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해변에서 혼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33
김현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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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좋다동경한다공들여 잘 벼린 것들이 가지는 분위기가 아름답다그래서 읽지만 매번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가끔은 풀 수 없는 수학공식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읽지 못하는 시잠시도 내 것이 되어 주지 않는 세계는 쓸쓸하다.

 

시를 읽기 전 여타의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다새로 만난 시가 주는 느낌이 깨어질까봐어차피 오롯이 혼자인 유일한 경험원치 않는 색들로 채색될까 경계하는 것이다그러다 아무리 애써 봐도 읽혀 주지 않는 시들을 결국 놓아버린 기억이 오래지 않다.

 

그렇기도 하고고집스런 결심이 약해지기도 하고뭐든 방법이 있다면 결국엔 시를 잘 읽고 이해하는 쪽을 택하리란 이유를 들어 시인의 에세이를 먼저 읽어 보았다작가를 모르고서 작품을 잘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 리 없다 하나 에세이 한 편 읽는 것이 얼마나 이해를 높일까도 확신은 없지만 이번에 그렇게 해 보았다.

 

선입견에 있어서 나는 참 구태의연한가보다시인의 에세이가 뜻밖에 뜨겁고 선명하고 강렬해서 그 어조에 놀라고 어색했다시인은 잠시 화가 난 게 아니라 분노하고 있다그래서 슬프고 그런데 모두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 ♡시집을 넘기는 내 손 끝에서 따끔거리는 불꽃이 빠삭거린다.

 

그는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며 누구와도 있지 않고 그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해변에서는 누구나 남길 것인가 지울 것인가선택의 기로에 선다해변에서 그런 갈림길에 서보지 않은 사람을 나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가지 않은 길에 관해 후회 없이 인간다운 척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나는 그가 사랑의 기로에 서 있길 바란다몰락은 대체로 위대한 창조로 이어진다.”

 

오래 만나지 못해 더 그리운 친구가 옮겨 살고 있는 제주를 찾아가 어디든 적요하고 아름다운 해변에 앉아 함께 읽으면 좋겠다그러지 못해 아쉽다대신이라기엔 무례할 지도 모르지만 본 적 없는 동물과 새와 식물과 꽃이 함께인 강주리님의 작품 표지를 한참 보았다.



하나도 반가운 뿔소라가 세 개나 있다제주 삼춘들이 바다에서 캐다 준 뿔소라를 꽝꽝 깨부수어 꼬득또득 씹어 먹으라던 다사로운 친구가 더 그리워지고그리움은 이기적이라 그 곁에 가서 앉고 싶어 잔병이 들거나 눈물이 날 것 같다 ― ♡.

 

첫사랑은 그 이후의 모든 사랑은 가사처럼 어쩌다 생각이 나는 게 문제이다아무 일 없이도’ ‘언젠가 조용해진 연인이 되어’ ‘홀로 걷게 되는’ 날이 오면 소리 없이 흔들리는 나뭇잎도 나의 불행만을 확인해준다이별의 시간마저 달리하는 이별을 하고 비로소 헤어질 준비가 된 나는 [뿔소라]를 선물로 내민다그때의 뿔소라가 매끈하고 빛난다면 수명이 다했거나 속이 텅 빈 상태일 것이다이끼가 끼여 두텁다면 아직 살아 온기가 남은 마음이 거기 있을 것이다 ― ♡.

 

뭐 잘 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 자랑은 아닐진대살리는 것보단 죽이는 게 쉬우니까/사시사철 뜨거운 사람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 [자국]’ ‘뿔소라의 내장에는 독이 있다는 핑계로 빈 공간으로 날뛰던 사랑도 부재를 견디지 못하던 슬픔도 모두 말 못 되는 지껄임이 되어상대가 홀연히 경쾌하게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보고서야 남은 할 말에 혼비백산하게 되어잘 사시는지잘 살고 있는지보이시나요저의 마음이왜 이런 맘으로 살게 되었는지보이시나요저의 마음이왜 이런 맘으로 살게 되었는지 ― ♡.’



