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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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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 인물에게도 다층적 심경을 알 수 있게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감정의 층위가 복합적이어서 많은 관점이 교차하여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두꺼운 책임에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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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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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인도 수학자 ‘라마누잔’의 일대기를 담은 <무한대를 본 남자>를 봤다. 카스트 제도의 계급 중 최상위인 브라만 계급임에도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던 그가 독학으로 수학을 공부하고, 생계를 위해 회계사로 근무하다가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수학자의 초청으로 영국을 가게 된다.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인으로 인종차별을 받는 모습부터 영국 수학협회 정회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나오는데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기억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영국을 가기 위해 배를 타러 가는 깔끔한 정장을 입은 라마누잔 뒤로 그의 짐들을 머리에 이고 걸어오는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한 인도인 남성이 내 머릿속에 떠나질 않았고, 머릿속에 맴도는 그의 잔상이 <적절한 균형>를 펼치게 하였다.


이 책의 저자 ‘로힌턴 미스트리’는 파르시 집안 출신이다.
인도 상인 집단이자 최대 부자 가문 중 하나인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파르시는 페르시아(현재의 이란)지역에서 살다가 세력을 확장한 이슬람교도들을 피해 인도로 넘어오게 된다. 서양의 유대인과 유사한 모습이다. 등장인물 중에도 파르시 집안 출신들이 나온다.


카스트 제도의 가장 하층민, 불가촉천민 출신의 재봉사인 삼촌 이시바와 조카 옴, 파르시 출신 의사 아버지 밑에서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현재는 과부가 되어 홀로 자립을 위해 낡은 아파트에서 하숙을 치는 여성 디나, 그리고 디나와 마찬가지로 파르시 가문 출신이자 가게 일을 하는 부모 밑에서 곱게 자란 대학생 마넥, 이 네 사람의 각기 다른 삶을 담은 책이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갈 꿈을 품고 도시를 찾은 이시바와 옴. 그리고 여유가 있는 집안에서 점점 발전해가는 세상에 발맞춰 배움을 위해, 더 좋은 학교에 가려고 도시를 찾은 마넥.

이시바와 옴은 재봉일을 하러, 마넥은 하숙을 하러 디나의 집을 향한다.

이 책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기 전 시절부터 국가비상사태 체제로 지내던 시절과 그 이후의 삶까지 인도의 현실을 아주 세밀하게 담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된 이후에는 국경선이 생기면서 참혹한 학살 속에서 막대한 재산이 한순간에 사라졌던 사람들이 다시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균형 잃은 무질서 속에 계급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삶의 질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모습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큰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결혼 후 3년 만에 약제사였던 남편을 잃고 그 이후로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가며 재봉 일을 배웠던 디나.
마흔두 살이 되자 시력에도 문제가 생겨 재봉 일이 어려워졌다. 그녀는 미국과 유럽의 양품점들에 의류를 수출하는 여성을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어 재봉사들을 고용해서 그들을 감독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즉, 외국 바이어들의 요구 사항에 맞추어 현지에서 재봉해서 수출하는 의류 산업자에게 용역을 받아 일하게 된 것이다. 그 재봉 일을 맡게 된 사람이 이시바와 옴이다.


고향에서 무두질과 가죽세공을 하는, 태어나자마자 부여받은 가장 낮은 지위의 공동체인 차마르 카스트에 속하는 이시바와 옴.
평생 빈곤한 삶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들은 카스트 장벽을 허물고 다른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지길 바라며 살아왔다.
카스트가 높은 사람들이 하층 카스트의 사람들에게 저지를 수 있는 범죄들은 이들의 삶에서 영원히 인내해야 할 동반자였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카스트가 높은 사람들에게 더욱 비굴하게 엎드려야만 했다.


비상 계획 실행을 위해 날품팔이 노동자들, 여자들과 아이들, 육체노동자들에게 돈을 주고 집회 현장으로 향하는 트럭에 실어나르는 총리의 부름을 받은 자들을 보고 있자니, 내 머릿속에는 열성적으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날리는 빨간 모자를 쓴 사람들의 모습이 둥둥 떠다녔다.

선거 때마다 약속한 대로 물, 화장실, 전기 같은게 좋아질 거라 기대하며 판자촌에서 기다렸던 이들에게 나타난 건 집들을 부수기 시작한 큰 중장비들, 그리고 강제노역과 인구증가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강요된 불임 수술이었다.
희망을 꿈꾸며 온 도시는 이시바와 옴 같은 사람들에게는 지옥 같은 광란의 도시였을 뿐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배려심을 가진 디나는 고용주가 된 후, 재봉사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고용주 답게(?) 그들을 경계하고 채근하는 면모를 드러냈다. 가볍게 보이면 일하는 사람이 머리 위로 올라오려고 할 거라는 주변의 충고를 따르는 것이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이뿐만 아니라 이시바와 옴이 뿜어내는 악취도 포함이다.

자신들보다 높은 계급의 사람들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의 삶을 갈망하고, 받았던 수모들은 더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사람들. 아들이 태어나면 사람들에게 돌리던 사탕 과자를 딸이 태어나자 돌리지 않는 모습. 말대꾸한다고 부인을 때리는 남편의 모습.

이렇듯 조화로운 삶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속에서 인간의 다양한 이면을 느낄 수 있었다.


