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딘 리클스 지음, 허윤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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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물리학, 과학 철학,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저자의 이력과 논문 주제들이 무척 흥미롭다. 20세기의 나도 물리학에서 설명하는 시간이 새롭고 놀라워서 논문 주제로 삼았다.

 

20대엔 전혀 실감하지 못했던 인생의 짧음을 지금은 매일 느낀다. 한 주나 한 달 단위로 사라지는 시간감각을 애통해하며 사는 중이다.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그 생각만 떠올려도 생이 안타깝고 애틋하다.

 

감정적이고 동시에 엄정한 현실인 이 주제에 대해 차분하게 읽으며 배우고 생각해볼 기회가 반갑고 귀하다. 짧은 한번뿐인 인생, 인류는 좀 더 평화롭고 즐겁게 서로 어울려 살 수는 왜 없을까... 늘 궁금하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그러면서 과거 사건들이 더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에게 중요한 온갖 함의가 있다.”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인생을 준비하다가 인생이 끝나버립니다.” 세네카,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의 첫머리

 

작고 가벼운 책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서, 한동안 가방에 넣어 다닌다. 이 책은 외모와 달리 깊이 판 문장의 우울 같은 사유가 가득하지만,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친절하고 살가운 어조를 띤 문장들로 기록되었다.

 

팬데믹의 울울한 시간 동안, 누군가는 이런 글을 쓰고 있었구나, 생각하면 올려다본 먼 하늘 한쪽이 반짝거리는 듯하다. 슬프고 황망한 갑작스런 이별이 많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찰하기에도 적합한 시기였다.

 

죽음은 유한한 경계를 제공하기 때문에 의미에 결정적이다. 사실 그게 이 책의 핵심이다. (...) 존재에 생기를 불어넣고 효용을 주는 선물로 여겨야 한다.”

 

통째로 외울 듯 밑줄을 많이 그었지만, 다 읽고 나니 오히려 주제 파악이 간명하게 된 듯해서 기쁘다. 30년 전에도 지금도 늘 관심사이자 미스터리인, 시간 자체와 그 시간의 일방향성, 그래서 정해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죽음, 그 끝. 그리고 그 과정인 삶의 애달픔과 애틋함과 안타까움.

 

기적처럼 태어나 반드시 죽는다, 는 운명을 알고도, 시간의 소중함을 절감하지 못하고 산다. 때론 그저 존재하기만하거나, ‘크게 낭비하기도한다 시간 도둑*. 그런 시간을 다 모으면 체감 인생이 더 길어질 지도 모르겠다.

 

* 어떤 일을 정말 해야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미루는 경우

 

헷갈리게 하지 않는 이 책은 주제에 밀착해서 조언을 거듭 건넨다. 짧은 생을 제대로 살아라” “낭비하지 말아라” “숙고해서 행동하고 미래를 만들어라”... 세네카가 하지 말라는 걸 다 하면서 사는 중이다. 또 반성한다.

 

죽음이 점점 선명해지는 반환점을 돈 나이라서, 그 조바심과 안타까움을 이 책에 적힌 미래의 가소성으로 바꿔 읽으니 격려가 된다. 중요한 건 행동이라고 동의하면서도, 미래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생각만 하다 멈춘다. 운이 좋아 먼저 행동한 이들의 덕을 보며 살아볼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인지 기능이 손상되지 않은 채 고령으로 생존 중이라면, 그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를 또 부끄러워할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의지적 행위이고 가지치기 과정이 필요하다. 관계도 사물도 공간도 시간도 좀 더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지향하는 미래가 현실이 되려면, 열심히 상상하고 행위로 선택하는 것만이 시간 병**이 아닌, 본래적 삶***을 사는 방식이다.

 

** disease of time, 미래에 대한 형편없는 의사 결정,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저지르는 행위

 

*** 의식이 있고 의미가 있는 좋은 삶. 행동과 목표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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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닌 여자들 - 역사에 늘 존재했던 자녀 없는 삶
페기 오도널 헤핑턴 지음, 이나경 옮김 / 북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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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한국사회에서 목격한 갖가지 관련 상황들이 떠오른다. 정책이라고 보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실하거나 웃기지도 않는, 모욕적인 내용들 - 쪼이는 댄스, 여성 조기입학, 돈 줄게 애 낳아 등 - 이 다수다.

