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비극 - 노리즈키 린타로 장편소설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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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시리즈의 2부라고 해서 아차싶었으나 내용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딱히 없고 발표 시기도 이 책이 2년 더 이전이라 하니뭔가... 읽기 전에 이미 미스터리한 재미난 기분으로 읽었다.

 

준비운동부터 해서 체온을 올려가는 구성이라기보다 단박에 펑하고 사건이 터진디일견 차분하고 건전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흐름의 순간순간 소름이 쫙끼치는 인물들의 진심이 드러나는 문장들이 잘 끓인 향기 폴폴 라면 맛이다.

 

원칙과 도덕과 자율적 의지에 따라 평생을 살 수 있으면 평온하고 좋겠지만극단적이고 악의적인 범죄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저런 실수와 후회가 없지 않은 것이 대부분의 평범한’ 삶일 것이다.

 

물론 주인공이 한 짓은 실수라기 보단 잘 알고 하는 불륜이고 상당히 제 편한 대로 생각하는 무책임한 면도 많고 그럼에도 제가 가진 것들은 잃고 싶지 않아하는 적당히 이기적인 전형적인 모습이다.

 

별로 편들어 주고 싶은 생각도 없고 괴로운 일 좀 당하면 어때하는 생각이 없지도 않지만당사자만이 아니라 그 주변인들이 당하는 고통과 충격에 마음이 편하고 통쾌하지만은 않다.

 

내 자식이 납치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옆 집 아이이고 알고 보니 과거 불륜으로 태어난 내 아이이고 도움을 주려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만 본심은……이미 저질러 버린 잘못과 원망과 광기와 양가적 감정과 갈등과 괴로움이 진탕된 혼돈 속에서 범인도 찾아야 한다.

 

불합리하고 불의가 성행하는 세상이라 자주 잊기도 하고 잊고 싶을 때도 있다사실과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그들은 힘이 세다는 것인과이든 응보이든 부풀고 거대해진 대가가 나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되돌아 올 수도 있다는 것을.

 

... 이 책 덕분에 영화 <대부>가 백만 년 만에 떠오른다.

 

원형은 여전히 그리스 비극에서 찾을 수 있는 설정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숨기고 거짓을 말한 선택이어느 순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동력을 갖춰 등장하여 지키고 싶었던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비극이다.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드라마(drama: 그리스어 dramatos에서 유래)’적 성공을 거두는가장 많은 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가장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역시 재밌다

마지막까지 교란 당하고 반전에 놀라다 결말에 배신 당하는 제목과 같은 비극. 

위로도 구원도 없다.

 

곧... 간혹 예쁘고 종종 귀여운,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현하는 드라마tv drama로 방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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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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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한 이야기인데 떠돌며 살아 온 이야기가 더 진하게 강하게 느껴지는 글이다사용해 본 적 없는 표현, ‘세상을 떠돈다라는 구절이 생각날 만큼.

 

떠돌며 살기로 치자면 지구촌 여기저기를 오가면 산 한 때의 나도한반도에서 전라도 빼고는 이래저래 연고가 있는 나도 만만치는 않지만내게는 잠시 혹은 상당히 오래 머문 집들이 특별한 애정과 추억으로 글로 남지 않았다.

 

이사가 아니라 근무지에 따른 임시주거공간의 의미였고 원래 집이란 짐 맡기고 잠자고 세탁이나 하는 공간이었을 시간도 짧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

 

진짜집이라고 느끼는 곳들은 정해져 있었다조부모님 댁과 부모님 댁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집들이고 불안과 걱정 대신 도움을 청하면 언제나 도와줄 사랑해줄 사람들이 있었던 진짜 집이고 고향이었다.

 

양쪽 조부모님들이 모두 소천하시자 본가만 덩그러니 남았고 부모님 노화와 건강 약화로 간편한(?) 아파트로 이사한 뒤 우리 모두의 집은 사라지고 물리적 공간에 담겼던 추억도 흩어졌다.

 

떠난 분들이 그리운 만큼 따뜻하고 다정하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고 좋은 날 좋은 일에 모이던 그 집들이 그리워서... 왜 사는 공간이 생각이 만남이 내 깜냥 마냥 쪼그라들기만 하는지 속이 상한다.

 

공선옥 작가는 떠돈 이야기살아 온 삶과 머문 집들을 글로 남겨 불멸의 생을 주었다모든 집들이 자신만의 집을 짓기 위한 이유와 영감이 되었다.

 

호기를 부렸던 딱 그만큼 돌아오는 길은 허전했다내가 내 것으로 하고 싶은 것들은 절대로 나에게 오지 않는다는 나의 평소 비관론을 확인하려고 온 것만 같았다나에게 내 집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그러하니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요령껏 나는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내 것인 양 쓰고 살아야지 무슨 뾰족한 수는 없을 것이다.”

