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작 - 미·중 전쟁과 한국의 선택
허윤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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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언론사 주식도 보유했고 잡지 구독도 열심이었고 관련 활동과 모임소식도 챙겨 보고 참여했지만 지속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지자 점차로 줄어들었다신제품을 맛보고 신곡이 좋고 뉴스가 궁금하던 시절이 모두 지나갔다지금의 일상은 업무영화클래식 음악만으로도 시간이 아쉬운 날이 더 많다.

 

어쩌다 접하는 언론 보도 역시 기사 가치가 있나 싶은 대상과 의도가 저열하게 드러나는 작전이 보이니 달갑지도 않고 화내는 일도 지겹다그래도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로 칼럼과 사설과 연재를 쓰시는 이들 중 못 읽고 지나간 내용이 아까워서 다 찾아보게 되는 분들도 계시니 감사한 일이다.

 

이 책은 저자가 10여 년간 언론에 게재한 칼럼들을 주제별로 나눠 수록한 것이다취사선택도수정도 가필도 없이 그대로 실었다 한다단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구성이다국제 분야란 대해 언제 따로 배워 이해할까 싶은 영역이라 주요 시사용어경제 지식세계적인 작가와 학자들발췌한 글들을 모두 모아 주었으니 이만한 텍스트도 없다 느낀다.

 

여전히 내 독서의 편향은 공고한 것인지책을 읽은 티가 안 나게 처음 만나 이들이 수두룩하다그래서 싫은 것은 아니고 도리어 반갑고 재미있으니 다행이다분량면에서도 내용으로도 일독으로 다 이해하기란 벅차지만결심을 하면 아주 진지한 공부를 할 충실한 텍스트가 되어 줄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전체 그림을 보기 위해 읽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정말 만나기 싫은 인물이 포함된 글들을 슬쩍 건너뛰며 읽기도 했다언젠가 내 깜냥이 좀 더 커지면 차분하고 우아하게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바다 심연의 4차 산업혁명 물결과 그 위 내셔널리즘이라는 조류가 물밑에서 부딪혀 충돌하는 지점에는 굉음이 일고 마그마가 폭발한다바로 패권을 둘러싼 미중의 전투 현장이다수면 위로 눈을 내밀면 코로나 판데믹이라는 너울 파도가 출렁인다이 파도는 지난 30여 년간 인류를 지배한 세계화라는 현상을 아련한 추억의 포말 정도로 역사의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

 

과거 한반도에 2,000번이 넘는 침략이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 지난 일이라 괜찮다 식민지전쟁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 덮자는 말은 아닙니다여전히 한반도에 자리한 대한민국은 형태를 달리한 전쟁에 여전히 시달리는 중이다.

 

그나마 수치심을 모르던 탐욕스러운 이가 최강국의 대통령이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좀 덜 졸이게 하지만 건수가 있으면 돈 내놓으라던 장면들이 아직도 떠올라 불쾌하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특별히 더 유리해진 면은 무엇이며 있다고 해도 얼마나 유지될 것인가.

 

글로벌 통상 체제의 중심축은 다자주의 -> 양자주의 -> 거대 블록화로 옮겨 가고 있다. (...) 경제 대국을 중심축으로 주변 국가들을 연결해 광역 경제권을 구축하려는 구상이다.”

 

언론에서 현 정부와 원수가 진 듯 악착같이 보도하지 않아 의미도 축하도 없었지만 대한민국은 57년 만에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인정받았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사상 첫 만장일치로 지위가 변경되었다.

 

그게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실질적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일상이 더 많으리라 동감한다하지만 이젠 그럴 기회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해외 관련 어떤 일을 하든 아주 세세한 부분에서 국적을 가진 국가의 지위 변화는 늘 영향을 미친다가령 OECD 가입국이라 유학생 혜택이 제한되는 것처럼.

