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는 농담
김현민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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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은 모순적인 데서 온다는데 내 삶이 딱 그러했다. (...) 슬픈데 웃겼고, 웃긴데 슬펐다.”

 

잊지 않으려고 해도 습관은 무서운 거라서, 살다보면 세상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망상을 하게 된다. 늘 인지하지 못하니 의사소통이 잘 될 거라는, 상황과 이슈에 대한 이해가 비슷할 거라는 기대를 무심결에 하는 실수를 거듭한다.

 

몰입이 필요한 소설이 잘 안 읽히고, 대중과학서가 가장 편한 독서의 나날 중에, 전혀 모르는 직업을 가진 전혀 다른 존재의 이야기를 읽는 시간은 잠이 깨는 효과를 주는 공부의 기회가 된다.

 

하나뿐인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꿈을 이룬 듯했다.”

 

저자는 SNL 코미디작가로 일을 시작했다. 그 꿈을 발견한 고등학생 시절에 어머니가 암에 걸려 돌아가셨다. 저자는 대학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대학을 배경으로 하는 코미디 대본을 쓰는 게 어렵다고 했는데, 독자로서는 SNL 프로를 시청한 적이 없어서 아쉬웠다.

 

순탄하고 즐겁게만 사는 이들이 몇 없으니, 웃음을 주는 대본이란 참 어려운 것이라고 짐작할 따름이다. 중간 중간에 아주 짧은 농담 같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저자의 대본의 느낌도 이럴까 짐작해본다.

 

어머니는 자신의 병과 죽음이 두렵고 힘드셨겠지만, 그로 인해 자식에게 섭섭함을 느끼셨을 것 같지는 않다. 짐작일 뿐이지만, 남은 가족이 어떤 죄책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애도의 과정이라 여긴다.

 

엄마의 얼굴과 내 죄책감의 농담濃淡은 점점 옅어져만 간다. (...) 내 인생은, 농에서 담으로 흘러갈 것이다.”

 

저자는 놀랄 일도 용감한 선택도 아니었다고 하지만, 학력이 전혀 필요하지 않는 분야에서도 당연한 듯 학력 차별과 위계가 엄존하는 게 한국사회다. 책에는 줄여서 썼겠지만, 창작의 어려움, 아르바이트, 고시원, 원룸, 맨션으로 시공간이 이동하면서 저자가 만들어 나가는 삶이 용감해 보였다.

 

고된 와중에도 팍팍해지지 않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혐오를 무기삼은 공격을 경계하고, 좋은 농담을 만드는 고민을 계속하고, 자신의 모순에 대해 잘 인지하며, 행복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려는 지향이 좋다.

 

코미디 작가인 나는 가끔 불편함을 듣기 싫어하고, 엄마 없는 나는 가끔 불편함을 들어줬으면 한다.”

 

타인의 삶을 읽는 시간은 내 삶으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타인의 고민에 집중하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고민들을 잊는다. 저자의 희망처럼 좋은 농담이 많으면 좋겠다. 웃을 일이 적을 때의 웃음은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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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농담
김현민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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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와중에도 팍팍해지지 않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혐오를 무기삼은 공격을 경계하고, 좋은 농담을 만드는 고민을 계속하고, 자신의 모순에 대해 잘 인지하며, 행복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려는 지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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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 빛과 물질의 탐구가 마침내 도달한 세계
그레고리 J. 그버 지음, 김희봉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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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다룬다는 멋짐, 물리학(광학)책 선물 받아서 설렜다. 인간의 시력은 대단하진 않아서 가시(可視)’광선 스펙트럼 내에서만 볼 수있다. 볼 수 없는 투명함을 연구한 내용을 만날 생각에 울울한 기분이 청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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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건 획기적인 것보다 차근차근 협업한 내용이 더 많은 거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상기했다. 광학을 배울 때의 내용들이 무척 상세하게 소개되고, 그 당시 교과서보다 재밌게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반갑게 읽으면서도 자꾸 웃음이 났다.



