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
정재영 지음 / Lik-it(라이킷)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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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직업이 바뀌다.” 이런 소재 궁금하시지요바뀐 직업은 공구상입니다어떤 직업인지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고 저처럼 확실히 설명할 만큼 모르는 분도 계시겠지요.

 

이렇게 일하시면서 나를 지금까지 키우셨던 거구나내가 대학 생활의 낭만에 젖어 매일을 무념무상으로 보낼 때아버지는 현실과 부딪혀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살아오셨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공구를 사러 가 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만나본 적이 없을 지도 모릅니다차량 안에 공구박스 툴박스가 더 익숙 를 싣고 다니며 간단한 정비를 하고 풀세트를 뿌듯하게 여기는 엔지니어 남자친구가 유일한 경험이랄까요.



신기하게도 누가 마련해 둔 것인지 집에 툴박스라고 하는 공구상자 하나씩 갖고 계신 분들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실제로 잘 활용하시나요저자는 공구를 잘 알고 활용하는 삶을 공구로운 생활이라 부릅니다재미있습니다정의한 내용을 직접 보자면,

 

간단해요공구의 쓰임을 잘 알고 각자의 상황에 알맞게 쓰면 그게 공구로운 생활이라고 생각해요필요한 공구를 딱딱 찾아 쓰는 즐거운 느낌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제가 하는 일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공구에 대해 잘 알고 쓸 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저는 이걸 가리켜 기술적 사회라고 말하곤 하지요.”

 

공구는 솔직해요필요한 기능들이 아주 직접적으로노골적으로 들어가 있어요공구를 보면 왜 이런 형태를 지녔을까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할까하는 점들이 있는데 다 이유가 있더라구요구조상 부분 하나하나를 절대 허투루 쓰지 않아요소비자가 불편한 점이 있다면 바로 보완해서 개선된 모델을 출시하죠.”

 

불가피한 상황에서 도망치거나 거부하지 않고 가업을 이어 받은 것도 다들 이래야 한다!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이후에 아버지의 노고와 삶을 깊이 이해하는 마음도 뭉클합니다이런 따뜻한 사람이 권해주는 공구를 막 사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아주 독특하게 저자의 삶에 집중하고 공구상이라는 직업 세계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에세이 - 1부 면서또한 공구에 대해 배우고 참고삼아 찾아보며 활용할 수 있는 매뉴얼 - 2부 이기도 합니다저자는 실용적인 자신의 직업에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이렇게 정리해 놓았습니다그럼 어떤 공구들을 필수적으로 구비해야 하는지 전문가인 저자에게 추천 받아 봅니다

 

1. 다목적 가위급할 때 바로바로 쓸 수 있다.

2. 전동 드라이버 세트우리의 연약한 손목을 지켜준다.

3. WD-40: 방청윤활제라고 해서 금속의 녹을 제거하는 용도의 화학제에요집 안에서 다양한 물질을 제거하는데 쓰이는 걸로도 유명한 제품이에요.

 

이 중 방청 윤활제는 유명한데 또 저만 몰랐던 것으로처음 듣습니다.



2천여 가지의 사용법! 엄청난 능력!

꼭 사고 싶어지는 마법의 공구입니다.


공구상에게도 믹스커피 타임은 고객을 한 자리에 머무르게 하는 아주 중요한 서비스 중 하나이다창고에 재고를 가지러 가거나 주문을 기다릴 때그 막간에 믹스커피를 하나 먹어줘야 한다제 손으로 직접 타서티스푼도 없어서 종이 스틱을 휘휘 저으며 한마디 던져본다. “요새 생산이나 매출은 어떠세요?””

 

종이스틱으로 젓지 않으심 더 좋겠습니다버스기사분들 화장실 갈 시간도 식사 시간도 믹스커피 한 잔 할 시간도 없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는데 지금은 휴식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확보되었는지 잊고 살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늘 그렇듯 소개하지 못한 더 재밌는 일상과 마음을 쿵쿵 울리는 삶의 통찰들이 담겨 있습니다책을 다 읽고 나자 공구상 매출은 어떤지 걱정이 됩니다실물경제를 담당하는 묵직한 산업이니 부디 크게 휘둘리지 않고 순항 중이시면 좋겠습니다.

