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되어 줄게 문학동네 청소년 72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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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에게 할머니의 손녀가 아니라 딸로 살아 봤어야 한다고, 엄마의 어린 시절을 상상도 할 수 없을 거라고, 그 야만의 시대에서 너는 잠시도 못 견뎠을 거라고 종종 말했다.”

 

따뜻하고 재밌는 가족 영화 스크립트를 읽은 것 같다. 모든 이들의 관계가 삶이 이해가 이렇게만 뚝딱이다 잘 풀리기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해서 조금 슬프기도 했다.

 

다 잘할 수 없는 우리, 완벽할 수도 없는 우리, 그래도 기꺼이 제목처럼 상대를 헤아려보는 노력은 정말 중요하다. 물론 아주 어려운 일이라서, 이 작품의 설정처럼 몸과 영혼이 바뀌는 직접 체험이 아니라면, 결국엔 오해와 시행착오가 늘 수도 있다.

 

나는 엄마가 말했던 그 야만의 시대로 온 것이다. 상상도 해 본 적 없던 엄마의 어린 시절, 할머니의 딸로.”

 

이렇게 쓰는 동안에도 가까운 이들을 잘 모르고 이해가 부족한 자신에 대한 생각에 낯이 뜨거워지기도 하지만, 우리 집 꼬맹이가 중1이라서 더 궁금했던 요즘 중1의 학교와 교우 생활을 실컷 볼 수 있어서 기분이 든든해졌다.

 

가족이라고는 딸랑 셋. 그런데도 나는 두 사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다들 애를 쓰면 살지만, 애석하게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사랑과 신뢰가 있으면 관계가 크게 엇나가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잘 모르겠다. 엄마가 나를 가르치고 도와주고 잘 키우는 것 말고,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사정이 천차만별이고 상황은 늘 바뀌니까 모든 말이 조심스럽지만, 어쨌든 거듭 애써보는 것이 태어나 우리에게 걸린 주문이다. 나도 어릴 적 어른들이 참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그 나이가 된 내가 더 당혹스러웠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며 사람들이 점점 늦게 철드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냥 계속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태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윤슬이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거겠지.”

 

청소년 문학이지만, 읽고 나니 더 많은 구원과 도움을 받은 이들은 모두 어른들이다. 아니 그 시절에는 청소년이었던, 젊었던 어른들이다.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만 사람에게서만 구원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윤슬이는 윤슬이의 시간, 윤슬이의 공간, 윤슬이의 인간관계를 만들며 자신만의 세상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는 중이다. 그걸 잘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기다리고 돕는 게 내 역할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떠나보내려고 시작하는 관계가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을 알면서 모든 것을 쏟아붓는 관계가 또 있을까.”

 

인간이 가진 초능력 중에는 정의도 해석도 어려운 사랑이 있다. 몰라도 잘 활용하면 충분한. 좋아하지는 않아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을 만나고 나니, 기왕이면 이번 삶을 함께 사는 이들을 좀 더 좋아하고 싶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좋아한다고 믿게 됐다. 그거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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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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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을 쓰게 될 것이라고 하셨을까. 늘 작가 이름만으로 반갑게 읽게 되지만 매번 픽션을 논픽션으로 읽게 될 만큼, 똑바로 봐야 할 것들을 봐주는 법 없이 담는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고, 그래서 기대가 더 크다. 여덟 편!

 



 


반한 상대에게 다시 반하는 일은 책을 읽으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홀려들 만반의 준비가 된 마음 상태였을 지도 모르지만, 인간이 낯선 것을 갈망하는 피상적인 존재라는 걸 감안하면, 경애는 언제든 실망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표제작의 첫 장을 펼치고 다음 장까지 내리 울먹이며 읽었다. 먼저 읽은 친구가 오랜만에 퍽퍽한 일상에 심금이 울렸다고 했는데, 나도 울려대는 심금에 울면서, 이래서 어떻게 다 읽고 뭘 쓸 수 있을까, 와중에 그런 고민을 떠올랐다.

 

엄마, 나는 너무 외로워. 아무리 울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내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도 손해 보지 않는 정도로만 타인의 비극에 공감하고 애통해하고 간단한 후원으로 마무리하는 행위들의 기억 저편에 아직 멈추지 못한 전쟁이 있다. 그 사이에 전쟁이라 부르는 학살은 더 늘었다. 선언도 공표도 비난도 받지 않는 다른 전쟁들도 각국에서 인간을 망가뜨리고 죽이고 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외면하며 생존을 도모하고 살았다.

