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탈리아인들은 매주 일요일 저녁 수용소 한쪽 귀퉁이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곧 그만두어야 했다. 숫자를 세는 게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 P51

이 복잡한 암흑 세계와 대면한 나의 생각들은 혼란스럽다. 정말 체계를 세워서 그것을 실천해야 할까? 아니면 체계가 없는 것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더 나을까?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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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비탄이 우리의 영혼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것은 땅을 갖지못한 민족의 오래된 아픔, 엑소더스에 대한 희망을 잃은 채 매 세기 반복되는 아픔이었다. - P16

스스로를 비춰볼 거울은 없었지만 우리의 모습은 우리 앞에 서 있는 100여 개의 창백한 얼굴들 속에, 초라하고 지저분한 100여명의 꼭두각시들 속에 반사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어젯밤에 얼핏 본 그 유령들로 변해 있었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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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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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물론, 평범의 색을 띄는 이야기들도 내 자신이 살아온 결과 다른 경우에는 ‘아, 이런일도 생길 수 있구나. 아, 이런 감정이 들 수가 있겠구나.’ 할 것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자신의 민낯을 확인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져 있으므로 이 책 속의 이야기들과 등장인물들의 감정들이 어느 하나 낯선 것이 아니며, 자신의 삶을 빗겨 나갈 것이라 장담하지는 못 할 것 같다.

<각각의 계절>은 7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첫번째 이야기 <사슴벌레식 문답>을 읽어내려가면서 ‘이해‘라는 단어가 내 머리를 스친다. 나 아닌 누군가를 얼마나 이해하는지, 이해했는지, 이해하려 했는지를 말이다. 그동안 내가 가장 취약했던, 그리고 놓치고 지냈던 부분이었기에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 어딘가가 ‘콕‘하고 찍히는 것 같았다.

(P.36) 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 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빛나던 청춘이었던 네명의 친구들처럼 각자의 삶에 녹아들며 살다가 시간이 흘러 반짝이던 그 때를 떠올리는 일이 복장을 짓찧는 일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각각의 계절들을 각각의 사정들로 살아가기에 이 이야기 또한 각각의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이다.


여러 감정들이 훑고 간 이후, 퍼석한 낙엽처럼 공허해진 나의 마음을 발견한다. 그동안 쏟아부은 감정들에 신물이 날 만큼 이제 그만 쉬고 싶을 때, 상처 받은 줄만 알았던 날들도 돌이켜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는 사실에 뒤늦게 밀려오는 괴란쩍음으로 스스로를 단속하고 싶을 때, 평화로운 오늘이 절실할 때, 이 고요함이 깨지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그 조심하느라 온갖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한 것도 없이 나의 체력이 바닥이 되었을 때. 그럴 때 나를 위한 쉼이나 여행을 떠올려 봤어도 누군가를 위한 여행을 떠올리면서 살지 못했다. 끊어버리고 싶은 생각만 했었다. 아, 정말 얼마나 더 이기적일 수 있을까 싶다.

그렇기에 두번째 이야기 <실버들 만천사>는 내 마음 속에 잔파동을 일으켰다.
남편과의 이혼 후, 딸 채운과 떨어져 지내는 반희.
어느 날 그녀는 여행을 가자는 딸의 전화를 받는다.

(P. 49) 한적한 데 가서 가만히 숨만 쉬다 오면 괜찮지 않을까?

살기 위해서 도망쳐 나왔다. 집을.
딸이 자신과 다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라도 엮인 실을 끊고 감정의 거리를 두고 싶었던 반희.

(P. 75)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 관심도 다 폭력 같아. 모욕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게 내 목표야. 마지막 자존심이고.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몰랐으면 하는 마음, 지나쳐주길 바라는 마음. 이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 복잡한 심정으로 서로를 바라봤을까?

언제라도 곁을 떠나버릴 것 같은 엄마를 불안하게 바라보며 살았던, 한 순간에 터져버린 그 응어리에 눈물도 안 나오고 숨도 제대로 못 쉬던 딸 채운과 엄마 반희의 엉킨줄만 알았던, 그러나 끊어진 적 조차 없었던 그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더 촘촘히 이어지게 한 그날의 여행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비참함과 애달픔이 느껴지지만 왜 인지 다 읽고 난 후에는 시원한 맥주를 간절하게 만든다. 엄마와의 맥주 한잔.

(P. 79) 사랑해서 얻는게 악몽이라면, 차라리 악몽을 꾸자고 반희는 생각했다. 내 딸이 꾸는 악몽을 같이 꾸자.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더 단단히 붙들어 매자. 함께 말라비틀어지고 질겨지고 섬뜩해지자.


때론, 환멸감이 들어 아웅다웅 하며 사는게 다 부질없고, 무가치하다 느끼며, 삶 자체를 부정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삶을 너무나 쉽게 얕잡아 보며 우습고 시시하다 느꼈던 사소한 모든 것들이, 실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깨닫게 만드는 일이 기어코 나를 관통하고 만다. 그제서야 이 보통의 일상만큼 간절한 것이 또 없어지더라.

