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
임태운 지음 / 시공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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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운 작가의 신간 소식에 너무 반가워 입틀막!


SF라면 다 좋다하는 독자라서이기도 하지만

전작 <화이트블러드>를 읽고 찐팬으로 자처하고 싶었던

기분이 다시 생생하다.


장르가 무엇이건 나는 시사성과 현실성이 저자의 고민으로

녹아있는 소위 본격! 사회파 분위기를 담지한

그런 작품들이 어쩔 수 없이 좋다.


감동이 묵직해진다.


엄청 재밌고 여러 번 크게 웃을 것이 분명하지만

을이 갑을 이기는 통쾌한 역전의 세계라는 설명에서

이미 벌써 최고!를 외치고 싶어지는 신뢰하는 작가의 작품!


이번에도 역시 행복한 독서가 될 것이다!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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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퍼 네트워크
챈들러 베이커 지음, 이동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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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게 만들어진 예술품과 같은 미스터리/스릴러 소설을 읽고 나면 어떤 구절을 소개해야 중요한 모든 것을 들키지 않을까 고민스럽다이렇게 시작해볼까요.

 

평일 오후 회사 18층 발코니에서 누군가 추락한다.

삼 주 전 스포츠 의류 브랜드 트루비브의 CEO가 심장마비로 돌연사한다.

회사 소속 변호사들이 대처 방안을 긴급히 논의한다.

대표 변호사 에임스는 유력한 차기 CEO 후보이지만 여성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많다.

회사 여성 직원들 사이에 공유되는 배드맨 리스트에는 여러 종류의 끔찍한 짓을 하는 남자들이 올라 있다.

전체 이야기를 교차 진행하는 네 명 중 한명인 슬론은 과거에 에임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십 년 동안 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 왔는데 베드맨 리스트에 에임스의 이름을 올려야 할까 고민한다.


 

회사에는 남자들이 있었다. (...) 그런 남자들과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했다. (...) 회사가 전통적인 남학생 클럽의 영역이라면우리는 비밀 여학생 조직을 구성해 이에 대항하는 셈이었다우리는 비밀 악수법을 공유했고서로를 여성 전우로 여겼다.”

 

저자 챈들러 베이커는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으며 실제 위스퍼 네트워크*를 경험했다그런 이유로 이 책에 등장하는 워킹맘들과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의 경험을 대단히 현실적으로 그린다.


 

데이트에서든 직장에서든 아이의 존재를 숨기는 것의 위력을 새삼 깨닫는다남자는 아들과 온종일 낚시했다고 말할 수 있어도 엄마는 애를 병원에 데려가느라 점심시간을 넘겼다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대체로 더 낫다아이 덕에 남자는 영웅 소리를 드디만 여자는 변변찮은 직원으로 전락한다.”

 

막 충격적이거나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것이 슬프고 답답하다예를 들면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기는 원하는일하기도 바쁜데 웃으라는 말을 듣고그 와중에 몸에 자꾸만 손을 대려는 남성들을 막아야 하고…….

 

이런 일을 겪는 단 하나의 이유가 그저 일을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니…….


우리는 온갖 죄책감을 느꼈다워킹맘이라서아이가 없어서사회적 의무를 저버려서그럴 여유가 없는 걸 알면서도 초대에 응해서이미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일을 거절해서 혹은 거절하지 않아서월급 인상을 요구해서 혹은 정당하게 요구하지 못해서 (...) 충분한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게 또 죄책감으로 다가오니이런 도덕적 딜에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능력이 대견할 지경이었다.”

 

그럼 다시, 18층에서 추락해서 사망한 이는 누구일까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가해자일까피해자일까?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치밀한 구성을 탄탄하게 받히기 위한 진행 방식과 구성은 멋졌다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사건의 진상을 고발하는 각종 진술서와 녹취록은 어딘가 메모라도 하며 기억해야 할 듯수사관처럼 지켜봐야 할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이렇게 미스터리 스릴러물이 될 수 있다안타깝게도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성인 직장 내의 일만도 아니라 미성년 여성들의 일상도 위태롭긴 마찬가지이다.

