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 - 우리가 법을 믿지 못할 때 필요한 시민 수업
신디 L. 스캐치 지음, 김내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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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라는 허약한 토대, 법기술자들과 법꾸라지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법을 조롱하고 오용하고 무시하면서 살 수 있는지를 울화와 분노로 지켜보았다. 한국적인 상황만이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드러난 약점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닐 수 있다. “법이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는 헌법학자의 이야기를 찬찬히 따라가 보려 한다. 멀쩡한 시민으로 살기가... 너무 자주 숨이 차는 극한 직업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원칙은 미국 전역에서 자취를 감춘 듯했다. (...)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규정하는 법률은 (...) 나르시시스트 선동가나 다름없는 자를 선거에서 뽑곤 한다.”

 

신디스 캐치의 <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에서는 짐작보다 더 숙의적이고 총체적이고 다각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사상이 전개된다. 20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력적이던 사상과 존경하던 저자들이 반갑다.

 

저자는 신자유주의도 무정부주의도 아니라고 거리를 두지만, 내가 아는 이상주의는 인간이 자율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 그러한 개인들이 자유로운 연대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은 ‘~주의로 개념화하지 않아도, 저자가 희망하는 시민성을 키우고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일에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법과 규칙, 위계질서에 기반한 리더십이라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작동하게 할 때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시민을 한 명, 한 명씩 바꿔보자는 거다.”

 

수평적이고 상호적인 시민들의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능동적으로 책임과 의무를 지고 모든 생물체의 권리를 존중하는 시민이 되는 방법을 상기시키려 한다. 선한 질서를 보장하기 위한 권위에 의한 강제로서의 현행 규칙과 법률을 초월하는 상상력, 두렵지만 궁금하다.

 

이 목표를 위해, 책 전반에서 법률과 민주주의와 사회와 정치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선례와 연구를 통해 설명한다. 목표와 지향과 달리 어떤 실패와 전락과 부작용을 초래했는지 제시한다. 인류가 생명과 자유, 행복추구권, 모두의 존엄성 보호를 헌법적 권리로 성취했는지 솔직하게 묻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규칙과 법원에 맡겨버린다면, 자율적인 지역사회의 헌신과 협력은 발전하거나 번성할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선거로 선출된 행정권력이 내란을 일으켜 여전히 종식시켜가는 중인 한국사회의 시민으로서, 거의 모든 내용이 미국의 상황으로 읽히지 않았다. 권한 위임은 무관심과 방조와 달라야한다. 특히 광장에 모인 이들 각자의 발언에서, 미디어에서 선별하는 목소리들이 얼마나 편향된 것인지, 얼마나 많은 다른 목소리들이 묻혔는지 실감했다.

 

그러니 질문은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알고 반복적으로 교류하는 관계, 시민권 집단의 기반이 될 수 있는가. 공유된 지식을 나누는 실재적인 공론장, 공동체적 삶associated life”이 존재하는 민주주의가 가능한가.

 

그래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인 민주시민을 교육하는 일은 대학부터가 아니다. 사회학습의 초기단계가 제대로 작동해야 실질적 교육 효과가 있다. 아동교육, 초등교육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정책 지원을 해야 한다. 관행대로 교수 중에서 장관을 인선하려는 이번 정부에서 가능할까…….

 

우리는 시민을 양성하고 공동체를 건설합니다. 그저 부모들이 출근할 때 아이들을 맡겨두는 곳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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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약국
히루마 에이코 지음, 이정미 옮김 / 윌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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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이상적인 약국의 모습이란 (...) 거리를 걷는 누구라도 잠시 들러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주소: 도쿄 이타바시구 시무라사카우에역 앞 길모퉁이, 히루마 약국.

 

도쿄에 방문하고 싶은 약국이 생겼다. 1923년 생 약사가 계신 곳이다. 다정한 처방전을 제대로 받으려면 어딘가 불편한 곳 이외에도, 전생에서 배운 듯한 일본어를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가보고 싶다.