어느 날, 언니가 조심스럽게 한 마디 한다.
˝ 너, 엄마랑 아빠가 얼마나 니 눈치 보고 지내는지 알아?˝
그 순간 머리에 정통으로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릴 적 기억 속, 자라고 하면 자고, 먹으라고 하면 먹던 순하디 순했던 부드러움이 물메기에 버금가던 그 시절에서 나의 시계가 멈췄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들을 공부, 시험, 직장, 여행, 연애로 꿰어 넣고 있다가 세월의 흐름은 망각한 채, 멈췄던 시계를 내맘데로 작동시켜 과거의 기억들을 현재의 삶에 Ctrl+C , Ctrl+V 를 해버렸다. 이리보나 저리보나 어쨌든 다 내 삶의 조각들이니까 자연스럽게 붙여지고 이어져 나갈 줄 알았나보다.
내가 흘려보낸 시간만큼 가족들에게 소홀했던 것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편에서 오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지냈던 동생 숙이를 들여다 보니 또 가슴이 따끔해졌다.
내가 그동안 받아먹기만 했을 잘 닦여진 정성과 보살핌들이 단 하나도 당연한것이 아니란 걸 모르고 지냈던 나에게 독침을 쏘는 듯 했다.

(P.199) 그는 자신이 가까운 이에게 그런 분노를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다면 그렇게 했겠는가. 무지는 가장 공격받기 쉬운 대상이지만, 무지한 자는 공격 앞에서 두려워 떨 뿐 무지하여 자기 죄를 알지 못하므로 제대로 변명조차 할 수 없다.

짓누르는 무게에 도저히 ‘벗어남‘ 말고는 해답이 없을것만 같았던 순간들도 돌이켜보니, 그나마 그런 나의 무게까지 떠받치고 있었던 희생을 택했던 사람들의 ‘손길‘이 있었기에 점차 가벼워 질수 있었다는 것을. 이마저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살다보면 겪어보지 못한, 그래서 가늠도 안 되는 누군가의 이야기들을, 그간 삶이 자신에게 부여해 준 것들과 세월의 경험에서 얻은 검열 안 된 자신감으로 너무나 쉽게 판단하고 자체 종결 시키는 행위를 바라볼 때가 있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무지가 얼마나 무섭고, 위험하고, 사람의 마음을 차게 식게 하는지를 큰 노력 없이도 조금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목격할 수 있다.

북적북적. 웅성웅성.
떨어진 모이를 주워 먹듯 자리 하나씩 차지해서 더이상 주워 먹을게 없어지면 ‘후두둑’하고 먼지와 불쾌함을 남기고 날아가 버리는 모습들을 바라본다. 때론 그게 내 자신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그럼 곧이어 어디선가 다시 북적북적.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후두둑’ 하고 먼지와 불쾌함만을 남기고 간 그 새의 고충과 사정은 읽지 못하는 저 이기심 좀 보라며, 두루두루 살피고 바라볼 줄 모르는 저 얕은 그릇 좀 보라며......
돌고 돈다. 그리고 잊혀지고 또 돌고 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는 자신의 아픔을 숨기며 지내다가 결국 신장암으로 사망한 ‘마리아’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서 풍겨지는 위선을 목격한 한 여성이, 결국 자신도 그 위선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또 산다.

(P. 114)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 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의 확실한 색깔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해하는 삶’에 가닿을 때, 섞이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없어지는 건 아니더라.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괜찮았다.
이해하는 마음을 키우기 위해서, 내가 가장 먼저 시작했던 것은 그동안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놓치고 있었던, 아니, 받기만 하고 못하고 지냈던 것. 더 솔직히 말하면 피하고도 싶었던 것.
바로 먼저 내미는 ‘손길’ 이었다.

딱히 정답을 내리지 않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각각의 계절>을 읽는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하지만 나 혼자 잘나서 이룬 것 같은 모든 것들도 그 속에는 누군가의 포기와 좌절과 애달픔이 함께 있었고, 녹록치 않은 삶을 버티고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준 가족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힘이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힘은 가족이다. 바보처럼 뒤늦게 깨달았지만 말이다.

(P. 241) 오래전 젊은 날에, 걸리는 족족 희망을 절망으로, 삶을 죽음으로 바꾸며 살아가던 잿빛 거미 같은 나를 읽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니, 그런 사람을, 나를 알아본 그 사람을, 내 등을 두드리며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달래던 그 사람을 내가 마주 알아보고 인사하고 빙글 돌 수 있었다면.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다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땐 내가 기억에 남는 이야기와 공감을 느낀 인물에서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이 책을 통해 느낀 감정들이 미래의 내 모습에도 조금은 영향을 끼치게 될까?

뭐,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겠지......

(P.204) 내가 손쓸 수 없는 까마득한 시공에서 기이할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내가 지금의 나로서는 결코 원한 적 없는 방식으로, 원하기는 커녕 가장 두려워해 마지않는 방식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부인할 수도 없지만 믿을 수도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런 게 놀랍지 않다면 무엇이 놀라울까.
시간이 내 삶에서 나를 이토록 타인처럼, 무력한 관객처럼 만든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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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살랑거리며 늘어져 흔들리다 바람이 불면 펄럭이고 바람이 잦아들면 가라앉고 그늘이 드리우면 은은하게 시름에 잠긴 듯한 깃발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리아는 불가해한 아름다움에 전율했고 마치 둘 사이에 어떤 필연성이라도 있는 듯 자연스레 첫아들의 청회색 눈동자를 떠올리곤 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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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 먹을 것 놓고 대차게 한번 싸워보자. 서로 절대 덜어주거나 얹어주지 말고 짐승처럼 막 싸우면서 먹어보자.
그래, 좋다. 독하게 훈련해보자.
엄마, 힘들지? 이제 그만 내려갈까?
응, 내려가. - P67

채운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엄마, 우리가 먹을 거 놓고 마음껏 싸우지도 못하게 된 건 뭐땜에 그런 걸까?
음, 반희가 생각하다 말했다. 그것도 물고기랑 같은 이유겠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세상 뭐 다 이렇게 슬픈 얘기야. 젠장. 채운이 맥주를 벌컥 마시고 말했다. 나는 원래 생겨먹은 데서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반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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