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안 미용실
고히나타 마루코 지음, 김진희 옮김, 사쿠라이 미나 원작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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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못하고 살다 이 책을 읽고 우리 모두도 머리칼에 대해 각자의 서사가 아주 많을 수 있겠단 생각을 합니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 사진 속의 황당한(?) 헤어스타일 이라거나, 귀 밑 몇 센티로 길이를 제한 당했다거나, 특이한 염색으로 인한 사연이라거나, 혹은 사상 검증을 당한다거나.


어린 시절에는 평범하게 남들 다 하는 토끼머리, 갈래머리, 공주머리 등으로 지냈고, 학창시절에 숏컷과 단발을 오갔습니다. 이십대부터 어떤 판형(?)이 생겼는데 - 친구들은 안 지키면 큰 일 나는 뭔가가 있다고 내내 의심 - 봄에 짧은 단발, 여름엔 묶을 수 있을 정도의 길이, 가을에 어깨 지나 등 어딘가 닿는 길이, 겨울에 조금 긴 사계절로 구분되는 형태입니다.


한 때 잠시 삭발도 해보고 싶었고 핑크나 녹색 염색도 해보고 싶었지만 워낙 게을러서 해치워야할 그 모든 과정들이 엄두가 안 났습니다. 저도 할머니가 되면 모히칸(?) 비슷한 저 머리도 한번 해볼까, 가볍게 생각할 날이 올까요.




교도소 내 미용실에 머리하러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며, 물리적으로 갇힌 이들과 각자의 삶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이들의 차이는 얼마나 큰 것인지 멍하니 생각해봅니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들은 어찌 사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나이가 든다는 일이 뭐하나 쉬워지지도 해결되지도 않는 거라는 게 무척이나 당혹스럽습니다. 


머리칼을 자르는 일, 손질하는 일, 바꾸는 일은 어떤 의미일 수 있을까요. 꾹꾹 참다가 견디다가 어떤 계기로든 자신을 마주하는 모습들이 애틋하고 위태롭고 서럽습니다.


인상적인 몇 장면 남깁니다. 


“머리를 잘릴 것이다.”라고 해서 혼자 호러공포물인 줄 알고 놀란 장면과, 


클리셰이긴 하지만 빈번하고 반복된다는 점에서 늘 중요한 아픔과 괴로움과 눈물, 



“눈물은 하품이나 재채기랑 같은 거니까”라고 멋진 말을 한 미용사가 제 최초의 신경정신과 상담시간을 떠올리게 해서 남겨 봅니다.


어린 시절 동생이 머리칼에 껌이 붙어 - 그땐 생각 못했는데 누가 일부러 그런 것이었을까요 - 잘라주다 결국 동생 숏컷 만든 일도 생각나고,


10월 달에 하늘 보고 사진을 찍어두자 했는데, 어느새 15일, 절반이나 지났고, 잊어 먹고 단 한 번도 안 한 일도 생각납니다. 하늘을 자주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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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보다 재미있는 민화 이야기
정병모.전희정 지음, 조에스더 그림 / 스푼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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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래동화를 멀리하게 된 것은 문화사대주의 탓이라기보다 내용이 너무 무서워서 엄청 울고 일종의 트라우마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막 괴롭히고 죽이고……. 이 책의 표지를 보니 그렇게 멀어진 오래전 ‘한국’ ‘전래’에 대한 경험과 느낌이 살짝 돌아왔지만 이젠 무섭거나 그렇진 않고, 오히려 낯선 문학이나 회화처럼 재밌게 잘 감상할 수 있을 듯합니다.


초4라서 당당한 ‘고학년’임을 엄청 뿌듯해하는 - 그렇다고 막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 꼬맹이가 초등 고학년용이 민화에 대해 공부할만한 책이란 이유로 관심을 보인 반가운 작품이라 덕분에 더불어 공부합니다.


표지를 보니 생각나는 오래 된 질문인데, 호랑이는 왜 늘 담배를 피는 걸까요? 할머니께 전래동화 듣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읽은 게 아니라 구술로 들려 주셨는데. 너무 오래 전이라, 화들짝 그리움이 들이 닥치네요. 모두 다 사라진 시절과 사람들이 떠올라 눈물이 솟습니다.


