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을 어릴 적에 문고판으로 읽어 보고 영화도 보았지만, 다시 흥미를 가지게 될 줄 몰랐습니다. 특히 [그래픽노블 모비딕]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장바구니에 담아만 두고 이제나저제나 하고 있네요. 어쩌면 제가 어릴 적엔 의무감으로라도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공감하고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아이들과 함께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매일 자잘한 일상을 해치우고 유지하는 일에만 체력의 대부분을 고갈하는 저도 오랜만에 깊고 푸른 바다와 신비하고 아름다운 바다생물을 다시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란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도 합니다. 아름답고 가치있고 참 좋은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 세계문학클래식을 새롭게 더 아름답게 출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판문화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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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Alaska) 일주 - 자연 그대로의 자연
이종호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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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페어뱅크스를 거쳐 다시 앵커리지까지,

1,800여 MILE(약 2,880KM)에 달하는 거리를

직접 차를 몰아 떠나는 일주 여행길.

 

책 전체가 사실들을 묘사하고 설명하고 기록하는 내용이며 이를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한 사진들이 있다. 저자의 주장이 특별하게 드러나거나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는 비유와 상징을 이용한 소위 글쓰기 기술도 없이 시종일관 담백하다. 물론 이런 표현들이 없어도, 적어도 내게는 ‘알래스카’라는 장소가 주는 특별한 느낌이 강해서 정신없이 구경하며 읽었다. 사진 한 장마다 글 한 문장마다 내게는 중요한 정보이고 기록이다.

 

오래 전 이곳에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한 잘 웃는 좋은 친구가 있어, 알래스카의 역사도 자연환경도 정치사회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도 그냥 먼 곳까지 가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곳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때의 상상보다 환경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거친 모습이다. 물론 흥미진진한 기후도 한 몫한다. 뜻밖에도 관광객들과 한국인 이민자들이 생각보다 많은 듯해 조금 놀랐지만 상대적으로 ‘자연 그대로’의 여행을 원하는 예비 여행가들에게는 읽지 않고 모르는 것보다는 읽어서 알게 되는 편이 백만 배는 더 좋은 충실한 가이드와 같이 신뢰가 가는 좋은 책이다.

 

나이와 체력에 별반 비례관계가 없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서글픔이 있지만, 그래도 46년생이신데 대단한 체력과 열정이시란 생각에 부러움을 살짝 뛰어넘는 질투가 느껴진다. 200일 전부터 여행을 준비해서 처음 가본 곳에서 17일 동안 직접 운전하는 자유여행! 점점 더 게을러져서 이제는 꼬맹이들 체험학습에 끼여 다니는듯한 기분의 짧은 인공적인 여행에 스을쩍 시간을 내주고 마는 내 처지에 이 책을 읽은 것이 궁금하지만 못 가본 곳을 비교적 생생하게 볼 수 있어 다행이었는지 마음이 뜨끔거리는 자학이었는지 어리석은 의문이 생길 지경이다.

 

그런 질투심에 사로잡힌(?!) 김에 한 가지 지적하자면, 내용이 적어도 내게 익숙하거나 기대한 여행기에서는 조금 다른 형식이라 마지막에 가서는 살짝 어리둥절했다는 점이다. 여행기란 여행지에서 혹은 여행을 하면서 혹은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하는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은 그런 내용을 참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 사진전 도록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물론 생생한 사진들에 넋을 놓고 오래 바라보긴 했지만, 다 읽고 나니 사진 설명을 열심히 들은 것같다. 저자가 글줄보다 사진에 더 느낌을 담아 올린 것이라면 감상이 얕은 독자로서의 내 탓이지만, 어쨌든 나는 언제나 언어로 하는 소통행위가 제일 쉽고 좋은 지라 저자의 생각과 감상을 문장으로 전달받고 이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아마 이 점은 누군가에게는 장점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쉬운 점이 될 것이다.