 

매출 걱정에 한 마디 더 보태면이 책에는 공구상의 제품별 브랜드 특성과 실재 구매안전한 사용법들이 있으니 공구로운 생활자로 살고 싶으신 분들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특히 2부에서는 흥미로운 다양한 제품들이 소개됩니다부록의 취급주의와 ‘Q&A 09’도 아주 유용합니다캠핑 관련 필수 공구도 있습니다안전하게 잘 사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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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우리시대 리커버
조한욱 지음 / 책세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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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라면 짐작이 가기도 하지만신문화사는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익숙한 역사관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아주 오래전 분류법이고 그나마 현재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알아본 바가 없다.

 

조한욱 교수는 강연과 저술로 무척 부지런히 활동하시는 분이라는 정평이다심지어 독서카페를 운영(?)하시는데 질문마다 백과사전과 같은 지식 가득 답변을 달아 주신다니 열정이 대단하신 분일 터.

 

대학생들을 위한 독서교양서로서 부담 없는 문고판으로 출간되었다 책세상에서 개정판으로 재출간된 아마도 내가 읽는 가장 가볍고 적은 분량의 역사서(176)를 뒤늦게 읽어 보았다.

 

새삼스럽지만 역사학이란 무엇일까역사로 기록된 것들은 모두 사실일가문화를 통해 바라보는 역사의 모습은 얼마나 독창적인 새로운 내용일까문화사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신문화사란 무엇일까?

 

이런 몇 가지 질문들을 갖고 답변을 찾아가는 독서를 했다답을 다 찾을 수 있어도 좋고 못 찾아도 괜찮다는 느긋한 마음으로어차피 단 하나의 정답이란 없으니 초조해야 필요는 없다그런 점에서 인문학의 품은 넓고 편안하다.

 

단 문화든 역사든 읽고 배우는 목적에 대해서는 잠시 정리해본다거창한 건 아니고 역시 대부분의 학습은 인간을 자신을 이해하고 성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그런 목표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 거대 담론인지 기존의 역사서에서 무시된 다른 목소리들인지는 자신이 선택해 접근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조한욱 교수는 해당 시대를 해석하는 방법으로 다수의 작은 목소리들을 택했다고 본다안타까운 점은 사료가 부족하거나 전무하다는 점그래서 있는 사료들을 모두 귀중하게 해석하고 새로 발견하고 마치 띄엄띄엄 놓인 점들과 같은 지식정보를 보고 한 시대의 흐름과 맥락을 텍스트로 만드는 역사가들의 작업은 엄청난 노고로 느껴진다멋진 발굴과도 같은 작업이다.

 

한 덩어리로 존재하는 역사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쪼개어 읽는 것도 좋은 학습법이다더 이상 지루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오래 전 누군가의 일상을 보고 듣고 그 장면들에서 시대의 모습을 다시 찾는 일은, ‘공식이란 인증을 받은 역사화석들보다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른다지루하지 않은 이야기가 좋은 것은 질문이 생기고 답이 궁금해진다는 것이다.

 