민(民)화는 명칭으로도 알 수 있듯이, 직업 화공들이 아닌 이들이 혹은 관직은 없으나 화가로 살았던 이들이 그린 그림들이라 생각합니다. 한반도는 늘 부침이 많았지만 애초에 기록될 일이 없어서 작가 미상 작품들도 있는 것이겠지요. 


이 책을 통해 배운 민화의 특징이라면 바라는 것들을 그림 속에 많이 담았다는, 기능과 용도가 비교적 분명했다는 점입니다.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받고, 건강하고,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부적이란 용도가 비슷한 글자그림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과학이 여러 가지를 밝혀 준 오늘날도 불확실하고 두려운 것들이 많은데, 옛날 옛적에는 이해할 수 없어, 원인을 알 수 없어, 두렵고 무섭고 슬픈 것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적거나 여러 의식을 하거나 굿을 하는 일이 현재의 심리치료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해결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견디게 만들어 주는 위안과 격려.


생물들 간의 위계도 현재와는 많이 다릅니다. 인간은 신의 자리를 거의 차지했지요. 생명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도 이미 시작되었으니까요. 인간이 개발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핵무기들을 모두 동시에 터트리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요. 


이 책의 인간은 아직 힘과 능력에 있어서 다른 동물들에게 큰 우위를 확실히 차지하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동물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그림에도 많이 등장시켰지요. 그들이 가진 능력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늘 재밌고 궁금한 것이 ‘용’의 존재입니다. 아주 친근하지만 용은 순전한 상상의 존재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름에 용자를 쓰는 것도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은 상상력과 스토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다른 동물은 다 멸종한다 해도 용만은 인간과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듯도 합니다.


‘고학년’을 위한 책답게 풍부한 지식정보도 충실하게 담겨 있습니다. 민화와 풍속화는 어떻게 다른지, 조선후기 시대 특징을 담은 민화의 소재들은 무엇인지, 왕궁의 화공들이 그림을 그리는 도화서의 모습 등, 역사 고증과 기록도 재밌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복과 주술이 담긴 그림들 말고, 전 세계적 열풍을 불러일으킨다는 오징어게임 속 게임들 말고, 조선시대 아이들이 놀던 그림이 있어, 당시에 뭐하고 놀았는지 구경할 수 있어 특히 좋았습니다.  


새삼스럽지만 그림은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아주 높습니다. 각각의 작품에 담긴 단편적인 정보들을 모아 해당 시대의 문화를 짐작하고 그려보고 차근차근 채워나가는 연구에 중요한 자료입니다. 나이 탓인지 사라진 것들을 보면 서글픈 생각부터 나지만 잠시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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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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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부터 겨울이 온다는 일기 예보 덕에 마지막 맑은 가을날일지도 모를 오늘이 몹시 귀하다<노회찬6411>이 개봉한 날이고조주빈 및 박사방 공범들의 대법원 선고가 있었던 날이다그리고 벌써 출간 일 년이 된 이 책이 저자들의 손 글과 함께 도착했다. 내가 참여한 도움이라곤 자잘한 것들뿐이어서 민망하다.

 

공론화될 때까지의 험한 여정과 대법원 선고까지의 지난한 시간, ‘관심을 멈추면 범죄는 더 잔인하게 악화될 것이란 생각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 나온 분들을 생각한다이 책에는 고발취재공론화까지의 두 저자가 싸워야했던 일들이 추적기가 담겨 있다.

 

안전하게 필요한 지원을 다 받으면서 진행한 일이 아니라취재하며 생긴 트라우마는 당사자들이 다 감당할 몫이었지만 그래도 둘이라서 다행이라고 하니 듣기 아프지만 나도 다행이라 생각한다며칠 전 읽은 <페미니즘 리포트>와 더불어 한국사회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어떻게 진화하고 악랄해져왔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귀한 기록이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상황과 감정의 무게가 묵직하다분노안타까움미안함고마움, 나 자신의 무지함에 대한 괴로움을 겪으실 지도 모른다모두 다 피해자를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가해자를 한 명이라도 더 구속시키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라 잘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기막힌 현실이지만 우리에겐 서로가 있고 더 많은 미래의 우리들이 있다범죄에 대항하기 위한 연대라니 만감이 교차한다.

