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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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달리며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인데 한국이 분단국이라 기차여행 시간이 짤막한 것이 아쉽다언제든 할 수 있던 시절엔 마음에 안 드는 점들이 잔뜩 보였는데 지금은 그립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호는 지루한 거 하나 없이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여행이다신나게 다닐 수 있었던 덕분에 여행이 끝나면 아주 기분 좋은 고단함이 느껴진다재밌고 현명한 이들을 많이 만나 각자가 살아본 흥미진진한 삶의 이야기들도 잔뜩 듣고사려 깊고 친절하게 남긴 말들도 아끼며 듣는다.

 

뜻밖에 솜씨 좋고 그 자신도 철학자로서 부족한 점 없는 위트 가득한 저자의 글솜씨 덕분에 여행은 더욱 유쾌하다줄곧 편안하면서 가르침이나 교훈이 지나치지 않은 책을 만나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사는 일이 깔려 있는 레일 위를 달리는 일이라면여러 번 정차하기도 하고여러 사람들이 서로 만나 각자의 삶을 나누는 일이라면그리고 각자의 삶의 향방을 찾아 다시 달리는 일이라면그 기차에 타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 일정 역할을 하고 있는 건가 속 편한 기분이 든다.

 

레일 위에서 만난 이들지금 한 기차에 탄 이들앞으로 만날 모두 다른 방향에서 달려오는 이들이 다 반갑다우리 모두 같은 처지니 서로 힘껏 응원하자고 제안하고 싶어진다.

 

한 달 동안 조금씩 읽고 필사해 보았다클럽장은 힘들 때 카톡 보내고 싶은 철학자 찾아보라는데 카톡을 안 하는 독자로서 불경하게 패스!

 

샤르도네를 함께 마실 수 있다면 루소와 수다를 잠시 떠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대신 불어... 불어를 철학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로 배워야해!

 

솔직한 심정은 이렇게까지 재미날 줄 몰랐던 에릭 와이너 저자나 종종(?) 엄청 웃기는 위트쟁이 김영하 작가와 대화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하며 언급을 피하고 싶지만 문장이 눈에 띌 때마다 두근거리는 철학자()(계신다.

 

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앞으로 더욱 더 배우고 싶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나는 젊은 사람들이 좋다.

그들의 계획 안에서 내 계획을 발견하면

내가 죽어서 무덤에 묻힌 후에도 내 삶이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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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 모멸에 품위로 응수하는 책읽기
곽아람 지음, 우지현 그림 / 이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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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지만 효과가 좋은 치료와 보상들 중 하나는 몰입할 수 있는 책을 만나 푹 빠져서 읽는 경험이다적어도 수백 번 경험한 일이니 믿으시길이런저런 수다스러운 소개와 적응 기간이 끝나고 책과 나만 마주하는 시간정보는 가고 문학만 남는다무방비하게 자신을 잊는 귀한 시간이다거의 모든 작품들에 감탄하는 소위 쉬운 유형이지만 갈수록 진솔하고 본질답다는 느낌이 확실한 글들을 더 좋아하게 된다한편으로는 나와 남들이 사는 모양 역시 그렇기를 더 바라는 마음도 커진다.

 

독서에는 여러 목적이 있겠지만 어린 날 책읽기의 가장 큰 효용이자 목적은 바로 이것이라 믿는다어린아이의 여린 마음을 둘러싸는 보호막이 되는 것그 막은 더 많은 책을 읽을수록 더욱 유연하면서도 튼튼해진다터지지 않는 비눗방울 같은 형태라고 나는 생각한다그리하여 훗날 어른이 되어 금력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하는 세속적인 가치들이 마음을 어지럽힐 때 흔들림 없는 성채이자 단단한 방패가 되어준다.”

 

계산을 하는 태도란 사실 남에게 잘 감추기 어려운 일이다누군가 늘 알아차리기 마련이고 그런 상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이들은 분명 드물 것이다계산을 잘 하는 나로서는 중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가령 이 일을 해서 내가 얻을 즐거움과 괴로움을 즉각적으로 띄워보고 계산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선택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계산도 솔직하게 하다보면 점차 남들에게 받은 것들이 더 많다는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된다미안하고 감사하다시간을 한 번 돌릴 수 있다면 어려서 몰라서 못했던 감사와 사과의 말들을 전하고 싶어질 만큼.


