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치-이지마에 있을 때는 지금 이곳의 규칙과는 달리 편지를 보내고 싶으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가능했다. 하지만, 도대체 편지에 무슨 말을 쓴단 말인가? - P54
수용소에 갇힌 자들의 관련 책들에서 공통적인 그들의 모습은 성에도 안 차는 이 빵 한 조각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나눠 먹을거냐는 거다. 자기전에 먹을까? 잠시 쉬는동안 먹을까? 일하다가 주머니 속에 손을 쓰윽~ 넣어보고 그 곳에 안전하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어 줄 그 빵 한 조각을 만약 먹는다면 어떻게 먹지? 녹여먹을까? 아니면 호사를 부리듯 한입에 털어 씹어 먹을까?(물론 씹어먹을 만큼 대단히 덩어리가 크지도 않다.) 대부분 그들에게는 이깟 빵 한조각이 아니니까. 내 살이 되어주고 뼈가 될 밑천이니까. 그만큼 소중하다. 원래 소중한 것들은 나에게서 떠나는 것이 아쉬워. 그래서 이별이란 너무 어려운가보다. 사람이든 빵 한조각이든.
밤새 내내, 영원히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 P9
수용소 생활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침 식사 시간 십 분, 점심과 저녁 시간 오분이 유일한 삶의 목적인 것이다. - P25
점심 때 먹을 요량으로 빵 한조각을 윗도리의 안주머니에 넣는다. 아침 식사분에서 절약을 한 빵한 조각을 어떻게 할까 그는 생각한다. 지금 여기서 먹어 버릴까? 하지만 곧 작업이 시작된다. 급하게 먹어 치우면 먹은 것 같지도 않은 법이다. - P36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겪는(자신과 맞닿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일상과 감정들이기에 많은 공감을 일으킨다. 그렇기에 아팠고, 그녀가 염려스럽기도 하고, 다친 마음이나 상실로 허물어진 마음을 보듬어주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캐럴라인 냅은 꽤나 용기있는 사람이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분투하고 고민하고 실행에 옮겼으며 좌절도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어느정도 받아들이면서 솔직했다. 나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덜 후회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던 그녀가(이게 무슨 상관이라고)겪은 감정들에 나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경험을 하면서 ‘정말 사람 사는거 다 똑같구나.’ 라며 스스로의 아픈 기억들도 조금은 위로 받았다. 물론 누군가의 아픔이 내게 치유의 재료가 된 점은 미안하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을 통해 배움이 있는 건 분명했다. 지금도 배워나가고 있고, 그러기 위해 노력중이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 감정들을 ‘진짜로’ 느껴본 사람의 말에서 오는 쾌감이란게 있다. 그리고 배움이 있는 동시에 ‘공감’에서 얻은 나만의 안도감이라는 것도 있다. 동질감 때문인가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신의 감정과 처한 상황들을 오롯이 마주하며 피하지 않고, 결국 ‘해방’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그녀가 더 많은 삶들을 살아가며 얻게 된 인생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이제는 들려주지 못한다는 점(그 기회들을 내가 얻지 못한다는)이다. 하지만 그 아쉬운 마음은 소중히 긁어 모아서 여전히 감정싸움을 일으키게 만드는 내 가족들에게 ‘이 날 또한 너무 그리울거야.’ 하는 마음으로 조금은 더 친절한 나, 애정담긴 나로써 그들에게 더 다가가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채우려 한다. 모두가 의미있는 삶을 ‘다시’ 자신에게 되찾아줄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길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추천하는 책이다.
내가 그동안 스스로 구축한 무지와 현실의 고치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이 창피하다. - P278
비탄을 느끼다가도 초연해지고, 연대를 느끼다가도 소원해진다. - P279
도피하지 않고 내 감정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 - P218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감정을 겪어내나요? 어떻게 극복하나요?""애비, 당신은 지금 잘하고 있어요. 바로 이게 잘하는 거예요. 자신의 감정을 느끼는것, 그걸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 감정 때문에 죽을 리는 없다는 걸 깨닫는 것." - 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