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속한 것
가스 그린웰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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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색감에 마음이 사알떨렸다강렬한 보색은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처럼 읽히기도 한다이 정도는 표지디자인이 아니라 전시작품처럼도 느껴진다연초록 심장 부근에 저자와 장르와 역자가 글자 크기를 달리하며 자리 잡은 것도 무척 세련된 감동을 준다.



옆모습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샬라메Timothee Chalamet를 떠올리게도 한다배경과 배우가 너무 아름다워서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감상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영화였다살짝만 슬픈 결말 역시 어울렸다이 책은 영화와는 사뭇 다를 분위기이긴 하다.

 

표지에 집착했다 옆길로 빠지는 이야기에서 돌아와서어쨌든 어떤 사랑이든 어떤 거래든 구태연 하거나 지루하진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박상영 작가의 추천을 가장 큰 이유로 삼아 읽는 것이니 이미 편애 가득이다.

 

나이가 드니 화들짝 놀라는 일이 적어져서 정말 그것만은 편안하다발간되자마자 클래식이 된 레전드 문학작이라는 퀴어 문학을 이렇게 태평한 마음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태도를 내가 지녔다니 조금 뿌듯하다.

 

밀도가 높은 감정일 거란 예상은 했다경험 상 내가 읽은 퀴어문학작품 속 인물들은 늘 그렇게 사랑에 면역도 없고 저항도 못하는 허약한 존재들이었다한편으로는 그 정도 농밀한 감정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면 엄청 강한 이들이란 모순적인(?) 생각도 한다애틋한 마음이 드는 사랑이다아주 짧고 직선적인 표현들임에도 이 작품의 장면들 속에서는 모두 아릿하다.

 

나는 네 고객이 되고 싶지 않아네가 너무 좋아하지만 널 그렇게 많이 좋아하는 건 나한테 좋지 않아.”

 

나는 너한테 뭐야? (...) 넌 그렇게 사는 삶이 마음에 들어?”

 

읽은 분량이 늘어갈수록 주인공에게는 아주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인물로 보이는 미트코보다 자신을 부정할 지라도 지극한 애정을 그치지 않는 주인공에게 훨씬 더 마음이 쓰인다감정은 눈앞의 동시적인 발생품인 듯 더할 수 없이 생생한데생각이든 대화든 문장들은 서글플 정도로 담담하다화를 버럭 내기도 전에 미리 기운이 빠진 사람처럼.

 

처음엔 그냥 읽었는데아름다운 날 여느 공개적인 멋진 곳이 아니라 문화의 전당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처음 만나는 장소 설정이 함께 사는 세상의 가장자리로 누군가를 힘주어 밀어낸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인다자신의 정체에 대해 혼자서도 물어야하고 관계 속에서도 확인해야 하고 사회 속에서도 설명해야 하고이쯤 되면 정체성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들이 악몽이다그러고 보면 정체를 밝혀라시리즈의 최고봉인 아무나 빨갱이라는 정체를 뒤집어씌우던 세월이 짧지 않았음이 새삼스럽다결이 다른 이야기인가.

 

어쨌건 그렇게 시작되어 힘껏 사랑을 이어나간 주인공이 대단하다무리하지 않으면서도 간곡하게 이어나간 순간들이 나는 눈물겨웠다사랑이란 감정의 한 가운데가 있다면 가장 깊은 곳에서 뽑아내고 다시 그곳에 담아 두는 감정이라 느껴졌다자기 연민이 아니라 상대의 처지를 헤아려 생각하고 아파하고 슬퍼하는 그런 유대를 혼자 마련해 둔 사랑이 느껴진다.

 

미트코는 어리둥절하다는 듯 잠시 서 있었고거리에 홀로 서 있는 미트코를 본 나는 다시 그에 대한 슬픔으로 가득 찼다그가 언제나 혼자였다는 생각이 들었다자기 자리를 한 번도 찾지 못한 채. (...) 


