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심장이 함께 춤을 출 때 - 탱고, 나를 기다려준 사랑과 인생의 춤
보배 지음 / 멜라이트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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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탱고를 배우기로 결정했는지 실은 기억이 안 난다. 그다지 큰 이유가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영국에서 사는 일은 여러모로 때때로 지루했다. 겨우 20시간 수업을 받은 게 전부지만, 인생 첫 탱고 수업이 생각나는 에세이다. 어쩐지 설렐 것만 같다.



 

상대방과 음악에 온전히 몰입해 탱고를 추고 나면 나는 세상의 모든 번잡한 소리로부터 벗어나 숨통 구멍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이 에세이는 탱고 수업이나 탱고 배우기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탱고라는 이 저자의 삶과 덩굴처럼 뿌리처럼 얽히고 마치 하나의 유기체인 듯 탱고와 함께 하는 삶을 이끌어간다.

 

그렇다고 분분한 탱고 에피소드의 나열만도 아니다. 춤이라는 경험을 통한 통찰이 탱고를 표현하는 매력적인 어휘들과 함께 뮤지컬 시나리오처럼 흥미롭게 이어진다. 글로 처음 만나는 진짜 탱고의 세계를 만난다.

 

아무리 해도 너무 어려워서 질리지 않는다는 게 탱고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탱고로 인해 자유로워져서인지 원래 그런 성정인지는 모를 일이나, 저자와 가장 친밀감을 느낀다는 에세이에서도 도취된 자아로 인해 불편해지는 느낌이 전혀 없이 끝까지 읽었다. 탱고에 반한 이의 시선으로 탱고의 세계를 함께 감탄하며 구경한 기분이다.

 

“‘라는 사람이 별이 작은 조각처럼 모조리 진공 속으로 날아가고, 이 세계에 음악과 심장 소리만 남은 것 같았다.”

 

몰랐던 이를 글로만 만나는 것이 독서이지만, 글에 반해서 저자를 포함한 탱고 패밀리가 심장 뛰는 행복을 느끼면 늘 별처럼 무대에서 빛나길 바라게 되었다.

 

수학이나 물리 공식과 문제는 풀어보면 이해가 가능한 삶을 살았는데, 처음 배운 춤은 전혀 모르겠어서 수업을 듣는 내내 곤란했다. 한국의 말롱가에서 다시 배우는 언젠가의 탱고는 다를 지도 모르겠다는 설레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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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수반캄 탐마봉사 지음, 이윤실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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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미국인 동기에게 들은 바로는 '위대한 미국과 그 나머지(We, the Great America and the rest of the world)'로 세계를 구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교육 내용도 그런 것이 많다고 했다. 멋져 보이는 발명은 다 미국인이 한 거라는 수업을 실제로 듣고 컸다고.

 

이 작품의 분류가 기타 국가라서 문득 떠오른 기억.

 

해문클럽 첫 작품의 충격과 인상이 흐려지기 전에 만난, 반갑고 귀한 작품이다. 그들 기준으로 극동아시아far far east에 사는 주변인 독자라서 더욱 기대가 크다.



 

희망은 그녀에게 끔찍한 것이었다. 바라는 게 무엇이든 그것이 그 자리에 없다는 걸 뜻했으므로.”

 

14편은 짐작보다 많은 작품이다. 어디쯤에서 나는 구분과 주인공을 잊고, 누군가의 삶이 남긴 울고 싶은 쓸쓸한 기록을 확인하듯 페이지를 넘겼다. “거주 이동의 자유는 찬란한 권리로 들리지만, 선택의 자유는 종종 이후의 삶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냉정한 브로커 같기도 하다.

 

표현하고 주장하고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언어라서, 언어란 문화와 역사와 사회가 중첩된 습득물이라서, 낯선 언어 생활권이란 아주 많은 욕망의 좌절과 인정의 부재와 혼란과 소외와…… 무엇보다 차별을 의미한다.



