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돌이켜볼때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는 당시에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 갑자기 내 시야에 흘끗 들어온 민간인의 모습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의미 없는 소등으로 비칠 뿐이었다. 최신 유행하는 옷을 입고 람블라스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던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는 장바구니를 들고 하얀 푸들을 끌고 갔다. 한두 블록 떨어진 거리에서는소총이 시끄럽게 땅땅거렸다. 물론 그 여자는 귀머거리였을 수도 있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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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 내내 사람들은 이제까지 친구로 여겼던 누군가가 혹시 자신을 비밀 경찰에 고발하지나 않을까 항상 의심해야 했다. 전투, 소음, 식량과 수면 부족, 어느순간에 내가 맞을까 아니면 내가 다른 사람을 쏠까 궁금해하며지붕에 앉아 있을 때 느꼈던 긴장과 권태의 뒤범벅, 이런 것들때문에 나는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문이 쾅 소리를 낼때마다 피스톨을 움켜쥐는 습관이 생길 정도였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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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모두들 먹을 것을 사느라 야단이었다. 어디를 가나 똑같이 근심스런 질문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게 끝난 것 같습니까? 그게 다시 시작될까요?" ‘그것(전투)‘은 이제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일종의 자연 재해로 여겨졌다.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우리로서는 막을 힘이 없는일이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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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붕에 앉아 이 모든 일의 어리석음에 혀를 내두르곤 하였다. 관측소의 작은 창문으로 주변 몇 킬로미터씩을 내다볼 수 있었다. 높고 날씬한 건물들에 이어 유리 돔, 밝은 녹색과 구리색 타일을 얹은 환상적인 나무결 모양의 지붕들이 끝도 없이 뻗어 나갔다. 멀리 동쪽으로는 푸르스름한 바다가 회미하게 반짝거렸다. 스페인에 온 후로 처음 보는 바다였다. 그러나 인구 100만의 거대한 도시가 일종의 광포한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었다. 동작은 없고 소리만 있는 악몽이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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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만 한 쥐들도 함께 했던 그 시절 그때의 온도, 냄새, 평등의 공기로 그나마 견딜 수 있게 해준 사람들(물론 오합지졸에서 조금 벗어난...)이 떠올려진다. 조지 오웰의 툭툭 내뱉는 무심한 유머가 있는 글솜씨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진흙 속에 코를 박으며 총알을 피하는 기분도 느껴지고 제대로 쏠 줄도 모르는 총을 들고 있는 동지들이 불안하기도 하다. 더욱이 어린 아이들은 도대체 그 추위와 배고픔과 쏟아지는 졸음을 어떻게 버틴 것일까...

물론 당시에는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던 변화를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주로 느끼는 것은 권태, 더위, 추위, 더러움, 이, 궁핍, 이따금씩의 위험 따위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그토록 무익하고 지루할 정도로 평온하게 느껴지던 시기가 지금은 매우 소중하다. 그 시기는 내 인생의 다른 시기들과는 워낙달라서, 벌써부터 마술 같은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 속성은 보통 오래된 기억에만 생기는 것인데 말이다. 당시에는 지긋지긋했지만, 이제 그 기억은 내 마음이 뜯어 먹기 좋아하는 좋은 풀밭이었다. 당시의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의 앞 장들에서 조금이라도 전달됐기를 바랄 뿐이다. 내 마음의 모든 기억들은 겨울 추위, 의용군 병사들의 넝마가 된 제복, 스페인 사람들의 달걀 같은 얼굴, 모르스 신호 같은기관총 소리, 지린내와 빵 썩는 냄새, 더러운 접시에 담아 후루룩 들이키던 함석내 나는 콩스튜 등에 연결되어 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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