문득 나는 미트코 대신 분노를 느꼈다. (...) 기름칠하지 않은 기어가 긁히는 것 같은 미약한 분노를 느꼈다. (...) 이 분노도 그저 내 생각뿐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미트코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했으나 그를 알고 지낸 세월 내내 내게는 그저 이방인이었을 뿐인 이 남자에게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 


나는 그가 대로 쪽으로그를 멀리 데려갈 버스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어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지켜보았다나는 얼마간 그대로 서서 그가 사라진 모퉁이를 바라보았다그런 다음 안으로 들어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가 내 옆에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서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나도 얼굴을 잠시 묻었다.

딱히 슬프거나 아파서는 아니다.

느낀 감정의 모두가 고작 그것이라면 작품에 대한 모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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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뇌 - 뇌의 신비로움을 알면 인생이 즐거워진다
최성범 지음 / 밥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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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독서의 영역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뇌과학 분야가 있다존재의 문제가 철학에서 천체물리학의 영역으로 옮겨 왔듯이 인간 행동과 분석에 관한 문제도 심리학에서 인지과학뇌과학의 영역으로 옮겨왔다복잡하고 난해하고 질문 자체를 바르게 하고 있는지 혼란스럽던 주제들이 과학의 영역으로 오면서 간단하고 명료해지기도 한다.

 

인간은 지적 존재이므로 지성을 사용할 때 기쁨을 느낀다이런 의미에서 두뇌는 근육과 같다두뇌를 사용할 때 우리는 기분이 매우 좋다이해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칼 세이건

 

우리 모두 우주에서 살아가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멈추는 법 없는 뇌를 통해 거의 모든 기능을 하고 있으니이 책의 저자와 같이 임상에 주목해서 개별 사례들을 분석하는 내용이라해도 적용 가능한 공통적인 내용들이 도출된다즉 개별성과 보편성도 뇌로 인한 것이며뇌의 구조기능작용과 결과에 이르는 길에 각자의 경험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사례별로 설명해 준다.

 

직접 관찰할 수 없는 뇌를 이해하기 위해경험행동생각언해병증사고방식 등에서 드러나는 내용들을 분석한다이론이라면 반갑게 읽어 나갈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예시들이니 가독성이 아주 좋다.

 

성격성향가치관행동과 습관사고방식언어 구사 방식감정 표출 방식사회성절제 능력 등 (...) 이 모두는 그 사람의 뇌와 연관되어 있다.”

 

뇌과학 책들을 읽으며 심정적으로 도움을 받은 부분은 감정적 문제의 저변에 생물학적 원인이 있다는 사실이다정신적 문제라고 정신적 고민에 빠져 괴로워하는 대신 생물학적 실마리를 찾기 위해 시선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가벼워지고 힘을 낭비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완전히 절망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대신내가 느끼는 괴로움이 실은 통증일 수도 있다는신체적 이유일 수도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일은 무해하거나 유용할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이다그것은 절대로 물리학이나 윤리학의 문제가 아니다.” 아인슈타인

 

역으로 내가 신체적 통증을 느끼거나 성격이 갑자기 바뀌거나 비이성적이고 반사회적인 충동이 일어나는 경우에 뇌에 병변이 생겨 그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수 있다교통사고와 같은 분명한 사건이 있었던 경우는 상대적으로 짐작하기 쉬울 수도 있지만뇌종양의 경우에는 사후에 발견될 수도 있다이 책의 사례에서 보듯종양의 위치에 따라 감정 반응 조절 능력에 이상이 생겨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기도 한다어쩌면 짐작하는 것보다는 많은 현상들이 뇌 이상 뇌의 퇴행물리적 충격종양 등으로 전두엽 앞부분에 손상이 생기는 -을 원인으로 한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완벽한 대책이란 건 없겠지만대상이 나 자신이건 지인이건 갑작스러운 성격 변화감정 조절 능력이나 판단 능력 혹은 학습 능력 저하가 감지된다면일시적인 기분 탓이거나 연령에 따른 호르몬 변화일 수도 있지만 뇌 이상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여지로 두는 것을 권하고 싶다그렇다고 무조건 겁을 먹거나 일상적인 기분 변화에도 뇌 이상을 의심하고 검사를 받자는 것은 아니다.

