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 현직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뒤집어지는 인간관찰기
이도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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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이동수단이었다. 출근시간대 지하철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서, 압사의 공포를 느껴서, 관악구에서 서초구까지 3년을 걸어 다닌 적이 있다.

 

기관사의 고됨이 승객보다 덜하진 않을 것 같다. 더구나 지하철과 역사 서비스가 문제없이 이뤄지기 위해 함께 일하는 팀원들의 이야기가 엄청 궁금하다. 남들 뭐하고 사는지 듣고 읽는 것을 많이 좋아해서 몹시 기대 중이다.

 

저 노란 승차권 완전 반갑고 익숙한 세대다. 스티커 보다가 벌써 많이 웃었다. “백팩은 앞으로단지하철 각종 빌런들고치자! 청산하자!

 

* 요절복통 腰折腹痛 : 허리가 끊어질 듯하고 배가 아플 정도로 몹시 웃음. (=포복절도, 봉복절도)

 




.....................


 

급똥과의 사투를 벌인 기관사에게는 (...) 분명 어떠한 내적 성숙이 일어난다.”

 

급똥으로 시작하는 직업 에세이... 요절복통은커녕 울고 싶었다. 내가 과하게 진지하게만 상황을 받아들이는 건지, 유머감각이 없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읽는 동안 요절복통하게는 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얼마나 막막한 괴로움일지. 기관사들은 효과가 좋다는 지사제를 사서 먹기도 하고, 보라색 피멍이 들도록 응가혈을 자리를 누르며 비과학의 영역에 매달리기도 하고, 견딜 수 없는 순간이면 검은 비닐봉지를 씌운 쓰레기통에 해결한 후 선로에 투척하기도 한다. 그럼, 선로를 순회 점검하는 직원들이 관행적으로 치운다.

 

기관사실에 이동식 화장실 하나 마련해주는 게 인류 문명이 결코 해결하지 못할 과제란 말인가. 기관사들이 공통으로 겪는 이 괴로움이 전혀 해결되지 못한 채, ‘똥개기라 불리는 대기 기관사가 대신 운행해주는 방식이 반복된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더구나 기관사는 온갖 어려움과 괴로운 경험을 승객들에게 들키지 않고, “매일 정확한 시간에 늦지 않게 데려다 줄것이란 기대를 맞춰 살아야 한다. 지각하지 말아야하는 직장인들의 고충과 맞물리는 이런 환경은, 다 같이 제대로 된 인간대접 못 받고 사는 사회를 비추는 사례 같다.



 

이야기로 만나게 될까 가장 두려웠던 사상사고’, 아무리 다 알 수 없다고 해도,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운 일이다. 부디 더 나쁜 상황은 아니길 바랐는데, “사상사고를 겪은 기관사들의 자살 소식이 그리 드물지 않다고 해서 속상하고 슬프다.

 

기관사는 사람이 앞에 있다는 걸 인지할 후 비상제동을 걸고 간절하게 기적을 울리면서도, 사람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기에 빠듯한 시간이면 지하철에 의지한다. 적게 이용한 편은 아닌데도, 무심하게도 하루 종일 일하는 이들과 지하공간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개미굴 같다는 역사의 다양한 시설들은 물론, 문제가 생기면 다 같이 - 관제사, 역무원, 청소 여사님, 검수 직원 - 힘을 모아 주는 분들, 이 외에도 무탈하고 평범한 일상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많은 분들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만난다.

 

모두가 없으면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지하철은 기관사 혼자 굴러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불규칙한 돌발에 대처하며, 소중한 사람들과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하지 못하면서, 지하철을 움직이는 이들은, 자신들의 일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라서, 공공성과 정시성을 지키고 제공하려 급똥까지 참으며 일한다.

 

다 망가지지 않은 우리 사회는 이렇게 자신의 방향성을 가지고, 애쓴 모든 이들의 시간이 모여 만들어지고 변화해가는 것이다. 알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모르던 세계와 직업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더 많은 것에 감사하게 된다.



 

여행을 가도 부지런한 관광객이 아니라서 숙소 근처를 산책하는 것으로 족한 사람이지만, 다음에 부산을 가게 되면, 부산지하철 2호선을 괜히 타보고 싶어질 것이다. 여행에 책을 동반하게 될 것 같다.

