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비구름 그림책봄 17
김나은 지음, 장현정 그림 / 봄개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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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 가지 못하는 일상의 위로처럼 44작품이 이야기와 함께 담긴 그림책이 왔다. 천변만화하는 상상 이상의 풍경이 그치지 않고 실시간으로 전시되는 곳이 늘 머리 위에 있다. 고개를 들어 자주 보면 좋으련만, 자꾸 잊고 산다.

 

여름의 초입에는 여름뭉게구름에 두근거리며 매일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뭐가 또 적당한 변명이었기에 그만두었을까.

 

분홍 구름, 노란 구름, 초록 구름, 파란 구름, 네 구름이 소곤소곤, 투닥투닥하는 책이다. 기분이 번지듯 색이 화악~ 때로는 파악~ 퍼지는 느낌이다.

 

십 대의 어느 날 색colour이란 파동이 다른 빛이 인간의 가시영역에서 목격하는 산란이라는 원리를 배우고 귀가하는 걸음이 꽤나 무거웠던 기억이 난다. 재미가 줄었구나, 하는 서운한 느낌

 

 

걱정 이하로 원리를 알아도 여전히 세상은 현상과 현존만으로 아름답고 귀했다. 자신만의 고유한 색처럼 개성 강하고 꿈도 다른 구름들!

 

네 구름은 서로 사이좋게 보였지만, 몰래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어.”

 

그래서 서로 다투다 번지다 흘러내리는 색들이 한 면에서 다른 면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들은 빛에서 태어난 후손들이 아니었나.

 

세상은 점점 더 어지럽고 얼룩덜룩하고 까매졌어.”



 

색채에 대한 이해보다 신화를 즐기는 상상력이 있다면 더 재밌고 즐거운 감상이 될 듯하다.

 

울림이 큰 교훈을 찾고 싶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마구잡이로 뒤섞이면 무엇이든 어두워질 거란 생각 외에는.

 

대신 커다란 전지를 사다 욕실 벽에 붙이고 물감을 던지고 뿌리며 놀고 싶은 마음이 쑥쑥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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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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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기다린 기분의 책실제로는 석 달이 좀 못되었다정말로 아프리카에서 온 작품이란 느낌이다상상하기에도 부족한 지식경험정보를 가지고 최대한 열심히 짐작하면서 나이지리아 아쿠레 마을에 머물렀다.

 

심장 속 심실에는 피가 고여 있다우리 집의 두 심실이아버지와 어머니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심실을 찌르면 집안 전체에 피가 흘러넘친다형들 이텐나보자오벰베 과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 살아본 사람들관찰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만이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아름답고 신비롭게 등장한다이런 평범한 장면에도 이런 문장을 사용하다니내가 모르는 어떤 장치나 복선이 있는지 의아해서 자꾸 다시 읽어 본다.

 

일요일 밤이 내릴 때쯤에는 빵 부스러기 같은 정보가깃털이 풍성한 새의 깃털 한 뭉치처럼 어머니의 독백으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 아버지는 어머니가 하는 모든 말을 들었다.”

 

가족의 삶이 완연히 충격적으로 변모할 전개가 필연적이라당시 역사와 시대상과 나이지리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와중에도 문장들을 꼭 붙드는 기분으로 읽는다조마조마하고 불안한 시간이 저자의 유려한 묘사로 막을 수 없는 기세로 막힘없이 흐른다.

 

아버지는 결국 떠났다일종의 협박과 용돈을 두고전근이라는 형식이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하려는 일에 올라타고 남은 가족은 부재를 견디며 생존해야한다미래가 희망이 상승이 그려지기 힘든 상황힘든 일이 이어지겠구나마음을 졸이게 된다무람해서 낯선 지명들이 거듭 아프리카를 상기시켜준다.