 

그럼 우리 애는 뭘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 남자애한테 그만하라고 의사 표현도 했고책임자도 찾아갔지만 도움을 거절당한 상황에서요. (...) 학교가 선호하는 여학생의 행동 방침은 뭐 그런 건가요그냥 받아들여라몸을 만지게 해줘라? (...) 참고만 있어라왜냐면 남자애들은 장난이라고 생각하니까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까걔들이 그러고 싶어하니까?”

 

역겹게 진화한 사이코패스 범죄로 분석되는 N번방 수사와 처벌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주범을 잡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천 명에 이르는 유료회원들은호기심에 가입한 것은화면 속 실제 인간의 고통을 구매해서 재밌고 즐겁게 소비한 것은 무죄인가?

 

이 소설의 여성들이 거의 모두 변호사라는 점은 무려 여성 검사도 고위 공직자를 포함한 여러 명이 함께한 공간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누구도 말리거나 증언해 주지 않는 상황에 처하고 그 충격으로 태아를 잃고 마침내 말을 꺼낼 때까지 혼자 온갖 괴로움을 견뎌야 했던 한국 사회의 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현실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소설 속 인물들이 여성들 서로서로에게 경고를조언을표시를충고를 주는 일은 긴장을 유지하는 멋진 설정이었다가 서글픈 우정이었다가 마음이 아릿해지는 현실의 연대로 전환된다.

 

아주 오래 전 남자들 가득한 학과에서 불과 한 두 살 많은 여자 선배들이 신입생인 우리에게 이런저런 조심할 점을 리스트로 만들어 소곤소곤 경고해 준 것처럼.

 

나쁜 놈들모든 것을 알면서도 침묵을 강요하는 더 나쁜 조직들내내 분해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 지가 궁금해서 거의 모든 걸 미루며 끝까지 읽었다위스퍼 네트워크는 잘 작동하고 있는지 문득 걱정하며.

 

!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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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과외 - 그랜드 투어
육민혁 지음, 오석태 감수 / 지식과감성#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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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투어라는 제목 덕분에 금융계 투어인가 했는데 브라질인도베네수엘라일본으로 여행기처럼 재미난 사진들과 함께 정말 투어를 시켜줍니다책을 펴고 당황해서 읽다가 표지 다시 보다가 혹시 내 책은 파본인가 인터넷 검색도 했습니다꾸준히 관련 서적을 읽으면 정리되고 이해되는 게 있겠지란 생각으로 금융 경제 관련 도서들을 읽는데 뜻밖에 재밌는 책입니다.

 

현역 채권 전문가라고 하시는데 금융 적용하는 범위가 전 세계로 뻗치는 것을 기본으로 하시는 분이신가 봅니다직군에서의 현장 경험과 관련/비관련 분야에 대한 남다른 관심다독과 네트워크에 기인한 박식함호기심 가득한 관찰과 여러 자료들을 엮어내는 능력 등이 펼쳐진 매우 독특한 책입니다저는 이런 투어는 난생 처음입니다.

 

선물(先物)거래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서 1980년 은투기를 한 미국 헌트 형제, 1762년 창립된 영국의 베어링 은행을 파산시킨니콜라스 리슨세계 구리사장의 전체 거래량의 5%를 매매하던 스미토모상사의 하마나카 야스오, 100여 년 전 조선의 일제 강점기 때 인천에 쌀을 거해하는 선물거래소 이야기 점원 생활을 하면서 모든 돈으로 선물에 투자해서 1년 만에 약 400억원을 번 반복창김구 선생 제가 강익하라는 분이 법원에서 근무하면서 억울한 누명을 쓴 조선인들을 도와주고 쌀 선물거래오 번 돈을 빈자를 위해 기부하고 독립 자금으로 지원하고 한국 최초의 보험사인 대한생명보험사를 설립한 이야기그의 부인 황온순 여사가 전쟁 시기 고아원을 세워 천 명 이상을 살리고 휘경여중과 여고를 세운 이야기 등등이 있습니다.