 

오늘 하루에 관심을 갖고, 오늘을 진심으로 대하자.”

 

모르는 건 배우고, ‘옛날이 좋았지같은 말은 쓰지 않으려고 늘 신경 쓰고, 젊을 때는 고집이 셌지만, 오히려 나이 들어 더 물러진. 사과를 빨리 하는, 후회와 집착 대신 가볍게 살고자 앞만 보고 사는 사람.

 

살아남았다는 것은 살아가야 할 삶이 주어진 것입니다.”

 

예전엔 한 곳에서 오래 사는 일이 달갑지 않았고 지겨울 거란 생각이 컸는데, 가만 보면 한 순간도 한 사람도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 상황은 고정되는 법이 없으니까. 얼마나 많이 깊이 살아보는가가 삶의 내용을 바꾼다는 생각.

 

우리는 늘 누군가와 함께 존재해야 합니다.”

 

약사가 처방하는 약 중에는, 충분히 쉰 다음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추거나,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일도 있다. ‘손님이라고 부르지만, 이웃과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렇게 확고하게 미칠 리 없는 생각이다.

 

나이가 든 약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는 늙어서도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젊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도 있을지 모릅니다.”

 

남은 인생이 얼마 되지 않아서 앞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는 농담 같은 진담에 크게 웃었다. 불안과 걱정이 많고, 확률적으로 계산하면 어느 정도의 미래까지는 대비해야한다고 굳게 믿는 독자의 경계심이 조금 낮아진다. 어쨌든 살 수 있는 건 길게 봐야 하루뿐.

 

하루하루 오늘이 시작이자 끝과 같습니다.”

 

한동안 에세이가 안 읽혔는데, 멋진 저자의 글을 만나서 다행이고 읽을 수 있어 고마운 시간이 즐거웠다. 만나고픈 할머니 약사의 다정한 책... 강건과 건필을 바라며, 응원과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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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 일하는 나와 글 쓰는 나 사이 꼭꼭 숨은 내 자리 찾기
하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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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한 번쯤은 공들여 말하고 싶었다.”

 

계획대로만 산 삶은 아니지만, 익숙하고 협소한 삶만 편안하게 여기는지는 경계하려 한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의 반경은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인생의 테두리가 좁아지는 걸 살피려 한다. 그런 점에서 독서는 확장 기회를 주는 고마운 경험이다. 좋은 에세이는 비로소 인지 가능한 새로운 우주를 만나게 한다.

 

바쁜 사람이었던 나는 점점 나쁜 사람이 되어갔다. (...) 누구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절실했다.”

 

마트 노동자이자 작가로 살아가는 삶을 상상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직장을 다니며 혹은 다니다 작가로 데뷔(?)하는 일이 드문 것도 아닌데, 모두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면 이후의 생활은 어떻게 해나가는지를... 제대로 궁금해 하며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가 나에게 가까워질수록 세상은 내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당연한 듯 2-3인분의 과중 업무를 20대 노동자들에게 부과하는 방식의 고용, 그렇게 소모되는 방식이 아닌, 하고 싶은 글 쓰는 시간이 경력 공백이 되는 사회, IMF 시기의 마트 소비자 가족이 13년 후 마트 노동자로 근무하는 현대사의 흐름, 공간들로 구분되는 마트의 물리적 세계... 모르는 세상이 참 많다.

 

모녀로서 또한 마트 노동자로서 이해하고 짐작하는 엄마의 삶, 노동 시장이 아줌마라는 집단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작가의 시선으로 만나는 순간들, 상상을 뛰어넘는 진상 손님들, 마트의 고용 형태의 복잡성, 그리고 동료들. 많은 장면들이 2014년 영화 <카트>의 장면들을 소환하고 더 다채롭게 만든다.

 

무엇을 소비하고 무엇을 소비하지 않을지 선택하는 것은 한 사람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 마트는 그렇게 일상적인 공간인 동시에 정치적인 공간이 된다.”

