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 - 육지, 바다, 하늘을 지배한 힘의 연대기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박연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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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전쟁과 패권의 주요 무대는 땅 따먹기’ 게임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아시아권에 속해서 아시아권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산 탓일 것이다가만 생각해보면 삼면이 바다인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바다와 해양 세력에 대한 면면이 익숙할 만도 한데과문한 탓인지독서 편식 탓인지 어쨌든 내게 해양 패권에 관한 역사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다 섬나라 영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슬쩍 슬쩍 들춰본 영국의 역사에는 온통 바다 건너 온 세력들과의 전쟁바다 건너 간 영국인들의 식민지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주 무대를 이루었다자연히 세계사에 대한 내 생각의 지평도 해양으로 슬쩍 옮겨 갔다.

 

신대륙 발견이라는 유럽인들의 편견에 따른 시각에서 만든 명칭과 그 침략 경로를 따라 가다 보면원래 가난한 육지 환경에서 태어나 본토에 별 미련이 없어서인지 항해 거리와 상관없이 먼 지역에 이르기를 서슴지 않는다영국과 유럽의 조상들이 알고 보니 북유럽의 바이킹인 된 것도 가혹한 자연 환경을 떠나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을 찾아 떠난 것이 계기였다.

 

자연히 유럽 역사에는 해양 관련 기술에 따라 지배 구조가 결정되었는데 이는 후발 주자인 미국에 해군(marine)이 주력 부대인 것과도 일맥상통하며또한 비효율적인 덩치만 큰 대한민국의 육군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거대화되어 최근까지 유지된 것인가 세계사의 측면에서는 실감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5,000년 동안의 세계사 - 위 표지 아래 부분의 스케일 - 이며이를 세 공간으로 나뉘어 그 흐름을 쉽고 깔끔하게 보여준다위에서 언급한 대로 유라시아에서 오래 지속된 육지의 역사다섯 대륙이 대양을 연결된 바다의 역사항공망과 인터넷 가상공간으로 이루어진 하늘의 역사 순서이다당연히 각 시대별로 육지바다하늘을 지배한 나라가 패권을 장악하였다.



저자가 재밌고 흥미롭게 연결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조금 요약해보면;

 

희망봉을 발견한 포르투갈은 당의 7-8% 정도만 농업에 쓸 수 있었다살기 위해 바다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네덜란드는 청어를 절일 소금이 필요해서 서인도회사를 세우고 해운업을 시작하였다영국은 한랭한 기후와 장작의 부족으로 증기기관을 발명하게 되었으니 산업혁명의 계기는 영국의 추위이다 실감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나 영국에 여러 해 머물러본 경험상 납득이 갑니다자연환경이 참 가난합니다구릉과 들판에 나무가 몇 그루 없고 풀만 가득양 떼와 소 떼가 멀리서보면 목가적인 풍경일 뿐이지만 뭐 먹고 사나 싶은 토양이기도 합니다그리고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비가 오나 안 오나 건물 안에서 난방을 해도 춥습니다그늘에만 들어가도 춥습니다한 여름에도 늘 점퍼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먼저 서유럽과 중유럽에서 여러 민족의 의식이 변하고마지막에는 전 세계의 모든 인간의 의식 전체가 근본부터 달려졌다이러한 의식의 변혁이 진정한 의미의 공간 혁명이다.

 

통시적일 뿐 아니라 세밀한 이 역사서는 세 가지 유형의 서사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각 공간에서 탄생진화명멸한 왕조와 제국의 역사를 재밌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일단 문명의 탄생부터 14세기까지는 육지를 차지한 제국들의 흥망성쇠와 교류가 암기식 교육의 효과로 페르시아로마몽골 제국이 만든 국경선의 변화가 그림처럼 떠오른다 ― 대서양시대라 불리는 15-18세기까지는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식민지해상무역이민산업혁명 희망봉 발견콜럼버스와 마젤란 대항해의 시대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의 과학혁명에 따른 물리적 세계관의 변화 - , 그리고 19세기부터 현재까지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항공통신글로벌 경제, IT 기업들에 대해 다루며 앞으로의 행방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저자가 아주 쉽게 설명해줘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세계사가 무척 간명한 큰 그림으로 그려진다반갑기도 하지만 거시적인 시각에서 부각되는 거대 권력과 제국들을 제외한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불가시의 영역으로 밀려난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내가 제국의 후손이거나 현재 패권국의 국민이라면 좀 다르게 혹은 자랑스럽게 느껴지려나.