 

인구가 81억이 넘었는데 여전히 모자랐는지, 인간과 닮은 AI도 만들고 싶어 하는 기이한 욕망이 투자를 받는 과학 기술의 시대에, 여성을 국가가 동원 가능한 자궁 수로 계산하는 전근대적(?) 태도는 현상 유지 중이다.

 

숨을 고르고 책을 펼쳤다. 문자를 통해 들썩이는 감정을 가라앉히며, 미국 사회의 여성은 애 낳는 일을 어떻게 파업해왔는지 읽어본다. 로 앤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자유주의 인권국가에서 여성 공동의 경험, 그 역사를 만나본다.

 

여성이 자녀를 갖지 않는 이유와 연결된 여러 가지 문제의 역사를 살피지 않으면, 자녀를 갖지 않는 것이 파업보다는 개인의 선택처럼 느껴진다.”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임신 위험을 설파했기에, 임신중지 시술을 살인죄로 재판한 1800년대 미국 기독교 사회의 사례에 놀라 읽다가, 피임 방법들이 4천 년 전, 기원전 1900년으로 거슬러가서 더 놀랐다. ‘현대인은 얼마나 오만하고 무지한 건가. 여성이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는 짐작보다 다양했다.

 

21세기 한국에서도 여전히 익숙하고 가시적인 이유는, 여성과 모성은 가정에 머물러야 하고 근로는 다른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200년 된 믿음, 그 탓에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느낀 사람들은 자녀를 최소로 갖거나 갖지 않는 것이다.

 

이미 커리어가 삶의 일부라는 인식은 실재하는데, 유자녀 여성의 임금과 경력 불이익은 성별 차가 모욕적으로 크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되는 방법은 꼭 혈연이어야만 할까.

 

시험관 시술이 실제로 약속하는 것은 여성을 생물학적 어머니로 만들어 자궁에 가치를 회복시켜준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고, 그 실패로 인해 여성은 선택지가 적었던 과거보다 더욱 실패한 존재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들이 전혀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생각하면, 어른들이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떠올리면, 생각은 더 복잡해진다. 동시에, 아이 생산자로서 스트레스를 받는 성인들의 삶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아이 말고 친족을 만들자는 운동이 흥미롭다. 과거 공동체에서 함께 양육하던 방식처럼, 똑같지는 않더라고, 낳지 않은 아이들,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을, 미래 세대들에게 우리가족과 마음과 헌신을 열자는 제안이다.

 

어머니와 어머니가 아닌 여성 사이에 현실이라고 알고 있는 구분은 여성의 택지를 제한하려는 의도였다. 이 재밌고 새로운 책을 통해 나는 역사적으로 늘 존재했던 엄마 아닌 여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의 개인사와 관련 기록이 우리의 역사다. 우리는 동시대인들은 물론 그들과도 연대할 수 있다.

 

역사서는 늘 좋아하지만, 특별히 개안을 돕는 책이다. 한국의 엄마 아닌 여자들도 언젠가 출간될 수 있을까. 읽는 것으로 연대를 시작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존경하는 엄마 아닌 여자의 기록으로 감상을 마무리한다.

 

사망 7개월 전, 한 기자는 보부아르에게 전 세계 페미니스트와 여성운동에 어머니상으로 간주되는 데 대한 소감을 물었다. “터무니없는 비유죠.” 보부아르는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어머니 말을 도통 듣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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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나에게 쓴 편지 카프카 전집 8
프란츠 카프카 지음, 오화영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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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일기장을 맡길 만큼 신뢰했던 밀레나에게 쓴 편지이자 유고, 한국어 정본 완역은 최초라고 한다. 어떤 번역인지, 내용만큼 궁금하다. 전집의 표지 일러스트가 카프카의 문학 퍼즐 조각처럼 멋지다.