 

! 다양한 에피소드의 일각(도 안 되는) 정도의 내용입니다.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다양한 인간 관찰기인 이 책을 다르게 만나 요절복통 즐기실 분들도 많으실 거라 짐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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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없다 - 교통사고에서 재난 참사까지, 무너진 시스템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제시 싱어 지음, 김승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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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사람들은 사고로 죽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과실로 인한 사고라고 발표가 난 사건들 중에는, 부주의 등이 문제가 아니라 사고다발 상황을 만드는 환경이 문제인 사례들도 적지 않다. 제시 싱어가 기록한 사고의 역사, <사고는 없다>에서 참고한 미국 사회의 통계자료들을 보고 크게 놀랐다. 짐작보다 사고 사망자 수가 컸다. *

 

* 20만 명 사망, 만석인 보잉 747-400 비행기가 매일 한 대 이상씩 추락해 전원 사망하는 것과 동일.

 

저자는 왜 예전보다 사고가 더 많아진 것인지, 왜 이렇게 흔한지, 왜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는지, 이런 증가 추세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 특히 가난한 주의 사고사율이 전반적으로 높은 현실을 볼 때, ‘사고란 무엇인가의 질문이 중요하다.

 

사고는 그저 불운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당신이 사고로 죽느냐 아니냐는 당신의 권력을, 혹은 권력의 부재를 말해주는 척도다.”




 

저자가 왜 사고가 없다라는 강한 주장을 했는지, 사례와 통계를 통해 살펴나가는 내용이 놀라웠다. 설득력이 커질수록, 우리가 자신의 실수과실이라고 자책한 사건들을, 권력자들이 개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강추

 

다른 연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사고만 인적 과실과 개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 증거가 있는 경우에도 - “근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를 보이는 점과, 이런 선입견을 강화하는 의견들은 목소리가 중시되는 이들의 반복적인 주장, 즉 근거 없는 확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 아니라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다 죽은 것이었다.”

 

모든 사고는 시스템적이지만, 어떤 시스템들은 그것을 우리가 이해하려면 (...) 사람 한 명에게서 한발 물러서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필수 기능과 조건들마저, 개인에게 책임과 비난을 전가하는 방식이 잦은 한국사회의 전례들을 떠올리면, 저자가 주장하고 입증하는 사실들과 여러 전문자들의 의견이 급진적으로 느껴진다. 기록이 생겨서 반갑고 미국사회를 대상으로 한 책이라 부럽다. #강추

 

어떤 약물 과용은 사고로 여겨졌고 어떤 약물 과용은 범죄로 여겨졌다. (...) 당신의 중독이 어느 쪽이 될지는 인종, , 권력이 결정했다. (...)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이 동일한 약을 소지하면 감옥에 갈 수 있는 점이었다. (...) 낙인은 사고냐 범죄냐만을 가르는 것이 아니다. 낙인은 사느냐 죽느냐를 가르기도 한다.”

 

사유가 곧 언어라는 점에서, ‘사고라는 명칭과 개념과 가스라이팅과 시스템의 문제를, 수많은 입증사례들과 선명한 결론을 읽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 소개할 수 없어서 정말 안타깝다. 이 책을 통해, 사례는 달라도 시스템의 문제는 유사하거나 동일한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너무 많은 사고와 책임지지 않는 참사’를 논의하고 연구하는 활동이 활발해지길 바란다. #강추

 




죽은 사람을 위해 책무성을 요구해 낸 이들, “사랑과 분노의 행동, 몸으로 막고 저항한 이들, 너무 많은 상실과 분노은 미국에도 많지만, ‘아무도 더 이상 죽지 않도록애쓰고 희생을 감수한 분들은 한국에도 많다. ‘사고가 예측과 예방이 가능한 것이라면반드시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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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로 만든 세상 - 은행개혁과 금융의 제자리 찾기
신보성 지음 / 이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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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제도는 한마디로 실패한 제도다. (...) 한결같이 그 끝은 파산으로 귀결되었다. (...) 오죽하면 은행파산을 뜻하는 bankruptcy란 단어가 파산 전체를 아우르는 용어로 쓰이고 있겠는가.”

 

평생 읽은 책 중에 가장 낯선 책이다. 금융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공부해본 적도 없다. 그래서 무척 재미있었다. 책의 구성이 좋다. 핵심 질문을 하면서도, 금융 관련 기본 지식도 제공한다. 은행의 역사, 현대 은행 이론, 은행 위기, 은행 규제 등의 내용들을 덕분에 배웠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금장의 금고에서 주화를 넣었다 뺐다 하는 대신 보관증을 주고받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말이다.”