 

한시도 평화의 휴식이 없이 끊임없는 전쟁으로 이어져온 인류의 역사에서 과정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든 현재 입장이 패권국이라면 다른 책임과 역할도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잠시 생각해본다그런 의미에서 명실상부 G2국가로 분류된 중국과 미국의 입장과 태도는 자세히 내막을 몰라도 자주 걱정스러울 정도이다오랜 세월 수많은 나라와 민족을 변방나머지 국가(the rest of the world) - 미국 학교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미국인 교사에게 들었다 -로 분류하고명백한 자국중심주의자국제일주의가 제1가치로 삼고 있으며 그런 태도를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현 시점에서 지구상의 패권 다툼은 5G에 있다고 한다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사회의 기반이 되는 것이 5G 전환이기 때문이다이제는 현실 공간보다 훨씬 넓어진 가상공간에 대한 패권의 시대이다앞으로는 화웨이에 대해 미국이 시비를 걸고 공격하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패권 다툼의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싶다물론 먼저 시작되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우주패권 시대도 있다오늘 기사에 드디어 민간우주항공의 시대가 열렸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가능성과는 관계없이 우주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패권 다툼은 주도국들의 자원이 바닥나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것이다.

 

패권국이 되고 세계를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부정할 수 없는 것은 결핍이 확장을 필연적으로 야기한다는 것이다굶는 일이 다반사였던 가난한 유럽은 그래서 거듭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패권 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결핍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고 나처럼 게으른 이들은 평화롭고 안온한 삶이 제일이라 생각하지만적극적으로 역사에 뛰어들어 방향을 바꾸거나 정하고 싶은 이들은 어떤 역사의식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을까 혹은 있어야할까그에 따라 세계사의 동력과 방향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를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역사서가 재미있어서 읽는다물론 현재와 미래를 위한 성찰을 위해 진지하게 읽는 다른 이들도 계실 것이다다양한 소재들 중 하나를 선택에서 아주 미세하고 흥미롭게 역사를 바라보는 책들도 있고이 책처럼 고공관찰을 하듯 한 눈에 세계사의 흐름을 그리는 책도 있다나로서는 아무리 지루하단 평이 있는 역사서도 몰입해서 잘 읽는 독특한 취향을 가진 지라 모두 반갑다그래도 어떤 책들은 상당한 도전을 요구하는데 이 책은 읽을수록 참 친절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다아마도 20년 동안 고등학교 세계사 교사로 일하며 교과서를 집필한 저자의 경험과 고민이 낳은 장점이 가득한 책이라 그런 듯싶다.

 

공교롭게도 인류 문명의 세계사는 현재 재편 중이고 혹자들은 이를 Before Corona, After Corona라고 명명하기도 한다이 때를 핑계 혹은 계기로 삼아 세계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배경 지식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역사적 행방을 고민해보고 싶은 분들은 읽어 보시면 좋겠다무척 재미있고 쉽고 친절하다는 장점을 재차 부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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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제도를 바꿔라
강효백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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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접해서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할 수도 있는 문장을 다시 떠올린다.

 

The Personal is Political.

Carol Hanisch

 

기억이 흐릿할 만큼 오래 전에 이 제목으로 쓰인 논문을 읽었는데당시에는 공적 영역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배제된 사적인 상황 역시 공론화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중심이었다고 기억에 남아 있다특히나 사생활이라는 명칭으로 관리되지도 처벌되지도 예방되지도 않는 가정폭력의 문제들은 그때도 그렇고 현재에도 진행되고 개선되어야할 대상이다.

 

텍스트에 집중한 이런 해석 이외에도 나는 살아가면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다살아가는 일의 모든 면면이 정치적 결정의 결과이다한편으로는 그럼 개인의 노력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겠구나 기운이 빠질 수도 있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정치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신정이 아닌 다음에야 사람이 하는 정치를 주권자의 합의가 모이면 바꾸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런 세세하고 섬세한 삶의 일면들에 대해 고민하고 바른 정치를 위해 입안 의견을 내고 법안을 만드는 일은 사실 미디어에 노출되는 일이 거의 적다그리고 우리는 미디어 노출 빈도로 중요도를 결정하는 거의 무의식적인 습관이 있어서 실제로 생활밀착하는 법안들에 대해서는 찾아보거나 관심을 가지는 일이 거의 없다나도 마찬가지이다당면한 일내 이해관계와 만난 조항들만 건별로 겨우 뒤적여보는 수준이다.

 

그런 와중에, 2016년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경험하고 국정농단이라는 말을 강제학습했다권력을 위임하는 대의제와 선출직에 대해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관심과 감시를 잊으면 이런 꼴을 봐야하나라는 자각을 이토록 자극적으로 배운 일은 처음이었다.

