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책
류이스 프라츠 지음, 조일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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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도서관에 간 기억이 나시나요?

 

<파란 책>의 주인공은 무척 운이 좋습니다난생 처음 가본 도서관에서 우연히’ 책 속으로 들어가 역사와 모험을 경험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니까요.컴퓨터게임 천재이지만 역사 과목은 낙제인 중학생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이 불만을 표하는 말이 무척이나 익숙합니다역사는 의미 없는 지루한 암기과목이라고 여겼던 십대의 저 역시 이런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니까요.

 

대체 몇 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 이름을 힘들게 외워서 뭐하자는 건데누가 워털루전투에서 나폴레옹을 이겼는지 아메리카 대륙을 누가 발견했는지 따위가 왜 중요하냐고오백 년 전에 세상을 뜬 사람들의 인생이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결국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단 한 번도.”

 

세계사에 관해 지금보다 더 무지할 시절에는 이 표지와 같은 푸른색은 스페니쉬 블루로 인식했습니다스페인에서 수입한 푸른 타일들을 무척 좋아했지요어쨌든 스페니쉬 블루이기도 한제목마저 파란 책인 이 책의 저자는 바르셀로나 근교에서 태어나 미술과 고고학을 전공했습니다역사와 모험과 마법이야기의 창조자답습니다.



판타지도 마술적 리얼리즘도 좋아하는 저로서는 다소 도전적인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빠져드는 환상 세계로의 여정이 재밌고 즐겁습니다.애독자 분들은 바로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를 떠올리실 지도 모르겠습니다저는 친절한 저자가 대화 속에서 언급해 줘서 비로소 생각이 났습니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에서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가 환상의 세계 여왕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아트레유를 돕는다는 이야기에 빠져본 적도 없을 테고 말이야.”

 

그러니<파란 책>의 주인공은 도서관을 방문한 레오 발리엔테이기도 하고이야기 속 도서관에서 발견한 <파란 책> 이야기의 주인공은 폴츠입니다그리고 레오와 친구들은 <파란 책> 속으로 들어가 폴츠와 함께 모험을 떠납니다이 구성만 받아들이시면(?) 내용은 엄청나게 재미나게 즐기며 읽을 수 있습니다헷갈리지 않도록 우리가 읽는 <파란책>은 검은 글씨로레오가 읽는 <파란책>의 내용은 파란 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사실이라니까요소리도 들리고요주인공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고요마치 그와 내가 하나가 된 것처럼요이건 정상이 아니잖아요!”

 

이렇게 생각하면 어때요책에 쓰인 내용이 전부 사실이고주인공과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면이야기 속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요?”

 

누구나 책을 읽을 때는 책 내용의 일부분이 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요안 그래요? (...) 그런 식으로 책과 동화되는 게 바로 독서니까요.”

 

온전한 창작의 시간과 세계만은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역사에 단단하게 기반하고 있습니다늘 가보고 싶은하지만 무식한 로마군이 불태운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을 지은 알렉산더대왕의 영토 확장 시기와 중세 십자군 시기에 이르는 세계사가 함께 합니다.

 

다리우스를 굴복시켰을 당시 알렉산더대왕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좀 알아봐줘파사르가대라고 불리는 왕궁과 관련된 것이라면 모조리 환영이야.”

 