 

누군가는 왜 그리 힘들게 인생을 사냐고 묻기도 한다왜 별것도 아닌 일을 예민하게 받아 들이냐고웃기는 말이다내가 불편하고 싶어서 불편한가여러 사회문제를 인지하고 불편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예민하게 구는 것'으로 여겨선 안 된다누군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일상이 다른 사람에게는 쟁취해야만 하는 것일 수 있다나의 예민함이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 있다이 땅에서 살아남아외치고 있다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연대하며 움직이는 이들이 있기에 내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추적단 불꽃은 성범죄 피해자의 고발을 지지한다그들의 고통은 우리의 몸을 통과해 심장을 건드렸다피해자의 상처가 나의 고통으로 바뀌어 발화하는 순간뜨거운 용암이 심장에서 솟구친다.”




오늘 조주빈 및 박사방 공범들의 대법원 선고가 있었습니다결과는 당연하게도 상고 기각항소심 유지였습니다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는 대법원 앞에서 이러한 선고를 환영하며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들이 "반드시 처벌받는그 날까지 지켜보겠다는 의지를 담은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이하 기자회견문을 첨부합니다.

 

온라인 성착취반드시 처벌된다

 

우리는 기억한다.

텔레그램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여성을 노예로 칭하며 번호와 별명을 붙여 물건처럼 취급하고성적으로 조롱하고신상정보와 함께 피해자들을 협박하여 얻어낸 피해촬영물을 유포하고홍보하고구입/재유포하며 가해했던 수 만 명의 공모자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텔레그램성착취 피해자들이 유포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경찰서에 가서 피해를 신고하려 했을 때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온라인이라 가해자를 특정할 수가 없다”, “서버가 외국에 있어 수사가 어렵다고 피해자를 단념시키고 돌려보내던 공권력을.

 

우리는 기억한다.

조주빈이 검거된 이후줄줄이 딸려 올라오던 수많은 가해자들의 면면.

어디서든 흔하게 만날 수 있던 평범한 시민의 모습을 한 가해자들의 실명과 얼굴은 경찰청의 진지한 회의를 거쳐 엄숙하게 공개되었다반면 각종 검색 포털과 텔레그램 등 메신저 플랫폼들에서는 피해자들의 신상정보가 텔레그램 혹은 N번방의 연관 검색어로 오르내렸다피해자와 피해촬영물을 찾아 헤매던 또 다른 성착취의 그물망이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디지털 공간을 뒤덮었다.

 

우리는 기억한다.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그리고 법정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들은 당당하게 죄가 없음을범죄집단이 아님을 주장했다그러나 피해자들은 일상에서조차 얼굴을 감추어야 했고이름과 주민번호전화번호를 전부 바꾸어야만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경찰에서법정에서성폭력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도움을 받으려면 계속해서 피해자임을피해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우리는 잊지 않겠다.

국민청원에 수백만의 시민이 참여해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디지털 공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과 성착취에 함께 분노하고 맞서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고결국은 가해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뜨거운 연대의 손길을 놓지 않았던 순간들을.

 

우리는 잊지 않겠다.

협박을 받으면서도 경찰에 신고하고언론에 제보하고또 다른 피해자들을 걱정하고경찰에서 검찰에서 법정에서 진술하며 오늘의 결과를 만들어낸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하루하루를자신이 나온 영상을 매일 검색하고 또 검색하면서도국가가 삭제하기를유포자는 처벌하기를 – 물러서지 않고 공적 해결을 포기하지 않아 온 피해자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주빈을 비롯한 6명의 박사방 운영자들의 형이 확정되는 오늘우리는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디지털 성폭력과 성착취는 반드시 처벌된다이번 판결은 그 시작일 뿐이다.

