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쉐도잉 - 속독은 기본, 속청, 속화를 한 번에, 진짜 영어 뇌혁명이 시작된다!
박세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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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인지metacognition란 용어가 활발히 활용되고 있는 지 처음 알았다단어만 보자면 인지에 대한 인지이니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혹은 모르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일이라 하겠다물론 알아내는 것까지에서 멈추면 아쉬우니내가 모르는 것에 집중해서 왜 모르는지 원인을 알아보고 배우고 싶다면 자신에 잘 맞는 학습과정을 찾아내어 실험해보면 더 좋을 것이다.

 

쉐도잉shadowing 학습법이란 어학에서 자주 활용되는 음원을 듣고 소리나는 대로 따라 해보며 자신의 발음을 자신이 들어보는 것이다말하는 연습인 동시에 듣기 연습이다어학에서 말하기는 의사전달만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연습인데자신이 정확히 발음하지 못하는 단어는 남이 말해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은 제목이 저자의 방법론을 아주 분명히 말해 주는 친절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이제 확인할 일은 세부적인 방법론이 잘 따라할 수 있고 효과가 얼마나 좋을까에 대한 판단이다.

 

어학에 대해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아 무신경했다는 편이 더 맞을 듯하지만 우리 집 중학생이 올 해 겪는 복합적인 어려움에 대해 별 도움이 못 되고 있다.아주 느긋한 생각으로는 재미난 영화 한 편 숙지하고 재미난 책 한 권 읽으면 학습효과가 좋을 텐데 싶지만 세대가 달라서 그런가 한편 영어가 익숙해 보이면서도 수업영어/시험영어를 아주 못 견디게 지겨워한다.

 

저자가 메타쉐도잉 방식으로 영어 학습의 최소 단위는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다라고 지적해 주는 점은 반가웠다맥락에서 자유로운 언어란 어학을 전공하는 이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을 것이니,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실질 언어 학습에 있어서 기본이자 중요한 점이다흉내내기 달인인 아이들의 옹알이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메타쉐도잉 7계명이 있는데6. 충분한 수면은 메타쉐도잉의 필수조건 7. 따라 하는 소리는 들리는 원어민 소리보다 커야 한다. 두 가지가 특히 눈에 띈다.

 

(크레이지스피킹 4계명 중에는 10. 생각을 짜내지 말고 입에서 툭툭 털어내라. 이 문장이 가장 절실하게 들린다어학의 단계 중 어느 순간 이리저리 번역 안 하고 생각이 바로 말이 되어 나오는 순간이 반가운 해방과 자유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속청속독속화에 이를 수 있다고 저자는 열심히 응원한다아주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고 무료앱 정보도 있으니 제공되는 자료들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트럼프 전대통령의 연설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연설하는 방식은 아주 세련되었다고 느끼지만 시간을 들여 공부할 내용으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연설 자료나 동영상 자료는 이외에도 아주 많을 것이다. 가능하면 연설 기술만이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배울 점이 있는 감동이 있는 혹은 재미가 있는 그런 텍스트라면 좋을 것이다. 토요일 밤에 <에놀라 홈즈Enola Holmes>나 볼까. 메타쉐도잉 영화로는 별로인가... 의외로 십 대와 함께 볼 영화가 마땅치 않네.


특이한 방법을 세세히 제시하지 않아서 오히려 신뢰가 가는 점도 있다하루 10분이라도 꾸준히 연습하고, 쉐도잉 방법은 큰 소리로 최대한 발음을 정확히 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사실 말을 안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발음들도 어눌해진다놀랍게도 한국어 역시 마찬가지이다판데믹 시절사회 교류는 줄고 의사 소통은 마스크 속으로 움츠려든 것 역시 현실이다.

 

영어훈련법에 집중했지만저자는 한 달 만에 원하던 중국어 시험도 합격했다고 하고무려 온 가족이 같은 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니 무척 신나는 일이었겠다고 짐작해본다.

