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 내 인생 도넛문고 7
윤해연 지음 / 다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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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비정상이란 표현은 사어(死語), 역사적 기록으로만 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점을 찍고 선을 긋는 것이 아닌 무지개처럼 연속적인 스펙트럼 어딘가에 그저 인간인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사는 꿈.

 

청소년과 함께 어른 독자도 읽으면 좋을 책일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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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레즈비언 부부로 사는 것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 이제부터 낱낱이 알게 될 것이다. 아니, 레즈비언 부부의 아이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 그걸 알려 주고 싶다.”

 

물론 힘든 이유는 레즈비언 보호자 때문이 아니다. 원망이 일차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향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래서 함께 더 깊이 생각해보고, 힘듦과 괴로움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가를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읽다 생각해보니, 청소년 문학을 자주 읽는 편인데도 성소수자 가정의 아이로서, 청소년 당사자의 시선으로 성소수자의 일상을 따라가며 경험하는 것은 처음인가 한다(기억력에 전혀 자신이 없지만).

 

담임의 유형으로 지차면 이번 담임은 어설픈 유형에 가깝다. 제일 가관은 잘난 척 유형이다. (...) 미주알고주알 내 사정을 다 알려고 하고 내 고통을 먼저 안다는 듯이 앞서갔다. (...)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설레발을 치는 바람에 다른 선생님들까지 내 처지를 알아 버렸다.”

 

청소년의 주 생활공간은 가정, 학교, 학원, 동네다. 보호자와 더불어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큰 이는 교사다. 어떤 담임을 만나는가가 한 해를 지옥으로도 평범한 일상으로도 만들 수 있을 듯해 긴장이 되었다.

 

네 두려움은 불완전해서가 아니야. 다르다는 게 널 불안하게 하는 걸 거야. 그저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일 뿐인데, 왜 그럴까? 결국, 약속이잖아. (...) 그건 절대적인 게 아니야. 그게 나랑 맞는지 그걸 생각했어. (...) 조금 다른 가족일 뿐이야.”

 

애정으로 함께 하는 가족인데, 문서상으로는 타인이다. 자신이 고아였다 입양된 사실을 아는 청소년은 느낄 억울함, 두려움, 연결 지점이 없다는 슬픔 등이 아주 평범하고 생생한 일상 사건을 통해 잘 묘사된다. 미처 생각이 닿지 못한 풍경들이라서 많이 배운다.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한 거짓말들이 아프다.

 

이 아이가 정말 여자아이 같은가요? 저도 오랜 시간 간절하게 바랐습니다. 딸로 살아가길요. 하지만 보세요. 이 아이는 남자아이였어요. 이걸 받아들이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더는 기다리기가 힘이 들어요.”

 

성 정체성은 한 존재의 일부일 뿐인데, 알게 되면 그 이유만으로 사람을 증오하고 버리고 병에 걸린 것처럼 취급하고 혐오하고... 그 혐오가 점점 굳고 세져서 신념처럼 확고해지고. 태어나마자마 일방적으로 지정당하는 성별이 있고*, 그건 정체성과 무관할 경우가 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성으로 살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 지정성별

 

선입견과 편견이 항존하고, 이해와 공존이 어려운 관계와 현실이라도, 사랑과 우정과 여지와 희망은 있다.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지만, 도망가지 않고 애써볼 거라는 결심에는 옆에 함께 해주는 이들이 있어서 최고의 해피엔딩처럼 느껴진다. 다른 방향을 향해서 달리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무지갯빛이, 비온 뒤 만나는 무지개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 되는 미래를 함께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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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친구가 되는 법 - 2024 대한민국 그림책상 대상 수상작
박현민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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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다면서 잡아와도 되는 건가? 웃픈 시도가 어떻게 전개될지 몹시 궁금한 작품이다. 이런 판형의 다채로운 색감인 작품이 오랜만이라서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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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발행지로 시작하는 그림책의 시작에 예티에 관한 정성스럽고 흥미로운, 깜빡 현실인가 싶은 정보들이 잔뜩 제공된다. 홈페이지 주소가 있어서 확인해보니... 진짜(?) 존재한다. scienceyeti.com



 

펼치자마자 지치도록 웃으면서 시작하는 작품!

 

포획이 시간문제라면서, 그 말은 아직 실체를 만난 적이 없다는 얘기인데, ‘예티학과예티사육사자격증이 존재한다는 것도 웃다 지치도록 웃긴다. 어떤 사회시스템인지는 모르겠지만, 급여가 커피믹스 하루 1개 제공이라니 섬뜩한 블랙유머다.