 

동아시아는 다른 형태로 협력을 이루어낼 것인가과연 중국과 일본과 함께 외교 관계를 분쟁 없이 이뤄나갈 수 있을까과문해서 더 모를 일이지만 그 미래가 쉽지 않은 예감은 강력하다.

 

베트남은 포스트 차이나로 기대를 받지만한국에게도 기회의 땅이 될 것인가일본 식민지로 살았지만 일본을 꽤나 동경하던 일부 한국인들의 정서와 달리 베트남의 한국에 대한 정서는 훨씬 더 적대감이 크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이 제일 걱정되지만한편으로는 20-30년밖에 남지 않은 거대한 환경재앙 앞에서 일국의 경제나 자국의 이익만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들도 동반되길 간절히 바란다.

 

겁보라 늘 희망이 있길여지가 있길최대한 낙관적인 미래를 상상하지만인류에게 남은 뭐라도 해볼 마지막 기회일 듯하다최대로 잡아 2040년이라는 보고를 가장 자주 본다일부 학자는 6년간 극한 기후 현상이 강화되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5년 안에 재앙을 만날 것이라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스스로는 선택하기 어려웠을 논조와 입장을 가진 저자의 글을 읽게 되어 오히려 좋았다혼자 읽지만 투덕거리며 반론과 정리가 이루어지는 활발한 독서였다지난 십 년 간 우리가 살아 온 역사도 덕분에 다시 떠올려 보았다사적으로도 부대꼈지만 한국 사회도 참 큰일들이 많았다힘겹고 아프고 어려웠고 지금도 모두 다 낫고 해결된 것도 아니다그래도 다들 애 많이 쓰셨다


우리에게 다음 십 년이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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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8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김운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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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개인적 동기 없이 필독서라고 읽었더니 내용은 남았는데 책의 구성은 잊어 버렸다무려 한 세기가 지나 만난 현대 지성의 이탈리아 원본 완역은 그 자체로 반갑고 귀하다번역본은 어쩔 수 없이 가장 최근의 것을 선호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 더욱 그러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전에 읽었을 때보다 이탈리아 역사에 대해 아는 바가 많이 늘지 않았다는 현실이다조금씩이라도 이탈리아 역사 공부를 해두었으면 좋으련만


총 2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내용 중에서 역사에 대한 예시들을 찬찬히 읽으며익숙해질 때쯤이면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바가 좀 더 잘 이해되는 느낌이다.

 

독자의 경험의 크기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도 하는 텍스트라 이렇게 오래 두었다 꺼내 보는 독서도 새롭고 근사하다이전에는 단순 명쾌하게 들리던 제안들도 이제는 좀 다르게 읽힌다


원저자의 의도를 다 알 수야 없겠지만정치권력 관계에 따라 몹시 휘둘리던 개인으로서의 불안과 희망과 고찰과 고민 등이 군주에게 전하는 문장들에 담긴 것도 같다.

 

현재에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정독한다는 이 고전을 어떤 목적으로 의미로 읽고 있는지 문득 궁금하다오독과 오해를 피할 수 없는 것이 책의 운명이기도 하지만악의적으로 자기변명의 수단으로 삼지는 말기를 바란다당시의 도시국가의 상황과는 아주 다른 역학이 작용하는 현대 국가가 아닌가.

 

군주가 나라를 얻고 유지하면그의 수단은 언제나 명예롭다는 평가를 받고그는 모두에게 칭찬을 듣습니다왜냐하면 민중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일의 결과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군주가 관리를 정확하게 가늠할 방법이 있습니다관리가 당신보다 자신을 더 생각하고 무엇을 하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그런 사람은 절대 훌륭한 관리가 될 수 없으며 당신도 그를 믿지 못할 것입니다.”

 

읽다 보니 일견 군주의 처세술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처럼도 보인다단 한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쓴 글이라 긴 편지글 같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마키아벨리는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1513년에 그가 집필한 책은 2021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다른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고 있으니 이 또한 역사의 간지 혹은 아이러니처럼 느낀다.



