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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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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과 그녀를 둘러싼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차이를 통해 내가 지닌 감정의 틈새를 채우고 있던 편견들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서정적인 문장으로 채워진 소설의 옷을 입은 철학책과도 같았던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본질 너머 펼쳐진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배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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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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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살가운 편은 아니었던, 한 40대 초반쯤으로 기억되는 국어를 담당했던 여선생님께서 계셨는데, 본 수업에 들어가기 전 에세이 전문 월간지 <좋은 생각>에 수록된 글을 하나씩 꼭 읽어주셨었다.

난 그 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평소에 좀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으셨던 선생님께서, 우리를 싫어하는 게 아닌 것 같은 기분에 안심도 되고, 읽어주시는 글에서 감동을 하여 아침부터 언니랑 싸우거나 부모님께 혼나서 시무룩해져 있는 어린 마음에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글을 다 읽어주신 후에는 꼭 그 잔상을 느껴보라는 듯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다가 곧바로 수업에 들어가시곤 했다.

타인의 삶을 두루두루 살펴보며 무언가를 깨닫고 뉘우칠 정도로 철이 든 나이는 아니었지만, 선생님께서 읽어주시던 이야기들을 귀담아들으며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 팍팍한 어른들의 고된 삶을 통해 사랑과 우정 그리고 기쁨과 희망을 배워나갔던 것이다.

나는 사람에게 가진 오해를 벗기고, 이해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느끼기에 사람 간의 관계와 심리를 다룬 책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덧, 60대가 되셨을 선생님의 그 시절 음성을 떠올려 보며, 헝가리 작가 서보 머그더라는 여성을 통해 ‘이야기의 힘’을 다시금 얻어보고자 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사는 작가인 ‘나’는 집안일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다가 ‘에메렌츠’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일을 봐주는 시간대, 보수 등의 대해서도 자신이 정하는 둥, 독특하면서도 다소 무례하게 보일 수 있을 만큼 모든 면으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 집에서 잠만 잘 자고 있는데 늦은 밤이든, 새벽이든 와서 일한다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이 지긋한 이 여성이 일 하나만큼은 흠 잡을 데가 없다.


곁을 좀처럼 내어주지 않는 그녀와도 그런대로 각자의 스타일에 맞춰가며 살아가던 중, 나의 남편이 폐종양에 걸린다.
6시간이라는 긴 시간의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죽음의 경계에 다다랐을 남편을 향한 걱정과, 공포 때문에 겁에 질린 나를 위해 안심을 시켜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담은 듯, 에메렌츠는 집에 돌아온 나에게 평소와 달리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끓인 포도주 한잔을 건네며, 처음으로 자신의 지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덤덤하게 말하는 이야기 속에 어린 에메렌츠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새아버지마저 전쟁으로 잃었으며 어머니를 도와 아홉 살 때부터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고 쌍둥이 동생들을 돌봤다.
그저 절망에 빠져있는 아홉살 소녀였으며, 걱정과 불평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기어코 모든 것들이 우물 안에 물속으로, 매서운 빛이 번쩍이는 번개 속으로, 공기 중의 시커먼 연기 속으로 사라져 주었다. 모두를 잃은 어린 소녀는 하녀를 구하러 내려온 부다페스트 신사분들에게 맡겨진다.


이 책은, 전쟁의 참상을 거치고 그 안에서 선명하게 줄로 그어진 계급사회 속에서 철저히 분리된 채 살아갔던 실로 참혹하기 그지없는 한 여성의 인생을 품고 있으며,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 간의 관계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의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헝가리 왕국은 추축국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전세가 역전되면서 불안정한 위치에 놓이고, 1944년 독일이 헝가리를 점령하면서 헝가리 내에 있던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추방되기 시작했다. 시대적 배경이 이러하니, 이 시기에 주인마님으로 모시던 부인에게 받은 그릇으로 만들어 온 닭고기 수프를 받은 나는 에메렌츠에게 혐오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람들을 태운 열차의 목적지가 가스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들이지 않는 에메렌츠 집 내부에, 사형을 언도받은 사람들의 보물들이 있을 거라 짐작해본다.
그러나 그 오해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에메렌츠 주변인들이 말해주는 그녀와, ‘나’가 눈으로 보고 겪은 그녀는 때론 비이성적인 성향이 고착된 신경질적인 면이 있긴 해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곁에 다가갔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무해한 위로를 주고받으며, 유난스럽지 않게 서로의 곁에 머무르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듯이, 말로써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던 두 여성의 우정은 맘 한구석을 일렁이게 했다.

