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도둑 - 99%는 왜 1%에게 빼앗기고 빚을 지는가
그레이스 블레이클리 지음, 안세민 옮김 / 책세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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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선호하는 논조의 책이다이전보다는 좀 덜하긴 해도 나는 정직한 글이 좋다성실하고 충실한 학자의 태도는 좋지만 말도 안 되는 중립을 버젓하게 자신의 수식어로 사용하는 이들의 글은 읽지 않는다그런 발언은 정말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거나 기만적인 의도가 배후에 자리하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세계금융자본은 늘어 가는데 자본증가현상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현상이 정말 이상하다자본은 어떻게 자본 자체를 증식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을까바이러스도 아닌데 실질 금융과 경제에 사용되는 자본은 일부이다절반도 아니고 그 수치는 적에는 6%에서 시작한다때론 90%를 넘는 잉여자본은 온라인상에서 수치로만 존재하는데도 거래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신기하고 놀라운 인간의 발명품이 아닐 수 없다.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고찰은 다양하지만 나는 때로는 인간은 심심함을 견딜 수 없는 존재라 끊임없이 놀 거리를 찾는데 그 중 가장 강렬한 자극과 재미를 주는 것이 도박이라는 분석에 동의하고픈 마음이 거세진다전 세계적인 도박 게임 구조를 만들어 놀이를 하는 무용하고 해로운 것이 아니라면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어지는 헛짓거리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어쨌든 이상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은 아니다본문의 내용은 좀 더 고상하고 철저하고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로 이루어져 있다경제사처럼 친절하게 독자가 준비하고 접근할 수 있는 목차를 지나 본격적으로 금융자본주의에 대해 분석하고 오래된 반복되는 질문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제언으로 마무리한다

 

역사가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다면자본주의의 종말은 자신이 태어난 곳인 영국에서 시작될 것이다.”

 

영국자본주의에 집중된 내용이지만 자본주의에 국경이 무의미해진 것은 오래고 모두가 모두를 카피하는 시대이니 역사이건경제학이건사회학이건정당 정책이건 교차점과 유용성을 찾을 가능성은 높다본격적으로 부정적인 변화가 시작된 시기를 2008년 전 세계 금융위기로 보고 이후 부의 불평등이 어떻게 심화되어왔는지를 설명한다.

 

주주 가치라는 결함이 있는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면서 (...) 기업에 이윤을 내부적으로 분재하지도 투자를 위해 사용하지도 말고주주들에게 분배하도록 장려한다이것은 장기적으로 수익성을 포기하고 단기적으로는 주식 가격의 상승을 촉진하다. (...) 투자를 소홀히 하면서 눈앞의 일만 생각하는 태도의 만연과 자사주 매입의 유행경영진의 임금 급등자원을 부적당하게 할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은행 시스템을 적절히 규제하고 (...) 경제 전체에 걸쳐 소유권을 지속적으로 사회화하는 역할을 담당할 국민을 위한 자산관리자 people's asset manager’를 양성하는 것을 의미한다경제제도의 민주화는 금융이 특권을 가진 엘리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서 작동할 것을 보장해줄 것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내용은 사회민주주의의 철학에 기초한 내용들로 8가지로 정리되어 있고 제도개혁에 이르는 과정이 정밀하고 쉽지 않은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는 인류가 꺼져가는 시스템의 조각을 두고서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기를 바라는 사람과 새로운 것을 건설하기를 바라는 사람 사이의 대규모 전투 속에서 종말을 고할 것이다파시즘의 재탄생을 저지하려는 사람에게는 사회주의가 유일하게 나아갈 길이다.”

 

위계와 복잡성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인류가 그 어느 때보다도 기술 발전을 이루고 서로 연결되면서자본주의 모델은 생존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복잡한 사회에 소유권의 집중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체제의 엄격한 위계를 부여하는 것은 불안정과 불의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자본주의는 자신이 일으킨 복잡성을 통제할 수 없다.”

