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렉시테리언: 때때로 비건 - 완전한 채식이 힘들 때
김가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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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채식주의자로 산 세월도 짧진 않았는데 의지가 강해서라기보단 시스템이 편리했습니다채식주의자들이 많은 환경에는 채식식당도 가게도 있게 마련이라 어려움이 없었거든요그런 의미로 한국에서 뭐라도 조금이라도 다른 거 시도하고 꾸준히 하시는 분들은 참 대단하십니다.

 

그렇다고 다 망한(?) 섭식은 아니지만 지금은 냉정하게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이라 해야겠지요형체가 분명한 고기를 씹고 뜯는 건 아니지만 철저하게 비건식만 고집하지도 않으니까요그래봐야 우유버터계란스톡 정도제가 넣어 먹는 건 아니고 이런 재료들이 사용된 음식을 거부하지 않고 종종 먹습니다버터... 참 맛있습니다오늘은 냉면 생각이 많이 났겼습니다갑자기 빵 씹는 일이 확 피곤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어쨌든 표지에 제가 좋아하는 매일 먹을 수도 있는 병아리콩으로 만든 후무스가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이집트산 콩어릴 적 먹지도 않았는데 왜 이리 좋아하는지 이집트 전생을 믿을 뻔어차피 우리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셨으니 그게 그건가요.



대략 10분 정도면 가능할 레시피들입니다.

93개 중에 7개입니다.

마음에 드시는 것 골라 맛있게 해서

기운 나고 힘나는 건강한 식사 다들 잘 챙겨 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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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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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주장이든 일리는 있을 수 있다문제는 주장의 논거와 물증이 얼마나 충실한가이다만약 진실한 연구나 고찰의 결과가 아니라 다른 의도가 배후에 있다면 이 모든 논의는 소용이 없다혹은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체리피킹*식 주장들도 마찬가지이다.

 

체리피킹Cherry Picking일반적으로 자기에게 불리한 사례나 자료를 숨기고 유리한 자료를 보여주며 자신의 견해 또는 입장을 지켜내려는 편향적 태도를 지칭하는 말이다과수업자들이 질 좋은 과일만 보이고 질 나쁜 과일은 숨기는 행동에서 유래했다동의어로는 불완전 증거의 모순(fallacy of incomplete evidence), 증거 억제(suppressing evidence), 아전인수 편향성(myside bias)이 있다<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경제편>에서 요약.

 

성실한 연구결과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리 재미있지도 흥미롭지도 기대충족적이지도 우리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그러니 연구 이전에 이미 대중이 선호할 내용들을 선행 조사하고 그에 맞춰 방대한 정보지식에서 합치하는 내용을 정리해둔 책들이 훨씬 더 주목을 끌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책들 혹은 여타 각종 분야들 -을 개별 독자가 의문을 가진다고 해서 논거의 근거를 모두 정확히 찾아 반박할 수 없다는 점이다그런 점에서 일단 내뱉고 제가 원하는 이익을 챙기는 이런 행위는 비난받고 이상적으로는 처벌 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말하면 그 기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저작이 있을 수 있냐는 반문도 가능하지만 판단 기준은 의도와 정도이다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다영합에 동참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다면 읽어서 증명할 순 없다 하더라도 수는 있다.

 

잠깐오늘날 브라질에서 농경을 위해 숲을 개간하는 일이 그렇게 충격적인가?”

 

탄소 배출과 기후 변화는 위험하다하지만 우리는 기후 변하가 불러올 모든 영향이 자연환경과 인간 사회에 나쁜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환경주의자들이 언론의 관심에 힘입어 거론하는 미세 플라스틱은 실험을 통해 바다에서 생분해된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므로(...)”

 

어조의 경박함은 차치하고라도 이도저도 아닌 입장은 무엇이며 미세 플라스틱 관련 괴변은 폐기물 처리 과정에 대한 지독한 무지를 확인도 없이 실은 글인가 기가 막힌다. Shame on you!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라야 사용 후에도 생분해가 된다또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라 하더라도 아직 처리시설 기반이 잘 갖춰진 나라로 별로 없지만한국 국내 폐기물 처리 시스템에서는 무용지물 섭씨 58도 내외의 조건에서 6개월 이상 두어야 90% 이상 생분해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 조건을 충족시킬 자연 환경은 없다고 봐야 한다.