 

입학을 했을 때도 그랬다. 선택 옵션과 자율도 거의 없었지만, 대학교 1학년 1학기 첫 수업시간표를 짜고 나니, 고등학교 수업 시간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신입생이란 분위기에 들뜬 정신을 곧 차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다시 고전물리학 - 뉴튼역학 - 을 복습하고, 수리물리학으로 물리적 의미를 잃을 정도로 수학문제를 풀면서 살다가, 광학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 낯섦에 얼떨떨했다. 물리학자처럼만 생각하는, 내내 같은 옷만 입는, 진도가 늦으면 저녁 식사 후 보충수업을 지칠 때까지 하시는*, 그런 교수님들과, 만점도 없는 시험을 저녁에 시작해서 새벽까지 치르는, 5문제 풀이답안지가 10장이 넘는, 수업만 듣다가 보니 산뜻한 가벼움이 놀라웠다.

 

* 그 저녁 수업 들으러 가다 우리학교 물리학과 야간도 있었냐는 타학과 학생들의 질문도 받았다. 원서 물리학 책 한 권도 요즘 벽돌책보다 서너 배는 더 크고 무겁다. 그러니 배낭, 운동화, 포니테일로 착장하고 이동할 밖에...

 

그야말로 빛의 학문(광학, optics)은 실험시간에도 우리를 웃게 했다. 실험복이 허술해서, 레이저 실험하다 시력을 다친 동기도 있었지만, 눈앞의 세상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듯, 광학은 빛에 관한 놀라운 것들을 알려주며 새로운 눈을 작창 해주었다.



 

이렇게 향수를 느끼며 읽다가, 나는 몰랐던 광학과 물리학자들의 역사를 읽게 되어 이번에는 일단 크게 웃었다. 이렇게 진지하게 투명인간, 투명망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단 말인가... 착시와는 또 다른 투명함을 가능하게 하려는 갖가지 이론의 활용과 실험이 경이롭다.



 

좀 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투명함을 추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나, 이 책에 정리된 수많은 자료를 볼 때, 문학에서도 이렇게 추구한 남들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음이 인간이 관계와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절감하는 피로감 같아서, 은밀한 욕망을 확연히 본 것 같아서 애틋했다.

 

이 책은 충실한 광학 소개서이자, 역사서이자, 투명함에 대한 진지해서 웃기고 어쩐지 짠한 실험 기록서이기도 하다. 아주 재밌게 읽었다. 모르던 것들을 많이 배워서 즐거웠다. 관련 문학 작품 자료도 완전 반갑다. ‘에 관해 과학적으로 배우고 싶은 분들, 광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품격과 신뢰와 재미 모두를 갖춘 최적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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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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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오렌지색은 치유healing의 의미가 있다고 오래 전 들었다. 그래서 느긋하게 펼친 얇은 책이 얼마나 감정을 강력하게 휘몰던지. 다 읽고 일단 덮었다. 한 인간이 통제력을 잃을(혹은 버릴) 정도까지 몰아가는 상황이 만만치 않아서 나도 호흡이 달렸다.

 

이 독특한 책에서 SF의 설정은 한편으로는 너무 손쉬운 해법 테크닉처럼도 느껴지지만, 다른 한편, 인간관계가 얼마나 답이 없는지를 떠올리면 정말 다행이다 싶은 설정이다. 뇌수술로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일, 그리고 마침내 변화.

 

자유는 내게 낯선 폭력이고, 통제는 익숙한 폭력이었다.”

 

기시감과 현실감이 짙은 주인공 캐릭터에, 나도 억지로 웃고 억지로 사는 듯 마음이 무거웠다. ‘지긋지긋해란 말은 속으로 가만히 할 때가 있어서 동질감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일었다. 나는 고착되었으나 주인공은 다 뒤집었으니, 아무도 안 보는데서 크게 웃고도 싶었다.

 

맹랑하고 집요하고 불쾌하고 오만하고 자기 오류를 몰라보는 타인들, 그런데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없이 내 삶에 들어온 타인들. 지옥이다. 물론 그 지옥을 유지하는 데에는 주인공 영아의 노력도 크게 기여한다.

 

나는 쉬운 선택지를 택했다.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보다 일상에 모순을 다하는 일이 쉬웠다

 

사람마다 건드리면 폭발하는 지점이 다를 것이다. 몇 번을 참고 몇 번의 기회를 주며 관계를 유지해 가는지, 기준도 다를 것이다. ‘영아는 다소 극단적으로 참는다. 그래서 변화 이후의 모습과 상호 연관을 드러내는 결말의 충격이 더욱 선명하게 대비적이다.