우리 대다수는 실지로 역사학에 대해 일종의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 역사학은 국가나 민족혁명이나 전쟁노동과 계급투쟁 등과 같은 거대하고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맥락을 잡아주고 미래를 위한 전망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사’ 또는 신문화사유사성을 걸러본 결과 공통분모로 떠오른 것을 가리키는 용어이다이것은 단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생각했는가가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역사학을 통해 인간에 대한 어떤 성찰에도 이르지 못한다면단지 학문을 위한 학문에 그쳐버린다면그 학문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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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글쓰기 - 혐오와 소외의 시대에 자신의 언어를 찾는 일에 관하여
이고은 지음 / 생각의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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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을 기본값으로 삼아온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모든 여성은 언제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숙명에 놓인다글쓰기가 나로부터 출발해 주변을 관찰하고공감하고흡수하고대화해가는 소통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여성에게 적합하다여성의 성찰은 실존적이지만 열려 있고 또 자유롭다땅에 발을 디딘 채로 저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이는 생물학적 성별을 떠나사실 누구에게나 내재된 소수자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자신의 주변성과 비주류성을 발견하는 일그로 인해 눈길이 가닿게 되는 우리의 무수히 다른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내재된 소수자성이점이 좀 더 잘 이해되고 공감되면 논의도 감성도 사회도 진화하지 않을까 기대한다외부에 소수자가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는 정체성으로서 살펴보는 일고유한 존재들은 모두 단 하나소수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자신의 언어는 사회 속에서 나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나에 대해 쓰다 보면 스스로의 처지가 뚜렷해지고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여성은 삶에서 경험한 차별과 소외배제를 통해 사회의 부당한 질서를 인지하고 꿈꾸던 이상과의 격차를 느끼며 인지 부조화를 겪는다이를 견딜 수 없어 사회 변화를 추동해야 하는 당위를 얻고자신을 설득해서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여성의 글쓰기란 새로운 자신과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한 주문 의식과도 같다.”

 

결핍이 동력이 되어 충족을 마련하는 글쓰기말하고 읽고 쓰고 변화하고더디지만 확실히읽고 싶은 책읽어야 할 책들이 매주 마구 쏟아진다신간 소식들 읽어 보다 문득 바라 본 책장에 언제 도착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신간이역시 책은 읽은 것이라기 보단 일단 사는 것...인가새로운 세계를 들려주는 책이 좋다그런 책들이 없었으면 진작 호흡곤란이 왔을 터.

 

과연 나의 삶만을 개선해서 될 일인가사회라는 거대한 그래프 속에서 나의 좌표를 좀 더 나은 지점으로 옮겨놓는다고 해서 나의 삶은 완전해질 수 있을까. (...) 개인의 노력이나 혹은 정신승리를 통해 애써 고통의 좌표에서 탈출했다고 느끼더라도 그것이 과연 진정한 해방일까내가 벗어난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그대로 서서 나와 똑같은 고통을 반복한다면 우리의 행복은 온전하지도지속가능하지도 않은 것이 아닌가.”

 

옆집이 굶으면 마음이 불편해야 하는 것이 인간다움이라 배웠는데 나만 배부르면 된다고 외치는 목소리들이 더 커서 놀랐다중요한 공감의 문제이다자신이 빠져 나온 지옥은 자신이 가장 잘 알 터그 자리에 들어 선 다른 이의 안위를 염려하지 못한다면 심각하게 망가진 인간일 밖에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은 참 저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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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G 2호 적의 적은 내 친구인가? : 네 편 혹은 내 편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 김영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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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개인주의를 참 무시하는 사회이고,

언론과 사회에서는 '갈라치기'가 더 기승을 부리는 분위기는 매일 더해간다.

누군가의 오랜 생존전략이기도 하고 선거가 가까워지면 극심해질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네 편 혹은 내 편’ 이렇게 반가운 주제를 딱!

표지에 드러내 주고 다뤄주는 매거진이 반갑고 귀하다.

부디 승승장구하길보고 싶지 않은 현상이든 장면이든의 반복을 끊는데

귀중한 역할을 해주길…… 기도하듯 바라게 된다.


 

주말에 다소 느긋하게 아름답고 흥미진진 매거진 즐기며 읽고 싶은데

긴장이 잘 풀리지 않는 오후.

실망과 좌절을 더 많이 안겨 준 G7인데 또 기대와 희망을 얹어보고 싶어 그런가보다.


언제나 타인들을 이용해서 제 이익을 챙기려는 무리들은 있을 것이다.

도무지 다종다양한 사기꾼들이 박멸되지 않는 것처럼.

그러니 휘둘리지도 이용당하지도 않는 일은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면 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듯도 한데

우리는 동시에 또 여러 가해자의 입장에 설 때도 있다.

특히나 질병을 이유로 차별과 배제와 혐오가 빈번해지는데

이미 타인이 부담스러운 나는 스스로의 심정적 대응이 걱정이 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홀홀 넘겨 읽을 수 있는 매거진은 아니다.