 

에드문드 전임 소장은 예티의 야수성을 제거하고 예티를 인간 사회에 융화시키는 프로젝트에 강력히 반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임소장은 이 연구소에서 예티를 만나서 무언가 심경 변화가 생긴 것도 같다. 관련 이야기가 없어서 무척 안타까웠지만, 차기 소장으로 오는 연구원이 앞으로 겪을 경험을 통해서 짐작해볼 수 있게 작가가 배치한 것이라 생각해본다.


 

만년설이 존재할 듯한 설경 속에 사는 예티는 어떻게 쌀국수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쌀이 재배된 적이 없는 지리적 환경이라 그 이야기도 궁금하다. 어쩌면 작가가 전임소장과 예티의 쌀국수 취향에 관한 후속작을 만들어주시진 않을까.

 

여기까지가 첫 페이지를 찬찬히 읽으며 한 생각들이다. 드디어 그림 속으로 떠나는 여정의 시작이다. 숲이 살아 있는 듯, 여러 무늬가 숲의 정령들인 것처럼 보인다. 눈 덮인 산에서 불어오는 냉기가 코에 닿은 듯 서늘하다.


 

포획해서 연구하고 가르셔서 친구가 된다는 개념은 오만하고 유치하지만, 어쨌든 유진 박사는 자신이 요리한 쌀국수를 가지고 이동해서 함정을 판다. 저런 추위 속에서도 절대 식지 않는 마법의 쌀국수다. 고수를 가지러 다시 갔다 오는 그림에서는 웃다가 울 뻔했다.

 

결국 연구대상이 된 어린 예티가 유튜브 화면에 시선이 고정된 채 눈빛이 비어가는 그림은 무시무시하다. 오래 전엔 TV를 바보상자라고 불렀는데, 스크린을 우민화 정책에 적극 활용한 사례가 있으니, 21세기의 플랫폼과 미디어 환경의 위험성도 계속 지적되어야할 사안이다.



 

현실 세계의 전쟁에서 죽임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식, SNS를 활용하는 범죄에 희생되는 사람들, 경영자는 의회에서 사과했지만 중요한 것은 변화의 내용과 속도일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많이 웃었지만, 많이 부끄러웠고 무섭기도 했고, 그럼에도 작품 자체에 많이 반하기도 했다. 인류가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어느 날 돌연변이 진화처럼 그런 세계관의 변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오래도록 지구에서 함께 공존할 시간이 인간에게 충분히 남아있을까.

 

잡아 가두고 한쪽의 생활방식을 가르치는 소통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 반갑게 만나는 진짜 친구 같은 관계처럼 보이는 마지막 장면에 안도하면서도, 어째서 쌀국수인가는 정말 무척 궁금하다. 박현민 작가 인터뷰나 북토크 관련 소식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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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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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세계 여기저기에서 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의 작은 조각이라도 제시하여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 그 자체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나의 끝나지 않는 인문 기행의 한 페이지다.”

 

18년간 계속 된 연재가 작년 7월에 끝났다. 해외에서도 프린트해서 거듭 읽던 칼럼이라서 아주 중요한 삶의 루틴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리고 12월에 서경식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갑갑하고 참담한 시절이 더 암담해지는 기분이다.

 

습설이 무겁게 떨어지는 주말, 온기처럼 용기처럼 작고 붉은 유작이 도착했다. 올바르고 아름답고 슬프고 귀한 글들이 가득할 것이다. 다만 독일과 불란서 인문 기행을 만나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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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弔事를 접할 때마다 나이를 절감한다. 어느 시기가 지나자 경사慶事보다 조사가 더 많아졌다. 큰 질환이 없더라도 매일 약해지시는 양친과 친척들을 뵐 때마다 반드시 오게 될, 피할 도리가 없는 이별이 내 앞에 남았다는 생각을 한다.

 

존경하는 스승들과 어른들이 근 10년간 많이 떠나셨다. 매번 슬픔과 함께 상실과 두려움이 퉁퉁 소리를 내며 심장을 울렸다. 서경식 선생님이 인류가 당면할 긴 악몽의 시간근심으로 마음이 꽉 막힌 순롓길(1986.10.2.)”일상화된 지옥’”을 언급하실 때, 나는 이별만이 이어질 날들을 잠시 상상했다.