우리는 공화국이지만 권한이 집중된 대통령제를 택한 탓에 곧 다시 시끄럽고 혼탁한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군주론>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군주와 대통령을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많이들 알고 있지만 잘 떠올리지 않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에 따르면,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즉 굳이 따지자면 공화국의 군주는 모든 국민이다그러니 우리 모두가 자신이 주인이고 군주라는 생각으로 다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와 국가에 대해 참여하기를 염원해 본다.

 

지금 읽어서 다시 읽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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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여자들
다이애나 클라크 지음, 변용란 옮김 / 창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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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는 제목만 읽어도 누구나 내용을 짐작할 주제이기도 하다그러면서도 미적인 기준 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에 있어서 여러 기준처럼 작용하는 마름에 대해서는 누구도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를 꺼린다.

 

얼마나 말라야 제대로 마른 것인지잠시 생각해보니 나도 명확하지는 않다간혹 프로필 숫자를 보면 뼈가 비었거나 내장이 없어야 가능한 몸무게가 아닌가 싶은 경우도 있는데 정말 그럴 지도 모른단 생각이 무서워 차라리 거짓이라 믿고 싶다몸무게를 줄이려고 마지막 갈비뼈를 잘라 낸다거나 위를 절제하는 수술은 이미 오래전에 실제로 이루어졌다.

 

물고기의 혀에 흡착해 살아가는 기생충인 키모토아 엑시구아는 아가미를 통해 숙주인 물고기 안으로 들어간다암컷은 물고기의 혀에 달라붙어 혈관을 절단해 근육을 괴사시켜 혀가 떨어져나가게 한 다음남은 혀뿌리에 붙어서 보철물처럼 움직이며 혀를 대신한다. (...) 과학자들은 이 기생충에 감염된 물고기들이 대부분 중량 미달임을 확인했다.”

 

어쩌다 마른 것이 예쁜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을까참 기괴하고 이상한 미감이다몸이 마른다는 것은 영양 섭취가 나쁘거나 질병에 시달리는 신호로 해석된 시간이 더 길었음에도 불구하고그 중에서도 한국은 특정 직업 분야도 아니고 전 여성이 외모에 관한 선입견차별강박혐오에 노출되어 사는 사회이다.

 

타인의 몸무게와 속옷과 머리 길이에 일일이 간섭하고 욕하고 공격하고 심지어 생업조차 그만두게 하는 폭력적인 자들이 무리지어 사냥터를 누비듯 돌아다니는 사회이다적어도 온라인상에서 이들은 아주 대담하고 한 건 해치울 때마다 먹어치웠다라고 표현하며 일부는 수입을 얻기도 한다.

 

인간 소외와 차별의 절정은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예쁜 것들이 성격도 좋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성형외과 의사에게 살려 달라 부탁들 해야 할 지도 모른다몇 년 째인가 종합병원 흉부외과 지원이 없다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

 

현실 한탄은 그만하고 책 내용을 소개해본다. 2003년 14세였던 쌍둥이 자매 릴리와 로즈는 성격이 아주 달랐다마치 쌍둥이가 한 면의 성격을 따로 나눠 가진 것처럼 언니 릴리는 적극적이고 활달하고 동생 로즈는 소극적이고 내향적이다.

 

동생은 언니가 되고 싶어하는데하필 그 방법이 마른 여자가 되는 것이다그 결과 동생은 거식증을 언니는 폭식증을 겪으며 둘의 몸무게는 3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게 된다이후에는 끔찍할 정도의 숫자에 이른다. 2012(23세 릴리: 122kg, 로즈: 27.5kg)

 

우리는 모래시계였다한쪽의 내용물을 비워야 다른 쪽이 채워졌다우리는 서로 달라지기 전까지만 똑같았다.”