 

2015년 기준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 폐기물의 47%가 포장재이고국내 생활폐기물 중 포장 폐기물은 30%이상이다이후 매년 5%씩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급진적인 비정부환경단체가 아니라 <세계경제포럼>*에서 보고되었다판데믹 이후의 급증은 통계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세계경제포럼 The World Economic Forum매년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국제회의로 전 세계 기업인경제학자정치인 등이 참여한다. 1970년 시작되어 논의된 사항들은 세계무역기구(WTO), G7 등 국제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https://www.weforum.org/


<지구를 위한 착각>은 애쓰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한 냉소적인 제목이다. 정확히 누가 누구더러 착각이라고 말하는 것인가원제 <Apocalypse Never: Why Environmental Alarmism Hurts Us All>는 얼마간의 예의를 갖췄다종말 말고 희망을 갖자라는 톤으로도 들릴 수 있으니허나 누가 us인지 역시 정확히 밝혀야 한다.

 

이상기후 및 환경보호운동가로서 그리고 환경저널리스트로서 활발히 활동하던 2008년의 셸런버거는 환경진보를 창립하고 회장으로서 멘토 강의를 하는 2020년의 셸런버거와 동일 인물인가냉동수면 상태로 지낸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고 해도 문제이다추천사를 쓴 인물들의 면면으로도 합리적 의심을 할 이유가 가늠이 된다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가져다 비교한 것은 서늘한 분노를 유발한다. How dare you!


(feat.) Greta Thunberg at UN

 

공격을 위해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팩트체크하는 식으로 내용이 전개된다고 들어서 혹시나 유의미한 팩트나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을까구호 이상의 정책화할 수 있는 통찰이나 제안들이 있을까 기대했다죄책감을 더는 방식으로 일상이건 사회건 실천 가능한 일들이 많아지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부디 현상을 뛰어 넘어 한 발 더 다음과 미래로 옮겨 가는 그런 디딤돌이 되어 주지 않을까 바랐다.

 

경박한 인용들과 요약본에 지나지 않을 얄팍한 주장들 끝에 대안은 사랑과 환경휴머니즘인가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중심주의에 더 집중하자는 말인가빈 말보다 나을게 없는 긍정과 함께 성장하자는 제안일 뿐인가몰역사적 사고와 대안 제시가 없는 허술한 저작이다적어도 나보다 적은 연령의 모든 사람들은 이 책을 공들여 읽는 허무함과 낭비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도 나는 저자의 주장 중에 환경위기가 관리 가능하다는 낙관인지 선언인지가 맞는 말이길 간절히 바란다간절함만으로 바뀌는 일이 드물긴 하지만 이런 무성의한 태클을 거는 일이 줄어들면 세계 곳곳에서 이런저런 계산 없이 공존과 양심을 위해 매순간 정직하게 연구하는 이들이 조금쯤은 덜 힘들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의 가치는 어쩌면 국내에서도 기후위기에 관한 활기찬 담론을 새롭게 형성하는데 기여할 지도 모른다는 것검증된 바 없는 해외작가의 좋은 게 좋은 거란goody-goody 전망서를 비판 없이 신뢰하지 말자는 교훈환경보호와 기후위기 관련 내용들에 불편한 이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싶은 확인 정치사회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인간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일을 진심으로 힘겨워 한다는 애틋한 사실의 재확인.

 

나는... 종종... 변하는 건 없는 건가 하는 무력감이 짓쳐든다.

그럴 땐 산개하는 생각을 멈추고 뭐든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 작은 성공에 힘을 얻어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흔들려도 멈추지 않고 함께 하는 이들이 가득하다.