 

묵음이 포함된 한 단어 - knife - 로 표제작에서 섬세하게 표현되는 삶은, 너무도 상징적이라서 서늘한 낙담을 느끼게 한다. 왜 수상작인지 설명이 불필요하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공교육 시스템이 없던 시절 태어나 살아오신 분들 앞에서, 의식조차 못하고 영어 단어를 사용했던 순간들이 평생 부끄럽다.

 

해피엔딩으로 짜인 방식의 소설들이 아니라서, 14편의 작품은 모두 비극 대본 같기도 하고, 덕분에 나는 짧은 삶과 반드시 죽는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잠이 덜 깬 듯 흐린 오늘의 정신을 깨운다.

 

때때로 사람은 죽는다. 그 죽음에 반드시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인가. 무슨 노력을 얼마나 해야 하는 걸까. 사는 일은 왜 이토록 오래 아프고, 사랑은 왜 짧게 빛나고 마는 걸까. 덕분에 아름다운 사람들과 이야기가 갈증처럼 그리워진다. 낮에도 밤에도 꿈꾸듯 희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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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꽃 - 내 마음을 환히 밝히는 명화 속 꽃 이야기
앵거스 하일랜드.켄드라 윌슨 지음, 안진이 옮김 / 푸른숲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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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도 절로 마르며 지난해를 마감한, 자줏빛 천일홍 꽃송이를 옆에 두고 천천히 읽다보니, 청보랏빛 히아신스 두 송이가 만개했다. 책과 함께 사진에 담은 몇 초 동안 정신이 비틀거릴 만큼 향이 진하다.





 

아름다운 책을 만나 알아가는 동안 내가 속한 인간 사회는 소란과 요란을 거듭하며 결정적이고 전환적인 사건들을 차례로 맞았지만, 꽃향기에 잔뜩 취해서인지, 꽃이 피는 사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아니었던 듯싶기도 하다.

 

약속을 지키기보다 어기는 경우가 더 많고, 아름답기보다 난감하도록 추한 결과도 많고, 인간 사회의 풍경은 그런데, ‘꽃이 핀다는 건 아주 다르다. 조건이 딱 맞으면 알람이 울리듯 피어나는데 아름답지 않은 적이 없다.

 

SUMMER SNOWFLAKE

RESEMBLES A GIANT

SNOWDROP,

FLOWERING IN SPRING -

NEVER SUMMER.

 

서머스노플레이크는

자이언트스노드롭을 닮았지,

봄에만 피어나고 -

여름엔 절대 피지 않아.

 

애나 앳킨스, <레우코줌 바리움>

Anna Atkins, Leucojam Varium, 1854



 

화구를 찾아내어 뭐라도 그리고 싶게 만드는, 위험하고 고혹적인 그림들을 하나하나 한참 바라본다. 예술가들이 매혹된 이야기들, 사랑에 빠진 채 작업한 이야기들, 다양한 종류의 꽃에 끌려나오는 내 기억 속 이야기들.

 

특히 이번 산불에 타버렸다는, 종가의 목련과 모란과 작약과 사과나무를 애도하며, 아직 살펴보러 가지 않은 나를 채근하며, 자연의 사계절도 예술작품 속 사계절도 내 사계절도 담긴, 그림 속 꽃들 속의 기억 속 꽃들을 가만 본다.





 

때론 나보다 오래 살 것이라 부러워했던 꽃나무들은 분명 경이롭게 자력 재생할 것이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사라질 일 없는 그 꽃들을 - 피워낸 생명력을 - 믿고 나는 곧 부모님 본가와 친지들을 뵈러 갈 것이다.

 

그 길에는 이 책에서 만난 화가의 꽃들이, 다채로운 빛과, 경험과 상상으로 재구성한 향기로 동행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더 많은 꽃들을 알아보고 반가워하게 될 새 봄과 여름을 설레며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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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파올라 퀸타발레 지음, 미겔 탕코 그림, 정원정 외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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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반짝이며 사라져가는, 모든 날들의 수많은 순간들을 아름답게 포착한 시선일 거란 기대. 문득... 마음껏 게을러도 나른해도 되는, 약속도 책임도 알람도 없는 하루가 이제는 이룰 수 없는 소원 같다.