알렉산더대왕은 다리우스를 쫓았다그러나 그의 병사들 대부분이 기력을 다해 중도 포기했고설상가상으로 말들도 죽어나갔다불과 열하루 만에 310킬로미터를 행군했다.”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자신의 상상력을 한껏 살려 고대 국가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과 사건들을 무척 흥미롭고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더구나 도서관 방문으로 이 모든 이야기들이 전개되니 소설 속이지만 사서 선생님 이름이 옥스퍼드! - 이 추천하는 책들을 찜하는 즐거움도 더합니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책 자체를 미스터리 모험의 중요한 소재로 삼았답니다그래서 띠지에 가려 보이지 않던 표지 숫자의 비밀과 모두가 궁금해 하는 존재그리고 마지막 대반전이 약이 오르면서도 통쾌했습니다<쥬만지> 보듯 재밌게 읽다가도문득책을 읽고 있는 나의 존재와 사실이라고 믿은 이 세계를 진심으로 의심해보는 인지적 혼란을 즐기며 읽었습니다아무리 생각해봐도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여전히 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확인하게 되지만 스페인 문학과 예술이 참 좋습니다덕분에 오래 전 영화관에서 감탄을 거듭했던 <판의 미로>의 환상적 파랑도 떠올라 더 즐겁습니다<파란 책>을 언젠가 영화로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레오가 물었다.

당연하지너는 내가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잖아.” 보가스는 동그랗고 깊은 두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래청소년 열람실이지.’ 레오는 슬픈 마음을 애써 감추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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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 크리 오늘의 청소년 문학 31
일요 지음 / 다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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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기개가 남달랐던 여성들을 그림도 사진도 없는 상태에서 복원한 작품들을 보면 서양 중세 시대 성경 그림과 다를 바가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이상적인 이미지와 구현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기정사실화되어 대상 인물의 연령과 신분에 관계없이 후덕한 중년 양반가 여인이 되고 만다



뜬금없이 초상화를 언급하는 이유는 표지의 주인공의 모습과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이다신간임이 분명한데 아주 오래 믿어온 가치를 담고 있는 이야기로 읽혔다거짓은 드러나고 진실은 밝혀지고 노력은 보상받고 자유는 확대되는 것이 인류가 진보하는 방향이라고 올곧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거대담론을 내다버리자는 거대담론들에 지치고 일상에 소모되어 오래 잊고 지냈던크리의 나이였던 나 역시 모두 다 이해하지 못해도 의심할 바 없이 믿었던 주제이다개인으로서의 나는 나를 실현시키고 그 길은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일로 수렴된다는 가치가 유의미하게 해석되던 시절이었다.

 

일요일에 태어나 고요하고 느긋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자신을 소개한 작가는 온전히 이율배반적인 작품을 완성했다예민하고 판단력이 뛰어나고 행동력도 남다르고 초능력까지 갖춘 매우 열심히 노력하는 주인공이다느긋하게 다룰 수 있는 주제라곤 하나도 없다차별혐오폭력은 그 무엇도 합리화될 수 없다고각자도생은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부조리는 깨부수고 출발은 평등해야 한다고 말한다.

 

추억에 반응하듯 마음이 간질거리고 생각은 복잡해졌다거침없이 현실을 끌어다 쓰고 정면 돌파를 권하는 작가 덕분에 능력도 없이 문화 비평가의 마음가짐으로 읽었다쓸데없이 진지한 읽기 태도에도 다행히 재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바이러스로 인한 판데믹 상황은 작금의 현실과 동일한 설정이나 이 바이러스는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질병으로 분류되는 기능을 한다이야기 세계의 인간은 건강체와 잠복체로 구분되고 그러한 분류는 바로 차별과 혐오로 이어진다수직으로 곧게 선 타워에 삶의 공간을 만들어 운용하는 인류 문명그 자체로 계급적인 107층 타워 건물의 지하 17층에서 태어난 아이가 공고한 이 세계를 균열 낼 주인공 크리이다.

 

분리정책이 우리를 지킵니다각자의 자리를 지켜요생명을 지켜요태양은 잠복체를 죽여요.”

 

일견 간단명료한 분류일 것만 같은 체계가 진실로는 더 복잡하고 비밀이 많고 온갖 사정으로 오염되었다는 점은 현실의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조바심을 떠올리게 한다현실의 의제들은 정확한 공식을 사용하면 매끈한 정답을 주는 문제풀이처럼 해결된 바가 없고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력들 또한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냥 통찰력이 멋진 문학 작품으로 읽고 싶은데멈칫거리는 구절들은 참 많기도 하다작가는 인류 문명의 면면과 이미 경험한 역사도 끌어들여 반성하고 바꾸자고 끈기 있게 글을 이어간다.