 

나는 편지를 알고 활용하고 추억도 있는 세대다. 얼마의 진심을 얼마나 긴 내용을 써서 한 때 누군가에게 보냈는지,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장면만은 선명하다. 손가락의 고통으로, 머리의 뜨거움으로, 심장의 간질거림으로.

 

마지막 편지를, 팬데믹의 어느 날 의도적으로 써보았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보내면서, 상대의 손으로 꾹꾹 눌러쓴 답장을 받고 싶었다. 육필, 이란 단어를 새삼스럽게 느껴보았다. 편지를 쓴다는 건 무엇이었을까.

 

이제 그만 써야겠습니다. 이 끝도 없는 하얀 종이는 저의 눈을 태워버리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꾸 쓰게 되지요.”

 




 

최상의 선입견과 최상의 오독, 인간의 소통이란 그런 것인가 싶을 때도 간혹 있다. 그 결함(?)이 때론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예술작품처럼도 보인다. 오해가 상상을 촉발하고 독려하여 어딘가의 이상향으로 질주하는.

 

이제 부인을 더 또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몸과 손의 동작들을 말입니다. 그렇게 민첩하고 그렇게 단호할 수가 없군요. 거의 직접 만나 뵙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느낌입니다.”

 

실시간 채팅의 방식이 아닌, 이모티콘으로 충분한 방식이 아닌, 구구절절한 의문과 의심과 불안과 간절함이 담긴, 도착과 읽기와 답장 쓰기와 회신의 물리적 시간이 여러 날 걸리는 편지라는 방식이 이제 와서 새삼 애틋하고 그립고 부럽기도 하다.

 

단 한 통의 편지로도, 아니,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요? (...)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뒤로 한껏 기대어서 편지들을 들이켜고는, 계속 들이켜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생각밖에 할 줄 모른답니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문학 대가의 편지는, 대화체의 퇴고 없는(아마도) 문장들이라서, 빠른 속도로 재생되는 영상 대본을 읽거나, 대화를 엿듣는 기분이 든다. 당연히 지루할 틈 없이 재밌다. 문장마다 담긴 감정의 종류와 상태도 달라서, 웃고 감탄하기를 반복한다. 중반쯤 읽다가 가름끈을 찾았을 정도로, 펼치면 즐거운 속독을 하게 된다.

 

이렇게 다채롭게 격변하는 감정의 동요와 변화와 열렬함과 뜨거움을 밀레나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계속 (거의) 모르는 상태로, 카프카의 다량의 편지를 읽는 일는 일은 카프카 퍼즐을 맞춰나가는 즐거운 놀이 같기도 하다.

 

병은 그에게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섬세함과, 거의 소름끼칠 절도로 타협을 모르는 지성적 민감함을 가져다주었다.”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은 작가를 가장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라서일까, 마침내 밀레나의 편지들을 만나고 애도사를 읽으니, 단단하고 차분하게 카프카라는 작가(사람)을 본질적으로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프랑크는 살 수가 없습니다. (...) 우리는 모두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갈 능력이 있습니다. 언젠가 거짓 속으로 도피했기 때문이지요. (...) 하지만 그는 아직 그를 지켜줄 만한 어떤 피난처로도 도피하지 못했습니다. (...) 그에게는 아무 피난처도 안식처도 없습니다.”

 

전혀 만만하지 않은 자신의 형편에도 굳건해서 너무나 궁금해진 밀레나라는 체코어를 사용하는 인물이 이 책을 가장 매력적으로 갈무리하는 요소다. 그의 문장들은 정갈하고 의지적이다.

 

그는 세상을 비범하게, 그리고 깊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 또한 비범하고 깊은 세계였다.”