 

은행의 역사는 여타의 다른 역사서와 같이 흥미롭다. 은행 이론은 좀 더 낯설지만, 저자가 주류적 시각과 달리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구분하기에 유용한 배경 지식이다.

 

은행이 예금으로 받은 돈을 대출한다는 생각은 은행제도를 잘못 이해하는 것misconception이다. (...) 대부분의 대출은 예금 유입 없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은행을 (...) 신용창출기관credit creation institution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어느 분야라도 개혁은 어려운 일이고 저항은 거세다. 금융과 은행제도의 개혁이란 인류 문명의 최강자들에 맞서는 일이다. 저자는 은행산업만 자신의 경쟁력이 아닌 지원에 힙입어 생존하는 특권에 대해 질문하고, “은행이 특별하다는 허구적 신화를 밝히고자 한다.

 

은행의 수가 급증하고, 신용팽창과 자산버블이 절정에 달하면 결말은 극심한 불황이다. 10년 주기로 반복된 은행 위기가 대공황이 역사에 기록되어있다. 개혁의 대상이나 처벌과 변화 대신 안전망을 선물 받은 금융권의 위기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이른다.

 

세계 경제는 이미 부채의존경제 한가운데 진입해 있다.”



 

저자는 금융 부문의 착시risk illusion이 무엇인지, 금융이 어떻게 실물경제를 갉아먹고 있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더 큰 문제는 부채 양산을 통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생존과 직결된 기후문제의 근저에 현대 은행제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과도한 탄소 배출은 과도한 생산 활동과 과잉소비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야기하는 것이 과잉금융이다. ,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잉금융의 폐해를 알아야한다. 저자는 이 해결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다른 문제의 해결은 영여 불가능하다고 본다.

 

과잉금융은 인류의 존속까지도 위태롭게 한다. (...) 인류의 삶에 기여하지 못하는 생산 활동으로 환경파괴가 심화되고, 이에 따른 기후변화는 점차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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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말들 -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조소연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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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서 혹시 발견될 무례나 오독은 순전히 제 무지와 무능력에서 비롯된 것이지 의도는 없습니다.

 


말을 잃고 숨을 들이키게 되는 쓰기의 출발 - 어머니의 자살 - 이다. 읽을 수 있을까 질문했고, 고민했고, 자주 멈췄고, 한참 펼치지 못했다. 다시 펼쳤고, 약간의 어지럼증과 감정적 동요를 느끼며 끝까지 읽었다. 내 손가락은 마지막 장을 넘길 때도 떨렸다.

 

저자는, 나의 이야기는 당신에게 가닿기 위해 태어났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 부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언어, 당신의 말, 당신의 몸으로 들려달라.” 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닮은 형태로는 들려줄 수 없을 듯하다.

 

여태 그랬던 것처럼, 도무지 성장하지 않는 나를 안타까워하는 방식으로, 친구가 되지 못한 관계를 애틋해하는 일은, 어리광이나 투정처럼 가능하겠지만……. 아직... 인지, 영원히 불가능한지... 도 모르겠다.

 

이 책은 감정의 토로나 불행의 회고가 아니다. 결연한 방식의 복원이고 고발이다. ‘우연히그 시절에 태어나 우연히그 환경에서 살아가느라 부서지고 망가진 사람의 복원이고, 그렇게 만든 거대한 것들에 대한 고발이다. 헛되이 기다리던 구원자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저자가, 딸이 썼다.

 

가정도, 종교도, 윤리도, 법도 지켜내지 못한 내 어머니의 삶은 어디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일까?” *

 

* 수치심: (...) 여성의 성적 수치심은 힘에 의해 뭉개지고 압살된, 분노, 불쾌, 아픔, 억울함에 가깝다. 여기에는 부끄러움과 욕됨, 더럽혀짐, 깔보임, 굴욕감을 느끼도록 강제되는 사회 문화적 제도의 존재가 내포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이 단어가 여성에게 가해져 온 모든 성적 억압과 폭력의 역사를 함의하는 상징적 의미로서 사용된다.