 

물론 200일의 수고스런 준비기간도 없이 17일의 운전 고행도 없이 한 발도 대딛지 않고 따뜻한 실내에서 무려 알래스카의 풍경을 사진으로 감상하는 일은 분명 행복한 일이었다. 덕분에 오래 전 사진을 찍으러 간 내 친구는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알아봐야겠다는 부지런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실제로 가게 되는 날까지 얼마나 즐거운 상상을 하는지는 내 몫으로 남는다. 저자가 오래 건강하게 즐겁게 가족들과 행복한 여행을 다니시길 진심으로 응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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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작은 아씨들 - 누구보다 자유롭고 다채롭게, 삶의 주인공을 꿈꾸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서메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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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은 어느덧 출간되지 150년이 넘었고, 5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나는 어린 시절 문고판으로부터 쭉 끊이지 않고 다양한 출간본을 읽어 보다가, 올 해 여름 드디어 완역본을 읽게 되었다. 900쪽이 훌쩍 넘는 분량도 반가웠고, 잊어버렸는지 미처 몰랐는지 아직도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가득해서 여름의 막바지에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네 자매를 연령별로 동일시하며 감정 이입한 것과 달리, 처음으로 원 저자에 대해 가장 상세히 알게 되었고, 저자의 삶과 선택과 가족 관계와 시대적 배경에 대해 소설 자체만큼이나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었던 점이다. 간혹 자기고백이 강한 소설을 읽는 경우가 있는데, 작은 아씨들은 개인사와 사적 감수성에 더해 시대정신과 고민을 함께 이해할 수 있어서 이해와 인식의 폭이 한층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나와 작은 아씨들>이란 제목을 보았을 때, 드디어 수많은 독자들이 감정 이입한 세월을 글로 단정히 출판한 책이 나왔나보다 일단 반가웠고, 혹시 서평일까 에세이일까 몹시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여름에 완역본을 친구들과 함께 읽고 오랜만에 감상평을 수다처럼 흥겹데 나눴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여, 장녀로서의 매그와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찾는 조와, 온화하지만 언제나 주변을 아우르는 베쓰와, 현실적인 한편 재능을 향해 용감히 나아가다 고단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유연히 모두 한 자리에 있어서, 새삼 작은 아씨들이 포용할 수 있는 캐릭터들의 상징과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이제는 새삼스럽게 느껴져서 아무리 친한 사이라해도 꿈이 뭐냐는 질문은 더 이상 서로에게 하지 않지만, ‘그 때 그 시절’의 사랑과 우정과 꿈을 다시 소환해서 미처 하지 못했던 위로와 칭찬을 건네는 일 또한 기쁘고 필요한 일이다.

 

또한 원작자의 삶과 선택을 존경하고 감탄하지만 아무래도 시대적 상황이 달라 네 자매를 현실에서 만날 수 있다 해도 매끄러운 대화와 공감은 불가능할 것이란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이 없지는 않았는데, 번역가이자 작가인 서메리님의 소개를 읽어보니, 살짝 놀랄 만큼 공감가는 여정이 보여 더 친근감이 든다. 나와 친구들 중 몇몇 역시, 처음의 계획과는 다르게 자신을 거듭 발견하거나 이해하고 새로운 선택들을 하는 과정에서 불안감과 일종의 실패를 지칠 만큼 봤보았다. 연배는 어리지만, 서메리 작가가 그런 결정의 한 지점에서 이렇게 반가운 책을 출간하고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현재를 무조건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나에게 <작은 아씨들>은 책표지를 들여다보는 짧은 순간에도 두근거리는, 어린 시절의 소중한 보물처럼 아련하고 달콤한 선물이다. 그 행복감이 상상 속에서 커다란 대조를 이루어 그럴 때 늘 밖은 춥고 바람부는 한 겨울이고 나는 따끈한 실내에서 달콤한 간식을 앞에 두고 더 행복한 내일을 믿는 그런 장면이다. 그런 세월은 내가 마련하지 않으면 다시는 당연한 듯 주어지지 않겠지만, 그런 시절을 늘 힘들이지 않고 순식간에 펼쳐주는 책이 있다는 것은 크나 큰 기쁨이다.

 

올 해 크리스마스에 맞춰 개봉되는 <작은 아씨들>은 또 어떤 모습일까, 초조하게 기다려진다. 원작에 충실해도 시대적 재해석이 진행되어도 어떤 식이라도 보는 내내 행복할 것이다.

