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 주는 것들 - 고전에서 찾은 나만의 행복 정원
장재형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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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개의 고전문학을 언급하거나 발췌해서 저자의 생각을 덧붙인 글일 거란 생각을 했다목록을 보고 고전이라 분류되는 기준은 무엇인지 잠시 혼란스러웠다생각을 오래할수록 더 모르겠다.

 

데미안오즈의 마법사(사르트르), 달과 6펜스네루다의 우편배달부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어린왕자좁은 문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위대한 개츠비연금술사지상의 양식그리스인 조르바파우스트노인과 바다인간의 대지구토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변신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안네의 일기마지막 잎새이반 일리치의 죽음싯다르타고도를 기다리며여자의 일생나르치스와 골드문트대성당

 

내가 하는 일이 적어도 구할은 청새치 잡고 돌아오는 노인의 마음 같다는 생각에 30여 년 만에 다시 읽어 볼까하고 생각한 <노인과 바다>도 있다십 대에 읽은 책 표지가 떠오르지 않으니 리커버판에 그냥 홀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어린 고전들도 포함된 책을 고전 독자가 되어 읽어 본다.

 

걸어가면 돼아주 긴 여행이 될 거야이 나라를 지나가다 보면 때로는 즐겁겠지만 어떤 때는 무섭고 끔찍한 일도 생길 거야하지만 내가 아는 모든 마법을 동원해서 너를 지켜 줄 수 있도록 노력할게.” (……) “에메랄드 시로 가는 길은 노란 벽돌 길로 되어 있단다.” <오즈의 마법사>

 

이 책 때문이었나나는 아주 오래 도로의 노란 중앙선을 걸어 보고 싶었다거리로 나가 투쟁하는 가투 유형이 전혀 아님에도 언젠가의 거리에 나선 건 그 이유로 중앙선을 실컷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이제야 고백한)그때 내가 그 길을 걸은 것이 한편으로는 이 작품의 인물들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도전을 한 것인가다 늦게 감상적인 기분이 든다갑자기 토네이도에 휘말려 날아와 떨어진 집에 깔려 죽은 동쪽 마녀의 명복을 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는 것이 뭐가 문제겠소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달과 6펜스>

 

좋아하는 것들이 많을수록 더 자주 기쁠 것이다이만큼 간절하게 좋아하는 것이 있는발견한 사람은 그저 부럽다퍼즐 조각 맞추듯 정확한 모양을 찾고 선택에 따른 쾌락과 감수할 대가를 재빠르게 계산해서(즉각적인 반응이라 스스로 말려 볼 수도 없었다...는 변명무척 잘 포기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지라 궁금하고 부러운 삶이다. 6펜스를 잘 챙기고 가끔 달을 올려다보는 삶에 자족하는.

 

예술 작품에는 그 화가의 경험과 지혜가 대단히 정교하게 축적되어 있으며화가만의 언어로 독특하게 표현되어 있다예술은 말이나 글처럼 쉽게 표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화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것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화가의 삶미술에 관한 예비지식 그리고 감수성 등을 갖추어야 한다.

 

음악을 듣고 감정이 움직이는 일은 적지 않다그에 비해 그림 앞에서 왈칵 눈물을 쏟거나 감정적인 표현을 하는 이들을 본 적도 들은 적도 별로 없다회화란 친해지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소통을 즐기지 않는 상대와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그러니 뭘 이해해보겠다고 공부란 걸 하는데그렇게 막 분석하고 나서 알게 된 지식정보가 과연 내가 보고 있는 이 작품인가하는 난감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무슨 일 있나?”

?”

전봇대처럼 서 있잖아.”

마리오는 고개를 돌려 시인의 눈을 찾아 올려다보았다.

창처럼 꽂혀 있다고요?”

아니체스의 탑처럼 고즈넉해.”

도자기 고양이보다 더 고요해요?”

네루다는 문손잡이를 놓고 턱을 어루만졌다.

