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어려움은 있지만 이겨낸다. 밤마다 밀림 같은 내 허파에서 소음이 들리는데, 마치 기상천외한 짐승이 고래고래 울부짖는 듯하다. 나는 헐떡이며 깨어나 잠에 취한 채 양손으로 공기를 움켜쥐고 입속으로 밀어넣지만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래도 숨을 내쉬기보다는 들이쉬기가 한결 쉬운 편이다. 인생이 던져주는 것을 거부하기보다 그냥 받아들이기가 더 편하듯이. 반격하기보다 얻어맞기가 더 편하듯이. 그러나 씨근거리고 헐떡거리면서도 결국 숨을 내뱉는다. 드디어 해냈다.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아픈 등을 토닥이며 자신을 칭찬해도 좋겠다. - P86

나는 아래로 숨쉰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나 지금이나 허파가 있다. 거룩한 영감, 갓난아기의 첫 울음소리, 말을 만들어내는 숨결, 까르르 터뜨리는 웃음소리, 즐거운 노랫소리, 행복한 연인의 신음소리, 불행한 연인의 탄식소리, 구두쇠의 우는소리, 쭈그렁할멈의 쉰 목소리, 질병의 악취, 죽어가는 자의 속삭임, 그리고 모든 것이 지나가면 마침내 공기도 없고 소리도 없는 공허.
한숨은 그냥 한숨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들이마시고 의미를 내쉰다. 그럴 수 있는 동안. 그럴 수 있는 동안만.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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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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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이 많아져서 조금은 기대고 싶어지는 책이 있다면, 내겐 그 중 하나가 권여선 작가님의 책이 아닌가 싶다.

겉으로는 강퍅해 보이지만 속은 따뜻할 것 같은 ‘여자 어른’과 무겁지 않은 먹거리를 안주 삼아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인생의 달고 쓴 이야기를 들을 때의 그 묘한 따뜻함이 간절할 때가 있다. 그래서 괜히 잘만 살다가도 가슴 깊숙한 곳에 잘 눌러 싸매놓은 감정이 올라올 때면 자연스레 작가님의 책에 손이 간다.

이 책 7편의 단편들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에 책을 펼쳤다. 무언가를 꼭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니더라도 가끔은 기대하고 싶다.

천천히, 천천히, 욕심내지 않고 읽어내려갔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을 상처를 입은 「봄밤」에 영경은 켜놓은 촛불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에 안심하고 들여다볼 수 없었다.
결국 꺼져버린 연기만 허무하게 바라보게 되진 않을지 염려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영경에게 필요한 건 현재로썬 컵라면과 소주 한 병 같다.

내 전부를 잃게 된 사람들의 만남.
그런 두 사람 앞에 펜션처럼 보이는 요양원과 응급환자들을 수송하기 위한 앰뷸런스 그리고 아담한 정원이 보인다.
조경이 잘된 산책로까지 함께.
신용불량자 수환과 알코올 중독 환자가 돼 버린 영경은 서로 불행한 삶을 살다가 뒤늦게 만나 동거하게 된 사이인데 서로 힘들었던 시간만큼 모든 게 아파졌다.
류머티즘을 앓고 있던 수환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져 이제는 요양원에서 지내야만 했다. 그와 떨어져 살지 않기 위해 함께 들어온 영경까지.

불안한 자신의 몸 상태를 알기에 보호자가 늘 곁에 있어주길 분명 바랬을 텐데도, 수환은 영경에게 염려와 걱정 대신 그녀를 기다리는 컵라면과 소주 한 병이 있는 편의점으로 기꺼이 보내준다.

네가 나를 이해하듯, 그런 내가 너를 이해하면서.


섣불리 이해하는 척하며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삶의 대해 말하는 것이 난 조심스럽다.

내가 경험한 감정과 맞닿은 인물은 간병인 종우였다.
누군가의 죽음을 대면해 본 적 없었던 종우의 마음.

자신이 돌보는 환자인 수환의 동거녀 영경을 때론 이해할 수 없는 마음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수환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영경의 눈빛을 멀리서 바라보니 감히 자신이 헤아릴 수 없는 감정 또한 느꼈나 보다.