 

워낙 자잘하게 살다 보니 종종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나보다 훌륭해 보여 잘 감탄하는 한편 의기소침해 지기도 한다서글프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고그러다 또 그런 좋은 이들 덕에 수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구나덕분에 지금 여기 아직 살고 있습니다다시 감사하게 된다.

 

이게 다 무슨 핵심 없는 글인가 의아하실 분들이 있을 지도곽아람 작가의 글을 감사히 잘 읽었다고 말하고 싶어서이다절대 안 하는 짓인데 밑줄 박박 그으며 읽고 싶었다.

 

어쩌면 저자는 우리의 처럼 이해가 안 돼요이 단순한 소성에 뭐가 담겨 있어서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칭찬을 해줄까요?” 라고 어리둥절해 하실 지도아님 이미 칭찬에 익숙해지셨을 지도울면서 읽은 분들 이야기가 계속 들려온다.

 

그러면 나는 독자로서, “네 글에는 진실이 담겨 있어그게 비결이야유머와 비통함도 생생하게 살아 있어이제 너만의 방식을 찾은 거야. (...) 진심을 담아 글을 썼어.” 라고 답글을 하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불과 한 달 전 5말 6초에 이런저런 어리광을 부리고 엄살을 떨고 했는데 어느새 6말 7초이다한 달은 슬쩍 돌아보니 <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란 제목이 뼈를 막 때린다모멸에 품위로 응수하는 책 읽기란 부제는 눈물샘을 들쑤신다자아실현을 못하더라도 망가지지 말고 폐가 되지도 말고 존엄하게 살아 나가고 싶었던 여러 일상…….



외계가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강도로 압박을 가해 올 때

그 버거운 삶의 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책을 읽는다.”

 

법적 성인인 된 날부모님께 편지를 올리며 그동안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고앞으로는 경제적 정신적 독립을 하기 위해 노력해 보겠다고 한 일세 번의 이직을 하면서도 어쨌든 직장에서 살아 나간 세월해가 바뀌어도 퇴근 후 팀원들에게 연락도 회식도 제안한 적이 없어 연말에 가끔 외로웠다고 하던 뜻밖의 평가어떻게 이렇게까지 성취욕구가 전무하냐고 기막혀 하시던 아버지의 하소연(?) 혹은 염려곽아람 저자의 문장들인데 내 얘기인 양 헷갈리며 혼란스럽게 읽었다.

 

살던 대로 살지 않는 일은 쉽지 않다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그렇지만 살던 대로만 살면 내면이 망가지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망가진 부분을 교정하고수선하고다듬고달래가며 내게도 남에게도 좋은 방향으로 살아가는 노력이 마흔 즈음엔 필요한 것 같다.”

 

이제는 매년 정리하고 포기하는 일들이물리적 시간도 없다고 느끼는 일들도 늘어난다이거 저거는... 이제 늦었구나... 싶은 것들도 있는데 저자가 40대는 재구축의 시기라고 하니 와락 반갑고 왈칵 고맙기도 하다꾸준히 하긴 하지만 정신증에 더 가까운 이상한 독서 습관도 세월과 더불어 힘이 되어 쌓이기도 할까 기대를 해본다아무리 나라고 가끔은 이건 마치 수도승의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읽고 쓰기는 그 와중에도 굳건한 도움이 되어 준다.

 

홀로 있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삶이 주는 상처에 대한 면역력이 약하다는 문장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다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므로. ‘혼자 잘 노는 사람이라는 것이 나의 무기 중 하나라고 늘 생각해왔다. (...) 나는 모든 일을 혼자 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 어릴 때부터 책벌레인 사람은 혼자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책읽기야말로 혼자 놀기의 끝판왕이기 때문에.

 

엄청난 상실인 듯 상처인 듯 느껴지던 때도 있었으나 나이와 더불어 공짜로 얻은 통찰도 가끔은 있다이를 테면 인간관계란 누가 딱히 잘못하지 않아도 살다 보면 그냥 멀어지는 관계들이 있다는 것반성도 분석도 원망도 죄책감도 후회도 필요 없는 일다만 언젠가 우연히라도 조우하면 서로 반갑기만을 상상해 본다저자가 인연에도 유효기한이 있다라고 정리해 주어 마음이 무척 편안해 졌다.

 

책읽기란 어린 날의 내가 울고 있는 자신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건넨 최초의 악수이자어른이 된 내가 아직도 나음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 내게 눈물과 위안으로 부단히 건네는 악수이기도 하다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실시한 최초의 교육이자최후의 교육일 것이다.”