 

4주후 영아는 예전의 영아로 살아갈까.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기억이 존재하는 한 똑같이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영아의 손에 들릴 것이 폐지인지 트로피인지는 모르나, ‘존중만은 내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독특한 제목만큼 색다른 설정과 질문을 더하는 결론을 갖춘, 허블의 SF 미스터리 작품이다. 곧 출간될 정식본에 담길 청예 작가의 말이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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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이문재 엮음 / 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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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없는 나는, 기도하는 법을 이문재 시인에게 배웠다. 가만히 눈을 감거나, 손을 감싸거나, 손을 모으거나, 누구의 이름을 부르거나, 초를 켜거나, 바람 소리를 듣거나, 걷기만 해도 기도가 되니, 하루에도 셀 수 없이 기도하는 기도쟁이가 되었다.

 

[오래된 기도]를 다 외운 줄 알았는데 적어보니 많이도 잊었다. 기도문과 시는 동의어 같기도 하다. 새롭게 만나는 기도문들을 이어쓰기 노트에 천천히 적어보고 싶어질 듯하다.




 

...............................

 



물리적으로 모든 존재는 시시각각 변하지만, 변하지 않았다고 확인되는 한시적인 것들이 있다. 시집을 펼쳐 읽는 동안, 변하지 않음이 살짝 부끄러우면서도 안도와 반가움이 들었다. 녹는점에 다다른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느낌을 주는 시들은 대개 예전부터 좋아하던 시인들의 작품이다.

 

이어쓰기 노트에 적기 전에 화면에 필사를 해본다.

 

그리고 제 발로 걸어들어온 것들은 아무것도 내쫒지 마셔요 어둠의 한자락까지 따라 들어온다 해도 문틈에 낀 그 옷자락을 찢지는 마셔요

 

- 나희덕, [해질녘의 노래] 중에서





 

노란 종달새(수우족), [인디언 추장의 기도시][나바호 인디언의 기도]는 예전과 완연히 다른 느낌이다. 그 시절 오만함은 고스란히 부끄러움이 되어 내 머리 위로 떨어져내린다. 내 기우가 모두 틀리지 않아서 서글픔이 몰려온다.



 

다시 전문을 외우기 시작한 내 기도 스승,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의 구절을 의지 삼아, 고개 들고 흐린 하늘을 잠시 보았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의 기도문을 밤의 기도문으로 정해볼 결심을 한다.

 

어느 날 닥칠 저의 죽음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겸허함으로

조용히 눈을 감게 하소서

 

- 이해인, [오늘을 위한 기도] 중에서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는 읽고 있는 지금이 21세기인 것이 무색하게 큰 웃음을 주었다. 기억하고픈 기도 내용들인데, 묘하게 냉철하고 냉소적이다. 이분의 시를 더 많이 읽고 싶은데 이름조차 몰라서 많이 아쉽다.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힐렐의 시에 크게 혼이 나고(?), 스물네 시간이 남았는지, 스물 네 달, 스물 네 해... 얼마가 남은 지도 모른 체 태연히 낭비하는 내 삶의 태도가 또 부끄러웠다. 시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게 인간을 깨우는 방식이다.

 

다 공부지요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 김사인, [공부] 중에서




 

그리고 내게 명상을 처음 가르쳐준 스승, 틱낫한 스님의 [화해]를 다시 만났다. 영어로 읽은 때처럼, 한글로 읽어도 눈물이 펑펑 난다. 나는 누구와도 이런 화해를 못할 깜냥인 것 같아서 서러워서 운다. 이번 생에는 이런 이해와 자비를 내 것으로 삼을 수 없어서 운다. 타인의 고통을 대개 외면하고 어려움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사는 것이 부끄러워서 운다.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포슬한 감촉의 시집이, 기도문을 엮은 고운 책이 반갑고 감사하다. 천천히 읽고 다시 읽고 더 천천히 적어보고 거듭 기도해 볼 것이다. 오늘은, 순전하고 간절한 많은 기도들이 세상을 뒤덮은 온갖 폭력을 멈추는 큰 힘이 되어주길 간구하며 잠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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