 

연령 불문 발병하기도 하지만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가장 근심스러운 일은 역시 기억과 관련된 일이다알츠하이머성 치매를 포함한 뇌 관련 여러 장애를 가리키는 치매가 그렇다일단 치매는 병증이라기보다는 증상으로 나타난다이제는 거의 상식처럼 알려져 있듯이치매란 생애 어느 시기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인지 장애이며 뇌 손상 사고나 뇌졸중으로도 생길 수 있다.

 

치매 진단을 받는 환자의 절반 50~60% 정도가 알츠하이머라고 한다나머지는 뇌졸중이나 당뇨로 인한 혈관성 치매, 60세 이상에게 보통 나타나는 전두엽 치매운동 기능과 기억 부분에 단백질이 쌓여 생기는 노인성치매가 있다고 한다장수할수록 어쩔 수 없이 발병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어쨌든 다해보는 수밖에 없다그리고 그 최선들은 이미 우리 모두가 대략 다 알고 있는 방법들이다머리 충격 안 받기적정 시간의 수면사회적 관계 맺기학습(새로운 것 배우기), 운동하기명상하기건강한 식생활.

 

반복되는 조언에도 불구하고거부할 분명한 이유가 없음에도특별한 약물이나 학습이 필요하지도 않은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인데어쨌든 꾸준히 하지 못하는 일들이다. 7개 중 2~3개는 형편없이 못하고나머지는 그럭저럭이다조금 더 애써보자비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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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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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있을 북클럽 도서를 읽는 중에 이런 내용을 만났다.

 

어떤 책이 가치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책의 장점을 발견해서 책을 구입하고 또 나중에 가서는 이 작가가 다음번에는 무슨 책을 낼지 궁금한데라고 말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그게 바로 글쓰기고 또 출판이에요.”

 

이 기준에서 보자면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간을 나는 가장 궁금해 하며 살았다전작 <오베라는 남자>를 데굴데굴 구르듯 실제가 아니라 기분으로 웃으며 읽고 초조하게(?) 다음 작품을 기다렸다눈물이 난다. 6년 만이다전작을 재작년에 다시 읽기도 했다다짜고짜 전체적인 감상을 요약하자면엄청나게 재밌다!

 

이율배반적인 것들끼리 일부러 짝을 지은 것처럼 딱 붙어서 온갖 풍경을 자아내고 삶고 사람도 혼란스럽게 한다현실이라면 기운이 몽땅 빠졌을 법한데 다행히 소설이라 견딜만하다끔찍하지만 절망적이지도 않고슬픔이 진하지만 몹시 웃기고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혼란스럽지만 품위를 잃지도 포기하지도 않고울다 웃다 하다 보면 아까운 이야기가 다 끝나버린다. 🥺😭

 

진실은 무엇일까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잡한 경우가 거의 없다우리가 진실이 복잡하길 바라는 이유는 먼저 간파했을 때 남들보다 똑똑한 사람이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건 다리와 바보들과 인질극과 오픈하우스에 관한 이야기다하지만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사실 여러 편의 사랑 이야기다.”

 


엄청나게 어설픈 은행강도가 등장한다현금 없는 은행을 털러 가는 것부터가 참은행에 현금이 없으면 은행원에게라도 돈을 내놓으란 말 한 마디 못하고 당황하다 겁을 먹고 도망을 간다달아난 곳에 여덟 명이 있는 바람에(?) 인질범이 되어 버린다어설픈 범인과 엉망진창인 인질범들……이런 저런 척을 하며 살다가 저지른 실수들과 오해들과 때로는 거짓말들을 자신들의 상처로 안고 불안하게 살아가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당신도 자기 자신을 좀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겠어요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은행 강도로 성공할 수 있겠어요항상 남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대로 하면 되겠느냐고요.” (...) “잠금장치 쏴서 부숴요좋은 말로 할 때!”

