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재발명하라 - 가부장제는 어떻게 우리의 사랑을 망가뜨리나
모나 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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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인지 대답하려면 어렵다. 십 대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란 더 어렵다. 좋아한다는 감정과는 영향력이 크게 차이가 나는, 존재와 삶의 방식을 급진적으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감정이자 행동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 적어도 이렇게 아주 중요한 사랑을 재발명하라, 는 명령 같기도 한 프로젝트는 무척이나 궁금하다. 더구나 억압적인 질서와 시스템을 벗어난 방식이라면 더욱 흥미롭다. 반대를 무릅쓴 사랑에 대한 찬사가 동서고금 존재한 것은 사랑은 거짓과 위선에 대한 강한 저항력을 내재한 해방의 동력일 수 있다.

 

정의는 상상을 위해 거쳐야 할 필수적인 출발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이 될 수 없다.” 벨 훅스bell hooks, Gloria Jean Watkins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 이 책이 아주 진지하고 무거울 거라는 잘못된 느낌을 전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표지가 주는 경쾌한 느낌처럼, 작가가 인용하고 기술하는 방식과 다양한 대중 문화 자료는 탄탄하고 재밌고 유연하다. 충분한 지식과 단단한 확신을 재밌고 자유롭게 변주하는 작가의 능력이 멋지다.

 

특히 성적 자극은 난무하나 억압과 강제 - 가부장제 - 도 몹시 강한, 이상한 모순 같는 메시지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에서,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유용한 질문과 고민과 방향을 찾아가는 중요한 가이드이자 참고 자료가 된다.



 

사랑은 일상이고 삶이고 지속적인 행동을 필요로 하는데, 사랑의 열정 혹은 열기만 강조해서 판매하는 온갖 문화상품들이 왜곡하는 이미지들은 사랑도 사람도 망가뜨린다. 세상에 순정파 재벌3세가 몇 명이나 될 것이며, 선한 능력자인 남성 구원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또한 이성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폭력과 범죄를 대하는 가부장제 사회의 반응과 태도 역시 심각한 문제다. 피해자를 비난하고 (주로) 남성 가해자를 대신 변명해주는 사회적 부조리*가 반복되는 한 사랑이 깃들고 깊어지고 확산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 힘패시himpathy(himsympathy의 조합): 폭력적인 남성을 포함해 모든 남성의 감정, 경험, 관심사 등에 우월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사회의 부조리함. 케이트 만(철학자)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통계가 될 정도로 빈번하게 사랑이 실패하고, 삼무, 오무처럼 사랑을 아예 시도하지 않는 삶이 확대되는 것은, 그러한 사랑의 실패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작가는 가장 큰 원인이 가부장제의 영향을 받는 사회라고 조명하며 그 사회적 조건들을 분석한다.



 

점점 더 크게 말할 여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리라고 희망하자.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마침내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의 속에 온전히 자리를 잡으리라고 희망하자.”

 

기자이자 작가님 모나 숄레의 전작들도 읽어볼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무척 희망적인 사랑을 재발명하자는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사유의 흐름을과 집중하는 주제에 대한 이해한 더 분명하게 깊어질 듯하다. 번역 출간이 반갑고 고마운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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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언제 시작되는가 - 한일 근대사 속살 이야기
박경민 지음 / 밥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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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나 실증주의는 역사를 기술하는 하나의 시선일 뿐이지만, 왜곡이 빈번한 현실은 좀 더 사실과 증거를 기반으로 두는 태도가 탄탄하게 일반화되기를 바라게 한다. 편견과 선입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다른 이익 계산이나 의도를 가진 왜곡은 사회적 낭비이자 고단한 스트레스다.

 

흔히 식민지 침략을 자행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가 된 이들이 게으르고 무능해서 자초한 일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키고 약탈하고 대규모 살상을 자행하는 부지런함과 능력이 자랑할 만한 일인가. 그런 부지런함의 한 축은 곧 낭비와 과소비로 이어져 현재의 기후환경문제 역시 초래했다.