상처입은 사람을 향한 위로의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상대를 향한 감정은 빗나가지 않았다.


정해져 있는 형식이라도 있는 듯한 인식의 틀이 때론 내가 품을 수 있는 사유의 범위를 스스로 경계 지을 때가 있다.
그 틀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듯이 나는 그렇게 정형화된 사람으로 만족하며 지내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빗겨나가는 상황에 당혹스러워 바보같이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몰라 또 헤맨다.
실패를 주워담고 정말 잘 해보고 싶기에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기대해본다.


에메렌츠와 그녀를 둘러싼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차이를 통해 그동안 내가 지닌 감정의 틈새를 채우고 있던 편견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자신의 본질 너머 펼쳐진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나’가 에메렌츠를 이해하듯, 나 역시도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배워본다. 그리고 역시나 안심하는 순간 나와 이 책 속의 ‘나’는 실수를 하고 상처를 입힌다.

(P. 118)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때에는 알지 못했다. 애정은 온화하고 규정된 틀에 맞게, 또한 분명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를 대신해서도 그 애정의 형태를 내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느 날, 에메렌츠와 가장 가까웠던 여성인 ‘폴레트’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서둘러 나는 이 소식을 전하지만 놀라지도 않은 채, 까던 콩을 마저 정리할 뿐인 그녀.
목을 매달고 생을 마감한 그녀의 선택은 부다페스트에서 지긋지긋하게 보았던 총살과 교살의 대상이었던 포로들을 떠올리게 했다.

나를 둘러싼 당연하게만 여긴 행복들과 요리하고 청소를 해주는 도움들, 그리고 누군가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그동안 ‘다림질하는 여자’인 폴레트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이 예배 시간을 갖는 동안 그들의 옷가지를 다림질해야 했기 때문에 교회를 나갈 수 없었던 폴레트.

남의 사정은 생각도 않고 뒤에서는 수군대며 ‘거만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독감으로 모든 것이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삶을, 스스로 마감한 그녀의 선택은 자신이 원한 것일까.
아니면 선택당한 것일까.


에메렌츠는 불특정 적에 대해 모호한 위협을 하는 인물들 중심에 선 사람처럼, 육체의 노동으로 먹고살기 바빴던 노동자 계급으로서 사회가 이들에게 요구했던 것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계급을 통해 누려온 것들을 끄집어내고, ‘나’는 인민권력의 대표자로서 그녀의 생각을 바꾸게 할 논리가 없기에 가까이에서 멀찍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평등한 공동체적인 삶이라 주장하는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와도 그녀를 이해 시킬 수 없었다. 홍조 띤 핏기 있는 얼굴로 살아본 적이 없었을 에메렌츠가 이제 노동이 힘들어질 노파가 되어 평화를 원하는 세상을 믿을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세상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빗자루질하는 사람과 그것을 시키는 사람으로만 나뉘는 고정된 세계관을 갖은 에메렌츠.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처참한 상황 속, 지하실에다가 총에 맞은 독일군 옆에 소련군까지 나란히 숨겨준 것을 보면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을 그녀도 이해한 채, 단지 공포에 질려 땀으로 범벅되어 있는 비참한 몰골의 사람들을 구원했을 뿐이다.

(P. 162) 이 노파에게는 최소한 국가의식이 아니라 그 어떤 종류의 의식도 없으며, 번득이는 머리가 빛나기는 하지만 희미한 증기 아래에서 그럴 뿐이었다. 그 모든 것에 대한 극심한 갈증과 그 많은 능력은 무위에 그칠 뿐.