 

<피케티의 사회주의 시급하다>란 책을 이 책 다음에 읽을 예정이라 관련 내용을 거듭 읽고 이해하려 노력했다쉽지는 않다기반 지식이 부족한 탓이지만 현실 역시 어지간한 용기와 지성과 결단이 아니라면 손대기도 끔찍한 혼돈이기 때문일 것이다언제나 희망은 올바른 매듭의 끝을 잘 잡아 당겨서 전체를 풀어내는 일이다.

 

인류는 멸종과 유토피아의 갈림길에서 역사에 대한 지배권을 다시 가져와야 한다지난 수십 년 동안우리는 부자와 힘 있는 자들이 모든 일들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그들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게 내버려 두었다그러나 금융 위기는 정계와 재계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부를 조금이라도 포기할 바에야 차라리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을 보겠다는 이기적이고 착취적이며 무분별한 엘리트라는 사실을 여실이 보여주었다.”

 

금융화된 자본주의 경제는 개인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소수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그 생산 양식이 환경 시스템의 붕괴도 앞당기고 있다. ”

 

우리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세상을 만들어갈 기술과 자원을 갖고 있다이제는 정치가 그동안 못다 한 일을 해야 할 때이다.”

 

금융 개혁이든 정치 개혁이든 미래의 자원까지 끌어다 쓴 탐욕스러운 기성세대로 인해 현재도 미래도 희망도 가능성도 위태로워진 젊은 독자들이 읽고 토론하고 정책 제안도 활발히 하면 좋겠지만아프고 힘든 이들에게 미래를 고민하라는 말은 무참한 요구에 다름 아니다부디 소위 현재 어른들이 현재를 잘 책임져 주길 불신과 희망을 오가며 오늘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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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알지만 당신은 모르는 30가지 - 돈, 성공 닥치고 지식부터 쌓자
이리앨 지음 / Storehouse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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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큐레이션이 반갑고 활용을 하시나요보통 한 가지 주제나 소재를 놓고 관련 도서들을 모아 소개해주는 일입니다저는 일단 반갑게 살펴보긴 합니다어떨 땐 이미 읽은 도서들이 다수 포함되어 의미가 없기도 하고어떨 땐 감탄을 하며 마구 찜을 하기도 합니다.

 

자기계발서 장르에 포함된 책인데 닥치고 지식부터 쌓자!’라고 해서 살짝 놀란 가슴으로 읽어 봅니다정보지식이라면 별 볼일 없을 것이고 혼란한 산더미들 속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가이드하고 골라주기까지 한다면 살펴볼만 하겠지요. ‘지식 큐레이션이라 명명하고 시작하는 것을 보니 일단 굉장한 확신과 자신감이 있으리라 봅니다.

 

저자 소개를 읽어도 잘 모르는 분이라, <이상한리뷰의앨리스>라는 좋아하는 책의 오마주와 같은 유튜브채널이 소개되어 찾아가 보았습니다쾌락주의 마케팅행복팔이에 낚이지 않는 법대니엘 레비틴의 정리하는 뇌, Factfulness 리뷰미디어 잠식에 대한 경고여러 유명인들 인터뷰감시자본주의 이야기 등 스펙트럼이 좁지도 않은데 일관성도 보이는 내용들의 영상 자료들이 있습니다영상보다 활자가 우선하는 나는 책이 더 궁금합니다.

 

1장에서는 나의 약점이자 극복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데드라인이 없는 일에 대해 미룸을 극복하는 3단계를 열심히 읽었습니다원인을 파악해서 명확한 공략법을 설정한 후 단기적 유혹을 제압하라는 씩씩한 제안인데원인은 알지만 모두지 공략법을 모릅니다어쩌면 알고 싶지 않은 지도결과가 중요하고 성취지향적인 입시세대교육에 완전히 훈련된 존재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극복을 일단 좀 더 미루려 합니다.