 

아주 마른 사람을 보고 그 이유만으로 멋지다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산 나는 마른 것과 인기의 상관관계가 기이하고 놀라울 뿐이다아무래도 미디어 영향이 크겠지만다들 꿈이 비쩍 마른 청소년 아이돌일 리도 없을 텐데생존 근육이 무척 중요한 나이인지라 더 공감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사회의 시선과 미디어가 모두 특정한 몸의 형태를 선망하도록 사람들을 세뇌시킨다특히 여성들의 몸은 흔히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 여성의 날씬하지 않은 몸은 곧장 게으름과 자기관리 실패를 의미할 때가 많다.”

 

하지만 거식폭식알코올 중독 등이 왜 일어나는지는 이해한다이런 행동은 당사자가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이 있다는 것정신이 망가지기 전에 그 고통을 몸에 퍼부어 정신이 미치지 않게 버텨보는 것이다그러나 자해와 다름없는 이런 식의 전이는 결국 자신을 살리는 것일까죽이는 것일까.

 

거식증의 핵심 개념은 모순이다. (...) 우리는 죽도록 굶주릴 때 가장 충족감을 느낀다. 우리들만 누리는 느린 죽음은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 우리는 몸을 포기함으로써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우리는 자신을 말살하면서 눈에 띄기를 열망한다.”


출처http://psycheblog.uk/2018/04/30/characteristics-of-anorexia-nervosa/


거식증 환자는 극단적인 체중 감소를 경험한다그러나 잃어버리는 것은 그 이상이다머리카락손톱치아친구가족자기 자신을 잃는다세상에 대한 감각을 잃는다먹지 않는 것 외에 중요한 게 뭔지도 잃어버린다그러다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목숨까지도그는 탐욕스럽다거식증 말이다.”


머리가 찢어질 듯 복잡한 기분일 때우연히 자해한 것 아닙니다 몸을 살짝 다치니 머리가 맑아졌다인간의 뇌는 한 번에 하나의 고통만 인지한다고 하는데 신기할 정도로 정신이 편안했다다행스럽게 읽고 들은 것들이 적지 않은 나이라 이후에 기분이 복잡할 때 몸을 자해하는 일로 이어나가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아마도 짐작보다 많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특히나 탈출할 도망갈 방법도 아무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가해를 견뎌야 하는 이들에게.

 

며칠 전 지인의 추천으로 <노는 언니>라는 프로그램 영상을 보았다넘사벽 국가대표들과 메달리스트세계 순위권 프로 운동선수들이 나오는 지라 거리감이 엄청난 몸들을 지녔는데도 한편으로 영상 자료가 무척 편안했다몸에 대한 표준도 지적질도 없어서이다.

 

자기 분야에서 원하는 목표를 위해 어떤 몸이 필요한지 잘 아는 프로들이라 세간의 청순가련함 따위는 그들에게 쓸모도 가치도 없는 점이 유쾌했다너무 웃기고 솔직한 이 언니들은 잘 먹고 잘 놀고 운동에 열심이었다.

 

이 프로는 왜 공중파가 아니란 말인가십 대들 몇 년 씩 굶겨서 속옷 같은 옷 입혀서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돈 벌게 해주는 것보다 공적으로 다뤄야 하는 사회적 가치가 더 있지 않을까이렇게 쓰지만 정말 순진하게 수익구조를 몰라 그러는 건 아닙니다답답한 호소랄까요...

 

이 책은 음식과 다이어트라는 주제를 두루 아우르고사랑이 관련된 관계부재왜곡결핍집착동성애와 우정에 대한, 첫 작품에 쏟아 부을 만한 엄청난 열정과 노력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담았다소설이고 번역이지만 저자도 역자도 언어를 넘어선 삶과 연구에 있어 주제와 근접한 분들이다.


쌍둥이 자매의 사투이면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장편 소설이 주제의 진지함과 분량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를 만나기를 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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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이 당신이다 - 주변을 보듬고 세상과 연대하는 말하기의 힘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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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이야기하기 전 남기고 싶은 표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책은 표지 코팅이 없습니다.

반짝반짝 띠지도 없습니다.

