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식당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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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상처입었다’. 작은 할아버지가 이 책방과 내 존재를 조금도 연결짓지 않았다는 사실에.”

 

무더운 여름, 책에 홀려 낮술을 마시며 읽은 <낮술>의 작가의 반가운 신작이다. 이번엔 더 매력적인 소재들이다. 책과 책방 그리고 식당? 아무리 애써도 도무지 일상이 편해지지 않는 시절임에도 작품 세계로 홀린 듯 빨려든다.

 

낯선 배경, 낯선 문학, 낯선 상황이라는 걸 감안하면 왜 이렇게 재밌는지 모를 일이다. 이야기와 번역의 힘. 책 이야기가 한 권 가득 이어지니, 근래에 가장 오래 설렌 시간이었을 듯하다. 행복한 동화를 읽은 듯 행복하다.

 

제일 두려운 건 그러는 사이에 다들 서서히 그 생활에 익숙해지는 거예요. (...) 은근슬쩍 조금씩 책이 사라져갈 거예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모를 일이나, 종이책을 구할 수 있다면 이번 생에 내가 종이책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게는 그 물성이 책이고, 독서란 책을 꽉 붙잡고 읽는 감각적인 활동이다.



 

인생에 필요한 소설이나 책은 우리가 찾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찾아오는 걸지도 몰라요.”

 

새로 생긴 흉통처럼 사라지지 않던 불안과 가결의 순간과 맞바꾼(?) 감기와 지독한 두통에도 줄어드는 분량이 아깝고, 등장하는 메뉴들에 허기가 졌다. 게으른 성격이라 참고 또 참다가 결국 몇 년 만에 야끼소바를 해먹었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요리와는 이름만 같은 음식이지만.

 

한 가닥 우동 메뉴를 갖춘 식당까지는 차마 못 가고 집에서 우동도 끓여먹었다. 이번 감기가 하루라도 빨리 낫는다면, 이 책이 부추긴 식욕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맛있게 먹고 나면 힘이 나니까.

 

나는 현재와 함께 읽는 독서가 좋다. 지금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 같아서. 고전문학들은 어릴 적 전집으로 읽었고(거의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후에도 가끔 읽었으나 애착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런 편협한 독서를 이 책은 다정한 권유처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전혀 모르는 일본의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에 대한 애정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폐기되고 상실한 많은 것들을 나도 애도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책이 좋고 책 읽는 이들이 좋다. 이 책도 작가도 좋다. 이야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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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4.12 202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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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해도 별반 없었긴 하지만, 올 해는 반 이상 정신을 못 차리고 허우적거리며 살았다. <르몽드>의 통찰력과 디테일에 기대어 한 해의 마무리를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며 다져보고 싶다.

 

미국 중심의 세계관으로 구성된 세상의 경계를 넓히고 싶다면 르 몽드 한국어판을 만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12월호의 다양한 주제와 장소에 관한 명징한 기사들을 읽으며 국내 상황으로부터 정신적 휴식도 누렸다.





 

한 달 동안 제대로 알아보고 배우기엔 늘 풍족함을 넘어서는 내용들이다. 글을 완성하기위한 노고에 못 미치는 독서라 매번 미안하지만, 소심한 내 기준으로는 펼칠 때마다 더 넓은 공간으로 확실히 걸어 나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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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에 아무 관심이 없는 행정부 수반이 구시대의 악몽 같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탄핵 소추 가결되는 내내, 쪼개진 정신으로 더 허둥대며 겨우 살았다. 어떤 난동을 더 부릴지 모른단 불안에 오랜 집중이 불가능했다.

 

폭력을 사용하는데 주저가 없는 그도, 그가 속한 정치 집단도, 인간답지 못한 수단으로 이익을 챙기는데 노골적이었고, 사람들을 가능한 잘게 쪼개는 비열한 기술을 휘둘렀다. 원래도 약자였던 이들은 날개를 달고 날뛰는 폭력에 더 위축되고, 상해를 입고, 죽임을 당했다. “여혐 살해는 무용담이 되었다.