 

잘 구축된 궤도 위에서 살아간다는 안전한 기분일 때 일상은 기억할 가치를 상실한다현재도 미래에도 돌발 보다 예측이 우위를 점하니 시간표대로 살아가면 되는 일이다정신의 여유는 상상의 자유를 허락해서 그런 시간 우리는 여러 공상과 꿈을 떠올리며 느긋할 수 있다.

 

그러다 아버지가 떠난 것과 같이판데믹과 같이상황을 뒤바꾸는 계기를 만나면 이후의 시간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일과일상계절과거가 중요해지고 현재는 후회와 불안에 잠식되기 쉽고미래는 흐릿해진다예정된 날짜가 있는 삶의 안온함이 그립니다.

 

아프리카 내부의 종족과 문화간 분쟁서로에 대한 격렬한 적대감은 소설 속 나이지리아 한정이 아니다알음알음 듣기만 하던 전쟁 난민의 문제와 환경 재난으로 인한 난민의 문제가 지구현실이 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삶이 무엇인지 관련 책을 살펴보는 중이라 인간이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적대와 폭력으로 낭비하는 그치지 않는 일의 본질은 무엇인지 막연한 생각만으로 지친다.

 

어린애들이 닭처럼 죽어나갔어!”

 

마을의 다른 아이들과도 잘 지내지 못하는 형제들은 저주받은 강으로 향하고낚시를 하다 예언자와 마주친다아주 끔찍한 예언을 들은 형제들은 그 예언이 원인이 되어 사이가 멀어지고 이별하고 두려워한다.

 

네가 너 자신에게 이 모든 짓을 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야네가 네 두 손으로 일구고 가꾼 두려움 말이다이켄나이켄나너는 미친 사람쓸모없는 인간의 환시를 믿기로 선택했어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적절하지 않은 사람을 말이다.”

 

예언의 세계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나는 늘 경고만 남발하고 대책을 이야기해주지 않는 이 능력이 반갑지 않다믿지 않으면 좋으련만 듣고 말았으니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을 테지확신은 현실이 된다비극인 경우에는 참담한 현실이.

 

그중에서 가장 지배적인 생각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한이상하고도 낯선 생각이었다죽음에 대한 생각.”


어설픈 스포가 될 지도 모른단 이유와 이 책의 아름다움과 치열함은 떼어낸 문장들로는 소개가 어렵단 생각에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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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 주는 것들 - 고전에서 찾은 나만의 행복 정원
장재형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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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개의 고전문학을 언급하거나 발췌해서 저자의 생각을 덧붙인 글일 거란 생각을 했다목록을 보고 고전이라 분류되는 기준은 무엇인지 잠시 혼란스러웠다생각을 오래할수록 더 모르겠다.

 

데미안오즈의 마법사(사르트르), 달과 6펜스네루다의 우편배달부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어린왕자좁은 문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위대한 개츠비연금술사지상의 양식그리스인 조르바파우스트노인과 바다인간의 대지구토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변신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안네의 일기마지막 잎새이반 일리치의 죽음싯다르타고도를 기다리며여자의 일생나르치스와 골드문트대성당

 

내가 하는 일이 적어도 구할은 청새치 잡고 돌아오는 노인의 마음 같다는 생각에 30여 년 만에 다시 읽어 볼까하고 생각한 <노인과 바다>도 있다십 대에 읽은 책 표지가 떠오르지 않으니 리커버판에 그냥 홀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어린 고전들도 포함된 책을 고전 독자가 되어 읽어 본다.

