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자의 질문 -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우치다 마사토시 지음, 한승동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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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으로 삼은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으면이를 잘못이라고 한다.”는 2016년 6월 1베이징에서 체결된 미쓰비시 머티리얼 중국인 강제연행 강제노동 사건 화해에서 이 회사의 업무집행 임원인 기무라 히카루씨가 회사를 대표해서 중국인 수난자 유족들을 대표한 옌이청(86), 장이더(88), 간슌(95딸이 대리 참석씨 등 생존 수난자들에게 얘기한 사죄문’ 중의 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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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살아가는 인간들의 사정과는 무관하고도 서늘하게 흐르는 시간은 멈추지 않아 오늘은 광복 76년을 맞는 날이다홍범도 장군은 유해로 101년 만에 귀국하신단 소식을 듣는다그리고 대한민국 국정원이 일본 극우와 부당거래를 했다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아베 전 수상은 올 해도 전쟁 범죄자들이 봉안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두터운 비구름보다 어둡고 차가운 현실이다.

 

양국 간에 쌓인 원한으로 따지자면 한국 못지않은 중국과는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 해결을 보았다는 내용을 만난다피해 규모는 한국이 훨씬 크지만 극우보수가 장악했을 가능성이 큰 일본 법정에서 이런 판결이 나왔다는 것이 한편 반갑고 다른 한편 고통스럽다.

 

일본의 극우보수 정권이 거침없이 한국을 모욕하고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배경에는 돈 받고 자국민의 정보를 팔아넘기는 국정원과 같은 행태를 내내 해 온 이들이 있을 것이다.

 

“X년 팬티까지 뒤지라 해!”라는 반감과 적의가 가득한 지시는 일본 극우가 아니라 한국 국정원의 입에서 나온 소리다일본 공항에 도착한 위안부 진실 규명 활동을 하는 여성들의 속옷은 모욕을 주라는 목표에 충실하게 모두 공개되었다.

 

일본인 변호사이자 지식인인 저자 우치다 마사토시는 중국 강제동원 피해 해결을 주도했던 변론 당사자이며한국의 강제 동원 피해자 문제도 역시 해결 가능하다고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어쩔 수 없이 일본 극우의 자금을 받아 <반일 종족주의> 따위를 출간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주장하는 이들학자의 타이틀을 가진 이들이 불쾌하게도 떠오른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요정에서 일본전범에게 술과 요리를 접대하고 한국 육군 사열식까지 받게 해준 박정희 정권의 실세 김종필도 떠오른다.

 

“ 청구권협정에는 무상 3억 달러당시 환율로 1,080억 엔 상당의 금액을 (...) 10년에 걸쳐 분할되어그것도 현물 지급’ 형태로 지급됐습니다일본 정부는 신일철주금 등의 국내(일본)기업으로부터 플랜트를 사서 이를 한국에 제공했습니다이처럼 청구권협정은 일본기업에 이익을 안겨주는 일석삼조의 협정이었습니다배상금 지급이 모두 이런 현물배상 형태로 이뤄짐에 따라 일본기업들이 다시 아시아로 진출하는 계기가 됐던 것입니다.”

 

식민지 당시 친일파들은 할 수 있다면 조선인의 피도 모두 갈아 바꾸고 싶다 했다던데광복일 이후 내내 온존했던 친일파들의 행적과 그들의 후손인 21세기의 친일파들 역시 그런 심정으로 황국신민으로 제 머리를 조아리며 살고 있는 듯하다.

 

사는 일은 늘 어려운 일투성이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것들 중 하나인친일파를 제대로 처벌하고 정리하지 못한 시간은말끔하게 제거하지 못한 종양처럼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현재에도 끈질기게 사회와 사람들을 괴롭히고 병들게 한다.