 

다양한 신체적, 사회적 폭행과 범죄들 중 일부는 폭로되고 잊히고, 다른 일부는 합당치 않게 처벌되고 또 잊혔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거리에서도 공공장소에서도 여성들은 살해되었다. 그 살해가 멈춘 것인지, 보도가 멈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양한 내용 중에서 페미사이드femicide” 페미니사이드feminicide”*에 대해 배운 것을 정리해둔다. 유엔은 2012년 빈 심포지엄에서 이 개념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며 두 단어를 구분 없이 자주 함께 사용한다고 한다. * 사회적 통제나 정치적 폭력의 형태로 여성을 살해하는 행위

 

관련 역사와 내용을 알 수 있어 반가우면서도, 낯설지 않은 상황들이 섬뜩하고 아프다. 언론의 행태도 유사하다. 페미니스트란 단어가 프랑스에서는 한 때여성혐오적 모욕으로 쓰였고, 한국에서는 지금혐오 폭력의 표적으로 쓰이는 것을 제외하면. , 폭력의 종류는 한 가지가 아니다.

 

여성 살해는 강간, 고문, 성적 노예, 강제적 이성애, 강제 불임, 강제 임신(피임과 낙태를 범죄화), 정신외과 수술, 특정 문화에서 여성에 대한 영양 불균형 등을 포함하는, 여성 혐오적 공포의 연속성의 극단에 위치해 있다.” 1980년대 영국의 사회학자 리즈 켈리

 

다양한 사회적 이유로 인해 여성들이 조기에 사망에 이르는 모든 형태의 폭력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1,000건이 넘는 멕시코 국경 도시의, 미제로 남은 여성 살해 사례에서 보듯이, “2,526건의 여성 시신에 고문과 성적 절단의 흔적이 남았다는 점에서 이 살해들은 젠더 특징적**이다. ** 체계적 성적 여성 살해, 살해된 신체와 신체를 문화적으로 짓밟는 범죄.

 

여성들이 살해당할 때 그들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페미니사이드>의 저자, 다이애나 러셀(1938)






 

한국 사회에서 여성 혐오와 폭력을 수단으로 지지층을 만든 자들은 무엇을 경험해도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자들일수록 표가 아쉬울 때는 임신한 아내와 나이든 어머니를 앞장세운다.

 

박근혜 탄핵 때 나라를 구했다면 잠시 추켜세워진 ()학생들에게 이후 쏟아진 조롱과 폭력을 생각해보면, 이번 탄핵 집회의 경험이 다양한 틈을 한 번에 메우고 갈등을 봉합하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일례로 시국선언하는 여고생들을 조롱하고 협박하는 남고생들도 우연이 아니다.

 

정치적 탄핵 이후에 만들어갈 세계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많은 시간 솔직한 논의가 필요하다. 대통령 하나 바뀌어서 망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다 좋아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고단하고 먼 길이지만 그 미래를 몰라도 지더라도 가야할 길이다..

 

이데올로기가 전파하는 가치와 규범은 (...) ‘자연스러운것처럼 보이더라도 (...) 최상의 환상이다.”

 

12월호를 읽고 기록하는 동안 내내 춥고 무겁던 몸에 체온이 조금 상승했다. 며칠 만에 잠을 잘 자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승리를 과신하지도 말고 낙관하지도 말아야겠다는 산뜻한 생각이 든다. 감사하며, 조금은 달라진 2025년에 다시 만날 새로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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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곁에 있기 - 취약함을 끌어안고 다른 삶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돌봄의 세계들
고선규 외 지음 / 동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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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으로 모두 만날 수 있어 내 곁도 뜨거워질 듯한 저자들이다. ‘돌봄이란 두렵고 버겁다는 생각만 오래 한, 게으르고 비겁한 독자의 귀한 배움의 기회가 될 책.

 

셀 수 없이 많은 요소가 돌봄이라는 행위에 대해 하기 힘들고, 귀찮은 일이라는 감정을 먼저 일으키게 만들고 있다.”

 

살면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과 통찰을 통해 어떤 인간의 체계 - 개념, 가치 등등 - 인위적 조작에 다름 아님을 배운다. 출생 후 바로 자립이 불가능한 생물에게 돌봄은 생존의 필수 요소이나, 이를 인지하고 대하는 태도는 무지와 무시에 다름 아니다.