 

금융 서적을 읽고 있단 걸 잊고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에 푹 빠져 읽고 즐기며 배웠습니다쉽고 재밌고 유익하고 더구나 깊이도 있으니 금융 서적으로서는 드물게(?) 맘 편히 추천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후에 글로 소개하는 내용들은 이런 재밌는 내용들 다 빼고(?!) 주로 현실과의 접점들이 많고 심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 한국의 구체적인 노후 대비 관련 내용들입니다.

 

100세 시대라는 말 반가우신가요저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노후를 보내는 분들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한국 사회에서는 늘 목격하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폐지 줍는 노인들이라니…… 이런 분들의 삶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한 제게 국뽕이 차오를 일은 없을 거란 쓸쓸한 생각이 듭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시니어 빈곤율이 가장 높으며, 2017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중 44%는 대한민국 중위소득의 절반도 되지 않는 소득으로 살고 있습니다.”

 

일본은 정반대라고까진 볼 수 없지만 모양새가 좀 달랐습니다특히 아이들 입학 졸업 시즌엔 부유한 조부모님 찬스를 쓰는 것이 일상화되었단 이야기도 들은 지 오래고 취직이 어려운 자식 세대들이 부모에게 당연하게(?) 생활비를 받아쓰는 풍조에 대해서도 종종 들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도 지적하듯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를 초고령사회라고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국가별로 다 다른 형편을 똑같은 불안과 우려도 설명하진 않습니다일본은 부의 70%를 60세 이상이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이 정도인줄은 몰라서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왜 백화점 광고에 백발의 모델들이 자식들에게 뭔가를 선물해 주는 광고들이 많은지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75세를 맞은 지금 60대와 70대 초반이 내 삶에서 절정기였던 것으로 생각되며

내 건강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85세나 90세에야 노년이 시작할 거라 생각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어제까지의 세계김영사 2013

 

그러니 장수라는 사회적 현상이 반갑고 기쁜 일이 되려면 퇴직 후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기회들과 경제력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당뇨고혈압심장질환퇴행성관절염을 공통병으로 앓으며 그마나 남은 돈을 의료비로 대량 지출해서는 노후라고 할 삶이 부재하게 됩니다.

 

개인이 부담하느냐 공적 연금이냐의 구분은 일단 차치하고 100세 시대 노후에 필요한 자산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쓰기 나름이기도 하겠지만 최소한의 자산은 어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일본은 대략 3억 3~ 3억 8천만 원이라 답했고한국은 최소한 한 달 생활비 평균 198만원적정 생활비 평균 290만원으로 답했다고 합니다.



자산을 모으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저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직업으로 벌기투자로 벌기소비 조절로 벌기소비 조절을 언급해줘서 저는 기쁩니다보유 자신이 얼마였든 실제로 파산하는 이들 중 약 70%는 소비 조절 능력이 없어서라는 통계도 있으니까요.

 

더구나 소비 조절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국가그리고 지구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그리고 지금은 그런 생활방식을 폐기하고 새로운 방식을 찾아 실천을 하루빨리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방법을 몰라 못하시는 이들은 실제로 별로 없으시지요.

 

접근성이 쉽지 않은 금융시장 이야기들경험담들다양한 자료들해외 현지의 생생함즐겁고 실용적이고 초심자를 배려한 쉽고 기본을 강조하는 이야기들참 친절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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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받을 권리 - 팬데믹 시대, 역사학자의 병상일기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강우성 옮김 / 엘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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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친구의 권유로 못 읽을 것만 같던 <피에 젖은 땅>을 함께 읽었습니다힘들었지요분량 때문이 아니라 참상을 가감 없이 치열하게 전하는 내용을 읽어 내느라 그랬습니다울며불며 읽은 덕분에 나치 범죄에 대해 제한적이었던 오랜 이미지를 깨고 더 확장된 사실을 비로소 배우게 되었습니다티머시 스나이더는 타협이 없는 저자입니다시선이 문제의 본질에 바로 가 닿는 그런 분이라 느낍니다.