 




저자의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온통 몰입했기 때문에. 자식들은 생존하고 교육받을 수 있기도 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힘들고 아프기도 했다. 나는 내 어머니가 그런 유형이 아니라서 빚진 기분이 없어서 고맙다고 생각했지만, 내 생존과 성장에 내 어머니의 몫과 덕분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내 애정은 얕아서, 초혼招魂과 같은 의식을 이토록 깊은 애정으로 치러낼 수 없을 것이다. 그 애정이 자신의 회복과 다른 아픔들 속에 갇힌 다른 존재들의 목소리를 더하며 나아가는 흐름이 깊은 바다에 도착한 서늘한 물빛 같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보고 싶었다.

 

자신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속에 자리한 무수한 타자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타인의 슬픔은 가닿지 못할 영원한 불모의 땅이 될 것이기에.”

 

살기 위해 글을 쓴다는 적지 않은 고백은 과장도 허언도 아니다. 쓸 용기가 없는 나는 평생 내가 들어선 구덩이를 제 손으로 더 깊이 파는 어리석음을 반복할지 모르겠다. 저자는 깊은 슬픔의 구덩이도 깜깜한 고통의 터널도, 글자를 새기고 문자를 디딤돌 삼고 쓰기를 빛 삼아 빠져나왔다.

 

기억을 언어화하는 일은 내가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영화처럼 그 끝에 온통 밝은 행복이 가득하지는 않겠지만, 저자는 생존 도모가 아닌 온전한 삶을 살 것 같다. 내가 쓴 어떤 표현들이 혹 무례가 될까 불쑥불쑥 불안이 짓쳐들지만... 썼다. ‘써야만 했던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누구의 고통도 깊어지지만은 않기를 바란다.

 

문학이라는 것은 오래도록 울부짖기 위해, 음악이 될 때까지 비명을 내지르기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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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 - 관계 지옥에서 해방되는 개인주의 연습
쓰루미 와타루 지음, 배조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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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든 친절하고 여유로운 인간관계로 갈아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목표다.”

 

대체로 문장 길이가 짧고 간결하고 직선적이고 서슴지 않는다. 단단한 생각이 느껴진다. 주제도 사례도 결론도 제안도 아주 많다. 그 점이 안심이 된다. 이렇게 많다면 모두 동의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당연한 것, 뻔한 것, 너무 많이 들어서 아무 설득력이 없는 것, 여전히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것 등등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아니라고 한다.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이 불안하면서도 좋다.

 

힘이 강한 쪽, 다수인 쪽을 기준으로 인간관계를 맺지 말자. 어리석은 군중의 꼭두각시로 사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의견은 아무리 설득력이 있어도 동의할 수는 있지만, 따라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 점이 매번 좀 서글프기도 하지만, 만병통치약 같은 걸 찾는 은밀한 바람은 나의 게으름을 드러낼 뿐이다.

 

다만 분명한 건 친구든 가족이든 나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관계라면 없는 편이 낫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자신이 경험한 어려움을 회고하는 내용은 감정적이지 않고 분량도 많지 않다. 그 담담함이 저자가 그 시절과 관계로부터 벗어나와 산다는 증거 같다. 물론 그 시절에 배운 것들이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일부를 이룬다.

 

나답게 있을 수 없는 집단에서 살아간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괴로운 일이다.”

 

일본의 상황을 잘 모르지만, ‘관계를 이용한 공격이란 문장은 참 아프다. 물리적으로 가깝고 심리적으로 친밀하다면 상처가 클 것이다. 저자는 인간관계를 마음의 거리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보는것을 거듭 강조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는데 인색한 사회일수록 남과 다르고 싶고 다르고 같은 척 연기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살기에 어렵다. 저자의 제안처럼, “조금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집단이라면 내가 먼저 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지면 좋겠다.

 

생각하는 관계의 미학을 떠벌리고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소통하는 데 있다. 진짜 우정은 과시하지 않는다.”

 

저자가 정의하는 우정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기억은 미화되었을 것임에도, 기대와 달리(?) 늘 이상적이고 즐거웠던 장면들만 떠오르진 않는다. 예전에도 지금도 개인에게 선택의 여지는 얼마나 온전히 주어지는 건지... 조금 슬프다.

 

물론 이건 다 비겁하고 겁쟁이인 내 변명이다. 저자처럼 확실하게 말하고 그에 따라 많은 것들을 바꾸고 살 지는 못할 지라도, 책을 읽고 배운 것들이 언젠가 꼭 필요한 근력이 되어 줄 거라고 기대한다.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자주 통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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