 

하루키를 무척 좋아해 그런 글을 쓰고 싶어서 작가가 되었다는 임경선은, “고통이 동반되지 않는 기쁨에 깨작대느니 고통이 동반되더라도 끝내 원하는 걸 가지는 기쁨을 누리고 싶어라고 말한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반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다 친구인가란 실존적인 고민을 한 적이 있다실제로는 친구를 어떻게 사귀는 것인지 몰라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지금은 아무리 원해도 친구 사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나이이다이러다가 언젠가 친구가 한 명도 없게 되는 건가새로운 친구는 이제 못 사귀는 건가그런 무서운 생각도 간혹 든다


이런 불안한 심리 상태이니 친구란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생긴다란 저자의 말을 무조건 믿고 싶어진다그리고 오래 내게 다정한오래 나를 참아 주는똑바로 바라봐주는이렇게 멀리서도 필요한 위로를 건네주는 모든 이들이 실은 모두 다 내 영혼의 단짝들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본다.

 

앤은 말한다. “동류란 내가 생각해봤던 것만큼 드물지 않아요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찾아내는 건 멋진 일이에요.”

 

당신지금 어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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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생각하는 걷기 - 함부르크에서 로마까지, 산책하듯 내 몸과 여행하다
울리 하우저 지음, 박지희 옮김 / 두시의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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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고 놀랍고 문득 의심도 품었다가 결국엔 마구 부러워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나가서 걸어보자계속 걸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서 산책하듯 걸었다니그렇게 100일을 걸어 함부르크에서 로마까지 갔습니다덕분에 그 거리가 2,000km라는 걸 알게 되었네요.


 

6월에 베를린에서 며칠 머물면서 대낮에도 덜덜 떨었던 저는 함부르크에 사는 저자가 태양이 빛나는 남쪽으로’ 가고 싶어 퇴사하고 집을 나섰다는 말을 왜 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거리 도보 여행을 위해 전문의류와 장비를 챙기고 준비를 완료해서 떠난 것도 아니라 아들이 쓰던 배낭 하나 메고 출발했습니다부러워서 나는 결국 이런 모험을 경험해 보지 못할까 이런저런 이유로 두근거립니다어느새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까지 믿을 수 없게 되었을까요.

 

하이델베르크에서 로마로 향하는 밤기차 안에서 지루해서 뒤척였던 기억이 납니다걸어가는 일은 지루할 여지가 없을 듯해 또 부러워집니다더구나 도착지가 로마라니. 예전에 일주일 밖에 머물지 못하고 떠나는 저를 보고 이탈리아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인 듯 말했던 기억도 납니다로마는 최소 6개월 이상은 머물러야 한 면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진실한 조언이었지요.

 

로마 연상 작용 덕인지 엉덩이 근육대둔근의 이름이 글루테우스 막시무스라는 것이 더욱 놀랍고 재밌습니다로마 장군 이름인 줄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글루테우스 막시무스를 깔고 앉아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로마로 데려가주고 싶네요엉덩이 근육!

 

움직이지 않는 경향은 꽤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초등학교만 보아도 그렇다똑같은 책상과 의자좁은 교실조용히 하고 앉으라는 말성인이 되면 이 말을 듣는 곳이 어디인 줄 아는가감옥이다.”

 

20일 동안, 2,000km의 여정에서 당연히 내내 혼자는 아니었습니다저자가 만난 이들의 면면이 재밌고 긴장되기도 하고 걷지 말자 생각이 문득 들 만큼 위험한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내게 선물을 주었고어떤 이들은 내가 가진 것을 빼앗아 갔다.”

 

멧돼지가 모기보다 귀찮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반면 볼 것배운 것느낀 것도 무척 많았겠지요문득 어느 한 장면에서 글 속에 묘사된 곳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멍하니 상상해 보았습니다.

 

배운다는 의미의 독일어 레르넨(lernen’은 고대 게르만어 리즈노얀(liznojan)’에서 파생되었다발자취를 따라간다는 뜻이다헤센 북부와 튀링겐 서부와 중부 독일을 이루는 이 남부 니더작센 지역에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무와 물과 산이 가득한 독일의 초록색 심장나는 시냇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는 아주 특별한 계기로 걷기에 대한 의미를 찾았고걷는 일은 언제나 도움이 되었고 세상과 가장 친밀하게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아직도 오감으로 가장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은 오후 4시 티타임으로 살짝 분주한 건물을 빠져 나와 숲 길을 걸었던 장면들입니다아직도 이제는 상상에 더 가까울까요 ― 그때 햇볕과 바람과 풀 향기가 나는 듯합니다.