 

2장에서는 새로 배운다기보다 공감하며 읽었습니다기본적인 것들의 위대함 - 기본적인 것들이 쉬운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처절하게 배우며 늙어 가는 중입니다어제 했던 것보다 조금 더 큰일을 오늘 하는 것 - 어려울 듯합니다아주 간혹 드물게 그런 일이 있긴 합니다만대부분은 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그래서 큰일을 못하나 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해야 하는 것은 (...) 할 일을 적고 하나씩 끝내버리는 것이다 - 확실하게 꿈을 이루는 결과로 직진하는데 필요한 매일 할 일들을 알아내는 것이 무척 어려울 듯합니다사소한 꿈들이 자주 이루어지기도 하는 삶이니 절반쯤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읽다 보니 다 읽기 전에 이 저자의 장점이 보입니다어느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무방하고가볍지 않은 책 이야기들이 많은데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특히 유튜브 시청자들이 좋아할 점이 아닌가 합니다만약 제가 하루 종일 산만한 수십 가지 집안일을 해치워야 한다면 영상들을 플레이하고 일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학습을 하려는 이들을 위해 저자가 1차 정리를 해준 느낌입니다좋다는 평은 많지만 수백 페이지나 되는 책들을 언제 한 권씩 다 읽을지 난감한 이들에게도 반가울 접근성입니다이런저런 이유로 지식 큐레이션이라 명했나 봅니다.

 

평균의 사람이 되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그러므로 가짜 위대함이나 지름길 같은 것들은 불필요하다. (...) 자신의 단점과 마주하고 지루한 일상을 견딜 준비를 해라.”

 

제가 재밌어 하는 뇌과학 이야기도 있어 반갑습니다사진을 보는 것이 글을 읽는 것보다 더 수월한 이유는 뇌에서는 글자 하나하나를 사진처럼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층위로 각각 발달된 뇌가 있지 않을까 하여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사진을 보는 것이 글을 읽는 것보다 늘 더 수월한가요?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방해를 받아서가 아니라 방해받는 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딱히 반박을 못하겠는 것이 카페에서 일도 잘 되고 글도 잘 읽힙니다저는 제 뇌가 책임질 일 없고 서비스를 누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과하지 않은 방해도 즐기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자주 상기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 '삶을 끌어내리는 사람들을 멀리 하라는 것!' 이전에는 에너지 소모가 심하고 지치는 게 싫어 멀리 하고 싶었는데요즘엔 그에 더해 가스라이팅이나 자기애적 스토킹과 유사한 경우들도 있다 하니 잘 알아보고 얼른 피하고 싶은 심정이 더 강해졌습니다.

 

친밀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폭력이기 때문에 의외로 피해자가 빨리 잘 알아차리지도 못한다고 하네요우리 모두 무엇이든 잘못되었다오싹하다불쾌하다 싶으면 얼른 잘 피하도록 하여요.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내용은 글쓰기가 인간의 기본 욕구라고 하는 것입니다네이버페이를 내걸고 한 일기쓰기였지만 설마 그것만이 동력이었을까 싶게 이웃분들의 글이 매일 더 반짝반짝 깊고 넓게 기록되는 것이 행복했습니다계속 쓰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서 글이 써지지 않고 있다면 몰입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이것저것 조금씩 적당히 하는 삶에 몰입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일상은 이것저것 조금씩 다 해야 겨우 유지되니까요부디 원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루 중 얼마간의 자신만의 시간이 잘 확보되길 힘껏 바랍니다. ‘닥치고 공부하라는 박력 있는 책의 내용은 친절합니다. 30가지 다 기억은 못하겠지만 몇몇 내용에 쿡쿡 찔리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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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의 그녀
허여경 지음 / 상상마당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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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가정과 청소년 환경온라인세계의 인간관계인간의 실체와 심리탐구독특한 무병중년의 고단한 삶다단계에 휘둘리는 시간청춘들의 사랑과 실패결혼과 현실까지 녹록하지 않은 주제의 단편집이 반가웠다비록 오후 4시는 아니지만 어두워가는 시간 무렵에 단편을 하나씩 읽는 재미를 이전에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자가 이 시간을 통해 전하려는 이야기와 분위기가 궁금해서 단편들 중에 [오후 4시의 그녀]를 가장 먼저 읽고 말았다나의 오후 4시는 하던 일을 계속하는 어떤 이름으로도 구별하지 않는 시간이다.