(P. 35) 난 아줌마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쩔 때 아줌마가 아저씨 빤히 쳐다볼 때는 괜히 눈물나요.

사람에게 최후로 남아있는 감각이 청각이라는 얘기를 들은 종우가 수환 곁에서 계속 자신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꺼내는 동안 이 두 사람을 들여다보는 내 가슴과 눈두덩이가 너무 뜨거워졌다.

무서워 하지 말라며 흐르는 눈물을 교묘하게 감추고 더 잘 들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의젓하고 어른스럽게 건넨 나의 목소리가 아직도 너무 생생하면서도 믿어지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그때의 심정으로 종우를 들여다보니 왜 이리 고마운지.
아니, 어쩌면 수환과 영경의 힘겨움을 들여다보는 게 내겐 너무 벅차서 종우에게 내 감정을 덜어낸걸 지도 모르겠다.

영경이가 이들과 지금 함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두 사람만이 주고받던 불행도 때론 아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니까.

너무 슬픈 눈으로만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다.
이번 생에 더는 없을 줄 알았던 행운이 남아있다는 벅찬 감정을 영경이가 느낄 수 있도록 해준 수환이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고, 그들이 주고받는 눈빛과 손길은 너무 따뜻했으며, 더없이 사랑했으니까.

(P. 32) 취한 그녀를 업었을 때 혹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앙상하고 가벼운 뼈만을 가진 부피감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봄밤이 시작이었고, 이 봄밤이 마지막일지 몰랐다.


터질듯 말듯 위태로우면서도 이제 더는 손 쓸 수 없는 상황인 부부 규와 주란 그리고 이들의 친구 훈이 함께 떠난 여행 이야기를 담은 「삼인행」은 읽는 동안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딱히 맞는 구석이 없어 보이는 이 세 사람이 내뿜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그 기운을 들여다보는 게 힘들었다.
친구로서 규와 주란의 관계가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당연히 있었을 테지만 훈은 섣불리 긍정의 말들을 건네지 않는다.
그런데도 종종 낄낄거리면서 원래 그래온 사람들처럼 서로 들여다보고 함께 할 뿐이다.

규의 모습에서는 예전의 나를 봤다.
그래서 아주 불편했다. 지우고 싶은 시절의 꽁꽁 숨기고 싶은 그때의 나와 닮은 모습을 또 봐서 그랬다.
마음에선 안 그런데 꼭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시가 돋친 말로 상처를 주고, 입 밖으로 말이 나가는 그 순간부터 후회할 걸 알면서도 억한 감정만 쏟아내는 그 낯설지 않은 모습을 보자니 입이 떫었다.

주란이 운전대를 잡은 차가 고속도로에서 최고속도 175킬로미터를 넘어간다. 무아지경에 빠진 그녀 옆에서 규는 속도 낮추라는 듯 쇠고삐 당기는 소리를 내어 제동을 걸었다.
이들의 불완전함을 뒤에서 바라보던 훈은 시야를 돌린다.
창밖으로 탁 트인 바다가 보이고, 한적한 마을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P. 53) 훈은 잘린 시간의 단애 앞에서 화들짝한 분노와 무력한 애잔함에 사로잡혔다.


타인의 불행을 들여다보는 마음이 당연히 좋을 수가 없다.
어떤 이야기는 차마 손도 댈 수 없는 무너짐을 바라만 봐야 하는 입장으로 읽어야 했다.
그 사람이 쥐고 있는 술잔은 내려놓고 대신 내 손을 붙잡게 해주고 싶은 사람도 있었고, 내 잔도 하나 집어들고 옆에 앉아서 같이 마셔주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비극에는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그 상황보다 사람의 이면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가 더 그랬다.


7편의 이야기들을 모두 다 읽고 난 뒤에도 훌훌 털어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봄밤」의 수환과 영경이가 자꾸만 떠오른다.

