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 - 금기와 편견 너머, 하마스를 이해하기
헬레나 코번.라미 G. 쿠리 지음, 이준태 옮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 동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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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원주민은 서구가 기획한 이스라엘이라는 식민주의 프로젝트에 맞서 100년 넘게 싸워왔다.”

 

이해 못할 이유로 침략을 당당히 선포하고, 또 이를 편드는 일이 벌어졌다. 문명에 대한 신의가 있던 젊은 나는, 헛소리가 현실이 된 역사적 사실을 처음 알고 꽤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국가이스라엘이 1948년 탄생했고, ‘인종차별식민주의는 강력하고 꾸준히 이어졌다.

 

그래도 당면한 내 일이 아니라서, 살상 무기 자금을 후원하는 시오니스트 기업들의 물품을 아는 대로 불매하는 것으로 위무를 하며 살았다. 막연하게 품은 올바른 방향으로의 진보 같은 것을 희망했고, 현대 문명은 근대의 약점과 실수와 범죄에서 배우고 더 나아질 거라고 느긋했다.


그런데 21세기가 되어도 전쟁은 멈추지 않았고, 새로운 침략이 발발했다. 모욕을 당한 듯 화도 나고 무엇보다 빠르고 생생하게 전달되는 피해상황에 안타까웠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우울할 정도로 미약하지만 뭐라도 참여하며 살긴 했다. 하지만 국제 정세는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처럼만 보였다.

 

극우가 창궐하고, 무작정 편을 들고, 맥락 없이 악마화하고, 사유도 말도 행동도 더 극단적으로 변한다. 딱딱하고 납작한 사유는 끔찍하고 요란한 목소리를 반복한다. 그런 특징을 가졌거나 잘 활용하는 이들이 집권을 하고 불법을 저지른다. 지구상에 이들을 막을 존재는 없는 듯 보인다.

 

많은 동료 시민들은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하고 조직적으로 강간을 자행한다는 이스라엘의 날조를 오랫동안 의심 없이 사실로 받아들였다.”

 

할 수 있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미미하다. 그래도 다 외면하지 못하니 똑같이 폭력적으로 변하기보다 천천히 깊이 배우고 사유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다른 언어와 이해가 필요하다. 유의미한 지식정보와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으로 처음 본격적인 공부를 해본다.

 

하마스가 무엇인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의 정확한 실태, 조작과 프로파간다, 오해, 편견, 고정관념, 반감의 구체적 실체들, 그리고 세계 시민이자 식민지를 겪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무관하지만은 않은 정세에 관한 내 생각과 입장을 정리해본다.





 

편승한 오해로 미안하고, 소위 문명과 민주정의 최정예로 자처하지만 독재와 불법을 자행하는 정치체의 집권 세력들에 대한 오해로 서글프다. 호모 사피엔스는 현실에서도 전쟁을 일삼고, 가상공간에서도 전쟁게임에 몰두하고, 문화미디어에서도 전쟁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상을 제작한다. 실로 폭력적이다.

 

편의와 계산 앞에서 삶과 죽음이, 전쟁과 평화가 이런 웃기지도 않은 취급을 받아도 되는지 한없이 슬프다. 그렇게 묻히고 왜곡된 진실과 범죄와 역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거대한 암담함 속에서, 평화를 위해 오래 싸웠고 포기하지 않을 이들이 기록한 책이 눈물겹고 귀하다.

 

#강추합니다 #많이읽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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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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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로 한 작품을 빨리 만나보게 되어 즐겁고, 정식 출간본에 여섯 편이 더 실린다는 것이 기쁘다. 중단편소설들이라 더위에도 문제없이(?) 집중 가능. 스토리텔링 대가의 첫 소설집, 설렘도 크다.

 

음반 밀조업자요. (...) 내 옆에 앉은 남자가 콘서트를 녹음하고 있습니다.”

 

밀조업자? 밀주도 아니고, 밀레니엄 전후 뉴욕에서, 숨겨진 채로 만들어지는게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런데! 정말 상상을 못했다. 생각해보면 불법 녹음과 촬영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행해질 것도 같은데, 카네기홀이라고 모두 교양과 예의와 준법으로 완벽한 청중만 올 리는 없겠지만.