 

판데믹 핑계로(?) 외국어 하나 더 공부해보자했는데 어째 어느 순간 흐지부지 되었다역시 가장 중요한 학습법은 꾸준히’ 그리고 시험과 같은 마감이 있는 방식이 나처럼 의지가 약한 이들에겐 일단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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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는 24시
김초엽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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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차게 좋은 책을 만나는 일이 있는데 내 경우에는 자주 있긴 하지만 엄청 즐겁게 행복하게 읽고 아무 것도 못 쓸 때도 있다작년에 너무 마음이 아파 제목도 못 밝힐 듯 - ‘... 이 책이 마음에 걸려 영원한 고통에 시달릴 것만 같은’ 책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몇 줄 썼는데 그거라도 남길 걸 싶기도 하다. 6월이 거의 지나고, 2021년 절반이 지나고제대로 된 감상문은 못 쓸 것 같은 특별한 책이 이미 서너 권이나 생겼다.

 

이 책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웠다그리고 오늘... 잘 쉬고 잘 놀고 싶은데 긴장을 너무 풀어서인지 잠에서 완전히 못 깨고 이마가 계속 졸리는 느낌이다그 덕분에 살짝 멍한 상태로 24시 놀이터로 향했다.


 

7분의 멋진 작가들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고, 이름만 보아도 마음이 움찔하는 무척 좋아하는 네 명의 작가들 글이 있으니 표지만큼 신나는 책이다매력적인 단편집을 기대보다 자주 만나게 되어 기쁘다얼마만인지... 놀이터에서 놀아보자~

 

SF소설에 대한 호감과 애정은 당연히(?) 1818년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이 소설은 워낙 방대하게 영향을 미쳐서 괴기호러소설로도 분류되지만 내게는 영원히 SF 명작이다.

 

이제 인간은 체세포 복제도 하고 유전자 정보를 밝힌 이후로 어떤 품종이든 공학적으로 유전자를 영구적으로 변형할 수도 있고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할 수도 있다팔다리를 잘라 꿰매는 방식은 같지만 미시세계로 작업 영역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나저나 핵무기는 유행이 지난 것이고 현대전은 생화학테러무기가 대세(?)라고 하는데, SF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아 두렵다... 이런 생각은 잠시 잊고 놀이터에서 더 열심히 놀아보자.

 

김초엽 작가의 작품을 접한 이들은 짐작하겠지만 이 작품 역시 진중한 시사적 통찰과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결합해서 잘 들려준다배경이 2072화성인데... 어쩐지 현재 진행 중인 초근미래로 느껴져서 살짝 불안하다.

 

어쨌든아주 멋진 가상세계 놀이터를 인간이 만들었고 화성 궤도를 돌고 있으며 설계자들은 놀이터만이 아니라 가상인간들도 만들었다당연히 놀이터를 즐기러 온 이들이 존재할 것이고사건과 반전이 펑펑!

  

즐거움의 도시는 승객들을 위해 준비된 완벽한 세계다이제 우리는 글로버리가 우리를 위한 곳이 아님을 안다그래서 우리는 끔찍하게 따분한 방으로 서로를 숨긴다잔잔한 바람을 맞고 시시한 농담을 나누며하품 나오는 카드 게임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이야기를 쓰며 느린 혁명을 모의한다.”  #글로버리의봄 #김초엽

 

배명훈 작가의 작품 <타워 TOWER>를 한글/영어 모두 읽으며 고전이라 해도 좋고 본격 사회파라 해도 좋은 작품들에 대한 갈증을 채우는 은밀한 즐거움을 느꼈다거대 담론이 힘들고 불편하고 가끔은 희망이 없어 보이기도 해서 정이 뚝 떨어지지만싫어서 안 보이는 척 한다고 해서거대한 스케일로 분석하고 해결해야할 일들이 다 없어진 것도 아니다그저 간절히 다른 이들이 다 해결해주길 바라며 비겁하게 살 긴 하지만어쨌든!

 

위에 경고한대로 배명훈 작가의 작품은 시스템과 거대세력에 맞설 준비를 하고 만나면 더 신난다거대 자본은 여전히 활발히 작동 중이고 슬프다 수요공급은 불멸하는 경제의 기본 역학이니 언제나 장난질은 이 두 부문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인공 지능과 로봇이 공급 쪽에 영향을 미치고소외된 인간들과 독립로봇이 수요 곡선 쪽에서 움직인다당연히 생산과 부를 독점한 인간들은 여전히 존재한다역시 슬프다 세상을 망치는 일에만 열중하니 세상을 구하려는 누구라도 없애려 한다.