4시가 매일 특별한 시간으로 불렸던 기억은 오래 전 영국의 티타임이다슬슬 허기가 지는 시간이라 저녁 식사 시간이 멀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잼과 크림을 듬뿍 얹어 스콘을 먹었다처음에 경악스러웠는데 인간의 그 무엇도 아닌 습관에 적응하는 생물이라 곧 오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먹어 치우게 되었다.

 

저자 역시 오후 4시란, ‘하루 중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늦고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어중간한 시간인생을 조금은 알고 조금은 모르는 그런 애매한 시간이라 한다애매한 것은 어렵고 힘이 든다그 시간대를 어떻게 견디고 혹은 넘어 가는지 각 단편의 인물들이 더 궁금해졌다.

 

아무 준비 없이 임신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어요내 몸의 변화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 주위의 따가운 시선보다 처음 겪는 내 몸의 변화에 매일 죽음과 같은 공포가 엄습하는 나날이었어요. (...) 뉴스를 보면 자기 새끼 죽이는 인간도 있던데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아기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당당해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하지만 무슨 돈으로 어떻게 아기까지 키우면서 살 것인지가 가장 막막했어요.”

 

가장 마음을 많이 쓰며 읽은 단편은 [진주의 사랑]이다대단하진 않지만 후원하는 카테고리에 한부모가정이 있다부모라면 아버지와 아이일 수도 있으나 오랜 후원의 경험으로 보아 한부모의 부모는 어머니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한국 여성들만 단성 생식이 가능하거나 한국에서만 예수가 거듭 탄생할 리도 없는데 어찌 된 일인지 혼인 관계 밖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아이들에겐 어머니만 존재한다.

 

번듯하게(?) 결혼 제도 속에 안착하고 정규직 벌이가 있는 경우에도 쉬울 리 없는 것이 모두의 일상인데그런 안전망조차 없이 여성과 아이가 살아가는 일이 한국사회에서 어떨지 다 짐작조차 할 수 없다대개는 의지처도 도움 받을 사람도 없는 경우가 많고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크다간혹 치료가 어려운 병을 앓고 있기도 하고 힘겨운 일상을 유지하다 새로운 병에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가 어떻게 조심스럽고 섬세하고 깊고 넓게 질곡한 이들의 삶을 보고 전해줄까 염려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자칫하면 뭐 하나 도움 되는 일 없이 상처만 들쑤시게 되고 이미 만연한 오해와 편견을 강화시키게 되니까간혹 나는 사람들이 이해한다는 말없이 그저 경제적 후원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이해한다는 말은 또 무엇이며 그런 말은 위로가 될까도무지 모를 일이다.

 

절반 정도는 짐작한 대로 현실의 일화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형편들이 등장하고 일차적 인간관계 맺기 훈련이 부족해 자존감이 낮은 상태의 여성을 자라 무책임하고 아무 의미 없는 시시한 남성에게 이용당하고 부정당하는 그런 이야기 구조가 있다짐작대로라 실망했다는 것이 아니다피할 수 없는 과정이고 반복되는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아쉬운 것은 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집안 일이라 명명된 분야들을 사회적인 일로 많이 이동시켰다무법지대였던 가정 내 폭력은 이제 적어도 처벌한 법은 마련해 두고 있다사람들은 더 이상 남의 집 일에 간섭했다고 못 마땅해 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과 관련 기관의 대응 실패와 부족함을 지적한다반가운 변화이고 고군분투한 많은 이들의 노고에 숙연해진다.