 

엄마는, 전쟁을 세 번이나 겪고도 신을 믿는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전쟁을 두 번이나 겪고도 내세를 믿지 않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문자로 펼쳐지고 문장으로 재구성된, 인류 최악의 발명인 전쟁은, 유려해서 더욱 두려운 진술 같다. [쓰게 될 것]은 고작 2022년에 발발했던, 고작 기억하는 게 버거워 벌써 잊고 싶었던 시간을 세세하게 들추어낸다.

 

신을 믿는 자들은 전쟁을 구원이라고 했다. 더 많은 살상이 승리이자 착한 행실이라고 주장했다.”



 

첫 작품에 기진한 건 맞지만,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서 매일 한편씩 다 읽었다. 표제작만큼 휘둘리진 않았지만, ‘ㅊㅅㄹ이란 자음을 보면서 그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 나를 심각하게 고찰했고, 기성세대라서 탄소 문제를 언급하는 작품을 만나 또 부끄러웠고, 지금의 문명이 망하는 날이 오면, “역사 수업에서 배운 것을 다 경험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지혜에 매달려 생존하게 되는 건가, 갈수록 커질 재난에서 탈출할 방법을 잘못된 지혜로 해결하려고 헛된 노력을 하는 건가, 앞날이 더 아찔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인간의 쓸모]를 묻는 작품에 또 사로잡혀서, 복잡한 질문들에 허덕이며 즐겁고도 괴로웠다. 셰어런팅*에 대한 반감과 우려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지라, ‘써야할 것들을 써주는 작가에게 새삼 정신을 조아려 감사를 올렸다.

 

* Sharenting: share + parenting. 자녀의 일상을 SNS에 올리는 행위.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이 만든 말.



 

챗봇이 뭐든 다 대답해주는 세상에서, 학교는 혐오 시설이 되고, 다수가 믿는 건 거짓도 진실이 된다. 지불가능하다면 유전자 가위질이 당연한 세상에서, 미래 성장도를 제공받는 사회에서, 양육자는 아이의 성장을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대신 그들이 잃은 것은 생각하는 법미래.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쓴 단편소설들인데,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런 경향은 보였지만, 이 소설집도 과거, 현재, 미래가 온통 혼재한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2024년을 함께 살아간다고 모두가 같은 시대를 사는 건 아니다.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으나)삶이 혼돈인 시절에 다만 다행인 것은, 최진영 작가가 여전히 쓰고 계셨고 계시고 계실 거라는 사실이다. 건필을! 지금도 미래에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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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죽음 그리고 허무
하늘나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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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돈벌이를 위해 만든 세계의 균열은, 가늘고 조용한 금이 아니라,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폭음과 참사로 드러난다. 삶이 고되고, 죽음은 가깝고, 희망은 줄어드는 세상이다. 월요일을 주기적인 작은 계기로 삼아 힘을 내보려는데, 비통한 비극의 소식이 덮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95170?cds=news_media_pc

 

희생도 슬프고, 앞으로도 이런 유형의 비극을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더 슬프다. 커지는 빈부격차와 환경의 급변과 이미 시작한 강렬한 혐오를 인류가 얼마나 빨리 해결할 수 있을까.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95122?cds=news_media_pc

 

19살이라는 나이가, 꾹꾹 눌러쓴 결심과 계획들이 아파서, 귀가하는 길이 온통 어둑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안전한 이는 아무도 없지만, 천재지변이 아닌 재난을 만나면, 문명과 사회에 대한 짙은 허무를 뒤집어쓰고 걷는 기분이다.

 

생존과 자산을 위해 만든 기성세대의 흉물들을 어떻게 고쳐서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할까. 어른들이 만든 규칙과 위반과 범죄와 뻔뻔함과 무지함과 욕심이 힘을 잃은 더 나은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야할까.

 

다른 제목의 책은 펼칠 생각이 들지 않는 저녁, 삶과 죽음과 허무를 고찰한다는 저자의 이 책을 가만히 넘기며, 복잡하고 무거운 생각을 조금씩 정리해본다. 아직 정리되지도 못한 사고 현장에서 희생된, 자신의 삶이 그렇게 짧을 거란 생각지 못한 이들을 애도하며 부족한 기도를 보낸다.