 

독자일 뿐이라서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생각부터 한다. 작가로서의 삶을 지속시키는 바로 그런 일이 마트 노동이라면, 너무 고되거나 오래 일하지 않고도 생활을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이 이어지길 바라게 된다. 하현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 많을 것이고, 꼭 계속 글을 써주시면 참 좋겠다.

 

퇴근과 함께 끝나는, 절대 집까지 따라오지 않는 일. 작가로서의 삶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런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낯설면서도 생생하기 그지없어서 잘 읽히고, 달라서 많이 배우고, 솔직하고 예민한 관찰과 기록에 한참을 생각하며, 읽는 나의 삶을 살펴보는 하현 작가의 글을 또 만나고 싶다. 강건과 건필을 힘껏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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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리고 치유 - 슬픔을 건너는 매일 명상
M. W. 히크먼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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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애도는 언제까지인지 모르겠고, 느닷없이 발버둥 치듯 솟는 슬픔에 대개 속수무책이다. 가만히 지나가기를 기다릴밖에.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절실한 가만한 위로를 만날 듯하다.

 

상실이란 보편적 경험이라서일까. 서문의 문장들부터 그대로 내 일기 같다. 안도감이 든다. 이런저런 증상들이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불안해하거나 겁낼 일이 아니라고, 아직 일상회복을 못한 어머니의 상태도 함께 위로해줄 듯하다.

 

, 울어도 괜찮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도 정말 괜찮다. 혼란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도 괜찮다.”

 

명사들의 위로 모음집이 아니라, 상실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가 각자의 고군분투로 적혀 있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편안하다. 책임질 일이 가득이라서, 좀처럼 마음껏 뭘 할 수 없는 나이대인 독자에게 구체적인 조언보다 낫다.

 

남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행위는, 그의 슬픔을 다독인 방식이 내 상황에 맞는 방식이 아니어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거리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것이 글로 기록된 다정한 마음의 힘이 아닐까 한다.





 

물론 경애하는 작가들의 글을 읽는 반가움과 위안도 크다. 이전에 읽었을 때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구절들이 좋다. 책은 영원불멸이다. 완독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삶이 슬픔과 마주하는 일이 아닐 때까지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른 어떤 때보다 이런 아픔을 겪을 때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

 

상례를 치르면서, 가족, 친구, 친지, 지인이라는 이유로 함께 해주려는 이들의 다정함을 제대로 실감했다. 첫날에만 3백 명이 넘는 문상객들을 맞느라 황망한 중에도 남은 상례를 어떻게 버틸지 걱정이 스멀거렸는데, 내가 뭘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상례가 어떻게든 진행되도록 도와주는 이들이 언제나 있었다. 그 모든 마음이 거듭 거듭 감사하다.

 

이 책도 가만 읽다보니, 그 다정한 마음들과 닮았다. 슬픔이 갑자기 솟구치기도 하는 슬픈 이들에게, 어디를 펼쳐도 위로가 있는 책은 귀하고 고맙다. 차분한 초록 표지를 다시 본다. 자주 도움을 받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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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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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속으로 훅 빨려들 듯 도입부로 빠르게 착지한다. 사건이 막 시작되는데 가슴이 저릿할 만큼 재밌게 느껴진다. 살짝 죄책감이 든다. 죽음과 상실과 고통과 어두움이 짙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은밀한 죄악감조차 즐기며 긴장된 어깨로 조심스럽게 한 장씩 넘기며 문장을 아껴 씹듯 읽게 된다.

 

창에서 불어오던 후텁지근한 바람이 서늘한 기운으로 얼굴을 스치고, 순식간에 폭염을 식히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날씨조차 완벽하게 어울린다. 여름 향을 품은 사탕을 문 것처럼 감각적으로 즐겁다. 자신이 창작한 세계로 이토록 매혹적으로 초대하는 작가구나, 크리스 휘타커.