 

걸어가면 돼아주 긴 여행이 될 거야이 나라를 지나가다 보면 때로는 즐겁겠지만 어떤 때는 무섭고 끔찍한 일도 생길 거야하지만 내가 아는 모든 마법을 동원해서 너를 지켜 줄 수 있도록 노력할게.” (……) “에메랄드 시로 가는 길은 노란 벽돌 길로 되어 있단다.” <오즈의 마법사>

 

이 책 때문이었나나는 아주 오래 도로의 노란 중앙선을 걸어 보고 싶었다거리로 나가 투쟁하는 가투 유형이 전혀 아님에도 언젠가의 거리에 나선 건 그 이유로 중앙선을 실컷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이제야 고백한)그때 내가 그 길을 걸은 것이 한편으로는 이 작품의 인물들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도전을 한 것인가다 늦게 감상적인 기분이 든다갑자기 토네이도에 휘말려 날아와 떨어진 집에 깔려 죽은 동쪽 마녀의 명복을 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는 것이 뭐가 문제겠소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달과 6펜스>

 

좋아하는 것들이 많을수록 더 자주 기쁠 것이다이만큼 간절하게 좋아하는 것이 있는발견한 사람은 그저 부럽다퍼즐 조각 맞추듯 정확한 모양을 찾고 선택에 따른 쾌락과 감수할 대가를 재빠르게 계산해서(즉각적인 반응이라 스스로 말려 볼 수도 없었다...는 변명무척 잘 포기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지라 궁금하고 부러운 삶이다. 6펜스를 잘 챙기고 가끔 달을 올려다보는 삶에 자족하는.

 

예술 작품에는 그 화가의 경험과 지혜가 대단히 정교하게 축적되어 있으며화가만의 언어로 독특하게 표현되어 있다예술은 말이나 글처럼 쉽게 표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화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것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화가의 삶미술에 관한 예비지식 그리고 감수성 등을 갖추어야 한다.

 

음악을 듣고 감정이 움직이는 일은 적지 않다그에 비해 그림 앞에서 왈칵 눈물을 쏟거나 감정적인 표현을 하는 이들을 본 적도 들은 적도 별로 없다회화란 친해지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소통을 즐기지 않는 상대와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그러니 뭘 이해해보겠다고 공부란 걸 하는데그렇게 막 분석하고 나서 알게 된 지식정보가 과연 내가 보고 있는 이 작품인가하는 난감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무슨 일 있나?”

?”

전봇대처럼 서 있잖아.”

마리오는 고개를 돌려 시인의 눈을 찾아 올려다보았다.

창처럼 꽂혀 있다고요?”

아니체스의 탑처럼 고즈넉해.”

도자기 고양이보다 더 고요해요?”

네루다는 문손잡이를 놓고 턱을 어루만졌다.

마리오내게는 일상 송가보다 훨씬 더 괜찮은 책들이 있네그리고 온갖 메타포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건 부당한 일이야.”

뭐라고요?”

메타포라고!”

그게 뭐죠?”

시인은 마리오의 어깨에 한 손을 얹었다.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예를 하나만 들어주세요.”

네루다는 시계를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좋아하늘이 울고 있다고 말하면 무슨 뜻일까?”

참 쉽군요비가 온다는 거잖아요.”

옳거니그게 메타포야.”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며칠 전 세계문학에 속해 있고 알고 보니 나 빼곤 다 영화를 본 것 같은 작품을 뒤늦게 읽었다그 이야기 속에 네루다가 등장한다어느 나라의 쿠데타 세력이든 그 천박함은 아주 꼭 닮아 있다네루다의 장례 장면에서 한 문장 마다 한숨을 몇 번을 쉬었는지관 속의 네루다 역시 내내 한숨을 지었을 듯하다. -> 이런 것도 메타포라면 문장의 뜻은? 😅

 

첫째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 둘째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셋째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 상태혹은 좀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사랑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혼동한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의 책을 조금 읽다 포기하거나 집어 던지고 그 여파로 프랑크푸르트학파 전체를 미워하게되는 사람들이 ~라테는 적지 않았다소위 연애세포가 사멸한 지 오래라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닌 것이 반가울 뿐이다사랑하는 이들을 힘껏 응원하지만정말 모두가 사랑이 필요한 것인지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사랑하지 않는 상태를 못 견디는 것인지 등등 여러 의문은 든다물론 막 물어보거나 하진 않는다쉽다는 사람이 없으니 부디 다들 힘내시길!