 

내 분노는 어떤 것에도 향해 있지 않았다나는 내가 없는 세계에 분노했다나는 분노했다고로 존재했다.”

 

일견 책 제목과 역사학자인 저자가 함께 하는 책이 낯설어 출판사에 제공하는 책소개를 읽어 보았더니 본인이 맹장 수술패혈증간농양을 겪으며 자신이 경험한 미국 병원의 응급실 상황과 민영 의료의 문제점들에 대해 기록하신 책이라 합니다.

 

존경스럽지만 염증과 수술로 의식을 차리기도 힘들게 고통 받고 고생하셨을 것인데...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란 생각에 숙연해 집니다학자이자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윤리에 대한 의식이 본질을 이루는 분이 아니신가 싶습니다.

 

내 삶이 단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이 떠다니는 깨달음이 다정한 공감이 나를 호위해 죽음에서 멀어지게 했다.”

 

조금만 번거로워도 타협하거나 미루거나 적당히 참여하고 마는 제 선택과 일상이 무람해지는... 전작을 읽을 때에도 느꼈던 열심이지 못한 삶에 대해 변병의 여지없이 수치심을 조금은 느끼게 됩니다이런 좋은 책을 번역 출간해 주셔서 편하고 쉽게 읽게 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선의를 향해 나아갈 길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그 노력의 일부가 바로모든 인간은 질병에 걸릴 수 있으며 평등하게 치료받을 권리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국민의료보험제도가 훌륭하고 잠시 논의를 탔던 의료민영화를 잘 막아낸 대한민국 시민들로서는 낯선 이야기일 수도 경악할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코로나로 부가된 억대의 치료비 소식과 더불어 오래 전 기자인 친구가 워싱턴 일 년 파견 갔다 장파열로 수술을 한 이야기를 들어 완전히 낯설진 않았습니다일차 수술에 9천만 원이 넘게 비용이 청구되어 꿰맨 배를 부여잡고 한국에 들어와 2차 수술을 받은 무시무시한 이야기입니다.

 

그 외에도 미국 사는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의료보험 적용 대상들이 직장 보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라운 나쁘면 팔 골절로 6백만 원 정도 청구 당하기도 한다고...

 

지금까지 15만명의 미국인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죽었다.”

 

누구나 최소한의 비용으로 적절한 의료보장을 누릴 수 있어야동료 시민들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것이 더 쉽게 가능해진다.”

 

자유를 추구할 권리에는 의료보장의 권리가 포함된다병에 걸리면 자유롭지 못하다통치자들은 우리의 고통을 포착하고우리에게 거짓말하며우리의 다른 자유마저 빼앗아 간다.”

 

흐릿하고 짐작하기 어려운 미래돌발을 멈추지 않는 불안 요소들함께 힘을 모아 대처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익집단들의 갈라치기……언제나 어려움은 있겠지요적어도 권리가 제대로 보장 받고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당하지 않으며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삶 자체가 망가지지 않는 사회 안전망이 마련된 시절을 아이들이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있다면 얼마간 안심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이상할 만큼 강렬하게 다른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내가 약해지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고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되었다.”

 

늘 인류와 역사와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던 학자인 저자가 당사자가 되어서야 약해진 사람들과 비로소 동질감을 느꼈다는 고백은 마음이 뭉클해집니다저자의 기준에 합치한 수준으로 비로소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품격 있는 판단이겠지요.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타인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각자가 견디고 버티는 일상에서 지치고 힘들어도 문득 타인의 그늘을 살펴보고 할 수 있는 위로를 건네는 일을 무감하지 않게 기억하고 싶어지는 단정하고 냉철하고 뜨거운 책이었습니다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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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죽음을 배우다
리디아 더그데일 지음, 김한슬기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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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우리는 죽어가고 있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매일 매순간의 한계를 알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지금 하십시오.