 

따라 읽으면 뾰족한 기분이 녹을 듯한 제목의 이 책 속에는, 이런 인식 환경 속에서 곁에 있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마주하고 감당하고 헤쳐나갔던 곡절이 담겼다. 돌봄이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인 독자라서, 돌봄을 둘러 싼 여러 공부를 하는 기회로 삼아 읽었다.

 

이미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면, 왜 돌보고 있고, 돌봄 과정에서 느끼는 문제와 갈등은 무엇이고, 고통과 만족은 어떤 것이 있는지 (...) 돌돌 수 있는 조건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

 

한숨이 절로 나는 지난 역사 속 선택들보다, “사회화가 필요한 일들을 시장화하는 방향이 더 아프다. 뜨겁게 늘어난 관심이 시장화된 제도로 귀결하는 과정들도 아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장보다 크고 복잡하건만.

 

내 한 몸 돌보기 힘든 세상에서 서로를 돌봄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이 세계의 한 귀퉁이를 돌보고 있다.”

 

배움이 느리고 배운 걸 잘 잊어서, 이 나이에도 스스로를 잊고 잃고 아프게 만들며 살고 있다. 어느 저녁 버스 정류장에서, 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호흡이 돌아온 사람처럼 깊고 시원한 숨을 쉬었다. 문득 깨달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지금이 오늘 처음인 휴식 시간이구나.

 

거리를 채우는 색색의 불빛들처럼 내 기분에도 불이 들어왔다. 기다리는 몇 분이 홀가분하고 편안해서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너무 빠르고 너무 바쁘게 산다. 이 속도로는 남은 물론 자신도 돌볼 수가 없다.

 

연약함은 시간을 붙드는 힘이 있다.”

 

타인들의 삶이고 관계고 경험지만, 나누는 글들은 나의힘이 된다. 책이 가진 마법 같은 능력에 기대어 산다. 내게 있는(있다면, 있겠지?) 인간다움과 인간답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힘의 팔 할(이상)은 더 나은 인간 세상을 바라는 이들이 써서 전해준 책()에서 받았다.

 

자기돌봄이야말로 더 나은 모든 것의 시작일지 모른다. 그러니 무언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다면, 우리는 자신부터 돌봐야 한다. 내가 돌봄의 시간 속에서 익힌 가장 투명한 진실이다.”





 

누군가의 곁에 있으며, 혹은 있기 위해, 무겁게 짓누르는 힘든 생각이 많은 분들이 잘 발견하기를 바라는 책이다. 다양한 돌봄들로만 살아갈 수 있는 모두가 만나면 좋을 책이다. 내가 아는 돌봄과 모르는 돌봄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들이 더 많아지길, 그렇게 돌봄이 사회적으로 확장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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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의 온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4
정다연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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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차고 몸은 춥고 시국은 서늘한 계절이다. 서점에서 눈에 띄면 덥석 집고 싶은 제목이다. 그저 다정하고 따뜻하자는 얘기만 담으신 건 아닐 테지. 내 짐작보다 훨씬 더 단단한 이야기를 전해 주실 거다.

 

삶은 유리컵을 엎지르고 싶지 않아도 엎지르게 되는 일처럼 통제할 수 없으니.”



 

새삼스럽기도 하지만 책(기록)이 가진 힘은 대단하다. 예를 들어 전혀 모르는 이의 이야기를 몇 시간씩 듣기란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책은 초면인 작가의 촘촘한 풍경을 들여다보고 목소리에 집중하게 돕는다.

 

낯가림의 짧은 시간이 지나고나니, 내가 당면한 현실로 쪼개지는 두통을 지그시 누르는 시간이 찾아왔다. 미루기와 외면이 해결해주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다그침에서 잠시 놓여나 호흡에 산소 농도를 높이는 듯.

 

슬픔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무관하게 한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으며 그건 (...)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고.”