책을 만들 때 얼마나 많은 유해물질이 사용되는지

책들로 가득한 서재에 오래 머무르면 건강이 나빠질 거라 합니다.

 

인간의 건강만이 아니더라도

책 만드는 일이 환경에 무감하면 더 서글프지요.

마케팅출판업계 사정도 모르는 철없는 소리인가요.

20년도 더 전부터

먹고 사는 게 중요한데 쓰레기 치우는 소리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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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가진 말을 거르는 체의 형태와 기능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글은 말을 한 번이라고 걸러서 나오는 기록물이다이렇게 쓰니 생각나는 대로 적고 오타도 잘 못 보는 글을 매일 쓰는 입장이라 뭔가 깊이 찔리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즉 글이 보관되고 반복되는 것에 비해 말은 휘발되고 일회성일 경우가 더 많다.

 

비교적 즉각적이고 직설적인 말은 발화자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려 준다영국인들은 첫 단어의 발음만 들어도 그 사람의 계급을 알 수 있다고들 하던데처음 그 말을 비웃던 나는 시간이 지나 계급 이상의 것을 알게 되었다발음억양어조자세태도분위기... 우리는 전 존재로 자신의 정보를 밝히며 산다.

 

우리는 언어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린 나방이다태어나자마자 따라야 할 말의 규칙들이 내 몸에서 새겨진다여기서 빠져나오려면 언어의 찐득거리는 점성을 묽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한국에서도 점점 더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었는데아주 좁은 영역에서 살며 비슷비슷한 사람들만 만나던 내가 여러 사회 경험을 하면서 나이와 더불어 경험이 늘어나 보고 듣고 판단한 자료가 늘어난 점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기쁘게(?) 지적받고 배운 점은 내가 만들어 놓은 언어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이다맞춤법보다 우리가 쓰는 말에 더 맞게 고쳐야 한다는 지적아직도 동의하는가에 대해서는 미결정의 상태이지만 이런 주장이 분명 반갑기도 하다.

 

모든 사람에겐 말을 비틀거나 줄이거나 늘리거나 새로 만들어 쓸 권리가 있다.”

 

이 책의 제목 <말끝이 당신이다>는 동감하는 동시에 자기반성 모드로 읽어야할 듯한 기분이 들었다사적인 관계에서는 합의한 당사자들만 좋다면 의례적인 말끝을 사용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가령 반말 사용이 무례가 아니라 친밀감의 표현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그나저나 낮춤말높임말 이런 언어는 언제나 바뀌려나희망이 없는 건가... 문득.

 

말끝이 친밀도관계의 성격위계권력관계를 나타낸다는 것은 일반 상식이다가만 생각해보면 글이 입말에 가까울 때 나는 말끝이 더 길어진다. ~습니다, ~않을까요 등등그건 친구들과 떠들 때 외에는 반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왜 반발이 당연한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더구나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라면.

 

그 외에도 대중매체의 발달로 말끝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일축약해서 쓰는 말들이 의미 전달이 어려운 점 등은 가능한 자주 유의해야 한다여러 해 전이긴 하지만한글을 모르는 분들도 많은데, KBS MBC SBS YTN JTBC 이런 방송국을 지칭하는 영어 단어를 대화에 사용하고 표기하는 일은 옳은 일인지 뒤늦게 자각하고 놀란 기억이 있다현실은 아주 다층적으로 심각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언어를 파괴한다는 항의와 알아들을 수 없다는 호소가 있지만 축약어 만들기를 막을 도리가 없다말이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외에도 말을 말답게 잘 사용하지 못한 일화들이 없지는 않다근무처에서 받은 전화에서 상대방이 아무 말도 안 하기에 왜 말씀 안 하시냐 했더니 자동응답기인줄 알았다고그렇게까지 인간미를 없애고 기계처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선거 준비로 말들이 떠들썩해지고 있다이전에는 잘 들리지 않던 말들도 미디어가 활성화된 덕분에 원한다면 얼마든지 반복해서 찾아 들을 수도 있다정치인이 되겠다고더구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들은 위계에 익숙하고 어느 조직이든 권력의 최상층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더구나 관료로 오래 일한 이들은 여지없이 삶을 말로 태도로 드러내보이게 된다천재 연기자가 아니라면 그렇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연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이런 이들이 진심은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국민을 섬기는 일을 하겠다고 한껏 겸손을 표한다.

