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 현대 물리학의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한 도발적인 답변
자비네 호젠펠더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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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한계가 있고, 인류는 언제나 그 한계 너머의 의미를 갈구해왔다. (...) 다 괜찮다고 본다. 그들의 의미 탐구가 과학적 사실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말이다(중요한 건 이거다).”

 

물리학 공부를 하는 동안, 아이디어idea와 가설hypothesis과 이론theory과 법칙law의 차이에 대해서 배웠다. 설명력이 없는 아이디어들, 관측 계산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가설들, 수학으로 바꾸는 어떤 방법이 옳은지 말해주는 데이터가 없으면 과학적으로 유용하지 않다.

 

과학의 목적은 세상을 유용하게 서술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 설명은 단순할수록 더 유용하다.”

 

물리학에서 안다는 것은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물증이 반드시 요구되는 특성 상, 이론적으로 완벽해도 증거가 확보될 때까지 물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 중 일부들이 그렇다. 관측 가능한 천체망원경이 나타나기 전에는 진위를 입증할 수 없었다.

 

자연에 기반한 증거를 바탕으로 수립된 이론만 고수할 것이다. (...) ‘현재 우리가 아는 한에서는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이 책이 질문하고 답하려는 혹은 답이 충분하지 않거나 아직 모른다고 하는 내용들을 통독을 해본다. 어떤 질문은 내가 관심이 없거나 그 질문이 궁금할 만큼 아는 바가 없는 내용이기도 하다. 어차피 이 책은 내가 남은 평생 거듭 읽어도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재밌다. 부담도 없다.

 

세상은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답이 없는 라는 질문을 품은 채 남겨질 것이다.”



 

생의 반환점을 돈 독자로서, 이런 질문들의 정답이 언젠가 구해질 것인가 상상해보는 일은, 기후변화로 멸종할 것 같은 미래를 불안해하는 것보다 즐겁다. 운이 좋으면 결합이 끊어진 내 몸의 원자들이 다시 인간으로 결합하여 우리 우주의 첫 시작을 배우게 될 지도.

 

우리는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아니다. 우주 안에 든 물질 대부분(85퍼센트)은 암흑물질이고, 우리의 구성 물질은 암흑 물질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튼, 우리가 뭘 이루고 성취하든 결국엔 엔트로피 증가로 다 씻겨져 없어질 것이다.”



 

종교를 갖지 못해서 늘 아쉬웠고, 과학을 배워서 내내 즐거웠다. 시간의 비가역성에 관한 논문을 쓰고 졸업했지만, 아직 시간이 무엇인지 모른다. 우주 나이만큼 제정신으로 살고 싶지만 몇 십 년 안에 죽을 것이다. 짧은 생에 진지한 질문과 고민은 미친 짓일 지도 모른다.

 

이렇듯 여행과 공부는 할수록 내 존재의 하찮음을 가르쳐줬다. 거역하면 안 되는 소명과 미션이 없어서 해방감을 느꼈다. 덕분에 경계 없는 책 읽기가 즐겁다. 이 책은 수학식 하나 없는 재밌는 물리학 책이자, 물리학으로 설명하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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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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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부색은 나를 계급의 가장 낮은 단계로 내려보낸다. 다수에 속해 있음이 정상성을 정의하는 세상에서 내 피부는 확연한 비정상이었다. 장애를 가진 것과 다름없었다.”

 

몇 달을 소설에 잘 몰입이 되지 않아서 드물게 읽었다. 지식과 경험도 적으니 작품을 평가할 능력은 없지만, 수상작 중에 내게는 최고로 강렬한 작품이다. 문학 체험 같기도 하고, 사회과학논문을 읽은 듯도 하고, 현대사 이슈들에 대해 작가와 신나게 토론한 듯도 하다. #최고

 

인종주의가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라는 거였지. (...) 인종주의는 사람들을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어. (...) 이 시스템은 열등한 타자를 등장시켜 차별을 합리화하고 있는데, 서로를 공격하느라 진짜 적이 누군지 생각하지 않아. (...) 효과가 있다니까. 언제나.”