 

여러 해 전부터는 의사가 아주 구체적으로 걷기를 권하고 지도해서 치병을 위해 걷고 있습니다고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다리 길이가 자꾸 달라지고 넘어지고 하는데... 처방은 걷기 편한 운동화를 신고가방은 무게 분산이 균등한 배낭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운동화와 배낭으로 처방이 결정되니 나머지도 대략 맞춰지게 되더군요화장은 수분과 자외선 방지 말고는 원래 하는 것도 없었고 헤어스타일이란 봄에 짧은 단발여름엔 묶을 수 있는 길이겨울까지 길게 두는 것의 반복이니대충 상상이 가시지요간혹 새파랗게 젊은 30대들이 반말을 합니다만…… 잘 참고 살고 있습니다친구들이 네가 그 꼴로 어떻게 보일지 자각하라~’고 직언해 주기도 했고.

 

영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고요한 숲 속을 산책하면 5분만 지나도 긴장이 풀린다고 한다. (...) 우리의 귀는 주변에서 위험한 소리가 들리는지 파악하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있다그래서 소음과 각종 소리로 가득한 도시에서는 언제나 긴장 상태다이 소리가 무엇인지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계속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는 지치고 예민해진다

 

눈이나 입과는 달리 귀는 감을 수도 닫을 수도 없으니 얼마나 지칠까요소음공해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다시 합니다목소리가 큰 사람과 친해지지 못하는 이유도 아마 듣는 일에 쉽게 피곤해지는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가끔씩 고요함 속에 있는 것이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이집트인들은 침묵을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 이해했다그들은 태양신 호루스를 고요의 신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그들은 모든 것을 너무 분명하게 표현했다. (...) 나는 그들의 오만한 사고방식이 놀랍다그들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에 대해 자기들이 다 안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어떤 산을 보아도 감탄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정원과 재산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내게서 멀어져라나는 그런 생각을 항상 경계하고 막을 것이다. (...) 사람들은 사물을 만지고도 무감각하며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그들은 모든 사물을 죽이고 있다.” 라이너 마이라 릴케 Rainer Maria Rilke

 

어제도 오늘도 종종 주말도 산책할 시간이 없이,

더 솔직하게는 산책할 시간을 낼 마음의 여유가 없이

여러 가지 감정들로 꽉 찬 일상을 어떻게 잘 정리해볼까,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솟구치는 퇴근길입니다.

 

생각은 그만하고 그냥 나가서 잠시 걸으면 될 일이겠지요.

준비할 것 없이그대로 신 신고가볍게 나가기만 하면!

 

주의> 걷기에 관한 책인데... 읽어 보심 뭔가 낯설어 알아 차리시는 순간 깜짝 놀라실 수도 있을 겁니다. 당연하게 기대하는 것들(?!)이 없습니다. 제 취향에는 딱 맞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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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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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자라는 것은 아주 강한 표현입니다그래서 제목을 보았을 때 궁금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자본주의가가 숲속에서 뭘 하고 있을까 상상이 어려워서일단 왜 미국의 숲속으로 간 것인지그래서 어찌 살았는지 누구나 궁금해 할 상황입니다.

 

오래 전 그러니까 1993년에 출간된 책 <월든>을 책임을 온전히 지는 삶을 미처 경험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당연히 책 내용이야 대충 이해했지만 그것뿐이었지요접점도 거의 없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생태학이 시대정신이라 생각되어 일단 알고는 있어야겠다고 공부를 하면서도 나는 늘 자연과 가까이 하는 삶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형이었습니다빌트인 구조의 주거형태가 합리적이라 여겼고눈 뜨면 백화점에 입주한 센터에 운동하고 씻고 포장 음식을 구매해서 출근하는 일상이 편했습니다퇴근 후 다시 운동하고 간단한 장을 보고 귀가하니 누가 백화점 꼭대기에 살라고 하면 아주 좋아했을 겁니다.

 

일상의 모습만이 아니라 세계관 역시 자연과 인간은 가능한 분리되어 서로를 덜 간섭하고 사는 방식이 맞다 생각했습니다언젠가 숲을 대변해서 한 문장씩 쓰자는 행사에서 소신을 담아 “Leave us alone!” 숲과 동물과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이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 일 순위는 이것일 거라 확신했습니다.