 

한 시대, 어느 인물들의 사랑과 아픔과 재능과 열정과 병과 죽음이 한차례 비바람처럼 지나간다. 편지지가 깃발처럼 날리는 상상을 한다. 비범하든 아니든 인간의 삶은 짧다. 울컥하는 기분에 그 핑계를 댈 수 있어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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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실존의 미학, 내 삶의 예술가 되기 - 천경의 미셸 푸코 읽기
천경 지음 / 북코리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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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만하게썼다는 저자의 말을 믿고 읽어나갔다. 1차 서적이 아니고, 저자가 주최한 세미나 내용들과 저자가 강독한 강연 등과 함께 잘 어우러진 철학 에세이로 읽힌다. 푸코 철학을 혼자 공부해보기 좋은 다정한 책이다.

 

전공하지 않아서 기억나는 몇 개의 푸코 철학 어휘를 실마리 삼아, 확인하고 생각하며 읽어야 맥락이 잡힌다. 푸코 철학에 대한 지식 분량에 따라, 저자가 풀어내는 통섭된 이야기와의 연계성을 달리 파악할 듯하다.

 

실존예술통제하는 권력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해서, 회복을 위한 비판과 저항을 이야기한다. 어휘는 달라도 메시지와 의미는 비슷한 제안들을 적지 않게 만나는 이유는, 포장과 과시가 중요한 시절이기 때문일까.

 

이 비정한 경쟁대열로 맹렬히 달려가지 않는 삶을 낙오자의 삶으로 등치시키지 말자. (...) 삶의 예술가 되기란 예속화 상태에 저항하는 자기창조다.”

 

푸코가 설명하는 비판적 태도, ‘권위를 거부하고 진실을 찾으려는 저항과, 부당한 법()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의지에 적용된다. 또한 무비판적으로는 어떤 권위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에 적용된다.

 

비판이란 자발적으로 권력, 진실, 주체의 연루관계를 분석, 해명함으로써 국가통치에 대항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불복종은 권리이자 의무인 사회적 실천이라고 철학자들은 전해왔다. 새삼스럽지만, ‘비판적 태도가 반드시 필요한 사회 각 부문에도 부재하고 부족하고 외면 받고 고려되지 않는 사회의 현실 풍경이 참담하다.

 

경제학은 한 국가 내부에서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는 주권자의 법률적 형식을, 한 사회생활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으로 출현하는 것, 즉 경제절차로 대체합니다.”

 

근대 권력과 지식을 논하는 내용은, 여전히 현대에도 유용한 면이 있다. 권력과 지식이 어떻게 얽혀있는지,이해관계를 초월한지식은 없다는 뼈아픈 작동 방식은, 인간의 실존 양식 일반에 대해서도 숙려를 요청한다.

 

타인을 지배하는 자는 자기를 지배하는 자라야 한다. 그렇지 못한 자가 지배권을 갖게 되면, 타인들을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 권력자는 자기지배력이 필수 (...) 가능하게 하는 덕목이 바로 절제다.”

 

자아라는 것이 실은 뇌의 구성물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뇌과학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인지기능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발밑이 흔들렸달까. 가만 더 살펴보면, 명칭이 무엇이건 - 자아든 주체든 -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사건들의 파생물, 사회와 관계를 형성한 결과인 일시적 구성물이외에 영존하는 것은 없다.

 

길지 않은 삶이 한층 더 허망하게도 느껴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집중해서 타인의 지배력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갈 미학적 방법을 고민해보는 것이 유의미하지 않을까. ‘죽음을 지각하고 회고하게 만드는 것처럼.*

 

* <주체의 해석학>, 심세관 역, 동문선, 50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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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미각 - 돼지국밥부터 꼼장어까지, 살아 있는 의리의 맛
고운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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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고모님이 부산에서 사셨다. 한국 전쟁 중 아버지 혼자 고모 댁에 피난을 가셔서 한참 머무셨다고 한다. 청소년 시절 집을 떠나 산 유일한 기억이라서, 난리 통에도 고모와 고모부가 잘 해주시만 하셔서, 아버지는 부산에 깊은 그리움과 추억을 가지게 되었다.

 

우연이지만, 나의 큰 고모도 부산에서 사셨다. 덕분에 서너 살부터 여름을 부산 바닷가에서 보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풍경조차 작은 조각들처럼 남았지만, 내가 바다와 여름밤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 시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향은 진하고 소리는 컸던, 설레던 비일상의 시간.

