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불안감이 내면에 갇혀 있고 자신의 결함을 완전히 잊고 있는 이 시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위로 나비가 사뿐히 내려앉듯 반쯤 벌어진 입술 위로 살며시 미소가 번지기도 하는 이 시간(물론 본인의 것이 아니고 깨어나면 곧바로 사라져버릴 낯선 미소라 해도 말이다) 이야말로 환자에게는 진정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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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남에게도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한 후에야 비로소 자기 존재의 의미와 사명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P70

인간에 대해 한가지를 이해하고 나면 다른 것들도 이해하게 되는 법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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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쁘게 느껴졌다. 나는 스스로의 멍청함을 벌하고 싶었고 내 어리석음에 대해 쓰디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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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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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과 한 시간 만에 마술에 걸린 듯 그때까지 나와 정신적 세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을 꿰뚫고서는, 열정, 새로운 열정을 찾아냈습니다.(P. 53)

‘새로운 기쁨‘ 이었던 것이다.
내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에 맛보았던 그 기쁨과 같았을 이 책의 주인공 롤란트가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빠져들며 느꼈을 그 새로운 기쁨.

롤란트의 젊은 시절 이야기들을 통해서 나를 들여다봤다. 아니 자연스럽게 떠올려져서 책을 읽다가도 혼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듯 시선을 위로 올리고선 내 머릿속에 떠올려진 과거들을 천천히, 그리고 때론 부끄러워 뜨거워진 얼굴을 만져보며 후다닥 다른 생각으로 이동시키는 경험도 하고 꽤 나쁘지 않은 (그 당시에는 좋을 수만은 없는 온갖 것들)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를 읽고 바로 그의 책을 2권 더 구매하였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그 공감능력과 다정하고도 섬세한 그가 좋았다.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면은 나라는 사람의 대해 사유할 수 있는 큰 배움도 있고 자유스러움을 갈망했던 마음에서 얻는 공감은 꽤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감탄한다. 어쩜 이렇게 부정적 마음의 표현조차도 고급스러우면서 지나치지 않도록 절제하되 그 뜻은 부족함 없이 충만하도록 글로 잘 담아낼 수 있는 건지 참 놀랍다.

<감정의 혼란> 속 롤란트는 교수님의 구술을 받아적으며 느낀 감정을 이렇게 서술했다.

선생님이 야성적이고 원시적인 서술을 열광적으로 묘사할 때는 창작자의 단어가 웅대한 울림으로 날아올랐습니다. (P. 101)
롤란트를 한순간에 압도시키고 그에게 열정을 불러일으켜 준 교수님의 존재가 심지어 한 인간으로서 부럽기까지 했다. (물론 그 반대의 상황으로 교수님에게 식어버린 열정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롤란트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랬다.)
‘나’라는 존재를 ‘지금의 나’로 결정지어 버릴 만큼이라니...
이거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완전히 교수님에게 압도당해 사로잡힌 롤란트의 감정이 내겐 조금씩 벅차고 두려움을 만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어느 한 ‘인물’ 혹은 한 ‘사건’에 치우친 삶을 살기로 선택하게 될 때에 거기에서 오는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그 순간에는 완벽히 가늠할 수가 없고, 시간이 흘러 그로 인해 내가 오롯이 겪는 실패와 후회를 끌어안은 채 산다는 것이 꽤 녹록지 않다는 것을 느껴본 자로서 앞으로 롤란트가 겪게 될 고난이 조금은 예상되어 불안함 섞인 초조함을 느꼈다. 그리고 혹시 나의 예상대로 그도 나처럼 생채기를 겪게 된다면 과연 그는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궁금해졌다. (물론, 나보다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뭔가 세련되고 우아한 방법을 택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허나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이더라.)

자신의 감정을 살펴볼 여유조차 없었던 롤란트가 원하는 것이라고는 자신을 향한 교수님의 ‘공감’뿐이었는데, 그는 조금은 무모하게 ‘멈춤’없이 교수님을 향해 달리기만 했던 것 같다.

롤란트의 고백처럼 인간이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한순간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누구나가 인생을 살아가며 겪을 수도 있는, 혹은 단 한 번도 겪어볼 수 없는 심미적 정신세계로의 여행을 통한 그 ‘감정’을 느껴본 자만이 가늠할 수 있는 그 무언가(혼란스러움)를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것은 슈테판 츠바이크만의 빠져들게 하는 서술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 솔직함과 섬세함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혼란스러울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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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언어의 광휘로 낯선 나를 처음부터 사로잡았고, 더 깊은 그의 침묵, 이마 위에 떠도는 비애의 구름이 이젠 그와 친숙해진 나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 P86

아무 색채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흘러내릴 뿐인 뜨거운 열(熱)과 같은 사상이, 충동적인 격정의 주조에서 쇳물과 같이 흘러나와 서서히 그 형태를 갖추고 그 형태가 둥근 형상으로 변하면서 마침내 명료하게 하나의 언어로 완결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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