 

서로 접촉과 간섭이 줄어드는 편이 경계가 허물어지 않는 편이 낫다고 믿었습니다코로나 판데믹 상황을 보면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고도 볼 수 없겠지만한편 인간에게 그런 자제심이 있으리라 믿었던 것은 아니니 게으르고 허황한 생각이기도 했다고 봅니다.

 

40세에 은퇴한 남편이 가장 부럽습니다저는 45세 은퇴가 계획이었는데……시애틀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어쨌든 숲속이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친절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이웃으로 계시고 궁금증이 증폭해서 아주 공격적인 성격을 띠는 질문들을 받을 때도 있지만 육아법 책을 쓴 교육심리학 박사로서의 방어력이 나쁘지 않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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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도 생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면 그때 복귀하자.”

 

후회되지 않을 만큼 이 시간을 충분히 만끽하는 것이 목적이다. (...) 나쁜 일은 생기겠지만 (...)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그렇게 살았을 삶을 사는 게 목적이니까.”

 

박혜윤 저자를 개인적으로는 모르지만 글 속에서 느낀 바는 명철한 철학자이자 행동가라는 점이다<월든>이 애독서이지만 소로의 사는 방식은 맞지 않다고 구분하고 자신이 발효시킨 생각에 따라 묵묵히 그러나 확실히 살아간다.

 

친환경적인 농사는 없다농사는 원해 환경 파괴를 기본으로 한다.”

 

부모의 교육 방침과 태도는 시대적 산물이다.”

 

내가 지켜야 할 가치가 절대적이라는 믿음이 사라지면똑같은 행동을 해도 가볍고 즐겁다.”

 

자본주의적 생활 방식을 완전히 다 버리지 않았다고 자본주의자라고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과하다고 느낀다생존을 위해 따르는 방식이 ‘~주의에 이르는 적극성을 지니지 않아 보인다다만 미국사회에 비춰보아 자신의 삶의 방식이 아주 선명하게 정치 사회적 지표를 보인다는 점에서 그리 제목을 정한 것도 같다.

 

이토록 외진 곳에 살아도 사회와 나는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이런 자유를 누리는 일 역시 자본주의 하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자본주의는 내 멋대로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제도다.”

 

돈을 버는 과정이 나를 나답게 하는 창조의 행위가 될 수 있을까우리가 이 답을 찾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이런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것뿐이다.”

 

한 가지 동의할 수 없었던(?) 내용은 사슴과 관련된 일이었다. 저자는 농사를 망치는 사슴을 미워하기 보다 사슴처럼 살기로 - 수렵 채집 - 정했다고 한다. 완전히 사적인 저항감이라고나 할까. 


덴마크 코펜하겐 사슴공원 근처에서 몇 달을 살아본 내 경험상 사슴은 디즈니의 귀염둥이들이 아닙니다덩치가 크고 사납고 꽹과리와 징의 중간 어디쯤을 울리는 소리로 울고 발정기에는 아예 곁에 가지 않는 것이 살아남는 길입니다 - 어쩔 수 없이 움찔했다. 시애틀 변두리 사슴들을 만나 본 적이 없으니 이건 그냥 사적 감정의 일반화의 오류라고 치자.


그런데... 다 읽고 나니 하루 종일 무거웠던 기분이 확실히 가벼워졌다거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이리저리 사소한 것들까지 내보이는 글이라 마음이 편하고 유쾌하기까지 하다결코 자신들이 발견한 삶이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그보다는 시종일관 가족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모습이 멋지고 부러웠다.

 

나 자신을 믿는 것은 언제고 허물어질 수 있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방어지만나를 칭찬하고 나를 긍정해주는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은 꽤나 든든하다.”

 

우리 모두의 행동이 합쳐져서 인간의 멸종을 부른다면 그것도 지구 전체에게는 더 좋은 일일지 모른다하지만 그런 일은 원치 않으니 최선을 다해서 나의 전략대로 열심히 살아남으려고 노력한다.”