 

일본 국내에서 예전의 침략전쟁을 부인하고나아가 미화하려는 세력이 시종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근년에 이런 움직임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이는 피해국 인민에 대한 또 다른 가해이며일본이 아시아 이웃 나라와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이에 대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공동으로 반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양국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세력들이 더러운 거래로 얽혀 양국 모두를 망치고 있다일본의 길거리 극우단체들이 한국의 태극기 집회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것을 달리 설명할 방법은 없다애서 찾아 볼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미움과 혐오로 자칫 감정이 커지지 않도록 하는 힘이 되는 저자이고 책이라 마음을 다독이며 감사히 읽는다일본이 주장하는 한일 청구권협정의 오류를 일본이 변호사가 파헤치고 해법을 제시하는 귀한 내용이다.

 

-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과 청구권협정은 애초에 재검토되어야 할 협정

 

한일 청구권협정은 미국의 압력 아래 한국 측이 일본의 식민지배 청산 문제를 제대로 추궁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응해 이루어진 것입니다일본 측에서 보자면 싼값에 식민지배 청산 문제를 처리한 것입니다.”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에 관한 조약은 국가 간의 외교보호권 포기에 관한 내용이었을 뿐개인의 청구권 자체는 살아있는 권리(과거 일본 정부도 인정)

 

“1991년 8월 27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은 시미즈 스미코 의원의 질의에 대해한일 청구권협정의 양국 간의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라는 구절의 해석과 관련해 이는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지니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서로 포기했다는 것입니다따라서 이른바 개인의 청구권 그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에서 소멸시켰다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문제 해결 방식을 한국의 강제징용자 문제에도 적용 가능

 

“‘화해에는 다음의 3가지가 불가결합니다① 가해자가 가해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고피해자에게 사죄한다② 사죄의 증표로 피해자에게 화해금(실손해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마음’)을 지급한다③ 장래에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역사교육구체적으로는 수난비 건립수난자 추도사업 등을 진행한다.”

 

한국 뉴라이트 학자들이 쓴 <반일 종족주의>에서 언급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관한 거짓 주장을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비판

 

일본의 한국인 징용자들은 강제 동원된 적이 없다는 주장은 거짓이며, 1938년 국가총동원 체제가 만들어진 뒤 처음에는 모집’, 다음에는 관 알선’, 마지막에는 징용이라는 형태로 조선의 젊은이들을 일본에 강제 동원한 것이 맞다.”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전후의 국제 정세를 교묘하게 이용해 본래는 졌어야 할 전쟁 배상 의무와 식민지배 배상 의무를 모면해왔다. (...) 일본은 강제징용의 역사 자체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 (...) 한국은 이 아니며약속을 지키지 않는 쪽은 일본이라는 것 (...).”

 

- 한국어 판에는 당시 조선인의 현실에 관한 일본 측 자료들 인용

 

합병 뒤인 1912년에 발령된 토지조사령은 조선인의 토지를 큰 뱀처럼 삼킨 교활한 법령이었습니다. (...) 토지조사령으로 무주지無主地(주인 없는 토지)’가 된 땅은 총독부가 취득해서 조선에 이주해온 일본인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토지를 빼앗긴 수많은 조선인들은 유민이 돼 결국 일본 본토로 흘러들어갔습니다이것이 강제징용자의 기원이 됐습니다.”

 

일독으로 다 배우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다자료에 충실하고 논조가 선명한 글이라 내용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관련법들증인증거역사적 자료들이 충실하게 제시되니 잘 아는 사실은 확인하고 잘 모르는 사건도 더욱 집중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래도 노력이 즐거운 것은 사실성을 충분히 갖추었고 신뢰할 수 있는 책을 만났다는 반가움 때문이다나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부정의함에 폭력에 전쟁이라는 범죄에 전후 이어진 관련 범죄와 협잡들에반성이 없는 범죄자들과 그걸 정신적 유산으로 자랑스럽게 이어받은 이들의 뻔뻔함과 무참함에 분노하며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일본인들을 미워하고 혐오하지 않으려 힘껏 노력할 것이다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오늘 새로 생긴 이유도 있다대통령 연설 중에 1945년 816일 독립운동가 안재홍 선생이 우리 동포를 향해 한 방송연설이 언급되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선생은 패전한 일본과 해방된 한국이 동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 “식민지 민족의 피해의식을 뛰어넘는 참으로 담대하고 포용적인 역사의식이 아닐 수 없다.”  2021년 8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연설 중에서.