 




부산미각이란 제목의 갠지스강 물색을 닮은 책 표지를 보니, 오래 잊고 지낸 어린 시절 음식들과 부산의 추억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듯 떠오른다. 어릴 적엔 계절식이나 특별식으로 먹었던 식재료, 자주 먹었으나 나는 요리해 본 적 없는 음식이 반갑다. 돌아가신 분들의 생전 모습도 환하게 함께 떠오른다.

 

제사를 준비하며 대구가 오기만을 기다렸을 내륙 사람들은 장날을 기대하며 부산 바다의 입 큰 물고기를 무척 반겼으리라. 그런데 실제로 말린 대구는 조선 후기 훨씬 이전부터 유통됐던 것으로 보인다.”

 

어릴 적엔 동태 말고 대구를 자주 먹었다. 담백한 국이나 찜, 껍질을 튀긴 반찬, 대구포 무침 등 활용이 다양했다. 베네치아에서 이탈리아 친구가 시켜준 요리가 대구포 무침과 맛이 비슷해서 신기하고 반가웠던 기억도 있다. 내가 구하지 않은 탓인지 생대구든 마른대구든 본 지가 참 오래다.

 

조선왕조의 음식 기록 문서에는 항상 대구가 자리한다. 왕실의 생일잔치, 제사, 관례, 가례 등 행사에는 최상품으로 진상된 대구가 사용되었다.”



 

평생 동안 먹은 음식 중에 가장 강렬한 감각적 경험은 꼼장어였다. 입학도 하기 전의 일인데 아직도 그 맛이 느껴진다. 석쇠 위에 올려진 양념 범벅인 한 점을 고모부가 입에 넣어 주었는데, 탄 맛, 맵고 짠 양념 맛, 비릿하면서 고소한 맛, 탄탄한 식감이 차례로 느껴졌다. 평생 단 한번 먹은 꼼장어는 대체 불가한 체험으로 각인되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꼼장어를 식용하는 지역이 한국이고 그 원조가 부산이다.”

 

예전엔 그리 달지 않고 조금 짭짤한 밥반찬이었던 숯불화로 양념 소갈비 구이는 여름 바다 물놀이 이후의 저녁식사로서는 최고 특별식이었다. 직화구이와 육식을 가능한 피하며 사는 지금도 문득, 북적거리던 가족들이 한 방 가득했던 근심 없이 행복한 시절의 장면으로 떠오른다.



 

고모 이웃 중에 제사에 화과자(와 양갱)을 올리던 이웃이 계셨다. 나는 놀러 온 친척 조카였지만, 오래 알던 아이처럼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일 년에 몇 번이나 제사를 치르셨을지, 당시엔 고단함을 몰랐던 어린 나는, 제사 다음날에 가져다주시는 간식거리를 반겼다. 이가 녹을 듯 단 과자(양갱).

 

밀양 한천공장에서 생산된 한천은 80퍼센트가 일본 나가노와 기후 지방으로 수출되고, 나머지는 주로 국내 식품회사로 가서 양갱, 젤리, 푸딩으로 제조되어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해물파전, 동래파전 방식으로 구운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고모가 원래 부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파전을 초장에 찍어 먹지는 않았다. 해물 자체가 품은 짭조름한 맛이 충분해서 간장도 찍지 않고 그냥 먹었다. 동생이 놀러 온다고 해서, 처음으로 해물파전을 만들어보았는데... 인터넷에서 찾은 온갖 조언들을 따라 해도 바삭하게 되진 않았다.



 

이제는 떠나신 분들과 추억만 남은 음식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허기가 진다. 음식이 먹고 싶은 건지 사람이 그리운 건지... 늘 헷갈린다. 아무려나... 6월이고 여름이 시작되었으니, 소주를 즐기진 않지만 대선 소주 한 병 사고, 축축한 해물파전을 굽고, 양갱 디저트를 먹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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