 

감염병이 몇 년에 한 번씩 행성 규모로 돌아서 관광업이 죽어 버린 데들 있잖아여행 인프라가 다시 만들어지기 전에 우리가 다니면서 돈을 썼거든.”

 

마음껏 소비할 수 없게 된 마시로는대신 마음의 끝을 지향하기로 했다유희처럼그것은 쇼핑과 참선만큼이나 먼 일이었지만마사로 안에서 들은 결국 같은 것이었다.”

 

마사로는 문득 희명을 느꼈다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기쁨이었다. (...) 마음은 전기를 거의 소모하지 않는 정신 활동인 모양이었다.” #수요곡선의수호자 #배명훈

 

언제부턴가 뇌과학 관련 얘기만 나오면 눈이 번쩍귀가 솔깃하다오래 고민한 일들에 대한 대답을 찾은 기분이 드는 것이 주의해야 할 듯한 끌림이다어쨌든 저항이 어려우니 어쩔 수 없이(?) 재밌게 읽었다


카이스트 뇌과학 교수와 친구가 된 소설가숙주의 뇌에 영향을 미치는 기생출을 연구하는 교수는 치료법으로 약이 아니라 헤어 밴드로 뇌를 자극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뇌를 두고 벌이는 기생충과 인간의 한판 대결이다두근거리고 신기하고 무섭다


그런데... 소설가도 어느새 기생충에 감염된 상태실험 삼아 헤어밴드를 착용해 보는데 부작용(?)으로 글이 술술 써진다?! 거 참 탐나는 헤어 밴드이다뭔가 이런 영화를 예전에 본 것도 같고... 뇌의 네트워킹 효율과 속도를 증강하는 알약이었던가...

 

그래어린 시절 친구들과 동네놀이터에서 실컷 놀고 다음 날 또 만나자며 손을 흔들고 집에 돌아오던 때와 비슷하지 않은가. (...) 이런 충일감충만감을 느끼지 않았나?”

 

이 기계도 인류 문명의 모습을 바꾸리라고 나는 예상한다일과 놀이의 구분이 사라지거나어쩌면 놀이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벌인 모험은내 운명은 얼마나 내 것이었을까?” #일은놀이처럼놀이는 #장강명

 

이 헤어 밴드 어디서 구하나요예약구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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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가죽의 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4
구병모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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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시리즈로 만나는 구병모 작가가 설레고 반갑다어릴 적 무척 좋아했던 동화의 일러스트가 기억나는어쩌면 구두처럼 생긴 집에서 사는 꿈을 기쁘게 꾸었을 지도 모르는흥분으로 살짝 숨이 가빠지는 기대만발 동화 모티브이다인간의 옷과 구두를 선물 받아 인간이 된 요정들을 만날 수 있다.


The Elves and the Shoemaker by Charles Folkard


The Elves and the Shoemaker by Anne Anderson & The Elves and the Shoemaker by Louis Rhead

 

그림형제Jakob Grimm, Wilhelm Grimm의 <구두장이와 꼬마요정 The elves and the shoemaker>에서는 요정들이 구두를 멋지게 만들어 주어 가난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부자가 되었다그래서그 후에 어떻게 되었어궁금하지 않았고 동화적 결말처럼 행복하게 사셨겠지하고 말았을 것이다.

 

요정들은 애초에 어떤 존재들이었는지자신들의 세계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어째서 구두 만드는 일을 그렇게 잘 할 수 있는지 구병모 작가의 이 책을 받아 드니 나도 끝없이 질문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인간 세상에 익숙해진 요정들이 어쩌면 답을 들려 줄 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기억하는 이야기는 옷과 구두를 선물 받은 요정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였는데 이 책의 내용은 달라서 왠지 엄청 기쁘다풍성해진 애프터 이야기를 만나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들이 인간과 어울려 사는 결심을 하게 만든 선물의 의미란선물이 가진 힘은 무엇일까 진지해져 봤다인간 세상에서 막 형성되던 근대 역사 속 풍경처럼 물물교환감사보은 이런 가치들을 요정들이 배우는 장면들은 어찌나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던지.