 

이 책을 읽고 우리가 겪은 근래의 시간을 몇 해 되돌아본다.

 

2018년 1030일 한국대법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제철 원고가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무슨 의미인지어떻게 이런 판결이 가능한지 무척 궁금했다무려 1941~43년 일본제철 공장에 강제 동원되어 노역을 하며 임금을 받지 못한 엄청난 임금 연체 사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지만 -을 이 판결을 계기로 자세히 알게 되고 목록에서 계속 밀려난 현재도 마무리 되지 못한 근현대사에 대해 다시 관심을 나눴다.

 

일본제철은 배상금 지불을 거부했고 법원은 한국 내 일본 제철의 자산을 압류했다일본 정부는 그것을 기다려온 절호의 기회인 양 한국을 상대로 수출규제에 나섰다문재인 대통령은 일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제외 결정에 대해 "대단히 무모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어려움이 더해졌지만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물 밑 작업으로 무마하고 거래하는 외교가 아니라 대통령의 연설로 외교의 방향을 제시한 일을 처음 목격한지라 놀라고 떨렸다그 덕분에 관심을 두고 추이를 지켜보다 이제까지 모르던 민간외교에 대한 내용도 알게 되었다한일 양국만이 아니라 한중일 삼국에서 우호적인 민간 교류와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들은 길게는 40년간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러니 요란하고 목소리가 큰 폭력적인 이들에 겁을 내고 위축될 필요는 애초에 없을 지도 모른다세상에는 늘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고 문제를 똑바로 보고 옳은 일을 옳다고 하고 이해와 우호와 협력과 연대에 힘쓰는 이들이 많다그리고 이런 활동에 국적은 문제가 안 된다.

 

저자에게 깊이 감사하며 마치려한다생각도 감정도 복잡한 날이라 그것을 동력삼아 읽고 쓴 어수선한 글이 이 책의 함의를 흐렸을까 염려한다.

 

이 책의 주제는 역사에 유린당해온 개인들에 대하 위로와 사죄배상보상에 관한 것입니다코로나19로 인한 보상을 논하면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모색하는 마당에 과거를 직시하며 역사에 유린당해온 사람들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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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뇌 발달과 미래력을 만든다
한재은 지음 / 드림위드에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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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믹의 굳이 찾아보는 장점이라면 독서 시간이 늘어난 것일까요가족들이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얘기하는 시간은 확실히 늘어난 듯합니다.

 

특히 겁도 많고 걱정도 별난 우리 가족은 더 그랬나 싶기도 합니다아무리 조심해도 아파트에 확진자가 나오기도 하고 잘 가던 식당에 확진자 방문 소식도 들리고 하니... 불안을 견디며 외출을 하느니 실내 활동을 다양하게 해보자로 합의했습니다.

 

문제는 TV 보는 것온라인 게임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그래도 한동안 영화 찾아보느라 TV 구매 후 가장 많이 사용한 듯합니다새 책들이 꾸준히 출간되는 것이 다행이고 안심이었던 2년의 세월입니다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어른들은 각자 알아서 읽고 누가 조언하기도 애매하고 불필요하지만아이들은 이런 독서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할 때도 있습니다제가 어릴 적에 굳이 지도 안 받아도 그냥 잘 읽고 별 문제 없었던 것도 생각나긴 합니다만.

 

의무교육제도가 미비했던 제 학창 시절에도 중고등학교 상황이 너무 싫고 답답해서 자퇴하고 검정고시 봐도 되냐 물으면 부모님이 늘 네 뜻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그런데 왜 그렇게 안 했을까이제 와서 궁금하네요.

 

마음이 아파서 학교 가고 싶지 않다하면 그렇게 하라고 하셔서 나중에 개근상을 한번이라도 받고 싶어 자발적으로 열심히 등교한 해도 있었습니다받았습니다진심으로 소중했지요.