 

“(...) 제발요나는 아무 계획도 없어요생각을 좀 해야 해요이럴 줄은 몰랐거든요.”

뭐가요?” 로는 물었다.

인생요.” 은행 강도는 코를 훌쩍였다.

 

자자이렇게 된 거 자기소개나 합시다여기 복면 쓴 친구는 이름이 뭐예요?”

 

저기... 저한테 그런 걸 물어보시면 곤란한데요.”

 

기막히게 남의 속내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작가로 인해 혼란스럽다유사 경험이라도 한 것인지몽땅 상상한 것인지뭐가 되었든 최고로 재밌고 마음이 뜨끔거리는 통찰임에는 분명하다평생을 인간 연구만 한 괴짜 같은 작가이다절대 안 먹는 메뉴인데 너무 웃다 정신이 몽롱해서 따라 시킬 뻔 했다.

 

꼭대기 층에 있는 인질인데요여기 하와이안 피자 좀 갖다 주세요.”

 

뭘 옮겨 적든 확실한 스포일러가 되는데도 참지 못하고 몇 구절 적었다수백 배나 되는 더 재미난 상황들과 대화들이 있고 어쩌면 갑자기 마음이 찡 울리면서 눈물이 차오를 이해와 공감 가득한 작가가 작정한 문장들도 있다번역임에도 불구하고 빈 틈 없이 작동하는 스토리는 기적이다.

 

최악의 인질이야당신들은 역대 최악의 인질이야.”

 

그리고 뭘 막 숨겨둔 것들이 있다책 읽다 뒤통수를 맞고도 진심으로 웃는 멍청이가 되어 한껏 즐길 수 있다이 정도로 재미있으면 상관없다.덕분에 적어도 이번 주말이 끝날 때까지는 우울할 수 없을(?) 듯하다전작과 마찬가지로 남은 올 해 친구들 생일 선물은 모두 이 책이다.

 

6년 만에 만났는데...... 다 읽어 버렸다...


다음 작품은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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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 자꾸만 나를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반유화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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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12년간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며 임상을 경험하다 필요에 의해 여성학을 공부하고 쓴 글이다그런 통찰에서 온 것일까아이스크림콘이 떨어진 방향과 녹은 모양의 표지가 눈을 사로잡는다혼란한 기억 속 어느 순간나도 저런 망연자실한 일을 겪고 울었던가싶기도 하다.



우리는 일상에 공기처럼 배어 있는 성차별과 성별 고정관념을 감지하게 된 상태를 빨간 약을 먹었다고 표현합니다자연스럽게 숨 쉬며 살아왔던 공기 안에 미세먼지가 있고 그 미세먼지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안 순간이전처럼 공기를 편하게 들이킬 수 없겠죠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동시에 엄청난 해방감도 느낍니다.”

 

진료실 내에서 환자의 증상을 연구하는 일에 더해 개인과 세계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그로 인한 고통을 지고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의 여정을 탐색하기 위한 노력이라 한다의학 공부 이외의 공부가 의학적 진단과 치료에 필요하다고 느끼고 보충한 저자의 판단과 결단이 귀하고 감사하다.

 

임상 연구 결과이자 경험을 글로 정리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제공해 준 점도 감사하다모든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관계에 관한 문제 12가지 사례들이 담겨 있다나와 남을 이해하는 좋은 공부이자 해법이 될 것이란 높은 기대로 읽었다.

 

현재의 삶에서 심리적물리적으로 무엇을 얻고 있고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가공 없이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걸 추천합니다.”