 

불안과 불신이 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나이라 맞는 말에도 불편하고 힘겨워하는 독자가 되었다예의를 지키느라 세 문단을 읽어도 결국 하려는 말을 돌리고 마는 어른들의 문학과 달리 짧은 문장들에 직구를 던져 놓은 청소년 문학을 가끔 만난다오늘도 그런 날이다.



............................................................. 

"만약 어느 누구라도 그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거든그의 편을 들어주고그가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 (...) 주변을 둘러 보라."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의 태도는 분노할 수 있는 힘,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윤리정의지속 가능한 균형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비폭력'을 택하여 평화적 봉기를 하며 분노하라."

 

부디 나는 언제나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 있길.


분노하라

작가
스테판 에셀
출판
돌베개
발매
201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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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을 때마다 한 발씩 내디뎠다 - 우울함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러너가 되기까지
니타 스위니 지음, 김효정 옮김 / 시공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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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조울증으로 인한 깊은 무기력에서 무려 마라토너로 변모하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다기뻐하며 박수를 보내기엔 얼마나 지독하게 힘들었으면 마라토너에 이르렀나 하는 생각에 내용을 읽기 전 마음이 짠해졌다.

 

사실 나는 희망을 지키고 싶었다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으면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이 작은 성취는 내 상상 속에만 존재했다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도 당장은 희망을 붙잡고 늘어질 수 있었다.”

 

두 주 전쯤에 여성마라톤대회 소식을 보고 기분이 더 쓸쓸해진 기억이 난다젊을 적 추억만 돌리지 말고 나도 다시 달리고 싶은데…….

 

표지와 제목만 보고 든 감상은 그쯤하고 마라토너들이 그렇듯 아주 기분 좋은 솔직함과 진중함이 가득한 책을 펼쳤다생각을 다 떨치고 호흡에 집중하여 기분 좋게 달리는 상상을 하며.

 

뭐 이런 부모가사랑 대신 술을 권하는 부모라니. 10대에 폭음을 하고 여러 차례 위험에 처하고 20대에 체중을 줄이기 위한 집착으로 섭식 장애를 겪고도 변호사가 되었다니부모도 저자도 충격적인 인물들이다전문직이 되었는데 일시적 노동 불능’ 진단 번 아웃 으로 은퇴하고 가족들의 죽음이 잇따른다.

 

다행히 정신과치료도 받고 치료 모임에도 나가고 명상과 글쓰기 수업도 듣고저자가 이렇게 움직이고 노력하는 것을 읽으며 잘 회복하리라 믿었다나 역시 우울증 완화법 중 하나로 의사에게 걷기를 권유 받았다운동센터 트레드밀 위에서 이어폰하고 20분 뛰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가 좋았다한발 한발 나아가는 걸음에는 가감 없이 딱 그만큼의 치유와 위로가 돌아온다.

 

물론 걷기와 달리기는 많이 다르다누구나 달리는 법을 아는 것도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부상 없이 잘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오래 달리려면 배우고 훈련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저자이자 주인공 니타는 정말 용감하고 대단한 끈기로 차례차례 닥치는 고통과 어려움을 가 겪어내고 훈련을 계속한다나는 그런 과정을 이어가는 니타가 우울증과 조울증에 휘둘리지 않을 뿐더러 이전보다 훨씬 더 강인한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는 나 자신이다나를 망치고 죽이려는 상대가 나 자신일 경우에는 도대체 어떻게 싸우고 이겨야 하는 걸까나도 다시 달리고 싶지만 심정적으로는 아마 니타와 비슷한 부정적인 마음이 많아질 지도 모르겠다예전에 달리기를 좋아할 때도 처음 10여분간은 늘 머릿 속에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이걸 왜 하는 거냐바보 같은 짓이다누가 하라는 것도 아니고힘들어 짜증스럽다 등등” 그런 시간이 지나면 소위 말하는 하이한 시간이 온다몸도 편안해지고 오히려 상쾌해지고 기분도 좋아지는매일이 그 반복이었다.