 

세대가 바뀌었지만 집 안 분위기는 공공교육만이 답이라고 강요하는 건 여전히 아니라서 그런데 왜 가족 모두 모두 공교육 과정을 다 착실하게 마친 사람들인가 -, 지금 십대인 아이들이 무언가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은 날에는 간혹 묻기도 합니다.

 

학교 다니고 싶지 않으면 다니지 않아도 되냐고대답은 옛날과 같이 리버럴합니다. “네가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된다.” 그 반발일까요아이들이 엄청 학교를 성실히 다닙니다간혹 염려스러운 원칙주의자의 면모가…….

 

그래서 독서가 더 필요하다고 느낍니다세상을 한 눈에 파악하고 반드시 옳다는 한 가지 기준에 따라 사는 것은 아주 위험할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으니까요.

 

성적이나 입시 교육과 연관 지어 효율성과 성공률을 노리진 않습니다수능 시험은 짧은 시간 많은 독해력이 필수라고 하는데 그런 이유로 독서를 권하지 않습니다자기 속 짚어 남 속역지사지에 담긴 뜻을 좋아해서인지누가 권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기부여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독서에 기대하는 바는 큽니다어쩌면 욕심이 지나친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의 정서의 깊이가 깊어지길,

타인의 경험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생기길,

억지로 배우는 거 말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통해 관계 맺기에 대해 배우고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커지길,

누구에게 묻기 힘든 고치고 싶은 점들을 혼자서 고쳐볼 격려와 힘을 얻길,

무엇보다 책 읽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길.

 

그리고 가능하면 때로는 꼭 필요한 경우에는


긴 호흡으로 끈질기고 솔직하게 장편을 읽듯 현실에서 만나는 문제들을 고민하길.

 

아이들이 한참 어린 시절저녁 시간 책들을 골라 돌아가며 서로 읽어 주고 함께 크게 웃던 그 시간이 종종 그립습니다우울하고 불안한 시대에도 멋진 책들이 많아 참 다행이고 늘 감사합니다.

 

책을 큰 소리로 읽어 주는 것(Read Aloud)은 아이들이 책에 흥미를 갖고 언어나 어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소리 내 책을 읽어 주면 언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확장시켜 줄 수 있다.” 데이비드 피어슨 교수(버클리대 교육대학원장)

 

어른들이 책을 많이 읽어 준 아이는 주위 모든 언어에 대해 이해력이 높아지고 어휘력도 훨씬 풍부하게 발달한다.” 미국 터프츠대학교 인지신경과학과 매리언 울프 교수

 

7월에 수업 시간표를 함께 보다 뜻밖의 표현을 들었습니다화요일 시간표를 보면 깊은 탄식이 나온다고 하더군요감정에 공감해 주지 못하고 표현에 감탄했습니다아이는 힘든데 나는 무척 재밌었음을 고백합니다.

 

시험을 보고 나서는 한 과목에 대해 참담한 기분이라고 해서 사전에 단어를 찾아보았습니다평소에 써 본적이 없는 단어라서 언젠가의 독서에서 만난 단어일 것이라 짐작합니다일상에 멋지게(?) 활용되니 눈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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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김이수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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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읽는 재미가 늘어 가는지라 단편집은 이제 즉각 반갑다목차를 보시고 아시는 작품도 있을지 모르나 나는 모두 다 처음이라 더 좋았다.

 

2016년 가수 겸 배우인 장근석 감독이 연출한 단편영화(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초청작원작이 동일한 제목인 [위대한 유산]으로 표제작이고[눈물은 오래 전에 말라버렸다]는 <소설 문학> 계간지에 실린 작품이라 한다.

 

저자의 이력도 흥미로운데일본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2013년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받은 [위대한 유산]으로 등단한 작가이며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행정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당연히 표제작부터 읽는 버릇이 있는데부모와 돈이라는 소재라 미뤄두고 다른 작품들도 살펴보았다분단과 정치 망명자의 삶민주화 시대 지역 운동가 아내의 삶샐러리맨의 애환탐욕으로 파멸하는 소시민무속의 세계……쉬운 소재도 무겁지 않은 주제도 없을 듯하다.