네가 보여준 그 날의 바다 풍경이 오고서야 혼자서 해변을 걷노라니 온갖 상념이 반복적으로 밀려왔다 밀려가곤 했다의 구절을 이어 읽었다그 여름 해변에서 네가 내 손에 쥐여줬던 조개껍데기에 관해사랑할 때만 소중한 것에 대해.’ 인간은 사랑하기 때문에 발견한 사랑할 무언가를 사랑하는 이의 손에 자꾸만 놓아 준다오래 전 우리가 물고기였을 때 새였을 때 건네던 선물들을 기억하는 것처럼쥐여줬던 손과 손이 향연처럼 떠올라잠시 ― ♡.

 

(...)

어스름한 저녁에 책상 앞에 앉아 뿔소라에 귀를 대보면

언제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네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묻는다

 

뭐 해 불도 안 켜고

(...)

 

큰 꿈을 꾸거나 큰 행복을 바라는 방법을 몰라서 평생 작은 것들만 욕심내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나도 그렇다소확행을 바라는 큰 무리에는 끼지 못해 혼자 행복만을 알아보곤 한다언젠가의 내 행복도 도봉로 10길 잔치국수에 담겼던 적이 있다플라스틱이 아닌 그릇에 담긴 그릇에 행복했으니까작은 행복의 띄엄한 흔적으로 이어나가는 삶이지만 시인은 큰 시를 쓰기로 한다’ ‘어딘가 복스러운 사람을 보면/무럭무럭 자라서/인류의 등불이 되길/부러워서 부끄럽게/열심히 지켜보았다/해시태그 인생사.’ 나도 바라본다인류의 등불이 출현하길열심히.

 

삶은 오늘도 쏟아지지 않고 슬픔과 더불어 소년은 (...) 순식간에 사라졌다’ [인내의 이유]는 매일 충분하니 맞다대체로 삶이 문제다끝날 때까진 계속이니까계속 밀고 가야 하니까.’ 이제 남은 삶에는 쫒아 올 행복한 사람도 행복도 없을지 모른다그래도 이럴 수가 아름다워 보여서/희망적인 사람이기로 했다

 

(...)

꺾이지 않는

피를

흘리면서

도망쳤다

(...)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잘 울게 된다특히나 사랑이 사랑에게 사랑을 사랑하자는 스물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다면이 모두를 세 시간에 완독할 수 있다는 네 말 때문에 나는 다시 다사로운 해변에 홀로이다움직이지 못하는 발 옆에 뿔소라가 하나셋 있어 주면 좋겠다두 귀에 입술에 대어보고 싶으니우두커니 남의 인생을 재생하다 보면 (...) 똑같이 따라 써보게’ 되면 따라 읽어 보게 되면. ‘그런 게 간혹 시가 되기도 하고시가 될 뻔 하기도 하고시가 되라고(...) ― ♡.’


...............................................................................

꼭 싸 안고 며칠을 지내 봐도 부화는 없다

그만 품에서 내어 놓을 때


시는


좋고

낯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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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1만 년 나이테에 켜켜이 새겨진 나무의 기쁨과 슬픔
발레리 트루에 지음, 조은영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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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좋아하시지요혹 나무 싫어하는 이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는 좋아합니다바라만 봐도 즉각 기분이 좋아집니다태어났을 때 아버지께서 묘목도 한 그루 심어 주셨습니다나무가 저보다 빨리 자라 고가의 지붕을 넘어섰지요.

 

어릴 적 단독 주택에 살 때는 아침에 새소리에 잠이 깨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아파트에 살면서 그런 아침이 사라졌는데사라진 줄도 모르고 살다가 유학 시절 기숙사에 살면서 아침마다 수다스러운 새들을 다시 만나고서야 비로소 그 단절을 알아 차렸습니다.

 

2층 기숙사 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비로운 떡갈나무Oak tree가 계셨거든요수령이 오래되면 가지가 땅으로 휘어져 굴곡져서 한 그루가 숲처럼 공간을 이루기도 합니다그 가지 하나에 올라가 책을 읽기도 하고 그냥 숨어 있기도 하고반지의 제왕의 그 숲이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던 국립공원에 현장 조사 나가던 시절도 그립습니다.