 

다 같이 잘 살아남자가능한 모두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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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유서 움직씨 퀴어 문학선 2
구묘진 지음, 방철환 옮김 / 움직씨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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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묘진 작가의 유작을 저자와의 첫 만남으로 혼자 읽는다. 6월 초부터 여러 번 제안이 나왔지만 책모임을 함께 하자는 이야기가 아직도 잘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여름은 그렇게 부유하고 어수선한 것이 어울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던 차별금지법 소식은 아무리 타당하고 자명해도 차라리 상조회사나 차리지 왜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는 이들의 시기상조란 말에 다시 밀려난다우스운 문명사회의 모습이다.

 

오늘이 어쩌다 28일인지 기억이 나지 않은 나는 일정을 매일 확인하는 계획적인 삶을 사는 듯해도 때론 엉망진창. 6월이 다 가는데 6월 업무는 여전히 무거워 보인다이번 달도 어설프게 마무리되겠지휴가는 생각도 말라는 듯 7월 20일까지의 일정이 이미 나왔고 8월에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도 있다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난 내 시도들이 실패하길 바라완전무결하지 않아야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자신의 부덕을 알게 된다성공이 나를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

 

내게는 확실히 심각한 결점이 있다. (...) 장장 26년 인생 동안 실패와 무능의 기억이 가득하고 몇 번인가는 영원히 탈출하고 싶었지하지만 실패가 무슨 상관인가스물 여성의 나 사진은 그저 하나의 커다란 ‘J'arrive pas’일 뿐이다.”

 

스물여섯에 자살한 저자가 자신의 작품 속 화자가 죽음을 선택했다고 기록한다문학에 자전적인 요소들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이 작품에서는 특히 저자와 화자를 분리하기가 어려워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마구 헷갈린 상태로 읽을 수밖에 없다이 유서가 누구의 유서인지둘이 동시에 쓴 것인지 의미 없는 추리도 하면서.

 

내 삶은 이제 변화와 단절과 새로운 시작을 예상하기 어려우니업무 일정표가 삶의 계획표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니손 댈 수 없는 내 현실은 두고 소설 속 화자의 계획을 찢어 없애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생긴다우아하고 능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설득할 수 없다면 꼰대 짓을 해서라도 말려 보고 싶다.

 

나는 모든 것을 말게 정화하는 진실한 사람을 믿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한다진실한 사랑은 어떤 특수한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다더 중요한 것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며자신 안에 그 능력을 살게 하는 인격이다.”

 

감정에 충실하고 끈기 있게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그가 완결이나 완성이라는 단어들을 이유로 삶 또한 끈기 있게 중단하지 않기를 너무나 바랐다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없었던 고통을 가늠할 수 없어 뭐라 해도 가깝게 들리지 않겠지만죽음은 끝이상의 무형적 의미를 담지 할 수는 있으나 개별적이고 고유한 존재로서의 너는 영원히 지워버리는 일이니까빛나고 강렬하고 아름답고 매혹적인 존재가 경험한 사랑이형체를 잡아 가는 철학이오래 피어날 삶이 다 사라지는 일이니까.

 

죽지 마죽음을 말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다하지만 항의하기 위해선 죽지 마그런 고독과 아픔은 나에게 고통을 주며 살고 싶지 않게 해살아 있는 사람들이 어찌 감당하겠니지금도 네 고통을 생각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결국 내가 죽는다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마지막 화해이며혐오와 뒤엉킨 내 깊은 사랑과의 마지막 화해인 것이다또한 솜의 삶과 화해하는 마지막 장식이다.”

 

진실하고 솔직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도록 배척하고 혐오하고 방해하고 폭력을 행사한 배후는 실체가 있는지조차 모호한 우리 사는 세상이다뭘 위해서 이토록 끈질기게 몹쓸 위력을 행사하는지 소통도 이해도 할 수가 없다.솔직한 존재로 사랑하는 일이 비극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은가모든 삶과 사랑을 평등하게 존중해야 한다고 다들 동의하지 않았나기억하는 사람은 곤란해하다 여기 저기 다치고 기억하지 않는지못하는지 사람들은 내내 당당하다

 

칼을 휘둘려야 한다면 하겠다란 모진 기분으로 시작하는 월요일,

그럴 일이 없어 다행인 우스워진 결심을 놓아두고 오는 퇴근길에

<몽마르트르 유서>를 읽었다.

 

파리도쿄타이베이를 오가는 편지들을 은밀히 부러워하며 따라다녔다.


영민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해서


첫 만남이라 추모도 응원도 힘차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을 잔뜩 안고 귀가했다.

 

몽마르트르 유서(蒙馬特遺書, Last Words from Montmar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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