이 책은 서정적인 문장에서 느낄 수 있는 서보 머그더의 따뜻한 감성이 담긴 소설의 옷을 입은 철학책과도 같았다.
그래서인지 밝고 화사함은 없지만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왠지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 책의 표지 색상이 더욱 와 닿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 간의 관계를 담은 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벗어나, 한 장 한 장 가볍게 넘기기 어려울 만큼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시절.
자신들의 필요로 손을 뻗었다가 거두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만나봤을 에메렌츠는 아마 사람에게 더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을 택하고, 문을 굳게 닫아버린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한 사건이 벌어지고 나는 에메렌츠에게 오랜 시간 아슬아슬하게 혼자만의 세계에서 이어붙여 오고 있던 것들을 원치 않는 난도질과 끌어당김으로 무너지게 했고 좌절감을 안겼다.
20년의 세월 동안 함께 해 준 그녀를 향한 ‘죄의식’을 가진 채, 시간이 흘러 나는 삶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때론 엄마이자 친구이자 영혼을 나눈 동반자였던 이제는 세상을 떠나버린 에메렌츠의 삶과 끝자락을 가늠해본다.


가슴에 옹이가 박힌 채 살아가면서도 오고 갈 데 없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향해, 그리고 손길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마음을 건네며 살았던 에메렌츠를 떠올리며 위로하듯이,
당신의 마음을 분명히 그녀도 알고 있을테니, 조금은 편안해지면 좋겠다고 위로를 하며 ‘나’에게 끓인 포도주 한잔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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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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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결이 치는 잔상까지도 담아낼 만큼 여백없이 꽉 채운 이들의 서사는 혼란과 불편함을 주기도 했지만, 지나칠만큼 불완전했던 감정과 상황에서 공존했던 진솔함과 처참함으로, 헛헛하면서도 안타까웠고 한 인간을 향한 연민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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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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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을 때, 감정이입을 좀 많이 하는 편이다.
책을 읽고 평가를 해야 하는 예리한 눈이 필요하지 않은, 그저 오롯이 독서를 즐기는 눈만이 필요한 사람이기에 책들을 하나씩 꺼내 읽는 그 자체만으로도 온갖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즐겁고 행복하고 슬프고 아프다.

그런 내가 이번에는 감정이입을 덜 하려고 애썼다.
그 이유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호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와 다른 사람들의 선택이나 감정들을 그들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을 읽는 흥미를 잃게 될 것 같았다.

그랬던 내가 마지막 장까지 읽고 이 책을 덮는 순간엔, 가슴 속 깊은 곳부터 아려오듯 올라오는 연민 섞인 울음을 끌어내려야만 했다.


본업은 곡을 쓰고 생업으로 플루트 레슨을 하는 준연.
마흔이 넘어 결혼문제로 어머니와 다툰 후 안 해본 걸, 생각조차 안 했던 걸 해보고 싶어 레슨 광고를 보고 준연을 찾아간 해원.

이제는 도전도, 사랑도 내 맘처럼 쉽지가 않고, 열정이란 것도 예전만큼 뜨겁지 않은,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내 앞에 놓인 선택의 순간들도 지나간 경험들에 빗대어 보며 더 나은 방향, 안전한 방향을 구분하고 조언도 할 수 있는 안목을 갖은 마흔을 넘긴 두 남자의 만남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그리고 이 두 남자 사이에 등장하는 준연의 오랜 친구이자 음악을 관두고 위스키 만드는 일을 하는 여자 하진.


해원은 특히 사랑 앞에 더욱 조심스럽다.
괜히 내색했다가 차게 식는 상대방의 표정 보면서 쪽팔리는 것도 싫고, 앞만 보고 자신의 감정만을 폭발시키며 상대에게 달려가기엔 ‘사랑’이라는 것조차가 이제는 그에게 우선순위에 있는 것도 아닌 듯싶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사랑에는 어차피 시작도 있지만 다 끝이 나게 되어있으라고 단언하는 듯한 해원의 태도는, 어린 시절의 부모에게 얻은 상처와 충만하지 못했던 사랑의 부재가 서로 겹겹이 쌓여 그의 마음들이 퍼석하여진 것임을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그런 그에게 ‘하진’만큼은 달랐다.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이다.