 

여성이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투표권도 없던 그 시절에, 여성운동, 노예해방운동, 금주운동들이 전개되던 그 시절에 올콧 작가가 ‘조’라는 캐릭터를 탄생시켜 오늘날까지 매 달 천 여권이이 넘게 읽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과 축복을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이 에세이를 읽었다.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장벽과 금지와 혐오와 차별이 생각보다 많고 단단하지만, 일상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을 마냥 하지 않겠다고 펑펑 울며 거부하면 되는 시절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운이 좋아야 때론 가벼운 짐을 지는 일일뿐 아니라 대부분은 버거운 짐을 지는 일이지만, 그래도 포기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심정이라면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 길고 길 수도 있겠지만...... 최초 출간된 1868년부터 오늘날까지 작가 서메리처럼 ‘조’는 수없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아마 이제는 <Little Women>을 <작은 아씨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에서 우리가 한발쯤은 더 나아가야할 지도 모른다. 그 시대적 배경으로도 이토록 강인하고 성숙한 네 자매을 아씨들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지금에 와서는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맘에 쏙 드는 대안이 없지만, 나는 반드시 재기발랄하고 생각 깊은 누군가가 언젠가 이 번역을 바꿔줄 것이라 믿는다.

 

“벨이 그러는데, 가난한 여자는 적극적으로 남자를 잡지 않으면 가망이 없대.”

메그가 한숨을 폭 쉬며 말하자, 당찬 조가 씩씩하게 받아친다.

“그럼 우린 노처녀(Old maid)로 살면 되지!” 146

 

“먹고살려면 남자들은 일을 해야 하고, 여자들은 시집을 가야 하다니, 정말 끔찍하게 불공평한 세상이야.”

 

첫째 언니 메그가 신세 한탄을 할 때면, 에이미는 그 곁에서 밝은 목소리로 기운을 북돋워준다.

 

“걱정 마, 언니. 돈은 내가 벌어다 줄게.” 169-170

 

하지만 이상하게도, 네 자매의 행운은 이런 불편한 감정을 조금도 자아내지 않는다. 우리는 순수한 친구의(혹은 언니의, 동생의) 마음으로 그녀들의 기쁨을 공감하고, 오히려 그토록 커다란 선물을 안겨준 이들에게 내 일처럼 고마운 기분을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작은 아씨들에게 찾아온 행운이 단순한 요행이 아니라 그녀들 본인의 노력과 따뜻한 주변 사람들의 배려로 이루어진 필연이라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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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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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영원히 답이 없는 것이 위계적인 사회생활의 고단함과 상사와의 관계이다. 실제로 스타트업에서 호칭은 거의 두 가지 방식을 시도한다고 하는데, 첫 번째는 모두에게 ‘님’을 붙여 존칭을 사용하는 방법, 두 번째는 존칭이 따로 없다고 여겨지는 영어 이름이라 한다. 회사마다 결과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실질적인 관계가 평등하게 변한다기보다는 이름만 부르고 존칭을 생략하는 경우 연장자가 말을 놓기에 더 쉽다는 점을 드러낸다. 열심히 유행을 따라가는 것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직급 대신 이름을, 영어이름을 쓴다는 것만으로 평등한 관계 개선에 어떻게 변화를 가져오겠는가.


아이디어도 좋고 꿈도 크고 이익 창출을 위한 노력과 열의를 다하는 회의를 이어가는 개발자들이 다니는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현실과 혼동될 만큼 섬세하고 흔한 모습들에 공감이 크게 가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디테일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그 중 어느 하나의 아이디어라도 회사의 대표가 시큰둥해하는 때이다. 구체적이고 정당한 잘못이라는 설명도 근거도 없이 패널티를 부가한다든가, 대표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과 감정적인 반응을 적극적으로 피력함으로써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고, 그 결과 수긍이 가는 대안이 아니라 어이없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 그나마 웃고 지나갈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구체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이 생생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다.


“사람들이 포인트를 그렇게 좋아하나?”
“네! 좋아합니다!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요?” 중략.

“그렇게 좋은 거면 앞으로 일 년 동안 이차장은 월급, 포인트로 받게.” 중략.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게 말이 되나요?” 중략.


이 에피소드는 농담이 아니며, 놀라운 일은 이 정도는 작은 규모의 사건이라는 거였다. 십년 내내 구전되는 더한 사건들도 많다고 했다.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같은 일반 회사원들과 사고구조가 아예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나 행동에 의문을 갖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이었다.