 

내용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살짝 들어본 그들의 말은 실망스러운 점들이 꽤나 벌써 많다한글 사용도 오류가 많고 말하는 법도 참 미숙하다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생활의 결과인가자꾸 스스로 찔리는 부분이 많이 평하기가 편하지만은 않다.


사실 가장 놀라고 걱정되는 것은 이전에도 언급한 문해력literacy이다한글이 배우기 쉬운 언어라 글자는 다 알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한국 고등학생들 문해력 수준이 20% 내외라고 해서 무척 충격적이었다장문의 글을 못 읽고 읽더라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스마트하게 제목사진영상만 누리고 사는 탓일까.

 

나도 아주 늦게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지금도 하는 중이고 진전은... 만족스럽지 않다그래도 한편 아주 쉽게 어휘 공부도 할 수 있고좋은 글들도 찾아 읽을 수 있고원하면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필사도 할 수 있다말끝이 자신을 나타낸다고 공감하는 이들은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말끝을 만들어 나가는 즐거움과 보람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 잘 몰랐던 김진해 저자는 자신의 글을 집중력이 가장 좋은 800자 내외로 다듬기 위해 노력을 치열하게 하신다고 한다내용의 순도와 더불어 형식의 정제성도 뛰어나리라 기대한다주제와 더불어 어휘들을 함께 공부할 좋은 자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늘 그렇듯 100분의 1도 소개 못한 내용입니다. 풍부한 주제와 멋진 글이 가득합니다.


...................................................

 

좋은 기회인 것 같아 말을 덧붙입니다.

 

O린이장님벙어리귀머거리절름발이, ~장애암유발(암 걸릴 뻔), 병맛사춘기냐갱년기냐보통은일반적으로세상은원래그걸돼지야개야닭이야등등 그 외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진 욕설과 비속어들.

 

힘껏 기억해서 같이 줄여 나가면 좋겠습니다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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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파버 을유세계문학전집 113
막스 프리슈 지음, 정미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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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개봉작인데 이제 알게 되었다원작 책을 먼저 읽고 싶었기 때문에 아직 감상 전이다.

 

영화 원작의 제목이 <호모 파버>faber*이고 유네스코에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술 원조’ 업무를 담당하는‘’엔지니어인 주인공 이름 역시 발터 파버faber인 것은 당연히 우연이 아니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환경을 개척하는 인간을 호모 파버Homo Faber라 일컬었다.

 

1957년에 기술문명과 과학에 대한 비판이라니현재에서 돌아본 그 시절에 대한 평가에 의아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예민하게 결과적인 문제들을 예견할 수 있는 이들은 존재하고 작가라면 이상할 것도 없다.

 

테크놀로지와 근대과학에 기반을 둔 문명에 필연적으로 야기될 환경 문제 역시 1970년에 이미 제기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더구나오히려 이성주의와 합리주의가 가진 결함을 목격하고 이해하는 후대로 이 책을 이제야 만난 일이 다행이라 여긴다.

 

주인공의 기능적인faber 면들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묘사처럼 담은 문장들이 도입부터 내내 눈에 띈다숫자와 확률이 등장하고, 고립된 개인주의적이고 건조하고 피로하다.

 

나를 예민하게 한 건 바로정지해 있는 비행기 엔진이 공회전하며 덜덜거리는 진동이었다.” “한 단계씩 가속치를 올리며 굉음을 내는 엔진 때문에 이름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녹색 점멸등마저 짧은 순간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마치 장님이 된 기분이었다.” “면도를 한 뒤 전보다 더 자유롭고 안정된 기분을 느끼며 난 면도하지 않은 상태가 정말이지 싫다.”