 

불편한 집은 있어도 부끄러운 집은 무엇인가 반발하고 싶은 나조차 툴툴 거리지 않고 계속 읽을 수 있도록 풀어낸 이야기들이 조곤조곤 정겹다.

 

안락하지도안정적이지도고요하지도 않았던 나의 거처들나의 시간들그리고 내 주위를 음산하게 배회하던 그것불안의 그림자그런 결과로 나는 내가 거쳐온 지리적장소적 공간들에 그리고 시간들에 썩 호의적이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 나는 나의 장소나의 공간나의 시간나의 생활을 한편으로 연민하면서 또 한편으로 버리고 싶은 기분으로 살았다.”

 

집이란 무엇일까특히나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 되어버린 한국인들에게 집이란두어 해전인가 부동산 실태 조사 보도를 보니 아파트를 100채도 넘게 가진 이가 있었다그에겐 집이 있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문득 해보았다부동산 자산 말고 어딘가에 소중하게 여기는 집이 있을까.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가 사회안전망이 되지 못하고하필이면 부동산 장사로 이익을 챙기는 구조가 고착된 한국의 형편이 난감하다그 대가가 꿈과 삶을 몽땅 바치라하니 동화 속 악당의 요구보다 더 악랄하다주인공도 영웅도 현자도 해피엔딩도 없이 삶을 갈아 넣다 영혼까지 바쳐야 한다


이런 동화를 읽은 아이들은 울음을 물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을 사는 어른들은 어떤 울음을 넘기고 있는지.

 

공선옥 저자는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가난만 알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아쉬워한다자식 먹일 밥상을 차리려 뼈가 녹도록 농사일을 하던 엄마는 고생 끝에 돌아가셨다


저자가 엄마를 부르고 평생 객지를 떠돌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전라 방언은 그 정서를 다 녹여낼 수 있도록 녹진하다는데 나는 말맛을 볼 줄 몰라 조금 서럽다.

 

집도 생각할 줄 안다집도 표정이 있다때로는 집이 말도 한다집은 웃는다집은 울기도 한다나는 그 모든 것을 느낌으로 알았다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집이 내게는 얼마나 미운 집이고 미운 만큼 얼마나 정다운 집인지.”

 

춥고 덥고 슬프고 서럽던 시절이 머무는 책이 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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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리커버) 버지니아 울프 리커버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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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아름다운 표지 덕에 읽기 전 Milton Avery* 의 작품들 찾아보느라 여러 날이 지났다낯설고 즐거웠다작업 방식도 그가 담은 여성들의 모습들도이들도 모두 자신만의 등대로’ 걸어 혹은 뛰어 또는 기어서라도 나아갔던 이들이겠지…….


Milton Avery(March 7, 1885 – January 3, 1965) : 버지니아 울프와 동시대 사람으로 활발히 활동했던 미국화가이다주로 여성의 모습을 독립적으로 화폭에 담았다.

 

나는 이제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순간을 살아라 (...)”

 

예술적인 표지와 단단히 결합한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이 펼쳐지고 흘러가고 번져 나간다모든 활자가 화가의 붓터치처럼 다채롭게 명도와 채도를 달리한다.

 

램지부인램지여덟 명의 자녀들릴리뱅크스...

 

언어로 수렴되는 삶이 마침내 완성된 화가의 작품처럼 풍경으로 추상으로 떠오른다어떤 색들은 죽음과 고통을 깊이 표현하였고 어떤 선들은 담담하게 삶은 이렇게 관찰되었다고 기록한다.

 

삶이란 사람들이 제각기 겪는 사소한 사건들로 이루어졌지만물결과 더불어 사람을 들어 올렸다가 해안에 부딪혀 함께 내던져지는 파도처럼소용돌이치는 그 사건들이 전체를 이룬다는 것 (...)”

 

삶도 생명도 어쩌면 이렇게도 허약할까이토록 부서지기 쉬운 것들이 형태를 유지하는 모든 순간이 기적이다그 서글프고 서러운 짧은 시간을 온전히 누리며 사는 일은 왜 어렵기만 한지.

 

오랜 친구의 어머니 발인을 멀리서 추도하게 되어 늦은 밤 통화하며 한참을 울었다잘못한 일은 없지만 잘해 드린 일도 없어 죄송했다위로해주고 싶은 이가 있을 때 이 세상은 갑자기 너무 멀고 넓어지기만 한다.

 

인간의 온갖 나약함과 고통 너머로 손을 뻗은 채 쭉 거기 서있는 등대관용을 품고 연민을 느끼며 인간의 궁극적인 운명을 내려다보고 있는 등대.”