 

덕분에 고민을 거두고 다시 표제작 [위대한 유산]을 읽는다작가가 실제로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쓴 소설이라고 하니이 작품 자체가 위대한 유산인가 싶기도 하다.

 

만화가가 되고 싶은 주인공그런 아들을 위해 돈을 모은 아버지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내기까지의 과정이 긴장감 가득하고 장면들이 강렬했다.

 

아버지 돌아가시면 빌딩 세울 생각에 골몰하는 자식들이 주인공의 형제들로 등장한다다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부모의 죽음에 기대를 앞세우는 이들에게 호의를 가질 이유도 없다.

 

저자에게 관심이 생겨 전작 <가토의 검>을 찾아보았다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추리스릴러 장르라니 조건 반사처럼 끌린다영화는 9분이라 주제를 아주 집중적으로 영상으로 다뤘을 듯하다어디서 볼 수 있을까.

 

[눈물은 오래 전에 말라버렸다]는 평소에 특히나 더 관심을 두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라 아는 바 없이 배운다는 생각으로 따라 읽었다태어난 곳은 내 선택이 아닌데주어진 것들로 삶이 더없이 위험해지고 힘겨운 이들에 대해어쩌면 기후난민이 곧 닥쳐 난민이 대량 발생할지도 모를 시대에 무거운 마음으로 탈북 후 삶을 견디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는 오래 전 시대상이 눈앞에 다가오는 어찔한 기분으로 역시 쉽지 않게 읽었다나만 자리를 옮겼을 뿐 여전히 머무르는 이들이 있을 터인데 과거 일처럼만 여겨 너무나 죄송하고 아프기도 했다이 단편의 제목을 다른 작품으로 만나거나 알아보는 내 세대들이 있을 것이다여전한 어려움과 여전한 유혹과 갈등 역시.

 

[싸가지와 둘리]는 아이 입장이 안타까워 부부에게 원망과 화가 나던 작품이었다너무나 현실적이라 무척 불안하던 이야기 전개였다.

 

[비곗덩어리이 제목 역시 다른 문학 작품이 먼저 떠올랐다가족엄마와 아들 이야기라 한없이 쓸쓸해진다엄마가 한 행동은 과연 선택이었을까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일까.

 

[황금일출]은 중편이고 작가가 연애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해서 좀 다른 기대가 있었다작품이 일단 시작되면 작가로서도 등장인물이 하는 일을 말릴 수 없는 경우도 있다던데그래서 점점 무거워지는 이야기 전개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일까심정적으로 가장 거리가 멀고 아는 바가 없어 긴장한 소설이라 더 느리고 천천히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예전 일로 다가오는 감성들이 가득하니, 20대 독자들은 그야말로 부모님 세대의 정서와 시대와 분위기를 배울 작품들이라 생각된다


쉽지 않은 상황에 주인공들이 겪는 어려운 심리들을 읽어 내는 것이 필요하지만 문장 자체가 아주 깔끔하니 읽기에 전혀 힘들지 않다.

 

자주 언급하지만 단편의 장점은 그 분량에도 있다아무리 지친 날이라도 한편 정도는 읽을 기운이 있다는 것익숙하고 새롭고 진지해서 감사한 작품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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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깨우는 수학 - 수학을 잘하고 싶다면 먼저 생각을 움직여라
장허 지음, 김지혜 옮김, 신재호 감수 / 미디어숲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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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암기력을 미워하고 욕할 때 참여하지 않았다할 수 없었다게을러서 지름길도 비법도 없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암기를 잘 하지 못한 세월이 아프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적을 내용들이 욕을 먹거나 적을 만드는 내용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어쨌든 암기 과목이 쉽다편하다는 말에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물론 외울 분량이 한 페이지 정도면 어찌해보겠으나 무려 단행본 교과서 여러 개가 아닌가.