 

느긋한 위안과 잔잔한 감동을 기대하고 펼쳤는데 시험에 들게 되었다. 짧은 한 줄 문장이 피하지 못할 질문 같다. 이게 만약 시험문제들이었다면 나는 낙제다. 제대로 온 힘을 다해 살지 않는 피상적인 삶을 들킨 듯 허둥거렸다.

 

심신이 무탈한 어떤 날이 언제였는지, 흐릿한 기억을 뒤져봐도 또렷해지는 하루가 없다. 삶을 견디는 비법 같은 건 없이 심호흡과 산책으로 얼마나 관리 가능할지 모르겠다. 화가 병이 되어 고달픈 친구들이 적지 않아 더 힘겹다.

 

이런 날을 마주하게 된 것은, 얇고 단단하고 노릇한 이 그림책이 제안한 것들을 하지 못한 자업자득인걸까. 두려움 앞에 마주 선 시간이 모자라서, 기억해야할 이들을 잊고 살아서, 끝까지 알아내려하지 않아서, 꺼내야할 진실을 꺼내지 않아서.




 

삶은 가차 없어서, 이제 알겠다 싶을 때는 이미 늦은 거라고, 늦었다 싶을 때는 너무 늦은 거라고 하던데……. 회한을 놓아 주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시 뭐라도 해보면, 누구의 어떤 날도 무탈하고 어떤 밤도 편안하게 될까.




 

너무 잠이 오거나 너무 잠이 안 오거나 하는 모든 이들의 휴식을 간절히 바라고 싶은 밤이다. 3월의 마지막까지 봄의 노래는 들리지 않았다. 내일이 4월이고 1일이라는 것이 불쾌한 농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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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는 착각 - 나는 왜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잊어버릴까
차란 란가나스 지음, 김승욱 옮김 / 김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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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을 넘어 슬슬 두려워지는 나이, 지금이야말로 기억의 메커니즘을 더 잘 배워보고 싶은 때.




 

기억하는 자아는 우리가 내리는 거의 모든 결정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항상 그리고 심오하게 현재와 미래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이 책은 기억에 관한 오래된 질문과 최근에 더 절박해진 질문 모두를 잘 설명해준다. 기억, 망각, 오해, 편향, 상상, 망상, 오류 등의 단어들보다, “재구축이라는 개념이 인간 뇌의 상상력과 결합하니 많은 게 더 선명해진다.



 

외부환경과 유입자극이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서 생존하자면, 당연히 뇌는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변형이 쉬워야 한다. 예외 없이 올바른 상대와 연결되는 것이 불가능하니, 이 능력이 곧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인간이 주의력의도에 충분히 집중한다면, 어지러운 머릿속을 일부 정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즉각적으로 잘 작동하는 능력은, 중요도에 따라 정보를 정리하는 망각의 능력이다. 즉 망각이 기억의 실패는 아니다.

 

우리가 서로 협력하며 개인적인 기억과 집단적인 기억을 끊임없이 재구축하고 갱신하기 때문에 (...) 우리는 이 (...) 기억을 렌즈 삼아 세상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를 바라보며,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와 화해한다.”

 

뇌의 가소성이 평생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인간이 정보와 상상력을 동시에 활용하는 기능은, 과거의 고통을 갱신해서, 그 과거를 보는 시각을 바꾸어, 현재 삶을 참을 만하게 바꾸기도 한다.



 

사회적 동물로서 사회 생태계에서 상호 작용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의미학습과 반복 노출로 인해 누구나 가짜뉴스()의 신봉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만나 배운 것처럼, 기억의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 결과가 더 일반적인 상식이 되면, 잘 알려지면, 각자가 처한 상황을 새롭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설명도 대화도 좀 덜 감정적이고 더 선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어본다.

 

기억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 스스로를 해방시킨 뒤 오히려 과거를 안내인 삼아 더 나은 미래로 향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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