굳이 행복과 희망을 말하지도 않고 기운 내라고, 힘 내보자고 어깨 두들겨 주고 손잡아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난 왜, 이 책을 읽으면서 묘한 위안을 얻었을까.
뚜렷하지 않음에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내가 그렇듯, 그들 모두가 묵묵히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P. 135) 그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추고 그들 둘만 돛단배를 타고 캄캄한 강물에 실려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관희가 무릎 위에 얹힌 문정의 주먹 쥔 손을 살며시 펴주며 말했다.

“그렇게 꽉 쥐지 말아요, 문정씨. 놓아야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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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들 2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5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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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향해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모진 삶 살아나간 어른들까지 모두가 다 서글펐고 슬픈 감정으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발견하지 못 한 삶을 향한 의지가 어딘가에는 숨어있는가보다. 그렇기에 생명의 숨소리를 듣고,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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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들 2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5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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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과 이어진다.

러시아의 볼가강 유역 독일 식민지 마을 ‘그나덴탈’에 사는 ‘바흐’는 아이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삶의 큰 흥분을 느끼지 못한 그는 시를 사랑했고, 잠들기 전 독서시간이 하루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런 바흐의 심장을 들끓게 한 ‘클라라’와의 아련한 사랑, 그리고 1918년~1938년 사이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고통 속 볼가강 유역에서 독일계 러시아인으로 살아갔던 이야기를 담은 <나의 아이들>은 읽는 재미가 상당해 1권을 다 읽고 바로 2권을 읽는 것이 기대감으로 들뜨긴 해도 마음만은 편치가 않았다.

아무래도 1918년~1938년 사이 발생한 역사적 사건들의 여파가 그나덴탈 주민의 삶을 비켜나갈 수 없을 테니 고난이 예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1편에서 그나덴탈을 떠났던 사람들이 트랙터를 갖고 다시 돌아왔다.
머지않아 농업의 집단화가 시작될 것이고 이 말은 희생양이 된 농민들이 추방당하거나 기근에 시달리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의미 아닌가.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인 흐름은 단지 등장인물들 현실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어줄 뿐이었다. 저자의 몰입하게 하는 섬세한 감각이, 이 소설을 예상 가능한 문장들로 채우지 않기 때문이다.


바흐는 그나덴탈에 새로 부임한 당 지도자 ‘호프만’을 만난다.
글재주가 없는 꼽추인데, 그래서인지 글쓰기에 탁월한 바흐를 자신의 끔찍한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로 선택한다. (이들이 만나게 된 사연은 1권에 자세히 나온다.)
그리고 바흐는 호프만을 위해 옛날이야기를 써서 갖다 주기 시작한다. 먹을 것을 글과 맞바꿔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바흐가 써 온 소설을 바탕으로 호프만은 자신의 이념에 맞게 수정의 작업을 거친 후, 그나덴탈 사람들이 보는 신문인 <볼가 쿠리어>에 싣기 시작한다. 즉, 선동을 목적으로 바흐의 글쓰기 능력을 갖고 오는 것이었다.

그나덴탈인들의 삶의 모습은 중세시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호프만은 구시대적인 삶을 사는 그나덴탈을 자신이 원하는 정부에 필요한 용도를 갖춘 도시인 사회주의 건설에 혈안이 돼 있었다. 발주처이자 공사 현장에 감독관도 되었다가 관리관도 되었다가 현장 대리인도 되어 여기저기 간섭을 하고 다녔다.

호프만이 미친개미 날뛰듯 하는 동안 누군가 ‘볼가 독일 소비에트 공화국’에 금가루라도 뿌려 놓았는지 폐허로 가득했던 그나덴탈은 이제 주민의 마당이 아닌 콜호스의 공공재산 동물농장에서 우는 낙타와, 말소리가 들렸다. 그 울타리 안에서 날갯짓하는 거위와 오리를 볼 수 있고, 주변에는 사회주의 사상에 고취되어 가슴에 빨간색 넥타이를 나부끼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농부들은 소련의 멋진 일꾼들이 되어 몹시 바빴다.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한 약속과 함께 미소를 짓고 있던 예카테리나 2세의 동상은 철거되며,

소비에트 연방의 최고 권력자는 볼가강을 바라본다.