 

온갖 비본질적인 소란스러움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중에국정농단보다 내게는 더욱 충격적인 사법농단 소식을 들었다선출직도 아닌 자들이 공적직업윤리가 없는 자들이 마피아처럼 공고한 카르텔을 이루어서 조직보신주의와 출세이기주의를 위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불법과 탈법을 도모한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시행해왔다는 사실.

 

사법체계는 그야말로 특혜도 자산권력도 없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되어주는 사회시스템이어야 한다도덕보다 기대치를 훨씬 낮춘 기준으로 마지노선 위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할 일을 알려주고 바로잡는 일이다. 그 말은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고 법적 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리보다 훨씬 낮춘 기준이다. 우리가 윤리적 비난을 가할 수 있는 일 중에는 법적 처벌이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많다. 나처럼 적당히 게으르게 사는 인간은 윤리적 기준은 높지 않지만 그래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가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다그런데!

 

최초로 대법원장 출신이 기소되는 애초에 직에 걸맞는 인물이었는지도 신뢰할 수 없지만 낯뜨겁고 치욕스런 역사를 쓰는 일이 불가역적으로 발생했고, 이후 혼돈의 비바람이 가라앉고 제자리를 잡아가리라 기다렸지만저질 드라마도 아닌데 거북할 정도로 노골적인 행태들 이후에도 이어져갔다사법개혁의 여지와 희망은 어디에 누구에게 있는 건지 깜깜하기만 하다벌써 수차례 뼈를 깎은 탓에 더 이상 깎을 뼈가 없는 것인지 자체 개혁은 실종된 상태다작은 이익도 아니고 수도승도 아닌 이들이 끈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앞으로도 공고한 이익을 스스로 포기할 리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사법체계와 조직에 원한과 원망이 있어 이런 입장이 된 것은 아니다임명 이후 거의 살인적인 업무량을 견디며 최선을 다해 직무를 다하는 그런 검사가 있고 금수저가 아닌 탓에직업과 재산을 거래하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아직 전세를 사는 검사 지인도 있다 - , 출세와 상관없는 한직을 마다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고 피의자와 피해자의 이후 삶을 염려하는 그런 판사가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어릴 적에 이후 판사가 된 당시에는 야학을 하던 대학생 친척 언니를 따라 다녔다이런 개인적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슨 근거로 얘기를 하냐는 비난을 피해보고자 함이다 -.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 말고도 말도 안 되는 강의료를 마다 않고 요청 받으면 시민강좌를 꾸준히 해주시는 분들장애인 단체의 일에 가장 먼저 달려와 주시는 그런 법조인 분들도 계시다.

 

그래서 이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처음 생각은 1장 공수처 관련 내용을 집중해서 읽고 제대로 배워서 입장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소란스러운 소동에 등장하는 내용 정도밖에 모르고 솔직히 잘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행이 아주 쉽게 써 주신 덕에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말끔하게 기초 지식이 정리된다그런데 문제는 온라인상에서 찾아본 의견들이 너무나 혼란스럽다는 점이다처음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의견 충돌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어째서 이토록 증오에 찬 막말과 욕설이 가득한 것일까무슨 일인지 판단이 도저히 안 되고 어리둥절할 따름이다다만 이들이 폐지를 주우며 삼성그룹을 걱정하는 그런 입장은 아니기만을 바란다그런 장면을 목격하는 일은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부디 이들은 법률적 특혜와 탈법권 권력을 누리며 승승장구하는 분들이길 진심으로 바란다그렇다면 이렇듯 격한 반응 역시 온전히 이해가능하다.



꼭 필요한 개혁의 요구에 시의적절하게 저자가 시대적 소명의식을 담아 실체적인 진실과 제도개혁을 위해 공들여 적은 내용들을 통해 배우고 이해하여 전체적인 조망을 본 듯하다. 소개하지 않은 2장은 못지 않게 중요한 [개헌] 관련 내용이다. 누군가 함께 읽은 다른 분들이 개헌 내용 중심의 서평을 올려 주시면 참 좋겠다.


총선 이후 아직 정비되지 못한 정치권, 20대 국회활동을 업무 실적으로 평가하면 해고해야 마땅할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일하게 될지 일단은 기대해 보려한다. 이제껏 그래왔듯 다른 대안이 없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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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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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않다고는 말하기 힘듭니다.

 

제목을 보았을 때는 조부모님이 차례로 돌아 가셨을 때 문의를 드려서 집을 방문해 고인의 유품을 함께 정리해주셨던 그분들 유품정리사 의 이야기인가 했다경우에 따라 황망하고 서글프고 많이 지친 유가족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라 태도가 정중하고 말투도 조심스럽고 차분하고 능숙하게 위로를 건네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참 많은 도움을 받았단 생각에 고맙고 좋은 인상이 남았다.