 

수학은 공식을 유도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나면 다 풀고 난 퍼즐처럼 비밀이 다 보이고 그런 공식을 사용한 문제들 역시 풀어 본 문제들은 언제라도 다시 풀 수 있게 된다물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숫자가 아니라 기호가 나오는 경우는 더 수월하다연산을 틀릴 위험이 사라지니까고등학교 2, 3학년 담임이 같은 분이셨고 수학 담당이셨다시험이 끝난 후 교무실로 불려갔는데 답안지를 보니 수학 풀고 산수를 틀렸다그래도 두 자리 수 연산이라 많이 부끄럽진 않다흠흠...

 

수학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생각을 깨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추가적인 설명도 타협도 양해도 이해도 필요 없이 말끔한 논리를 계속 따라가면 세상의 많은 일들을 설명할 수 있는 무척 아름다운 사고력 훈련임에는 틀림없다.

 

대학을 가서 첫 수강신청을 하고 꽤나 실망했다국영수는 왜 다시 배워야하나짜증스러웠다이런 거 안 하는 게 전공학과 아닌가사기당한 기분물리학도 기초물리뉴턴물리의 세계에 머물라 하니 그것도 지루했다이딴 거 복습하러 진학을 하다니!

 

다행히 담당교수님 입자물리학 전공별명 안인슈타인안 씨 이 출제하신 시험문제들이 무척 재미있었다예를 들면 높이 몇 미터인 건물에서 누군가 추락사했다시신이 놓인 장소는 건물 현관에서 XX 떨어진 곳이다자살인지 살해인지 밝혀라이런 문제였다.

 

혹은 A네 집에 자식들 성별은 남남 B는 여여 C는 남녀 D... 이렇게 개별적인데 외부 조작 없이 표본 인구가 얼마 이상이 되면 남녀 비율이 동률로 수렴하는 이유를 통계물리학의 xx 공식을 사용하여 설명하라.

 

학교 별로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지만 내가 속한 물리학과는 다섯 문제 출제하고 답안지는 무한 공급해 주고 어차피 풀이과정 다 쓰려면 여러 장 필요 시험은 항상 저녁 먹고 나서 대략 6시 30분이었나가물가물, 30년쯤 전이라 자정까지였다.

 

과학에 만점은 없으니 99점이 최고점이고 절대평가를 하니 간혹 일등이 B학점일 경우도 자주 있었다오픈 북도 끼리끼리 엿보거나 의논하는 일도 별 의미가 없으니 시험 담당 교수는 자유롭게 연구실과 시험실을 들락날락 하시고학생들은 답안지에 기나긴 풀이 적느라 극심한 육체적 통증과 체력 달림을 경험한다. 9시쯤 뭘 먹고 다시 시험본 적도 많다.

 

수학책 읽고 물리학 얘기하는 이상한 글인데물리의 언어는 수학이라 학부 4년 내내 수학만 한 셈이다그 수학이 물리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게 되어 엄청 재밌어지면 졸업에 가까워져 있다그럼 어쩔 수 없이(?) 대학원 진학을 하는데 밥벌이가 쉽지 않은 기초과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제자들에 대한 스승들의 걱정과 만류는 엄청나다.

 

수학을 정말 생각을 깨우는 학문일까

사고력을 키우고 응용력을 높이는 훈련일까

논리력을 정교하게 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힘이 되는 공부일까.

 

계획 하에 실험 데이터를 모아 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2021년에 경험하는 세상과 사람들을 보며 90년대 내가 알던 함께 공부하던 이들을 떠올려 본다구호에 휩쓸리지 않는 분위기였고학내 성추행이 발생하자 모두 의견 일치로 가해 남성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고 여학생이 전체 5% 내외 오랜 역사 속 여성에 가해진 차별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수학적 훈련의 공로가 얼마간 있었을까그랬길 바라고 여전히 그 유효하길 바란다그래서 수학이란 학문이 수험생들 괴롭히는 기피 과목에서 가능한 빨리 탈출할 수 있길 바란다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에 수학적 원리가 포함되어 있으니 언젠가는 수학은 사는데 쓸모없다는 이야기는 덜 들려오면 좋겠다.