출퇴근이 힘들어도 회사와 집은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는 생각은 나와 주변의 경험으로만 봐도 몇 십 년째 유지되고 있다. 실제 공간 거리보다는 회사에서의 나와 사생활의 나를 가능한 분리시키고 싶은 심정의 발로라 생각한다.


사람들 간의 크고 작은 수많은 갈등이야 매일 다반사이지만 더 힘든 것은 그 갈등의 발생과 처리가 부조리하다는 것에 있다. 더욱 심각한 상황은 분명히 부조리한 일들임에도 널리 퍼져 오래되면 부조리한 것이 아니게 되고, 누군가 그 부분을 지적하는 순간, 월급 노예에 비견한 처지에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세대가 다르긴 하지만 실직이란 언제나 공포이며, 이는 밀레니엄 세대라 불리는 이 소설의 20, 30대 인물들에게는 더 큰 고통과 슬픔이다.


그래서 가능한 주변에는 눈을 감고 업무에만 집중해서 성과를 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내가 한 업무와 나 자신이 동일시되고 그런 순간부터 스트레스는 급상승하기 마련이라, 만성화된 경우 크고 작은 정신질환을 피해갈 수가 없다. 그런 것들은 제대로 인지되지 않고 개인의 성격이나 환경으로 환원되는 일도 다반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자신을 지켜나가고 가능한 많은 위안과 기쁨이 되는 일들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생명력이 강한 이들이 있는데, 안타까운 일은 실제로 ‘제대로 된 취미생활’이란 이미 확보할 여유가 있는 상급자들만 누리는 호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해당 상급자들이 업무만이 아니라 자신의 취미생활 또한 직원들에게 강요하는 경우 또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가 있다. 이야기든 현실이든 회사인간,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온전한 자신을 지켜내는 미션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생존기가 된다.


“내가 회사 생활 십오 년 하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거든요. 중략. 그런데 그 포인트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너무 막막해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그나마 호러 스릴러 뺨치는 장면들이 끝까지 등장하지 않아 다행인 직장 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취업대란이란 표현이 흔해진 사회이니만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정규직 직장인이 된다는 것은 부러움과 안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면면들은 신입일 때의 자책과 자괴감과, 실수를 부르는 경력직의 오만함과, 개발자로서의 죽을 듯한 고민들과, 더 많은 경력을 쌓아가기 위한 세월의 무게에 짓눌리는 일과, 급기야는 삶을 갈아 넣는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력한 위기감을 느끼는 일로 이어지는 일도 낯설지 않다.


경제적 독립과 사회적 안정과 운이 좋은 경우 자아실현을 위한 적소로서 필수적이고 그 과정에서 얻는 기쁨과 즐거움도 있지만, 그 대가로 지불하거나 포기하면서 느끼는 심신의 고통과 슬픔, 아픔이 거의 언제나 막상막하인 경우들이 부지기이다. 그런 점에서 직업으로서의 ‘일’이란 그야말로 기쁨과 슬픔의 공존활동이며, 바로 이 지점이 작가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환하게 그린 듯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글 자체가 늘 고구마 씹는 답답한 분위기는 아니고 가독성을 보장할 만큼 한편 놀랍고도 통쾌하게 코믹하고 명랑하고 활기차기도 하다.


곱씹어 볼수록 직급이 의미 없을 만큼 모두가 고단하고 안쓰러운 인물들을 담백하고 경쾌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 현실 사무실과 현실 직장인들의 모습이 제대로 녹아들어 있는 단편이라, 건더기 식사를 도저히 씹어 넘길 수 없을 것 같은 날, 혈당량을 끌어 올려줄 입에 짝 붙는 음료수 한 잔과 단편 하나로 잠시 시간을 보내며 지친 나를 쉬어가게 하는 일에 적격이라는 생각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삶이 극적으로 나아지리라는 꿈같은 건 아무도 꾸지 않는 시대, 그렇다고 완전한 절망도 허용되지 않는 시대. 상처받고 시달리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존엄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며 일상을 견디는 회사 인간들, 그리고 우리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담백한 내용들이 구구절절 가득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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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에 간 복돌이
오진혁.오인구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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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번의 긴 여행이 아니라 해마다 겨울에 가족들과 긴 여행을 계획하고 떠난다는 건 단지 ‘자유로운 영혼’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가이드가 따로 있어서 선정, 준비, 일정, 통역 등을 모두 대리해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준비 과정은 언제나 설렘보다 지난하고 힘이 많이 드는 부분이다. 이것도 많이 하면 느는 능력 중 하나일지 모르겠지만, 혼자 가는 같은 여행지가 아니라면 경험치가 큰 의미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여행을 마치고 와서 책을 만드신다니!

