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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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내가 헥사에서 일한 수개월간의 경험을 말해줄게요.”

 

소설인데, 중대 발표문을 듣는 것처럼 입 꾹 다물고 문자에서 전해지는 육성을 들었다. ‘유해게시물을 분류하는 기준들이 너무나 세세해서 오히려 그물의 구멍이 넓게도 느껴진다. 문득 내가 생각한 유해성과 법에서 규정한 내용이 어떻게 다른지 한국의 상황이 궁금해지곤 했다.

 

애초에 왜,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아셔야 할 것 같아요.”

 

주인공이 입사한 회사의 사례들을 읽으며 때론 심장이 격해져서 피가 어디론가 솟구치는 기분이 오가곤 했다. 중간 중간 책갈피를 잠시 끼우고 눈을 떼고, 이건 사실이지만 소설이라고 이상한 격려를 자신에게 했다. 슬프고 아픈 이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걸까. 얼마나 방치되는 걸까.

 

하루 종일 유해게시물과 관련 단어들을 삭제하는 이들이, 차별주의적인 유머를 사용하는 것은 소설이라 더 현실감이 있는 아이러니다. 윤리와 도덕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서 PC에 대한 지독한 비난을 농담 삼아 하는 이들이 있듯이. 더구나 자극에 무감해진 그들이 더 자극적인 영상을 찾는 이야기는 문제의 복잡성을 더 잘 느끼게 한다.

 

그냥 더 이상 인간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뿐이야.”

 

유해게시물이 생성되는 속도와 분량만 따지다보면, 세상에는 이런 게 너무 재밌거나, 구매자가 너무 많아서 엄청난 자본이 유통되거나, 인간관계에서 신뢰란 어떻게 신뢰받을 수 있는지 정신이 멍해지곤 한다. 규정에 따라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위험 신고를 하는 직업이 생겼다는 건 개선일까 광기일까,

 

그 금요일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고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를 말씀드릴게요.”

 

영리한 작품은 일상적인 듯 무심하게 전개되면서, 서서히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는 경계를 어느새 허물고, 독자는 천천히 중독되어 호흡이 거칠어져서야 유독성을 깨닫게 된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버추얼 세계는 필요 없을 만큼,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세계는 어느새 경계를 허물었다.

 

내가 아는 한 너무 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이에요. 아니, 오히려 너무 별 게 없었죠.”

 

삭제자와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도 마찬가지다. 매일 유해게시물을 보고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정신건강을 지켜야할까. 이렇게 짧은 소설, 작은 책에서 두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큰 경고음을 듣는다. 나는 점점 더 무섭다. 단순하고 폭력적인 발언이 힘을 얻는 현실이, 정상과 비정상이 굳건하게 분류되는 사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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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심 -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경이의 순간은 어떻게 내 삶을 일으키고 지탱해주는가
대커 켈트너 지음, 이한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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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e’라는 단어를 신기해하고 좋아한다. 'some' 적당하면 좋지만awesome, 'full' 가득이면 곤란하다aweful. 읽기 전엔 경외심이란 특별한 놀라움을 목격하고 인간이 겸손하게 두려움을 느끼는 정서라고만 알고 있었다.

 

어릴 적엔 우주의 비밀 같은 것을 주로 떠올렸지만, 지금은 다른 'awe'에도 관심이 많다. ‘경외심을 과학으로 학문으로 다룬 책,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즐겁고 행복하게 읽을 기대에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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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던 세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신비를 마주하고 경외심을 느꼈던 때는 언제였나요?”

 

예상대로다. 이 책은 경이에 대한 다채로운 재밌는 연구들과 이야기들로 가득했고, 나는 스물다섯 장의 필사 앞에서 좌절감을 느꼈다. 잘 정리할 자신이 없어서 그렇고, 스물다섯 장으로는 제대로 소개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

 

우선 경외심이 종교적인 체험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정리해줘서 가장 기쁘다. 처음부터 내게 부재했던 종교적 경외심을 제외하고, 과학을 통해서, 타인을 덕분에, 음악과 미술과, 구도에 다르지 않는 치열한 고심을 통해 얻은 작은 통찰들에서 느끼는 경외감이 번듯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행복하다.

 

경외심이란 세상에 대한 기존 이해를 뛰어넘는 거대한 무언가와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 우리가 삶의 거대한 신비와 맺은 관계에 대한 정서다.”

 

경외혹은 경외심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도, 왜 다루는지, 왜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지, 경외심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이런 질문들에 나처럼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재밌는 교과서같이 반가울 책이다.