기억하라단 한 번의 시청도공유도저장도유포도 이제 범죄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의 피해자도 혼자 남지 않도록 우리는 끝까지 연대하고힘을 모아 싸울 것이다.

 

2021년 10월 14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오늘 판결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겠지만여전히 갈 길은 멉니다가해자는 감옥으로 갔지만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갔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디지털 성범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범인이 잡혀도 피해자의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인터넷상에는 누군가의 존엄성을 침해한 범죄의 결과물이 넘쳐납니다한번 배포된 피해 사진과 영상은 광활한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로 뻗어나가고무한히 늘어난 가해자들은 시시때때로 피해자의 일상에 침투합니다.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닷페이스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진행한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일상회복 프로젝트 "내가 만드는 하루"를 인상깊게 보았습니다가해자 엄벌뿐 아니라 피해자 회복에도 온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합니다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작년 한해동안만 무려 158760건의 성착취물을 삭제했고지원한 피해자만 4973명에 달합니다이 수는 올해 더 늘고 있고센터에선 지금도 하루에 평균 650개의 영상을 지우고 있으며직원은 총 39(3월 기준)이라 합니다여가부를 없애니 마니 하는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라실질적으로 피해자들의 목숨을 살리는 이런 기관에 적정한 예산이 책정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만의 공간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안부의 인사를 보냅니다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힘껏 돕겠습니다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들을 믿고꼭 조금만 더 용기를 내주시기 바랍니다.”

 

※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이를 빌미로 한 협박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지지동반팀(02-2275-2201, digital_sc@hanmail.net),

여성긴급전화 136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02-735-8994, www.women1366.kr/stopds),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02-817-7959, hotline@cyber-lion.com)


에서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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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멈추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 - 청소년을 위한 난민 이야기
하영식 지음 / 뜨인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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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난민을 찾아보면 전쟁이나 재난 따위를 당하여 곤경에 빠진 백성’ 또는 가난하여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라는 뜻풀이가 나옵니다그래서 일반적으로 난민이라 하면 전쟁이나 기아재해 등으로 곤경에 빠져 원래 거주지를 떠나 대피하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법무부에서는 이것을 일상적 의미의 난민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률에서 난민은 조금 다른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출신 국가로 돌아가면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어 다른 나라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바로 법률상의 난민입니다유엔난민협약과 우리나라 난민법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로 박해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하지 않는 자를 난민이라 규정하고 있습니다.“

 

난민이란 단어를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홍세화 선생의 정치적 망명에 대해 잘 알게 될 기회는 있었지만그때도 난민이란 단어를 떠올리진 못했습니다.

 

김숨 작가의 <떠도는 땅>을 작년에 읽고 고려인으로 사셨던 이들이 어떻게 강제 이주 당했고이주라 하기에도 처참한 여정을 겨우 배웠습니다.

 

그리고 올 해 광복절바로 그 고려인으로 사셨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귀국했지요우리의 역사 속 난민에 대해 역사적으로 공부를 좀 해야겠다싶은 생각이 구체화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미라클 작전으로 아프간에서 도착한 다른 난민들 또한 지금의 현실로 함께 살아갈 이들로 만나게 되었습니다작전 성공만으로는 다 해결하지 못할 문제들에 대한 지원과 교육과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공부를 시작합니다.이 책은 2월 출간 당시 우리 집 십대들과 함께 읽고 배우고 싶었으나아직 동기가 충분하지 않아 실행을 못했습니다올 가을은 무척 서늘해서 손이 벌써 시립니다그러니 조금 더 따스하고 뭉클한 챌린지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침 오늘 만난 문장도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듯해 옮겨 봅니다.

 

정말 버리고 싶은 것은 인간에 관한 편견미처 진실인지 아닌지 되물어 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내 케케묵은 믿음이다.”


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 물 2021.가을호

작가
편집부
출판
여해와함께
발매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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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을 다 두고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배부르고 안전한 집 안에서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무참하고 힘겹습니다.