당시 무척 인상적이었던 나무껴안기, Tree Hugging 혹은 칩코Chipko 운동이 있었습니다인도 히말라야 칩코 지역 여성들이 벌목산업에 대항해 자발적으로 나무를 껴안고 벌였던 조용한 저항운동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친구가 시애틀에 사는데 워싱턴주 사람들 별명이 Tree hugging hippie people이라고 합니다자연친화적이고환경운동에 열심이고매우 진보적인 정치 성향이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책과 무관한 얘기를 지나치게 한 셈인데나무이야기가 즐거워서 그렇습니다그러니 나무에 관한 이 책도 반갑고 궁금하고 행복하게 잘 읽었습니다아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직업과 연구 분야가 있다니뭔가 제 정보지식을 과신하다 다시 한 번 크게 놀란 내용이 가득한 책입니다조금 소개하겠습니다.

 

첫 문단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멋진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연륜연대학Dendrochronology’이란 학문 분야를 아시나요나이테에 생장 연도를 부여하고 나이테에 저장된 다양한 환경 정보를 밝히는 학문(옮긴이)입니다


Dendro는 나무라는 뜻이고, ‘Chronos’는 시간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입니다. ‘연륜은 나이테라는 뜻입니다(옮긴이). 즉 나무의 나이테가 담고 있는 정보들을 찾아 읽어 내는 분야입니다기후나 토양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관련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했습니다.



저자 역시 나이테가 과학의 한 분야가 될 정보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합니다잠시 상상해보니 나무와 함께 하는 연구란 참 좋을 것만 같습니다나무들은 정말 근사하니까요요즘은 특히 인간의 수명이 짧디 짧게 느껴집니다그러니 몇 천 년 씩 살아가는 나무들이 부럽고 경이롭습니다.

 

나는 연륜기후학자이다나이테를 이용해 과거의 기후를 연구하고 기후가 생태계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 (...) 매년 우리는 기후에 대해그리고 우리가 태운 화석 연료가 기후에 초래한 대혼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 그러나 해를 거듭해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억제하거나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가 가져올 최악의 결과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심지어 196개국이 모여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야심 찬 노력을 기울이기로 약속한 2015년 파리 기후 협약 이후에도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연륜연대학은 생태학기후학인류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과 환경의 역사 사이의 상호 작용을 밝힐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연속적인 나이테 기록은 독일의 참나무-소나무 연대기로 지난 1만 2650년 동안 한 해도 건너뛰지 않았다.”

 

세계적 규모의 네트워크 덕분에 과학자들은 나무가 자라던 지구 표면의 과거 기후는 물론이고지표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대기권의 과거 기후까지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연륜연대학이 정확하게 밝혀낸 한 해 한 해의 나이테는 인류와 기후의 역사 사이에서 일어난 복잡한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발판과 정박지가 된다.”

 

물론 나를 사로잡은 나이테 이야기들도 들려줄 것이다이 이야기들은 나무 착취와 산림 파괴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연륜연대학자들로 하여금 과거를 연구하게 만들고미래에도 지구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과학기술은 멈추지 않고 최고의 속도로 자신의 닿을 다음 천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지만 과학 진보에 대해 인류는 또한 불신과 무관심도 동시에 높습니다젊을(?) 적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혼란스럽고 이해를 잘 못했습니다예외가 아닌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오답이 아닌가 생각했지요그런데 같은 연도를 살지만 우리 모두는 또한 각자의 연도를 살고 있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예외도 잘못도 오답도 아닌 팩트였지요항상 그럴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저자처럼 과학적 발견을 재미있어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을 즐거워하는 저자는 짜릿함이라 했지만 그런 일들이 많기를 바랍니다과학의 동력은 발견의 즐거움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궁무진하게 재미있습니다. 1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득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영상 자료로도 기록되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나무라는 단일 대상에 관한 과학 분야이지만역사를 오르내리는 풍부한 문명적 사건들을 담고 있고 문장 자체가 아름다운 문학처럼 읽힙니다무려 지난 2,000년 동안의 지구 날씨와 인류 문명과 생태계의 변화를 저자가 나무와 함께 밝히고자 노력한 기록입니다.

 

스코틀랜드의 폭우와 모로코의 가뭄나이테의 넓이와 해적선여름 추위가 닥친 것과 로마 제국의 멸망나이테에 기록된 어느 해의 화재가뭄추위와 같은 나무의 불만과 우울 증상들나무인데 사는 일은 사람 사는 일과 닮아 있습니다경쟁과 공격이 없고 식량과 물이 풍부할 때 나무도 행복하게 살고 자랍니다그리고 그 행복을 기록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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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의 타이밍
이선주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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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취보다 너의 상처에 닿는 일이 더 아름답다.