 

경외심의 종류도 다양하고* 사람에 따라 반응의 양상도 그럴 것이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경험은 내겐 없지만, 흔한 표현인 것으로 미루어 그런 경험을 한 부러운 이들도 많은 듯하다. 내게 가장 흔한 경험은 심장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느낌인데, 나이가 드니, 경외심의 효능(?)도 다양해졌다.

 

* 경험담들은 경외심만의 특정한 분류체계로 유형화될 수 있다. 삶의 여덟 가지 경이.

 

감탄과 자각과 절감과 행동양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그런 계기가 어리고 젊은 날에 내가 느낀 경외심이 내게 미친 영향이었다면, 지금은 주로 구원과 도움을 받는다. 특히 평생 소리에 민감했고, 청력은 약화되어도 감각은 더 예민해지는 이 불편한 시기에, 어떤 음악은 내게 비상약처럼 치유와 진정의 효과가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조성진의 연주를 듣고 있다. 아니 독서를 위한 처방책처럼 도움을 받았다. 수십 수백 번 들은 연주가 많다. 평생 처음 단 한 순간도 불편하지 않은 연주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경이롭고 경외심이 든다.

 

다른 연구들도 인간은 경외심을 느끼면 기본 상태의 자기가 사라지면서 (...) 경쟁적인 마음가짐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 상호 의존적이고 협동적인 개체들로 이루어진 관계망의 일부임을 지각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흥미로운 내용은 경외심이라는 정서경험을 한 후,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이다. 세상을 보는 방식이 변하고, 행동이 바뀌고... 언어도 아닌 경험이 이 정도의 힘을 가졌다는 것이 경이롭다.

 

그런 경험을 한 이들은 그것을 전하고 싶어 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아름다운 유산들은 전해주려 애쓴 이들이 남긴 것들이다. 나는 그 노력 자체에 경외심이 든다. 쓰레기 말고 나도 무언가를 남겨줄 수 있기를.

 

거듭 예상대로 잘 줄여 소개하기가 안 된다. 17장 필사를 앞에 두고, 환기를 위해 책에서 소개받은 경외심 걷기awe walk”**를 하러 나간다.말이 거창하지 사실은 그저 걷기 명상, 순례, 등산, 배낭여행, 저녁 식후 산책 등에서 경외심을 찾던 보편적인 인류 전통이란 설명에 행복하다. 바로 따라할 수 있는 오래 하던 걷기.

 

매번 새로운 존재를 마주하고, 변화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걸으러 나가는 행위자체가 경이로운 존재 방식이다. 다른 존재들이 살아가는 풍경은 늘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타인이든, 인간 아닌 존재들이건 다를 바가 없다.

 

보드라운 바람이 불어오면, 나는 늘 편지를 받은 듯 반가운 기분이 든다. 저 바람 속에 섞인 수많은 소식들, 나 이전에 살았던 수많은 존재들. 호흡이 신성한sacred 이유 중 하나는 지구 역사의 증거이자 흔적이자 어쩌면 새로 탄생할 생명들의 여행 같은 이 공기를 마시고 내뿜기 때문이지 않을까.

 

산책하면서도 여러 문장이 떠올라 즐거운, 이렇게 재밌는 심리학(?) 책은 처음이다. ‘경외심을 공감하는 많은 동료 독자들이 생기면 좋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울 것이다. 온통 경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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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바깥여름 - 12g, 7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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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 시작... 무(물)더위에 겁이 나는 겨울사람이 위안 삼아 주문한 ‘바깥여름‘의 향과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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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번째 우주
김아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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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번째인지가 엄청 궁금하다.* 게다가 시간의 비가역성으로 논문 쓴 물리학 전공자라서, 불가능을 가뿐히 넘은 문학에 늘 관심이 크다. 재미는 물론이겠지만, 온갖 안타까운 감정들도 가득할까. 과거로 가고 싶은 가장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 8번째 세제곱수, 2번째 아홉제곱수. 다른 인물인 지수의 평행 우주는 536,870,912,623,489개다.**

 

** 제곱근을 계속 구하다보면 최종 ‘1’이 된다. 작가가 특별한 수학적 의미를 두고 찾은 숫자들인지 완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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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만 자전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잊고 있었다. 모든 천체가 각기 다른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듯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궤도를 그리며 살아간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척이 다른 우주에서 온 사람이라면. 취업도 주선해주고 덕분에 자신도 다른 우주로 넘나들 수 있게 되었다면. 선명하고 대립구조가 전형적이지 않은 설정의 SF문학이다. 대신 질문들이 깊다.