 

내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얼마나 허무하게 창조하여주셨는지를 기억해주소서.([시편] 8946!47)”

 

작은 책의 한 면은 예술작품 사진들로 채워있기에, 급할 것 없이 차분히 읽어도 1980년대와 2020년의 시공간들을 여행하는 일은 어느새 끝에 도착하고 만다. 젊어서 어색하고 미숙하고 고독하고 광기와 죽음의 갈림길을 걸을 때도 미술관은 추악함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간절한 순례 같다. 시리즈의 신간이어야 했을 유작에 쓰인 문장이 눈물을 고이게 한다.

 

써야만 할 사연도 쓰고, 쓰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아쉽게도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재난과 역병을 경험하고 배우고도, 인간이 스스로 그 고통과 비극을 배가하고, 서로를 살해하고, “자기중심주의와 불관용의 정신이 만연하고 파시즘이 대두하는 그런 시대라는 대재앙을 초래한다. 또한 누군가는 그 참화 한가운데서 철저하게 이를 응시하며 기록하고자한다. 인간의 가치는 후자와 함께 한다.

 

나치 독일의 잔학함과 냉혹함을 그 증거로 내놓는다 해도 지금은 누구도 진심으로 충격을 받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치 패망 이후에도 이와 동등한 잔혹과 냉혹함이 세계도처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읽다가 문득 존재의 겉옷이 벗겨진 듯 심란하고 울고 싶은 기분이 들 때는 글에서 눈을 들어 옆에 담긴 그림을, 예술을 오래 보았다. 문자가 아니라도 인문 정신은 예술로도 기록되고 전달되고 이어진다.

 

예술에 전쟁을 억제하는 힘이 있는지, 나쁜 권력을 타도하는 힘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어떤 악몽의 시대에도 관용, 연대, 공감을 추구하려는 인문 정신이 살아 있음을 가르쳐준다. 예술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2022년 충격과 함께 전쟁이란 명명으로 시작된 살육과 파괴를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천조를 전쟁무기에 사용하는 국가의 다른 풍경들을 경계인의 시선을 따라 여행하며 거듭 영면에 든 선생을 그리워한다. 내게도 있는 선한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전쟁이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큰 부자가 되기 위한 짓거리다. 우리에게 서로를 죽일 권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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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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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도 아닌데 논픽션 소설이란 표현은 여전히 좀 헷갈린다. 매니악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과학사와 세계사를 여행하는 느낌일까. 죽음이 삶인 것처럼 붕괴 역시 창조인 흥미로울 그런 시간들.

 

이상한 작품이다. 한 문장도 지루하지 않았다. 읽을수록 심장이 더 거세게 뛰었다. 공포스러울 정도로 매혹적이고 수다스럽고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상황들에 점점 기분이 들떴다.

 

결국 기술은 인간의 배설물일 분 대단한 무언가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거든. (...) 하지만 기술은 갈수록 빠르게 진보하면서 불가피한 특이점으로, 우리가 아는 인류 역사가 더는 지속되지 못할 티핑 포인트로 나아가고 있는 듯해.”

 

비뚤어진 파괴력이 위험을 초래하는 게 아니야. 위험은 원래부터 내재해 있지. 진보를 치유할 방법은 없어.”

 

책임질 일도 별로 없고, 홀가분한 혼자로 살 수 있었던 20대처럼.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고, 우정과 호의와 가치를 굳건히 믿었던 그때처럼. 가능성만으로도 마음껏 저질러 볼 수 있었던 시절처럼 내용에 몰입하였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친족 살인으로 시작하는 내용에 쇼크를 받은 상태로, 어둑어둑하고 내재적인 섬뜩함을 품은 인물들을 만나며 더 놀란 상태가 되어 계속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거침없고 솔직해서 두렵고도 아름다운 존재들.

 

이를테면 세상을 날려버릴 수도 있는 무언가를 다루게 되는 상황이 갑자기 벌어졌을 때 우리는 한낱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 존 폰 노이만

 

우리는 세상이 예전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몇몇은 웃었고 몇몇은 울었으나 나머지는 침묵했다.”

 

매니악이란 제목이 부족한 느낌이 드는 어마어마한 내용이다. 천재들이란 고혹적일 수도 있지만 거부감이 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 초청한 모든 인물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화려한 착장으로 눈을 멀게 한다.



 

작가의 1차 언어 그대로 읽어보고 싶은 문학이다. 번역이란 걸 잊고 읽었으니 아무 불만은 없지만, 그럼에도 더 친밀해지고 싶은 무척 끌리는 매력이 가득하다. 전작을 읽었을 때와 왜 이리 다른 후감(後感)인지.

 

계속 느낌만 나열하는 감상문이지만, 이 책을 문해하려면 다양한 학문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온갖 지적인 내용들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짐작만 하는 듯해 조금 서러웠지만 번번이 패배해도 즐거운 게임 속에 머무는 기분이 즐거웠다.