마리오내게는 일상 송가보다 훨씬 더 괜찮은 책들이 있네그리고 온갖 메타포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건 부당한 일이야.”

뭐라고요?”

메타포라고!”

그게 뭐죠?”

시인은 마리오의 어깨에 한 손을 얹었다.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예를 하나만 들어주세요.”

네루다는 시계를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좋아하늘이 울고 있다고 말하면 무슨 뜻일까?”

참 쉽군요비가 온다는 거잖아요.”

옳거니그게 메타포야.”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며칠 전 세계문학에 속해 있고 알고 보니 나 빼곤 다 영화를 본 것 같은 작품을 뒤늦게 읽었다그 이야기 속에 네루다가 등장한다어느 나라의 쿠데타 세력이든 그 천박함은 아주 꼭 닮아 있다네루다의 장례 장면에서 한 문장 마다 한숨을 몇 번을 쉬었는지관 속의 네루다 역시 내내 한숨을 지었을 듯하다. -> 이런 것도 메타포라면 문장의 뜻은? 😅

 

첫째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 둘째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셋째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 상태혹은 좀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사랑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혼동한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의 책을 조금 읽다 포기하거나 집어 던지고 그 여파로 프랑크푸르트학파 전체를 미워하게되는 사람들이 ~라테는 적지 않았다소위 연애세포가 사멸한 지 오래라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닌 것이 반가울 뿐이다사랑하는 이들을 힘껏 응원하지만정말 모두가 사랑이 필요한 것인지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사랑하지 않는 상태를 못 견디는 것인지 등등 여러 의문은 든다물론 막 물어보거나 하진 않는다쉽다는 사람이 없으니 부디 다들 힘내시길!

 

문손잡이를 잡으며타인의 얼굴을 보면서바닷가에서 주운 돌멩이에서자주 가는 카페에서 맥주잔을 쥐면서아돌프의 연보라색 멜빵을 보면서땅에 떨어진 종이쪽지를 집으려고 하면서 주위의 곳곳에서 구토를 느낀다구토감에서 유일하게 해방되는 순간은 바로 카페에서 낡은 축음기로 틀어주는 섬 오브 디즈 데이스(Some of these days)라는 노래를 들을 때다. <구토>

 

존재하는 이유가 없다면우연히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부조리인가그렇다면 우주 자체가 거대한 부조리일 것이다이유도 목적도 없이 스산하고 무감하게 기계운동을 반복하는로캉탱이 도서관과 카페만 오가는 고독하고 단조로운 시간이 더 이상 내 현실에서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는 시절이다나는 구토는 아니지만... 간혹 멀미가어지럼증이흉통이 느껴진다.

 

좋아하거나의미가 있거나새롭거나흥미로운 작품들이 있다면 저자의 덧붙임말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나란히 적어보는 일도 좋겠습니다저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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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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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다현실에서 결코 하지 못할 복수가 네 편이나 펼쳐진다겁이 많긴 하지만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을 읽을 때만은 비교적 태연했는데 뭐 이렇게 무서운지심장근육을 단련한 방법은 없을까 잠시 진지해졌다.

 

<1922> 아들까지 끌어들여 살인을 한 대가는 쥐에 시달리는 것이다현실이든 당사자의 망상이든 상관이 없다고통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이럴 거면 왜 살인을 했나 싶게 어이없는 인간이다 싶기도 하고그래도 벌 받을 만한고통 받을 만한 계기가 있어 천만다행이다 싶기도 하다살인하지 맙시다처참하게 망가집니다!

 

<빅 드라이버이 작품은 못 읽을 것 같았는데 성폭행 소재 어쨌든 생존했으니 결말이 궁금해서 범죄자 잡아서 어떤 복수를 해주나 알고 싶어 꾹 참고 읽었다괴롭다생존자가 죄책감까지 느끼는 전개가... 그리고 의논하는 상대가... 눈물겹다조심하시길울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공정한 거래> 죽음을 앞두고 증오하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그러면 삶을 연장할 거래할 것이 없어지는 것인가무섭진 않은데 서글프다.