@NASA 미국 나사의 기상위성(GOES-14)이 촬영한 지구 영상


@phillipsastrophotography in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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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 - 초보 비건의 식탁 위 생태계 일지 삐(BB) 시리즈
키미앤일이 지음 / 니들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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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와 열정이 모자란 덕분인지 식습관을 바꾸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익숙한 육식 재료의 혼합식보다 공들인 채식 음식들이 더 입에 맞는 경우도 많았다그래서 식습관을 바꾸고 싶어도 이전에 맛있게 먹던 너무 먹고 싶어 포기하지 못하는육식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의 심정을 사실 나는 잘 모를 지도 모른다마치 수학이나 물리에 대해 누가 물어도 왜 그 부분이 그토록 어려운지 몰라 잘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에너지원은 식물에서 얻을 수 있도록 태초에 누군가가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인간에게 꼭 맞는 에너지는 육식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식물에서 시작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분명 잘못된 채식은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그러나 정확히 이야기하면 채식이든 육식이든 영양불균형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2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당시의 자료로도 육식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거나 선호하지 않을 이유는 내게는 충분했다이타적이고 환경적이고 철학적이고 고상한 이유를 다 두고라도 사육환경이 충격적이었다도무지 식재료로서의 고기들을 신뢰하기가 힘들었고 일단 사진이든 영상이든 자료를 보고 나면 그 이전으로 돌아가 잊어버리고 사는 일이 불가능했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동물을 학살하는 한 서로를 죽일 것이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또 이렇게 말했다.

도살장이 존재하는 한 전쟁터도 존재할 것이다.”

이 말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이젠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무엇을 먹는지 말아라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겠다.” (...)

나는 그동안 뭘 먹은 건가.

적어도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알고는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어쩐지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만 같다.

 

당시엔 대학원생이었고 주변의 친구나 지인들은 뭐든 충분히 존중하는 이들이어서 별 다른 어려움을 실감하지 못했다유학을 가서는 더욱 더 채식하기 편한 환경이었고 초보 채식주의자인 나는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다양한 채식/완전채식하는 이들이 많고도 많았다채식 메뉴도 쉽게 찾아 먹을 수 있었고 정말 맛있었으니 불만도 어려움도 몰랐던 세월이었다.

 

그렇게 학교와 학계와 친구와 지인들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취직하고 귀국을 하니 2010년에 가까운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것이 매일 어려웠다더구나 거대 조직사회에서 과중 업무와 야근과 출장이 일상인 일이라 섭식을 선택할 수 있는 창은 점점 더 좁아졌다그제야 한 식당 건너 하나씩 고기집인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고 거의 모든 반찬에 설탕과 (육식재료가 포함된)조미료가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한식의 정체(?)도 입맛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인 일반적인 것을 선택하는 건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에는 반드시 차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다만 어떤 것들은 너무 미비하여 차별이라고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다르면 차별받는다는 것을.

 

다시 10년이 더 지나 현재체력약화에 비례하는 느슨함과 적당주의로 나는 베지테리언이나 비건보다는 플렉시테리언에 더 가까운 섭식 생활을 한다물론 할 수 있는 한 채식 메뉴를 선택하려 하지만 원칙 고수와 저항의 강도가 더 높아질 수 없을 것도 같다그러니 종종 다른 채식주의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찾아 읽게 된다상상과는 달리 그들이 사는 모습이 우울하고 심각하고 고통스럽지 않고 유쾌하고 즐거워서 참 좋다.


 

이 책은 귀여운 일러스트는 물론 솔직하고 명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아주 멋지고 감동적인 책이다뭔가 인간적인 것들이 결여된 내 경험과는 달리 이분들은 비건으로 사는 삶의 어떤 부분들이 정말 힘든지 잘 적어 주셨다공감의 토대를 마련해 주어 좋아하실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우리 영혼에 깊숙하게 새겨진 음식에 대한 이해와 맛의 정의영양소에 대한 상식이 기본 값으로부터 벗어나는 음식이나 식단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나로서는 채식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이 향수다그렇게 시킨 통닭을 한 입 베어 물고 나면 곧장 후회가 밀려온다.”