 

애쓰는 어린이를 응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작품은 빈틈없이 압도적인 필력으로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감정이입한 더치스의 나이에 가슴이 시리다. 작은 존재에 차오르는 슬픔과 상처와 아픔과 고단함이 아프다. 좋은 어른이 못 되었다는 미안함이 적지 않은, 나이만 성인인 독자라 더 그렇다.

 

내가 더치스 나이일 때는, 희망이 거짓처럼 느껴지는 괴로운 시기가 있다는 것, 어른들도 괴로워서 헤아릴 수 없는, 거미줄처럼 얽힌 상처가 숱한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워 자신도 어린이도 제대로 도울 수 없는 때가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어른들은 다들 삶의 비밀을 깨우친 멋진 척척박사들처럼 보였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도, 태어나보니, 성장에 필요한 부드러운 것이 부재하거나 부족한 상태인 채로, 희망을 품기도 전에 삶을 쉽게 깨버리는 일들이 일어난다거나,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없어서 어디든 매달려보지만, 기댈만한 것들은 죄다 부서지는 무서운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저보다 더 어린 동생을 지키며, 한 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10살 소녀의 피곤함에 내 밤도 불면의 등으로 밝혀지는 기분이었다. 어른들은 어린이들도 문제의 당사자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모른다. 더치스가 동일시하고 명명하는 지독한 증오와 폭력의 이름이 비명처럼 들린다.

 

살인사건의 범인 찾기를 어느새 잊고 나는 더치스와 로빈의 미래가 어떻게 전환될 것인지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두꺼운 책을 덮지 못하고 기도하는 기분으로 계속 읽는다. 이 이야기의 결말에는 아주 깊숙하게 숨겨진 슬픈 비밀이 있을 것 같다는 묘한 기대와 아릿함을 느낀다.

 

작은 몸으로 가능한 가장 지독한 저항을 하다, 더치스가 마침내 마음을 열고, 웃고, 얘기하고, 눈물을 흘렸을 때, 호흡이 잠시 편해진 듯 안도와 기쁨이 함께 왔다. 어쩌면 더치스의 이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 될 거라고, 긴장을 놓아도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달아나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불행하기도 인간은 빈틈이 많고 불완전하고 꼭 필요한 순간에 충분히 현명하거나 지혜롭지 못하다. 기대와 희망을 품어본 경험은 더 큰 상처를 입힌다. 중상을 입은 채로 더치스가 헤매는 길을 나는 함께 울먹이며 따라다녔다. 상처와 복수에 충분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작품에서도 현실에서처럼, 옳은 일이든 공정한 일이든 아무것도 분명하지가 않았기 때문에, 작품 속 인물들도, 독자인 나도, 더 찬찬히 더 오래 생각해본다. 복수가 이토록 슬프고 아프다면, 파괴적인 결과의 원인이 실수였다면, ‘다시일어나서 저 앞을 향해 발을 내딛어 보는 건 어떨까.

 

그 무엇도 정확하게 해명되지 못할 때, 아무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내 잘못이 아닌 이유로 내 삶이 다시 나빠지기 시작할 때, 정답 같은 건 존재하지 않고 조언이란 어리석고 우유부단하게만 느껴질 때... 이렇게 꼼짝달싹 못하는 때야말로 용서의 힘이 필요하다.

 

반백이 된 지금도 그 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억울하다. 그러니 쉽지 않고 섣불리 권할 수도 없다. 그러나 온갖 가정법 속에서 내내 증오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없었냐고 매번 윽박지르는 대신 상대를 용서할 수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저주에 갇힌 것과 같다.

 

범죄소설이란 장르 구분이 너무 건조하게 느껴지는, 온통 사랑으로 아프고 또 아픈, 읽는 동안 폭우처럼 가슴에 눈물이 흐르던 작품이다. 영상으로도 꼭 만나보고 싶다. 더치스와 빈센트와 스타와 워크와 다크의 눈을 오래 들여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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