 

시종일관 어둡고 슬픈 이야기 진행이 아니라 설레고 재미난 내용이라 읽을수록 반갑고 기뻤다여전히 한탕주의가 인생 전반을 휘두르는 구조의 한국 사회이지만좀 더 사람 자체를 더 잘 보게 되면 그럴 수 있으면 한다십대나 이십대에 부모가 된 이들자식을 낳아 기르기로 한 이들이라고 남은 평생을 한 가지 호칭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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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1 - 시원한 한 잔의 기쁨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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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이후에 가장 호쾌한 제목이다표지부터 술과 안주가 차지하고 있다게다가 일본 작가의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이다



제목 탓(?)에 작가가 궁금해서 사진과 소개부터 정성스레 읽는다. ‘일상적 소재를 섬세하고도 속도감 있게 그려냄’ 무척 좋아하는 작품 취향이다재밌고 맛있을 듯! 드물게 화면으로 읽는 책인데 퇴근 길이 재밌어 좋다.

 

무사시야마 동네에 대한 쇼코의 평가에 벌써 재밌다. ‘맛있는 음식과 술이 있는 동네’, 혹시 <와카코와 술>처럼 극히 차분하면서 재밌고 맛있게 이야기가 전개되려나 허기가 돌면서 기대가 높아진다.

 

이누모리 쇼코에게는 점심 먹을 식당을 고르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그곳의 음식이 술과 궁합이 맞느냐 안 맞느냐밤에 일하는 그녀에게 점심은 하루의 마지막 식사다.”

 

하루 두끼의 식사 중에 제대로 된 첫 끼이자 마지막 식사선택은 고기를 특별히 강조한 식당이다식사 메뉴는 나쁘지 않다고 하면서도 식당 앞에서 휴대폰을 꺼내 검색을 하는 모습이 웃긴다음식맛 평가를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라 더없이 중요한 한 잔점심에도 술을 판매하는 식당인지 알아보려는 의도가 더 크다.

 

메뉴판에 술이 나열된 것을 보고 무의식중에 주먹을 가볍게 쥐는 쇼코나도 이렇게까지 진심인 적이 있었나 살짝 반성(?)해 본다일본식 고구마소주를 온더록스로 마실 수도 있군.

 

술을 드실 건가요?”라고 되묻지 않는 것도 낮술을 마실 식당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 어른에게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

 

칭찬해주고 싶다여기에 오기로 결정한 십 분 전의 나 자신을 힘껏 안아주고 싶어.’

 

짐작한대로 맛을 묘사하듯 음미하는 문장들은 미식의 영역에 가깝다즉 쇼코는 부어라 마셔라 주정뱅이가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맛있는 술과 잘 조합해 먹으며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말한 대로 한 잔의 행복.

 

밤에 일한다고 해서 무슨 일일까 했는데밤에 일하러 나가 집을 비우는 부모 엄마 를 대신해 아이를 밤새 지켜봐주는 일이었다마음이 찌잉 울리는 담담한 문장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쇼코의 삶을 왈칵 쏟아내듯 들려주며 마무리된다단 두 문장으로 완벽하게 이해시키고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두근거리게 하는 단편의 묘미다


순식간에 읽을 수 있어 좋고 아쉬운 일독이나마 마치고 나니 김혼비 작가의 추천사가 완전히 공감된다


(...) 고단한 당신이 나 자신을 힘껏 안아주고 싶은” 점심을 꼭 만나기를



오늘 점심 뭐 먹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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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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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출간 당시 읽었으나 땅에서 아주 먼 도시 한가운데 삶을 살던 때라 일상과의 접점이 어려웠다아주 오래 전이라 할 수도 없는데 지금 돌이켜보는 그 시절이 아주 낯선 시절처럼 느껴진다그때와 판이하게 달라진 사고와 정서의 거리가 합산된 모양이다저자의 사적인 이야기들과 이사벨라 그레이서의 일러스트들이 이제야 마음 깊이 다가온다.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그것을 보호할 의무아니 명령을 내린다. (...) 땅을 보호하는 것은 인류의 절박한 과제이자 의무이다그것이 아름다운 것뛰어난 것이니 말이다.”

