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쉼표
전선영 지음 / 밥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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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는 한 작품의 끝이 한 눈에 보이는 길이만으로도 때론 쉼이 된다시를 읽는 일은 꽤나 고되고 드물지 않게 읽지 못하는 시들도 만나지만이 시집의 제목처럼 쉬고 싶어 읽기도 한다.

 

호흡을 계속 이어가며 한참을 몰입하는 작품과 달리 몇 줄의 글을 천천히 원심 분리하듯 돌려 본다새로운 무엇이 분리되어 나오기도 하고 실험은 자주 실패하기도 한다.

 

시인은 자기 고유의 리듬을 언급한다속도보다 좀 더 고유한 것일지도 모르겠다읽기 시작할 때는 시인이 독자의 쉼터를 만들어 놓은 것이라 생각했다리듬이 다른 쉼들로 잘 쉬어보자.


어떤 쉼터에서는 오래 쉬었고 다른 쉼터에서는 전혀 쉬지 못했다이것이 나의 리듬과 고유성일 지도 모르겠다눈에 잘 들어오고 생각에 잘 담기는 시들은 내면을 마주하고 구체적으로 글로 표현된 것들이 많다.

 

시인의 아픔이고 시인이 두고자 한 거리이지만나 역시 내 거리를 가늠해보게 한다생각 속에만 머물던 것들은 모두 끓어오르듯 뜨겁고 그래서 담아 둘 동안 힘이 든다.

 

그래서 말도 글도 인간에게 필요하다그런 것들을 거르고 식히고 보관하는 무한히 생산해낼 수 있는 공간감정을 다듬으니 육체의 허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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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 현대미술의 거장들에게서 혁신과 창조의 노하우를 배우다
김태진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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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감상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다른 여지없이 경험한 시간과 내용의 분량에 가혹할 정도로 비례해서 넓고 깊어지는 분야이다.

 

여러 번 반복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음악과는 달리 미술은 더욱 그러하다. 꽤나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산책하며 눈에 들어온 풍경을 즐기는 이상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작품들이 더 많다. 어쨌든 나는 그렇다.

 

그러니 한국이든 해외이든 노출되는 작품들만 만나고 시간과 장소가 허락한 전시회만 다니며 내가 만난 제한된 예술품들에 대한 경험만 내내 반복하며 살았다.

 

그런 전시회들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게 되자 정보가 거의 없는 창작자들의 현대미술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20세기가 끝나지 전에 만난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전은 전시와 참여가 적절하게 섞인 구성이었고 작품의 규모와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이후로 기회가 닿을 때마가 들러 본 참여형(?) 현대미술전들은 적지 않았지만, 딱 일회만 공연하는 연극처럼 작품도 감상도 대체로 휘발되듯 사라졌고 아쉬움에 기록을 부지런히 남기지도 않아 그야말로 기억은 조각조각 나있다. 그 공간에 들어서야 감상이 가능한 작품을 남길 방법도 없긴 했지만.

 

김태진 저자는 시리즈로 출간하는 서적들을 통해 신뢰가 형성된 분이고 기본기를 착실히 다진 이가 형식과 원칙을 넘어 새로운 주장과 시도를 하는 기분 좋은 도전처럼 느껴지는 이 책을 올해 출간하였다. 늘 그랬듯이 예술작품 전시도록과 예술사, 미학적 논의로 정형화된 내용이 아니라 인문학적 통찰로 만나는 귀한 내용이다.

 

공간의 붕괴

지각의 해체

권위 너머로

형식 너머로

물질 너머로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의 동력과 의도와 의미를 누가 다 확실히 알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배울만한 텍스트가 반갑고 특히 갑갑한 현상현실너머의 풍경과 사고 영역을 보여주는 내용은 더욱 그렇다. 저자가 표시한 점들을 만나고 여정을 계속하다보면 길처럼도 지도처럼도 보이는 그림을 얻는다.

 

야수주의는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대단히 영예로운 지위를 갖게 되었다. 바로 현대미술의 문을 연 예술운동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색채의 사용에 있어 화가들마저도 연연하던 어떤 고정관념을 끊어냄으로써, 색채의 무한한 자유라는 선물을 현대미술에 선사했다.”

 

세잔이 사진의 등장으로 위기에 빠진 회화를 구해냈다면, 뒤샹은 망막적 회화, "틀에 박힌 관람 회화"를 거부하고 미술에 무한한 자유를 부여했다.”