 

우리 각자의 허술한 배 한척은 지금도 어두운 바다 위에서 길을 찾으려 방향을 잡으려 버둥거린다전설의 땅이 있다고 들어서... 믿어서바다 위에 던져진 이상 더 나은 선택은 없다여정을 마치는 수밖에.

 

우리는 각자 홀로 죽어갔지.”

 

울프는 소설이라 이름 붙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그렇다면 고유한 시선에 붙들린 이 서사들은 무엇이라 불려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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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심포니
댄 브라운.수잔 바토리 지음, 오상진 옮김 / 시공주니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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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라운 작가가 음악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해서 작년 말에 뉴욕타임즈에 보도되었다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는 디자이너 수잔 바토리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전해준 친구 덕분에 내내 무척 궁금했는데 시공사에서 원제를 살려서 번역 출간하였다.

 

라임과 운율이 살아 있고암호와 코드가 숨겨져 있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그림책!” 오상진

 

재밌는 그림책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음악을 더 쉽고 즐겁게 듣게 하고 싶다는 저자의 의도가 선명한 책이다. 댄 브라운 작가의 어릴 적 꿈이 싱어송라이터였고, 20대에 어린이 음악앨범을 제작했던 경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음악은 나의 슬픔을 달래 주었고외로울 땐 친구가 되어 주었고기쁠 땐 그 마음을 표현하도록 도와주었죠그중 최고는 음악이 나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 주었다는 거예요.” 댄 브라운

 

오케스트라 파트 중 나는 지휘를 가장 좋아해서 와일드 심포니의 지휘자가 누군인지가 가장 궁금했다동물 친구들을 소개하고 메시지를 전하고 보물을 찾는 여행을 떠나자고 하는 생쥐이다.


생쥐새들캥거루고양이가오리하마개구리타조아르마딜로멧돼지조랑말대왕고래치타코끼리딱정벌레거미박쥐백조(고니), 귀뚜라미생각보다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아르마딜로 반갑네.


그림 속에 숨은 알파벳을 연결하면 각각의 동물이 표현된 OO가 등장한다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는 스포일러 같아 언급하지 않는다그리고 그림마다 숨어 있는 자그마한 OO을 찾아본다.

 

댄 브라운이 비밀과 암호를 좋아하는 괴짜라면 그것들을 이렇게 절묘하게 그림 속에 숨길 수 있는 수잔 바토리의 그림들은 정말 유쾌하고 경쾌하다.


QR코드를 스캔하고 사이트를 방문해서 무료 앱을 다운 받으면 악기들의 소리도 구분해서 들을 수 있고댄 브라운이 직접 작곡하고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21개의 클래식 연주곡을 들으면서 그림책을 볼 수 있다그 외 휴대폰을 사용한 증강현실 기법으로 음악을 넘길 수 있는데 해보시길!

 

아쉽게도 번역하면서 영시의 운율감은 온전히 즐길 수 없지만 그런 면에서 정말 훌륭한 오상진님의 번역이다 음악과 그림만으로도 좋은데퍼즐이 즐겁고 메시지는 지혜로우니 참 대단하게 멋진 책이다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런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요즘 아이들 부럽다.


다른 사람의 재주를 칭찬하는 건 아주 멋진 일이에요하지만 나에게도 특별한 재주가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우리는 모두 몸집도 생김새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함께 했을 때 놀라운 음악을 만들어 내요.”

 

넘어지는 것도 삶의 일부예요중요한 건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서는 거예요.”

 

가족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즐거워요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특별해요.”

 

삶이 뒤죽박죽 엉망인 듯 보여도그 안에는 아름다움이 숨어 있어요.”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팠는데 덕분에 기분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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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 팬데믹을 철학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이유 팬데믹 시리즈 2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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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문득 문득 칸트의 이성비판서는 피하지도 돌아갈 수도 없으니 꼭 지금 읽으라고 권하신 교수님이 떠오르곤 했다아직은 실감할 수 없겠지만 졸업을 하고 나면 함께 철학책을 읽을 기회도 시간도 계기도 없을 거라고그러니 지금 부지런히 많이 읽으라고 하셨다.

 

책 읽는 일이 뭐가 특별하고 힘든 일이라 할 수 없게’ 되기까지 할까 믿을 수 없는 마음이 컸다그리고 일상은…… 대체 인류를 위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불분명한 일들을 세상의 멸망을 틀어막듯 매일 성공시켜야했고휴가를 확보해 시간이 난다 해도 철학책을 읽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해 지인들이 한 철학자를 언급하며 그의 책들을 인상적으로 읽었다고 했다누구기에 학생도 아닌 생활인들까지 철학을 다시 보게 만드는 걸까호기심에서 시작한 슬로베니아 철학자 지젝 읽기였다.