 

보송보송하고 포근포근한 분위기의 글이 전해주는 분위기에 해탈을 경험하게 해주는 날카로운 논거의 깨달음이 없어도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배우는 것들이 참 많다아내와 내가 서로 사랑하며 배운 감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채식에 닿았다그리고 채식은 동물과 이 땅을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흙길이 이토록 푹신푹신한지, (...) 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은지밤이 이토록 어두운지모든 것을 녹일 것같이 무더운 여름조차 밤이 되면 얼마나 시원한지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알게 됐다.”

 

사랑스럽고 무해한 이들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생명체들 중에 우위에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이웃을 사랑하고 동물도 지구도 사랑해야하지 않을까요’, 이런 질문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싶다동시에 외식이 힘들고버터 냄새가 참기 힘들고금연도 힘들다는 얘기들에 토닥토닥하는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여러 번 얘기하지만 뭐가 되었든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힘들여 뭘 하지 않았으면 한다이유는 많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식으로는 꾸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무리하지 말고 조금만 다르게 살짝만 바꾸며 살아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어떤 저자는 아침식단만 바꿔도 지구를 구한다는 행복한 낙관을 열정적으로 펼치기도 했다 정말 그럼 좋겠다!

 

대신이라기엔 뭣 하지만 부디 내가 하지 못하는 좀 더 큰 변화나 노력을 하는 이들을 미워하지도 않으면 좋겠다상대를 모욕하고 부정하고 올라서려는 곳이 어디인지 잠시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잘 볼 수 있는 열띤 감정을 흥분시키는 대신 가라앉히시길그렇게 바꾸며 바뀌며 다 같이 즐겁게 오래 안심하고 사는 것이 오래되고 지친 나의 꿈이다.

 

다정한 책을 읽고 레시피까지 발견했다오늘 늦은 저녁은 이것으로! 메이플 시럽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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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오는 날
임수진 지음 / 상상마당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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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소설집이라니 얼마나 더 각별할까 짐작하며 근래에 알게 된 단편 소설 하나씩 빼 먹는 즐거움을 기대했다소재들이 심상치 않아 기사나 에세이였음 마음이 무거웠겠다어쨌든 소설이라 다행이다 하는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읽었다자전적이거나 주변 현실을 차용하거나 반영하는 글들임이 분명하니 여전히 현실에서 유사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을 이들에 대한 불특정한 생각에 기분이 점점 가라앉기도 했다간식이라 생각한 음식이 복용약인 듯한 심정.

 

뭘 어쩔 수 있을까이야기를 통해서라도 공감할 수 있는 사고와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고 변명하는 수밖에최선을 다해 살아도 남을 해하지 않고 살아도 속 깊이 선해도 마주해야 할 어려움들은 가리지 않고 찾아오기도 한다무감하고 가치 판단도 못하는 세상 살이가 눈물 겹지만 환하고 쨍한 여름타인의 그늘을 살피고 싶다는 저자의 소망이 담긴 문장을 계속 떠올리며 끝까지 읽었다.

 

오래 전 독일인 할아버지 한 분이 한국인들은 머리카락 색이 다 검은 건가라고 물어 갈색진한 갈색더 진한 갈색검정색 정도가 아닐까 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최대한 사실적 정보를 전달하려고 한 의지였지만 말하다 보니 폭이 좁은 명도와 채도 사이의 다양성(?)에 슬쩍 웃음이 났다이 책에 담긴 10가지 이야기들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정을 준다채도가 흐린 어두운 명도의 나열과 같은 삶들웃을 수 있는 이유는 없다.

 

표제작으로 선택된 단편을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생각을 이겨본 적이 없다[언니 오늘 날]제목에서 일견 예상되는 반갑고 행복한 날일까.

 

이수는 불길에 휩싸인 건물을 보며 저 속에 혹시라도 엄마가 있다면불길에 갇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길을 잃는다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미노타우로스처럼 엄마도 미궁에 갇힐 수 있다는 상상을 하자 캄캄한 동굴에서 빛 한줄기를 발견한 듯 마음이 환해졌다.”