 

<행복한 결혼 생활당연히(?) 있을 법한 내용이고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끔찍하고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알게 되어 정말 혼란스러웠던 순간들이 떠올랐다더구나 적극적으로 편을 들고 애정을 보이는 것을 보면 미지의 세계로 남은 인간관계의 당사자성을 믿고 싶어진다행복하게 몇 십 년 산 남편의 정체가나와 자식들에게만은 전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대가가 보여 주는 재밌고 수준 있는 창작물이란 이런 것이다하는 메시지를 느낀 작품이다.

 

살면서 드는 온갖 의문들 중에이게 뭐야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는 격렬한 질문에 답해 주는 건 문학뿐인가 하는 생각도 종종 든다그래서 나는 결말이 있는 이야기 읽기를 멈추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삶이란 건 혼란 속에 살다 결국 답도 모르고 끝날 것만 같으니.

 

그런 이야기들 중에 가끔은 현실의 시간을인물을 이해하고 견디거나 비켜나갈 방법을 알려 주는 것들이 있다아주 가끔이지만그럴 때면 현실이 된 이야기를 읽은 것인지이야기가 된 현실을 사는 것인지 기묘한 기분이 든다.

 

고결함이란 성공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깃드는 것이며 (...) 우리가 노력을 다하지 않을 때그러한 도전으로부터 일부러 고개를 돌릴 때바로 그때 우리 앞에 지옥문이 열린다고.” 스티븐 킹 작가의 말 중에서.

 

고개를 돌리면 고결하게 살지 못한다가 아니라 지옥문이 열린다니이거 공평한 겁니까.


 

..............................................

 

문득 떠오른 생각차라리 이미 죽었으면 좋으련만그러나 살아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애원했다죽여 달라고내가 당신한테 그랬던 것처럼 내 목을 그어달라고하지만 아내는 들어주지 않았다그것이 아내의 복수였다.”

 

인생은 공정한 거야엄마 뱃속에서 아홉 달 동안 주사위 두개를 굴리다가 어느 날 휙던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니까어떤 사람은 7이 연달아 나오기도 하지어떤 사람은 불행하게도 1이 두 개씩 나오기도 하고세상이란 게 원래 그런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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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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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어떻게 지내요?”하고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시몬 베유 -

 

혹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의 고통은 무엇인가요?(Quel est ton tourment?)”라고 묻는 일

 

그러고 보니 나는 잘 지냈어요잘 지내요?”라고 묻지 않는다누가 내게 그렇게 물으면 뭐라 대답해야할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 뒤로상대도 대답하기 무척 곤란할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을 빼곤 어떻게를 넣으면 좀 더 여유롭고 느긋한 질문이 된다무척 다정한 눈빛으로 세상의 존재들에 관심을 기울이던 철학자이자 보부아르와 더불어 20세기 사상을 현장과 연계해서 다듬은 시몬 베유Simone Weil를 여기서 다시 만나 반갑고 그립다.

 

너무 화가 나서 눈에 보이는 건 다 때려 부수고 싶은 심정이야. (...) 이 모든 고문을 사서 겪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어. (...) 헛된 희망에 절대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 내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고? (...) 아마 그렇게 오래 살지도 못할 거야.”

 

<어떻게 살 것인가>가 사는 내내 사람들을 괴롭히는 질문이라면어떻게 죽어야 할까는 질문으로 삼은 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는 선택지와 같다.

 

환자들을 모욕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나는 돌연사보다 병사를 아주 조금 선호한다걱정이 많은 성격 탓에 죽기 전에 정리하고 준비하고 뭔가 할 일을 해놓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의무와 책임을 다하다 죽겠다그런 고상한 생각만 있는 것이 아니라얼른 할 일을 해치우고 <제일 좋아하는...> 이런 컬렉션을 마지막까지 지극하게 망설임 없이 누리다 죽고 싶다는 철저하게 쾌락주의적인 이유도 강하다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무엇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이라니!