해원이 처음 준연을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면, 첫 만남에도 이렇게나 진심일 수가 있나 싶을 만큼 매우 진지했다.
오래되지 않은 사이임에도 어머니 병원비로 준연에게 천만 원을 건네는 해원의 행동에 나는 흠칫 놀랐다. 물론 책에서 묘사되는 준연이가 해원과 마찬가지로 침착하고 가벼워 보이지 않는 우직함을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쉽게 큰돈을 줄 만큼 서로의 대해 잘 안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좋았나 보다.
서로의 엇비슷한 면을 발견하는 대화 속에서 진심의 우정을 자아낼 만큼 두 사람에게 짧은 시간의 만남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람을 향한 외로움도 있었을 것 같다.


서울시 내에 신축아파트가 자신의 명의로 되어있고, 아버지는 건설회사 대표이고, 뉴스에 상장 대박으로 자주 나왔던 그 회사에서 주가와 재무관리 일을 하는 해원은 풍족한 삶을 살아온 반면,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폭행이라는 지우지 못할 고통과, 그럼에도 아버지 손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해하지 못할 어머니를 향한 증오가 있는 사람이었다.

하진은 위스키 만드는 일에 매우 열정적인 여성이다.
사랑의 표현을 ‘돈’으로 해결하는 듯한 해원과는 다른 사람이다.
서로 자신과 다른 모습에 끌렸는지 이 둘은 첫 만남부터 호감을 느끼고 사귀게 되었지만, 왠지 어딘가 모르게 해원과 준연 사이 그 중간 어디쯤에서 머무는 듯한 하진.

가난해서 가난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사랑이라는 것을 시작도 하기전에 단념해야만 했던, 해원의 여자친구이기 전에 자신과 오랜 친구 사이였던 하진의 주변을 떠나지 않는, 경제적으로 우월한 해원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 준연.


기대가 결과가 될 때까지 그걸 하는 사람인 해원을 향해 하진이를 잘 부탁한다는 준연의 말이 왠지 신경이 쓰인다.
내 곁에 있는 정말 좋은 사람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진심의 마음이 우러나왔던 그 말에서 쓸쓸함도 보이지만 무언가를 우려하는 사람처럼 불안감을 주기도 했다.


나는 주식에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굳이 빗대어 표현하자면, 이 책을 향한 내 마음이 주식시장의 변동성만큼이나 불확실함으로 오르락내리락 하여 다소 불안정하게 읽어나가야만 했다. 예측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공감하고 싶지 않을 만큼 내겐 이 사람들이 다 별로였다. 그렇기에 등장인물들에게 생긴 거리감을 쉽게 좁히진 못했다. 달리 말하면 저자가 심리묘사를 매우 섬세하게 잘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서서히 중후반을 지나 이들이 만들어 낸 서사들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며 그 안에서 발견한 자신의 사랑,기쁨, 절망, 고독함 등 어느 것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든 감정을 쉼 없이 쏟아내는 이들의 모습에서, 곳곳에 공감의 구역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전달된 나의 감정 낙차 때문에 더 선명하게 느낀걸 지도 모르겠다.


항상 위축돼 있었던 유학시절을 보냈던 하진은 그 시절이 그녀를 강인하게 만들었다. 한 사람 몫을 하니까 받을 수 있었던 존중과 대우. 경험해 본 사람들은 모를 수가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해원도, 나도 끄덕여 본다. 해원은 자신에게 의지하길 바랐지만 그러지 않았던 하진에게 서운하고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쉽지 않았던 유학시절들이 그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걸 다 이해하기엔 그들의 시작점이 달랐다. 살아온 삶이.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 모서리가 있는 준연, 해원, 하진 이 세 명의 삶 속에 들어있는 감정들이 이제 막 피운 꽃봉오리처럼 싱그럽지는 않다. 그것은 살아가게 해주는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얻은 단단함이자 뭘 요구하지 않는, 기대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이 어렵고 의지도 어렵고 기대하는 마음은 두렵고.