 

장님이란 표현이 인상적이다신체의 연장으로서 기계를 인지하는 세계관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문장이다발터는 사람이 지겹고 대화를 나누고 싶지도 않다시선은 기계에서 발하는 신호에 고정되어 있고 창 밖 풍경 역시 기계 장치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엔진 고장으로 비상 착륙을 할 때까지의 상황을 철저히 기계적으로 보도하듯 전하는 묘사에 살짝 숨이 막혔다.

 

난 숙명이나 운명 따위를 믿지 않는다엔지니어로서 난 개연성의 방정식으로 예측하는 데 익숙하다. (...) 모든 일이 그리된 게 우연 이상이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 하지만 그렇다고 숙명이란 말인가개연성 없는 일을 경험 가능한 사실로 간주하느라고 신비주의 따위가 필요하지는 않다수학이면 충분하다.”

 

호감이 가는 인물이나 흥미로운 서사에 끌리는 것도 아니지만 멈추기 싫은 기분으로 계속 읽는다문장이 짧고 깔끔해서 지치지 않고 한 문단씩 읽어 삼키며 달리는 기분이다.

 

쉽지 않은 대작이라는 명성을 듣고 읽기 전부터 엄청 긴장해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무척 재미있다아직 모를 뿐 인과를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한 일은 없다고 믿는 내 취향에 잘 맞는다.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성향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수많은 여행 장소들이 갑작스럽기도 하다익숙하지 않은 장소들이 끼어들 때마다 상상이 가능할 정도의 정보가 필요한 나는 일일이 찾아 보느라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

 

과학과 합리성이 체화된 인물이 그 두 가지 모두가 부재한 신화와 운명의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장엄한 공간의 대비가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처럼 격렬한 갈등과 혼란으로 분출되리란 기대가 무척 컸다어쩌면 내가 모르는 모든 장소의 의미는 발터의 내면을 상징하는 섬세한 활용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계획한 일정에 누구든 무엇이든 느닷없이 끼어드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그래서 삶에 끼어든 혼란과 과거와 만남에 대해 발터가 느끼는 혼란을 짐작하고도 남음이다불편하고 불쾌한 내 일상의 균열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딸과 만나게 된다당연히 감동과 눈물의 재회는 없다.

 

스스로를 잘 훈련시켜 정돈되고 오류 없이 살아가려는 발터에게는 그 대가로 결여된 것이 있다내게는 결여보단 거래의 결과라 보이지만 인간 사회가 기대하는 것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인간이 아니라 선의를 베푸는 인간이다법을 어기지 않으면 벌을 받지 않지만 칭찬도 감사도 받을 수 없다.

 

시각 기능이 무척 중요하고자기실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이 무척 중요한 수단인 독자로서의 나는 남성이라는 것을 빼면 발터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인지그에 대해 내가 느끼고 구축한 감정은 선명하다이해한다는 기분이 들어서인지 그가 “(...) 모르겠다흔들린다분노한다울었다라고 할 때에도 새삼스럽게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발터처럼 일에 자부심이 크다거나남성성을 찬미하거나인간의 기술문명이 자연을 극복하고 정복하기 위한 수단이라 믿지 않는다하나의 세계관에 큰 의미와 가치를 두어 다른 문명을 비교하거나 시혜적인 입장을 견지하지도 않는다.

 

다른 독자들은 그를 어떻게 여길지 무척 궁금해진다그가 지닌 결점으로 인해 경멸할까아님 동정할까혹은 공감할까.

 

완독 후 가장 부러워한 것은 그가 50세에 여행을 하며 새로운 출발을 맞이한 것이다어느새 틈만 나면 가능한 삶을 잘 정리할 생각을 하는 50세 이전의 독자로서 불쑥 무모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무척 부러운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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