 

애써 알아내려 해봤자 알 수도 없지만몰라도 좋은 천년을 넘게 산 요정들의 이야기구병모 작가가 감사하게 그들의 생각을 짚어 들려주니 나는 어릴 적처럼 무책임한 상상력을 팽글팽글 돌리며 바늘과 가죽이 저 홀로 살아 만들어낸 시와 같은 문장들을 읽어 본다.

 

존재들이 자기키의 반쯤 되는 바늘을 들고 춤추듯 흐르듯 거니는 동안 창틈으로 스미는 달빛이 바늘귀에 부딪친다.”

 

어쩌면 신은 존재로 하여금 또 다른 존재와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하지 않았을 것이다이해하고 싶은 강렬한 소망과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 데서 비롯한 절망만을 존재 안에 배열했을 뿐.”

 

기대수명에 비추어 반평생쯤 살아 버린 지라 간혹 노후도 죽음도 아직 전혀 대비할 필요가 없는 나이가 어쩔 수 없이 부럽긴 하다요정들에게 인간이 몇 년 혹은 몇 십 년 뒤까지 꾸준히 찾아 올 리 없는세상에 잠깐 머물다 부서지는 한 알의 모래에 불과한 존재가 인간이라니영원을 산다는 것은 인지 외부의 것이라 짐작할 수도 없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안은 숙명이나 법칙과 무관하고 부나 명예나 아름다움에의 탐닉이 아닌다만 누군가의 미소와 누군가의 평화를 위해 구두를 지은 것이 그들의 시작이었음을 잊지 않았다. (...) 그들이 이 같은 불완전한 몸신이 배열하고 조율한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육신을 입게 된 것이 오랜 노동 끝의 선물인지 저주인지이 몸의 의미가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굳이 알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더는 쓸데없어진 것이라는 이유로아름답게 완성시키면 안 되나?”

 

다 읽고 나니 내내 슬픔이 찰랑거리는 짧은 글이었다영속하는 삶에 의미를 전해 줄 마음들을공간을 채워줄 만남들이 없다면끝이 없다는 존재로 살아가는 일은 어떤 모습의 처참하게 시린 고통일 것인가사랑은 그래서 다 알고도 모르고도 유일하게 채워진 의미가 아닌가 한다.

 

당신은 언젠가 사라질 테고 미아가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은 유실되어 흘러내릴 것이며…… 미아는 어쩌면 당신의 장소에 영원히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이 특별하고도 초월적인 자격을 사람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누구에게도 부여할 수도 양도할 수도 없는 자리를 사람이 대체하는 날은언제까지나.”

 

사라질 거니까닳아 없어지고 죽어가는 것을 아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알지 못하는 세계가 풀리지 않은 실타래처럼 실존의 양감만을 전해주는 닫힌 느낌이지만 그래도 좋다구병모 작가라 이런 편애적 감정이 드는 건지도 모른다난해하든 아니든 신기하고 아름다운 글을 계속 써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고 싶은 심정.

 

핀시리즈 가 매번 어려워 헤매고 우는 독자로서 소설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는 마음이 없지도 않은데이번 작품 제목에 가 등장하는 이유는 읽고 나서야 짐작하였다.

 

아름답고 난해한 황홀한 시적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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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개의 이야기
디노 부차티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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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좋아하세요저는 압도적으로 장편을 즐겼습니다소설의 세계에 푸욱 빠져서 한참 머무르는 것이 정말 좋았거든요그러다 작년에 단편집을 읽었는데 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작품들이 워낙 좋아서이기도 하고 매일 한편씩 읽는데 무척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 단편의 매력에 대해서도 느끼고 배웠습니다구성이 이렇게 다르구나메시지가 이렇게 읽히는구나한 호흡에 읽는 문학의 매력이란 또 다르구나 등등.

 

덕분에 올 해도 단편집들이 눈에 띄면 최초의 즐거움을 기억하고 두근거립니다물론 만족도는 오르락내리락합니다사는 게 다 그렇죠그러니 무려 60개의 이야기가 담긴 환상문학 출간 소식이 얼마나 기뻤겠어요무려 문학동네신뢰하고 기대할 만한 요건들이 충분하지요정말 좋은 점은 시간이 없다고 슬픈 날에도 한 편 정도는 쏙 맛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60개의 이야기이 단편집은 놀랍게도 1958년 출간되었습니다저자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품은 1940년 출간된 <타타르인의 사막>이라고 합니다 또 저만 모르는 유명한 저자와 작품입니다.