 

틀 안에서 섞이지 않고 틀 밖으로 나와 새로운 점을 찍어 세상의 경계를 넓혀준 모든 예술가들에게, 저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읽었다. 필사를 많이 하면서 천천히 공부하려 했는데 이야기를 들려주듯 술술 풀어 놓은 문장들에 재밌어서 그냥 줄줄 읽었다. 통사를 좋아하는 지라 미술의 발전사를 상세하게 짚어주는 점이 무척 좋았다.

 

역시 전체적인 흐름을 알아야 개별 작품들도 작가들에 대해서도 이해가 무리 없이 가능해진다. 역사적 필요성을 획득해서 설득력이 높아진 지식들은 노력을 덜 들이고도 기억에 잘 남는다.

 

입찰자에 지나치게 공감해서 공분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얼른 잊고 싶은 기막힌 작품 소재들도 있지만 이런 별의 별 게 다 예술이라는 것, 책으로 만나도 이렇게 휘둘리는 예술 창작의 힘을 더 실감하기도 한다.

 

예술은 자유가 날개짓을 훈련하는 곳이다.” 마티 루빈

 

이 자유는 창작가의 자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 그래서 예술은 소수에서 다수로 우리 모두의 삶을 대상으로 목적으로 삼는 방향으로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재미는 기대 이상, 감동도 기대 이상, 완독 후 남는 여운도 기대 이상이다. 예술 작품들에서 독자의 사유를 친절하고 끈기 있게 끌어내주는, 감상에도 창작에도 기획에도 우리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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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스타의 인생 사진관 - 사진 찍는 개그맨의 찐 제주살이
윤석주 지음 / 도트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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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한국에 없었던 시간이라 나는 저자를 개그맨으로 만나본 적이 없다. 방송활동을 모르는 이를 저자로 만나 제주에 살러 가서 5년 만에 꿈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계속 꿈을 꾸고 있다니 시기와 질투가 가득해진다.

 

개그맨, 사진작가, 피자장인, 제주도민. 이 모든 역할을 부족함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잘 하고 계시니 저자 내부의 에너지도 가족과 더불어 잘 채워진 외부의 삶도 부럽기만 하다.

 

그를 막아섰던 실체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 내 것과 닮았나... 궁금해서 미칠 듯이 졸린 오후 정신을 붙잡고 읽어 보았다. 낮잠을 자면 눈을 뜬 채로 아침을 맞아야한다. 절체절명!

 

사진과 시가 함께 하는 작품들이 모여 책이 되었다. 작가의 통찰이 담긴 글에도 머물지만 제주의 일몰 풍경과 물질하는 해녀, 땅을 덮은 유채꽃과 꽃보다 더 환하게 웃는 아이와 검은 돌담은 처음인 듯 눈을 붙잡는다.

 

도전을 주변에서 말린다면

포기를 주변에서 시킨다면

실패도 주변에서 정한다면

성공도 주변에서 막는다면

맨먼저 주변인을 정리해라.”

 

도전하는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세간의 도전과 평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철학이 불쑥 드러난다.

 

사진마다 가득한 감성이 날카롭기보다 따스하니 촘촘한 일상을 꾸리며 만난 통찰을 너무 쉽게 책으로만 읽어 보는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함일지도 모르겠다.

 

남들 눈에 어찌 보이든 사는 일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고, 자기 힘든 것 다 내보이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할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아프다. 그리고 누워 계신다.

그 다음은 내 차례, 눕기 전에 다 하자.”

 

이토록 유쾌한 에너지를 전해주시는 분이 다시 새롭고 닮은 작품들로 소식을 전해 주시면 좋겠다. 제주 공기와 함께 느껴질 피자 맛이 무척 궁금하다. 그때까지 아프지도 눕지도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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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 내 친구 마음 빵빵 그림책 11
박옥경 지음 / 밥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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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초등시절 오래 두근거리며 지켜본 생생한 과학실험은 개구리 알 부화부터 올챙이 관찰, 개구리로의 변태입니다.

 

수조에 넣어 둔 생명에 이름을 붙여 부르며 매일 걱정하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부화도 놀랍지만 변태하는 과정은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뒷다리가 나오고 앞다리가 나오는데 한 쪽 다리가 먼저 나오면 균형을 잘 못 잡아 헤엄을 잘 못 쳐서 허둥대기도 했지요.

 

전체 물갈이는 하지 않았지만 부분적으로 물갈이를 할 때에도 인기척에 죽은 척을 했는데, 어디서 배웠는지 연기가 완벽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꼬리가 짧아지기 시작합니다. 신기하게도 그 시기에는 먹이를 먹지 않습니다. 그렇게 꼬리 대신 다리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별의 시간이지요.

 

개구리는 올챙이와 전혀 다른 존재처럼 낯설기도 하고 어쩐지 표정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름을 부르며 하는 이별은 좀 슬펐습니다.