 

수학을 잘 할 수 있는 4가지 방법

 

1. 문제를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라

2. 수학 공부의 가치를 찾아라

3. 명확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말하라

4. 오류를 범하라 먼저 문제를 이해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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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 기술의 미래와 시장을 예측하는 힘
윤태성 지음 / 반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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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육체의 연장으로서 도구가 보조적인 유용한 발명이었다면과학기술은 주도권마저 가져가는 막강한 변화였다근대 이후 과학이 발견과 발명을 거듭하고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현재도 일상부터 우주까지 골고루 확실한 영향을 미치는 힘은 기존의 과학과 새로운 과학이 대부분을 독차지한 듯싶다마냥 좋거나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내리지 못하는 기차에 계속 타고 있는 기분이다.

 

기술이 유명해지려면 사건×사람×사상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어느 한 요소라도 제로가 되면 전체는 제로가 된다.”

 

스탠퍼드대학교 교수 브라이언 아서는 기술이 다른 기술과 융합하면서 혁명을 향해 나아간다고 했다. (...) 아서의 주장대로라면 정보 기술이 마치 물이나 전기처럼 인식되는 시점은 2030년이다.”

 

반백년도 덜 살았는데 우주시대가 열렸다고 했던 시절에서 우주쓰레기 문제를 논하는 시대가 되었다조금 과장하면 어쩌면 과장이 아닐 지도 하루가 멀다 하고 과학기술이 바뀌고 산업에 활용되는 범위가 속도가 빨라져서 곧바로 일상에 등장한다.

 

인간이 과학기술을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 성능 실험에 참여 당하는 듯하다그 결과 기술만 점점 더 스마트해지는 듯.

 

“1 억 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 기술은 1800년 발명된 저온 살균과 1919년 물 염소 소독, 1928년 항생제, 1965년 분기 바늘이다.”

 

“10억 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 기술은 1875년 화장실, 1909년 합성 비료, 1913년 수형, 1945년 녹색혁명이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하는 기술로는 2000년에 발명된 로봇 수술을 비롯해서 온라인 공개 강의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센서뇌 기능 매핑과 유전자 매핑자율 주행차사물 인터넷담수화 기술이 있다.”

 

기술 혁명 4단계로 설명해 주신다니 일목요연할 듯해 한편 안심이 되고 한편 음... 멋지지만 재미는 없겠네싶었다그런데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기술 마케팅 분야인데 이런 구성으로 쓰셨다는 것이 파본 아닌가 먼저 확인하게 된다통합학문과 상상력을 중요시하는 엔지니어이자 학자의 소신이라 믿는다.

 

1부는 기발하고 재밌어 금방 읽는다완독을 향한 힘을 주는 영리하고 멋진 구성이다. 2부는 차분히 기술을 살피고 에필로그에서 저자의 예측을 확인한다.

 

혁명을 꿈꾼다는 세 영역의 과학기술들 데이터모빌리티기반 기술 에 대해 현재로선 더 이상 깔끔하게 설명한 책을 만나기도 어려울 듯하다.

 

새로운 기술이 필연적으로 야기할 누군가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상황에 미리 마음이 쓰리다우리가 상품에 열광하는 사이실제로는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바꾸는 계획을 실행하는 중인 것이다알아도 막을 힘도 바꿀 힘도 개인이 가지기엔 힘들지만 그래도 아는 편이 낫다고 여전히 믿는다.

 

하나의 흐름으로서 기술 전체를 파악해야 한다기술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해석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전체를 조감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 명확한 기준을 갖고 과학기술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4단계는 기술 창조기술 진화상품 개발시장 확장으로 구성된다기술은 시간을 들여서 순서대로 각 단계를 거치면서 세상을 바꾼다.”

 

과학 기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도기술 경영에 실제로 참여하려는 이들에게도 기술의 역사뿐만 아니라 미래 산업으로서의 경영 가치를 짚어 주는 이 책은 다각도로 유용할 것이다.

 

시대 한정적으로 큰 찬사를 받은 기술들의 공과를 덕분에 다시 생각해 보며 언제나 잊지 말아야할 기술의 양면성에 대해서도 소비자로서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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