신기한 점은 저자가 저널리즘 기자로 30년을 일했다는 점입니다문학부도 아니고 종군기자특파원범죄사망 기사들그러다 이탈리아 미스터리를 주제로 한 기사를 쓰기도 했답니다극한의 현실과 미스터리에 대한 경험이 문학으로 만났나 봅니다멋진 일입니다.

 

참 이상한 것이 기사소설희곡오페라 대본삽화까지 대단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인데 자국에서는 비주류였고알베르 카뮈의 소개로 프랑스를 비롯해 해외에서 주목을 받습니다어쩌면 그리 드문 일이 아닌가요.


아무튼 저자에 대해 궁금해서 책을 이리저리 들춰보니 독자의 재미와 감동을 위해서 단편을 쓴다.”라는 말이 있네요독자로서 신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재미와 감동을 위해 첫 단편을 골라 읽었는데내가 생각한 깊이와 넓이의 재미와 감동이 아니네요.

 

소재와 사건의 다양함사고의 깊숙함... 정신 바짝 차리고 찬찬히 낱낱이 읽어야할 내용이 여러 편일 듯합니다. 60개 작품이 모두 다 다른 재미와 감동을 여러 강도로 전해줄 거란 생각을 하니 기대로 소름이 돋습니다.

 

위에 언급한 알베르 카뮈가 친히 번역까지 해서 극장에서 상연도 하였다는 작품을 제일 먼저 읽습니다<7저자가 실제 투병한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고도 하네요여러모로 관심이 갑니다.


주인공은 열이 조금 나서 가벼운 감기라 생각하고 추천을 받아 유명한 요양원에 입원합니다불길한 느낌이 들어 감기로 무슨 입원까지가지 말라 말리고 싶네요일단 외관은 호텔처럼 멋진 건물입니다아주 체계적으로 관리합니다.

 

숫자 7이 주는 통상적인 기분 좋은 느낌처럼, 7층은 가벼운 증상 환자들입니다그러면...! 1층은죽음이 멀지 않은 위중한 증상을 앓는 이들이 입원한 곳입니다그러다 1층에서 이중으로 된 덧문이 닫히면... 입원 환자들 중 누군가 죽음을 맞았다는 뜻입니다.

 

제 불길한 느낌이 틀리길 바랐지만... 미열과 감기 증상으로 입원한 주인공은... 멈추지도 저항하지도 뛰쳐나올 수도 없는 환경에서 매 순간 어떤 이유들로 입원실을 옮기게 됩니다결국에는 1층에 도착합니다.

 

결과가 안타까운 것보다는그 과정이 기막히게 무섭고 섬뜩합니다입원 전에 어떤 멀쩡한 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입원 후에는 바로 그곳의 축소된 사회와도 같은 시스템에 휘둘려 의지와는 별개로 흘러가는 개인의 삶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악인이 있어 명확한 의도가 있어 그런 것도 아니고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들도 자신이 환자에게 무슨 일을 행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충실히 업무를 수행합니다그 결과가 1죽음절망좌절....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게 하는 장면들입니다.

 

요양원에 가지만 않으면 되는 일 아닌가잘 살펴 이런 곳을 피하면 문제가 없지 않아싶기도 하지만우리 사회에 이 요양원과 같은 장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어쩌면 사회 전체가 부분 부문 이런 역학으로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일이 없다고도 말 못하겠습니다.

 

특히 해외 파병 논란이 있을 때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참 섬뜩한 발언들이 많이도 보였습니다편견과 악의와 차별과 혐오의 발언은 오히려 노골적이니 덜 끔찍합니다저런 생각은 잘못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제가 제일 충격을 받는 것은, “뭐가 문제인가요군인들은 그저 자기 일을 할 뿐인 걸요.” 이런 유형의 대답입니다반복해서 한나 아렌트가 소환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뭐가 문제인가요나치 공무원들은 그저 자기 일을 했을 뿐인 걸요.”

