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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발트의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진정한 발견의 기쁨을 누릴 기회를 여전히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르몽드』
제발트를 이야기할 때 '위대한', '경이로운', '전 세계적인' 같은 수식어사 붙는다. 미리 밝히자면, 나는 소위 '제발디언(Sebaldian)'은 아니다. [이민자들]을 열 번은 열다 덮다 했지만 내용이 마음에 닿지 않는다거나 번역품질로 난독이 온 것이 아니라 집중력의 문제였으므로 완독을 했는데, 감동보다 묵직한 무게감이 너무 커서 다시 읽어볼 엄두가 안 났다.
[토성의 고리]는 배경, 소재, 제목 모두가 와 닿았지만, 첫 독서의 영향이 가시지 않아 미뤄두고 있다가, 본문 전체를 다시 다듬고 표현도 오류도 바로잡아 새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마음이 동했다. 설마 더 난해하게 다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감동의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대와 함께.
제발트는 현재 세계환경수도라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가르쳤다. 다시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교수자격을 취득하고 영국에서 교수로 임용되어 영국문학번역센터를 창립했다. 성취도는 다르지만, 독일과 영국을 번갈아 다니며 공부를 하고 여행을 한다는 점에서, (한 때 그리 살았던 나도) 많은 공감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토성의 고리] 독일어판 부제는 '영국 순례'이며, 그 중에서도 영국 동남부 지방이야기이다. 우리는 그냥 '영국', '영국인'이라고 하지만, 영국과 영국인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U(nited)K(ingdom),England, (Great)Britain, English 등으로 나뉘는 것을 이해하려면, 이 지역 영국 역사와 지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학자의 문학고고학적 여행기라니, 여타의 여행기와는 다른 신기하고 독창적인 문학임에는 틀림없다. 책을 읽어본 이들은 경이와 함께 깨달을 수밖에 없겠지만, 마치 정밀묘사처럼 풀어나가는 작가의 섬세하고 순도 높은 표현은 독보적이다. 장면은 가장 정확히 표현한 사진에 초일류급 해석이 달린 느낌이다.
어쨌든 그 여행 뒤로 한동안 나는 멋진 자유로움의 기억뿐만 아니라, 그 고적한 지방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던, 오랜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파괴의 흔적들을 보며 느낀 먹먹한 전율의 기억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10
단, [토성의 고리]는 여행기가 아니라 '소설', 그것도 '인류의 역사소설'이라 극찬을 받는 작품이며, 먼 거리를 이동하는 '정신적 여행'을 기록한 최고 작품이라고 일컬어지며, 쓸쓸하고 묵직한 비가로서 문화, 문명, 자연, 인간사를 넘나드는 깊디깊은 이성적 성찰을 다룬 작품이다.
(...) 현실 자본주의에 모든 것을 걸었던 대처 남작의 집권기간 동안 점점 부풀어 올랐던 이 희망은 결국 투기광풍으로 변질되더니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손실은 처음에는 지하의 화재처럼, 이어서는 들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고, 보트 조선소와 공장이 하나둘씩 문을 닫았으며, 결국 로스토프트가 내세울 것이라고는 영국 지도의 가장 동쪽을 표시하는 지점이라는 사실만 남게 되었다. 55
매년 수천 톤의 수은, 카드뮴, 납과 산더미처럼 많은 비료와 농약이 강을 거쳐 독일의 바다로 흘러든다. 대부분의 중금속과 여타의 독성 물질이 도거뱅크(영국 동부의 해역의 얕은 수역에 침전되는데, 여기서 사는 물고기의 3분의 1은 이미 이상발육과 기형을 안고 태어난다. 면적이 수십 제곱킬로미터에 이르고 깊이가 9미터에 달하는 해안 가까이에 독성 해초 무리가 자주 형성되는데, 바다 동물들은 여기서 떼로 고통스런 죽음을 맞는다.(...) 번식과 관련된 의식은 이제 기껏해야 죽음의 무도에 지나지 않는다. 68-69
살랑 팔랑 유쾌 상쾌 술술 읽히는 작품은 분명 아니다. 내 경우에는 익숙하다고 예단한 부분에서 난데없이 내가 아는 바의 얕은 깊이, 바닥을 들춰내는 다소 버거운 작품이기도 했다.
이 재현은 시선의 위조에 기초한다. 살아남은 자들인 우리는 모든 광경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모든 것을 동시에 보면서도 실제로 현장이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150-151
폐허에 가까이 갈수록 망자들의 신비로운 섬에 와 있다는 생각은 점점 사라졌고, 그 대신 미래의 어떤 대재앙으로 파멸한 우리 자신의 문명의 잔해를 보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본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가 남겨놓은 금속과 기계의 쓰레기더미 사이를 돌아다니는 미래의 이방인처럼 나 또한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 여기서 살고 일했는지 (…) 이해할 수 없었다. 278
재앙과 거대한 폭력으로 파괴되고 남은 잔해와 유적과 폐허에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독자라면, 꼿꼿이 서서 마주하고 성찰할 수 있는 독자라면, 함께 하기에 이만한 여행기는 없을 것이다. 또한 어느 물질문명은 이렇게 사라져갔지만, 어떤 독자의 정신문명은 창조되고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모든 작업은 결국 생각에 기초할 뿐이고, 생각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바뀌는 법이니, 이렇게 바뀐 생각 때문에 우리가 이미 완성했다고 간주한 것들을 다시 부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290
물론 이는 독자가 역사를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가능하면 학살과 파괴의 고통을 겪고 희생된 희생자들의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봐주면 좋겠다. 반복적인 역사적 잔혹함은 실제로는 보상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허무하게 잊히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목숨이 붙어 있던 아이들 중 많은 아이는 배가 고픈 나머지 목에 걸고 있던, 개인정보가 적힌 마분지 판을 씹어 먹었으니, 결국 극도의 절망 속에서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지워버렸던 것이다. (…) 그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기억의 그림자들이 여전히 계속 배회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120-121
때때로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259
체력과 지력과 기력이 충분하여 이 책을 완독하게 된다면, [토성의 고리]라는 제목에 대한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럴 때 이 책의 서두를 다시 펼치고 제발트가 인용한 부분을 찾아보거나, 아니면 서양에서 '토성'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부록이 될 것이다.
멈출 줄 모르고 머릿속을 맴도는 끝없는 생각, 잘못된 실을 붙잡았다는, 꿈속까지 파고 드는 느낌이 사람을 어떤 막다른 골목과 낭떠러지로 몰아가는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331
이토록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에 공을 들인 작품은 흔하지 않다. 연상능력이 뛰어난 독자는 뇌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 지도. 손바닥보다 좀 더 큰 이 책이 담고 있는 순도와 밀도가 높은 문장들이 얼마나 충실한 지, 절대 대충 읽을 수가 없다. 집중력이 흩어지면 바로 난독 증상이 따라온다. 함께 책을 읽어 내는 모든 동료 독자들에게 문득 문득 친근함을 느낄 정도다.
쉽게 권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함께 읽은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단언하건대 이토록 정성스럽고 충실하게 써 내려간 독창적인
인류역사자연사정신문학여행서는 다시없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