 

언니는 범행을 자백하는 양심수처럼 담담하려고 애썼지만 얼굴은 강제 수용된 포로 같았다.

 

나가야 한다고 엄마 손을 잡았는데 그때까지 얌전하던 엄마가 또다시 난폭해졌어가면 네년이 죽일 거잖아... 하면서 내 손을... 마구 물어뜯었어. (..) 그래서... 두고 왔어.”

 

.............................................

 

그날 밤에 아버지는 사고를 당했다. (...) 아버지는 그 사고로 다시는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늘 같은 방향으로 흐를 줄 알았던 이상이 방향을 180도로 틀어버렸다. (...) 고만고만하던 일상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절망과 우울감이 진눈깨비처럼 쏟아졌다그날 밤 우리 가족은 급하게 써진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되었다. (...) 웃음이 사라지면서 유쾌하지 않은 의무만이 서로의 어깨를 짓눌렀다. (...) 아버지에게서 살아있는 부분은 입뿐이었다.” [삼각김밥을 먹는 동안]

 

.................................

 

장모인 엄마도 속을 정도이니 다른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 아이가 생긴 뒤 이혼 생각은 가급적 하지 않았다. (...) 지수는 딸이 아빠의 부재를 이해할 나이가 될 때까지 견디기로 했다. (...) 모범적인 가면 속에 숨긴 욕망이 더 무서웠다.” [푸른 문]

 

...................................

 

나는 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야 하는지 그 답을 못 찾았다미래가 암흑이라 탈출은 꿈도 못 꾸는데 가족을 만들라는 엄마가 제정신일까 싶다. (...) 그 삶이 순리고 태곳적부터 이어온 순환이라 할지라도 저항 없이 물려받긴 싫었다.” [메미의 시간]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어야 안심하는예외 수는 인정하지 않았다. (...) 면접에서 매번 떨어진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 먹고 싸고 아르바이트하는 시간 이외에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었다. (...) 사회에 나오니 더 중요한 게 많았다성적보다는 예외 수와 무리수를 사용할 줄 아는 친구들이 취직도 빠르고 승진도 빨랐다. (...) 개뿔개천의 용은 무슨원서를 넣는 곳마다 떨어졌다.” [매미의 시간]

 

첫 소설이라서인지, ‘첫 소설인데도인지 지루하지도 불편하지도 불쾌하지도 않게 잘 읽었다소설적 재미만 보자면 단연 재미있었다젊고 똑똑한 작가가 구사할 법한 이렇게 말하면 나이가 자각되지만 살짝 복잡하고 의도적으로 빗겨가고 설명을 늘린 표현들도 좋았다정확하고 진솔하고 과장 없고 가감 없는 담백한 문장들을 눈부시게 감탄하며 읽는 취향이지만 젊음도 지성도 반가웠다.

 

깨닫고 잊고, 의 반복이긴 하지만 다시... 사는 일은 이렇게 준열하고도 흥미롭다고 느꼈다모두 아프지만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다그런 오만한 생각은 아예 깨끗하게 지워지면 좋겠다작가가 걷어낸 그늘이 있던 자리마다 한참 빛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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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공부는 문해력이 전부다 - 내 아이를 바꾸는 문해력 완성 3단계 프로젝트
김기용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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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 전에 한국인의 문해력에 관한 분석 기사를 읽었다성인 대상 통계도 있고 수험 준비 중인 고등학생들에 관한 수치 - EBS <당신의 문해력>도 있었다표본 오차를 염두에 두더라도 악의적인 조사가 아닌가 싶게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문맹은 아닐지라도 글을 읽을 수 있다 해석하고 이해하는 문해력은 20% 내외로 발표되었다읽고도 이해 못하는 실질적 문맹이 6년 새 2배 증가했다고 한다.