 

난민이 되는 원인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전쟁학살박해가뭄홍수지진 종류가 무엇이건만약 마실 물과음식과필요한 약품과잘 공간이 없어진다면몇 분 정전과 단수가 아니라 언제 복구될지 알 수 없다면그리고 가족이 있다면


아주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장소로 이동을 하게 되겠지요우리가 자주 본 재난영화에서도 늘 그러하듯이.

 

그럴 때 누군가 고생 많았다고이리로 오라고여기는 괜찮으니 같이 살아 보자고 말해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얼른 가서 저들이 가진 것을 다 빼앗아야겠다혹은 안도와 감사와 희망?

 

이 책에서 저자는 개념 설명, 설득,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원한 적 없지만 난민이 된 이들이 어떤 상황과 역사에 처했는지각국에서 만난 난민들의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전혀 모르던 사실들이 참 많습니다.정리하고 발췌한 내용 일부 남깁니다.

 

- 1992년 겨울파리 시내 거리를 가득 메운 수백 명의 중동사람들.

- 1990년 중반스위스 바벨에서 만난 중동 사람들. (스위스 사람인 친구조차 중동 사람들이란 것 외에는 누군지 모름.)

아테네에서 만난 사람이 들려 준 자신의 민족에 대한 이야기. ‘이란이라크시리아터키 일대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민족고유한 문화와 언어가 있음에도 국가 없이 살아온 민족구르드 민족.’

- 400만이 아니라 4000만이 되는 민족이 국가가 없어 전 세계를 떠돌며 난민으로 살아옴.

난민으로 태어나 난민으로 살다 난민으로 죽어가는 민족

난민을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전쟁유엔난민기구 집계상 1억 명에 육박.

 

우리는 실제로 난민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 세계에 전쟁과 경제난각종 재난이 끊이지 않는 이때누구든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습니다.”

 

- 2010년대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카라반 행렬’. 주요 경로이자 주축이 된 온두라스과테말라엘살바도르.

 

이들이 미국으로 향하는 이유는 하나다단지 굶어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나섰다.”

 

갱단이나 부패한 경찰에게 돈을 빼앗기거나 납치 실종되거나 성착취를 당하지 않게 위해 함께 길을 떠나자는 취지로 시작된 운동이 카라반.

이들 나라의 범죄 카르텔 조직이 저지르는 짓은 마약무기거래자금세탁납치인간밀래성착취장기밀매 등.

청년들은 갱단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상황.

국가 기관은 돈을 받고 갱단을 보호마약 밀수 지원.

 

분쟁을 통해 어떤 어른들은 이득을 취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어린이들은 모두가 피해자일 뿐입니다.”

 

전쟁 중인 나라의 어린이들의 세상에는 비행기폭력포탄총성절규신음만이 가득합니다이 아이들이 커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요.

 

현실의 전쟁에서 어른들은 어린이라고 보호하지 않습니다어린이들이 모인 학교나 병원을 공격하고어린이들을 전쟁의 방폐막이로 이용합니다이들 중 전쟁 트라우마를 겪지 않은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내전이 발생하면서 우리는 항상 목숨을 위협받고 살아야 했다. (...) 나는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았고어떤 판단을 할 만큼 아는 것도 많지 않았다. (...) 나는 전쟁이 싫었고 전쟁에서 싸우기를 원하지 않았다내가 누굴 죽이고 누군가 나를 죽이는 상황 자체가 너무 무섭고 싫었다내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다음은 내 차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세르 예맨

 

“1982년 미얀마에서는 시민권법이 개정됐다. 1824년 영국 식민지령 이전에 미얀마에 살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시민권을 부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 조상 대대로 미얀마 영토에서 살아왔지만 대부분 그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로힝야 사람들은 시민권법이 개정된 이후로 한순간에 외국인이 되었다. (...) 국적이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하메드 로힝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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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스피러시 - 미디어 제국을 무너뜨린 보이지 않는 손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박홍경 옮김 / 책세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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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내가 읽는 것이 정말 사실인가 싶기도 하고예전에 농담 삼아 영원한 뒤끝이 있다고 했던 친구도 떠올랐다그 친구에게도 생각을 현실화할 자원이 충분하다면 피터 틸처럼 시간을 들여 속이 시원해질 복수를 감행할까.