 

단 한 가지 걱정은 예산을 적절하게 분배해서 죽기 전에 빈털터리가 되는 당혹스런 입장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유일하게 남은 염려이다.

 

잘 죽기그게 무슨 뜻인지는 다들 알아고통 없이아니면 적어도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지 않는 것침착하게 약간의 품위를 지키며 가는 거지깔끔하고 산뜻하게하지만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나사실 자주 있지 않아왜 그럴까그게 왜 그렇게 무리한 요구일까?”

 

책 속 친구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안락사를 위한 약도 준비해두고 마지막 여행을 떠나며 오랜 친구에게 동행을 부탁한다여행에 관련해서 도움을 달라는 것도 조력살인을 원하는 것도 아닌 완전한 혼자가 아닌 옆방에 있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가벼운 부탁처럼도 들리고 무겁게도 들린다여행은 늘 더구나 마지막 여행은 반드시 자신이라는 존재와 전면적으로 만나게 되는 시간이고 경험일 것이다옆에 있는 사람은 무얼 하면 좋을까이해연민혹은 공감?

 

이야기라도 현실이라도 죽어가는 것은 단 한 명의 친구뿐만이 아닌 세상이다. 한 개인의 죽음에서 지구 전체의 죽음까지 암울한 세상을 다 담았으면서도 뉴욕의 지성인이라는 저자는 왜 이리 다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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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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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작품인데 전혀 몰랐다지인들도 잘 모르는 작품이라 스포는 전무한 상태로 읽었다회원 한 분은 <영혼의 집>이 아니라 <인형의 집>으로 주문했다 깜짝 놀랐다는 웃기려고 하신 말씀은 아니신가했던 소식도 들었다.

 

완독 후에는 늘 읽기를 잘 했다하는 작품을 고르시는 강철의북클럽 클럽장에 대한 믿음으로 이 달도 완독일단 작품이 엄청 재밌다당연히 가독성이 좋아 술술 줄줄 읽힌다마술적 리얼리즘이란 평을 생각 말고 읽으라 하신 당부도 옳았다이 작품은 엄청 재밌는 옛날이야기이다.

 

묘하게도 증조할머니할머니어머니나로 이어지는, 4대에 걸친 며칠 전 읽은 작품을 떠올리게도 했는데칠레의 근대사 역시 대한민국의 역사와 무척 닮아 있다.

 

자전적 요소들이 많으면서도 읽다 보면 배경을 잊고 즐기게 되는 멋진 창작물이다역사적 사건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소설 속 캐릭터들로 다수 등장한다모두가 엄청나게 개성적이라 각각의 인물의 상황에 머무르며 상상과 짐작을 즐겨보았다.

 

마침 오늘 탈레반의 보복을 피하고자 하는 한국 정부 조력자들과 가족들을 미라클이라는 작전명 하에서 무사히 이송한다고 하는 보도를 접했다작전 성공 하나로 모두의 해피엔딩이 보장되지 않겠지만 더 무참할 수도 있었던 소식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안도감이 든다.

 

분류 명칭이 무엇이건이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한동안이라도 살아가야 한다그 이전에도 존재했고 오늘 이후에도 늘어날 난민들에 대해 이제 우리도 사회적 대화와 교육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저자 이사벨 아옌데는 칠레에서 태어나 국가의 근대적 격동기를 고스란히 체험하고쿠데타로 망명하여 떠돌며 살았다짐작 이상의 어려움들이 많았을 것인데관심도 시선도 돌리지 않고 칠레의 역사를 지켜보았다.

 

얘야그렇게 하면 설사 네가 여기를 떠난다 해도 네 뿌리를 가져갈 수 있지 않겠니?”

 

그의 글은 역사적으로 억압받은 이들의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파악하면서도 안심이 될 정도로 유순하고 비폭력적이다그리고 디아스포라*에 대해 잠시라도 진지하게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마침 든 내게 여러 울림과 생각거리들을 주었다.