하지만,
그럼에도 진짜 사랑을 찾고 싶은 게 사람이다.

(P. 282) 우리는 자기 얘기에 눈물을 흘릴 줄 모르기 때문에, 대신 눈물 흘려 줄 사람이 필요한지도 몰랐다.


나는 책에 흠집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조금은 따뜻한 색의 색연필로 밑줄도 좀 그려주고 싶고, 와 닿는 문장에 예쁜 색의 인덱스도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온기를 주고 싶은 마음이었나 보다.

벽돌같은 책이 품고 있는 이 살벌하게 길고도 긴 글들은 공감이 돼서 짜증이 나고, 시리기도 하고, 헛헛하기도 했다.
이들이 드러내지 않았던 외로움을 모른 척할 수 없을 만큼 나도 이제 서서히 알아가는 나이라서 그런지 읽을수록 마음이 쓰리다. 그리고 점점 가열되어가는 이들의 관계에서 오는 혼란의 감정이 더욱 더 불편해져만 간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떠밀림에 그대로 떨어져도 봤었고 다시 나 자신을 끌어오려도 봤었던, 그렇기에 매일매일 마음조차 바빴던 나와,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슴속에 얼기설기 얽혀있는 감정들을 이 책에서 발견하는 순간만큼은 공감의 쓴웃음 한번 지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이 공감에 가닿을 때까지 고단함도 물론 있었지만 그렇기에 준연, 해원, 하진의 감정들이 더 선명하고 강력하게 다가왔다.
아직은 정돈되지 않은 내 마음속에 말이다.


열정을 넘어 집착으로 이어지는 욕망의 감정이 고통을 줬어도 어쩌면 그렇기에 내가 서서히 이 책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걸 지도 모르겠다.

읽는동안 속이 타들어 가서 술이라도 한잔 넘기면서 미간에 주름 세우고 인상 좀 쓰고 싶어졌다. 피우지 않는 담배 일지언정 크게 들이마시고 연기를 한숨 삼아 푸~~~우 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다 내뱉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가지 마오’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여러 번 들락날락했다. 감정 폭력을 당한 기분이 들어서 중간마다 고비도 있었다.


(P. 499) 인생이란 희극도 비극도 아니고 촌극이라는 걸. 짤막짤막한, 아무 의미도 깊이도 없고 그저 지푸라기 잡듯 지폐를 붙잡아 보려 서로 밀치고 깨물고 할퀴고 때리는, 도대체 왜들 그렇게 천박하고 구질구질하게 사느냐는 말밖에 안 나오는 촌극.

이득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 게 인간이라고 말하는, 한 때는 경멸의 대상이었던, 그리고 돈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대물림해준 아버지와 지옥이라 여기던 집에서 끔찍이 싫어한 서재에 나란히 앉아 위스키를 마시며 돈이 주는 쾌락을 말하고, 도망치지 말고 도망치게 하라는 말을 들으며 해원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가 하는 말을 자르지 않고 중간에 나오지도 않은 걸 보면, 이해하고 있던 중일까? 또 다른 힘을 얻는 중이었을까? 그 돈이 주는 권력이 옳았음을 인정하고 있었을까?


해원은 페달을 밟았다. 짓밟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장 증오했던 아버지에게 먼저 손을 내밀게 할 만큼, 사랑했던 하진 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짓밟고 뭉개버리고 연기로 날려버리고 나면 자신이 꿈꾸던 장면처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 날이 분명 올 것이라 믿었다.
자신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그녀의 모든 걸 앗아간 이후에 말이다. 이것이 해원에게는 희열이고 사랑이었다.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던 준연은 더는 친구가 아니라 걸림돌일 뿐이었다. 그런 준연에게 손길을 건네는 하진을 바라보는 일이 해원을 미치게 하였다. 사랑하니까 존중하고 싶지만, 사랑하기에 그녀 곁에서 준연이 떨어져 나가줬으면 좋겠다.