 

10년도 더 전의 일이고 다시 그의 책을 앞에 두니 소비되지도 소모되지도 않고 꾸준한 그와 그의 철학이 새삼 대단하고 반갑기도 하다.

 

격리와 봉쇄 정책이 을 생존으로 축소시키므로 반대한다는 말은 옳은가. 

- ‘마스크를 반대하며 시위하는 대부분 포퓰리스트들이나 뉴리아트들은 어떻게 급진 좌파의 일부와 조응하는가. 

판데믹은 착취된 자연의 보복 아닌가. 

그레터 툰베리와 버니 샌더스는 어디로 사라졌나.

 

공적 영역에서 그레타와 버니가 사라진 일은 더 통합된 목소리가 필요한 이 바이러스 위기의 시국에 걸맞지 않게 그들이 너무 급진적이어서가 아니다그렇기는커녕그들은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았다자신들의 프로젝트를 감염병의 조건에서 재활성화할 수 있는 포괄적인 새로운 전망을 제안하는데 그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기후재앙의 시대와 금융자본주의 사회에 맞선 포괄적 전망 부재를 경고한다. 

판데믹으로 도드라졌을 뿐 이전에 이미 내재한 긴장들이 현재에 부각된 문제점들이다.

 재앙에 맞선 연대보다 대결이 가열되는 사태 미중무역전쟁처럼 는 판데믹으로 인한 경향성이다.

 진짜 위기는 봉쇄격리가 아니라 다시 움직일 때 온다.

 

전 세계가 공동의 을 상대로 싸우고 있으니 놀랍게도 적대적인 외계인이 아니라 지금도 인간이 끝없이 변이진화시키고 있는 바이러스 어느 나라 누가 현 상황에 대해 고찰한 내용일지라도 접점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다들 비슷비슷하게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판데믹 이전에 우리가 누리던 것을 그대로 다 돌려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어떻게 살 수 있는 걸까.

 

의료의 이름으로 자유를 폐지한다면,

결국 의료도 폐지될 것이다.

삶의 이름으로 인간적인 것을 폐지한다면,

결국 삶도 폐지될 것이다.”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자유의 이름으로 의료를 폐지한다면,

결국 자유도 폐지될 것이다.

인간적인 것의 이름으로 삶을 폐지한다면,

결국 인간적인 것도 폐지될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이 두 시는 한 때 공저자였던 아감벤의 시에 지젝이 다시 돌려준 말이다나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떤 시에 더 공감하는지공감의 이유는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다.

 

지젝은 우리 모두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갑자기 그러기는 어려운 일이다그저 정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도서로 얘기라도 실컷 하고 나면 뭘 해야 할지 난감하고 두려운 이 갑갑함이 조금은 부서지지 않을까.

 

우리가 거의 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듯진짜 문제는 (...) 불확실성 속에서 삶이 그저 지루하게 이어지며 항구적인 우울증을 유발하고 버텨내려는 의지를 상실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생각도 감정도 복잡하고 힘들지만 오늘도 나는 가장 치열하게 사는 이들을 최대한 선명하게 떠올려 보려 한다.

 

언제 시작했는지는 알지만 언제 끝날지는 모르는 현실에서 매일 코로나 위기와 최전선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이다.

 

따뜻한 관심도 위선적인 칭송도 모두 잠잠해 졌지만 이들은 그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자신이 처한 위험을 알면서도 오늘도 출근을 해서 맡은 일을 어떻게든 해내고 있을 뿐.

 

우리는 맨 얼굴이 아니라 마스크로 가린 얼굴에 더 많은 인간성이 있다는 엄중한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오래 전 생태학 공부를 할 때, ‘자연을 보호하자’ ‘지구를 지키자는 구호들이 여전히 자신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기 위한 인간의 안간힘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

 

자연은 지구는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간이 사라지면 (어쩌면 파티를 열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아갈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지구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인간에게 의미 있는’ ‘자연환경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자연이 살아남을지지구상에 자연의 생명체가 살아남을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자연은 살아남을 것이다단지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화할 뿐.”

 

물론 지금 인간이 가진 핵무기를 한꺼번에 지구 어딘가를 향해 모조리 발사하면 어떤 임팩트 있는 결과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문제는 그렇게 해서 발생할 모든 결과들에 가장 취약한 생명체들 또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하던 대로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며 천천히 고통 받다 멸종할지광기에 사로잡힌 이들이 결국엔 자멸의 무기를 사용해서 순식간에 죽게 될지 모를 일이다어떤 미래와 희망을 기대해야 하는지 날마다 더 모르겠다.

 

그래서 지젝처럼 이렇게 해야 한다하면 된다고 아직 말해주는 이들이 고맙다. 부디 그의 진보성과 연대의 철학이 효능 좋은 해답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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