 

시간을 들여 보고 쓰고 그리고 한 그 경험은 생각보다 진하고 오래 남아 다른 생명에 대해 궁금해 하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 덕분에 지금도 개구리가 반갑고 좋습니다.

 

여러 해 전에 개구리가 동면하는 장면을 다큐멘터리로 보았는데 신비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발가락부터 서서히 온 몸이 얼어 가더군요. 봄이 되면 다시 서서히 녹지요. 신화 속 불멸의 존재처럼 되살아나는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인간도 오래 전엔 겨울잠을 잤다고 하는데 계속 그랬다면 지구는 확실히 평화로웠겠습니다.

 

이 책의 그림 속 이야기를 통해 어린 시절을 다시 만나고 왔습니다. 뭐든 그리운 것은 나이 탓이라 해두고 감정을 추슬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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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마트에는 도깨비가 살아요 책 먹는 고래 22
강용숙 지음, 정혜주 그림 / 고래책빵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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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6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플라스틱들의 고향 찾기, 주인의 배신에 실망한 유기견의 자유선언, 위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갈매기들, 운명을 극복해 나가려고 애쓰는 쥐, 충동적인 소비생활 등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다소 무거운 주제들이지요. 그림들과 잘 어우러지면서 재밌고 기발하고 상상이 가득한 이야기로 변신했습니다. 그러니 즐겁게 읽고 천천히 생각하고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온 메시지들을 이해해보면 좋겠습니다.

 

조류를 무서워하는 저도 갈매기의 삶을 만나 생태계가 파괴되어 많은 생명들이 당면하는 위험성에 대해 공감합니다.

 

내가 저번 일 생각하면 아직도 기가 막혀. 새우깡을 혼자 다 먹으려고 입에 물고 발로 감추고 난리였잖아?”

 

힘 있는 새가 잘 먹고 잘 사는 건 당연한 거야. 힘없는 것들은 늘 불평만 많더라.”

 

과자가 몸에 해롭다는 건 확실한 말도 아니야.”

 

주인공 가 혐오 대상이 아니라 뿔난 다찌가 위험한 순간에 응원을 보내는 존재라는 따뜻한 이야기도 좋습니다.

 

쥐라고 다 같은 생김새는 아니지 않니? (...) 기죽을 필요 없어.”

 

세상은 무지 넓고 쥐도 여러 종류가 있구나. 집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구박 덩어리로 살았겠지?’

 

아주 먼 옛날 어느 나라에서는 쥐를 신으로 모시기도 했대. (...) 사람들은 황금 쥐 동상을 세워놓고 자식 많이 낳게 해달라고 빌었어.”

 

표제작인 별난마트에는 도깨비가 살아요는 공감의 폭과 깊이가 짐작보다 컸습니다. 도깨비들은 우리 사는 세상 도처에도 있던 거였네요. 만난다고 다 홀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끔 홀렸단 핑계로 긴장을 탁 풀고 멋대로 사는 순간들도 떠오르네요.

 

손님 오셨다. 슬슬 일을 시작해볼까나. 오늘 우리 목표가 삼천만원이야.”

 

원래는 반찬거리만 조금 사려고 했는데... 꼭 도깨비에게 홀린 것 같아.”

 

코로나만큼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또 다른 판데믹 현상인 쓰레기와 플라스틱 문제를 비교적 직설적으로 하지만 충분히 동화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도 반갑습니다. 바이러스는 개인이 어쩔 수 없는 문제이지만 플라스틱은 우리 모두가 뭔가 할 수 있는 종류이니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해 질 녘 바람이 장난치기 시작했어. 환자처럼 널브러져 있던 폐품들은 바람이 들쑤시자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지.”

 

최근에 죽은 물고기들이 해안으로 밀려오고 있어요. (...) 엊그제는 백상어가 커다란 비닐을 뒤집어쓴 채 해안에 쓰러져 있기도 했답니다.”

 

우리 국민들은 편리한 일회용품 사용하는 것을 참 좋아해요. 한 번 쓰고 버리면 설거지를 안 해 물도 세제도 시간도 절약돼요. 대신 다른 일을 많이 할 수 있어요.”



동화의 가장 멋진 점인 상상력이 가득한 세상을 만난다는 즐거움에 더해, 현실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연계하여, 나와 타인들, 동물, 식물, 자연, 지구로 생각을 확대해보고 이것에서 다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이 귀한 것이니 귀하게 대하자는 은근한 메시지가 좋습니다.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세계를 함께 탐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아동기에 갖춰야 할 올바른 심성을 갖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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