(P. 81) 석양의 기다란 그림자는 노란 들판과 도로 위에 그려진 하얀 선에 드리워졌고, 거대한 볼가강은 천천히 흘러갔다. 그는 하늘 위에서 이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토록 광활한 대지를, 이토록 풍부한 물을 품은 강을 왜 하필 이렇게 작고 부산스러운 민족에게 선물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공평한 일인가?


1927년 스탈린의 지배기 이후로 호밀과 메밀 대신에 티타늄, 아연, 주철 등이 등장하면서 농업에 치중하던 소련은 공업화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P. 90) 졸지에 고아가 된 트랙터들은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것인데, 그중 일부는 붙잡혀서 용광로로 들어갈 것이며...(중략)...광활한 독일 소비에트 공화국 어딘가에 버려진 채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것이다.

이제 그나덴탈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볼가강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소리는 들리지 않고, 소련의 공산주의 청년들의 나팔소리가 채우고 있었다.

조국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타국이라 말할 수도 없는 독일제국을 향하여 그나덴탈인들은 떠났다.
왼쪽 노를 젓고 오른쪽 노를 저어가며 거센 물살을 거스르고 바람을 거슬러서 낯선 모국어와 문화가 기다리는 곳을 향해 갔다.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뛰어넘으면서도 희망을 품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현재의 삶이 행복이구나 싶다가도 궁금증이 인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 삶을 들여다본다면 도대체 무슨 생각이 들까. 정신없이 쏟아지는 차와 어딘가에서 뱉어내는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심 속에서 시뻘건 모자를 쓰고 벌떼 몰려다니듯이 해 가며 초점 잃은 눈으로 침 튀기며 무언가를 외쳐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기괴해 보여, 그런 우리의 삶이 더 두렵게 느껴질까.

아니면 ‘이 사람네들도 우리랑 같네.’할려나.


그나덴탈에 남아있는 바흐는, 위험에 맞서기보다는 문을 굳게 닫고 피하던 예전의 우유부단한 겁쟁이가 아니다. 광기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소중한 존재를 지켜주는 것만이 진정 의미 있는 삶이라 느끼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부랑자들로부터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킬 자신이 있다.
그러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남아있는 자가 떠나고 싶은 자를 가두는 모습으로 비칠 만큼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야 하는 삶을 벗어나기란 참 어려웠다.


2권까지 다 읽고 나니,
‘나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이 단순하지만, 또 이처럼 따뜻하게 들려올 수가 없다. 그리고 왠지 모를 허탈감도 든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부모가 소중한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어르고 달래고 품 안에 끼고 지내며 사는 모습과, 낡은 것을 뒤로하고 어수선한 세상을 향해 눈을 반짝이며 다가가는 자식의 입장까지 낯설지 않은 감정으로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역사의 과정이 볼가강의 반짝이는 윤슬이 내려앉은 물줄기처럼 힘도 들이지 않고 흐르는 듯했다.
저자의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감정으로 차분하게 써내려간 문장이 오히려 상황의 서글픔을 더 잘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굳어가는 혀가 더 이상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게 만든 기구한 삶이 아닌 행복과 희망만을 담은 글을 써내려갈 수 있는 삶 속의 바흐를 상상해봤다. 그곳에서 바흐는 클라라와 행복했던 시절처럼 주위에는 무지갯빛 비눗방울이 떠다니고 모두가 소리 내 웃고만 있다. 모든 공포는 사라지고 없다.

현실이 상상을 비웃고 있기에 다시 바흐가 살아온 삶을 떠올려본다.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생존을 향해 어린아이들과 함께 모진 삶 살아나간 어른들까지 모두가 다 서글펐고 슬픈 감정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삶을 향한 의지가 어딘가에는 숨어있는가보다. 그렇기에 생명의 숨소리를 듣고,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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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들 1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4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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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쉬는 숨결이 느껴질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로 행복했고, 그렇기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던 잔혹함이 가슴을 조이게 만들어 고통스러웠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릿속을 볼가강 차디 찬 강물에 집어넣고 흔들어도 소용이 없을 것만 같은 상황들에 무력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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