(P. 515) 이 사랑은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다. 운명 그 자체였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열어젖힌, 내가 시작했고 내가 완성하려는 사랑.


작은 물결이 치는 잔상까지도 담아낼 만큼 여백 없이 꽉 채운 이들의 서사는 혼란과 불편함을 주기도 했지만, 지나칠 만큼 불완전했던 감정과 상황에서 공존했던 진솔함과 처참함으로, 헛헛하면서도 안타까웠고 한 인간을 향한 연민을 느끼게 했다.

단순한 집착이 광기에 옷을 입고 통제할 수 없는 소유욕으로 분별력을 잃게 하고 책임질 수 없는 상황까지 만들어냈다.
한 여자를 향한 남자의 욕망이 결국 산산 조각나는 자신을 마주하게 하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부자 아버지 밑에서 풍족함으로 과잉된 삶을 살아왔던 해원에게 없던 것은 사랑 하나였다. 이런 사랑이 결여 된 사람이 운명처럼 사랑을 느낀 한 여자를 향한 집착은 인간이기에 그 사랑을 갈구했던 것이며, 또 인간이기에 죄의식을 느끼게 했다.

암초에 부딪혀 좌초되는 배처럼, 서서히 무너져가는 해원의 내밀한 감정에서 그의 선택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해원은 더는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했다.
헤어짐을, 죽음을.

(P. 586) 모든 것이 다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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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일상의 조각들 덕분인걸까.
오늘은 유난히 하늘도 맑고 파랗게 느껴진다.

“학교 가는 길 바닥에 감꽃이 떨어져 있는거야. 아휴, 그게 뭐라고 글쎄 그걸 잔뜩 주워 담아서 책가방에 넣었어. 그 감꽃을... 아니, 그게 그땐 그렇게 신기하더라구. 허헛. 학교 끝나고 집에 가서 책가방을 열어보니까 아주 그냥 곤죽이 되어 버렸지 뭐야. 아이고, 내가 세상에 그랬던 적도 있었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감꽃을 보며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셨던지, 비 오고 바람이 세게 불면 우산을 손에 쥐고 걷는 것도 어찌나 심장이 벌렁벌렁 한지 모른다면서 옛날 얘기를 해주시는 외할머니를 바라보니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부모님께는 시시콜콜 이런저런 일들을 얘기하는 편은 아닌데, 모처럼 뵈러 간 외할머니 앞에서는 왠지 모를 안전한(?)느낌이 들어서인지 착착 부닐면서 온갖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자주 뵙지 못하는 죄송스러움 섞인 민망함에 주절주절 하는 내 얘기가 할머니의 왼쪽 귀를 타고 오른쪽 귀로 나가는게 보인다. 그러면서도 해골 복잡하게 뭔 놈의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냐는 말씀에 난 그냥 씨익 웃어본다.

외할머니가 챙겨주신 먹을거리를 주섬주섬 쓸어 담는 엄마의 모습이 집에서 볼 때와는 달리 깜찍하면서도(?) 왠지 들떠보인다.
통통하고 아담한 체형에 얼굴까지 비슷한 두 사람을 멀리서 바라보니 뽀얗고 귀여운 북극곰 같다.

꽃처럼 예쁘고 젊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같은 아픔을 겪고 살게 된 눈앞에 있는 중년의 자식을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모습과 또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밖에 없는 짙은 슬픔의 감정을 참고 사는 나의 엄마.

이 둘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니 나도 금세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얼른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입 쪽 빨아먹고 추스리면서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를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본다.


이제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데, 외할머니가 내 등을 부드럽게 쓸어 내리신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살아라. 마음의 병이 있으면 죽는거다.”