 

적요한 환경의 날을 맞아 원망은 접고 자신을 살펴보았다늘 하던 것 말고 새롭게 하는 일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 괴로웠다믿음을 가져본 적 없는 유형의 인간이라 아름다운 모든 것땅을 보호하는 것을 과제이자 의무라 느끼진 못한다하지만 그저 약삭빠른 계산만으로도 인간이 살아가기 적합한 환경을 망치는 일을 중단하자는 의견은 더 이상은 간명해질 수도 없는 일이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다그런데 왜……정신과 존재의 의지처가 있어 흔들리지 않는 종교를 가진신심이 돈독한 분들이 자주 부럽다.

 

그 고통이 내게오늘날 잘 조율된 디지털 세계에서 점점 더 잃어가고 있는 현실감몸의 느낌을 되돌려준다정원에는 감각성과 물질성이 넉넉하다.”

 

바삭한 땅이 오는 비에 젖는 순간의 향기를 좋아한다오래 물을 못 만난 존재처럼 빗물이 반갑다모든 풍경에 고루 내리는 비를 보자면 소독한 물만을 틀어 마시고 씻고 사는 처지가 서러워지기도 한다따돌림을 당한 기분이 드는데 생각해보면 스스로 택한 고립이라 뭐라 하소연할 데도 없다정원의 모든 것들은 빛나고 나는 시선만을 함께 한다참 외로운 참여의 시간이다.

 

오늘날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모조리 존재하기를 멈춘다하지만 존재는 이야기지 헤아리기가 아니다헤아리기에는 역사이자 기억인 언어가 없다.”

 

측량할 수 없는 많은 정성적’ 존재들을 엉뚱한 기준들을 만들어 측량을 함으로써 인간이 만든 표준들은 그 대상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않고 오해와 피해를 부른다잠시 그 대상이 인간이 아니었을 뿐 곧 인간은 자신들에게도 측량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인간은 각종 점수로 분류되었고 각자의 고유하고 본원적인 이야기들을 잃어버렸다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드물다.

 

오늘날 우리는 오직 에고[나 자신]에만 열중해 있다누구나 큰 소리로 누군가가 되고자 하고, (...) 다른 사람과는 달라지고자 한다그런 점에서 그들은 모두 같다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그립다.”

 

이름이란 애초엔 그런 용도가 아니었을 것이다상대를 더 잘 기억하고자 애써 마련한 방법이었을 지도 모른다하지만 생겨난 이름들은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괴랄한 욕망을 표현하기 시작했다잘 찾아 읽지도 않는 뉴스보도들이지만 매일 누군가의 이름들을 들먹이며 어떻게든 사람들을 갈라치기하려는 집요함에 치가 떨린다인간이 모른다고 인간의 먹이와 즐거움이 되지 않는다고 잡초weed’라고 뭉뚱그려진 아름다운 각각의 생명체들처럼모두가 한데 어울려 자연스럽고 무성하게 자라난 그런 정원이 좋다.

 

장미는 뒤로 물러선 자세다장미의 화려함의 비밀이 거기 있다장미는 장미한다장미한다rosen가 장미를 위한 동사다.”

 

장미는 언제나 장미했을 뿐. 지루한 취향이라 많은 놀림을 오래 받았어도 여전히 장미를 황홀하게 바라본다뿌리가 깊은 나무와 덩굴에서 피어올라 장미한 장미들은 여름밤의 한가운데서도 지극히 홀리는 향을 전한다.

 

여름.

 

그리고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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