저자는 인간을 희망을 버리고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고 하는데, 절망 앞에서 다음 시간을 살아갈 희망을 어떻게 찾아야하는 건지. 십년도 더 전에 상담 내용과 여전히 비슷한 우울감 다스리는 방법이 반갑고 또 울울하다.



 

우리 집 십대들이 웃으니, 또박또박 할 일과 계획을 적은 19살이 겪은 세상이 더 고통스럽다. “작게 잡고 천천히 한 발자국씩 아이가 발을 떼듯이 천천히그렇게 삶을 살아가려한 계획이 너무나 아픈 기록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며 살아온 이들이 사라진 시공간을 생각한다. 관찰자인 내가 민망하고 무례한 것도 같다. 너무나 폭력적인 방식으로 삶을 마치게 된 이들을 마지막까지 찾아내고 예를 다하는 모습이, 한국사회가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이길 바란다. 그렇게 허무를 조금이라도 줄여볼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줄 모르고, 삶에서도 여전히 휘둘리는 점이 많은 내가 성장 중인 아이들의 삶에 대해 조언이나 가이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참 무섭고 무도한 오만이다. 수능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했을 때도, 생각이 달라져서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도, 나는 듣기만 하고 응원만 했다. 아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도, 기억하기를 바라는 것도, 사랑과 신뢰뿐이다.

 

다시 유명을 달리한 19살의 청년 노동자를 생각한다. 꿈을 꾸고 미래를 설계하고 목표를 적고 희망을 품은 기록을 생각한다. 인간은 사실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 나갈 수밖에 없는존재라서, 좋은 사회는 안전하고 친절해야 하는 것인데. 그의 삶과 죽음은 첫 직장에서 멈췄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사회를 바꾸지 않아서 이득을 보는 이들은 누구인걸까. 정치를 통해서만 사회를 바꿀 수 있는데, 정책을 만들어야 행정을 바꿀 수 있는데, 다수의 목소리가 충분히 크지 않고, 누구도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는 요원해서 여름밤이 어둡고 서늘하다.

 

저자의 책 구성이 독특하고 다양하다. 어둡고 무겁고 슬프고 아픈 밤, 마지막 내용이 치매 예방을 위한 수학이야기라서, 정말 수학문제(난제)들을 책에 담아두어서 생각이 산란되었다. 그 작은 틈이 뜻밖의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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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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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 죽고 싶다. 그렇지만 은행나무는 너무도 곱게 물들었고 하늘은 어쩌면 저렇게 푸르고 이 마당의 공기는 샘물처럼 청량하기만 한 것일까. 살고 싶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죽고 싶다.”




 

3 여름방학의 어느 날, 보충수업을 마치고도 해가 지지 않아 유독 지친 날이었다. 유리문이 달린 어머니 책장을 소파 위에서 무심히 넘겨보다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옆에, <裸木>발견했다. 표지의 모든 문자가 한자로 표기된, 내용은 세로로 적힌 책이었다.

 

만났으나 알지 못한 작품과 작가, 그래도 나는 그 순간을 <나목>과의 첫 조우로 기억한다. 그 책장에는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여러 권 있었고, 해를 거듭하면 나이를 먹듯 책이 계속 늘어갔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오랜 버릇처럼 책을 꺼내 펼치곤 했다.

 

사람들은 원래가 똑바로 선 채 움직이지 않는 세상이 권태롭고 답답해 못 견디게 태어났나 봐.”

 

20111, 한 해 프로젝트를 연말에 겨우 마무리하고, 올 해도 그렇게 살아야하는 건지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르는 30대 막바지의 오후였다. 계약서에 서명을 할지, 파쇄할지 사이를 왕복하다가, 미칠 듯이 팽팽해진 신경에 지쳐가던 중, 박완서 작가님이 영면에 드셨단 소식을 화면으로 보았다. 어머니께 그 소식을 전하며 오래 전 그 날 오후가 잠시 떠올랐다.