 

연주가 다 끝난 것이 아니라서 그 시점에 꼭 토미가 소란을 피워야했나 청중도 아닌데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오해일지 아니라면 무슨 사연일지. 대처하는 태도는 어떨지 긴장과 재미가 비례해서 상승했다. 동시에 열렬히 제 권리를 주장하는 성공한뉴요커 카네기홀 청중 토미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숫자로 비교되는 성공의 척도, 부와 권력 다음엔 문화와 취향이 계급을 확실히 구분 짓는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진짜 애정과 열정과 헌신은 오히려 밀려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렇다고 파인씨의 사연 혹은 변명이 꼭 타당한 건 아니지만. 투자은행가 토미와 파인씨는 그리 다른 부류가 아니란 생각은 오독일까.

 

그건 바바라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거였소. 집에 돌아와 콘서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수 있으니까. 마치 아내가 아직도 여기 살아 있는 것처럼.”

 

자신의 성취와 성공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을 말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게 척도가 되어 완전무결한 자신이 누구라도 원칙에 따라 단죄가능하다고 여기는 태도는 폭력적인 빈곤한 사유를 드러낸다. 물론 한편의 연극처럼 생생하고 멋진 이야기가 단선적인 대립구도와 선명한 선악을 대비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도 현실적이고 기시감이 드는 캐릭터들이 종종 무색하게 부끄럽게 만드는 다양한 인간의 약점과 부족함을 명시해준달까. 나는 모든 캐릭터의 대화 속에서 콕콕 찔리는 유사성과 위선을 느꼈다. 모쪼록 반복하지 말고 조금쯤은 지향하는 인간상으로 변화해주길 스스로에게 간절히 바라고 싶은 심정이다.

 

유쾌하게 신랄하고 상당히 짓궂고 속도감과 섬세함 모두를 갖춘 짜임새가 아주 마음에 든다. 덕분에 재밌게 읽고 한참을 복잡한 심정으로 자신을 성찰해볼 수 있었다. 이 첫 소설집에 실린 나머지 여섯 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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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와 함께한 여름
하토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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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며 오래오래 쓰다듬었습니다.”

 

애도에 필요한 시간은 각자의 몫이다. 어떤 위로도 어떤 결심도 잠길 듯 차오르는 슬픔을, 한순간 흐르기 시작하는 눈물을, 식초를 삼킨 듯 시리고 아픈 고통을 막을 수는 없다.

 

태어나보니 개오빠가 있었고, 어린 시절 사진마다 똑같은 표정으로 웃는 사진들이 가득했던 나의 첫 사별은 반백이 되어도 펫로스 증후군이란 진단으로 아무 위안을 받지 못한다.

 

그래도 더 오랜 시간을 산다는 건 무감하고 무심해지는 것이라서, 슬픔은 뭉툭해지고 고통은 옅어진다. 어느 날부터는 생생한 촉감과 체온을 느낄 정도의 꿈 속 재회가 아니라면 눈물이 흐르지 않게 된다.

 

30년 전 내 상황과는 많이 다른 관계와 현실이지만, 사별이라는 속수무책을 겪는다는 것은 같아서, 결말을 알아서 슬프고, ‘그 이후가 너무나 궁금해서 자꾸만 물을 마시며 한 장 한 장 조문하듯 보았다.





 

현실은 언제나 상상보다 잔인합니다.”

 

사망 직후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하는 심정이, 무력감과 무기력감을 느끼는 시간들이, 솔직하고 익숙해서 위로를 뭉텅 받는다.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없어서 겪는 간병의 어려움에 공감한다.

 

무엇보다 함께 하는 가족들 간의 입장, 태도, 상황의 차이들에서 오는 고민에서 배운다. 많이 사랑할수록 많이 미안해하는 다정한 모순을 생각한다. 인간의 세계에서 인간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준 동물로 인해 인간은 서로를 배우고 이해하게도 된다. 선명한 결론이 반갑다.





 

지금을 살면 돼.”

 




.................................



 

!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학대... 동료 시민 여러분, 이런 폭력을 꼭 범죄로 단호하고 합당하게 처벌할 수 있는 인간 사회에서 함께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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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도둑 캐드펠 시리즈 19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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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제프리의 사망 소식과 함께 램지 수도원 측에서 보낸 두 사자가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성 바오로 수도원에도 도착했다.”

 

1권부터 따라 읽던 시리즈를 체감상 아주 오랜만에 다시 펼치니 즐겁다. 작품 배경인 중세인들의 삶에 다시 익숙해지는 시간도, 한결 같은 디테일도, 매력적인 캐릭터들도, 독특한(?) 스타일의 문장들도 모두.