 

그렇지만 곧 알게 돼요. 다른 선택을 했다 한들 그 이후의 삶도 내가 기대한 만큼 완벽하지 않다는 걸, 결국 그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20대에 들은 말 중에, 내 세계관을 가장 크게 바꾼 것은 “Intelligence is larger than reality”였다. ‘인간이 최고란 의미가 아니라, 지성이 상상한 것을 현실로 만들고 확장한다는 뜻이다.

 

나는 잠시 현실감을 잃고 발밑이 불안정하기도 했지만, ‘지금 만들고 있는 것 이외에 다른 현실은 없다고 생각하니, 내가 가질 세계에 대한 태도를 확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식이 존재를 결정합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면 나의 평행우주는 그저 가능한 상태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사실 이런 역학은 무섭기도 하다. 숙고하지 않은 선택과 인식이 없을 리가 없다. 책임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따르고, 생활공간이 평행 우주()이 되면, 책임도 그만큼 커지게 마련이다. 말조심하며 살아야지…….

 

근본적으로 내재한, ‘죽음의 공포’, 그 결과로 구현된 인류 문명, 각자의 욕망과 기대와 선택과 결정으로 얽혀드는 관계, 그렇게 멈추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하는 각자의 우주. 나는... 가능하다고 해도 시간여행은 안 할 듯하다.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가능한 최악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삶은 삶을 가장 덜 인식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하지만, 나는 (계속 변할지라도)이 현실이 가능한 최선의 세계라고 믿기로 했다. 애쓴 분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다.

 

기억도 다 못하는 이전의 나의 선택들이 누군가의 생과 사에 관여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두렵다. 이 책의 메시지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갖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을 진 하늘처럼 애절하고 포근한 정서가 흐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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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루프 창비교육 성장소설 11
박서련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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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련 작가의 청소년 소설은 처음이다. 전작들에 미루어 기대와 반가움이 크다. 작가 자신이 청소년, 고등학생일 때 쓴 작품도 있고, 표제작이 로 표기된 이유가 엄청 궁금하다. 청소년 문학 팬인 중년 독자라 기쁘고. 아이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작품집이 감사하다.

 




 

특정한 하루가 구간 반복되는 상황. 이럴 때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루프를 빠져나가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무인도에 갇혔을 때 무수히 같은 하루가 반복되다가 딱 하루, 구조선이 지나간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탈출할 수 있는 것처럼.”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책을 읽는 시기는 아니지만, 사회적 참사를 접한 월요일부터 충격과 슬픔이 화가 되어 차곡차곡 쌓이는 기분이라서, 이번 주 독서 대피는 해독으로 삼았다.

 

계획대로 안 되어도 상관없는 독서지만, 정말 해독 작용이 있어서 고마웠고, 살짝 부끄러운 기분이 들 정도로 작가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작품 구성이라 재밌었다. 박서련 연대기를 만나는 기분. 구성도 독특하다.

 

소설이든 시든, 말미에 붙은 작품 해설과 평은 거의 읽지 않고, 하루 빨리 책에서 빠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작가의 말이라 거부감이 없다. 다 잊은 시절과 기억을 일부 되살려준 문학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덕분에 기분이 유순해진다. 말도 조금 덜 뾰족해지고 옆구리와 명치 등등 욱신거리는 느낌도 풀리려나. 선물 받은 다른 청소년 문학 책도 펼쳐 읽어야겠다. ‘표준성장도같은 건 없지만, 그 시절 못했던 성장을 지금 조금 해보는 것도 좋네.

 

그 시절 그리고 지금,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 ‘사귀는 이유도 다시 생각해보고, ‘잊지 않겠다고 하고 잊은 기억과 시절도 상기해보고, 떠올리면 마음이 잘게 잘게 부서지며 떨리는 어린 시절 명절도 생각해본다.

 

늘 모자라는 건 자원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조금 울고 싶어져서, 말할 수 없이 귀여운 작품 [엄마만큼 좋아해]를 다시 펼쳐본다. 2010년 어느 날, 2006년에 태어난 아기가 어느새 성장해서, “제가 겁은 많지만, 막상 해보면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요라고 한 놀라운 순간이 생각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도와줄까?”라고 너무 빨리 묻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아주 많지만, 가장 특별한 점은 고등학생 박서련이 쓴 작품들이 있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후감이 가장 찡하고 길었다. 몸과 감각 이야기에 집중하는 작품이라서 더 그런 것도 같다.

 

청소년들은 물론, 성장보다 노화가 빠른 중년에게도 참 좋은 작품들이다.

 

결핍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 사랑은 꼭 필요하다. 사랑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을 긍정할 근거가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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