 

니타가 자신의 목소리들과 싸워나가는 이야기는 솔직해서 더욱 인간적이고 힘겨움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무조건 응원하고 싶은 장면들이다두려움비아냥이성을 가장한 변명들달콤한 유혹의 목소리들……내밀한 심리적 묘사들은 니타만이 아니라 독자인 나를 향해서도 날카로움을 물리지 않는다내게 들리던 목소리들을 떠올리며 떨치며 다시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49의지박약우울증과 조울증이라는 양극성 장애공황장애를 앓던 니타는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만으로 니타는 삶을 바꾸었다침대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 달렸다복잡하지 않다! “꾸준히 계속하기.”

 

경기가 끝나고 며칠간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인생을 바꾸는 경험을 하셨네요돌이켜 보니 풀 마라톤 결승선을 넘는 것은 최고의 경험 이상이었다. (...) 하지만 사실 그런 사건들이 인생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인생을 바꾸는 것은 일생일대 사건의 전과 후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과정이다.”

 

달리기가 우울증이나 음식에 대한 집착을 치료한 것은 아니었다. (...) 약을 끊게 해준 것도정신과 의사와 이별하게 해 준 것도 아니었지만 마음은 조금 평화로워졌다. (...) 내 감정은 여전히 배 밑의 파도처럼 들썩였지만 적어도 달리기를 하거나 글을 쓰는 날에는 자부심을 느꼈고 끊임없이 음식 생각만 하지도 않았다. (...) 문득문득 의구심이 들었지만 내 삶은 차츰 나아지고 있었다.”

 


풀코스 마라톤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다른 보상이 없더라도,

달리는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서

다시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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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중독
비온다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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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언제나 글을 쓴다는 저자 필명도 비온다 의 책이라 비 오는 바깥 풍경은 좋지만 무슨 수를 써봐도 눅진한 실내에서 읽기에 맞춤한 기분이 들었다. 30개로 촘촘히 나눈 소제목들이 연대순으로 저자가 경험한 일련의 사건들을 미리 알려 주는 기분이다자전적일 순 있지만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다.



일단 느긋하게 읽으려던 생각이 왠 말이냐는 듯 단숨에 읽힌다에피소드들이 짧아서가 아니라 기막힌 사건들을 담고 있어서 그러하다이런 세월을 살아남으려면 체력도 심장도 튼튼해야할 듯!

 

모두 다 소개해서 재미를 완전 상실하게 만들 순 없으니……주인공 이력이 파격적이라는 것영화 한 편 너끈히 만들 설정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 이어진다는 점코믹하지만 무척 무서운 주인공이 등장하는 강렬한 작품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다 읽고 나서야 전체적인 느낌이 정리되었지만 이 모든 요란하고 소란스러운 장면들에는 대한민국에서 일인 가구로 사는 여성의 현실이 가득하다는 점이다물론 자연스럽고도 미친(?) 듯한 사회 비판은 보너스이다.

 

친구와 이름이 같아 분별없는 애정이 있기도 했지만 부유한 가정의 생각 없이 쇼핑을 유일한 취미로 사는 주인공에 공감하거나 몰입하긴 힘들 거란 생각도 들었다에세이라면 정말 못 읽었을 수도있는 힘껏자신의 본 모습대로 온갖 난리를 치면서 그 와중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흐릿했던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뜻밖의(?) 분투기가 밉지 않았다.