 

담담한 묘사처럼 이어지다, 어둡고 치밀한 구조의 미스터리로 들어가는 과정도 역시 재밌다. 여전히 갈등과 범죄의 가장 큰 동력이 욕망이라는 것, 그리고 신념이라는 때론 어리석고 고집스럽고 편협한 입장도 흥미롭다.

 

오랜만이라서인지, 작품이 다루는 인간관계의 갖가지 복잡한 상황들이 더 정교한 기시감을 준다. 인간 사회는 어쩌면 이토록 완고하게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건지. 그럼에도 연민과 연대는 어떻게 사라지지 않고 늘 존재하는지.

 

만일 위니프리드 성녀님이 정말로 슈루즈베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에서 램지로 가는 마차에 올라타신 거라면, 또 그분께서 계획하신 일을 인간으로서는 막을 수 없다면,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도 역시 성녀님의 뜻일 겁니다.”

 

장마가 시작되고 큰 비에 피해를 입은 지역들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주말에, 작품 속에서도 큰비로 강물이 범람하고 침수가 발생했다. 비가 그치고 나니, 절도와 살해가 발생했다. 현실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작가는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을 다스리기 위해서, 신의 계시를 이용한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어진 2025년 우리의 현실에서는 어떤 통찰과 신념이 사회를 유지하고 개선시키는데 가장 큰 설득력을 가질까.

 

말끔한 이성과 합리적 방법으로는 인간 세상의 일들이 기대만큼 효과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가 참 많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 능력을 넘어선 연산 장치를 가졌음에도, 서로의 감정을 살피는 태도와 능력이 여전히 필요한 것일 테다.

 

재밌는 시리즈의 마지막에 가까운 19권이라 아쉽고, 20권이 있어서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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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
브라이언 애터버리 지음, 신솔잎 옮김 / 푸른숲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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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에는 세상이 지금과 같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문화적 기능도 있다. 세상이 더 나아질 수는 없다 해고, 적어도 다른 원칙으로 운영될 수는 있다.”

 

판타지 문학은 사회과학 실험실과도 같다. 허구라서 상상이라서 더 강렬하게 농축된 작가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치밀하고 자유로운 세계. 의미를 전혀 몰랐을 어렸을 때부터 팬이다. 이 책 덕분에 판타지가 현실을 바꾸는 그 멋진 역할에 대해 이제야 정식으로 배워볼 수 있을 듯.




 

좋아하는 것에 관한 자발적 공부는 즐겁다. 지금 여기 말고 전혀 다른 세계로 의식을 휙 데려가주는 판타지 문학을 많이 좋아한다. 그 설렘을 대체할 만한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판타지 문학을 읽는 할머니로 살고 싶다. 이 책 한 권 읽기가 내내 즐겁고 줄어드는 만큼 아까웠다.

 

이 책은 어떤 판타지 문학보다 재밌고 설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전혀 과장하지 않음). 반백이 넘었는데 문학비평 에세이를 전공했어야했다 싶은 뜬금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환호하며 읽었다. 원작과 번역의 힘에, 내용 자체의 충실함과 어렵지 않게 전달하는 필력이 경이롭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지닌 (...) 문화적 DNA의 가장 오래된 가닥 중 하나는 예지적인 스토리텔링, 즉 판타지다.”

 

허구, 상상, 창작이 때론 더 깊은 진실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자기계발서보다 소설이 때론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힘과 시선을 준다. 문학을 도구로 쓴다는 명백한 의도가 없어도,톰킨스가 말하는 문화적 작용은 문학을 통해 권력과 가식, 불의와 무지를 탐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인간의 활동과 그 산물은 의도가 가장 크게 그 쓰임을 결정한다. 기존의 판타지 문학이 소년 영웅과 백인 구원자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등장한 건 사실이고, 그 점이 지겨운 독자도 많겠지만, 정치와 만나는 지점으로서 자기 발견과 사회적 변혁을 다루는문학 공간은 역시 판타지다.

 

우리가 정체성이라고 인지하는 것, 세상에 체계를 부여하는 것, 현실에서 경험을 통해 대비하기에는 너무 위험해서 불가능한 모든 차원의 정치적인 것은, ‘이야기를 통해서만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다. 읽는 내내 관련 주제에 관한 유쾌한 확인과 든든한 배움을 얻었다.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한 책.

 

그 어떤 스토리도 이 모든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우리 스스로에게서 우리를 구원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는 스토리가 없다면 미로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을 희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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