 

그런데 내용을 보자 그보다 훨씬 더 특수한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때때로 고독사에 대한 기사를 접하기는 하나사후 처리에 대해 진지하게 궁금한 적이 없어서 처음 알게 된 직업이다<죽은 자의 집 청소>를 하는 분들은 특수청소부들로서 범죄 현장고독사자살 현장동물사체 처리와 저장강박증 환자의 집을 작업 현장으로 삼는다안타깝게도 가장 많은 유형은 고독사 현장이라고 한다현장에서 느낀 바도 그렇고 통계상으로도 대한민국 고독사는 날마나 증가하고 있으며작년에는 1056명으로 기록되었다.

 

이를테면 컨트롤 제트(Ctrl+Z)’의 업무를 하는 겁니다소거(消去)작업인 거죠영어로는 언두잉(un-doing). 한 사람의 생전 흔적을 완전히 없애는 거예요쓰던 물건부터남겨놓은 핏자국과 마지막 냄새까지요.” 


이 책의 저자이자 8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김완 하드웍스 대표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인상적인 내용은 누군가가 사망한 장소부재하는 장소를 정리하다 보면 당사자의 존재가 형상화된다는 것이다구체적인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면 성별연령당시의 상황취미정치색 등 그 인물의 삶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오래 방치된 바닥은 으레 기름 막으로 덮여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경을 곧두세워 앞으로 걸어갑니다그 방이 바로 당신이 숨을 거둔 곳입니다당신은 없지만 육체가 남긴 조각들이 천연덕스레 기다립니다.

 

단순히 정리 작업이 육체적으로 힘들다기보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글 귀아찔할 정도로 충격이 오는 물건들의 의미김완 대표이자 작가는 이 일을 하면서 현실이 허구를 뛰어넘는다는 걸 실감한다고 말한다.

 

상상 밖의 일이란 소설이나 영화처럼 일정한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허구 세계뿐만 아니라현실 세계에서 아무런 의도 없이도 매우 구체적이고 엄연하게 벌어지기도 한다암흑 속의 집 안 상태와 계량기가 철거된 자초지종을 길게 설명하는 동안 그녀는 휴대전화 저편에서 한마디 대꾸도 없이 듣는다침묵은 때때로 상대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를 줄이거나 보탬 없이 그대로 전하는 힘이 있다그녀는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으레 듣곤 하는 잘 부탁드립니다” 같은 말 대신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이전엔 그저 기사에 쓰인 감정을 받아 읽듯이 그냥 읽었는데잠깐 멈춰 생각해보니 고독사란 표현은 지나치게 사치스럽다저자의 말대로 이들은 고립사’ 했다는 표현이 더 맞는 듯싶다고립된 사회적 상황에서 죽은 이들저자는 자살이라는 죽음이 개인의 순전한 선택이냐고 묻는다이 도시에서 전기를 끊는 행위는 결국 죽어서 해결하라는 무언의 타살 권유가 아니냐고체납요금을 회수하기 위해 마침내 전기를 끊는 방법정녕 국가는 유지와 번영을 위해 그런 시스템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가 하고.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전기가 끊겨본 적 없이 살았다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되어버린 기분이다직장도 인간관계도 하나씩 끊기고 마침내 전기마저 끊겨 어둠 속에 오롯이 남게 된다면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선택이라는 것이 아직 남은 것일까. 


더구나 자살을 앞두고 의뢰 전화를 하는 이들도 있다니...... 죽음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 직업들 중 하나일 것이다.

 

저는 평소 자살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편입니다존엄한 자살도 있을 것이고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어떤 판단을 내리기가 조심스럽잖아요그런데 막상 자살하겠다는 전화를 받으니까 필사적으로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그 길로 119에 전화를 했죠.”

 

부탁하건대언젠가는 내가 당신의 자살을 막은 것을 용서해주면 좋겠다나는 그 순간 살아야 했고당신을 살려야만 내가 계속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나는 아직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우리는 여전히 함께 배를 타고 있다그것만큼은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이다.

 

여름에는 더욱 힘겨운 현장 환경이란 생각이 들지만김완 작가는 현장 동행 취재도 거절할 정도로 이 일은 정신적 외상이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한 차례 작업 후 잠수타는 직원들도 있을 정도로 참혹한 현장을 보고 충격을 받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 트라우마를 대신하는 작업이라고 한다그래서 서구에서는 이 직업을 트라우마 클리닝으로 부른다 한다.