 

, 이렇게 실감나는 작품이 다 있는지 많이 놀랐다. 내가 만난 이 세계와 인물인데, 현실에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런 것이 진정한 창조능력인가. 조금만 읽고 천천히 읽으려 했는데 놓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재일의 다음 여정이 궁금하고 염려되어 애가 탄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곳에 속할 수 있는 현자가 아니었다. 나는 개인이었다. 작고 어린 파란색이었다.”

 

30쪽이 넘는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한 뒤, 문학도 허구도 이겨먹는 기막힌 현실을 떠올렸다. 인간이 다 만들었는데, 어떤 인간들은 교묘하고 강력하게 이용해먹고, 다른 인간들은 목적도 결과도 상상조차 못한 채 휘둘려서 서로 죽고 죽이는 문명. 결국엔 공멸할 듯한 어리석음.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최고의 상상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선량한 이웃으로, 이상적인 존재로 살아간다.

 

잔잔한 농담이 나를 찔렀다. 공기처럼 지나가는 경멸과 혐오가 나를 두들겼다, 흉터는 영혼에 남았다.”

 

바로 전에 읽은 흑인 소녀의 자전 소설 속 문장들과 같은 이야기를 만나서 망연했고, 더 이전에 읽은 사회학자의 탄식과도 같은 이야기를 만나서 불안감에 휩싸였다. 태어나보니 다수가, 정상이, 평범이 아니라서, 저주에 걸린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현실, 악당 한 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듣지도 않는 시스템과 싸워야 하는 막막함.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작년 어느 날에는 리얼리즘이 리얼리티를 못 이기는구나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만나서 그동안 삼킨 말들을 한 번에 다 쏟아낸 듯 후련하기도 했다. 밑줄 그은 문장들을 아주 큰 소리로 읽고도 싶었다. #강추

 

생각해봐요. 언젠가 (...) 피부색만으로 무지개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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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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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성 차별과 저열한 폭력에 망가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성장한 재일이라는 희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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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마야 안젤루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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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는 몰라서 못 읽은 한국어 초반본에 대한 아쉬움과 10년 늦은 애도를 담아 만나보고 싶은, 마야 안젤루Maya Angelou 문학의 힘.

 

여성이 자신을 위해 일어서는 것은, 모든 여성을 위해 일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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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의 흑인 여자아이에게 성장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라면, 추방당한 느낌을 의식한다는 것은 목덜미를 위협하는 면도날에 슬어 있는 녹이다.”

 

문학을 전공한 친구에게 소개 받은 몇 편의 미극 흑인문학 작품을 읽어서일까, 아는 바도 없고 접점도 없는, 1969년 흑인 여자 아이의 삶 속으로 이야기를 따라 빠르게 입장한다. 문학이 가진 힘은 신비롭다. 간혹 기시감을 느끼는 투명인간처럼 어린 소녀의 삶을 그 풍경 속에서 지켜보듯 읽는다.

 

개념어들은 때론 공허하다. 같은 테두리를 가졌어도 그 안의 내용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우울감이 다양한 신체적 증상을 보이듯, 차별 역시 경험한 서사가 다를 것이다. 일기장을 공개한 듯 더없이 솔직한 자전 소설은 어린 마야의 아직 내가 되지 못한시간들이 차별의 구체적인 기록이자 메시지이다.

 

부인 말로는 무지는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지만 문맹은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어도 대학교수들보다 더 아는 것이 많고 심지어 지혜로운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저주에 걸려 백인인 외모를 잃었다고 상상하는 일, 백인 작가의 작품을 애정하게 되는 일, 백인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일 등은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을 그만큼 더 늦추게 만든다. 주류가 아닌 지구상의 많은 이들이 그와 같은 소외와 박탈과 부정을 경험을 공유한다.

 

한 종으로서 인간은 그야말로 혐오 그 자체였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마야가 성장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들이 흑인이 아닌 다른 누구도 겪지 않는 일들은 아니다. 자전 소설이기 때문에, 일련의 갈등이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질주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발견이라는 성장 과정을 훨씬 더 차분하게 읽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순탄하기만 한 삶은 거의 없으니, 상처가 난 대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한다고 어느 날엔가 배웠다. 그렇다고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이들을 판단하고 싶진 않다. 다만... 성장기였기 때문일까, 놀라운 생명력으로 다양한 상처들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다 견뎌 내고 계속 살아가는 모습이 놀라웠다.