 

문손잡이를 잡으며타인의 얼굴을 보면서바닷가에서 주운 돌멩이에서자주 가는 카페에서 맥주잔을 쥐면서아돌프의 연보라색 멜빵을 보면서땅에 떨어진 종이쪽지를 집으려고 하면서 주위의 곳곳에서 구토를 느낀다구토감에서 유일하게 해방되는 순간은 바로 카페에서 낡은 축음기로 틀어주는 섬 오브 디즈 데이스(Some of these days)라는 노래를 들을 때다. <구토>

 

존재하는 이유가 없다면우연히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부조리인가그렇다면 우주 자체가 거대한 부조리일 것이다이유도 목적도 없이 스산하고 무감하게 기계운동을 반복하는로캉탱이 도서관과 카페만 오가는 고독하고 단조로운 시간이 더 이상 내 현실에서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는 시절이다나는 구토는 아니지만... 간혹 멀미가어지럼증이흉통이 느껴진다.

 

좋아하거나의미가 있거나새롭거나흥미로운 작품들이 있다면 저자의 덧붙임말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나란히 적어보는 일도 좋겠습니다저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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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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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다현실에서 결코 하지 못할 복수가 네 편이나 펼쳐진다겁이 많긴 하지만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을 읽을 때만은 비교적 태연했는데 뭐 이렇게 무서운지심장근육을 단련한 방법은 없을까 잠시 진지해졌다.

 

<1922> 아들까지 끌어들여 살인을 한 대가는 쥐에 시달리는 것이다현실이든 당사자의 망상이든 상관이 없다고통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이럴 거면 왜 살인을 했나 싶게 어이없는 인간이다 싶기도 하고그래도 벌 받을 만한고통 받을 만한 계기가 있어 천만다행이다 싶기도 하다살인하지 맙시다처참하게 망가집니다!

 

<빅 드라이버이 작품은 못 읽을 것 같았는데 성폭행 소재 어쨌든 생존했으니 결말이 궁금해서 범죄자 잡아서 어떤 복수를 해주나 알고 싶어 꾹 참고 읽었다괴롭다생존자가 죄책감까지 느끼는 전개가... 그리고 의논하는 상대가... 눈물겹다조심하시길울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공정한 거래> 죽음을 앞두고 증오하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그러면 삶을 연장할 거래할 것이 없어지는 것인가무섭진 않은데 서글프다.

 

<행복한 결혼 생활당연히(?) 있을 법한 내용이고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끔찍하고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알게 되어 정말 혼란스러웠던 순간들이 떠올랐다더구나 적극적으로 편을 들고 애정을 보이는 것을 보면 미지의 세계로 남은 인간관계의 당사자성을 믿고 싶어진다행복하게 몇 십 년 산 남편의 정체가나와 자식들에게만은 전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대가가 보여 주는 재밌고 수준 있는 창작물이란 이런 것이다하는 메시지를 느낀 작품이다.

 

살면서 드는 온갖 의문들 중에이게 뭐야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는 격렬한 질문에 답해 주는 건 문학뿐인가 하는 생각도 종종 든다그래서 나는 결말이 있는 이야기 읽기를 멈추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삶이란 건 혼란 속에 살다 결국 답도 모르고 끝날 것만 같으니.

 

그런 이야기들 중에 가끔은 현실의 시간을인물을 이해하고 견디거나 비켜나갈 방법을 알려 주는 것들이 있다아주 가끔이지만그럴 때면 현실이 된 이야기를 읽은 것인지이야기가 된 현실을 사는 것인지 기묘한 기분이 든다.

 

고결함이란 성공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깃드는 것이며 (...) 우리가 노력을 다하지 않을 때그러한 도전으로부터 일부러 고개를 돌릴 때바로 그때 우리 앞에 지옥문이 열린다고.” 스티븐 킹 작가의 말 중에서.