 

디아스포라(그리스어διασπορά[*])는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든지 타의적이든지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유목과는 다르며난민 집단 형성과는 관련되어 있다난민들은 새로운 땅에 계속 정착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디아스포라란 낱말은 이와 달리 본토를 떠나 항구적으로 나라 밖에 자리잡은 집단에만 쓴다사전요약.

 

그 어느 것도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은 없었다. (...) 그 어느 것도 괜히 존재하는 것은 없었다. (...) 나는 각기 정확한 자리를 지닌 퍼즐을 맞추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이 운명일까아직 모든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뿐일까저항과 의문이 드는 내용이다운명은 너무 촘촘하고 우연은 너무 쓸쓸하니…… 나는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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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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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파리에서 전해온 라이브 강연을 듣고 나는 못 가도 정신은 어딘가로 홀홀 날아 가버린 듯했다사업자 우선 해외출장/여행만 먼저 허가가 난다는 조건이면 창업이라고 하고 싶은 기분이 잠시 들었지만... 그러기엔 삶이 거추장스럽고 무거워졌다.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Les Bergers d'Arcadie dit aussi "Et in Arcadia Ego"

의미: 너희도 나처럼 죽을 것이다”.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어쩌면 내가 그리워하던 모든 것들의 실체는 그동안 다른 무엇들로 변해버렸을 지도 모른다그렇다면 기록과 동시에 불멸의 생을 획득한 책 속에 담긴 미술과 역사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훨씬 더 실체성을 가질 지도 모를 일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실체가 분명하지 않았던 탓에다시 말래 고전미술의 실체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고전 미술을 향한 신화와 예찬이 더 극적으로 이뤄졌을 지도 모릅니다.”

 

사실이자 멋진 말씀이다루브르 <말로의 비너스>는 복원이 이미 가능하며 99%의 확신으로 그것이 실제 모습 - 옷이 흘러 내려 왼손으로 잡으려는 찰나 - 이라 인정하면서도 복원하지 않는다결핍이 인간의 상상력에 더 지극한 쾌감과 예술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브르의 그리스 예술품들은 거의 다 로마인들의 모사품이거나 루브르의 복원품들이다. 처음 알게 되었던 순간에는 무척 놀랐다. 저자 역시 그런 내용을 지적하며서 우리가 보고 감상한 대부분이 짝퉁복제품이고 순백의 대리석은 원래 채색되었던 것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공들여 찬양한 이유는 무엇일까유럽의 지배층이 모두 바보가 아니라면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저자는 고대 그리스가 육체적 파시즘 사회라고 한다즉 아름다움은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누드 작품은 인간의 몸이 아니라 신의 옷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손쉽게 고대라고 분류하지만 인간 사회는 그 고대로부터 그다지 진화한 것 같지가 않다현대의 육체적 파시즘은 더 악랄하고 노골적이고 특정 지배층의 관심 사항이라기보단 돈을 벌고 싶은 자 누구나의 영업 전략인 듯하다그것이 미모이든 건강이든!

 

우리는 모를수록 혹은 모르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상상력에 죽고 사는 존재들이다이런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는 어디서 창발(emerge)한 것인지 한 때 무척 궁금해서 알아보려 집착했는데……모른들 어떠하리잊고 살았다.

 

양정무 교수는 이 책에서 그늘 밝히기관념 뒤집기신비주의 포장 벗기기인류사의 벌거벗은 모습 전하기 사견에 기반을 둔 거친 요약 를 주요하게 담아내었다.

 

미란 인간의 감정에 광범위하게 관계하기 때문에 이를 단지 몇몇 개념이나 조건으로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웃는 표정을 통해 살펴보는 문명의 표정은 다빈치가 언제나 표정을 보라!”고 했던 것과 겹쳐 들려서 더욱 흥미로웠다가만히 떠올려 보면 고대 미술 작품 중에 웃는 얼굴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그게 바로 문명의 표정이었다니!