 

근현대사는 멀지 않아서 더욱 해석의 갈래가 많을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다. 당시 역사적 사건의 책임이 큰 이들이 생존하는 경우나 직계 후손이 분명한 경우, 유럽의 경우처럼, 세계대전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유효기간 없는 처벌을 법으로 명시한 경우가 아닌 아시아 상황은 더욱 그렇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개항과 동학농민운동 중에 벌어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두 사건을 크게 다룬다. 두 사건 이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고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갑오개혁이 단행되어, 1910년 조선이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의 분기가 된다고 본다.

 

그 이전 조선에서 아무런 반대와 저항의 행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근대사에서 누구나 배웠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은 이 두 사건의 전후로 숨 가쁘게 연결된다. 상대적으로 공식적이고 상세한 기록으로 남은 사건들에 비해,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은 알려진 바가 적다.

 

그 이유는 대개 그 사건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던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본질을 감추기 위한 왜곡 보도가 이어졌으며, 계획된 범죄가 아닌 우발적 사건이라는 뻔뻔한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인 학계에도 책임이 있다.



 

다른 한편, 이런 왜곡을 20여 년간 발굴과 연구를 통해 보다 정확한 사실로 밝혀낸 일본인이 있었다. 덕분에 한국 측의 일방적 주장이 아닌 종합적인 역사 연구 분석이라는 정립이 가능했다.



 

득표를 원하고 지지율을 높이는 것이 최대 관심사인 정치권력은, 아전인수격 해석과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크고, 이는 이미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례가 있음에도 반복되는 구태이다. 문제는 이들이 공교육의 중요한 기초가 되는 교과서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가해국의 시민들이 잘 모르고 오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문화와 도덕에 따라 사회화된다. 특정한 규범을 따르고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한다. , 교육과 문화, 사회와 도덕, 여론과 종교 등은 우리를 조건화한다. 그러니 우리는 그 점을 알고 기억하고 주의해야한다. 다름이 틀린 것이 되고, 폭력이 개입하면 비극은 재발한다.

 

지적인 훈련은 중요하고, 이 책과 같이 바로잡는 기록은 소중하다. 현실의 전쟁을 당장 그만두게 못 하는 것이 아프고 안타깝지만, 그래서 더욱 역사를 통해 과거의 폭력과 시행착오와 잘못에 대해 배우고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역사와 전통과 문화 대신 부동산과 돈을 선택하는 지금, 여기,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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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김은심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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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제목이 씨앗이라서 겨울에 심어 월동을 해야 봄에 꽃이 피는 구근들 생각을 먼저 떠올렸다. 재작년 심은 튤립 구근이 꽃을 안 피워서 의기소침한 상태였고, 수선화는 꽃이 너무 작아서 조금 섭섭했다. 베란다 정원의 한계랄까.

 

봄날의 기지개를 켜기 위해

깊은 잠을 청하고

 

[가을과 겨울 내 세상은 그렇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새해에는 머뭇거린 일들을 해치우고 싶은 기분이 강해지지만, 새해가 되면 이상하게 더 차분해진다. 새로운 일, 번거로운 일, 벅찬 일을 만들거나 시작하지 말고, 있는 것과 가진 것을 다독이며 정리하고 싶어진다.

 

시집 속에는 모든 계절의 풍경과 다양한 생명들이 가득하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으로도, 인간 속으로도 숨어들지 않고, 외부의 세상을 늘 바라보는가 보다. 그런 시들이 좋다. 여러 핑계로 다니지 않는 여행을 경험하듯 공기가 새롭다.

 

많은 존재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겨울의 풍경들을 골라 더 오래 읽었다. 지금은 겨울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겨울이다. 그리고 새해가 되었다. 2024년으로 바뀐 모든 것을 확인하는데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행복은 보인다

환한 표정으로 좋은 몸짓으로

세상 모든 생명체가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

 

12월 중순부터 어떻게 살았는지 멍할 정도로 분주했다. 가장 설레던 12월이 가장 바쁜 12월이 되는 동안, 나는 늙고 운이 좋아 가족과 친지와 친구가 늘었다. 남은 휴가를 다 모아서 하던 일은 쉬고 다른 일을 해치웠다.