나로서 배울 점들이 그득그득하다.

부디 편 가르기와 경계 짓기의 문제에 대해 반감만이 아니라

잘 배워서 늘 가르지 않는 편에 서고 싶다


 

......................................

 

우리의 삶과 관계는 흑과 백도 아니고 성곽 안도 아닌이어진 길 위에 있다완전한 친구도 완전한 적도 없이나 스스로가 내게 친구가 되고 때로는 적이 되는 그 묘한 길을재미있다는 듯이 걸어가면 될 일이다.”

 

“‘친구는 있는데 적은 없다.’ 누군가 이런 삶을 살았다면 참 괜찮은 삶을 살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성인이라면 모를까 범인은 이런 삶을 살기 어렵다. (...) 우리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방언의 구석구석을 둘러봐도 친구는 있는데 적은 없다그렇다면 우리말에는 온통 친구 같은 존재만 있는 것일까? (...) ‘친구’ 대신 쓸 이나 동무같은 고유어는 있지만 을 대신할 고유어는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뇌과학적으로 친구와 상상의 친구는 동시에 적과 상상의 적 역시 탄생시킨다. 단순히 비슷한 환경, 피부색, 언어, 이념을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응원하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듯, 다른 이념, 언어, 피부색, 환경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나 자신에게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은 이들을 우리는 언제든지 사냥하고, 고문하고, 참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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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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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으로 출간될 때 담당 편집자의 선택과 노고로 훨씬(?) 멋진 책이 되었다는 풍문과 찬사가 가득한 책이다엄청 오래 미뤄둔 책 같은데 작년 9월이었구나제목의 단어들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찾아보며 천천히 읽어 본다. 오늘처럼 더 더 은둔하고 싶은 기분일 때 함께 하니 반가운 책이다. 천진난만 명랑발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세월에 길어서 이 매력적인 이율배반이 더 궁금하다.

 

*


고립은 고입 되고 싶은 충동은 두려움과 자기 보호에 관련된 일이다고립은 고치를 만드는 것매혹적으로 편한 나머지 벗어나기가 어려워지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네 삶에 다른 사람들은 별로 필요 없어너도 알잖아넌 혼자로도 완벽하게 괜찮아이것은 자족감으로 가장한 두려움의 목소리독립성으로 가장한 고립의 충동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저자가 주로 삼십 대에 쓴 글들이라 한다. 젊다고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혼자라는 점을 감상적으로 찬양하지도 않고 담담한 '그냥 그랬다' 의 문체로 사실로 적시하고 적었단 느낌이다. 특히 [홀로챕터의 글 세 편이 내밀하고 솔직하고 담담해서 나도 어느새 누군가와 전면적으로 만나고 있는 듯 진심이 된 마음으로 읽는다이것저것 캐보고 싶지도 이런저런 증상들을 따져보고 싶지도 않다


*

 

나는 내 난장판을 다스리는 자이고, (...) 주요한 일이건 엉뚱한 일이건 내 생활의 모든 세부 사항을 손수 쓰는 작아다. (...) 홀로 있는 상태는 개성의 온상이고나는 홀로 있는 상태가 그렇게 변덕을 맘껏 발산하도록 해준다는 점이 좋다.”

 

타인과의 접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지 않으며지극히 간단한 사회적 행동마저도 누구를 만나서 커피를 마신다거나외식을 한다거나 엄청나고 무섭고 피곤한 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프랑스까지 헤엄쳐서 가려고 시도라는 것 못지않게 버거운 일로 느껴진다고독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두고 즐길 때 가장 흡족하고 가장 유익하다적절한 균형을 지키지 못하면삶이 약간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

 

저자는 혼자 있는 것을 초조하지 않는다무척 편하게 여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를 만끽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이후 혼자와 함께 사이의 미묘한 조화를 찾는 이야기들은 멋지고 감동적이다그래서 명랑한 은둔자이고기쁜 목소리로 여기가 내 집이에요!”라고 말할 것만 같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줍은 은둔자였던 저자가 명랑한 은둔자가 되기까지는 쉽지 않은 시간들이 있었다그렇지 않을 리가 없을 터.