 


몇 해 전 친구네 가족들이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을 하고 와서 ‘우리는 새롭게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고 지치도록 자랑하는 것이 신기하고 부러워서, 우리 집 꼬맹이가 조금 만 더 자라면 우리도 떠난다!라고 호기롭게 생각만 한 것이 여러 해 전이다. 구체적 조사도 준비도 계획도 전무하다.

 


한 때는 지구 반 바퀴쯤 돌아다녔다며 공항 식사와 이동이 넘 지겹다는 둥 하면 살았는데 어느덧 해야 할 이유보다 안 해도 되는 이유가 핑계가 더 많아진다. 젊었고 홀홀단신 아니면 젤 좋은 친구와 함께 하는 속편한 여행이었지만 여행의 고단함을 아는 나로서는, 휴양지도 아니고 가족 동반을 매년 하는 이분들이 보통 분들이 아니실거라 생각해서 이제 평균 체력도 안 되는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요일과 시간별로 기록된 목차를 보고, 도움을 넘어 카피할 부분이 있을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나이를 가리키는 숫자가 무거워질수록 무엇이든 기회를 삼아 용기를 그러모을까 하는 생각이 많아진다.

 


아빠와 엄마는 차를 마시면서 차창을 바라봅니다.
“엄마, 아빠, 뭐가 보여? 깜깜한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보고 있어. 엄마는, 이거 너무 하고 싶었어!” 71

 


“달리는 횡단열차에서 자작나무와 눈 덮인 벌판을 계속 달려가는 이 순간, 책을 보고 k를 마시는 경험을 우리 가족들이랑 꼭 해 보고 싶었어요!” 76

“학교 공부 못지않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공부야. 비록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경험에 투자하는 것은 인생을 가장 멋지게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엄마는 믿어.” 85

“복돌아, 아빠는 깨어 있을 때 우리가 정차하는 기차역을 모두 밟아 보고 싶어. ‘우리가 언제 다시 시베리아 한복판을 지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말이야.” 162

 


“앞에 다가올 일을 예측하지 못하고, 그저 역방향으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는 것처럼 주어지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인생인 것 같아.” 197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기억하고, 좋든 싫든 간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항상 오늘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자.” 198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허락된 사적 공간인 내 집은 제일 소중한 공간이다. 내 허락 없이는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유일한 공간. 그런데 왜 이런 공간인 집을 잠시라도 떠나는 여행을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들도 늘 이렇게 많은 것일까. 왜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고 여행을 가는 걸까. 여행을 ‘통해’ 뭔가 다른 것을 얻기를 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여행 자체가 목적인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탐험과 여행에 대한 욕구가 크고도 오래 지속된 편이고, ‘여행가’란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고 분노하고 억울해했으며, 이왕 운 좋게 지구에서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가능한 지구를 많이 보고 죽자는 생각에 열심히 다녔고(하지만 30개국 30일과 같은 형식의 배낭여행은 내 기준에서의 여행과 너무 괴리가 커서 해본 적이 없다),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철새로 태어나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여행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이 여행 다니는 이유나 경험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었는데, 8살 복돌이가 작성한 여행기라서 그런지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오래 읽은 듯한 새로운 경험을 했다. 남의 여행이야기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고, 생각보다 더 생생한 간접 경험의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베리아횡단열차여행, 상당히 오랜 세월 내 계획에 등장해서 사라지지 않고 있고 엉덩이 통증을 무릅쓰고라도 동경하는 여행 방식 중 하나였는데, 어쩌면 가능하지 않겠구나 하는 쓸쓸한 생각이 들 무렵 이 여행기를 읽게 되어 헛헛한 마음이 3분의 1쯤은 채워진 느낌이다. 투덕투덕거리는 따끈따끈한 이야기들로.

 


이제는 열차 옆 칸에서 만나 얼굴을 익힌 여행 동료들인 것같은 느낌의 복돌이네 가족이 건강하게 새로운 겨울마다 늘 행복하게 새롭게 즐겁게 여행을 경험하고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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