 

일 년 휴직을 신청하고 나는, 평생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한국어를 공부했다. 어떻게 공부할지를 몰라서 한국어능력시험 준비를 시작했지만, 그 핑계로 문학책을 실컷 읽었다. 한자도 없고 세로줄도 아닌 반듯하고 하얀 종이 위의 나목을 다시 만났다. 나이가 더 들어서 본 경아의 발칙함과 맹랑함이 새삼 눈에 띄고 부러웠고, 그래서 아주 조금 미웠다.

 

내가 죽은 후에도 타인의 인생이 있다는 건 참을 수 없다. 다시 전쟁이 몰려왔으면. 지금의 나는 전쟁에 의해 구제받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제 반백頒白의 반백半白이 되어, 차분하고 아름답고 튼튼한 표지를 착장한 세 번째 나목을 만난다. 내용을 다 아는 작품을 삼일에 걸쳐 다시 읽었다. 새롭게 번역한 문장인 듯 생경하게 느껴지는 행간들을 자주 만났다. 매운 음식을 잘못 삼킨 고역 같은 쓰라린 감정이 올라왔다.

 

정해진 삶을 낙오하지 않고 따라가는 듯 멀쩡하게 굴었던 20대의 , 문득 다 혼란스럽고 두려웠지만 내색할 수 없었던 , 이제 꿈을 다 잃어서 안전해진 독자가 되었다. ‘경아의 울울한 시선과 고단한 발길을 따라 다시 그 시절의 한풍 속을 헤매 다녔다.

 

어머니의 눈에 다시는 어떤 느낌이 담기지 않았다. 부연 눈이 다만 죽지 못해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사람보다 더 확실하게 삶을 거부하고 있었다.”




 

전쟁을 겪지 않아 모른다는 말은 틀렸다. 그 전쟁은 모르나, 이후로도 전쟁은 그친 적이 없었다. 종류는 많아지고 상흔은 다양해졌다. 어떤 전쟁은 감쪽같이 일상으로 위장을 해서 종전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이 땅에 사는 몇 명이나 그늘진 데가 조금도 없어서 (...) 화사한 식물에 가까운, 만개한 꽃 같은 표정들을 한 이국의 아가씨들처럼 살 수 있었을까.

 

오십년쯤 살아보니, 외면하고 회피한 순간이 아무리 많아도, 불의의 사고처럼 누군가의 아주 황량한 풍경의 일각 같은 것을 목격하게도 되고, 가식 없는 나의 것이란 가난과 황폐뿐이라는 자각에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나인지 남인지 모를 너절한 풍경을 할 수만 있다면 다 부숴버리고도 싶었다.

 

다정한 친절을 결심해도 서로 나눌 수도 도울 수도 없는 자기만의 고독을 앓고 있음을 서로가 알고 있는 무한반복을 산다. 삶은 그렇게 때론 공포가, 때론 다 같이 고가의 망령에 들려 붙들린 포로들처럼 생기를 잃은 의무의 강제노역 같기도 했다.

 

늙기 전에 반드시 죽겠다는 결심은 회환도 없이 무가치해졌다. 초침의 속도로 숨 가쁘게 삶의 재미난 것을 재빠르게 잃어가는 것도 삶의 비밀 중 하나라는 것을 배웠다. 그러다 문득 제 정신을 잠시 차린 사람처럼, 망각을 앓은 이처럼, 오랜 질문을 되풀이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 나만 빼놓고 저희들 끼리끼리는 다 알고 있을 게다. (...) 나만이 사람들의 어떤 질서, 대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자식뻘 나이인 경아가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조작한 말은, 버림받은 아이로는 살 수 없다는 절규로 느껴진다. 나를 사랑하고 걱정해서 기다리다 병이나 죽어버린 어머니, 라는 신화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취한 마지막 끼니 같다. 사실이길 바라며 주문처럼 내뱉은, 가련한 아이의 애달픈 간구懇求.

 

갇힌 내가 스스로는 할 수 없는 해체를 상식적이고 속물적이고 정상적인 삶만을 꿈꾸는 타인의 도움으로 이룬다. 그건 분명 어떤 구원이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담지한 공간을 해체하며, 나는 관계의 단절을 육신의 해체처럼 격감한다. 그러나 죽지 않으면 해체로도 존재는 삭제되지 않는다.

 

다만 나는 후원의 은행나무들만은 그대로 두기를 완강히 고집했다. (...) 나는 아직도 그것들의 빛, 그것들의 속삭임, 그것들의 아우성을 가끔가끔 필요로 했다.”