미루어 놓은 내일이라는 날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요한 바오로 6

 


이 책을 읽는 도중 궁금해져서 일일/년간 출생율과 사망률을 검색해보았습니다정확한 비교결과를 얻기는 어려웠습니다같은 기준과 조건에서 통계를 낸 것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짐작하기 위해 2020년 통계기준 연간출생율 일일평균을 내어 보니 27/365일 = 739.7260273972603이라는 재미난(?) 숫자가 나옵니다커플 기준 0.9인 세계 최초 0자리대 출생율을 기록한 것보다는 안심이 되기도 하는 740명의 새 생명들이 반갑습니다.

 

감동적이고 깊이 있고 뭉클해서 눈물도 나는 이 책을 이런 통계니 평균이니 숫자니 하는 이야기와 섞어서 순간 민망합니다삶과 죽음이란 단어 외에 실감이 가는 내용이 필요했달까요


저자는 많은 인용을 통해그리고 저자 자신의 언어를 통해 삶과 죽음이 본질적으로 분리 불가능한 사건이자 이 둘에 대한 질문 역시 같을 수밖에 없다고 전합니다. 비슷한 말들을 전해 주던 다른 이들도 떠오릅니다. 인간이 가장 오래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결국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순간에 누군가가 곁에 있길 원한다그러니 아직 유쾌하고 튼튼할 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사건에 미리 대비하길 조언한다죽음을 앞두고 갑자기 공동체를 형성할 수는 없다외로운 죽음을 피하려면 사는 동안 꾸준히 건강한 관계를 맺어둬야 한다.”

 

어렸을 땐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했지만 살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삶도 죽음도 접하게 되고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나 의미가 없기도 하다는 것을 차갑고 건조한 지적 충격과 함께 배우게 되었습니다


동화의 세계와는 달리 착한 사람 좋은 사람도 갖가지 시답지 않은 이유들로 목숨을 허망하게 읽고 악인들도 얼마든지 장수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기도 합니다오직 유의미한 것은 탄생과 죽음 그 사이의 시간만이 아닌가 지금은 그렇게 보입니다.

 

종교적인 환생이건 과학적인 원소 단위의 재결합이건지금 내가 알고 있는 나라는 개체로서의 나는 사망 후 다시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이 드넓은 우주에서 지구를 제 집으로 삼아 생명체로 태어난 것이 기절할 듯 믿기지 않는 어마어마한 확률의 기적이지만 아쉽게도 배당된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가령 수백수천 년을 살아온 나무의 눈에는 잠시 눈앞에 보였다 사라진 존재들처럼 인간들이 느껴지기도 하겠지요우리가 계절에 등장했다 사라지는 다른 생명체들의 생사를 목격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이 짧은 시간 동안 재밌고 신나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열심히 찾아 해보며 살다가 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일들은 어쩌면 이리도 많을까요대부분이 백 년도 못 살면서 그나마 서로 싸워 죽이기도 하니 아까운 것 없는 그 담대함에 놀랍고 두렵기도 합니다


하소연은 이쯤하고... 그러니 저자는 누구나 바라는 좋은 삶, ‘잘 살기 위한’ 모든 일상의 소소한 노력은 잘 죽기 위한 연습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모두가 죽음 앞에서 던지게 될 우리 각자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일까요?

 

그 질문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을까요.

감사만족아쉬움후회용서거부... 혹은 사랑.

 

완화 치료 전문의 아이라 바이오크는 죽음을 앞두고 재정적법적 이슈를 처리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관계를 제대로 정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실제로 바이오크가 근무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용서할게”, “용서해줘”, “고마워”, “사랑행”, “안녕” 다섯 문장을 활용해 관계 바로잡기를 실천하라고 권한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뵈었던 분이 이제 어떻게 사는 건지 알 것 같은데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허허롭고 쓸쓸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마음이 무척 쓰립니다.

 

저는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큰 그림이 동시에 다 보이지 않으니 저도 죽기 얼마 전에야 비로소 이제 알겠다싶은 그런 날을 맞을까요.

 

다른 것보다 사과와 감사의 말은 빼먹지도 미루지도 어색해하지도 말고 잘 하며 살고 싶습니다미안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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