 

오히려 악착같고 잠시 부끄럽더라도 원하는 것에 솔직하고 무엇보다 할 수 없는 일은 거침없이 도와 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주인공이 부러웠다주인공이 꿈을 이루었는지혹 이뤘다면 그 뒤로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지는 정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나는 여전히 열심인 사람들을 늘 얼마큼은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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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 2022 볼로냐 THE BRAW AMAZING BOOKSHELF 선정 도서 Studioplus
서선정 지음 / 시공주니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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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반드시 종이책으로 만나셔야 합니다손으로 읽으셔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책을 읽기 전에 손도 잘 씻고 구기지 않도록 넘기는 일도 오랜 버릇인데이 책의 표지에 손을 올리고 한참 있었습니다.



어릴 시절 시원한 젖은 모래 속에 손을 넣을 때처럼 기분이 좋아집니다표지에서 느껴지는 촉감도 세 종류나 됩니다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눈을 감으면 더 잘 느껴질 듯합니다.

 

차곡차곡은 한 때 사고방식이기도 했고 행동 방식이기도 했습니다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업무 기록조차 차곡차곡 정리해서 이게 다 역사하며 보관했거든요.

 

그래서 물건이 차곡차곡이라면 이제는 사양합니다매주 조금씩 정리하고 기증하는 일도 힘들어서 건너뛰고 싶거든요참 다행입니다이 책의 차곡차곡은 다른 것들이라,



봄입니다뒷산이 높고 앞개울이 가까운 이런 동네에서 살아 본 적이 없네요여름에 장마에 개울이 넘을 것 같아 염려증이 불쑥 거립니다.

 

모든 색들이 막 선명해지려는 듯 바쁜 계절봄은 작은 생명들이 비틀거리며 성장하는 계절이기도 하지요아직 완연한 봄 날씨가 아닌지 그림 속 동네 주민들 사람물고기고양이 등등 모든 생명체들 이 살짝 숨어 있는 그림이 재밌습니다.

 

2021년은 제게는 3월쯤…… 부터 아주 세차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입니다매일 오늘 일자가 믿어지지 않아 맘속으론 조금 겁이 나기도 합니다그래서인지 이 책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담긴 그림책이 적지 않은 위로가 됩니다뭐 했지싶은 내 시간들 역시 모든 모습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채워졌다 가겠구나…… 생각합니다.

 

책 속의 시간은 흐르는 계절들이 이어가는 장면들입니다봄에 태어난 생명들이 차곡차곡 자라고여름의 떠들썩한 풍경들 속 초록초록한 것들이 차곡차곡 신나고가을의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조용히 책 읽는 시간들이 차곡차곡 채워지고 눈과 바람이 섞여 나리는 퇴근길집으로 가는 길의 밤하늘은 적요함이 차곡차곡 번져 있습니다.

 

컬러링을 하는 분들의 작품을 보면 아주 섬세하고 판타지라 해도 어딘가 실재한다고 믿어지는 표현들이 있습니다저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일시급한 일꼭 해야 하는 일잊지 말아야할 일 등등 이런 순위로 매일을 해치우며 살고 있습니다그러니 주변도 작고 귀한 것들도 한참 바라볼 여유가 없어 거의 다 지나칩니다운이 좋아 기억이 나면 하늘 한 번 올려다보기그러니 굵직한 몇 가지를 빼곤 텅 빈 일상은 기억할 것이 많지 않아 빠르게 빠르게 지나가기만 합니다.



색감이 혼자 햇빛을 독차지 한 것처럼 선명하고 확실한데 어지러운 곳 없이 간결하고 담백하고 싱그러운 풀 향기가 나는 듯합니다에라모르겠다하고 도화지에 그림을 한 가득 그리고 싶은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 기억하는 한 세 번째.



차곡차곡 떠올려 보는 일은 참 좋습니다기억 속 봄 햇살 한 모퉁이차가운 수박의 시원한 향기높고 파랗고 쨍한 가을볕에 바짝 달궈진 나무 향기가득 쌓인 낙엽들이 바삭바삭거리는 배가 막 고파지는 향기슬프지 않아도 코가 찡하게 상쾌한 겨울 아침 공기아주 아주 오래 전 화로 속 알밤 구워지던 향기모두 다 차곡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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