 

마지막 선택과 결말은 뜻밖이었다. 어머니의 반응도 놀라웠다. 아무도 이들을 끝까지 좌절시킬 수는 없어 보였다. 덕분에 마야의 삶이 책장 너머로 계속 이어지는, 창작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연속성을 느꼈다.

 

지금의 나는 새 장에 갇힌 새는 쳐다보기도 어렵겠지만, 노래라도 부른다면 듣기도 마음 아플 테지만, 거대한 시스템에 갇힌 채로, 태어난 사회에 맞춰 사회화된 채로 살아가는 모두의 처지가 그리 다르지도 않다. 그러니, 살아남는다는 것은,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놀랍도록 강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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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콰마린
백가흠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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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의의 시계가 종을 칠 때 당신의 무엇을 자를 것인가?”

 

아콰마린의 환상적인 색감을 표지로 착장하고, 국가폭력과 공권력에 의한 학살, 왜곡하고 조작한 사법기득권, 그렇게 멈춘 정의의 시계, 그렇게 지연된 정의, 비극과 진실, 상처와 용서를 다루는 기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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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콰마린은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빛이다. (...) 죽음으로 남긴 저 심해의 빛이다. (...) 결국 그것은 모든 빛이 빠져 죽은 바다다.”

 

아는 내용의 신화를 낯설도록 오싹하게 비극적으로 전하는 문장들, 도입의 느낌이 놀랍다. 평생 아름다워 보인 아콰마린을 침몰시키고야말 사건과 진실이 지닌 무게감이 어떻게 드러날지 두근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청계천과 잘린 손목과 미스터리 전담반 형사들이 무시무시한 기시감을 준다. 평범하지 않은 각자의 이유로 모인 팀원들에 대한 빌드업이 세심하다. 인물 사이를 오고가는 다소 느린 듯한 촘촘한 전개가 오히려 긴장감을 높인다.

 

용의자가 저 밖에 있고, 이쪽이 범죄를 추적 검거하는 설정이라면 가뿐한 속도감이 있을 것이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대화처럼, 기억의 부분처럼 슬쩍 드러나는 사연과 관계가 모두를 침몰 시킬 그물로 한 땀씩 짜이는 느낌이다.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을 것 같아서 뻐근한 느낌을 내쉬며 계속 읽어나갔다. 신화적 운명으로 해석된 얽힘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이 가하는 운명과도 같다. 필연적 결함과 한계에 기인한다. 공적 시스템은 해당 사회의 복잡성에 따라 지난한 기능 저하를 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결국 라는 물음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범인을 잡는다고 해도 사건은 여전히 미스터리가 된다는 것을 (...).”

 

가해자와 가해에 가담한 이들은 잊고 살기도 하지만, 희생되고 상처 입은 이들은 잊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돌려준다. 크리스마스카드에 적힌 성경 욥기의 구절을 전달하는 방식은 법적 처벌 이상의 복수를 예고하는 장치로 보인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복수라는 종교를 믿어요. 우리는 그 일부분이고요.”

 

도입에 등장한 잘린 손, 여성의 속옷, 잘린 양말 등은 부분적인 추리와 혼돈을 키우는 미스터리 장치들로 활용되지만, 진실은 기대하지 않은 반전을 통해 전모를 드러난다. 결국 과거의 모든 것이 현재를 만들었으므로, 과거는 사라지지도 잊히지도 않는다.

 

저는 셋 중에 첫째예요, 당신은 둘 중에 첫째고요. 이제 때가 되어서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영상물에서는 사적 복수를 그린 여러 작품들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 통쾌함은 현실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무엇을 보상해도 이미 늦어버린 건가 싶은 상처도, 당사자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살펴봐야 한다.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한 행동의 합이 현존하는 모든 것을 만든다. 기록되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 모두가 미래가 도착할 방향을 정한다. 그러니 위선조차 거추장스럽다는 듯 노골적인 혐오와 폭력이 권력을 얻는 상황이, 반지성주의와 무지성주의가 대세가 된 듯한 의견들이 두렵다.

 

두껍지 않은 책이 무거웠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길함이 읽는 내내 함께 했다. 작품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생각할 물리적 심적 여유가 부족하도록 강제된 삶이, 사유와 진지함이 조롱당하는 것이, 반복되는 비극이, 지난持難한 반성 없음이 모두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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