대표 자신도 악몽과 해방감성취감 사이에서 살아가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손끝에 남은 생생한 느낌을 흘려버리고 트라우마를 치유한다고 한다. 

 

사실 내 일은 살아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죽은 사람이 만든 냄새가 가져다줍니다그 냄새를 극적으로 없앴을 때 내 비즈니스는 성공하지요대가로 살아 있는 사람이 나에게 돈을 지급합니다.

 

용서하세요문 앞에 도착하더라도 애써 예의를 갖춰 벨을 누르지는 않겠습니다저 안에서 기다리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남긴 것이니까요.

 

평소 고양이를 사랑해온 인간으로 이 참담한 상황에서 털만 보고 종을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기가 막히다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그 속담 뒤에 스며 있는 명예 지상주의와 지독한 인간 본위의 세계관이 늘 못마땅했다이름과 가죽을 남기는 일 따위가 죽음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회사를 설립할 당시에는 뭐 먹고 살지,하다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일이지만지금은 다른 생각과 의미를 가진 일이 되었다고 느껴진다특히나 읽다 보면 일기와 같은 기록물인지 산문시를 읽고 있는 지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저자의 감정이 뭉치기도 하고 녹아 풀리기도 한 듯한 내용들이 특히 그러했다.

 

당신이 하는 일처럼 내 일도 특별합니다세상에 단 한 사람뿐인 귀중한 사람이 죽어서 그 자리를 치우는 일이거든요한 사람이 두 번 죽지는 않기 때문에오직 한 사람뿐인 그분에 대한 내 서비스도 단 한 번뿐입니다정말 특별하고 고귀한 일 아닌가요?

 

여전히 글을 쓰고 문예창작과 시 전공 출신 살지만죽음을 보며 삶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인생을 너무 무겁게진지하게만 보지말자……이 책을 읽으며 화창한 날임에도 문득 사는 건 무엇이고 죽는 건 무엇인가 싶어 기분이 어둑해진다경험이 일천해서인지 나는 지혜와 이해를 얻기 보단 자꾸 어깨가 무거워져 축 쳐지는 기분이 든다.

 

그의 쓰레기를 대신해서 치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삶에 산적한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 같다내 부단한 하루하루의 인생은 결국 쓰레기를 치우기 위한 것인가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해답도 없고 답해줄 자도 없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관련 정보를 찾아보다 유품정리사도특수청소서비스도 아직 한국에서 직업으로 독립적인 지위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런 일들은 왜 이리 느린 것일까직업 개요와 업무 내용이 파악되면 실정에 맞게 바로잡아 등재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하는 일이 분류될 공간이 없다니.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중략고급 빌라나 호화 주택에 고가의 세간을 남긴 채이른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 적이 없다부름을 받고 다다르는 곳곳에 가난과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운다검게 색 바랜 빈곤의 잎사귀가 우수수 떨어져 도처에 널브러져 있는 것 같다내 시선이 오랫동안 가난에 물들어 무엇을 봐도 가난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일까어떤 날은 죽은 이의 우편함에 꽂힌 채 아래를 향해 구부러진 고지서와 청구서마저 가난에 등이 휜 것처럼 보인다.

  

달리 생각해보면 가족은 연락을 끊어도 채권자는 끊임없이 안부를 묻는 셈이다빚 있는 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은 혈육보다 오히려 채권자가 아닐까중략돌려받을 돈이 있는 자는 그 누구보다 빚진 자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아 있길 바랄 것이다빚을 모조리 회수하는 그날까지.

 

이러저런 이유들로 매일 사람들이 죽어 사라지고 있다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당연한 일상이기도 했다오늘 아침에도 사망률이 14%를 넘어가는 영국에 거주하는 친구와 애절한 이야기를 나눴다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세상이 실제보다 더 텅 비어 보인다사는 일에 대해 면면들을 알면 알수록 온갖 기대와 희망이 휘발하는 내 감정이 투영된 것뿐일 지도 모른다어쩌면 나이가 들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그래도 어쨌든 세상을 텅 빈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은 자연사가 아니다구인신문을 펴고 마지막 식사를 마치지 못하고 혹은 정리를 하고 준비를 하고 혹은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전화를 옆에 두고 누군가가어쩌면 짐작보다 많은 이들이 떠나려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그 쓸쓸한 자각 때문이다저자의 경험처럼 대부분은 가난 때문에 고립되어서함께 먹고 함께 사는 세상 또한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왜 어려운 일인가대답할 첵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혼자 사는 도시인의 사회적 고립 문제는 피치 못한 결과라기보다는 어쩌면 각자가 실리를 위해 선택한 길농촌이 처한 현실에 비하면 덜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른다중략. ‘인구절벽이란 표현은 도시에서나 통할 위협이지시골 마을은 진작 그 절벽마저 무너지고 흙이 쌓여 봉긋한 무덤 터가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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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줘서 고마워 - 고위험 임산부와 아기, 두 생명을 포기하지 않은 의사의 기록
오수영 지음 / 다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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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병원에 가지 않으면 사람이 죽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에게는 인공지능보다 순간 이동 기술이 필요하다가끔 택시 기사님이 험악할 만큼 빠르게 운전하실 때면 속으로 왜 이러실까하고 불안했는데 그때는 말 그대로 총알택시처럼 운전해 주시니 너무 고마웠다.