 

비교적 객관적 시선을 학습하듯 정독하고자 했던 마음과 태도가 무색하게 무척 따뜻한 공감과 조언이 가득했다조급하지 않은 종합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들과 조언들을 읽어가는 것만으로 좀 더 걷기 편한 길이 나타난다그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독자의 몫이다.

 

목차를 보고 먼저 읽고 싶은 내용을 골라 읽고 다시 순서대로 일독하였다제대로 극복한 것도 아닌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 이젠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게 된 상황들도 눈에 띄었다참 다행이다 싶다.

 

1

 

결혼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먼저상대가 나의 가치관을 허락해주는 사람이 아닌 나와 한 팀이 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세요그리고 팀 안에 다른 사람 (부모님친구들익명의 타인 등)을 넣지 않을 만한 사람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성인으로서 자신이 새로 구성할 가족과의 유대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지그리고 자신의 과거 양육자와 적절한 분리가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양육자와 적절히 분리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상대가 부모의 행동에 지나치게 불안해하거나 책임감을 느끼는지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배우자인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지를 알아보면 됩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나 사랑과 연애에 관한 신화가 하도 강력해서인지 온갖 시행착오가 난무한다결혼을 한 자식을 여전히 돌봐 주는 한국의 독특한 환경도 한 몫을 보탤 것이고결국은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없는 사회 환경이 가장 큰 문제이다어쨌든 이 문제만 잘 예방되어도 수많은 사회 문제와 범죄들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며 막장 드라마가 전파 낭비하는 상황을 그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안식처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가장 먼저 내가 안전한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2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화가 나는 걸까?”가 아니라, “겉으로 사소해 보이는 이 일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나는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로 바꾸어 질문해야 합니다.

 

갈등과 언쟁이 성가셔서 가능한 피하는 태도가 있어서 세 번 정도는 참아본다든지어쨌건 실시간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방식을 따르며 살았다잘 작동할 때도 있고 그래서 실수나 후회를 분명 줄이기도 했다그러나 언제나 그런 긍정적인 결과만 뒤따르는 것이 현실이 아닌지라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빼곡하게 차이기도 한다.

 

타인에게 어떻게 표현하든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그것이 가벼운 농담인지 아니면 진지한 고통인지를 확실히 구별했으면 좋겠습니다진지한 고통이라면 진지하게 자기 삶을 들여다보며 감정을 정리하고 솔루션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적어도 자기 자신만큼은 자신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인내심은 항상성을 유지하는 능력이 아니라 마침 고갈되었을 때 새로운 스트레스가 닥치면 위험천만한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그럴 때마다 당면한 갈등이 너무 사소해서 어이가 없고 자신을 반성하거나 꾸짖는 패턴으로 향하기도 했는데좀 더 천천히 자신에게 친절한 방식으로 감정을 살피고자 하는 처방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당연한 것이 어디 있냐고 말해주는 저자 덕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좋은 게 좋은 거지와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이런 말이 끔찍한 내 정서에는 이 책이 오래 그리워한 친구 같기도 하다이것이 힐링이라는 것인가.

 

충실하게 채워진 분량이지만 다 읽고 나니 분량이 적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져서 그런가 보다마음이 헝클어지고 생각이 복잡할 때 일상이라는 최대 난적이 버티고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내 편이 되어줄 책이다간결한 처방전을 받아 든 기분으로 더 생각하고 정리하고 바꿀 것은 스스로 바꾸자는 생각을 한다.

 

다시 떠올리는 멋진 수상소감,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우리가 세상을 바꾼 것입니다.”(김숙)

 

저절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없을 것이다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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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유의 숲 - 이상한 오후의 핑크빛 소풍 / 2020 볼로냐 라가치상, 앙굴렘 페스티벌 최고상 수상작 바둑이 폭풍읽기 시리즈 1
까미유 주르디 지음, 윤민정 옮김 / 바둑이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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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도 두께도 설레지만 수채화의 향연이 마음이 아찔합니다이렇게 많은 색을 쓰면서도 유치하거나 요란하지도 않다니실제로 알록달록합니다그런데도 자연스럽게 모두 잘 어우러집니다.