 

이 다음 단편으로 하고 싶지만 게을러서 자꾸 미뤄두는 손 편지를 다시 기억나게 한 작품 <연애편지>를 읽었습니다연애는 아닐지라도 그리운 이들에게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 클래식한 방법으로 보내고 싶네요비록 글씨는 형편없어도이 편지지와 봉투를 고를 때도 쓸 때도 부치러 갈 때도 그리고 지금도 네 생각을 했다고 그런 마음을 제대로 담아서.


한 달이 걸릴 지도 모르겠습니다이 책을 다 즐기려면신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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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 - 카운터 너머에서 배운 단짠단짠 인생의 맛
봉달호 지음, 유총총 그림 / 시공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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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근거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편의점을 최소한도로 이용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계획하고 목표로 삼아 가는 장소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을’ 경우 방문하는 예외적인 곳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니 편의점에서 제공하는 편의들을 잘 모를 뿐더러 추억도 거의 없다편의점에 낯선 독자로서 이 책을 읽었다계기는 공구상인 작가의 에세이를 아주 재밌게 읽어 잘 모르는 직군의 저자가 들려주는 세계의 이야기에 마구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용 소개 전에 미리 짧은 평을 하자면엄청 재밌다부끄럽게 입 밖으로 감탄을 내뱉으며 소리 내어 웃으며 간혹 마음 졸이며 즐겁게 읽었다그리고 이 편의점에 슬쩍 가보고 싶어졌다뭘 사면 좋을까.

  

그렇잖아도 편의점 매출은 여름보다 겨울에 뚜둑 떨어지는데매년 1월에는 새해의 결심이란 오래된 저격수까지 만나 고전을 치른다. (...) 그래도 역시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애달프다 가슴 치며 통곡할 필요까진 없을 것이니, (...) 그런 결심들은 대부분 돌아서더라는 경험적 확률언젠가 돌아올 당신이여믿고 기다렸어요편의점의 탕자여.”

 

새해 결심과 편의점의 매출 변동은 꿈에도 연결해본 적이 없다오묘하고 재밌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면 전국 편의점에는 동시에 신기한 일이 벌어지지 시작한다. (...) 5초 전까지는 쭈뼛 눈치 보던 사람들이 5초 후 갑자기 당당해지지 시작한다. (...) 오호라두 분께서 어른이 되신지도 벌써 2분 51초가 지났단 말이지요.”

 

“1월 1일생이든 12월 31일생이든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은 한날한시 성인이 되는 우리나라의 쾌도난마 같은 제도 덕분에우리는 신년과 더불어 쿨하게 평등해진다.”

 

역시연말연시 편의점 앞 풍경이 이럴 줄이야늙어서 밖에서 오래 안 노니 모르는 세상이 많구나싶다쾌도난마*제도덕분에 통쾌하게 웃었다네네사전 찾아보고 정확한 뜻을 배우고 웃었습니다~


쾌도난마 (快刀亂麻) [명사잘 드는 칼로 마구 헝클어진 삼 가닥을 자른다는 뜻으로어지럽게 뒤얽힌 사물을 강력한 힘으로 명쾌하게 처리함을 이르는 말.

 

매년 편의점에서 시간의 흐름을 읽는다. (...) 회전목처럼 돌아가는 풍경을 편의점 안에서 감상한다그런 시간 가운데 내가 있음을 가늠한다탕자처럼보류했던 꿈들도 제자리로 돌아와 하나둘 이루어지기를.”

 

갑자기 글 온도가 확 달라져서 자세를 바로 했다사람을 잘 관찰하고 허투루 보지 않는 분들의 통찰은 참 힘이 있다남들만 보는 게 아니라 더불어 자신도 만난다오래 살아 재미난 거 좋은 사람들 많이 더 보고 싶단 생각이 마구 커지는 순간들이기도 하다신나게 웃다가 경건.