 

등장하는 천재들의 전공을 알아야 읽을 수 있는 일차원적인 글은 아니다. 바로 오늘 생체로봇을 만들어내었단 발표를 들었기 때문에, 과학의 현실로만 보자면 존 폰 노이만과 물리학, 논리학, 수학, 맨해튼 프로젝트, 컴퓨터, 인공지능 등은 이미 클래식한 지식정보 같기도 하다.

 

그러니 지루하고 심심해서 지겹고 졸린 분들은 이 책을 펼치시길 바란다. 뇌신경망에 스파크가 파직파직 이어진다. 천재를 소재로 다룬 문학 - 과학, 수학, 논리학, 역사학, 철학, 심리학을 두루 활용하고 연결해서 - 이라고 하지만, 작자 자신이 가장 놀라운 천재인 듯!

 

2-3시간 정도의 영상으로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이 위협적인 존재들이 살아 움직이는 영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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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나인 - 여성이 투표권을 얻은 이래 가장 중요한 법
셰리 보셔트 지음, 노시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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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그 누구도 성별을 이유로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 프로그램 또는 활동에서 제외되거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차별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1972년에 제정된 타이틀 나인의 첫 37어절)

 

한국은 2006년 이후 국회가 최소 11건의 법안 초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등 포괄적 차별금지법 통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두 문장을 적어 두고 심정적으로 계속 부대끼면서 책을 읽었다. 식민지와 내전을 겪어 모두 파괴된 땅에 새롭게 살터를 만들고 하나씩 다시 세워나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서도, 기형적으로 만들어진 채로 변화가 더딘 한국사회가 안타깝고 속상하기 때문이다. 또한 법이 있어도 법대로 시행되지 않는 상황이 화가 나고 무력감이 들기 때문이다.

 

타이틀 나인이 되기까지 역사를 살펴보면, 1964년 타이틀 식스, 6편은 민권법을 채택해서 차별을 금지했고, 7편은 종교와 성차별로 채용과 고용에서 차별 금지를 규정한다. 1967년 연령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나이를 이유로 채용, 승진, 보상에서 차별을 금지한다. 1972년 타이틀 나인, 고등교육개정법은 교육기관에서의 성적 차별을 금지한다. 그 개념은 남녀 불문 직장 내 성학대, 성착취, 성희롱*을 금지한다.

 

* 포괄적인 성희롱의 개념: 구체적인 접촉이나 요구 또는 성적 언급은 물론, 신체 비하적 표현도 해당한다.

 

자료를 보니, 2022623, 바이든 행정부는 타이틀 나인(Title IX)’ 제정 50주년을 맞아 법률 개편안을 발표한다. 성적 지향 또는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명문화하여, 생물학적 성뿐 아니라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까지도 금지한다. 그리고 성차별 피해 사례조사를 어렵게 만들었던 공식적인 불만접수 의무사항과 증인 반대심문 조항 등을 삭제한다.

 

앞으로 학교 스포츠가 아주 중요한 쟁점이 될 것 같아요.”

 

미국이 여자 대학농구팀으로 68강 대진을 만들 수 있는 이유도 이 법에 기초한다.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는 남녀 차별을 둘 수가 없다. 입법이 미스 스포츠의 남녀평등을 이룬다. 현재 미국 대학은 여성 스포츠 선수에게도 똑같은 장학금을 줘야 한다.

 

전방위적 힘을 발휘하는 평등을 지향하는 법률, 624쪽 중 주석만 80쪽인 책을 보면서, 풍부한 사료는 곧 저항하고 법을 지키고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포기하지 않는 모든 분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존경과 감사가 차올랐다.

 

타이틀 나인 제정 이후 태어난 세대가 이제 대학에 갈 나이였다.”

 

한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기준인, 차별금지법이 간절하다. 그 길을 향해 고단하고 압축적이고 버거운 근현대사를 살아낸 분들에게 100만분의 1도 못하는 독자로서 부끄러움과 부채의식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짧다고도 할 반세기지만, 싸우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지.

 

백년이 지나도 한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차별은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것이라서 특히 더 그렇다. 사회정치적 변화가 필요한 일에는 참여하는 수많은 시민이 필요하다.


 

이 책에 담긴 역사와 미래가 한국 사회의 가능성이 되기를 바라고 응원하고 참여할 것이다. 특별한 능력과 힘을 가진 존재가 될 필요는 없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차별에 반대하고 저항을 표현하는 것도 힘을 보태는 참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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