 

사방으로 산개하는 생각과 상상에 끌려가지 않고 <컨스피러시책의 내용에 집중하고자 넷플릭스에서 찾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 <침묵을 거래하는 손>을 보았다https://www.youtube.com/watch?v=Cs7-j-49hFE


 

대리자를 내세워서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끝장을 본 피터 틸은 정말 여러모로 대단한 인물이다집념이 강한 이라는 건 알겠고 그가 막대한 부를 가졌다는 것이 이 거대한 음모를 성사시키는 강력한 지원이라 본다.

 

마키아벨리는 적절한 음모는 계획실행여파의 세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각 단계에는 조직 구성에서부터 전략적 사고공모자 모집자금 조달목적 설정비밀 유지여론 관리리더십 및 예지력 발휘궁극적으로 음모를 중단할 시점을 파악하는 일까지 저마다의 기술이 필요하다가장 중요한 것은 음모에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음모가 기획되었다는 것을 모른 채사건과 현상을 따라가며 틸의 의도에 부합하게 움직여준 여러 관련 인물들을 보는 일은 씁쓸했다아마도 내가 틸보다는 음모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시청자나 구독자에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음모는 결국 밝혀져서 이렇게 책과 영상으로 기록되었지만그렇다면 완벽한 성공을 거둔 음모 작전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혹은 이 음모가 특별한 예외인 것일까법정 공방만이 아니라언론계에 한동안 영향을 미칠 파급언론의 자유에 대한 논쟁미국 헌법 등으로 확대되는 과정이 오히려 더 영화처럼 느껴진다.

 

음모는 중립적인 단어로그것을 통해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진다.”

 

음모는 정말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 일일까현실에서 아무런 배후거래협잡이 없다고 생각하진 못하겠다절대 음모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복잡한 부조리가 가득한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 부족일 것이다역사상 가장 착취적인 언론 매체를 만든 닉 덴튼이 친근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평가만 봐도 참...

 

“(...) 실제 목격하기 전까진 믿을 수 없는 음모를 겪으며그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 세상을 위한 책이다.”

 

지독하게 치밀하고 조직적인 계획들... 저자가 단계별로 소개해주는 설명을 읽어 가며세상을 바꿀 정도의 음모를 꾸미고 강행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 것이라 점점 더 간절하게 믿고 싶어진다음모란 가능한 낯선 예외로만 존재했으면 싶다.

 

무척 이율배반적인 것이정보와 금력의 집중화를 통해 원한다면 음모 역시 얼마든지 정교해질 수 있지만그만큼 증거 역시 샅샅이 찾아낼 수 있는 현대 사회는의지와 실행력이 있다면 거의 모든 음모를 밝힐 수 있는 시절이 아닌가 한다.

 

한국의 역사와 사회적 상황은 밝히지 못하는 음모가 문제가 아니라 밝혀진 범죄조차 처벌하지 못하는 지지부진함이고여전히 있는 힘껏 은폐를 제시도하거나, 상식이라곤 없는 판결을 가능하게 만드는 세력들이 더 문제이다.

 

그 견고한 협잡과 동맹에 조금씩 금이 가는 시절을 살아 목격하고 싶다밝혀질 여지가 남았다고 믿으며.

 

그나저나 2007년 미국에서는 성정체성을 드러내고 지지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지 않는 시절이었다니……내가 과문하고 탈역사적 사고를 한 탓이겠지만 무척 놀랐다.

 

사회과학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적은 자연과학 전공자인 나는 이러저러했다는 개별 현상들에 대한 복잡한 파생 과정들을 무시하지도 피하지도 않고 달려들어 정면 대결하고 기어이 분석해내는 사회학자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경악스럽지만 덕분에 확실히 배울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이 책을 읽으시길쉽게 만날 수 없는 그야말로 남다른’ 음모 실행자의 이야기이다어쩌면 우리도 음모를 알아보고 대처하는 시야를 얻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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