국가비상사태 시기의 학생들이 민주화, 민족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프롤레타리아 주의의 대해 논의할 때, 마넥은 대부분 가난한 학생들이었던 그들과 자라온 환경이 달랐기에 위협과 공격이 너무나 흔해진 캠퍼스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기숙사를 떠나 디나의 하숙집을 찾아온 것이다.

어려움을 겪으며 자라온 적 없던 마넥은 삶에서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닥치면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의 선택을 도덕적, 윤리적 문제로 바라보기는 어려웠다.
아무래도 나 조차가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향해 관심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이는 사람이 못 돼서 일 거다.


거리에는 끊임없이 반정부 시위와 행렬로 교통이 막히고 떠들썩한 군중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디나와 마넥이 사는 세계 너머로 빈민굴에서 살아가는 오물 가득 한 하수구에서 풍기는 악취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도 존재했다.

저자는 한 인물에게도 다층적 심경을 알 수 있게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감정의 층위가 복합적이어서 많은 관점이 교차하여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두꺼운 책임에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계급을 향한 이들의 시선도 다양하다.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자신의 계급에 따라 사는 것이 당연했던 삼촌 이시바와 달리 조카 옴은 그 계급의 벽을 허물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두질과 가죽세공을 해야 했던 이시바와 그의 동생 나라얀이 재봉사가 되기 위해 도제에게 보내졌던 어린 시절, 사람들은 감히 카스트의 영원한 사슬을 끊으려고 한다며 천벌을 받을 거라 말했었다. 복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했던 카스트 제도의 분위기 속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아버지 둑희의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자식들이 더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의 결정이었지만, 그 용기도 딱 거기까지만이다.

나방이 등불 유리로 뚫고 들어가려고 연약한 날개를 퍼덕거리는 모습처럼, 높은 계급의 사람들 뒤로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이 예전과 같지는 않다고 이만해도 많이 좋아졌다며 아버지 둑희는 현재의 삶을 만족할 수 없는 아들을 향해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두려움을 느낀다.

(P. 216) “그런다고 뭐가 바뀔 것 같아? 그래 봐야 넌 몇백 년 된 깊은 우물에 빠진 두레박 꼴이야. 첨벙 소리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을 거라고.”

“존엄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는 삶입니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선거 날 유권자로서 권리를 찾기 위해, 투표용지를 달라는 계급이 낮은 남자를 동네 악당들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균형을 망가트렸다고 카스트의 선을 넘는 것은 가장 엄한 벌로 다스려야 한다며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참혹함으로 응징했다.

조용하게 좌절감을 느끼며 살았어야만 했나.
그러면 목숨은 부지했을까.


이런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시간이 아무리 흘렀어도 자유를 위해, 정의를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편견과 악의 제도에 비폭력으로 맞서 싸우자는 마하트마 간디의 메시지를 듣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계급을 받은 자신들의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빛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용기를 내며 맞서는 사람들을 우려하며, 자신이 속한 곳에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지낸 사람들의 선택은 당연히 이해 못 할 이상할 일도 아니다.


서로 거리를 둬야 한다는 디나 아주머니의 말씀에도 마넥은 비슷한 또래인 옴과 친해지고, 서로 연관성 없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아갔다.
모든 사람과 잘 어울리라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온 덕분인지 편견과 차별 없이 옴을 대하는 마넥과 진흙탕 속 거친 어른들 틈바구니에서만 지내다가 마넥과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옴의 모습은 보는 동안 참 흐뭇했다.

그리고 디나는 이시바와 옴에게 철저히 그어 놓았던 경계 끝자락부터 서서히 그 흔적을 지워가며 다가갔다.
식탁을 다 같이 채운 이 네 사람은 멀리서 보면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찌그러진 반죽이 완벽한 원을 이루듯이.


이들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디나는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에게 안겨 꼭 나중에 아버지처럼 의사가 될 거라고 말했던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죽은 남편 리스텀과 달콤한 연애를 즐기며 함께라서 행복했던 그때였을까.

이시바는 동생과 처음으로 배운 재봉 기술로 아빠 둑희의 조끼와 엄마 루파의 촐리를 만들어 그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선물로 안겼던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텅 빈 학교에 몰래 들어가 처음으로 만져보는 분필을 석판에 대고 선을 하나, 또 하나 그려보며 킥킥대던 이시바와 동생 나라얀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이마에 브라만 카스트 계급 표시처럼 굵은 선을 만들어보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놀랍고 재밌었을 아이들.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 이렇게도 쉬운지 몰랐었던, 하지만 금지된 세계에서 금방 발각되어 수모를 당했던, 스스로 결정하고 미래를 선택할 기회를 꿈꿔볼 수 없었던, 이 아이들의 맺힌 상처는 누가 치유해 줄 수 있단 말인가.


희망과 절망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삶이란 영혼의 창을 닫을 수밖에 없는 지울 수 없는 운명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저 아득하기만 한 것일 뿐,
포효와 환호로 울부짖으며 승리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연한 마음으로 좌절감을 견디고, 메울 수 없는 구멍을 견뎌야 했을 뿐이다.

어미 새가 물어다 준 먹이를 입 벌려 받아먹는 새끼 새처럼, 세상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참혹한 먹이를 이시바와 옴에게 물어다 주지만 이들은 잘근거리며 씹을 새도 없이 너무나 쉽게 삼켜버리며 살아왔다.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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