 

희망을 주는 의사에서 절망을 주는 의사가 될 수밖에 없던 내가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부모를 대신해 임종을 지켜주는 일이었다.

 

살아 보면’ 사는 일은 아무 것도 평범한 것이 없고 당연한 것도 없다는 당혹스럽고 황망하고 충격적인 현실과 만나게 된다꿈꾸던 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으며그 혼돈의 길 끝에는 자신이 생각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자신이 버티고 있다자기 자신도 잘 모르겠고타인도 잘 모르겠고 사회도 세상도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통 모르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개인적인 경험입니다안 그러신 분들도 많겠지요부럽습니다.) 그러면 이제 타인과 부부가 되고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고 이런 일들이 까마득한 도전 최고봉으로 느껴진다그러다 어느 시절 사는 일은 언제 어떻게 방향을 선회할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세찬 계곡물과도 같이 튀어 오르기도 한다.

 

나는 1995년도에 결혼해 이제 다 큰 딸이 있는데이 산모는 같은 해에 결혼해 이제 처음으로 엄마가 된 것이다이처럼 세상은 임신과 출산에 관해서는 불공평하다.

 

임신을 하면 아기가 구조적으로 정상적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게 모든 부모의 마음이지만실제로 태어나는 아기의 2-3 퍼센트는 확률적으로 구조적인 이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이 설명을 지금가지 천 번 이상은 한 것 같다.

 

가족 중에 고위험산모로 분류되어 출산 때까지 꼼짝도 못하고 누워만 있던 이가 있었다입덧도 너무나 심해서 수분섭취 외에는 거의 입도 못 대서 산달에 이르자 산모가 18kg이나 체중이 줄었다지켜보는 주변인들조차 이러다 큰 일 나는 거 아니냐고 겁을 먹던 시절그래도 신기하게 태아는 자라서 3kg대로 태어났다그 과정에서 정기검진 받으러 병원도 다니고 그렇게 몇 달을 노심초사하며 행여나 혹여나 마음을 극한으로 졸이며 산다는 건 참 두 번은 못할 일이다 싶었다.

 

임산부와 일반인의 착각 중 하나는 모든 임산부와 태아를 기본적으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이는 서울에서 365일 교통사고가 100퍼센트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아기를 낳다가 죽는 게 말이 되냐고 묻지만 분만 의사의 답은 이렇다.

아기 낳다가 드물게 죽을 수 있습니다임신이란 생리적인 상황인 동시에 병적인 상황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그저 산모와 아이가 무사한 거 외에는 다른 아무런 소원이 없었다,는 것이 순전한 진심이었다그런 시간을 거치며 몰랐던 일들도 알게 되고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누군가는 무사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당사다가족의료진들 누구 하나 애쓰지 않은 이들이 없기에임신과 출산 관련 모든 일과 직업은 업무 강도가 최고조로 솟구치는 일이라 생각한다.

 

산전에 발견되는 어떠한 선천성 기형도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중략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자이는 아이의 고생이라기보다는 아이의 고생을 옆에서 보고 싶지 않은 어른의 마음일 뿐이다.

 

조산아들 중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아이들 당사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가족들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그래서 내가 키워줄 게 아니라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말을 쉽사리 건네기도 참 어려울 것이다간혹 장애아와 재활치료를 오랜 기간 하던 보호자의 자살 소식이 들리기도 해서 그럴 때는 너무나 마음이 쓰리다


예전 타학과의 젊은 교수 부부가 임신 중 태아의 장애 진단을 받았는데도 출산하기로 결정한 일이 크게 회자되었다다들 너무나 용기 있는 일이라고부디 불행 중 다행이기를경증이기를 기원했지만아이는 중증 뇌병변으로 인해 시선을 맞추는 것 외에는 말을 하는 일도 어려운 상태로 자라났다언젠가 그 교수님이 학내 게시판에 글을 올렸는데평생의 소원이 자신을 부르는 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어쩌면 나중에 시계를 함께 보며 시간을 가르쳐줄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그런 내용을 담았다간혹 이렇게 다 알고도 큰 용기를 낸 선택을 하는 분들이 있다.