표정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니 표정이 더 풍부해보인다. 


저자가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사를 되짚는 내용은 젊은 시절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이라 생각해서 열심히 고민했지만 어쩐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워 나도 그만 생각할래하고 살아온 세월을 뜨끔하게 한다어제만 해도 제국주의의 심장 루브르를 감상하고 있었으니 더 기분이 뜨겁다


일례로 추상미술이 비서구 사회의 야만성의 전시하기 위해 식민주의자들이 문화유산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전시 의도가 더 야만적이라 느낀다.

 

참담한 정복 전쟁 속에서 벌어진 부당한 미술품 갈취가 결과적으로 박물관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에서 우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유럽은 특히나 예술품의 명작을 가지는 것이 유럽 사회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예술적 권위를 획득하고 전쟁의 전리품으로 미술품을 전시하는 것이 효과가 좋았던 역사를 살았다. 그러니 영토확장을 가장 잘 한 황제의 영향력이 유럽 여러 나라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고 현대 유럽의 모습을 규정했다.

 

나폴레옹의 제국주의 시대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거대하게 축조되고 확대되며 전쟁 포로와도 같은 미술품들을 장식하고 채워 넣는 일이 가장 활발했던 시대이다예술만이 아니라 과학에서도 도량형의 통일은 이때 이루어진다.

 

나폴레옹이 소위 잠시라도 정복하지 못한 영국이 독자적 도량형 단위를 가진다는 것그래서 미국 역시 그렇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전쟁으로 쏟은 피로 사회와 문화와 예술과 학문이 번성하는 듯해 한편 섬뜩하다.


맥락 없이 내가 좋아하는 작품 두 점을 올려 본다


루브르에서 모나리자 맞은 편에 위치한 덕분에 
모든 관심을 빼앗기고 관람객들의 등을 더 많이 보는 애틋한 작품이다.
크기가 엄청 커서 나는 이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여전히 물병이 몇 개인지도 기억한다.
기회가 있으시면 만나시길
숫자 6의 의미를 생각해 보시길.

내가 아는 가장 슬픈 작품들 중 하나,
나도 많이 울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박물관이 873미술관이 251개가 있다최초의 박물관은 1909년 창경궁 안에 설립된 제실박물관이다.


무척 재밌고 유익하며 반가웠던 내용은 판데믹 속 미술의 역할이다양정무 저자만의 시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새로 만난 미술사책의 반가움을 더한다. 

 

흑사병은 미술의 양식이나 도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무엇보다도 미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자체를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흑사병으로 중세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사람들은 의지할 수 없게 된 신 대신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외부에서 누가 나를 구원할 손길이 오지 않는다면 스스로 구원할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그래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제목만은 잘 아는 <데카메론Decameron>*은 흑사병이 퍼진 피렌체에 자가 격리된 남녀 10명이 10흘 동안 계속한 이야기 100편을 모은 것이다즉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사실 형태로 바라보고 이야기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 1351년 죠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의 단편소설집. 10일 간의 이야기여성 7명 남성 3. deca" 10배를 뜻하는 미터법 단위

 

코로나 판데믹의 우리는 물리적으로 갇히고 넷network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남녀 10명이 아니라 동시접속 수천, 수만명이 가능한 도구를 확보했다. 원한다면 차례대로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시절이 지나서 우리가 틀어갈 역사의 방향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고민 속에 문명사적 고민을 하고 있다면 태어날 것은 무엇일까.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완벽함과 위대함이 아니라 인간적인 고민과 그것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옵니다.”

 

저자의 생각과 책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제목 그대로 신비함고상함교양이라는 옷을 걸친 미술을 벗겨 놓은 것이다고약한 편견을 깨면 미술은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과 사회 곳곳에 함께 자리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들린다문제는 편안하고 간결하고 시선과 생각은 냉철하고 명료해서 아주 잘 읽히는 멋진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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