*

 

이 페이지를 읽고 또 읽었다. 원인과 이유는 다를지라도 나는 5년 정도 일종의 섭식장애를 반복했던 적이 있었다마지막 증상이 9년 전이었으니 비교적 금단 증상이 사라지고 해독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정말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냅은 화가 났고 한국의 경우에는 보통 다이어트나 자신의 몸에 대한 불만에서 발생하는 일이 잦다고 하는데내 경우는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대다가 어느 날 엄청난 양의 케이크나 초콜릿을 섭취하고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는 순간적으로 판단 마비가 온 듯 저지르는 일이었다.

 

그런 일을 5년 간 세 번을 반복했다육체적 고통도 있지만 해독이 시작되고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자각이 되면 끝날 때까지 겪는 정신적 고통은 더 대단했다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지독한 감정이 온전한 내적 현실로 구체성을 띠고 탈진이 될 때까지 밀려들었다.

 

섭식 장애에는 칼로 자르듯 명확한 해독이나 금단 증상 기간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우리는 먹는 것에 대해서 매일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 섭식장애에서 회복한다는 것은 자신이 선택했던 중독 대상을 완전히 저버리는 게 아니라 그것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고이것은 매일 간헐적으로 치러야 하는 복잡한 전쟁일 수 있다.”

 

각자 선택했던 중독의 대상이 없는 채로 고통스러운 순간을 반복해서 겪다 보면결국에는 감정의 근육이 길러진다우리가 술을 마셔서 혹은 굶어서먹어서도박을 해서살을 찌워서 감정을 몰아낼 때우리는 그 감정을 이해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셈이다자신의 두려움과 자기 의심과 분노를 의심해볼 기회를마음속에 묻혀 있는 감정의 지뢰들과 제대로 한번 싸워볼 기회를중독은 우리를 보호해줄지 몰라도 성장을 저지한다.”

 

저자 냅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지들만이 아니라 그것들을 가둬두는 기질들의 존재를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골똘하게 깊이 찬찬히 그것들을 바라보고 기록하였다특별하고 놀라운 점은 감정적 접근이 느껴지지 않고 단 한 문장을 제외하면 마치 수행을 한 사람처럼 명징하게 보고 쓰고 견디고 살아왔다는 점이다.



이전까지는 늘 부모가 당신을 걱정했고당신은 그 걱정을 똑같이 되돌려 주는데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들은 당신이 아니라 어른이 아닌가그 역할이 뒤바뀐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일 수 있고그럴 가망을 떠올리기만 해도 이전까지 믿어온 모든 가정이 무너진다.” 

 

부모의 죽음을 두려워한 적은 더 어릴 적에도 있었지만 현실로 생각해보는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긴 투병의 시기를 지나 어느새 구체적인 현실로 받아 들여졌다영원한 이별……그 순간이 상상 속에서도 견딜 수 없이 허망하고 슬프다. 주말의 또 다른 의미는 부모님을 뵈러 가는 날. 매일 조금씩 기력이 약해지시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니. 본인들 마음을 다 짚어볼 순 없지만 지켜보는 자식들은 무력하다. 

 

모든 가정의 모습이 가족의 관계가 다르듯 저자의 가족의 모습과 관계 역시 통상적인 내용은 없다심지어 쌍둥이 형제에 대한 사회의 굳은 믿음 뭔가 특별히 연결되는 관계초능력이나 근원적으로 분리 불가능한 애착 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이다그래서 읽는 나는 조금 더 외로워진다어린 시절 서로에 대한 애착에 강하고 끈끈하고 마구 날 것으로 감정을 표현하던 친구네 가족 풍경을 은밀히 부러워한 것처럼.


*


저자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문학인 에세이를 읽으면 

친구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서 

만나지도 못한 존재라 해도 

부재와 영면으로 말미암아 심신의 어딘가를 거머쥐는 

몇 줌의 통증이 느껴진다.


냅은 2002년 4월에 폐암 진단을 받았고, 5월에 결혼했고, 6월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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