 

무루 작가의 추천사에서 만난 문장에 청소년 시절에 가진 마음이 화석이 녹듯 꿈틀거렸다당시에는 진실하고 당연했던 말이었다막 세상의 경계가 넓어지고 현실의 모습들이 보이고 아름답거나 밝지 않은 것들도 직시할 힘이 붙고 용감한 생각도 해보고 함께 하는 친구들이 무척 중요한 시절이다


열여섯 살다섯 명.

 

표지를 보고 그래픽노블인가 했는데 장편 소설이다자주 경험하듯 청소년 문학은 때로 몹시 깊고 날카롭고 직설적이라 예상치 못한 혹은 기대 이상의 충격을 받기도 한다살짝 겁을 내다 읽어 본다.

 

카톡을 하는 데 무슨 의의가 있는 건 아니다그냥 편하기 때문이다편한 이유는친구들 대부분이 하기 때문이다이런 걸 사회 시간에 배운 문화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조별 과제를 하는데 카톡을 안 하는 친구 남주가 있다안 할 수도 있고 하기 싫을 수도 있는 문제일까이기적이고 고집스럽고 이상한 것일까혹은 신념일까.

 

다행히 정윤은 남주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일단 나는 카톡 안 하는 게 노력해서 이해하고 이해받고 할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무척 놀랍다저는 안 합니다했다가 엄청 놀라서 안 합니다그렇게는 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톡카톡카톡...... (...)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쉴 새 없이 카톡이 울렸다. (...) 단톡방에 제일 많이 올라오는 글은 ㅋㅋㅋㅋㅋㅋ” 였다지겹다고 생각하면서도 카톡이 오면 기계처럼 답했다.”

 

세상은 온라인 쌍과 오프라인 세상으로 나뉘어 있고온라인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오프라인에서도 서서히 존재가 지워졌다.”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결코 그냥 넘기지 않는다이해하지 못하면 악으로 만들어서라도 이해하고 싶어 했다. (...) 대결만큼 명확한 구도는 없으니까아이들은 (...) 남주를 악의 영역에 두려고 했으며근거를 찾으려 했다그 근거는 대개 실체가 조금 섞인 거짓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사고방식이 무시무시하다방어 기제인지 공격 방식인지 조금씩 헷갈리기도 하지만 차별과 혐오에 관한 인간의 반응 속도는 멈칫 거리는 법이 없다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배운 것들이라 창작물이지만 현실은 더 대단할 듯해서 두렵고 미안하다.

 

단톡방은 진지하게 성찰해야할 문제이지만 첫 번째 순서답게 충격을 유예한 소재이기도 하다다른 아이들이 직면한 문제들 중 아주 심각한 범죄에 이른 사건을 접하면서는 무척 끔찍했다. 이야기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역시 현실이 더 대단할 듯해서 더 두렵다


한 방에 인생이 결정 나기도 한다고 협박 비슷한 강요를 당하는 시기, 실수를 해서도 안 된다고 강박적으로 훈련받은 아이들의 시기는 팽팽하고 뜨겁다. 아이들은 경험하는 모든 것을 극히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깊이 느낀다.

 

작가는 차분하고 끈기 있게 모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지만나는 아이들의 삶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고 팽배한 에너지들이 불안해서 조마조마했다결합이 끊어지는 반응 속도가 빠른 물질의 해체를 우리 사회에서는 폭탄이라고 부른다


불안한 심정으로 비극을 목격하는 독서가 달갑지 않았는데, 다행히 작가가 이끄는 먼 곳의 방향이 각자에게 맞는 성장의 모습이라 아이들이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서는 모습이라 안도했다.

 

기억도 흐려졌고 내 시절과 이 시절은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이 시기란 궁금한 것은 많지만 되는 일은 적어 힘든 마음을 털어 놓고 싶어도 누구에게 얼마나 솔직해져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어려운 시간임에는 분명하다진심을 정확히 전할 능력도 부족하고 나를 드러내는 일도 두렵다그런 시절이다


나이가 들면 내 마음에 드는 대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덕분에 나도 남도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거나 그럴 수밖에 없다고 포기도 하게 된다. 비겁한 듯 들려도 덕분에 세상의 모순과 결핍이 조금 덜 고통스럽고 포기한 여백으로 인해 남은 에너지로 희망을 그려볼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마법이나 초능력이 등장하지 않는 한 해법은 우리가 아는 그 방법 밖에는 없다. 살면서 겪는 거의 모든 고통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지만 서로가 아니고서는 희망을 찾을 다른 곳이 없으니까