 

고목은 나목裸木이 된다. 나목이 되어 골격뿐인 나신裸身을 드러내고도 위엄을 잃지 않는다. 나무의 본체는 겨울에 드러난 그 모습이다. 태어나 자라며 생긴 온갖 상흔을 수피樹皮에 기록한 맨 몸. 잎도 꽃도 생명의 본체가 아니다. 늘 드러나 있는 진실은 때론 보이지 않을 뿐.

 

인간도 그럴까. 나신이 진실이자 본체일까. 인간이 벗어던져야할 옷가지는 몇 개일까. 인간의 진실은 무엇일까. 어딘가는 가려지고 얼룩지고 감춰진 고유한 무늬를 새겨 넣은 존재가 각자의 본체인걸까.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고독한 존재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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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24-06-27 0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정말 예뻐요^^

poiesis 2024-06-28 17:29   좋아요 0 | URL
^^ 경애의 마음으로 최대한 단정하게 헌사드리고 싶었답니다. 알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4-07-31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04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등대
김민환 지음 / 솔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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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상에 대해 잘 모르고 산다. 대학시절 이후로도 여러분들이 언급하시고, 백낙청 선생님도 꾸준히 언급하시지만, 진지하게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소설이라면 간접체험을 하게 해줄 거란 기대가 컸다. 일상의 태동으로서 사상을 만나보고 싶었다.

 

동학이란 것이 대체 무엇인가? 공부하는 사람들로서, 그것이 뭣인지는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겄는가?”

 

소안도라는 생활공간에서 각자의 사연을 가진 이들이 시대와 어우러지며, 개인사를 써내려가듯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학은 소개되는 단계이나, 이를 핑계로 작은 권력을 가진 이들은 제 출세의 기회로 누군가를 희생시키려 한다.

 

동학에서는 가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여.”

 

옷조차 제대로 챙겨 입을 줄 모르던 일본인들을 무시하면서도 같은 섬에서 함께 살아가던 조선인들은, 시대가 변하고 입장이 바뀌고 문물이 달라지는 변화에 충격을 받고, 각자의 신념대로 반응한다.

 

성냥도 석유등에 버금갈 만큼 생활에 이로웠다. (...) 처음에 사람들은 성냥을 도깨비불이라고 했으나, 원료인 석유황을 빨리 발음한, 성냥이란 말로 굳어졌다.”

 

갑오년이 지나고, 시대적 갈등이 더 깊어지고 심화되면, 늘 마주하게 될 참담한 상황이 소안도에서도 일어날 거란 생각에 조금 기분이 무거웠다. 얼마나 죽고 죽이는 비극이 일어날 것인지. 그런데! 이야기는 그런 전개가 아니었다. 악의를 가진 인물, 화해할 수 없는 입장들이 부딪치긴 했지만 작은 섬의 작은 언덕 같은 고저로 해소되곤 했다.

 

헤어지자는 말은 가라는 말이고, 또 만나자는 말은 생각을 돌이킬 시간을 주겠다는 말이다.”

 

육지의 상황과 사람들의 반응은 더 격렬하고 상대적으로 소안도의 갈등은 불가능과 원수를 대적하는 필사적인 분위기는 없었다. 뜻을 가지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 터전을 찾은 이들의 삶터이기 때문일까.

 

속 시원한 사이다보다, 어렵게 고민하고 조금씩 합의를 보는 과정이 더 좋은 나로서는 그들의 결론이 궁금해서 놓지 못하고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다. “등대”(로 상징되는 무언가)를 부수자는 결정은 내가 생각한 상징의 의미였을까.

 

동학에서 말하는 선천시대가 가고 후천시대가 오는 모습이, 성별과 민족으로 완벽하게 갈라지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고 함께 삶을 만들어가는 모습이라면, 동학은 초기의 평등사상처럼 친절하고 이타적인 이들의 아름다운 꿈처럼 고운 개념이다.

 

해를 입을까 마음 졸이면 지켜본 소설 속 인물들이 나는 만나본 적 없는 소안도의 주민들 같기도 했다. 꼭 생각도 삶도 사랑도 나눌 이들과 함께 많이 웃으며 어려운 시절을 잘 사셨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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