 

고개를 돌리면 고결하게 살지 못한다가 아니라 지옥문이 열린다니이거 공평한 겁니까.


 

..............................................

 

문득 떠오른 생각차라리 이미 죽었으면 좋으련만그러나 살아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애원했다죽여 달라고내가 당신한테 그랬던 것처럼 내 목을 그어달라고하지만 아내는 들어주지 않았다그것이 아내의 복수였다.”

 

인생은 공정한 거야엄마 뱃속에서 아홉 달 동안 주사위 두개를 굴리다가 어느 날 휙던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니까어떤 사람은 7이 연달아 나오기도 하지어떤 사람은 불행하게도 1이 두 개씩 나오기도 하고세상이란 게 원래 그런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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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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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어떻게 지내요?”하고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시몬 베유 -

 

혹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의 고통은 무엇인가요?(Quel est ton tourment?)”라고 묻는 일

 

그러고 보니 나는 잘 지냈어요잘 지내요?”라고 묻지 않는다누가 내게 그렇게 물으면 뭐라 대답해야할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 뒤로상대도 대답하기 무척 곤란할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을 빼곤 어떻게를 넣으면 좀 더 여유롭고 느긋한 질문이 된다무척 다정한 눈빛으로 세상의 존재들에 관심을 기울이던 철학자이자 보부아르와 더불어 20세기 사상을 현장과 연계해서 다듬은 시몬 베유Simone Weil를 여기서 다시 만나 반갑고 그립다.

 

너무 화가 나서 눈에 보이는 건 다 때려 부수고 싶은 심정이야. (...) 이 모든 고문을 사서 겪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어. (...) 헛된 희망에 절대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 내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고? (...) 아마 그렇게 오래 살지도 못할 거야.”

 

<어떻게 살 것인가>가 사는 내내 사람들을 괴롭히는 질문이라면어떻게 죽어야 할까는 질문으로 삼은 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는 선택지와 같다.

 

환자들을 모욕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나는 돌연사보다 병사를 아주 조금 선호한다걱정이 많은 성격 탓에 죽기 전에 정리하고 준비하고 뭔가 할 일을 해놓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의무와 책임을 다하다 죽겠다그런 고상한 생각만 있는 것이 아니라얼른 할 일을 해치우고 <제일 좋아하는...> 이런 컬렉션을 마지막까지 지극하게 망설임 없이 누리다 죽고 싶다는 철저하게 쾌락주의적인 이유도 강하다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무엇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이라니!

 

단 한 가지 걱정은 예산을 적절하게 분배해서 죽기 전에 빈털터리가 되는 당혹스런 입장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유일하게 남은 염려이다.

 

잘 죽기그게 무슨 뜻인지는 다들 알아고통 없이아니면 적어도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지 않는 것침착하게 약간의 품위를 지키며 가는 거지깔끔하고 산뜻하게하지만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나사실 자주 있지 않아왜 그럴까그게 왜 그렇게 무리한 요구일까?”

 

책 속 친구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안락사를 위한 약도 준비해두고 마지막 여행을 떠나며 오랜 친구에게 동행을 부탁한다여행에 관련해서 도움을 달라는 것도 조력살인을 원하는 것도 아닌 완전한 혼자가 아닌 옆방에 있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가벼운 부탁처럼도 들리고 무겁게도 들린다여행은 늘 더구나 마지막 여행은 반드시 자신이라는 존재와 전면적으로 만나게 되는 시간이고 경험일 것이다옆에 있는 사람은 무얼 하면 좋을까이해연민혹은 공감?

 

이야기라도 현실이라도 죽어가는 것은 단 한 명의 친구뿐만이 아닌 세상이다. 한 개인의 죽음에서 지구 전체의 죽음까지 암울한 세상을 다 담았으면서도 뉴욕의 지성인이라는 저자는 왜 이리 다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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