 

눈치가 없고 우둔한 편인데 나이를 먹으니 좀 더 이해하는 면면이 내게도 있다. 남들은 이미 알고 나는 이제야 하나씩 알아가는 수많은 것들 중에는, 사람들이 아주 비슷한 질문을 하며 각자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는 것.

 

어떻게 살고 싶은데?”

 

버릇처럼 조바심이 일기 시작하는 순간마다, 저자의 문장들이 시간을 다 잡아 주었다. 호흡의 속도보다 빠르게 사느라 늘 숨이 찼다고 가르쳐주는 것처럼. 느리지 못해서 집요할 수도 없었다고. 보지 못한 것들이 아주 많았다고.

 

내가 나를 지나치게 앞질러 가지 않도록 돌보며 건너가야지.”

 

시인들은 닮은 목소리를 가진 걸까. 한강 작가님의 포근하고 바삭거리는 한지 같은 음성을, 기뻐하며 축하하지만은 못하는 시절을 슬퍼하며 반복해서 들었다. 이 책이 지닌 목소리도 그렇다. 다정하고 보드라운 사랑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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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 흔들리는 오십을 위한 철학의 지도
바르바라 블라이슈 지음, 박제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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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는 이곳의 아름다움을 몇 번이나 더 누릴 수 있을까?”

 

흔들리는 오십……. 흔들리기만 할까. 갑자기 툭... ... 살면서 만들어둔 것들 중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가끔 내 자신의 일부가 바스스 손 쓸 도리 없이 헤지기도 한다. 몸도 다른 것도 거의 매일 아프다. 과장이 아니다.

 

삶의 반환점은 몇 해 전에 이미 돌았다고 생각했다. 다시 읽게 되지 않을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새로 읽는 책들도 대개는 첫 만남이 마지막이었다. 빠르게 닫히는 시간의 문 앞에서 무엇이든 반복은 사치가 되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모든 걸 뒤집어버리기엔 우리 인생에 너무 깊이 매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 평온함은 이내 고통스러운 마비 상태로 변한다.”

 

그런 약화(?)를 알아차리면 무분별하게 사용한 자신을 돌보거나, 잘 모르는 자기 자신에 집중하거나, 살라는 대로 살아온 삶 말고 다른 삶을 찾거나 만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시도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고령의 부모와 아직 미성년인 자녀들이 있는 경우, 아프든 괴롭든 의무와 책임은 막강한 과제처럼 버티고 있다. 그 괴리가 중년을 더 아프게 한다. 그 결과로 드러나는 거의 모든 비명을 갱년기 증상이라 부를 지도 모르겠다.

 

내가 전혀 바꿀 수 없는 나의 생물학적 운명, 유전자는 봐주지 않고 일회용인 몸을 노화시키고, 내가 바꿀 수도 있지만 무책임한 선택이 되거나 사랑하는 이들을 엄청나게 힘들게 할 사회적 운명, 역할은 변화를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이 모든 걸 받아들이고 살다보면 앞으로 남은 삶에 남은 마지막 이벤트는 장례밖에 없다. 행동이 어려우니 중년에게는 제목처럼 철학이 유일하고 간절한 존재 방식이 될 지도 모르겠다. 뭐든 각자가 이해 가능한 정리가 필요하니까.

 

우주의 추정 나이가 약 137억 년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의 생은 찰나에 불과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사실을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차분하게 사색을 이끌어주고 함께 산책을 나선 듯 다정한 책을 읽는 동안, 시시한 성과물도, 막연한 미래도 불안해하지 않고 잊을 수 있었다. 중년에 느끼는 감정들을 쓸데없다고 혼내지도 않고, 감동을 주거나 낙담시키지도 않는다.

 

중년이라서 가질 수 있는 작은 반짝임 같은 통찰을 과장 없이 얘기하며, 그렇지 않냐고 조용히 묻는다. 읽다 보면 저자의 고백을 내가 듣는 것인지 내가 고백을 털어놓는 것인지 분간이 흐려진다. 공허함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

 

무언가를 돌보고 배려하는 자세는 무엇보다 삶의 허무함에 대항하는 방식이다. (...) 이런 식으로 우리는 (...) 우리 안의 무언가가 계속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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