색채들에 홀렸지만 이야기도 엄연히 존재하는 동화입니다이혼가정과 새엄마새언니들이라는 설정에 속으로 어이쿠소리가 들렸지만 설마 그 클리셰를 따라갈 거란 무서운(?) 상상은 하지 않았습니다우연히 들어간 숲 속에 독재자 고양이 황제의 생일파티가 열리고 있었다.’란 구절을 읽고는 바로 안심이 되었습니다완전 새로운 동화겠구나!

 

정확히 계산한 적은 아니지만 70억이 넘은 인구 중 아무리 적어도 10억 정도는 경험했던 아픔이 아닐까 합니다태어나 보니 이런 세상이런 가족이런 현실온갖 억울함과 불합리와 몰이해와 과도한 기대와 어긋난 애정과 때론 못 살게 구는 형제자매들까지어려서 아무 힘도 없을 때에는 정면 대결보다는 피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 장소로 나만의 세계를 만들기도 하고 찾기도 합니다그 세계에서는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그런데……아름다운 색들로 빛나고재미난 요정과 다정한 친구들이 있고즐거운 모험이 가득한 세상도 완벽하지만은 않습니다. ‘독재자 고양이 황제의 존재는 완벽과 거리가 먼 세계를 상징합니다.



불완전함은 불평과 불만으로 갈등으로 점점 피곤한 지경에 이릅니다현실에 지친 아이가 자신만의 세계에서도 고단해지는 장면들은 안타깝고 가엾습니다그래도 이야기 주인공 는 돌아갈 다른 세상이 있지요그리고 돌아간 는 숲으로 들어왔던 와는 다른 경험을 한 다른 사람입니다작은 손을 가족들을 향해 흔드는 장면은 긴장이 사라지고 편안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다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서로를 찾고 식사를 나누고 나쁘지 않은 관계의 시작입니다.

 

그럼 주인공 말고 다른 가족의 입장을 생각해봅니다새언니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갑자기 생긴 막냇동생이 자신들을 노골적으로 싫어한다면그러다 혼자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면자신들만의 엄마였는데 자신들의 고민에 공감하기 보다는 새로운 동생에 대한 흉을 못 보게 혼낸다면조에 못지않게 언니들의 마음도 불안하고 불만이 있고 걱정도 많았겠지요.

 

.. 저희 부모님도 이혼하셨고요심지어 아빠는 지금 새 엄마랑 있어요.


할머니1: .. 그래서그게 큰 일인 거니?


할머니2: 너는 무엇을 원하는 건데두 분이 순전히 너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같이 있는 거?

 

그런데 제목의 베르메유는 누구일까요알록달록한 조랑말들입니다숲에서 자유롭게 살아야지누군가가 가두면 빛을 잃습니다강요받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조랑말만이 아니라 조용한 강요를 사회화해서 그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들 중 누구는 이미 빛을 잃어버렸을 지도 모릅니다자유롭다고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갇혀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해야 해서 하는 일들이 없지 않지요그것들 중 억지로 하는 일은 없나요?



놀이도 모험도 사라지고 꿈도 희망도 흐릿해지고 사라질 수 있는 나만의 세계도 찾기 쉽지 않습니다모두 다 언제라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믿기는 하지만 간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그래도 제게는 매일 만날 수 있는 책도 영화도 있습니다.

 

처음 책을 펼치고 색의 향연에 놀라 감탄한 제 심정을 이제는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메르베유!* 


메르베유: merveille [mεʀvεj] 경이롭고 경탄할 만하며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더랜드wonderland를 프랑스에서는 '메르베유merveille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아무도 안 물어 봤지만 저의 최애 캐릭터는 모리스입니다귀여운 외모에 결단력이 굉장하고 정의롭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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