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증을 호주머니에 넣자 다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관광객이 된 듯한 느낌도 없지않았다. 거의 처음으로 내가 오랫동안 가 보고 싶어 하던 나라 스페인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레리다와 바르바스트로의 조용한 뒷골목에서 나는 잠깐이나마 모든 사람의 상상 속에존재하는, 아득한 소문과 같은 나라 스페인을 본 것 같았다. - P288
노동자당과 무정부주의자들에게 돌아갈 터였다. 나는 간혹어디에선가 시가전을 알리는 첫 총성이 울려 퍼질 것 같아 귀를 곤두세우곤 했다. 사악한 지능을 가진 거대한 존재가 도시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모두들 그것을 눈치채고 한마디씩 했다. 모두가 거의 똑같은 표현을 하는 것이 신기할정도였다. "이곳 분위기 말이야, 이거 끔찍해. 꼭 정신 병원에들어와 있는 것 같아." 하지만 ‘모두‘라고 말한 것은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 P281
이 무렵 내가 만난 모두가(의사건, 간호사건, 프락티칸테건, 주위의 환자건)목에 관통상을 입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지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선뜻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예 총에 맞지 않았더라면 더 큰 행운이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P275
무지한 대중에게 의도적으로 심어주려했던 편견.
통일 노동자당이 정말로 파시스트 단체였다면 그 의용군이 왜 충성을 유지했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1936~1937년의 겨울 동안 견디기 힘든 조건에서 통일 노동자당 의용군에 속하는 8000명 내지 1만 명의 병사들은 전선의 주요 부분을 담당했다. 그들 가운데 다수는 한번에 너댓 달씩 참호에 있었다. 그들이 왜 그냥 전선에서 빠져나오거나 적에게 넘어가지 않았는지 알기 힘든 일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 P245
이 사태의 배후에는 도대체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것일까? 이것이 일종의 쿠데타나 혁명적 시도였을까? 정부를 전복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을까? 미리 정해진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