 

가제는 랍스터? 코로나 양성음성의 의미를 몰라 검색 사흘이 왜 4일이 아니고 3일인가

 

한편으로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왜 이리 의사소통이 어려운가에 대한 오래 기다린 대답인 듯도 하고 다른 한편 포기가 현명하겠단 좌절감도 느꼈다읽어도 문맥 파악이나 이해가 잘 안 되는 책들이 적지 않으니 내 문해력이 어느 언저리인지 정확히 안다는 뜻은 아니다심지어 아직 한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어쩌면 문해력은 늘 이 비율이었을 지도 모르고 이런 상태로도 문명은 유지될 지도 모른다어느 세대나 책은 읽는 사람만 읽고 디지털 세대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을지 모른다어쨌든 언어의 기본은 언제나 어휘이고 문해력은 많이 읽고 쓰는 것 이외에는 비법이 없을지 모른다.

 

저자는 12년차 초등교사이고 비법보다는 기초를 단단히 하는 학습법의 정도가 중요하다는 정답을 들려준다나 역시 기본과 정석에 동의하는 지라 경력이 있는 현직교사의 지도안을 보듯 기대를 갖고 읽었다생각을 정리하고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되는 차분한 글이다.

 

아이가 글자는 아는데 글은 전혀 이해하지 못해요질문의 뜻을 몰라서 학습지를 못 풀어요.”

 

기억을 뒤져봐도 초등시절 선생님들이 하는 말을 다 잘 이해했는지 여부를 알 수가 없다그 당시엔 신문에도 한자가 섞여 있었고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어휘나 친절한 설명이 있을 리가 만무한 시절이었을 것이다경험이란 늘 개별적이라 말뜻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고 그로 인해 힘들어한다는 내용에 조금 놀랐다심지어 또래집단 내에서도 대화가 힘들어 친구 사귀기가 힘든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괴짜지만 천재인 발명가나 프로그래머 등의 직군이 아니라면 사회생활의 대부분은 말과 글로 이루어지고 진행된다필수적이라고 언급하기에도 민망한 당연한 기본 능력이다직군과 상황과 시의적절한 어휘들과 표현들을 익혀야하고 상황에 따라 의미함축적인 전달 능력 또한 필요하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하는 기생충의 영화평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을 익숙하게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이해할 수 없다면 큰 문제이다기획안논문업무계획서프리젠테이션 등등 모든 문서들은 이보다 훨씬 더 낯선 해당 분야만의 어휘들로 직조되어 있다.

 

저자가 글쓰기의 기초로 제시한 방법들은 모두 알고 있지만 꾸준히 계속해야 효과가 있는 것들이다기시감이 드는 내용이다우리가 고민하는 많은 것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하지 않아서 정체되거나 해결되거나 개선되지 않는 일들 투성이니까.

 

책 읽기가 없는 독해 문제집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시간 대비 공부 효율성으로 따지자면 독해 문제집을 풀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 책 없는 독해 문제집은 아이의 뇌 발달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어휘 공부를 위해 독서를 하고한자어 공부를 하고어휘력을 기르는 습관을 기르고아이들인 지루해 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도록 놀이처럼 어휘를 함께 배울 수 있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해준다그리고 글쓰기를 위한 기초적인 쓰기법과 테마를 정해 일기 쓰기 시도하다 중단한 기억이 떠올라 뜨끔하다 그리고 생각을 확장하는 거미줄 글쓰기 등을 알려 준다.

 

문해력은 (...) 단순히 글을 읽고 상상하여 표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 글쓴이의 목적생각 중심 생각내용을 파악하여 궁극적으로 와 연결하는 과정입니다.”

 

문해력은 (...)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올바르게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지닌 아이들은 (...) 다양한 상황을 간접 경험해 보며 (...) 나아가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노력도 할 수 있죠.”

 

저자가 강조하는 태도는 아이들이 힘들지 않게 글쓰기에 익숙해지고 문해력의 상승이 자존감으로 이어지는 일이다무척 친절한 내용들이다어차피 문해력은 초등학생만이 아니라 글을 알게 되는 초등 시절부터 언어생활을 마치는 날까지 계속 업그레이드할 수밖에 없는 분야일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아이가 거짓 정보와 이해관계가 얽힌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올바르게 판단하고 생각하는 능력은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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