정말 안타깝게도 임산부 중 일부는 의사의 말보다 역술인의 말을 잘 듣고 더 믿는다의사의 권고에 반하는 경우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중략자궁내태아발육지연 때문에 유도분만을 해야 했더 임산부도 그랬다역술인이 어느 시점에 낳는 게 좋다고 했다면서 의료진이 권한 수술 시간을 거절했다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자궁 안에서 태아가 사망한 뒤에야 병원에 왔다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임산부와 태아에게 최선의 출산 시기를 결정하고자 노력하는 산과 의사로서 묻고 싶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시인가요?”

 

주변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면 진통이 온다고 해서 계단으로 20층까지 올라갔는데그 뒤에 배가 너무 뭉치고 아팠어요결국 병원에 갔더니 태반조기박리되어 아기가 잘못되었다고......” 아니계단을 오르내린다고 진통이 걸린다면 이 세상에 유도분만이라는 게 없어졌겠지의사의 충고보다 옆집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임산부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반드시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 안타까운 경우가 가끔 있다아마도 우리 몸이 기계가 아니기에 사람마다 치료나 약제에 반응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환자와 의사의 신뢰는 결국은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준다.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 중환자실로 회진을 갔더니 어제 피바다가 되었던 전쟁터수술을 집도했던 그 자리에서 환자가 눈을 깜박거리며 내게 물어왔다. “선생님물 마셔도 되나요?”

평소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았을 질문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말 한마디도 건넨 적 없던 산모의 질문을 받으니 어제의 피로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물을 먹어도 되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살아주어 고맙다고.



5-6 주의 배아와 9-10 주 이후의 태아가 얼마나 다른지초음파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서 이들의 움직임을 느끼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간절히 바란다.

 

부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임신과 출산 그리고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혹시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이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지또한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하고 나온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느끼길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에세이를 읽다 보면 살아보지 못한 다른 삶에 대해 가장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읽는 것뿐이지만 없던 이해가 생기고 공감이 든다그런 독서 경험이 있으면 이후에 실제로 그 직업에 종사하는 이를 만났을 때 태도가 달라지기도 한다특히나 이야기 하나하나 가볍게 쓰여지지 않은 이런 에세이는 더욱 그 효과가 선명하고 오래 남는다.

 

타인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만이 에세이의 순기능은 아니다적어도 나는 언제나 독서의 효능이 나 자신에게도 돌아오는 방향성을 예외없이 지니고 있어서불안한 세상불신이 들쑥날쑥한 세상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잘 하는 이런 분들이 의지가 되고 안심이 되고 치료약이 되기도 한다간혹 어떻게 아직 세상이 안 망한 건가 의아할 만큼 엉망진창인 면면을 보게 될 때도 늘 더 많은 이들이 이렇게 고군분투하며 삶을 떠받치고 있다는 희망을 떠올릴 수 있다사회에 환원할 것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늘 참 감사하다.

 

세상에 쉽게 오는 생명은 없다다만 우리가 미처 모를 뿐.



이 책의 수익금은 출생 전후 염색체 이상을 진단받고 삼성서울병원에서 태어나 치료받는 아이들의 치료비로 기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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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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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는 잠자리에서 되도록 먼 곳인 원형 통로의 반대편 구석에 용변 장소를 정해두었다처음에는 난간을 잡고 시도해보았지만상체가 앞으로 쏠렸다쭈그리고 앉은 자세를 유지하려면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야 했다그래야만 앞으로 쏠리거나 뒤로 자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작년부터 연재된 글을 일주일에 두 번 빠지지 않고 읽었다. 한 여름의 어느 날 땀이 차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리에 붙어 반복해서 읽던 그 시간이 후각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마치 오래 기다린 누군가를 비로소 소개받는 것처럼 출간 소식이 반갑다. 10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한 집안이 겪는 시간을 현대사에 녹여 그려내는 시공간적 배경을 담은 이 글은 나보다 부모님이 더욱 반갑고 흥미롭게 읽으셨다. 현재는 낭만과 편리로 대표되는 이동수단인 ‘철도’를 상징물로 삼아 작가는 식민지 시대의 산업 착취에 대해 역사서 못지 않은 설명과 설득을 탄탄하고 구체적으로 이어나간다. 