역지사지


나는 이럴 때 아프던데 저 애도 그럴까나처럼 저 애도 혼자 울었을까나처럼 저 애도 누군가 말을 걸고 마음을 내어주면 반갑고 위로가 될까이렇게 상상하고 용기를 내어 다가서 보는 수밖에 없다


어쩐지 경구만 읊는 것도 같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세상은 공고하고 변화에 대한 저항이 거세며 누가 되었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어른보다 현명한 아이들, 어른보다 실수가 적고 잘못이 적은 아이들, 미래를  살아 갈 아이들에게 희망을 두고 힘껏 응원한다. 무책임과는 다른 마음으로...  어른들은 부디 현실을 좀 더 잘 책임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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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악어 아빠 - 2021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소연 지음, 이주희 그림 / 비룡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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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태어날 무렵부터 아빠가 아주 많이 바빠져서

둘째는 한동안 아빠와 정서적 유대를 만들지를 못했습니다.

서먹하고 솔직한 얘기를 하지 않았지요.

그런 관계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주말 하루 아이와 신나게 놀아 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년쯤 지나자 아이가 아빠에게 진심으로 장난도 치고

신뢰하고 친밀감을 느끼는 변화가 보였습니다.


바쁘고 지친 부모를 보며 아이들은 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두었을 지 모릅니다.

악어라니! 저는 정말 무섭지만

잘 놀아 주는 악어 아빠라 다행입니다.

서로가 색다른 경험을 한 시간을 통해

서로가 조금씩 변해서


다시 인간 가족으로 만나게 되어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길 기대합니다.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로

쉽지만은 않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보여주고 들려주는 책이라 감탄합니다.


실제로 읽으면 기대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다채롭고 감동 가득일 것이라 

비룡소의 책들을 신뢰하는 만큼 기대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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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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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짧은 공부(?) 단상을 기록한 뒤 아쉬움이 남았다일 년에 하루나 이틀이라도 불교철학 강의를 듣거나 책모임을 하면 좋을 텐데부담도 없이 지속할 수 있는 일을 한 번도 생각을 못 했다 싶기도 했다맞춤한 강의를 찾기는 쉽지 않아서 불경 본격 강의는 부담이... - 지인들과 책을 한 권 읽기로 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경험한 한국불교의 모습이라 불교계 내부에서 눈치 보여 우물쭈물하는 이야기들도 적을 듯하고 그 시선에 비친 사찰들의 풍경도 궁금하고 순정파(?)답게 오로지 법정 스님만 읽은 내게 다른 학승들의 이야기를 두루 접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그게 깨달음이죠. (...) 요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알아요. (...) 쓸데없이 아는 건 많은데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잘 모르고 살아가죠. (...) 내가 모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그게 가장 큰 병입니다.” 성파

 

그리고 데니스 노블은 영국 유학 시절 내 지도 교수님들 중 한 분과 친분이 있었던 반가운 분이기도 하다오픈 대학을 제안해서 설립하고 생물학과 생태학자로서 활동하시던 지도교수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유명했던 리처드 도킨스와 논쟁적 대척에 서 있는 분이었다두 분의 맹렬한 논쟁 시간심지어 생물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나는 난간한 기분으로 버티다 만류하는 동기들을 뒤로 하고 무례하게 자리를 떠난 적도 있다연구 논의를 비판할 능력은 못되지만 데니스 노블이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정면 반박함으로써 논쟁이 잠잠해진 일은 개인적으로 안심이 되는 감사한 일이었다.

 

유전자라는 건 좋고 나쁜 어떤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고 이기적인 존재는 더더욱 아닙니다따라서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그렇습니다시스템 생물학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그런 사실들을 쉽게 깨닫게 됩니다대부분의 경우 자연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 속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의 유전자는 이기적이지 않다데니스 노블

 

과학철학계의 대석학이 한국의 불교 사찰을 방문하러 오실 줄 몰라서 더욱 반갑고 기쁘게 읽었다깊고 넓은 철학에 온전히 담기진 못하고 이해가 가는 필요한 문장들과 단상들만 옮겨 본다.