 

의무를 다하고 나면 마냥 쉬고 싶었지만, 방학과 졸업과 생일과 기념일과 명절과 축제로 이어지는 연말이라 외출과 여행을 생략할 수는 없었다. 관광지와 축제와 콘서트가 아니라 다닐 만 했다. 눈이 많이 와서 즐겁고 기쁘기도 했다.



 

집과 동네를 떠난 밤은 같고도 달라보여서 겨울밤을 연말에 몰아서 자주 올려다보았다. 노안으로 흐려진 눈으로도 별이 총총했다. 늘어난 별빛은 모두 인공위성이려나. 겨울의 달은 작고 밝아서 젊은이 같다.

 

그리 그리 마음을 저 초승달님께

마음으로 등 기대는구나

등 기대는구나

이 밤도 잠 못 드는구나

 

[]



 

아버지 본가에 들러 이젠 끝이 보이지 않는 내 나무를 만나고 왔다. 아버지는 왜 목련을 심으셨을까. 궁금한데 굳이 알고 싶지 않아서 나는 묻지 않았다. 돌아가시면 영원히 모를 텐데, 지금이라도 여쭤봐야하나.

 

내 나무가 있어서 좋다. 목련 꽃이 하얗게 피는 계절이면, 태어나 처음 쉬는 숨처럼 꽃을 보며 후후 긴 숨을 쉬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면 참나무가 되고 싶지만, 옆에 목련나무가 있어도 좋겠단 생각.



 

새해다. 생각의 씨앗이 싹 트는 모습대로 행동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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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이사 중!
곽수진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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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을 좋아하지만, 한파 소식이 들리면, 문 밖의 삶에 마음이 쓰여 마음이 부스럭거립니다. 이번 겨울 초입의 한파도 대단했지요. 핫팩과 한 세트인 물그릇과 따뜻한 물을 가지고 나가서, 물이 다 식어 얼어붙기 전에 부디 마실 수 있기를 바라며 어두운 동네를 걸어 다녔습니다. 모두가 추위를 피할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매번 서러운 생각을 했습니다.



 

책 속 고양이는 배가 고프지도 춥지도 않아 보여서 좋습니다. 스토리는 잔잔하게 흐르며, 한편으로는 지리적 환경과 서식 동물에 대해 배우고 생각한 계기를 만들어 주면서도, 동시에 짧은 글 속에 담담한 위트가 가득하고 그림은 부드럽고 아름답고 섬세하고 디테일이 풍성해서, 모든 페이지마다 한참을 샅샅이 보게 합니다.



 

살짝 웃는 게 아니라 어느 장면에서는 푸학~하고 크게 웃게 되기도 해서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이사를 위해,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 위해, 어디든 가보는 고양이의 실행력이 부럽습니다. 스포일링이 될까봐 사진을 찍지 않았으니 꼭 책으로 재밌게 만나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양이는 새로운 집을 찾아 이사에 성공했을까요. 뜻밖의 반전 같은 사랑스러운 마무리입니다. 집에 빈 상자들도 옷가지도 있는데, 집을 찾는 고양이에게 당분간이라도 포근한 집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지금은 할 수 없으니 아이들과 표지를 스티커로 일단 꾸며봅니다. 리무버블이라 여러 번 각자의 생각대로 바꿔 붙일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한파가 지나고 조금 포근한 날씨가 집 밖의 고양이에게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요. 따뜻한 집 안에서 걱정만 많고 행동은 적은 제게도 조금은 안도감을 줍니다. 인간과 더불어, 인간 가까이, 도시에 사는 수많은 작은 생명들의 평안을 바라는 겨울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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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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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처럼 유려한 불규칙 유영, 이형異形하는 진실을 따라잡는 책 속 이야기를 따라 다니다, 나는 결국 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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