 

“111년 만의 폭염이 이어졌다는 2018년 여름세계는 더위와 싸웠고 편의점은 우유와 싸웠다. (...) 편의점에서 판매하난 수천수만가지 상품 가운데 오롯이 한 생명체의 힘만으로’ 만들어지는 유일한 상품이 우유이기 때문이다. (...) 젖소는 여름에 힘이 달린다힘이 달리니 우유 생산량이 확 준다그럼에도 인간들은 라테니 빙수니 아이스크림이니 하면서 여름에 유독 우유를 더 달라고 아우성이다. (...) 젖소들에게 우리 인간들이 필요해서 그래요좀 분발해주세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생각할 기회가 없어 몰랐다편의점이란 취급하는 물품만큼의 세상이 시야가 넓어지는 일이었구나마음만 먹으면(?) 세상만사의 역학을 다 배워볼 수도 있겠구나마치 편의점이란 장소가 구도에 최적화된 훈련장처럼도 느껴진다.

 

젖을 짜내기 위해 암소는 늘 임신 상태여야 한다죽을 때까지 임신또 임신젖소 한 마리가 만들어내는 원유는 매년 9톤 정도그렇게 7-8년 정도 주구장창 우유만 뽑아내다 수유 능력을 상실하면 폐사하게 된다. (암소야미안해) (...) 내가 채식주의자이거나 대단한 동물권 보오주의자인 건 아니고괜히 이런 글이나 써서 우리 편의점에 우유 판매량이 줄지 않을까 걱정하는 일개 장사꾼일 따름이다글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편의점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유통기한을 걱정하는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다.”

 

갑자기 저 부르시는 줄 알고 그만 우주먼지라고 불리는 일이 잦아서우주의 먼지 같은 독자가 우주의 먼지 같은 저자의 글을 읽고 있다우주적 관계 성립.

 

그 손님은 자랑을 많이 한다주로 부모님 자랑을 많이 하고자신의 알록달록한 소장품을 내보이며 노골적으로 자랑하기도 하고묻지도 않았는데 지난 주말 어디에 갔는지 불쑥 자랑하는가 하면한번은 여자 친구 자랑을 참기름 볶듯 고소하게 하기에 샘나 어쩔 줄 몰랐다올봄 그 손님이 우리 편의점에 찾아와 또 자랑했다아저씨저 초등학교 가요한껏 우렁찬 목소리로 턱까지 비스듬히 세워 올리고 뻐기며 말했다거참초등학교 못 나온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싶을 정도로 야무진 자랑이었다그래 나는 국민학교 나왔다.”

 

편의점의 시간은 손님과 함께 흐른다. (...) 편의점을 운영하는 일이란 늘 이렇게 내가 있는 자리를 지키고 앉아변해가는 주위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다사람과 함께 세월을 가늠하는 일이다초등학교 입하가고 통 볼 수 없던 자랑쟁이 총각은 얼마 전 우리 편의점에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아저씨 저 방학했어요이거 원방학 없는 사람은 서러워 살겠나 싶을 정도로 하늘을 날 듯한 자랑이었다.”

 

읽으며 내가 모르던 풍경들을 찾는 재미가 대단히 좋았다그러다 불쑥 깨달음(?)이 왔다예전 김영하 작가가 대한민국 카페는 초단기 임대사업이라고툇마루느티나무 아래 평상 등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은 카페로 모여 책도 읽고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며 대화를 나누는 거라고.

 

편의점이 일종의 비상상황에서 편의를 제공하는 소매상이라고 생각했는데그게 아닌 것 같다그 동네 편의점에 그 동네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며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그 모든 풍경들이 차곡차곡 수렴하는 느낌물론 듣고 기억하고 떠올리고 이렇게 글로 쓰는 편의점 점장이 있어야 더 선명해질 일이긴 하다.

 

사람보다 물건들을 위해 최적화된 공간의 일부에 머물며오랜 시간 머물며오고가는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시선을 열어 두고 이야기들을 모으는 이미지처럼 영상처럼 떠오르는 낯설고 신기하고 재미난 세상 이야기이다


피곤이 뒷목을 자꾸 움켜잡아 소개를 총총 마무리하지만 이러저러 쓴 분량도 끝없이 늘어날 듯 하고 일상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공간과 직업이 문학이 된 이 멋진 책을 만나는 분들이 많으면 좋겠다


직업 별로 문화재 보호하듯 에세이들이 매년 출간되면 얼마나 재미날까 그런 상상을 해본다로또 당첨되면 그런 문화재단 만들어야지일단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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