우리 외할머니 답게 진하고 묵직하게 몇마디 하시고는 이제 그만 부지런히들 가라고 재촉하신다.

난 사실 감꽃을 처음 봤다.
아마 본 적이 있더라도 관심도 없이 지나갔을거다.
조심스럽게 피어있는 감꽃을 보면, 이제 외할머니 생각부터 날 것 같다.


그리고 책을 샀다.


<내가 되는 꿈>,<쓰게 될 것> 이후로 오랜만에 최진영 작가님의 <어떤 비밀>을 골라 봤는데, 내 마음 속에 있는 무언가를 들켜버린 듯한 느낌을 줬던 두 권 모두 너무 잘 읽었기 때문에 아마도 만족스러운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P. 21) 사는 대로 사는 것 같지만 오늘은 언제나 처음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은 술술 잘 읽혀지는 반면 가볍지 않은 내용에서 등장인물들이 주는 여운이 오래간다. 이번에 선택한 것은 <편지>,<기도의 막이 내릴 때>이다. 최근에 읽은 <악의>는 조금 아쉬웠는데, 그래도 재미는 있다.


살만 루슈디의 책은 처음 접한다.
<무어의 마지막 한숨>과 <광대 샬리마르>를 골라 봤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믿겨지지 않는 일들이 사람을 암울하고 염세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이 또한 삶의 한 부분인 것 같다.
줄거리도 와닿고 구매자평도 좋아서 선택했다.
“폭력에 예술로 답하겠다”는 그와의 첫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혁진 작가님의 <광인>은 우리 부서 과장님이 추천해 주신 책들 중 하나인데, 너무 잘 읽었다면서 몇 번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정말 잘 읽어봐야지만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앞으로 출근 할 때마다 읽고 있느냐고 물으실 것 같다.
운동이든 뭐든 꾸준히 열심히 하시는 걸 보면 알 수가 있다.
분명히 물어보실거다.

그리하여,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예술과 위스키를 곁들인 40대 두 남성의 대화를 담은 0장을 시작으로, 1장부터는 좀 더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데 잘 읽힌다. 사실적인 감정묘사 덕분인 것 같다.

(P. 38) 그래도 해야죠. 아직 싫어지진 않았으니까요. 이렇게나 힘들고 고달프면 싫어져야 하는데 그래지지가 않으니까요. 제가 한 선택은 여전히 유효한 거죠. 아마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렇게 싫어지지 않는 걸, 어쩌겠어요.
나는 준연을 물끄러미 봤다. 좋아하고 일면 존경하는 마음만큼이나 안타까웠다. 준연의 나이를 생각하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준연은 허심하게 웃었다.


이브 엔슬러의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는 책 받고 훑어보니 목차부터가 마음이 일렁거리기 시작한다.
타인의 슬픔과 고통이 묻어나는 기록을 들여다보는 것은 참 괴롭지만 피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계속해서 듣고 싶다.
사라지고 없어지지 않는 고통일지라도.

분명, 그 고통은 강인함을 품고 있다.

(P.13)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과 순간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지독히도 외로운 우리가 갈구하는 손길, 잃어버린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벽을 허무는 이야기, 벽을 세운 우리에게 왜 그랬느냐고 자문하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서보 머그더의 <도어>는 책 내용과 역시 구매자 평이 좋았기에, 그리고 나는 사람을 향한 ‘오해’를 벗기고, ‘이해’하는 마음이 아직 부족하다 느끼기 때문에 사람간의 관계와 심리를 담은 책들에 여전히 관심이 많다.

(P. 15) 물방울들 사이에서 내 인생의 조각들이 휘말려버린 그 강은 이미 굽이져 흘러버렸으니 그곳에는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에메렌츠는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현명했는데, 과거를 위해 미래에 그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에너지를 비축해두었다. 물론 이 모든 것에 대해 내가 인지하는 것은 아직 요원했다.


책을 받고 나니 또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만족이란 것도, 행복이란 것도
내가 그렇다 느끼면 그게 만족이고 행복이란 것을 이렇게 또 실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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