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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카페 컬러링북
이정란 지음 / 밥북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봄, 여름, 코로나 감염에 대한 불안에도 불구하고 야외에 머물 수 있으니 가끔 가서 일상과 조금쯤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심리적 위안을 받곤 하였다. 물론 전문가가 정성스레 내려주는 커피 맛은 가끔 눈물이 핑 돌 정도. 이전엔 미처 절절하게 알아차리지 못한 감사할 일이기도 했다. 아무리 맛난 원두를 사도 내가 마지못해 내린 커피는 맛이 덜하다. 심지어 라면도 남이 끓여 주는 것이 맛있다는 것은 참! 이었다. 뭐든 해서 돈을 벌어 서비스 비용을 기꺼이 치를테니 기회만 주세요, 뭐 이런 심정으로 가까운 미래를 상상했다.
가을이 깊어가고 서늘하다 못해 싸늘한 바람이 휘도니 하나 둘 카페들이 야외 테이블을 접는다. 나처럼 근본적으로 겁쟁이는 실내에서 여유만만 도락을 즐길 성격이 못되니, 이제 그만 카페도 안녕이다. 곧 닥칠 그런 미래를 실감하며 텀블러에 내가 내린 온도만 맞춘 커피를 담아 어디 낙엽 지는 향기 가득한 의자에라도 앉아 시간을 보내 볼까 했으나…… 그것과 고유의 컨셉이 반가운 카페의 시간은 다르게 흐를 것이 자명하다.
그래도 나야 누구보다는 좀 더 참을성이 강하니, 가장 좋아하는 일이 카페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쉬는 거라는, 마치 정기적 수혈처럼 그런 격리가 필요하다는 누군가와는 그 절박함이 다를 것이다.
한 때 우연한 계기로 미술부였으나 차근차근 이것저것 마스터해야하는 과정에 적응 못하고 늘 두껍고 비밀스런 유화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이렇게 투명하게 물이 번지며 색을 나르는 수채화가 지나치게 눈부시기도 하다. 무척 어여뻐서 보는 것만으로 감탄이 나오긴 한다.
드로잉은 마치 심리검사에서 경고를 받을 것처럼 거칠고 두껍게 하는 어머니께서, 카페 나들이를 할 때마다 시상식 못지않게 외양에 공을 들이던 어머니께서,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처음 바라보는 듯 채색에 열중하시는 모습이 큰 위안이다.
카페를 못 가니 카페를 그려보자, 그 발상이 감탄스럽고 감사한 책이다.
이럭저럭 급조한 카페 분위기로 커피를 내리고 온갖 미술 도구들을 펼쳐놓고 카페 못 가는 커피 애음가 두 명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햇볕을 받으며 한참을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참. 좋았다. 라고 말할 수밖에.
* 38개의 도안이 있는데 뜻밖에 자신이 좋아하던 카페를 만나기도 합니다. 살짝 놀라고 한참 반가웠습니다. 미술 감각이나 재능이니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그저 즐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다나 대화 없이도 타인과 상당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습니다.
평안한 한 때의 마지막, 문득 언제든 조금만 부지런하면 다시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곳들이 떠오릅니다.
다신 갈 수 없으리란 공포스러운 실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