 

철도는 조선 백성들이 피와 눈물로 맹글어진 거다.“



한일합방 이전 일본 제국주의는 경인선과 경부선을 이미 개통하고중국 진출을 위해 호남선과 압록간 철교를 개통한다그 와중에 조선인들은 철도 건설을 위해 주변 부지를 수탈당했고덧밭조상의 무덤까지 헐값에 강매당한다친일파가 운영하던 토건회사들은 일본인들이 차지했으며더 나아가 농가에서는 소와 말닭과 돼지들을 강제로 탈취 당하고 장정들은 강제 동원된다농어촌 사회는 붕괴되고 나라를 읽고 터전과 생산수단마저 빼앗긴 이들은 제대로된 저항을 할 여유도 없이 삶의 방편을 마련하고 생존하느라 온갖 발버둥을 쳐야만 했다이렇게 수백만명의 삶을 망치며 건설된 철도는 아이러니하게 누군가의 기회가 되었고이런 산업 구조는 해방 후 산업화 과정에서 반복된다. 이 때 도시로 모인 이들은 도시 노동자가 되어 위장 파산불법 해고일상적인 강제 노동만연한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된다.

 

소설의 시작이 어째서 25년 간 공장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된 이진오가 하늘도 아니고 딸도 아닌사람이 거처하는 공간이 아닌” 곳에서 100일 넘게 농성을 벌이고 용변을 처리하는 방법을 고심하는 장면이 등장하는가는 이런 작가의 역사적 추적에 의한 구성이다개별적인 모습은 다양해도 우리가 삶아 온 삶의 양상이 이런 구조 속에서 필연적으로 태어난 것이라면 굴뚝 농성의 장면과 우리 삶의 모습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나 싶다.

 

코로나 시절을 견디며 다른 이슈들은 해결되었는지 아닌지 잘 관심이 가지 않기도 했고 노출되지 않는 상황들을 애써 찾아가며 알아보려는 노력도 없었다그러나 코로나 이전부터 지금까지어쩌면 앞으로도 한동안 길 위에 선 이들과 탑 위에 올라간 이들은 사회와 격리되어 지치도록 이야기를 들어 보라며 견디고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막강한 자본주의(와 결탁한 다른 권력들)의 힘이 작용하여 진작 삶이 멈추고 사회와 격리되어 철탑으로 오른 이들과신종 바이러스에 휘둘려 자발적 준자가격리를 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겹치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는 느낌이다만약 우리가 일상을 결국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세계 경제가 작동 방식을 바꾸어 결국엔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게 되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존재가 된 우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불안과 함께 차오르는 생각에 문득 문득 위가 비어 긁히는 느낌이 드는 듯해 초조한 기분으로 읽기도 했다.

 

이 글을 읽은 이들은 이진오가 왜 굴뚝에 올라가야 했는지 대답을 찾을 수 있을까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함께 읽은 독자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찾은 질문과 답들이 궁금하다.

 

부침이 심한 근현대사를 살고 있지만어쨌든 나는 국적을 가지고 태어난 세대라정부의 부재와 치열한 독립운동을 글로 배울 수밖에 없다어느 덧 정부수립 100년이 넘었지만제대로 마무리 되지 못한 일들을 제대로 찾아내면 감당하기 힘들 만큼 산재해 있을 듯하다당사자들은 물론 국내외적으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어 바로바로 해결될 일은 드물 것이다그래도 피해자들이 분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잊지 말고가능한 근현대사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해는 기회가 있는 대로 열심히 배우고 생각해보면 좋겠다이는 현재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이것은 유년기의 추억이 깃든 내 고향의 이야기이며

동시대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비워진 부분에 채워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 한다.


뒤돌아보면 까마득하게도 느껴지는 세월을 작가는 글을 쓰고 나는 읽어 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석영의 신간 소식은 언제나 반갑고 기대로 가득하다적어도 이 작가는 자기복제를 하지 않는다세세하고 치밀한 전개 방식에도 언제나 유쾌하고 시원한 퉁찰들이 빠지지 않고 인식과 관심의 지평이 마치 친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처럼 현실감이 있지만 사회와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 온 적도 없다혹자들은 요즘은 대서사적인 장편소설은 경향이 아니라고 하지만나는 언제나 서사 장편이 반갑다도전과 배움과 먹먹한 감동을 받을 결연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그 기분이 좋다시작부터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치밀하게 연결되는 장면들이 좋다연재가제본정식 출판 본까지 시간을 따라가며 함께 할 수 있어 기쁘다.

 

이재유라는 이름은 몇 년 뒤 시문의 일면을 가즉 채우며 체포 탈출 잠행 지명수배’ 등의 머리글자와 함께 조선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그는 체포되어 오랜 세월 구금되었다중략용산에서 접촉하던 사람은 이이철과 종씨이자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인텔리로 나중에 서대문형무소와 예심 재판정에서 만나게 되었지만 그것도 수년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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