 

고통의 본질을 깨닫고 제대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 쓸데없는 고통의 연쇄에 매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도 어쨌든 연쇄에 매이는 일을 없애고 싶어 관련 내용에 집중해 보았다지나고 나면 쓸데없는 일에 소모된 모든 것이 새로운 고통으로 남는다그 또한 괴롭다.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내가 원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딱 정해두지 마세요.”

:안 그런다 하면서 반복하는 버릇이해하고 기억하는 인물정보라 착각하는 듯하다.

 

“‘지금 이 순간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즉각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매 순간 바뀌어도 문제이고 안 바뀌어도 문제란 생각이 드는 건 또 다른 미몽인가 싶다언제나 가장이 붙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했다그 또한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서 그런 듯.

 

지금 여기이미 완전한 나의 존재를 알고 온전하게 살라는 말입니다. (...) 인간은 본래 완전한 존재다인간이 곧 부처다라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그렇게 알고 살고 싶지만 최대 보상액 500만원 보험을 들고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기업 현장에서 매일 사람들이 사고사를 당하는 현실에서는 나의 존엄성을 생각으로도 온전하게 지켜나가기가 힘이 든다매일의 현실이 인간이란 사실 무가치한 노동력이라고 보여주는 현실에서는무섭고 슬프다전 국민의 90%가 불교 신자라는 미얀마의 상황은 더 끔찍하다이 와중에 한국가스공사는 미얀마 군부와 투자 사업을 가속하고 있다.

 

탁한 마음을 씻어내고 초심으로 돌아가면지금 이 순간을 생생하게 볼 줄 아는 지혜가 생깁니다우리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려면 마음을 푹 쉬어야 합니다그것이 바로 수행이지요.”

일종의 작은 깨달음이 느껴지는 감사한 구절이다수행이란 없던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가려진 본성을 드러내는 일뭘 열심히 해서 쌓아가고 높여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반대로 덕지덕지한 것들을 벗겨내고 버리는 일. ‘마음을 푹 쉬는 일이 수행.’ 울컥했다.

 

나 아닌 다른 것을 다루는 기술도 역시 빼어나죠. (...) 온갖 최첨단 기계들을 잘 다루잖아요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을 다루는 실력은 별로예요.”

매뉴얼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면 혼날까하는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제품이야 사양이 똑같지만 인간은 모두 다르니 아무도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그러니 결국 스스로 열심히 자신을 보고 배우고 깨닫는 수밖에그러니 어려울 수밖에.

 

우리는 늘 일상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떠나 지혜를 구한다이 책을 펼친 것도 그러한 여정의 하나일 것이다그렇다면 방황이 끝나고 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거창하게 보일지 몰라도 실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문제다특히 아무도 보지 않는 자기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적은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나는 어쨌든 당분간 어쩌면 오래 매일 일상을 떠나 책을 펼칠 것이다때로는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피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한다그런 시간이 지나면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시 하루를 살아갈 방법은 확실하게 몰라도 심신으로 리셋이 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런 시간을 보내는 나는 누구인가…….

 

진정한 삶의 변화는 (...) 바로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 5월 마지막 주라니, 6월 일정이 벌써 채워지고 있으니…… 나는 아무 때나 울고 싶기도 하다짐작해보는 미래와의 거리가 멀수록 더 슬퍼진다. 5월을 잘 살았네~란 안도감과 보람은 느껴지지 않는다잘 해치우며 살았단 생각이 드는데도 감정은 요지부동이다이럴 때를 잘 넘기는 방법은 서글프게도 그냥 할 일을 하는 것이다아주 조금 더 부지런을 부려서 귀찮아서 마지막까지 미루자 했던 일을 처리하면 조금 더 힘이 붙는다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다행이고 이런 식으로 사는 나에게, ‘너는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하는 낯선 느낌이 붙기도 한다.

 

인생에서 좋은 때라는 건 따로 없습니다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자 좋은 삶입니다.”

살면서 지금 참고 노력하고 포기하면 나중에 좋은 때가 온다고 사기 쳤던 어른들처음엔 미웠는데 세월이 지나니 그 때 그 어른들도 이런 말을 들으며 살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며 살았을 거란 생각을 하니 정말 슬프고 안타까웠다지금이라도 누구라도 참 좋은 삶의 순간들을 만나고 계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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